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傳道), 또는 좀 더 폭넓은 표현으로 선교(宣敎)는 많은 기독교인에게 신앙의 중요한 목표로 여겨진다. 교회마다 사명 선언이나 목적에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것”이라고 표현하곤 한다. 성경의 언어(히브리어와 그리스어)로 정확히 전도와 선교에 상응하는 말은 없다. 우리말 성경에 ‘전도하다’라고 번역된 말의 원문을 살펴보면 거의 항상 그리스어 ‘에우앙겔리조마이’(εὐαγγέλιον)와 그 동계어들로 돼 있다. 이 단어는 어원적으로 ‘전하다’라는 동사(αγγελλω) 앞에 ‘좋은’을 뜻하는 접두어(ευ-)가 결합된 형태다. ‘좋은 소식을 전하다’ 혹은 ‘기쁜 소식을 전하다’라는 의미이고 그것의 명사형 ‘에우앙겔리온’(εὐαγγέλιον)은 ‘좋은 소식’, ‘기쁜 소식’이라고 옮길 수 있다. 

17세기 중국에서 활동하던 선교사들이 처음으로 성경을 한문으로 옮길 때, 이 단어를 복음(福音)이라고 옮겼고, 그것이 그대로 우리말에 들어왔다. 사실 한자 복(福)과 마찬가지로 그리스어 접두어 에우(εὐ-)도 기독교 신앙과 본질적으로 아무런 관련이 없다. 좋은 소식이 왜 좋은지, 어떻게 좋은지 그 내용은 성경 전체의 이야기와 신학을 통해 채워지고 설명돼야 한다. 

구약에서의 ‘복음’

칠십인역에서 그리스어 ‘에우앙겔리온’으로 번역된 히브리어의 본래 단어는 ‘바싸르’의 명사형 ‘메바싸르’다. 이 단어 자체로 승전보와 같은 ‘좋은 소식’을 의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단어는 구약성경 전반에 걸쳐 그리 흔하게 쓰이는 단어가 아니며, 신학적으로 두드러지지도 않았다. 심지어 아들들의 죽음과 같은 나쁜 소식을 전하는 상황에도(삼상 4:17) ‘바싸르’가 쓰였다. 좋은 소식이라는 의미로까지 확장될 수 있었지만, 이 단어가 본래 신적인 은혜나 구원 행위를 그 내용으로 하는 소식이라는 뜻을 갖지는 않았다. 어떤 소식을 전달해 주는 활동이라는 일반적인 의미를 지녔던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 행위와 관련해 ‘바싸르’를 사용한 용례는 이사야 40장 이후에 집중적으로 나온다. 특히 다음 두 구절이 중요하다.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사 52:7).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사 61:1).

예언자는 바벨론으로 끌려갔던 유다 왕국의 후손들이 두 세대 만에 마침내 고향 땅으로 돌아올 것이며, 예루살렘에 다시 성전을 짓고 하나님을 예배할 것이라고 선포한다. 이것은 단지 이스라엘의 자유와 국가로서의 회복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제까지와 달리 이방 민족들까지 시온으로 모여들어 하나님을 높이는 편만한 구원의 시대가 올 것이라는 소식이었다(사 40:5; 51:4; 60:6). 세상 전체를 새롭게 하시고 인간사회의 모순과 질곡만이 아니라 자연 질서까지도 새롭게 되는 전 지구적, 우주적 갱신이 이 복음에 담겨 있다. 그것은 마지막 때, 종말의 도래를 의미하며 하나님이 친히 왕이 되셔서 통치하시는 때를 의미한다. 이사야 40장 이후에 펼쳐진 구원의 환상과 그것을 좋은 소식, 아름다운 소식이라고 집약한 이사야서의 이 두 구절은 신약의 복음의 내용을 구성하는 중요한 기초다. 

그리스-로마사회에서의 ‘복음’

고대 그리스인도 승전이나 행운, 성공의 소식과 같은 일반적인 좋은 소식을 표현하기 위해 ‘에우앙겔리온’과 그 동계어들을 사용했다. 비교적 드물게 사용되던 이 단어가 종교적 의미를 획득하게 된 계기는 절대 권력자인 로마제국 황제의 등장이었다. 그리스 사회에서 이미 왕이나 통치자들은 신적 지위를 지녔다고 여겨졌고, 로마인들이 그 개념을 황제에게 적용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신적 지위를 지닌 통치자가 태어나고, 자라서 성인이 되고, 마침내 황제로 즉위했다는 소식, 그의 연설과 칙령, 그리고 행위에 관한 소식들은 좋은 소식, 즉 복음으로 받아들여졌다. 그 통치자를 통해 세상에 평화와 번영이 이뤄질 것이라는 희망을 불어넣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기원전 9년 공포되고 돌에 새겨진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생일에 관한 칙령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실패와 불행으로 치닫는 세상을 그가 회복했다. 만약 그가 태어나서 모든 사람의 축복이 되지 않았다면 이 우주는 멸망을 자초했을 것이다. … 섭리를 통해 아우구스투스는 인류 가운데 시혜(施惠)의 덕으로 가득했고, 말하자면 우리를 위한 구주로 그가 보내졌다. … 그의 생일은 인류에게 전해진 세상을 위한 좋은 소식의 시작이었다.” 

이렇게 ‘에우앙겔리온’은 황제를 정점으로 하는 제국의 통치 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하는 데 동원됐다. 

신약에서의 ‘복음’

신약성경에서 복음 전도 또는 복음을 표현하는 단어의 쓰임은 매우 특이하다. 동사 ‘에우앙겔리조마이’의 총 용례 55회 중 거의 절반이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 있고, 나머지 절반 대부분이 바울서신에 있다. 누가복음을 제외한 다른 세 ‘복음’에 정작 ‘복음 전하다’라는 동사는 딱 한 번 나오는데(마 11:5) 그나마 구약의 한 구절(사 61:1)을 인용하는 대목이다. 명사 ‘에우앙겔리온’의 경우, 누가복음에는 한 번도 나오지 않고 사도행전에 두 번 나온다(행 15:7; 20:24). 반면, 바울은 이 명사를 60회나 사용했다. 명사 ‘복음’이 마가복음에 8회, 마태복음에는 4회 등장한다. 요한복음에는 명사든 동사든 복음과 관련된 단어가 한 번도 쓰이지 않았다. 복음이라는 단어를 빼고 기독교를 말하기 어렵게 돼 버린 오늘날의 상황에서 이는 매우 특이한 현상이다. 

바울서신의 ‘복음’

신약성경 중 가장 먼저 기록된 바울의 편지들에서 복음은 그것의 앞뒤에 다른 수식어 없이 단독으로 20회 이상 사용됐다. 다시 말해서, 기독교가 성립하기 시작한 가장 이른 시기부터 기독교인들이 별다른 설명 없이도 복음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했다는 것이다. 단, 바울의 편지를 받아 읽었던 원 독자 모두가 유대인이거나 구약성경에 친숙한 사람이 아니었다. 따라서 복음이 반드시 구약의 언약이나 이스라엘의 역사를 배경으로 이해되진 않았을 것이다. 바울의 독자들이 복음을 이해했던 더 가까운 배경은 아마 그레코-로마 문화였을 것이다. 즉, 1세기 로마사회에서 복음이라는 그리스어 단어의 사상적 배경은 로마제국의 황제 이데올로기였다. 황제의 생일, 승전, 즉위, 그리고 황제가 특정 지역을 방문한다는 뉴스가 곧 복음이었다. 

하지만, 이 복음은 실상 기만적이었다. 로마의 평화(Pax Romana)가 수많은 노예와 농노의 피땀 어린 노동, 그리고 로마에게 정복당해 식민지 백성으로 살아가며 제국에 바쳐야 했던 무거운 세금 위에 세워졌듯이, 황제의 임재는 잠깐의 기쁨과 환호 뒤에 영구화된 억압과 속박을 확정하는 소식이었기 때문이다. 황제 복음의 기만성을 폭로하고 진정한 평화와 기쁨의 소식을 선포한 것이 바울이 전한 복음, 그리스도의 복음이었다.

바울의 복음의 핵심은 예수의 성육신과 죽음, 그리고 부활의 소식이었다(롬 1:1-4; 고전 15:1-8). 비록 그의 독자 모두가 구약성경에 익숙하지는 않았지만, 바울은 예수의 삶과 죽음, 부활을 통해 일어난 일들을 설명할 때 구약성경을 폭넓게 사용했다. 바울에 따르면 구약의 핵심은 율법이 아니라 ‘약속’(ἐπαγγελία, 에팡겔리아)이었다(갈 3:10-22). 예수를 예언하고 증언하는 한에 있어서 구약도 복음이었다. 

바울서신에서 ‘그리스도의 복음’(고전 9:12; 고후 2:12)과 ‘하나님의 복음’(롬 1:1; 15:16)은 상호 교환해서 쓸 수 있는 동의어다. 거기 들어 있는 속격 ‘그리스도의’는 주어도 될 수 있고 목적어도 될 수 있다. 복음의 내용이 그리스도인만큼, 복음의 기원도 그리스도이며, 그 복음을 전하도록 선교사를 불러 보내신 분도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 복음은 구원과 생명을 가져오고(롬 1:16; 고전 15:2), 심판도 가져온다(롬 2:16). 복음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고(롬 1:17) 희망을 현실이 되게 함으로써 신자를 생산하고 교회를 세운다(골 1:5, 23). 

복음은 단지 예수에 관한 내용의 말이나 글이 아니었다. 명사 ‘에우앙겔리온’은 전해진 좋은 소식이라는 뜻일 뿐만 아니라(the message) 그 소식을 전하는 행위 자체를 뜻하는 동명사이기도 했다(messaging). 예수를 선포하는 행위와 그 선포에 부합하게 살아가는 생활, 그리고 복음을 믿고 변화된 삶의 내용까지, 이 모든 것이 복음을 구성했다. 이전에 하나님의 약속 밖에 있었던 비-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초대를 받고 복음을 듣고 믿어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사건 자체가 복음이었다. 바울에게 있어서 복음은 선교사가 전하는 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선교적 삶 그 자체였다(롬 1:1).

네 복음서의 ‘복음’

네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의 말씀 속에 ‘복음’ 혹은 ‘복음 전하다’라는 단어는 열 번 이상(마 4:23; 9:35; 11:5; 24;14; 26:13; 막 1:15; 8:35; 10:29; 13:10; 14:9; 16:15; 눅 4:18; 7:22) 나온다. 꼭 그 단어가 쓰이지 않았더라도 인류 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선포한 예수의 모든 말씀이 내용상 복음을 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 복음을 직접적으로 언급한 대목을 살펴보면 대개 구약에 예언된 언약 백성의 회복 혹은 재건과 관련된다. 

마가복음 1:15에서 예수는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라고 선포하신다. 이 구절은 복음서 저자가 이해했던 복음의 의미의 두 가지 차원을 잘 보여 준다. 

첫째, 적어도 역사적 예수에게 있어서 복음의 핵심 내용은 하나님의 나라였다. 예수가 마주했던 청중이 1세기 팔레스타인에서 살던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이는 이상할 것이 없다. 구약성경에 기록된 신정국가의 이상 혹은 제2성전기 지혜문학과 묵시문학에 그려진 이스라엘의 회복이야말로 유대인들이 갈망하던 좋은 소식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둘째, 역사적 예수의 선포를 기억하고 보도하는 복음서 저자, 그리고 그의 복음서를 읽었던 원 독자들은 하나님 나라 복음과 그 복음의 선포자 예수가 분리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때가 찼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 보내실 메시아는 다윗의 자손이면서도 또한 더 이상 다윗의 자손의 인간적 한계에 갇히지 않은 하나님의 아들이어야 했다. 그 메시아를 보내실 때가 왔다. 하나님의 아들 없이 하나님의 나라는 시작되지 않는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통치는 곧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의 임재와 통치와 다르지 않다. 어쩌면 마가가 예수를 주인공으로 하는 이야기의 제목을 ‘복음’이라 붙인 이유도 예수가 곧 복음임을 말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막 1:1). 그런 의미에서 마가는 바울의 복음의 의미를 충실히 반영한다. 

마태는 마가보다 더 집요하게 복음과 하나님 나라를 연관 짓는다(마 4:23; 9:35; 24:14). 복음은 언제나 천국 복음이다. 하지만, 유월절 주간에 예수의 발에 향유를 부었던 여자에 관해 말하면서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마 26:13)라고 했다. 즉, 예수의 죽음과 관련된 복음이 온 천하에 전파될 것이다. 

누가의 두 저작에는 특이한 현상이 나타난다. ‘복음 전하다’라는 동사는 누가복음에 10회, 사도행전에 15회 쓰였지만, 명사 ‘복음’은 복음서에 전혀 나오지 않고 사도행전에 두 번 나올 뿐이다. 그 두 구절에서 복음은 사도들이 예수에 관해 전하는 활동을 의미한다. 동사 ‘복음 전하다’는 ‘좋은 소식을 전하다’처럼 헬레니즘 문화의 맥락에서 일반적인 의미를 띠고 있다. 즉, 공적 사역 동안 예수의 활동 그리고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전도 활동을 동사 ‘에우앙겔리조마이’로 표현한 것이다. 반면, 명사 ‘복음’은 예수의 오심과 죽음, 부활 사건, 그리고 오순절 성령강림까지 이어지는 하나님의 구원의 일을 내용으로 하는 선포이며, 예수 승천 후 사도들과 교회가 유대인과 이방인 앞에서 전하는 소식을 가리키는 단어다. 동사와 명사 간 이런 의미상 구분은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 나타나는 독특한 현상이다. 

이미 공관복음에 예수 자신이 단지 그 복음의 전달자(messenger)일 뿐 아니라 복음의 근원(author)이며 주제(subject)라는 관념이 부분적으로 나타나지만, 이를 전면에 부각시켜 명백하게 서술한 복음서 저자는 요한이다. 요한복음에 ‘복음’이라는 단어는 나오지 않지만, 하나님의 ‘진리’의 계시자로서 예수의 정체, 그리고 그분의 말을 듣고 믿을 때 경험하게 되는 ‘생명’의 다채로운 양상이 서술돼 있다. 

글이 아닌 말로서의 ‘복음’

한국어로 복음과 복음서는 동의어가 아니다. 하지만 그리스어나 현대 서양 언어 대부분에서 복음과 복음서는 구별되지 않는다. 명사 ‘에우앙겔리온’ 그리고 영어 ‘gospel’이 복음과 복음서 두 가지 모두를 의미할 수 있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마가가 그의 책 첫 구절에 그 명사를 제목처럼 사용했을 수 있지만, 누가는 ‘에우앙겔리온’ 대신 ‘내력’ 혹은 ‘엮어낸 이야기’(διηγήσις)라는 단어로 표현했다. 사실 복음서 저자 누구도 자기들이 쓴 글에 복음서라는 제목을 붙이지 않았다. 오늘날 우리가 복음서마다 첫머리에서 보는 마태복음, 마가복음 등의 제목은 각 저자가 붙인 것이 아니라 2세기 이후 필사되는 과정에서 추가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바울도 ‘에우앙겔리온’을 말할 때 어디에서도 이를 ‘기록된 책’이라는 뜻으로 사용하지 않았다. 

복음은 복음서 이전부터 존재했고, 복음서 바깥에서 존재했다. 그것은 말로, 그리고 삶으로 표현됐고 전달됐다. 어떤 사람도 복음을 두고 배타적 저작권을 주장할 수 없었다. 필연적으로 복음은 그것을 전하고 살아내는 사람의 진정한(authentic) 목소리와 말로 표현됐다. 오늘날 복음은 어떤 공식처럼 외워서 전하기도 하지만 그것으로 복음이 다 전해질 수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른바 완성된 계시로서 성경이 주어진 오늘날에도 복음은 특정 교리나 신조에 갇힐 수 없다. 삶으로부터 유리된 개념, 도그마, 용어로서의 복음은 사실 거의 아무런 힘도 갖지 못한다. 복음은 글이기 이전에 말이고 정신이며 삶이어야 한다. 

복음 전도의 방식

신약성경에서 명사 ‘복음’을 목적어로 삼아 그것을 전달하는 활동을 표현하는 동사는 많다. ‘복음 전하다’(εὐαγγελίζομαι, 고후 11:7; 갈 1:11)가 동족목적어를 취하는 경우뿐 아니라, ‘선포하다’(κηρύσσω, 갈 2:2; 살전 2:9), ‘전달하다’(καταγγέλλω, 고전 9:14), ‘말하다’(λαλέω, 살전 2:2), ‘가르치다’(διδάσκω, 행 15:35-36)와 같은 다양한 동사가 복음을 목적어로 취한다. 전도 활동을 표현하기 위해 성경 저자들은 다른 단어도 사용했다. ‘토론하다’(διαλέγομαι)는 유독 사도행전 17장 이후에 많이 나타나는데, 바울이 데살로니가와 아테네, 고린도, 에베소에서 사람들과 복음을 두고 묻고 답하며 대화하는 활동을 했음을 표현한다. ‘설득하다’()는 완료수동태로 쓰일 때 ‘확신하다’라는 의미로 변하는데 이 동사가 전도 상황에서 쓰인 적도 있다. 예루살렘에서 바울을 조우했던 아그립바 왕이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행 26:28)라고 말했을 때, 바울이 단지 어떤 내용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진정성을 담아 복음으로 설득하고자 했음을 표현한다. 

복음 전도자(εὐαγγελιστής)

‘복음 전하다’에서 파생한 또 다른 명사는 ‘복음 전도자’(에우앙겔리스테스)다. 먼저, 사도행전 21:8에서 빌립이 이 직함으로 불렸다(개역개정 성경에는 ‘전도자’라고 기록됨). 빌립은 본래 예루살렘교회가 헬라파 과부들이 구제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봉사를 전담시키고자 선출한 일곱 중 한 명이었다. 그들이 공동체의 재정 출납 또는 구제 사역을 담당하면 사도들은 말씀과 기도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그들의 사역은 교회 내 행정과 구제, 봉사 활동을 넘어섰다. 일곱 중 하나인 스데반은 사도들 못지않게 활발하게 복음 전도 사역을 수행하다가 공회에 고발당해서 죽음을 맞았다. 스데반의 순교로 예루살렘교회가 흩어졌을 때 빌립은 사마리아에 복음을 전했고 큰 성공을 거뒀다. 이후 예루살렘을 방문하고 돌아가던 에디오피아 관리에게 전도한 후 서쪽 해변을 따라 여러 성을 지나면서 복음을 전했다(행 8:40). 이처럼 두드러진 선교적 활동을 통해 빌립은 복음 전도자라는 칭호를 얻게 됐던 것 같다. 

하지만 에베소서 4:11에 언급된 복음 전도자는 조금 다른 뉘앙스를 지닌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교회를 세우기 위해 다섯 가지 직분을 주셨다. 사도와 예언자에 이어 세 번째로 복음 전도자가 지목됐고 네 번째와 다섯 번째는 목사와 교사였다. 이 다섯 단어가 활동(activity)을 지칭하는지 아니면 직분(office)을 지칭하는지에 관해 논쟁이 있다. 만약 전자라면 사도를 역사적 열둘만이 아니라 보냄 받은 모든 사람에게 적용할 수 있을 텐데, 이 단어가 성경에서 사용된 예를 고려하면 그럴 가능성은 낮다. 그렇다면 복음 전도자는 사도처럼 초기 교회에서 인정한 하나의 공적 직분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단어의 또 다른 용례가 디모데후서 4:5에 나온다. 제자이자 후배 목회자 디모데에게 바울이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라고 권면하는 장면이다. 디모데가 부여받은 직무는 ‘에우앙겔리스테스’, 즉 복음 전도의 직무였다. 디모데에게 보낸 첫 번째 편지에서 바울은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 예언을 통하여 받은 것”을 언급했다(딤전 4:14). 에베소서 말씀과 연결 지어 생각하면 이 은사, 부활 예수께서 디모데에게 주신 선물이 바로 복음 전도자로서의 직분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복음을 전하는 이유와 방식

복음은 단순히 구원에 관한 교리를 담은 정보가 아니다. 복음 전도라는 말 속에 선포, 전달처럼 말로 하는 행위가 들어 있긴 하지만 그저 말뿐인 복음 전도는 반(半)-복음적이며 심지어 반(反)-복음적일 수도 있다. 다른 사람에게 그가 모르는 것을 알려 주는 것, 그것은 복음 전도의 표면에 얇게 드러난 모습일 뿐이다. 복음이 복된 이유는 그 소식이 가리키는 실체 안에 그 본질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는 소식은 실제 하나님의 임재와 통치를 경험하고 그 속에 살아갈 때 비로소 의미가 있고 참이 된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이 승천하시던 최후에 그렇게 하라고 명령하셨기에 복음 전도를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자신은 별로 내키지 않지만 하나님이 그렇게도 원하신다고 하니 하나님을 흡족하게 해 드리려고 억지로 전도하는 것이 아니다. 천국에서조차 경쟁해서 다른 사람을 누르고 더 큰 상을 받을 요량으로 전도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복음은 우리 안에 있다. 복음은 우리 앞과 뒤, 옆을 두르고 있다. 복음이 우리 삶을 지배하고 우리는 복음에 풍덩 빠져 있다. 복음이 내가 삶을 살아가는 이유이자 근거다. 우리는 복음의 현실을 매 순간 느끼고 누린다. 그렇게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삶을 다른 사람들에게 내비치고 나누는 것이 곧 복음 전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