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을 맞이한 한국 교회는 교인 수의 감소를 넘어서 신앙 공동체로서의 정체성과 사명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 직면해 있다. 이 위기는 단지 양적 축소가 아니라, 공동체 내의 신앙 역동성과 영적 건강성 전반이 흔들리는 전환적 위기다. 많은 교회의 교회학교가 존폐의 기로에 서 있고, 예배 참여는 물론 헌신과 사역의 동력도 현저히 약화되고 있다. 외형적으로 안정돼 보이는 대형 교회조차도 내부적으로는 사명과 지속 가능성에 대한 고민과 불안을 안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맞이하는 성탄절은 복음의 본질과 존재 이유를 다시 성찰하는 기회가 돼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하나님께서 역사 가운데 구체적으로 개입하신 은혜의 사건이며, 그 자체로 교회의 존재 이유를 일깨워 주는 본질적 계기다. 성탄은 과거의 기념일이 아니라, 오늘의 교회를 향한 도전이며 하나님의 은혜 사건이다. 이 은혜는 교회가 현시대에서 어떤 방식으로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고 있는지를 자문하게 하며, 복음에 기초한 교회론에 따라 사역의 방향과 내용을 새롭게 재정렬할 것을 요청한다.

성육신 신학으로 본 오늘날 교회 위기의 본질

오늘날 한국 교회가 겪는 위기의 핵심은 공동체 내부의 역동성과 연대감 약화, 그리고 복음으로부터 멀어진 교회 정체성의 혼란에 있다. 외부적으로는 세속화와 인구 감소를 요인으로 지적할 수 있지만, 실질적인 위기의 근원은 교회 내부에 자리한다. 관료화된 조직 구조, 경직된 문화, 변화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복음의 본질로부터 멀어진 바리새주의와 세속주의의 팽배가 그 중심이다.

하나님께서 세상 한가운데로 들어와 우리와 함께하신 것처럼 교회도 세상 속에서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 존재해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많은 교회가 내부 사역과 자원들을 ‘관리’하는 일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더욱이 조직의 생애주기 상으로 볼 때, 한국 교회는 조직적 성장기와 안정기를 지나 관료주의적 단계로 접어들었다. 대형 교회들은 체계적 행정과 재정적 안정성을 기반으로 다양한 사역을 지속하지만, 급변하는 시대의 흐름에 대한 유연한 대응은 여전히 부족하다. 코로나 팬데믹을 통해 디지털 사역의 필요성이 절실히 드러났음에도, 많은 교회는 일시적 대응에 그치고 있다. 성육신 신학은 교회가 세상 속으로 나아가야 함을 명령하지만, 현실의 교회는 오히려 자기를 보호하는 성벽을 쌓고 있다.

이는 복음의 본질을 현실 속에 담아내려 했던 성육신 정신과의 괴리를 보여 준다. 오늘의 문화에 대한 신학적 해석의 부재는 곧 세상과의 소통 단절로 이어졌고, 그 결과 교회는 ‘이웃의 교회’가 아니라 ‘닫힌 공동체’로 인식되고 있다. 그 어떤 조직이나 기관보다 한국 교회가 사회봉사와 선행을 활발히 수행함에도, 교회에 대한 사회의 평가는 비판적이다. 이는 사역 방식과 태도가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음을 반영한다.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빌 2:2)으라는 성탄하신 예수님의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내부적 일치와 연합을 위한 노력을 충분히 기울이지 못했다. 개교회주의에 익숙한 교회들은 자기 성장에는 집중했으나, 지역 교회들과 한국 교회 전체, 그리고 세계 교회 공동체와의 연대에는 소홀했다. 더 나아가 교회의 많은 활동이 다툼이나 허영, 즉 경쟁심과 과시욕에서 비롯된 경우도 많았다. 그러한 모습은 교회가 전하는 사랑의 메시지를 교회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냐는 세상의 의심을 받게 했다. 그 결과, 교회는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면서도 삶과 일치된 실천을 보여 주지 못해 신뢰를 잃었다. 

복음의 공공성을 상실한 신앙은 사적 영역에 갇히게 되며, 교회의 선행조차 이기적인 집단 활동으로 오해받기 쉽다. 이는 교회가 성탄의 본질인 ‘세상을 향한 섬김’이 아닌 ‘교회를 위한 관리’에 매몰된 결과이기도 하다.

성탄과 교회의 정체성 회복 ­ 공공선을 향한 부르심

성탄은 단순한 절기가 아니다. 그것은 임마누엘, 곧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위대한 선언이다. 성탄은 하나님 나라가 이 땅 가운데 실현되기를 바라는 부르심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삶은 이를 실천한 성육신의 모범이다. 예수님은 하늘의 영광을 내려놓고 종의 형체로 이 땅에 오셨다. 이는 ‘케노시스’(자기 비움)이며, 성탄의 본질이다. 낮아짐, 겸손, 섬김, 희생은 교회가 본받아야 할 핵심 태도다. 성탄은 오늘날 교회에게 자기 중심성을 내려놓고 세상 한가운데로 나아가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는 공적 존재로 거듭나라고 요구한다. 교회는 복음의 진리를 말로써 세상에 ‘증명’하기보다 그 진리를 ‘살아 냄’으로 증언해야 한다. 

기독교적 공공선은 성육신뿐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의 상호 내주에 그 뿌리를 둔다. 하나님은 삼위 하나님 안의 관계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세상과의 관계 속에서 사랑과 정의를 이루는 분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졌기에 나와 다른 이웃들로 구성된 공동체 속에서 선을 추구하는 존재로 지어졌고 또한 부름을 받았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공공선 실천은 단지 사회적 의무나 도덕적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본성을 닮아 가는 신앙 행위의 핵심이다. 

공공선은 하나님 나라의 가치가 사회적 관계 속에서 구현되는 것을 추구한다. 여기서 공공선은 교회의 정치적 영향력 확대가 아니라 세상 속에서 드러나는 사랑의 질서를 뜻한다. 이 공공선을 추구하는 공공신앙 또는 공공신학은 성육신적 자기 비움과 삼위일체적 관계성을 바탕으로 기독교 신앙을 사회 속에서 공적으로 사고하게 한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고 닮아 가는 신앙인들로 구성된 교회는 바로 이 공공선의 실천, 즉 세상에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을 드러내게 된다. 이는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된다는 것의 구체적인 의미이며, 교회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을 위해 존재한다는 ‘선교적 교회’의 본질이기도 하다.

성탄과 공공선 ­ 복음의 사회적 책임과 실천적 확장

성탄은 단지 기념 예배와 캐럴로 대표되는 절기여서는 안 된다. 성탄은 교회가 세상 속에서 섬김과 헌신의 삶을 새롭게 시작하는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공공선은 특정한 이념이나 프로젝트가 아니라 신앙의 생활 방식이어야 한다. 가난한 자와 연대하고 지역 사회의 아픔을 껴안으며, 제도와 문화를 넘어 하나님 나라의 원리를 삶으로 드러내는 것이 성탄의 정신이다. 공공선 실천의 구체적인 차원으로는 다음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1.    정의 실현과 구조적 악에 대한 예언자적 응답

성경은 정의와 공의를 강조한다. 이는 단순한 도덕적 기준이나 개인의 선행을 넘어서, 사회 전체의 질서가 가난한 자와 약자에게 불리하지 않고 저마다 정당한 몫을 누릴 수 있도록 공정한 구조를 형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교회는 고통받는 이웃에게 직접 도움을 주는 것을 넘어서 그 고통을 만들어 낸 사회 구조와 불의한 문화에 대해 예언자적 목소리를 내야 한다. 

구약의 아모스와 미가 선지자는 부유층의 탐욕이 사회적 불균형을 심화시킬 때, 제사와 찬양이 아니라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기를 요구했다(암 5:24). 성탄하신 예수님께서 억눌린 자를 해방시키고 자유를 선포하시며 정의를 회복하셨듯, 교회 역시 사회·경제적 불평등, 청년 세대의 좌절, 돌봄의 사각지대 등 우리 사회의 정의를 위한 선포자여야 한다.

2.    생태적 책임과 창조 세계의 돌봄

하나님의 창조 세계는 인간의 탐욕과 무절제한 소비, 산업 구조로 인해 고통받으며 신음하고 있다. 기후 위기는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니라 인간 탐욕의 결과이며, 창조 질서를 거스른 인간 중심적 문명의 파괴적 열매다.

시편 24편의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이 여호와의 것이라는 신앙고백은 인간의 소유권을 상대화한다. 이 기후 재난의 시대에 교회는 물질주의를 절제하고, 재활용, 지역 생태 보존, 지속 가능한 소비 등 창조 세계의 회복을 위한 일상의 실천에 앞장서야 한다. 성탄은 창조 질서 가운데 들어오신 하나님의 자기 비움의 사건이다. 교회는 생태적 회개의 자리로 부름을 받았으며, 생태적 고통에 동참하며 지속 가능한 삶의 방식을 제시해 창조 회복의 일원으로 서야 한다.

3.    환대와 사회적 약자의 포용

성탄은 가장 낮은 자리를 향한 하나님의 환대다. 성탄 사건의 첫 목격자가 제사장이나 왕이 아니라 목자들이었다는 사실은, 복음이 언제나 주변부로부터 시작된다는 신학적 선언이다. 

교회는 이 메시지를 따르기 위해 사회적 약자, 난민, 이주민 등을 향해 열린 공동체가 돼야 한다. 교회가 ‘보호의 공간’, ‘관리의 공간’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공간’이 돼야 한다. 이것은 사회복지적 차원이나 수혜의 손길을 넘어서, 하나님의 선교의 실천이다. 교회의 담장을 넘어 세상의 고통에 연대할 때, 성탄의 환대는 현실이 된다.

책임 있는 시민으로서의 공적 참여

공공선을 실현하는 교회는 공적 삶에 참여해야 한다. 이는 특정 정치 세력에 속하거나 당파적 입장을 따르라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를 위해 공론장을 형성하고 윤리적 기준을 제시하는 예언자적 역할을 감당하라는 뜻이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가치로 세상을 비추는 등불이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시민이자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다. 이중 시민권자로서 교회는 국가 권력에 무조건 반대하거나 비판하기보다, 복음적 가치의 관점에서 국가 권력의 모든 정책이 이웃 생명을 기준으로 공동체의 유익과 정의를 실현하는지를 감시하고 발언하는 ‘비판적 충성’을 유지해야 한다. 복음은 우리에게 세상을 변혁할 책임과 능력을 부여한다. 세상의 소금과 빛(마 5:13-16)이라는 말씀은 신앙의 공적 실천의 명령이다.

소비주의에 물든 성탄 ­ 본질로 돌아가야 할 때

오늘날 성탄은 상업 공간의 캐럴과 화려한 장식, 대형 트리, 쇼핑몰의 할인 행사와 함께 기억되곤 한다. 현대의 성탄은 소비주의적 축제로 변질됐고, 성탄은 경제적 약자들에게는 부담과 소외의 시기가 되기 쉽다. 아기 예수의 탄생은 점점 소외된 채 밀려나고 있다. 교회마저 이러한 흐름에 편승해 소비 문화를 비판 없이 수용하고 외형적 행사와 장식에 집중하기도 한다. 교회는 이러한 문화를 비판적으로 응시하고, 성탄의 본질을 회복하는 실천적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성탄은 본래 하나님의 낮아지심과 절제, 나눔과 섬김의 절기다. 아기 예수가 태어난 마구간은 가난과 배제의 상징이었고, 바로 그곳에서 하나님의 구원이 시작됐다. 성탄 장식보다 중요한 것은 가난한 이웃의 식탁 위에 따뜻한 밥 한 끼가 오르는 일이다. 외로움 가운데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손을 잡아 주는 일이다. 그 의미를 회복할 때, 교회는 세상 속에서 소비와 경쟁의 논리를 거스르는 ‘대안 공동체’로 설 수 있다. 

세상의 선물로 살아가는 교회로의 부르심

신앙인은 단지 예배에 참석하는 자가 아니라, 삶 속에서 믿음을 실천하는 자이다. 하나님을 향한 신뢰는 이웃 사랑, 사회적 책임, 생태적 돌봄으로 구체화돼야 한다. 성탄은 이러한 실천을 다시 다짐하는 계기다. 교회는 경쟁과 과시가 아니라 연합과 사랑의 공동체로 거듭나야 한다. 지역사회에서 공공재로 기능하며,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공동체가 돼야 한다. 이것이 곧 성탄의 본질적 의미이며 공공선의 신학이다.

성탄은 단지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지금도 우리를 성화시키는 현재적 은혜이며 앞으로 다가올 영광을 향해 나아가게 하는 종말론적 소망의 근거다. 한국 교회는 지금 여기에서 성탄의 정신을 따라, 복음적 정체성과 이웃 사랑에 기반한 공공선의 부르심에 응답해야 한다. 이 부르심은 선택이 아니라, 성육신을 믿는 교회의 존재 이유 그 자체다. 사역의 내용만큼 중요한 것은 그 사역을 하는 동기와 태도다. 예수께 드릴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물질이 아니라, 그분의 마음을 본받아 선한 일을 행하려는 삶의 결단과 실천이다. 교회가 이웃과의 연대 속에서 섬김을 실천할 때, 복음의 생명력은 다시 피어날 것이다. 

성탄의 주님이 세상에 자신을 선물로 내주신 것처럼, 교회도 세상 속으로 보내심을 받은 선물이다. 성탄은 교회가 세상에 전할 신학적 증언이자 실천적 선물이며, 복음을 삶으로 드러낼 수 있는 은혜의 통로다. 교회가 다시 이 문을 열 때, 세상은 비로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라는 임마누엘의 진리를 체험하게 될 것이다. 그 날에 교회는 더 이상 제도적 종교나 관료화된 조직이 아니라 세상 한가운데서 하나님의 사랑을 몸으로 살아 내는 공동체가 될 것이다. 우리의 삶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영적 예배로서의 응답을 통해 ‘세상의 선물’로 인정받는 한국 교회가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