핫타트: ‘죄’란 무엇인가?
1. 죄의 기원을 다시 묻다
기독교 신앙에서 ‘죄’의 기원을 묻는다면 대부분의 사람은 주저 없이 창세기 3장을 떠올린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은 사건, 이른바 ‘원죄’ 이야기다. 이 불순종으로 인간은 에덴에서 쫓겨나고, 죽음이 세상에 들어왔으며,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됐다는 해석은 지난 2천 년간 기독교 교리의 근간을 이뤄 왔다.
그러나 창세기 3장에 ‘죄’(핫타트)라는 단어는 등장하지 않는다. 성경이 ‘죄’ 개념을 처음 명시적으로 언급하고 그 본질을 정의하는 곳은 창세기 4장, 곧 가인과 아벨 이야기다. 하나님은 가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창 4:7). 이 구절은 우리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성경이 말하는 최초의 ‘죄’는 하나님을 향한 수직적 불순종의 문제였는가, 아니면 형제를 향한 수평적 관계의 파괴였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우리는 오랜 시간 동안 수많은 해석을 낳았던 미스터리, 곧 “하나님은 왜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시고 아벨의 제사만 받으셨는가?”라는 물음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 질문에 대한 전통적 해석의 한계를 짚어 보고, 성경 본문이 가리키는 ‘죄’(핫타트)의 본질이자 악의 실체를 따라가 본다.
2. 가인의 제사는 왜 거절됐는가: 수직적 해석의 한계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사를 거절하신 이유에 대해 성경은 침묵한다. 이 침묵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수많은 해석이 시도돼 왔다. 이 해석들은 대부분 ‘어떻게 드려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가’라는 수직적 관점에서 가인의 잘못을 찾는 데 초점을 맞췄다. 특히 창세기 4:3-5을 근거로 제시된 대표적인 해석은 다음과 같다.
첫째는 재물의 질적 차이 관점에서 첫 열매를 드리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관점은 가장 널리 알려진 해석이다.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이라는 가장 귀하고 정성스러운 것을 드렸지만, 가인은 그저 “땅의 소산” 중 아무 것이나 드렸기 때문에 하나님이 받지 않으셨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히브리어 본문을 면밀히 살펴보면 이 주장은 설득력이 약해진다.
우선 가인이 드린 제물은 ‘밋페리 하아다마’, 즉 ‘땅의 열매들 중에서’라는 뜻이다. 아벨이 드린 제물 역시 ‘밋베코롯 초노’, 즉 ‘그의 양 떼의 맏이들 중에서’
1다. 두 표현 모두 ‘-중에서’(민)라는 전치사를 사용해 각자의 소산 중 ‘일부’를 드렸음을 나타낸다. 문법적으로 볼 때, 두 제물의 정성에 차이를 둘 만한 근거는 희박하다. 그리고 4절의 “아벨은 자기도”(감-후)라는 표현은 ‘그도 또한’, ‘그도 마찬가지로’라는 의미다. 이는 아벨이 가인을 따라, 가인과 같은 방식으로 제사를 드렸음을 암시한다. 본문은 제물의 차이를 부각하기보다 오히려 두 형제의 행위가 유사했음을 보여 준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이 시점에는 아직 제사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율법)이 전혀 주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2 ‘첫 열매를 드려야 한다’는 해석은 후대의 율법을 고대 사건에 소급 적용한 시대착오적 독법일 수 있다.
둘째는 직업의 차이로서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고 아벨은 양 치는 자였다”(창 4:2)는 구절에 주목해, 이 이야기를 농경 문화와 유목 문화 사이의 갈등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유목민의 제물은 받으시고 농부의 제물은 거절하심으로써, 농경 문화보다 유목 문화를 더 선호하셨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 해석 역시 본문의 내러티브와 충돌한다. 만약 유목 문화가 더 원형적이고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면, 인류 최초의 인간인 아담 역시 양치기였어야 한다.
3 오히려 농업이 인류의 원초적 사명에 더 가깝다. 또한, 고대 근동에서 농경과 목축은 배타적 문화가 아니라 상호 보완적인 생활양식(agro-pastoralism)이었다. 성경은 이 이야기를 문명사적 투쟁이 아니라 한 가족 안에서 벌어진 비극으로 그린다.
3. ‘죄’(핫타트): 관계의 파괴로서의 악
하나님께서 왜 가인의 제물을 받지 않으셨는지에 대한 질문은 어쩌면 처음부터 잘못된 질문일지 모른다. 성경의 관심은 제사가 거절된 ‘이유’가 아니라, 거절당한 이후 가인이 보인 ‘반응’과 그에게 주어진 ‘선택’에 있기 때문이다. 제사가 거절되자 가인은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했다”(창 4:5). 히브리어 원문은 ‘그의 얼굴이 땅으로 떨어졌다’(바입펠루 파나브)고 표현하는데, 이는 깊은 분노와 적개심으로 가득 찬 상태를 의미한다.
바로 이 순간, 하나님은 가인에게 나타나 말씀하신다. 제사법을 어겼다고 책망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의 감정과 앞으로의 선택에 대해 물으신다(창 4:6-7).
4 이것이 성경에서 ‘죄’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이다. 그리고 그 죄를 ‘선(토브)을 행하지 않는 것’으로 정의한다. 여기서 ‘선’이란 무엇인가? 제물을 더 좋은 것으로 바꾸어 다시 바치는 것인가? 아니다. 하나님은 제사에 대해 더 이상 언급하지 않으신다. 여기서의 ‘선’과 ‘악’은 선악과를 먹은 인간이 마주한 첫 번째 윤리적 선택의 문제, 즉 분노와 질투의 감정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의 문제다. 하나님은 가인에게 죄의 유혹이 문 앞에 웅크리고 있지만, 너는 그것을 다스려야 한다고 말씀한다.
결국 성경이 정의하는 최초의 죄는 하나님과의 수직적 관계에서 발생한 제의적(祭儀的) 실패가 아니다. 그것은 형제를 향한 분노와 시기심이라는 수평적 관계의 균열 속에서 태동한다. 하나님은 그 관계의 파괴로 이어질 수 있는 악한 마음을 다스리라고 명령하신다. 그러나 가인은 그 명령을 거부하고, 악을 행하기로 선택하는 죄를 저지른다.
4. 죄의 결과: 모든 관계의 연쇄적 붕괴
가인은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아우 아벨을 들에서 쳐 죽인다. 이 수평적 관계의 파괴는 즉시 다른 모든 관계의 연쇄적 붕괴로 이어진다(창 4:11-12).
첫째, 인간과 땅의 관계의 파괴다. 형제의 피를 흘린 죄는 땅(아다마)과의 관계를 끊어 놓는다. 농부였던 가인은 더 이상 땅을 섬길(아바드) 수 없게 된다. 땅이 그에게 소산을 내어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창세기 2장에서 인간에게 주어진 ‘땅을 경작하고 지키라’는 근원적 사명이 처음으로 상실되는 순간이다. 형제를 지키지 못한 자는 땅도 지킬 수 없게 된 것이다.
둘째,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가 파괴된다. 땅에서 쫓겨난 가인은 절규한다.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창 4:14). 그는 땅으로부터의 추방을 곧 하나님으로부터의 추방, 즉 수직적 관계의 단절로 인식한다. 수평적 관계의 파괴가 결국 하나님과의 단절로 귀결됨을 보여 준다.
셋째, 인간 관계의 파괴다. 가인은 이어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창 4:14)라고 말하며 죽음의 공포에 휩싸인다. 한 사람과의 관계를 폭력으로 파괴한 결과, 그는 이제 세상의 모든 타인이 자신을 해칠 잠재적 가해자로 보이게 된 것이다. 폭력은 또 다른 폭력에 대한 공포를 낳는다.
이처럼 창세기 4장이 보여 주는 ‘죄’의 본질은 관계의 총체적 파괴다. 형제를 향한 악(라아)은 땅과의 관계, 하나님과의 관계, 그리고 세상과의 관계를 모두 무너뜨리는 파괴적 힘을 지닌다.
5. 죄악 속에서 생명을 지키시는 하나님
그러나 이야기는 절망으로 끝나지 않는다. 하나님은 죽음의 공포에 떠는 가인을 심판으로 되갚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를 보호하신다(창 4:15). ‘가인의 표’를 흔히 죄인의 낙인으로 오해하지만, 본문은 그것이 폭력의 악순환을 끊고 생명을 보존하기 위한 하나님의 은혜의 장치였음을 보여 준다. 하나님은 정의의 심판보다 생명의 보존을 우선하신다. 이는 창세기를 관통하는 하나님의 성품, 즉 율법의 하나님이기에 앞서 은혜의 하나님이심을 드러내는 장면이다.
이야기의 마지막은 죽음이 아닌 생명의 연속으로 마무리된다. 하나님은 아벨 대신 셋을 주시고, 그의 후손을 통해 인류의 계보는 이어진다. 그리고 사람들은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창 4:26). 이는 죄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완전히 단절된 것이 아니라, 그 상처와 비극 속에서도 여전히 관계가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 주는 강력한 증언이다.
결국 창세기 4장은 우리에게 ‘죄’란 무엇인지 다시 묻게 한다. 죄는 단순히 신의 명령을 어긴 수직적 불순종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곁의 형제를 향한 분노와 적개심에서 시작해, 모든 관계를 파괴하는 악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선’은 화려한 제물이 아니라, 우리 곁의 사람을 해하지 않고, 분노를 다스리며, 관계를 지켜내는 구체적인 삶의 태도다. 이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죄’에 대한 첫 번째이자 가장 근원적인 가르침이다.
쇼메르: “지키는 자”
1. 인류 최초의 질문: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창 4:9)
성경의 하나님은 우리에게 먼저 질문하시는 분이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창 3:9),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창 4:9). 이 질문들은 단순한 정보 확인이 아니라, 관계와 책임의 자리로 우리를 부르는 초청이다. 하나님만 질문하시는 것이 아니다. 인간도 하나님께 질문한다. 성경에 기록된, 인류가 하나님께 던진 최초의 질문은 흥미롭게도 가인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창 4:9).
이 질문은 단순한 책임 회피나 거짓말을 넘어선다. 그것은 인류 최초의 윤리적 항변이자, 관계의 의무를 정면으로 거부하는 선언이다. 이 질문은 에덴의 비극 이후, 인간이 타인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 아니 어떻게 파괴할 것인지를 보여 주는 서막과 같다. ‘지키는 자’로 번역된 히브리어 ‘쇼메르’()는 ‘지키다’, ‘보호하다’, ‘돌보다’라는 뜻의 동사 ‘샤마르’()에서 파생된 단어다. 가인은 지금 “내가 내 형제의 ‘샤마르’입니까?”라고 묻는 것이다. 이 질문은 창세기 전체, 나아가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인 ‘관계와 책임’의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 올린다.
하나님은 이 날카로운 질문에 즉각적인 답변을 주지 않으신다. 그러나 성경 전체는 바로 이 인류 최초의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길고도 깊은 대답이라 할 수 있다. 계속해서 ‘샤마르’라는 키워드를 통해, ‘지키는 자’로서의 인간의 소명이 무엇이며, 그 소명을 거부했을 때 어떤 결과가 초래되는지, 그리고 깨어진 ‘지킴’의 관계가 어떻게 회복되는지를 살펴보겠다.
2. ‘샤마르’: 창조 질서 보존 행위
‘샤마르’는 구약성경에서 400회 이상 등장하는 동사다. 그 기본적인 의미는 ‘지키다’, ‘보호하다’, ‘감시하다’, ‘보존하다’다. 성벽을 지키는 파수꾼의 행위(삼하 18:25), 주인이 자신의 포도원을 지키는 모습(아 1:6)에서 이 단어의 구체적인 이미지를 엿볼 수 있다. 위험과 혼돈으로부터 대상을 보호해 그 본래의 상태와 질서를 유지하는 모든 행위가 ‘샤마르’에 포함된다. 더 나아가, ‘샤마르’는 하나님의 언약이나 율법을 ‘준수하다’는 의미로도 확장된다. “너희는 내 언약을 지키고() 내 말을 청종하면”(출 19:5) 말씀처럼,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것은 그분의 창조 질서와 언약 관계 안에 머무르려는 신앙적 결단이다. 이처럼 ‘샤마르’는 물리적 보호를 넘어 관계적 신실함과 언약적 책임을 포괄하는 단어다.
가장 궁극적인 ‘지키는 자’(쇼메르)는 바로 하나님 자신이다. 시편 기자는 노래한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시 121:5, 7). 이스라엘의 ‘쇼메르’이신 하나님은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며 당신의 백성을 모든 위협으로부터 보호하신다. ‘샤마르’는 이처럼 하나님의 핵심적인 성품이자 활동이다.
3. 최초의 소명: 땅을 경작하며 지키는 자
인간에게 ‘샤마르’의 책임이 처음 주어진 것은 창세기 2장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에덴동산에 두시며 그에게 첫 번째 소명을 부여하신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창 2:15).
‘경작하며’(레오브다)와 ‘지키게’(레숌라) 두 동사는 인간의 존재 이유와 역할을 규정한다. ‘아바드’가 땅을 섬기고 일구어 생명을 생산하는 적극적인 노동을 의미한다면, ‘샤마르’는 이미 주어진 창조 세계의 질서와 생명을 보존하고 보호하는 책임이다. 인간은 단순히 자연을 지배하고 착취하는 존재가 아니라, 그것을 섬기고 지키는 청지기로 부름받았다. 이것이 타락 이전,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의도하신 본래의 자리였다. ‘지키는 자’는 인간의 선택 사항이 아니라, 창조의 순간부터 부여된 존재의 핵심 소명이었던 것이다.
4. 소명의 거절과 그 결과
가인의 질문,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는 바로 이 창조의 소명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선언이다. 그는 단지 아벨의 행방을 모른다고 거짓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자신에게 형제를 ‘지킬’ 책임 자체가 없다고 항변한다. ‘샤마르’의 의무를 거부함으로써, 그는 인간 됨의 근원적인 책임을 내팽개친다.
이 거절의 결과는 참혹하다. 하나님은 가인에게 이렇게 선언하신다.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창 4:11-12).
이 저주는 형제 살해라는 수평적 관계의 파괴가 어떤 결과를 낳는지를 명확히 보여 준다. 첫째, 그는 땅(아다마)으로부터 저주를 받는다. 형제의 피를 삼킨 땅은 더 이상 그에게 소산을 내어주지 않는다. 인간의 역할은 땅을 섬기고 지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형제를 지키지 않은 그는 이제 땅을 섬길 자격마저 박탈당한다. 형제와의 수평적 관계 파괴는 곧바로 인간과 땅의 관계 파괴로 이어진다. ‘지키는 자’의 소명을 거부한 인간은 더 이상 땅과 건강한 관계를 맺을 수 없다. 둘째, 그는 유리하는 자, 곧 떠도는 자가 된다. 땅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정처 없이 떠도는 존재가 된다. 이는 단순히 물리적 방랑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관계의 단절은 존재의 불안정을 낳는다. 형제를 지키지 않은 자는 결국 그 누구에게서도 보호받지 못하리라는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힌다(창 4:14). 타인을 지키는 책임을 거부한 순간, 역설적으로 자기 자신을 지켜 줄 공동체마저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샤마르’의 거부는 결국 자기 자신을 포함한 모든 관계의 붕괴로 귀결된다.
5. 하나님, 예수님의 대답: “서로 사랑하라”
하나님은 가인의 질문에 직접 대답하지 않으신 대신, 가인에게 표를 주어 그의 생명을 ‘지켜 주신다’. 관계가 완전히 파괴된 그 자리에서조차 보호의 손길을 거두지 않으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첫 번째 응답이다. 그리고 성경 전체는 가인의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더 길고 깊은 대답으로 펼쳐진다. 하나님은 레위기의 율법을 통해 ‘지키는 자’의 책임을 명문화하신다(레 19:18).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곧 ‘지키는 자’의 삶을 구체적으로 살아내는 방식이다. ‘샤마르’는 더 이상 추상적인 책임이 아니라, 이웃의 고통에 공감하고 그의 필요를 채우는 구체적인 사랑의 실천으로 정의된다. 이 대답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절정에 이른다. 예수님은 새 계명을 주시며 ‘샤마르’의 의미를 완성하신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
이 계명의 새로움은 ‘사랑하라’는 내용에 있지 않다. 그 기준이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로 상향됐다는 데 있다. 이제 우리가 서로를 ‘지키는’ 기준은 나의 이익이나 능력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목숨까지 내주신 그리스도의 자기희생적 사랑이 된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누가 내 이웃입니까?”라는 질문을 “누가 그의 이웃이 돼 주었느냐?”로 뒤집으며, ‘지키는 자’의 책임이 경계를 넘어 고통받는 모든 타인을 향해 열려 있음을 보여 준다.
성경의 대답은 명확하다. 그렇다, 우리는 서로를 지키는 자로 부름받았다. ‘샤마르’는 창조의 시작부터 우리에게 주어진 소명이며, 죄로 인해 깨어졌으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회복되고 완성되는 우리의 정체성이다. 가인의 질문,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는 오늘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나의 시간과 재물, 안위를 희생하면서까지 타인을 지킬 책임이 내게 있는가? 극단적 개인주의가 만연한 세상은 ‘아니오’라고 답하라고 유혹하지만, 믿음은 그 질문 앞에서 기꺼이 “예”라고 응답하며 십자가의 길을 따라가는 여정이다.
‘샤마르’의 실천은 상처 입은 지체의 신음에 귀 기울이는 작은 관심에서 시작된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서로의 짐을 나누어 지고(갈 6:2), 기쁨과 슬픔을 함께하며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 바로 현대의 ‘샤마르’다. 이는 단순히 감정적 위로를 넘어, 실질적인 필요를 채우고, 정의가 무너진 곳에서 함께 목소리를 내며, 약한 자의 방패가 돼 주는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타나야 한다.
예수께서 자신의 모든 것을 내주심으로 우리를 지키신 궁극적인 ‘쇼메르’가 되셨듯이, 우리 또한 그 사랑에 빚진 자로서 이웃 사랑을 통해 그분의 ‘지키심’을 세상에 증거해야 한다. 다음 세대가 살아갈 세상을 돌보고, 파괴된 창조 세계의 신음을 외면하지 않는 것 역시 우리에게 맡겨진 ‘샤마르’의 소명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원한 ‘쇼메르’가 되시듯, 우리 또한 누군가의 ‘쇼메르’가 돼 주는 것, 그것이 바로 창조의 복음을 살아 내는 길이다.
주
1) 아벨이 모든 양 떼 중 단 하나뿐인 첫 새끼를 드린 것이 아니라, 여러 어미 양에게서 태어난 첫 새끼들 중 하나 혹은 일부를 드린 것이다.
2) 레위기의 제사법이 제정되기 한참 전의 일이므로, 가인이 어떤 규범을 어겼다고 단정할 수 없다.
3) 하지만 성경은 아담을 땅을 가는 농부(창 2:15; 3:23)로 묘사하며, 그의 맏아들인 가인이 그 직업을 잇는다.
4)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