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한국 교회를 가리켜 ‘거룩성’을 잃어버렸다고들 말한다. 각종 언론에 등장하는 교회나 목회자의 모습이 영적 도덕적 리더십을 상실한 채 점점 더 세속사회와 유사한 모습을 띠고 있어서다. 이런 비판을 단지 언론의 편파적이고 악의적인 보도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현실을 간과한 교회의 책임 회피가 아닐 수 없다. 교회가 세상을 닮아 간다는 의미에서의 세속화는 1960-70년대부터 시작된 한국 교회의 폭발적 교회 성장과 그 궤를 같이한다. 교회 성장 과정에서 물량주의, 기복주의, 현세주의 등 세속의 물결이 교회 내에 지속적으로 유입됐다. 이는 AD 313년 로마 콘스탄틴 대제가 기독교를 포함해 종교의 자유를 국가적으로 공인하고부터 기독교의 세속화가 급속하게 진행된 역사와도 유사한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제 발전 과정에서 교회의 양적 성장에 대한 열망은 복음 전파라는 교회의 본질적 사명을 추구하는 긍정적 측면이 있지만, 동시에 규모라는 기준으로 목회자의 목회 성공과 실패 여부를 판별하는 물량주의적 사고를 강화한 측면도 있다. 또한, 급격한 교회 성장 과정에서 신앙이 사회적 출세를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여겨지는 문화가 자연스레 교회 내에 자리 잡게 됐다. 개인 신앙의 진실성 여부는 “개인과 개인의 가족이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로 부와 명예와 높은 지위를 얻었는가?”라는 기준으로 평가하는 문화 또한 교회 내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오늘날 교회의 중직자일수록 사회적 성공에 매달리는 이유는 사회적 성공이라는 결과가 곧 스스로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있음을 증명하는 척도라고 여기는 교회 내 문화 때문이다. 그 결과 신앙의 본질은 점점 더 훼손됐다. 이런 현상을 가리켜, ‘교회 내의 세속화’라고 부를 수 있다.

이러한 교회 내 세속화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전통은 교회를 가리켜 ‘거룩한 교회’라고 부른다. 그것은 교회가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름받았고(출 19:5-6), 거룩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며(엡 1:23), 거룩한 성령의 임재가 있는 영적 모임(행 2:1-4)이기 때문이다. 이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교회로 부름받은 이들이 무언가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별하여 불러주셨기에 거룩한 교회라 부른다. 둘째, 교회의 머리가 되신 예수님이 본질상 거룩하시므로, 예수님을 영접한 이들 역시 구별돼 교회의 몸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거룩하다고 부른다. 셋째, 교회의 구성원, 즉 그리스도인의 모임에 성령께서 임재하시므로 거룩하다고 부른다. 이처럼 교회를 거룩하다고 언급하는 이유는 교회가 본질상 거룩하신 삼위일체 하나님과 연결된 그리스도인의 모임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 교회를 보면, 거룩한 사람들의 모임이라기보다는 세속적인 사람들의 모임이라 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딜레마가 있다. 즉, ‘본질적으로 거룩한 교회’에 ‘실천적으로 거룩하지 않은 그리스도인’이 실재한다는 사실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둘 사이의 현실적 간극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실제로 비그리스도인은 거룩과는 무관해 보이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보면서 ‘거룩한 교회’라는 개념을 수용하지 못한다. 교회 밖에서는 거룩한 교회를 구성하는 세속적인 그리스도인의 이중성이 희화되기도 한다. 겉으로는 거룩한 척하지만, 속으로는 세속을 추구하는 교회의 이중성에 대한 비판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 교회는 ‘교회의 거룩성’이라는 교리를 강조하는 데 머물러 있을 게 아니라, ‘거룩한 교회’에 ‘거룩하지 않은 그리스도인’이 존재하는, 이러한 역설적 현실을 진지하게 직시할 필요가 있다. 

구약의 ‘거룩’ 이해 ­ 구별·분리·다름

“거룩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제기해 보자. 구약에서 거룩을 의미하는 ‘카도쉬’라는 단어는 ‘구별’, ‘분리’, ‘다름’을 의미한다. 이 단어는 ‘하나님의 속성’,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되는 피조물’, ‘하나님께 속한 자의 삶’, ‘하나님을 기억하는 안식일’ 등에 사용된다.¹ 또한, 신약에서 거룩을 의미하는 단어는 ‘하기오스’로, 이는 ‘삼위일체 하나님’, ‘교회’ 및 ‘그리스도인의 삶’ 등을 언급하는 데 사용된다.²

이렇게 신구약에 나타난 거룩 개념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는 하나님 및 하나님께 속하거나 선택된 피조물을 가리킬 때다. 둘째는 하나님께 속한 사람의 삶이 하나님의 속성을 반영해야 한다는 사실을 가리킬 때다. 여기에는 첫째는 주로 제의적 차원에서의 거룩을, 둘째는 윤리적 차원에서의 거룩을 의미한다. 

첫째, 제의적 차원에서의 거룩은 레위기 16장에 나타난다. 여기서 거룩 명령은 출애굽 후 성막에서 예배드리던 이스라엘에게 속죄일에 대한 하나님의 두 가지 명령이다. 1) 성소의 휘장 안 법궤 위 속죄소 앞에 아무 때나 들어오지 말라. 2) 대제사장 아론이 성소에 들어오려면, 속죄제물을 드리고, 거룩한 세마포 옷을 입고, 각종 규례를 지켜라. 결국 지성소는 대제사장이라 해도 특별한 날에 특별한 준비를 한 후에 들어가라는 명령이다. 

왜 하나님은 이런 명령을 하셨을까? 그것은 지성소가 하나님께서 특별히 임재하시는 거룩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특별한 공간을 거룩하게 여기는 모습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정복 후 솔로몬 성전을 완성한 때에도 나타난다. 하나님은 성전을 건축하고 봉헌한 솔로몬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 나는 네가 건축한 이 성전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내 이름을 영원히 그곳에 두며 내 눈길과 내 마음이 항상 거기에 있으리니”(왕상 9:3). 이로써, 이스라엘은 성전 중심의 통치 및 성전 중심의 신앙이 시작됐다. 이러한 성전 중심 신앙은 솔로몬 성전에서 시작해 포로기 이후 귀환한 유대인들의 성전 재건 작업을 통해 스룹바벨 성전으로 이어지고, 다시금 신약 시대에 헤롯 왕이 정비한 헤롯 성전으로 이어진다. 이런 역사적 과정을 통해 유대인들은 성전 공간을 세속 공간과는 구별되는, 특별히 거룩한 공간으로 인식하게 됐다. 

둘째, 윤리적 차원에서의 거룩성 이해가 있다. 거룩 개념을 성막과 성전이라는 특정 공간을 중심으로 이해하는 제의적 전통과 달리, 윤리적 차원에서의 거룩성 이해는 하나님의 속성을 반영하는 윤리적 삶을 거룩으로 이해한다. 이런 이해는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하시는 말씀에 나타난다. 
“나의 계명과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고, 가서 다른 신을 섬겨 그것을 경배하면”(왕상 9:6), “내가 이스라엘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에서 끊어버릴 것이요 내가 이스라엘을 끊어버리겠고,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거룩하게 구별한 이 성전이라도 내 앞에서 던져 버리리니”(왕상 9:7a). 

이는 일상 공간에서 하나님의 속성을 반영하는 윤리적 삶을 살지 않으면서, 성전에서의 제의적 형식만을 중시하는 유대인들에 대한 경고의 말씀이다. 이런 경고는 이사야를 통해 더 분명하게 언급된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사 1:11-13a). 이처럼 ‘거룩’ 개념은 성전이라는 특정 공간에 국한된 개념이 아니라, 일상 공간까지 확장된 개념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한국 교회의 ‘거룩’ 이해 ­ 제의적 거룩에 치우침 

문제는 한국 교회가 윤리적 차원의 거룩 이해를 등한시하면서, 제의적 차원의 거룩 이해에 편향돼 왔다는 사실이다. 그 결과, 기독교적 의미에서의 거룩 개념을 성전이라는 특정 공간을 중심으로 이해하게 됐다. 즉, 일상 공간은 거룩과는 무관한 세속 공간으로 이해되고, 일상 공간에서의 윤리적 삶도 거룩과는 무관하다(혹은 거룩과 관련이 있다고 해도, 본질적으로 중요하지는 않다)는 인식이 지배적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공간에 대한 이러한 이분법적 사고는 예배당 내부 공간마저도 위계적으로 인식하게 하여, 설교단이 있는 강대상을 회중석에 비해 더 거룩한 공간으로 인식하게 했다.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게 여겨지는 세상(일상 공간)에서의 비윤리적 삶은, 예배(제의적 의례)라는 수단을 통해 해결되는 문제라고만 여김으로, 세상에서의 윤리적 삶 자체를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지속돼 왔다.

이렇게 예배 공간과 일상 공간을 성속 개념으로 구분하는 이원론적 사고는 성지순례에 대한 이해에서도 볼 수 있다. 국내외의 유서 깊은 순교지나 고대/중세의 대성당 및 수도원을 방문하는 순례자들은 자신들이 방문하는 장소를 일상 공간과는 다른 특별히 거룩한 공간, 즉 ‘성지’라고 부른다. 이러한 성지순례는 역사적으로 오랜 전통을 가진 일종의 종교적 행위다. 그렇다면, 순례자들이 성지를 방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자기 신앙의 뿌리인 ‘과거의 거룩성’과 접촉하려는 소망 때문으로 읽힌다. 

일견 이런 소망은 순례자가 과거의 신앙 유적지를 방문함으로 현재 자신의 신앙을 성찰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이런 소망은 거룩한 공간이나 유물과의 물리적 접촉을 통해 영적 경험이나 질병의 치유 등과 같은 신비적 체험에 대한 소망이 반영된 신앙적 실천이라고도 할 수 있다. 실제로 유럽의 성지를 방문하는 순례자 가운데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유물’ 앞에서 두 손을 모으고 자신의 소원이 이뤄지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일례로,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에는 이탈리아어뿐 아니라 다양한 언어로 고해성사를 할 수 있는 고해소가 마련돼 있다. 이런 배려가 담긴 고해소들은 세계 각지에서 온 순례자들에게 로마가톨릭의 총본산이라는 특별한 공간에서 더더욱 ‘특별한 거룩성’과의 접촉이 가능하다는 소망을 갖게 해 주는 하나의 장치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일상과 특정 공간을 성속 이원론적 사고로 구분하는 것은 기독교 신앙 밖에서도 볼 수 있다. “조상의 묫자리를 잘 써야 후손이 잘된다! 집터가 좋아서 이 집안에 인물이 많이 나왔다!” 요즘도 우리 주변에서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이렇게 특정 공간에 특별한 가치를 부여하는 관습은 종교를 초월해 우리 문화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특정 공간에 특별한 가치를 부여하는 우리의 전통문화는 더더욱 그리스도인에게(윤리적 삶으로서의 거룩 이해는 소홀히 하면서) 거룩한 공간으로서의 성전 이해에 치우치게 한다. 

신약의 ‘거룩’ 이해 ­ 공간에서 존재로 

신약에서는 거룩에 대한 구약의 이분법적 이해를 새롭게 해석한다. 세 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첫째, 스데반의 거룩성 이해다. 스데반은 당시 유대 지도자들의 성전 이해를 이렇게 비판한다: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행 7:48); “하늘은 나의 보좌 땅은 나의 발등상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느냐(행 7:49); “이 모든 것이 다 내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냐”(행 7:50). 구약에 나타난 이 구절은 원래, 유대인들이 삶으로 드리는 예배를 등한시하고, 거룩 개념을 성전 공간에 제한해서 이해하던 성전 이해를 비판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스데반은 지금 자신을 돌로 치려는 유대인들에게 이 구절들을 인용해 ‘거룩성’에 대한 유대인들의 잘못된 인식을 지적하고, 참된 거룩성을 회복하도록 한다. 실제로 이 구절들은 하나님께서 ‘성전’이라는 물리적 공간에 실재하신다는 뜻이 아니라, 유대 백성이 성전을 향해 기도할 때, 하나님은 그 계신 곳 ‘하늘’에서 그들의 기도를 들으신다는 뜻이다. 이는 ‘성전’이라는 물리적 공간 자체가 ‘거룩한 공간’이라는 뜻이 아니라, 성전은 하나님께서 유대 백성과 맺은 언약 관계를 유대 백성이 알게 하기 위한 하나의 모형이라는 사실이다.³ 이렇게 성전 공간은 거룩의 ‘본질’이 아니라 거룩의 ‘모형’에 불과한데, 성전을 ‘본질’로 착각하는 당시 유대인들의 잘못된 인식을 지적하면서, ‘거룩성’이 특정 공간에 제한되지 않고, 일상 공간 전체와 관련된 개념임을 알려 준다. 

둘째, 예수님의 거룩성 이해다.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요 2:19);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요 2:20);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요 2:21). 이는 예수님 당시의 헤롯 성전에 대한 해석으로, 성전 자체는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거룩한 공간에 대한 하나의 그림자요 모형일 뿐이고, 성전의 실체는 예수님 자신이라는 뜻이다. 그 이유는 예수께서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 자체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하나님이 거룩하시므로 예수님도 거룩하시다는 논리다. 이렇게 성전에 대한 새로운 이해는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간다”라는 말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도록 요청한다. 즉, 우리가 예배당 공간(구약의 성전 공간)에 나아간다는 것은 거룩한 하나님께 나아감을 의미하는 하나의 모형 혹은 가시적인 표현이지, 특별히 신비스럽고 거룩한 공간으로서의 예배당에 나아간다는 말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직 “스스로 성전 되시는 예수님의 이름을 의지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라는 사실이 하나님께 나아감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셋째, 바울의 거룩성 이해는 예수님의 이해를 확장한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전 6:19). 이 언급은 하나님의 임재 자체이신 예수님이 성전이시고, 성전된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신 성도가 곧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이라는 뜻이다. 이로써, 거룩성은 예배당이라는 특정 공간에 제한적으로 사용되는 표현이 아니라, 성전된 예수님이 거룩하시듯 성령을 모신 그리스도인 역시 거룩성을 담보하고 있다는 사실을 함축한다. 그리스도인에 대한 이러한 새로운 이해는 특정 공간으로서의 성전 이해에 젖어 있던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에게는 놀랍게 다가갔을 것이다. 

통전적 ‘거룩’ 이해 ­ 제의와 윤리의 일치

그리스도인은 스스로 어떤 자격이나 조건을 갖추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몸이 ‘성령께서 거하시는 전’이기 때문에, 거룩하다고 인정받는다. 즉, 예수님을 자신의 주님으로 영접함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의 거룩성이 그리스도인에게 전이됨으로써 거룩하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인 교회 역시 거룩하다. 실제로 바울 서신 여러 곳에서는 그리스도인을 ‘거룩한 백성’을 의미하는 ‘성도’로 칭한다: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롬 1:7); “그러나 이제는 내가 ‘성도’를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가노니”(롬 15:25); “너희는 주 안에서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고”(롬 16:2);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고전 1:2);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전 3:17);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히 3:1). 여기서 ‘성도’ 혹은 ‘너희’는 ‘거룩한 백성,’ 즉 ‘교회’를 의미한다. 

그런데 여기에 그리스도인의 딜레마가 있다. 그것은 믿음으로 예수 안에서 거룩한 백성으로 인정받기는 했지만, 실제 삶 가운데서 거룩과는 거리가 먼 자신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거룩성 이슈를 단지 제의적 차원에 국한해서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는 일상 공간에서도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윤리적 삶을 살도록, 즉 거룩한 삶을 살도록 초대됐다. 이런 현실이 한편으로는 그리스도인의 특권으로 여겨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한다. 그래서 그리스도인 가운데는 자신의 몸이 성령의 전이라는 사실을 단지 추상적으로만 받아들이거나 혹은 애써 외면하는 경우도 있다. 그만큼 거룩에로 초대받았다는 사실 자체가 부담이 된다는 말이다. 

여기서 우리는 거룩과 관련하여 ‘이미’와 ‘아직’ 사이의 긴장 관계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는 신앙생활이란 아직 거룩하지 않은 자신이 거룩의 상태로 변화되는 과정이 아니라, ‘이미’ 예수의 피로 거룩해졌지만, ‘아직’ 거룩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 가운데 있다는 사실이다. 즉, (예수의 피로 죄 사함을 받고 거룩해졌다는 의미에서) ‘이미’ 거룩해진 자신은 (실제 삶 가운데서 여전히 죄 가운데 빠진다는 의미에서) ‘아직’ 거룩하지 않은 자신과 역설적 긴장 관계에 놓여 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이렇게 ‘이미’와 ‘아직’ 사이의 역설적 긴장 관계에 있으며, 신앙생활이란 이 둘 사이의 역설적 긴장을 해소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를 고려하면, 레위기 19장의 교훈, 즉 (안식일을 지키고 헛된 신상을 부어 만들지 말라는 등의) 제의적 규례들과, (도둑질하지 말고 귀먹은 자를 저주하지 말고 맹인 앞에 장애물을 놓지 말라는 등의) 윤리적 규례들은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그것은 일상 공간에서 요구되는 윤리적 규례에는 무관심한 채, 성전 공간에서 요구되는 제의적 규례에만 정성을 다하는 유대인들에게, 그렇게 윤리적 삶과 분리된 예배는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신다는 사실이다.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사 1:12).  

사도 바울 역시 거룩 개념과 관련하여, 그리스도인은 ‘이미’와 ‘아직’ 사이의 역설적 긴장을 해소하는 과정에 들어서 있음을 우리에게 교훈한다. 이것이 바로 윤리적 삶으로의 초대다. 예배에서든 삶에서든 성전 된 우리, 즉 예수님을 믿음으로 거룩하게 된 우리는 나아가는 곳마다 거룩을 드러내도록 요청받고 있다.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내주어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롬 6:19b),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하게 하심이 아니요 거룩하게 하심이니”(살전 4:7). 예배 참여가 하나님의 거룩함에 참여하는 모습이듯, 윤리적 삶 역시 하나님의 거룩함에 참여하는 모습이라는 의미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이 불의와 죄악 가운데 머물러 있으면, 하나님의 이름이 더럽혀지고 훼손당한다. 불의와 죄악은 제의적 차원에서 우상을 섬기는 모습으로도 나타나지만, 삶 가운데서의 악함과 불의로도 나타난다. 에스겔 36:18-20에서, 에스겔은 이스라엘의 타락, 즉 그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힌 사실을 두 가지로 지적한다. 1) 죄 없는 사람들의 피를 흘린 것, 2) 온갖 우상을 섬겨 그 땅을 더럽힌 것. 여기서도 제의적 차원과 윤리적 차원 둘 모두를 지적받는데, 이는 두 차원이 서로 연결돼 있음을 의미한다. 즉, 제의적 타락은 윤리적 타락을 결과하고, 윤리적 타락은 제의적 타락을 결과한다. 

최근 들어 한국 교회는 예배 회복에 상당한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예배에 목숨을 걸라!” “예배에 성공해야 인생도 성공한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한두 번은 들어본 구호다. 이런 구호는 형식적이고 인간 중심적인 예배를 탈피하여 오직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참된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예배 회복의 촉구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자칫 이런 구호는 예배 의례를 과도하게 중시하면서, 윤리적 삶을 신앙생활의 부차적인 일로 여기게 할 위험성이 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이 머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지체로 부름받았다는 사실은 결국 거룩에로의 초대를 의미한다. 이 초대는 ‘이미’와 ‘아직’ 사이의 역설적 긴장 관계에 놓여 있다. 그리고 교회는 이러한 역설적 긴장을 해소하는 과정에 들어서 있다. 실천적 의미에서, 교회의 거룩성 회복은 제의적 차원(예배)과 윤리적 차원(삶)이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연결된 개념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데서부터 시작될 수 있다. “예배의 회복 없는 윤리적 삶의 회복이 있을 수 없듯이, 윤리적 삶의 회복 없는 예배의 회복 역시 있을 수가 없다!”  


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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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박정관, “구약성경의 거룩: 카도쉬 용어를 중심으로”, 〈성서마당〉(한국성서학연구소, 2013년 겨울), p. 136. 
2)    장흥길, “신약성경의 거룩: 하기오스 용어를 중심으로”, 〈성서마당〉(한국성서학연구소, 2013년 겨울), pp. 144-145.
3)    권연경, “성전 교회론의 실천적 함의”, in 김동춘, 《성전과 예배당》(대장간, 2016), p. 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