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립 개척, 위기를 넘어 행복을 찾기까지 

분립형 개척
강재석 행복한동산교회 담임목사

필자에게 분립 개척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멘토인 모(母)교회 이규현 목사님(은혜의동산교회 담임)과 함께 안산동산교회에서 분립 개척할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말이 있다. “셀이 셀을 낳는 것처럼 교회가 교회를 개척해야 한다.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이 운동에 함께하자.” 우리는 이 운동을 ‘큰숲운동’이라고 불렀다. 

2014년 신년예배, 50여 명의 성도들과 함께 송산면 사강리로 파송을 받았다. 분립 개척의 가장 큰 장점은 모교회의 인적, 물적 지원을 받고 시작한다는 점이다. 출발부터 교회 자립이 가능한 구조다. 무엇보다도 온 성도의 사랑과 관심으로 교회가 설립되기에, 교회 전반에 은혜의 DNA가 새겨질 수밖에 없다. 교회 이름도 모교회에서 투표로 지어졌다. 공간을 얻는 일도, 집기로 공간을 채우는 일도 모두 모교회의 섬김으로 이뤄졌다. 시선이 닿는 모든 곳에서 감사의 고백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이 분립 개척의 가장 큰 복이다. 모든 것이 다 좋을 것만 같았던 ‘교회 개척 신혼기’가 끝나갈 무렵 위기가 찾아왔다.

개척 후의 위기
교회가 정체기에 들어서고 목사의 리더십이 흔들렸다. 모교회로 돌아가는 성도들이 늘어났다. ‘교회 개척의 루비콘 강을 건널 때 다리를 끊은 이는 나와 아내밖에 없구나’라는 외로움이 밀려왔다. 개척 1호의 실패로 큰숲운동이 좌초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엄습했고, 후배들의 앞길을 막는 못난 선배가 되는 것 같아 괴로웠다.

되돌아보면 개척을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 같다. ‘부흥과 성장을 봤으니까 그대로 재연하면 되겠지….’ 왜 그때 그곳에서 된 것이 지금 여기서는 안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못했을까? 토양이 다르고 10년의 시간 간격이 존재하는데 말이다. 지역 선정의 한계도 있었다. 교회 성장학적 관점으로 볼 때 인구가 급속히 유입되는 신도시가 아니라, 아파트 단지 하나 없는 시골에서 교회를 개척한 것은 무모하다 못해 위험한 선택이었다.
처음에는 열심으로 위기를 돌파하려고 했다. ‘노력하자. 노력이 안 되면 노오력을 더하자.’ 노오력 끝에 찾아온 것은 탈진이었다. 교회 가는 것이 싫었고, 강대상에 서는 것이 단두대에 오르는 것처럼 무서웠다.  

복음으로 개척 위기를 극복하다
그런 와중에 시티투시티코리아(현재 TGC코리아)에서 주관하는 복음적 교회개척 세미나에 참석하게 됐다. 팀 켈러 목사님을 통해 ‘복음’의 참 의미를 깨달았다. ‘복음의 재각성이 진정한 부흥’이라는 새로운 목회적 시선을 갖게 됐다. 목회자로서 교회 성장의 목표를 품는 것은 당연하지만, 목회의 목적은 오직 복음이어야만 하는데 핵심을 놓치고 있었다. 목사 스스로에게서 복음이 내재화, 인격화돼야 한다. 내면에서 팔딱거리는 생명의 복음이 외부로 흘러나갈 때 영혼이 살아나고 회복이 일어날 수 있다. 부끄럽게도 필자는 교회를 떠난 교인들, 남아서 속 썩이는 교인들, 이곳에 보내신 하나님을 원망하며 마라의 쓴 물만을 마시고 토하고 있었던 것이다. 복음 앞에 바로 서자 내가 보이고 변화가 시작됐다. 

또 한 분의 스승을 만났다. 기독교 희락주의자 존 파이퍼 목사다. 이 만남으로 교회의 방향성이 재정립됐다. 투표로 교회 이름이 ‘행복한동산’으로 정해졌을 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교회 이름이란 들을 때마다 가슴을 울리는 비장한 맛이 나야 하는데, ‘행복’이란 단어는 세속적이고 가볍게만 들렸다. 특히 목회 생존을 위해 발버둥치고 있는 이 시점에 행복 타령이라니, 배부른 소리 같았다. 

행복에 대한 필자의 고정관념이 바뀐 순간은 존 파이퍼 목사님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소요리 문답 제1번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접하면서부터다. 그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은 두 가지가 아니라 한 가지다. 우리가 하나님만으로 즐거워할 때 그 자체가 가장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가르친다. 지금 이 순간 여기에서 어떤 상황에도 불구하고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 즉 복음만으로 행복을 노래할 수 있다면 그가 바로 가장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행복한 목회를 지향하는 교회
우리 교회의 모토는 ‘행복을 누리고 행복을 나누는 교회’다. 새 가족이 오면 이렇게 당부한다. “작은 교회라 할 일이 많이 보일 겁니다. 한 가지만 부탁드립니다. 먼저 복음 안에서 행복을 누리세요. 행복한동산교회 교인이 행복하지 않으면 교회 이름에 먹칠하는 겁니다. 당신은 복음 안에서 행복을 누리고 행복을 나누는 역사적 사명을 받은 분입니다.”

이 목회 철학은 교회 사역과 행사 전반에 적용된다. 교회 청소를 해도 일하러 온 것이 아니라 복음 안에서 행복을 누리기 위해 왔으니 빗자루 들고서도 복음을 묵상하며 감격이 흘러나오는 만큼만 섬기도록 당부한다. 10월 전도 축제에서는 다음 세대 전도를 하는데 그날 교회 마당에서는 바비큐 파티가 준비된다. 여러 부스에서 남녀노소가 함께 웃고 떠드는 행복 축제가 펼쳐진다. 4월 교회 주변에 벚꽃이 만발하면 벚꽃 축제를 개최한다. 매년 다양한 콘셉트로 진행되는데 작년에는 ‘웨딩’을 주제로 했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신부다. 천국 혼인 잔치를 상상하면서 그 날만은 드레스 코드를 하얀색으로 맞추고 준비한 화환을 쓰고 축제를 즐겼다. 특히 결혼 35주년 이상 되신 분을 위해 리마인드 웨딩도 했는데, 정말 작은 천국을 맛보는 시간이었다. 

“교회는 일하러 오는 곳이 아니라 복음 안에서 행복을 누리고 나누러 오는 곳이다.” 

이 말은 강대상에서만 전하는 말이 아니다. 필자가 스스로에게 먼저 선포하는 말이다. 목사가 스스로를 행복한 목사로 느껴야 교인들도 행복하기 때문이다.

목회하면서 받은 행복을 나눌 때 더 큰 반사의 행복을 누리는 것을 많이 경험한다. 특히 네팔 선교사님 사택 화재로 긴급 헌금을 제안했을 때, 그리고 낡은 농촌교회 예배당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으로 보수 공사를 제안했을 때, 성도들이 기쁨으로 자원하여 힘에 겹도록 수고하면서도 오히려 스스로가 더 큰 행복을 누리는 모습은 지금도 생생히 기억난다.

분립 개척자를 위한 당부의 말
분립 개척을 준비하는 분들께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 자기 객관화와 목회의 방향성에 대해서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교회는 주님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주님의 것을 인간이 평가할 수 있을까? 똑같을 필요도 없고 비교할 수조차 없다. 분립 개척의 공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교회개척은 주님의 인도가 필수적이다.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실로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시 16:6). 주께서 주셨기 때문에, 자격 없는 나에게 맡기셨기 때문에 우리는 아골 골짝 빈들에서도 아름답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곳에서 행복을 노래할 수 있다.
 

카페교회, 낮은 울타리로 지역사회에 스며들다 

사업형 개척
권현철 세움소교회 담임목사

2021년 11월에 경기도 부천에서 카페를 먼저 열었다. 그리고 이듬해 2월에 같은 장소에 교회를 개척했다. 누구나 쉽게 넘어올 수 있는 울타리가 낮은 교회를 꿈꿨다. 그래서 먼저 카페로 지역 주민과 가까워지기를 선택했다. 교회라는 표시는 어디에도 없었다. 간판도, 명패도 달지 않았다. 누구나 거부감 없이 들어올 수 있는 완전한 일반 카페였다. 그렇게 4개월이 지나자 동네 맛집으로 입소문이 나고, 단골손님이 생겼다. 그때 비로소 카페의 사장이 목사 부부라는 사실을, 이 공간이 사실은 교회였다는 것을 조심스럽게 알렸다. 일종의 ‘현대판 트로이목마 전략’이었다. 겉으로는 평범한 카페였지만, 그 속에는 복음을 품은 교회가 숨어 있었다. 그러나 이 전략은 단순히 외형만 낮춘다고 성립되는 게 아니다. 외부인이 실제로 쉽게 들어올 수 있어야 하고, 또 머물고 싶은 관계가 쌓여야 한다. 다행히 그때 이미 공간은 익숙했고, 사장은 친근했으며, 메뉴는 맛있었다. 결국 ‘낮은 울타리’는 벽을 무너뜨리는 것만이 아니라, 그곳을 오가며 마음을 주고받는 시간이 함께해야 가능함을 확인했다.

카페 교회의 현실
카페 교회의 장점은 목회자 가정의 생계가 어느 정도는 유지된다는 점이다. 개척 초기의 생활고에서 오는 조급함을 상당히 덜어 준다. 이는 곧 목회의 방향과 철학을 지키는 데에도 중요한 버팀목이 된다. 그러나 이 방식의 진짜 강점은 목회자의 일상 반경 안에 비신자가 끊임없이 들어온다는 점이다. 모두 자기 발로 들어온 손님이다. 억지로 부르거나 외부로 나가지 않아도 된다. 열린 마음만큼, 커피 한 잔을 사이에 두고 친분이 쌓인다. 그렇게 관계가 형성되면, 어느 순간 ‘전도 대상자’라는 말조차 어색해진다. 그냥 일상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된다. 

개척 후 다섯 달쯤 됐을 때, 첫 등록 교인이 생겼다. 카페의 단골손님이었다. 몇 달을 얼굴을 익히던 중, 어느 주일에 조심스럽게 예배에 참석했다. 말하자면 ‘전도’가 아니라 ‘관계의 익숙함’이 만든 결정이었다. 그 이후에도 카페를 통해 조금씩 사람들이 모였다. 심지어 어떤 이는 배달 앱으로 카페를 검색하다가 ‘이곳이 교회다’라는 사실을 알고 방문했다. 

카페가 성장하면서, 자연스레 교회로 연결되는 통로도 함께 열렸다. 매장, 배달, SNS, 유튜브 등 관계가 맺어진 모든 채널이 곧 전도의 기회가 됐다. 커피 한 잔으로 시작된 관계가, 주일 아침의 예배 자리로 이어진다. 이는 전략이 아니라 일상의 은혜다. 하나님은 교회 건물 안에서만이 아니라, 세상의 일터와 삶의 자리에서도 일하신다. 칼뱅이 말한 것처럼, 하나님의 일반 은총은 일상 속에서 그분의 섭리를 드러낸다. 일터는 그 섭리의 무대였다.

카페 교회의 가장 큰 어려움은 재정이었다. 물론 수입이 전혀 없는 개척보다는 훨씬 나은 조건이지만, 사회적으로 보면 그저 ‘자영업자’일 뿐이다. 월급이 고정되지 않으니, 목회자 가정의 형편은 경기 흐름의 영향을 고스란히 받는다. 승용차, 카페 장비 등, 팔 수 있는 것은 다 팔아 봤다. 팔아도 그때뿐, 장사가 잘될수록 들어가는 돈은 더 많았다. 대출도 은행 한도 끝까지 여러 번 받았다. 교회와 가정의 경계가 흐려질 때, 가슴이 타들어 가는 느낌이 들었다. 

다음으로 힘든 것은 성도의 ‘정착’이었다. ‘낮은 울타리’로 쉽게 넘어온 이들은, 동시에 쉽게 발길을 돌리기도 했다. 기존 교회와는 다른 모습에 끌려오지만, 교회의 본질에는 오히려 거부감을 갖는 경우도 많았다. 누리고 떠나는 이들과 함께, 교회는 공동체가 아니라 가게가 되기도 했다. 그래서 교회는 소비하는 곳이 아닌 함께 세워 가는 곳임을 끊임없이 가르쳤다. 이 가치를 몸으로 하나씩 세워 가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지금 돌아보면, 그것이야말로 교회를 개척하는 진짜 과정이었다고 믿는다. 

그리고 외로움이다. 남이 몰라줘서 느끼는 외로움도 있지만, 사실은 반대다. 너무 많이 아는 사람이 너무 많은 말을 할 때, 느끼는 외로움이다. “그렇게 해서도 교회가 되나?” “이중직 목사가 무슨 영적인 권위가 있냐.” “십자가를 부끄러워하는 목사다.” 이런 말은 최근까지도 듣는다. 익숙하지 않다. 그래도 버틸 수 있었던 건, 이 모든 사역의 이유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방송에 출연하고, SNS를 하고, 유튜브에 영상도 올린다. 교회를 자랑하려는 게 아니다. 전도가 목적이다. 낚시꾼의 그물에 물고기보다 돌이 더 많을 때가 있다. 그래도 던져야 한다. 안 던지면 한 마리도 잡히지 않으니까. 오늘도 하나님은 열매로 보여 주신다. 이 길이 틀리지 않았음을, 오늘도 확신하게 하신다. 그래서 계속 나아간다.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정교한 전략과 훈련이 필요하다
개척 방식이 목회자의 수고를 덜어 주지는 않는다. 전임이든, 이중직이든, 결국 개척은 ‘한 사람의 한계’를 넘어서야만 하는 일이다. 오히려 이중직 목회는 훨씬 더 정교한 전략과 훈련이 필요하다. 시간은 제한돼 있고, 두 가지 일을 해내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새벽기도와 평일 모임이 없는 교회에서 성도를 어떻게 세울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답이 없으면, 이중직 목회는 교회 성장의 발목을 잡는다. 

성도가 교회에 소속감을 느끼려면, 단지 앉아 있기만 해서는 안 된다. 그들이 주인공처럼 교회를 경험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세 가지를 중요하게 붙들었다. 첫째, 투명한 재정. 둘째,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사역 구조. 셋째, 유기적인 소통이다. 이 세 가지는 성도를 교회의 주인으로 이끌어 준다. 단, 훈련 없이 주인 대접만 받는 공동체는 오래가지 못한다. 훈련과 책임의 균형이 반드시 필요하다. 세움소교회는 그래서 교육과 훈련에 진심이다. 세움소교회의 주일은 길다. 1부 예배가 있고, 2부 식탁 교제가 있고, 3부 성경공부와 소그룹이 있다. 이 모든 과정이 하나의 예배다. “주일엔 반드시 3부까지 마쳐야 예배가 끝난다”라는 인식이 자연스럽게 정착됐다. 

 또한 평일에는 독서 모임과 제자 훈련이 이어진다. 방식과 강도는 다르지만 방향은 같다. 말씀 위에 성도를 세우는 일, 그 한 가지 목적을 위해 모든 사역이 움직인다. 결국 교회의 힘은 ‘누리는 사람’이 아니라 ‘책임지는 사람’에게서 나온다. 그래서 우리는 늘 묻는다. “내가 예수를 믿고, 내 주변에 어떤 생명의 일이 생겨나고 있는가?” 그 질문이 멈추지 않을 때, 성도는 자란다. 교회도 자란다. 교회는 단지 모이는 공간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지어져 가는 살아 있는 유기체다(엡 2:21). 세움소교회는 그 이름 그대로, 개인과 가정이 바로 세워짐으로써 함께 성장하는 교회다. 그 성장은 화려하진 않지만, 분명하고 단단하다.

지금 가장 많이 붙잡는 질문이 있다. “교회는 어디를 향해야 하는가?” 성장만이 목표는 아니다. 하지만 성장이 전혀 없다면, 교회는 곧 생명력을 잃는다. 교회도 사람처럼 생명 주기를 가진다. 태어나고, 자라고, 쇠퇴한다. 결국 교회는 생명체다. 이 말은 단지 비유가 아니다. 실제로 그렇다. 그래서 세움소교회도 자라야 했다. 단지 외형이 아니라, 내실로.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파송 교회’를 표방할 수도 없다. 세움소교회는 분명히 지역 교회다. 이 지역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대위임 명령을 감당하는 실체로 존재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 길에는 분명한 한계도 있다. 이중직 목회의 한계다. 시간은 모자라고, 공간은 제약된다. 더 집중하고 싶어도, 현실이 가로막는다. 최근엔 교회 공간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지금 있는 공간이 우리가 걸어갈 다음 길을 감당할 수 있을지, 아니면 새로운 자리로 옮겨야 할지. 방향을 다시 정리하고 있다.

가장 조심스러운 부분은 목회자가 자신의 소신만으로 교회의 방향을 재단하는 일이다. 교회는 내 계획의 도구가 아니다. 교회의 주인은 그리스도시고, 나는 단지 그분의 청지기일 뿐이다. 개척 초기에는 버텨야 했다. 그다음은 설득해야 했다. 지금은 기다리고 있다. 하나님께서 주도하실 다음 순서를 말이다.

개척에는 정답이 없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주신 부르심과 달란트를 발견하고, 그 길을 스스로 걸어가는 것이 먼저다. 남이 하니까 나도 하는 목회가 아니라, 내가 하기에 하나님이 예비하신 목회를 찾아야 한다. 

나는 6년여의 부교역자 시절 동안 그 길을 찾고, 훈련하며 준비했다. 그리고 개척이 임박해서는 1년 동안 100페이지가 넘는 계획서를 작성했다. 한 교회의 청빙을 위해선 수많은 서류를 준비하지만, 이 땅에 하나의 교회를 세우는 일에는 이력서 한 장도 필요 없다는 사실 앞에서, 오히려 더 큰 두려움을 느껴야 한다고 믿는다. 개척은 ‘그럴 듯한 분위기’, ‘될 것 같은 확신’, ‘문이 열리는 흐름’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목회가 아니라 모험이고 도박이다. 개척은 목회자의 철저한 준비와, 반복된 검증, 그리고 자기 안의 분별을 통해 확신을 붙드는 길이다.

 이중직 목회는 목회 50%, 일 50%의 병행이 아니다. 전임 목회가 200%의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라면, 이중직 목회도 똑같이 200%의 힘이 요구된다. 자영업자들이 200%의 집중으로 가게를 세우듯이, 이중직 목회도 같은 수준의 헌신과 전략이 필요하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둘 다 무너진다. 그리고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이중직 목회에는 유통기한이 있다는 사실이다. 절대 오래 붙잡고 갈 수 없다. 그렇기에 단기적 플랜, 전환의 타이밍, 후속 전략이 반드시 필요하다. 단, 그 모든 전략은 ‘내 사역의 길’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교회를 위한 준비’여야 한다. 

개척은 하나님이 하신다. 그러나 아무나 쓰시진 않는다. 준비된 사람을 통해, 준비된 교회를 시작하신다. 오늘도, 어딘가에서 시작될 새로운 교회를 위해 한 사람의 목회자가 자기 손으로 삽을 들고, 기도로 땅을 고르고 있기를. 그 누군가의 눈물 섞인 준비가 하나님의 기쁨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직장인 목회자, 현실과 소명사이에서 길을 찾다

직장형 개척
전인철 그저교회 담임목사

개척을 결심한 것은 2017년 여름이다. 개척 목회의 지속 가능성을 생각했을 때 가정의 생계를 확실히 해야 했다. 지원 받을 곳은 없었고, 후원은 장기적으로 부담이 됐다. 그래서 시간을 내서 일하기로 결정했다. 구직 사이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검색해 봤다. 마흔이 다 된 젊지 않은 나이, 전문적인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교회에서 일한 10년이라는 경력은 사회에서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나마 할 수 있는 일은 배달과 관련된 몸을 쓰는 일이 유일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대리운전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다가 기독교 구직 사이트에서 우연히 ‘히즈쇼’라는 회사를 검색하게 됐다. 기독교 콘텐츠를 만드는 회사인데, 물류 쪽으로 일할 20대 남성을 찾고 있었다. 구직 요건에 맞는 것은 ‘남자’라는 것밖에 없었지만, 용기를 내어서 전화를 했다. 통화한 지 1분도 되지 않아 함께 일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 ‘히즈쇼’에서 다시 연락이 왔다. 회사에서 만든 기독교 콘텐츠를 교회에 소개하고, 사업화하는 일에 새로운 인력을 충원하려고 하는데 지원할 용의가 있는지 물었다. 그렇게 월, 화, 목 3일 회사에 출근하고, 수, 금 2일 교회 업무를 하는 이중직 목회자가 됐다. 교회 개척은 2018년 4월 1일이었지만, 회사 출근은 2018년 1월부터 했다. 

누군가 왜 직장을 다니는 이중직 목회를 시작했냐고 묻는다면, 단호하게 생계 때문이라고 답한다. 선교적인 이유라기보다 가정의 생계가 담보돼야 목회를 지속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직장인 목회자의 현실
대부분의 교회가 재정의 가장 큰 부분을 장소 임대료와 목회자 사례비로 지출한다. 당연한 지출이고 마땅히 그래야 한다. 

그러나 그저교회는 이 두 가지 지출 항목을 최소화하기로 했다. 그래서 교회의 선교, 구제 사업에 조금 더 힘을 실을 수 있었다. 교회 개척 초기부터 선교사님들에게 후원을 할 수 있었다. 규모가 작은 교회지만, 현재 다섯 곳의 선교지에 후원을 하고 있다. 사회적인 어려움에 처한 이웃에게도 구제 후원을 할 수 있었다. 코로나로 고통 받는 이들에게, 화재와 폭우 등 예기치 못한 자연재해로 어려움에 처한 이들에게, 성도들은 주저함 없이 교회 재정을 나누자고 의견을 제시했다. 이처럼 교회 차원의 장점도 있었지만, 목회자 개인이 누리는 이익도 있었다. 

좀 진부한 이야기 같지만, 성도들의 삶의 자리를 경험할 수 있음은 매우 큰 소득이다. 월요일 출근의 피곤함을 이해할 수 있었고, 신천지와 교회를 비슷한 집단으로 생각하는 사회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용기가 얼마나 큰 믿음인지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있다. 

한 가지 더 개인적인 소득을 꼽는다면, 교회에서 배우기 힘든 사회적 기술을 익히고 있다는 것이다. 이익을 추구하는 회사에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각종 기술을 섭렵해야 한다. 현재 회사에서 주로 맡고 있는 개발, 마케팅, 영업의 기술뿐만 아니라 AI 툴 활용에 이르기까지 자의반 타의반 자기계발을 이어가고 있다. 다행이도 기독교 콘텐츠를 개발하는 회사에 근무하고 있기에 목회에도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다. 매우 특이한 경우이겠지만, 회사 업무의 많은 부분이 교회 목회에 직간접적으로 연관된다.

가장 큰 어려움은 목회 시간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월, 화, 목요일은 9시부터 6시까지 성도들을 만날 수가 없다. 성도들은 이런 나의 상황을 배려해 주고 있지만, 그만큼 주중 성경 공부와 상담 시간이 제한적이다. 야간에 온라인을 통해 만나는 방법 등을 고안했지만, 직접 만나는 것만큼의 효과를 누릴 수는 없었다. 

뿐만 아니라 설교 준비에서부터 시작되는 모든 교회 업무를 수요일과 금요일에 마무리해야 한다. 이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기에 거의 모든 요일 야근을 하고 있다. 해가 지나며 나만의 시간표가 만들어져서 그 루틴을 따르고 있다. 설교 관련 독서 시간, 주보와 PPT를 만드는 시간이 요일과 시간에 맞춰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매우 아슬아슬하게 해야 할 일을 마무리하는 주가 허다하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고 있다는 외로움 또한 어려움이라 할 수 있다. 먼저 이 길을 걸어간 선배들이 많지 않기 때문에 위기와 실패의 순간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물어볼 사람이 마땅치 않다. 분명한 방법을 제시해 주는 선배 목회자를 만나는 것은 아마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스스로 그 외로움에 잠식되지 않기 위해 응원과 지지를 보내 주는 사람들을 정기적으로 만나고 있다.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직장을 선택하고, 규칙을 세워라
나는 주중에 직장을 다니며, 교회를 개척하고, 목회를 하는 사람을 만나 본 적이 없다. 자영업을 하거나 파트로 아르바이트를 하는 목회자들은 종종 만나 보았으나 직장인 전임 목회자는 본 적이 없다. 이는 내 주변에 누군가가 내 정체성 확립에 도움을 줄 수 없다는 것이다. 나 스스로 직장인이면서 동시에 목회자라는 정체성을 유지해야 한다. 주변 사람들 말에 흔들릴 필요도 없지만, 정신을 놓으면 한순간에 이도저도 아닌 직장인 혹은 목회자가 될 수 있다. 그래서 개척 초기부터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규칙들을 준비했다.

직장 생활이 아무리 바빠도 말씀 묵상과 기도의 시간을 따로 구별했고, 내가 속한 교단에서 목사로서 참석해야 하는 자리는 연차를 내서라도 반드시 참석하려고 했다. 

한두 번 타협하기 시작하면 몸과 마음이 편한 곳으로 움직이는 것이 사람의 관성인지라 초반에 정한 규칙을 잘 지키려고 열심히 노력했다. 교단에 속한 교회에 담임목사로서 교회를 대표해서 반드시 참석해야 하는 회의는 1년에 4번 있다. 그 외에도 여러 자리가 있으나 이 4번은 참석하고 인증 사진을 찍어서 교인들이 모여 있는 메신저에 올린다. 이를 신경 쓰고 확인하는 교인은 거의 없지만, 나를 위한 장치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회사 업무를 핑계로 담임목사의 의무를 건너뛸 수도 있기 때문이다. 

목회에서도 사고는 유연하게 하려고 했지만, 정해진 계획은 규칙에 맞게 진행하려고 했다. 직장 생활과 목회를 병행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라고 판단했다. 물리적인 시간과 에너지가 부족했기에 자칫 잘못했다가는 목회가 산으로 갈 수도 있어서였다. 이로 인해 성도들에게 다소 딱딱한 목회자로 비춰지기도 했다. 아쉽지만 이 또한 직장과 목회를 병행하는 이의 몫이다.

교회가 목회자의 생계를 모두 책임질 수 있으면 좋겠지만, 누군가는 나와 같이 직장을 다니며 교회를 개척하고, 목회를 지속해야 할지도 모른다. 30대 후반, 호기롭게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며 교회를 개척했지만, 종종 외로울 때가 있었다. 혼자 그 외로움을 감내할 때도 있었지만, 함께 걷는 이들이 하나님과 더불어, 함께 걷는 동료 직장인 목회자들이 있음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본고를 쓰는 이유도 함께 걷는 이들, 그리고 뒤이어 걸어올 분들을 위한 것이다.

내가 다니는 직장은 기독교 콘텐츠를 만드는 회사다. 회사에 출근하면 노트북과 함께 성경을 펼친다. 외근해서 제일 많이 방문하는 곳은 교회다. 그러다 보니 주중 직장에서의 일과 주말 교회에서의 일이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코로나 이후, 회사 정책 상 직원 전원이 재택근무에, 시간도 조정할 수 있는 자율근무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급한 교회 업무가 생기면, 조율이 가능하다. 

우연히 입사하여 8년째 근무하고 있지만, 만약 이런 기회가 아니었다면 직장과 목회를 병행할 수 있었을까 상상해 본다. 확답은 할 수 없지만, 매우 어려웠을 것 같다. 같은 방식으로 개척을 준비하는 분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직장을 선택할 때, 가능하다면 목회와 관련하여 상호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곳을 선택하라고 말하고 싶다. 또한 월급이 좀 적더라도 주중에 하루에서 이틀은 교회 업무를 할 수 있는 날이 있어야 한다. 이상의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직장을 찾는 것이 어려운 일이겠지만, 그럼에도 두 가지 모두를 하기 위해서는 까다롭게 선택해야 한다. 
 

사회사업으로 교회의 문을 열다

사회사업형 개척
이우수 하늘꿈교회 담임목사

2010년 5월 1일 경기도 시흥시 정왕 3동 80평 규모의 지하 교회를 임대해 개척을 시작했다. 장년 8명과 아동 4명이 전부였다. 신대원을 졸업하고 강도사 시절 1년 동안 목회 사역 계획과 목회 철학을 세우며 기도로 준비했다. 개척에 앞서 지역조사를 철저히 했다. 통계청 자료를 통해 시흥시의 연령별 인구 분포, 학력, 산업 정보 등을 수집했다. 당시 시화공단 바로 옆 아파트 단지에는 젊은 학부모가 많이 거주하고 있었다. 

방과후 공부방에서 지역아동센터로 확장 
신대원 시절부터 지역아동센터에 관심이 많았지만, 교회 입지 조건 때문에 처음에는 무료 방과 후 공부방을 운영하며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공부방을 통해 아이들의 학업 성적이 눈에 띄게 향상하자, 점차 많은 부모가 자녀들을 맡기기 시작했다. 주일학교도 날로 부흥했다. 개척 초기부터 매년 작은 도서관 주관으로 지역 공원 어린이날 행사을 열었고, 주일 오후에는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아이들과 축구를 하고 끝난 후에는 교회로 데려와 간식을 먹였다. 그 결과, 개척 4-5년 차에는 당시 등록 아동이 100명이 넘을 정도로 성장했다. 이러한 아동 돌봄 사역 경험은 이후 지역아동센터를 운영하는 귀중한 자양분이 됐다.

개척 6년 만에 지역아동센터 운영의 기회가 찾아왔다. 시흥시 포동에 있던 지역아동센터를 인수하게 된 것이다. 포동의 인구는 5천 600명에 불과하고, 초등학생 수도 120명밖에 안 되기에 조건은 불리했다. 하지만 한 부모 자녀, 다문화 가정 등 취약 계층 아동이 많아 필요가 절실한 곳이었다. 우리는 아동 돌봄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했고, 그 결과 전교생의 28%가 이용할 만큼 오고 싶어 하는 시설이 됐다. 이용 아동의 40%는 복음을 받아들이고 우리 교회에서 함께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또한 농협, CJ, 삼성, 1% 재단 등 지역 연계 사업을 통해 사각지대 아동들에게 학습 지원과 장학금 지원으로 꿈을 응원하고 있다. 

위기가 곧 기회다
코로나19는 사역의 위기이자 곧 기회였다. 기존 아동센터 사역이 어려운 상황에 처하자, 나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가장 먼저 기도로 준비한 것은 법인 설립이었다. ‘하늘꿈학교 사회적협동조합’ 법인을 설립했는데, 이는 지역아동센터 사역을 확장하는 기회가 됐다. 지역아동센터를 확대하거나 공모 사업에 참여하려면 개인 자격이 아닌 법인 자격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지역아동센터 및 관련 사업 공모 신청에 힘썼다. 코로나로 모든 사회 사업이 위축됐을 때, 공모에 집중했고, 감사하게도 신청한 사업이 연이어 선정되는 기적을 경험했다. 이는 기존에 지역아동센터를 잘 운영해 온 결과이기도 하다. 2021-2022년에는 시흥시에서 ‘다함께돌봄센터’ 2곳을 수탁받았고, LH 사회적 기업 건물도 무상으로 수탁받아 교육지원청 ‘돌봄공유학교’로 운영했다. 이후 광명시에서도 ‘다함께돌봄센터’ 2곳도 수탁받았다. 법인 설립 2년 만에 돌봄 아동 수가 300명이 넘었고, 보조금 14억 원 이상을 집행하는 기관으로 성장했다. 2023-2024년에는 교육지원청 돌봄사업 시범 사업 공모에 선정돼 시흥, 광명, 안양과천, 의왕군포 지역의 돌봄 사업을 운영하며 17개 시설에서 돌봄 아동이 500명을 넘어설 정도로 활발하게 사역을 펼치고 있다.
 
지역과 다음 세대를 섬기는 교회 
하늘꿈교회가 지역 아동 돌봄 사역에 집중하는 이유는 목회 철학과 관련이 깊다. 교회의 핵심 가치는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교회, 이웃을 사랑하며 섬기는 교회, 다음 세대를 양육하여 일꾼 삼는 교회다. 

물론 사회 사업에 힘을 기울인다고 해서 목회에 소홀히 하지 않는다. 전 교인이 매일 성경을 묵상하고 교제와 나눔을 이어가고 있다. 교회의 가치는 복음을 전하고 영혼을 살리는 데 있기에, 이웃을 섬기고 베풀며 나누는 자발적 섬김과 헌신의 고백이 매주 들려온다. 특히 우리 교회 교인 23명은 지역 아동 돌봄센터에서 일하고 있다. 우리 교회는 숭실사이버대와 헙력해 전 교인을 대상으로 사회복지사 과정을 무료로 이수하게 하고, 자격을 취득한 교인들은 돌봄센터에서 봉사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사회사업형 개척에 대한 조언
사회사업형 개척을 준비하는 사역자에 몇 가지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다. 

첫째, 지역사회의 필요와 교회의 가용 자원을 살펴야 한다. 사회사업형 사업은 아동 돌봄, 노인 돌봄, 수리 봉사, 상담 등 매우 광범위한 분야가 있다. 우리 교회가 어떤 분야에 특화될 수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둘째, 사회사업을 위한 법인을 반드시 설립해야 한다. 목회자가 개인적으로 돌봄 사역을 해도 괜찮지만, 지역 시설을 운영하려면 법인 자격이 필수적이다. 보통 5인 이상으로 구성되는 비영리법인을 설립하거나, 교인이 5명이 안 되는 개척 교회는 임의 단체를 구성해도 좋다. 

셋째, 지나친 욕심을 부리지 말아야 한다. 자신의 능력 한도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사회사업을 지속할 수 있는 비결이다. 
 

맨손으로 시작한 개척 교회, 본질에 뿌리내리다

전통형 개척
강민철 은평빛의숲교회 담임목사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개척의 본질을 성경에서 발견하다
‘Church Planting’을 직역하면 ‘교회를 심는다’이다. 그렇다면 누가 교회를 심는 걸까? 목회자가 자신의 의지와 계획으로 심는 것일까? 나는 개척의 본질을 시편 1:3에서 찾았다. 이 말씀처럼 교회는 사역자가 심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머리와 주인이신 예수님이 친히 심으시는 것이다. 사역자는 그저 그 일에 순종해 주님이 심어 주시는 곳에 심겨질 뿐이다. 그 순종 가운데서 자연스럽게 열매를 맺고, 모든 일이 형통하게 풀린다.

대부분의 개척자는 사람이 많고 성장 가능성이 높은 신도시 지역을 선호한다. 하지만 그곳들은 이미 대형 교회의 지성전과 기존 교회가 치열하게 경쟁하는 ‘레드오션’이다. 하나님은 나를 정반대 길로 인도하셨다. 서울의 가장 외곽 지역, 좁은 골목길 안쪽, 교회를 찾기조차 어려운 오래된 빌라들로 가득한 곳에 성도 한 명 없이 맨손으로 개척하게 하셨다. 사람의 눈으로 보면 어리석은 선택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께서 심으시는 나무는 어떤 땅에서든 시냇가에 심어진 나무처럼 자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본질을 지키는 용기: 세미나와 컨설팅에 의존하지 않다 
개척을 준비하는 목회자라면 누구나 개척 세미나나 교회 성장 세미나에 참석하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이다. 검증된 방법론과 성공 사례를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필자는 세미나와 교회 컨설팅에 의존하지 않았다. 개척 성공 모델은 각기 다른 상황에서 나온 것이라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새로운 방법론에만 집중하다 보면, 처음 추구했던 교회의 본질에서 멀어질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본질에 집중하는 것을 택했다. 물론 배움을 게을리하지는 않았다. 꾸준한 독서로 설교에 대한 깊은 통찰과 미래 영적 트렌드에 대한 이해를 얻었고, 정기 독서 모임에도 꾸준히 참석했다.

소속 교단에서 개척 교회 컨설팅을 제공했지만, 나는 이것도 받지 않았다. 컨설팅을 받으면 행사 방식부터 설교 패턴, 전도 방법까지 모든 것을 바꿔야 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해서다. 그렇게 되면 처음에 세운 목회 방향과 충돌이 생겨 교인들이 혼란을 겪을 수 있다. 나는 다시 시편 1:3 말씀을 붙들었다. 예수님께서 친히 심어 주신 교회라면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본질에 뿌리를 내리는 것만으로도 자연스럽게 열매를 맺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기도하는 집: ‘기도’라는 본질에 집중하다
나에게는 지역사회 봉사 프로그램을 기획할 능력도, 교회를 알릴 탁월한 아이디어도 없었다. 전도 이벤트나 성장 전략에 대한 노하우도 부족했다. 그렇다면 교회는 과연 어떤 곳이어야 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도 성경에서 찾았다. 교회는 무엇보다 ‘기도하는 집’(마 21:13)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개척 초기에 성도가 한 명도 없었지만 새벽기도만큼은 성실히 드렸다. 수험생이 없어도 수험생을 위한 기도회를 시작했고, 놀랍게도 그때 처음 찾아온 학생이 지금은 청년이 되어 ‘호렙산 새벽기도회’에서 반주자로 섬기고 있다. 기도는 결코 헛되지 않았다.

부교역자로 시절부터 개척 후 가장 해 보고 싶었던 것이 ‘호렙산 40일 새벽기도회’였다. 이 기도회는 우리 교회가 오늘까지 있게 한 ‘시그니처’ 기도회가 됐다. 고 김선도 목사님을 모실 때 배운 것은 바로 기도였다. 40일을 온전히 집중해 기도하면 교회에 활력과 역동성이 생기고, 엄청난 영적 자산이 쌓여 교회 성장의 강력한 동력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목회자 또한 40일 연속으로 한 가지 주제에 대해 깊이 있게 설교한다는 것은 큰 영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이런 점에서 호렙산 40일 기도회는 성도 훈련과 목회자의 영적 그릇을 키우는 절호의 기회다.

기도회 이후,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여름 행사부터 시작해서 추수감사절, 성탄절, 부활절까지 교회의 모든 전도와 행사가 역동적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수많은 치유의 기적과 영적인 돌파, 그리고 문제 해결이 연이어 일어났다. 희귀 암에 걸린 분이 완치되는 기적도 일어났다. 이렇게 치유와 성령의 직접적인 체험을 한 이들이 하나둘씩 제자로 세워졌다.

우리 교회는 개척 직후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았다. 그럼에도 호렙산 기도회를 중단하지 않았고, 기도를 쉬지 않았다. 덕분에 교회의 영적 동력을 잃지 않았고, 교회는 계속해서 성장해 나갔다.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는 통로이자, 교회가 살아 움직이게 하는 생명의 원동력이었다.

교회 본질과 사명의 척도: 세례를 주고 제자를 삼는 일
나는 교회의 사명이 제대로 이뤄지는지에 대한 척도를 ‘세례율’로 본다. 세례를 받는 이들은 새롭게 예수님을 믿고 영접한 사람들로, 다른 교회에서 수평 이동한 성도와 다르다. 이들은 제자로 세워지는 첫걸음을 내딛는 성도들이다. 나는 이들을 세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재정이나 성도 수를 성장 지표로 삼지 않고, 세례를 몇 명이나 베풀었는가를 성장의 척도로 삼아 왔다. 개인적으로는 출석 인원의 5-10%가 매년 세례를 받는다면 교회가 매우 건강하게 성장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이런 확신 때문에 필자는 세례를 줄 수 있다면 장소나 시간에 관계없이 달려가서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베풀었다.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세례를 베푸는 것이야말로 예수님의 지상명령이 아닌가! 지금도 나는 교회 출석과 인원수가 늘어가는 외적인 성장보다는 한 영혼이 세례를 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가 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개척을 준비하는 목회자들에게 전하는 메시지
개척을 준비하는 목회자들에게 꼭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 본질에 집중하면 어디서든지 통한다는 것이다. 1명이라도 제대로 치유받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세례를 받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100명이 출석하는 교회보다 단 1명이라도 진정으로 변화받는 교회가 더 가치 있는 교회다. 한 명의 제자가 세워지는 것은 또 하나의 개척 교회를 세우는 것만큼이나 의미 있는 일이다. 

때로는 재정적, 생계적인 어려움 같은 현실적인 문제들로 단기간에 자립 성장할 수 있는 방법론의 유혹에 흔들릴 수 있을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개척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해 보라. 어떠한 어려움과 영적인 슬럼프가 오더라도 본질을 붙잡는다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얻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심으신 교회라면, 그리고 개척자가 우직하게 본질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면, 반드시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길이 없는 곳에 길을

재개척형 개척
안병찬 강진 강남교회 담임목사

길이 없는 곳에 길을. 이것은 복음을 향한 정신이며 사명 계승을 위한 헌신의 자세다. 예수님은 그 길이 없는 곳에서 친히 길이 되신 분이다. 예수님이 가신 길을 간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방향성을 갖는 것이다. 이 정신은 개인 목회자의 사적인 신앙적 신념이 아닌, 교회 공동체 전체가 함께 걸어가야 할 방향이라 확신한다.

2021년 11월, 체코에서의 선교 사역을 마치고 돌아온 후 부임하게 된 강진 강남교회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사명의 현장이었다. 겨울 문턱의 언덕 위 예배당에 올라섰을 때, 날카로운 바람이 온몸을 찌르듯 몰아쳤고, 예배당 앞에 펼쳐진 풍경은 무너짐과 침묵의 상징처럼 느껴졌다. 마당은 600평이 넘는 넓은 터였지만, 잡초로 뒤덮여 있었다. 건물은 곳곳이 헐고 부서진 채 방치돼 있었다. 오랜 시간 목회자가 부재한 상태에서 공동체는 방향을 잃은 듯 보였다. 그러나 그 자리에 여전히 머무는 두 동역자가 있었다. 50년 넘게 그 교회를 지켜온 장로와 권사 부부였다. 그들은 끈기 있게, 그리고 단단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재개척의 시작은 곡괭이 하나였다.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고, 재정도 인력도 턱없이 부족했다. 아내와 함께 그저 잡초를 걷어 내고, 흙 속의 돌을 골라 내며, 마당의 형태를 다시 세우는 일부터 시작했다. 돌을 하나하나 들어 올려 그 돌로 정원의 형태를 만들었다. 이러한 노동은 교회 회복의 작은 씨앗이 됐다.

방치됐던 교회가 조금씩 정비돼 가는 모습을 보며 지역 주민들은 “잠자던 교회가 숨을 쉬기 시작한다”고 말했다. 여행자들마저 예배당 주변을 가꾸는 모습에 응원을 보냈다. 교회다운 교회, 목사다운 목사가 돼야 한다는 단순하면서도 명확한 목회 철학이 모든 것을 뒤로하고 교회의 본질을 되찾는 여정으로 이끌었다. 크고 화려한 사역보다 더 중요했던 것은 작고 무명한 자리에서도 정직과 성실로 복음을 붙드는 일이었다. 그 자리에서 삶을 통째로 드리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강진 강남교회는 단지 작은 시골 교회가 아니다. 100년 전 선교사에 의해 시작된 복음의 역사가 깃든 곳이며, 지역에서 교육과 신앙의 출발점이 됐던 곳이다. 기장과 예장이 분리되기 이전 시기, 이 교회는 강진 지역의 신앙의 중추였고, 복음 전파의 시작점이었다. 이후 여러 목회자가 사역을 이어갔고, 지금, 다시 새로운 출발을 맞이하고 있다. 

재개척의 핵심은 정체성 회복이다
재개척은 단지 물리적 회복이나 숫자의 증가가 아니라 정체성을 회복하는 일이다. 교회로서의 정체성과 성도로서의 정체성을 다시 세우는 것이었다. 부임 후 3년 반 동안 이 일에 집중했다. 지역의 많은 이가 이 교회는 오래 머물 곳이 아니라고 말했다. 고령 인구가 대부분인 농촌, 가파른 언덕에 위치한 예배당, 낡고 오래된 건물, 여러 조건이 교회 부흥의 가능성을 가로막는 듯 보였다. 하지만 그런 평가에 굴복하지 않고 다섯 해의 계획을 세웠다. 

첫해에는 교회 주변을 정비하며 외형적으로 교회의 존재감을 환기시켰다. 둘째 해에는 집회와 지역 행사를 통해 교회를 살아 있는 공동체로 인식시키는 데 주력했다. 셋째 해에는 신앙 교육을 중심에 두고, 특히 성경 묵상으로 성도 각자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도록 이끌었으며, 함께 동역할 일꾼들을 세웠다. 그리고 앞으로 넷째 해에는 다음 세대에게 집중하는 사역을 통해 교회의 미래를 세워 가려고 하며, 다섯째 해는 지역을 넘어서 국내외 선교를 지지하고 동참하는 교회로 나아가는 비전을 세웠다.

선교사가 세운 오래된 건물은 허물어졌고, 과거 성도들이 손수 지은 예배당은 등기조차 없는 무허가 건물이다. 게다가 문화재보존구역이라는 이유로 예배당 부지를 확장하거나 개발하는 일도 불가능하다. 공간은 오직 예배당 하나뿐이다.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의 일하심을 성도들과 함께 경험하고 있다.

이제 교회 마당과 정원은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이 됐고, 무명의 교회였던 강진 강남교회는 지역사회 속에서 조금씩 이름을 알리고 있다. 담을 쌓기보다는 함께 살아가려는 지속적인 시도가 결실을 보기 시작한 것이다. 글로 다 담기 어려울 만큼 많은 하나님의 역사와 은혜가 가득한 교회다. 
가장 어려우면서 중요한 과제는 신앙 공동체로서의 정체성을 바로 세우는 일이었다. 현실적인 제약과 결핍들을 당연하게 여기는 태도는 믿음의 정체성과는 동떨어진 것이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영적 긴장과 치열한 싸움이 계속됐다. 믿음의 길로 나아가는 자에게 부족함이 없게 하시는 하나님을 성도 모두가 함께 체험할 수 있도록 독려했다. 그 일환으로 동유럽 비전트립을 자체적으로 기획하고 실행했으며, 다음 세대를 믿음의 리더로 세우기 위해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또한 시대에 맞게 온라인을 활용한 지역 복음 전파에도 힘썼다. 제작한 영상을 유튜브에 올려 교회 비전과 현황을 공유했고, 홈페이지를 통해 성도들의 신앙적 소통과 활동을 지원했다. 정체된 교회가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교회로서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무엇보다 목회의 중심에는 언제나 말씀 묵상이 자리한다. 모든 성도가 매일 새벽을 말씀으로 시작하며, 묵상을 통해 부모가 자녀의 신앙 교사로 세워지는 구조를 만들었다. 이를 위해 장년과 다음 세대가 동일한 본문으로 묵상할 수 있도록 매월 묵상집을 세대별로 직접 집필해 배포하고 있으며, SNS를 활용한 묵상 피드백 시스템도 운영한다. 요일별로 다음 세대와 묵상을 나누는 교사와 묵상 내용을 첨삭하는 교사를 배정해 매주 운영하고, 토요일마다 가정식탁예배를 통해 각 가정에 믿음이 세워지도록 하고 있다.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고 진실하게 걸어가는 종들을 통해 일하시며, 모든 상황과 조건을 뛰어넘어 그분의 뜻을 이루신다. 거창한 프로그램도, 넉넉한 재정이 없어도 진정성 있는 목회는 반드시 열매를 맺는다. 작은 정원을 가꾸는 손길에도 복음이 스며들 수 있고, 돌 하나를 옮기는 노동 속에서도 하나님 나라는 임할 수 있다.

이 글을 읽는 개척자들, 특히 재개척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포기하지 말라는 것이다.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 순간이 오더라도, 그것은 무너짐이 아니라 하나님의 새로운 기회일 수 있다. 지금 시대, 그리고 앞으로의 시대는 화려한 언변으로 설교하는 목회자가 아니라 자신의 설교를 스스로 우직하게 살아내는 목회자를 필요로 할 것이다.

우리 교회 이야기는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는 단지 한 교회 공동체의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어떤 자리에서도 신실한 종들을 통해 일하시고, 지금도 그 손길을 멈추지 않으신다. 광야에 길을 내시고, 사막에 강을 내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 그 끝에서, 오늘도 강진 강남교회는 함께 손을 잡고 삶의 예배자로 살아가려고 노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