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젊은 목회자가 있었다. 그는 탁월한 설교와 지적인 강의 능력으로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창의적이고 열정적인 사역으로 또래와 후배 목회자들에게 큰 영향력을 끼쳤다. SNS를 통해 공유됐던 그의 글들과 행보를 보면서 이후 어떤 사역을 하게 될지 또 어떤 열매를 보일지 기대됐다. 그는 충분히 롤 모델이 될 만한 목회자였다. 그런데 어느 날, 그의 SNS에 올라온 한 장의 사진이 논란이 됐다. 강단에서 하나님 나라를 외치며 소유가 아닌 존재의 삶을 강조했던 그가 차고 있던 손목의 시계 때문이었다. 그 시계가 일반인이 차기 어려운 고가의 명품 시계의 디자인과 똑같았기 때문이었다. 

이후 진위에 대한 논란이 있었고 그 과정을 해명하는 답글이 올라왔다. 논란은 잠잠해졌다. 그러나 이전 날 그의 이야기를 경청했던 많은 이들은 더 이상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의 수많은 강점에도 불구하고, 그 주장과 그의 삶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됐기 때문이다. 그가 이제껏 쌓아 올린 모든 메시지의 권위는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고, 그의 사역은 회복하기 어려워진 듯했다. 그는 더 이상 젊은 사역자들의 롤 모델일 수 없었다. 

이것은 단지 한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날 목회 현장이 마주한 시대적 현실을 압축적으로 보여 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오늘날 강단은 더 이상 일방적인 메시지 선포의 공간이 아니라, 마치 투명한 유리벽과 같다. 특히 디지털 네이티브인 25세에서 40세 사이의 MZ세대는 설교자의 메시지만을 듣는 것이 아니라, 그의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삶 전체를 입체적으로 보고 있다.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오늘날 젊은 세대의 80% 이상이 어떤 대상(사람, 브랜드, 공동체)을 신뢰할지 결정할 때 가장 중요한 가치로 ‘진정성’을 꼽았다.

이는 과거처럼 직분이나 권위가 신뢰를 보장하던 시대는 완전히 끝났음을 의미한다. 그들은 만들어진 이미지나 화려한 언변보다 말과 삶이 일치하는 정직한 모습을 통해 신뢰를 쌓아가며, 그 신뢰 위에서만 마음을 연다. 이 새로운 신뢰의 지형 위에서 우리는 목회의 가장 본질적인 질문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다. 바로 ‘진정성’(Authenticity)이다.

진정성이야말로 무너진 교회의 신뢰를 회복하고, 흩어진 양 떼를 다시 모으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높다. 외적인 성과를 중시하는 문화, 끊임없는 비교와 이미지 관리의 압박 속에서 목회자는 어느덧 삶과 괴리된 메시지를 전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과거에는 목회자의 사적인 삶을 적절히 감추는 것이 사역을 보호하는 미덕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연결되고 공유되는 시대에 이런 태도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더 큰 불신을 낳는 위선으로 비친다. 양 떼에 비유되는 성도들은 자신의 삶과 영혼의 방향을 맡기기 전, 그 목자를 향해 날카롭고도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 목자는 정말, 믿을 만한 사람인가?”

그렇기에 진정성은 목회자가 갖추면 좋은 여러 덕목 중 하나가 아니라, 그의 존재와 사역의 성패를 가르는 핵심이자 존재의 중심이 된다. 양이 목자를 따르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그의 목소리가 우렁차거나 외모가 수려하거나 지팡이가 화려해서가 아니다. 그가 자신들을 푸른 초장과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할 것이라는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 자신들에게 해를 끼치려 하는 이리들을 막아서 자신들을 지켜 줄 것이라는 신뢰 말이다. 그 신뢰가 무너지면 양 떼는 흩어지고 목양은 실패한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 시대에 목회자의 진정성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왜 이것이 그토록 절실할까? 어떻게 해야 이 진정성이 우리의 삶과 사역에서 온전히 회복될 수 있을까? 이 세 가지 질문을 중심으로 함께 그 길을 찾아보자.

신뢰 상실의 시대 유일한 언어 ‘진정성’

오늘날 젊은 세대는 귀로 듣기보다 눈으로 확인하며, 말보다 삶을 통해 진리를 배운다. 이는 단지 선호의 문제가 아니라 기성 세대의 위선과 불일치에 대한 깊은 불신에서 기인한다. 수많은 정보 채널을 통해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쉽게 목격하는 이들에게, 잘 포장된 언어만으로는 더 이상 감동을 주지 못한다. 유튜브 브이로그(Vlog)나 리얼리티 쇼처럼 꾸밈없는 일상을 공유하는 문화에 익숙한 그들은, 고도로 연출된 무대 위의 모습보다 실수하고 고민하며 성장하는 과정 속에서 드러나는 진솔함에 더 깊은 유대감을 느낀다. 

이런 문화적 지형 위에서, 강단 위에서만 거룩하고 완벽한 목회자의 모습은 공허한 외침으로 들릴 뿐이다. 그들은 날카로운 직관으로 감지한다. 이 교회가 목회자의 비전으로 움직이는 살아 있는 공동체인지, 아니면 그의 말로만 지어진 허상인지를 말이다. 그렇기에 진정성은 단순히 목회자의 인격이 훌륭하거나 설교를 잘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말과 삶의 일관성을 통해 복음을 살아내는 존재 방식 그 자체이며, 이 시대와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하고도 가장 강력한 언어다.

이러한 태도는 성경이 증언하는 복음의 본질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진정성의 최고 모델은 단연 예수 그리스도시다. 요한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라고 선포했다. 이는 추상적인 진리가 구체적인 삶의 시공간 속으로 들어온 ‘성육신적’ 사역의 정수를 보여 준다. 예수님은 단지 가르침을 선포하신 것이 아니라, 제자들과 함께 먹으시고, 걸으시고, 우시고, 기뻐하시며 자신의 삶 전체로 하나님 나라를 보여 주셨다. 배고픈 자들을 먹이심으로 하나님 나라의 풍성함을, 병든 자를 고치심으로 그 나라의 온전함을, 죄인들과 식사하심으로 그 나라의 환대를 몸소 보여 주셨다. 그분의 삶이 곧 메시지였다. 

사도 바울 역시 이 길을 따랐다. 그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살전 1:6-7)라고 말하며, 자신의 삶이 복음의 실체적 증거임을 당당히 선언했을 뿐 아니라 데살로니가 교회가 또한 그런 방식으로 복음의 증거가 돼야 함을 선언한다.

또 하나의 예로,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세우신 하나님 나라인 교회는 본래 진정성을 특징으로 하는 공동체였다. 초대교회가 폭발적인 영향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유력한 사람이나 웅장한 건물, 세련된 프로그램 때문이 아니었다. 세상은 최초의 교회가 보여 준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행 2:44-46)라는 그들의 진실한 삶의 방식에 감동을 받았다. 

그들은 함께했고 서로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소유를 나누었다. 그들은 핍박 속에서도 기쁨을 잃지 않았으며, 그들 가운데 있는 연약한 이들과 함께 먹고 함께 하나님을 찬양했다. 그들의 모습은, 딱딱한 종교로 굳어져 버렸던 생명력 없는 유대교인들에게 충격이 됐고, 평화를 주장하나 평화가 없던 로마의 영향력 아래 있던 모든 이들에게 던지는 대안적 메시지였다.

필자는 예수께서 우리를 “세상의 소금과 빛”(마 5:13-16)이라 부르신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믿는다. 맛을 잃은 소금이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듯, 불이 꺼진 촛대가 더 이상 그 의미가 없는 것처럼, 삶의 진정성을 잃어버린 목회자와 교회는 세상에 아무런 영향력을 미칠 수 없으며 조롱거리로 전락할 뿐이다. 오늘 우리 시대 교회가 그 영향력을 잃어가고 있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 진정성의 문제다. 

진정성 없는 목회자와 교회는 더 이상 이 땅에 존재의 의미가 없다. 잠깐 이미지 개선을 통해 뭔가 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하나님 앞에서도 세상 속에서도 그 의미를 이어가지 못할 것이다. 오직 삶으로 설교하는 목회자, 삶으로 살아내는 성도만이 이 세대의 깊은 목회자와 교회에 대한 불신의 골을 메우고 교회를 다시 생명력 넘치는 변화의 공간으로 일으켜 세울 것이다.

‘진정성’을 가로막는 세 가지 함정

그렇다면 왜 우리는 이토록 중요한 진정성으로부터 멀어지게 됐을까? 목회 현장에는 목회자의 진정성을 좀먹는 견고하고도 구조적인 세 가지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1.    성과주의라는 이름의 우상
현대 목회는 기업 경영의 논리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했다. 교인 수, 헌금 액수, 건물 크기, 프로그램의 수와 같은 측정 가능한 지표들이 사역의 성공을 판가름하는 잣대가 됐다. SNS는 이러한 경향을 더욱 부추긴다. 화려한 행사 사진, 긍정적인 성도들의 간증만이 전시되고, 사역의 실패와 어려움, 목회자의 내면적 갈등은 철저히 감춰진다. 이러한 ‘성공 신화’의 압박 속에서 목회자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집중하기보다, 눈에 보이는 성취를 쌓는 데 매몰되기 쉽다. 이는 예수께서 신랄하게 질타하신 바리새인들의 외식과 정확히 일치한다. 그들은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마 23:27)라는 책망을 받았다. 

외적인 성과에 집착할수록 내면의 영적 실상과는 괴리가 생기며, 그 간극을 메우기 위해 목회자는 더 정교한 가면을 쓰게 된다. 결국 목회자의 기본인 진정성이 사라지는 결과에 이른다. 많은 목회자가 우울감으로 힘들어하며 정신과적 도움을 받고 있는 현실도 이런 목회 현실이 주는 과중한 압박의 결과일 수 있다. 이런 시대를 사는 목회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참된 목회의 성공은 성장이 아니라 ‘충성’에 있음을 기억하는 것이다.

2.    신성한 고립이라는 착각
목회자는 본질적으로 깊은 고립감을 경험하기 쉬운 위치에 있다. 모든 성도의 영적인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동시에 수많은 비판과 요구에 직면한다. 이 엄청난 무게를 감당하기 위해 많은 목회자는 자신의 연약함, 의심, 상처, 가정의 어려움을 감추는 두꺼운 ‘목회자적 가면’을 쓴다. 목회자는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그는 길을 알고 있고 절대 실수하지 않는다(심한 경우 하나님과 연결돼 있는 성직자인 그는 일상적인 감기도 걸리지 않고, 사고를 당하지도 않아야 한다). 그의 가정은 모든 성도에게 본이 되는 가정이며 그에게는 어떤 갈등도 세속적인 고민도 없어야 한다. ‘목회자는 어떤 경우에도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비성경적인 압박을 받는다.

그러나 성경의 위대한 인물들은 결코 자신의 연약함을 숨기지 않았다. 다윗은 시편에서 하나님을 향한 분노와 의심, 탄식을 쏟아냈고, 예레미야는 눈물의 선지자라 불릴 만큼 좌절했으며, 엘리야조차 광야의 로뎀 나무 아래에서 죽기를 간청했다(왕상 19:4). 진실을 외면한 가면은 잠시의 안도감을 줄지 모르나, 결국 영혼을 갉아먹는 위선으로 이끈다. 가면을 쓴 목회자는 가면을 쓴 성도들을 만들며, 가면을 쓴 이들이 모인 교회는 피상적인 공동체가 된다. 겉으로는 괜찮아 보일 수 있지만 예수님 보시기에는 ‘회칠한 무덤’이며, 세상에 아무런 감동을 만들어 낼 수 없다. 목회자는 혼자서 모든 것을 완벽하게 감당하는 고독한 영웅이 아니다. 목회자 역시 ‘짐을 서로 지라’(갈 6:2)는 그리스도의 법 아래 있는 연약한 지체, 도움이 필요한 지체다.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신성한 고립은 교만이며, 진정성의 가장 큰 적이다.

3.    잘못된 권위주의의 유산
한국 교회에 깊이 뿌리내린 가부장적, 유교적 문화는 ‘흠 없는 지도자’라는 신화를 만들어 냈다. 이는 목회자를 비판과 도전이 허용되지 않는 성역으로 만들고,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거나 성도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을 리더십의 실패로 여기게 했다. 하지만 이는 성경이 말하는 영적 권위와는 거리가 멀다. 

사도 요한은 교회 안에서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요삼 1:9)의 독단적이고 권위주의적인 태도를 강하게 경계했다. 교회를 세우는 참된 권위는 그가 가지고 있는 탁월함이 아닌 그리스도를 닮은 섬김에서 나온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며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요 13:14)라고 말씀하심으로 권위의 개념을 전복시키셨다. 바울 또한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후 12:10)라고 고백하며, 자신의 수많은 약점과 고난을 통해 오히려 그리스도의 능력이 온전하게 드러남을 증언했다. 완벽함을 강요하는 문화는 목회자의 진정성이 자랄 토양을 파괴했다. 자신을 솔직히 드러내기보다 더 강력한 성취와 능력으로 자신을 감췄다. 그 결과 많은 목회자는 하나님께서 주신 영적 권위가 아닌 인간적 권위주의에 의존해 교회를 돌보게 됐고, 오늘 우리는 그 권위주의마저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보고 있다.

‘진정성’을 구현하는 세 가지 실천

우리는 진정성의 회복이 이 시대 목회자와 교회의 회복과 직결됨을 살펴봤고 그토록 중요한 목회자의 진정성이 무너지게 된 세 가지 이유를 살폈다. 이제 이 글에서 가장 중요한 진정성 회복의 길을 제시하려 한다. 진정성의 회복은 막연한 다짐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의지적인 행동과 삶의 변화를 통해 가능하다. 여기서 세 가지 실천적 대안을 제안한다.

1.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서기: 가면을 벗는 골방의 영성
진정성의 출발점은 사람들 앞에서의 사역 현장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골방이다. 예수께서도 새벽 미명 한적한 곳으로 가셔서 기도하시며(막 1:35)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통해 사역의 방향과 동력을 얻으셨다. 이 시간은 단지 공적인 사역을 하기 위한 준비의 시간이 아니라, 자신의 영혼을 벌거벗은 채로 하나님 앞에 드러내는 시간이어야 한다. 목회자는 설교자이기 이전에, 하나님 앞에 선 한 사람의 죄인 된 신자로서 매일 자신의 죄와 위선, 숨은 동기와 연약함을 정직하게 고백해야 한다. 시편 기자처럼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시 51:10)라고 기도해야 한다. 

목회자가 되기 전에 먼저 성도가 돼야 한다. 하나님을 위한 일을 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돼야 한다. 하나님의 손보다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가 될 때, 하나님과 함께하는 시간 자체를 행복해하는 이가 될 때, 우리는 온전한 열매를 맺는 목회자가 될 수 있다. 이는 곧 요한복음 15장의 ‘포도나무 비유’처럼, 우리가 그리스도께 깊이 ‘붙어 있을’ 때만 생명력 있는 참된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의미다. 분주한 사역 일정에 매몰돼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관계를 놓치는 순간, 우리의 사역은 영혼 없는 노동이 되고, 강단에서의 외침은 공허한 ‘연기’가 된다. ‘나는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복음의 진리 앞에 겸손히 설 때, 비로소 진정성은 싹트기 시작한다.

2.    투명한 관계 속으로 들어가기: 고립을 깨는 공동체성
진정성은 고립된 개인의 영웅적 노력으로 완성될 수 없다. 오히려 연약함을 서로 나누고 함께 성장하는 안전한 공동체 안에서 맺히는 열매다. 그러므로 목회자에게는 자신의 가면을 벗고 민낯을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는 안전지대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는 정기적으로 만나 삶의 희로애락과 사역의 어려움을 나누는 동역자 그룹, 지혜와 통찰로 이끌어 주는 신뢰할 만한 멘토와의 만남, 혹은 필요하다면 전문적인 상담이 될 수도 있다. 

야고보는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약 5:16)라고 권면한다. 이 말씀은 평신도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영적 전쟁의 최전선에 있는 목회자에게 더욱 절실하게 필요하다. 자신의 실패와 고민, 유혹을 나누는 것은 결코 리더십의 약화가 아니다. 각자가 섬기고 있는 공동체가 갖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어떤 경우 그러한 용기 있는 고백을 통해 공동체는 ‘우리 목사님도 우리와 똑같이 씨름하는 성도구나’라는 깊은 인간적 공감대를 형성하며, 그를 위해 더 진실하게 기도하게 되고, 신뢰는 역설적으로 더욱 두터워질 수 있다. 포장된 완벽함보다 솔직한 연약함의 고백이 진정성을 갈망하는 성도들의 마음을 열고 서로를 진정한 영적 가족으로 묶는 사랑의 끈이 될 것이다.

3.    삶으로 말씀을 증명하기: 월요일부터 시작되는 설교
마지막으로, 목회자가 선포하는 말씀은 주일 강단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월요일 아침부터 다시 시작돼야 한다. 야고보는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약 1:22)라고 경고했다. 설교의 첫 번째 청중은 바로 설교자 자신이다. 그러므로 설교 준비는 단순히 주해와 예화를 모으는 지적 작업이 아니라, 그 말씀 앞에 자신을 먼저 세우고 씨름하며 순종하기를 결단하는 영적 몸부림의 과정이 돼야 한다.

설교자가 먼저 그 말씀에 찔리고, 말씀이 요구하는 방향으로 사고와 말과 행동이 변화되지 않는다면, 그 설교는 성도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생명력을 갖지 못한다. 성도들을 울리고 웃길 수 있고 겉으로 드러나는 몇 가지 행동의 변화는 가져올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원하시는 중심의 변화와 그 변화가 만들어내는 기적을 기대할 수는 없다. 주일 강단에서는 빛나는 설교자일지라도, 가정에서 배우자와 자녀를 대하는 모습, 목회실에서 다른 교역자나 직원을 대하는 태도, 재정을 사용하는 방식, 비판에 반응하는 모습 등 일상의 모든 영역이 설교의 진실성을 증명하거나 혹은 반증하는 강단이 된다. 설교자가 ‘아직 불완전하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을 향해 자라가고 있는 존재’로서의 정직한 투쟁을 숨기지 않을 때, 성도들은 우리의 연약함 너머에서 일하시는 그리스도의 강하심과 은혜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결론: 완벽함이 아닌, 온전함을 향한 여정

진정성 있는 목회자는 하나님 앞에서 ‘한 명의 신자’로 살아가고자 몸부림칠 때 맺히는 열매다. 우리의 정체성은 ‘영적 지도자’이기 이전에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다. 우리가 먼저 그 부르심에 충실할 때, 말로만 가르치는 목회자가 아니라 삶으로 증언하는 참된 목자로 세워질 수 있다. 진정성은 완벽함이 아니다. 그것은 숨기지 않는 용기, 정직하게 나누는 연약함, 그리고 끝까지 말씀대로 살기 위해 하나님 앞에 머무는 인내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전 11:1)는 바울의 권면은, 완벽한 모델이 되라는 명령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향해 함께 걸어가자고 손 내미는 진정한 목자의 초대다.

오늘날 교회에 가장 필요한 것은 새로운 전략이나 프로그램이 아니다. 다음 세대는 우리의 허울이 아닌 진실을 보고 싶어 한다. 삶을 통해 살아낸 복음을 경험하고 싶어 한다. 우리가 그 기대 앞에 서서 진정성 있는 삶으로 응답할 때, 교회는 다시 세상의 희망이 될 수 있다. 회개와 성찰, 투명한 관계, 말씀과 삶의 일치라는 회복의 여정을 꾸준히 걸어가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 각자가 하나님과 양 떼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신뢰할 만한 목자로 세워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우리의 연약함 가운데 역사하시어 나와 우리 교회를 회복시키실 주님을 신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