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직장 내에서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고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신자들도 있었고 적극적으로 전도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더라도 식사 시간에 밥을 먹기 전에 기도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스스로 신자임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사실상 기도는 거의 유일하게 세상에서 자신이 신자라는 것을 드러내는 종교적 행위다. 아쉽게도 오늘날 이런 신자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신자들의 믿음이 예전에 비해서 약해졌다는 증거일 것이다.
자신들의 신앙을 감추려고 하는 한국 개신교 신자들에 비해서 무슬림들은 과감하게 때로는 지나칠 정도로 자신들의 신앙을 드러낸다. 그들이 먹는 음식이나 옷을 통해 우리는 그들이 무슬림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다. 특히 그들은 정해진 시간이 되면 어디에 있든지 메카를 향해 기도를 한다. 한국 개신교인들이 주로 교회당이나 집에서 기도한다면(세상 사람들에게 잘 보이지 않음), 무슬림들은 어디에서나 기도한다. 이와 같은 차이는 어디에서 비롯될까?
기도의 외적인 행태는 기도자의 내적인 신앙 상태를 나타낸다. 즉 기도는 믿음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칼뱅은 《기독교 강요》에서 기도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기도는 믿음의 주된 실천(exercitium)1이며, 이를 통해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의 선물을 받는다.” 이 구절은 기도에 대한 가장 탁월한 정의 중 하나이며 기도에 관해 오늘날 가장 많이 인용되는 구절이다. 하지만 칼뱅의 가르침 중에서 오늘날 가장 무시된 사항이기도 하다. 일례로 대부분의 현대 조직신학 책들은 기도를 무게 있게 다루지 않는다. 신학이 사변화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로 생각한다.
기도의 대상이신 하나님
신자가 기도하는 대상은 하나님이시다. 따라서 기도는 신학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신학을 ‘theology’라고 하는데, 하나님(theos)과 말(logos)의 합성이다. 어원학적인 측면에서 볼 때 신학, 즉 ‘하나님의 말’은 인간에게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될 수 있고, 하나님에게 하는 인간의 말이 될 수 있다. 신학을 이렇게 규정한다면 하나님은 설교를 통해 인간에게 말씀하시고, 인간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말을 한다. 설교와 더불어 기도는 신학의 중요한 행위다. 기도가 하나님께 말을 하는 행위라면 그 행위는 신학적 행위다.
기도가 신학이라면 신자는 기도를 통해 자신이 기도하는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가시적으로 드러낸다. 즉 기도 모습과 내용을 보면 그가 믿는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인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필자는 어떤 신자가 열심히 기도하는 것을 우연히 듣게 됐다. 호기심에서 무엇을 기도하는가 들어 보니, 소위 기복 신앙이었다. 하나님, 주님, 예수님만 빼면 내용에 있어서 불교 신자의 것이나 별 차이가 없었다. 이런 신앙의 행태는 오늘날 일부 신자에 제한된 것이 아니다. 이름을 대면 누구나 알 만한 대형 교회의 목사는 자기 교회의 수능 기도회에 대해서 말한 적이 있다. 그는 수능 하루 전까지 수백 명의 수험생 어머니들이 밤늦게 나와서 그토록 열심히 기도했는데 수능 바로 다음날 기도하는 어머니들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고 한탄했다. 최소한 3일 정도는 더 나와서 자녀들을 위해서 좀 더 기도하는 참된 경건도 찾기 어려운 것이 오늘날 기도의 모습이다.
기도와 신앙 혹은 신학이 분리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 주는 유명한 경구가 있으니 바로 ‘기도의 법은 신앙의 법’(lex orandi, lex credendi)이다. 일반적으로 로마교회는 전자를 강조하는 경향이 있고, 개신교는 후자를 강조하는 경향이 있는데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 결국 기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누구에게 혹은 어떤 분에게 기도하는가다. 기도 생활이 정도에서 벗어나는 최초의 이유는 나의 기도를 받는 분이 어떤 분인지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
저들과 같이 기도하지 말라!
예수님은 산상수훈을 통해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시기 전에 제자들이 하지 말아야 할 기도를 먼저 알려 주셨다. 하나는 외식하는 자들이 기도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방인들이 기도하는 것이다. 외식하는 자들은 회당과 거리에서 기도했다. 그들이 그렇게 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그 기도의 주된 목적이 사람에게 보이기 위함이었다. 외식하는 자들은 자신의 기도를 통해 자신이 얼마나 의로운지 보여 주기를 원했다. 그들이 그렇게 기도한 또 다른 이유는 하나님의 성품을 몰랐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은밀한 중에 보시는” 분이시라는 점을 분명히 하셨다. 만약 하나님이 은밀한 중에 보시는 분이라는 것을 정말로 믿는다면 회당과 거리에서 기도할 것이 아니라 골방에서 기도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주의할 것이 있다. 예수님은 지금 사람이 보는 앞에서는 절대 기도하지 말아야 한다거나 무조건 골방에서만 기도해야 한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만약에 그렇다면 대표기도가 예배 시간에 시행돼서는 안 될 것이다. 예수님의 의도는 분명하다. 기도나 구제나 금식 등 우리의 종교적 행위의 의도가 사람에게 보이는 것이 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어떤 부흥사는 자신이 40일 금식 기도를 세 번 했다는 것을 표기한 명함을 가지고 다니기도 한다. 그들은 이미 자기 상을 받았기 때문에, 즉 사람들에게 보여 주기 위해서 기도했는데 그들이 보았으니, 더 이상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상도 받지 못한다.
오늘날 많은 목회자가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신경을 많이 쓴다. 그렇게 되면 외식에 빠지기 쉽다. 외식하는 자들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얼마나 많이, 얼마나 심하게 (회칠한 무덤, 독사의 자식) 질책하셨는지를 깊이 생각해야 한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정말로 은밀한 중에 보는 분이심을 확실히 믿는다면 ‘골방 신학’을 회복해야 한다.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오직 하나님께 기도하고, 오직 하나님께 토로하는 목사가 돼야 한다. 이전과 달리 목회 환경이 점차 목사에게 불리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럴 때 목사들이 골방에서 벗어나 사람을 의지하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단호하게 물리치고,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께로 달려가야 한다.
사람에게 보여 주는 기도는 교회 안에서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 요즘에는 특히 기도회라는 이름으로 정치 집회 형식으로 종종 등장한다. 이전에는 이런 식의 기도회가 거의 없었을 뿐 아니라 상당히 금기시됐지만 요즘에는 아예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런 기도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참가한 사람의 숫자다. 기도의 내용이나 형식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사람이 많이 모여 언론의 관심 대상이 되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신자들이 주의해야 할 또 다른 형태의 기도는 이방인들의 기도다. 이 기도를 예수님은 중언부언하는 기도라고 설명한다. 이방인들이 기도 시간에 중언부언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말을 많이 해야 기도를 들으실 줄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단지 긴 시간의 기도를 금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이 금하신 것은 길게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길게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더 잘 들어주실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기도하는 것”이다. 이 둘의 차이가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참된 기도를 이해함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이방인들이 길게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더 잘 들어주실 것이라고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기도하는 자의 정성이 기도 응답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이방인들의 생각을 가장 잘 나타낸 경구가 바로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전통적으로 한국 사람들은 자신의 정성을 기도에 많이 쏟았다. 새벽 일찍 기도를 하기도 하고, 아주 영험이 있는 먼 장소를 찾기도 하고, 오랫동안 금식을 하기도 했다. 그들이 그런 식으로 기도한 이유는 자신들의 정성이 신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이방인들의 기도를 본받지 말라고 경고하면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상기시킨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기 전에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는 분이시다. 이것은 기도를 이해함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교리적 지식이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 아셔서 우리가 구하기도 전에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아신다는 것을 정말로 믿는다면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 사실 이것은 기도에 있어서 해결하기 대단히 어려운 질문이다. 적어도 확실한 것은 기도 응답을 받기 위해 우리의 간구 사항을 하나님께 구구절절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다.
이방인들의 신과 기독교의 하나님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것은 기도에서 가장 분명하게 나타나야 한다.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다르면 기도의 모습도 달라야 한다. 아쉽게도 이방인의 기도는 교회 안에서 여러 방식으로 나타난다. 정성을 많이 바쳐야 하나님께서 기도를 더 잘 들으신다는 생각이 의외로 많은 신자의 생각을 지배하고 있다. 기도할 때 정성을 다해야 한다는 말과 정성을 다해야 기도가 더 잘 응답된다는 말은 전혀 다른 말이다. 이것을 구분하지 못하면 신자는 쉽게 비신자처럼 기도하게 된다.
무엇을 구할 것인가?
예수님은 하지 말아야 할 기도에 대해서 제법 길게 설명한 후에 신자들이 해야 할 참된 기도인 주기도문을 가르치셨다. 주기도문이야말로 기도에 대한 가장 정확한 지침이다. 오늘날 많은 신자들이 기도의 실천에 있어서 부족하거나 그릇된 모습을 보이는 이유는 주기도문이라는 지침 없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기도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올바른 기도를 하고자 하는 이들은 항상 주기도문으로 돌아가야 한다. 본고의 목적이 주기도문을 해설하는 것은 아니지만 몇 가지 중요한 점을 짚어 보고자 한다.
주기도문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 하나는 하나님께 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에 대한 것이다. 주기도문의 절반은 아버지의 이름, 아버지의 뜻, 아버지의 나라를 위한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위선자들의 기도나 이방인들의 기도와 구별되는 참된 기도의 표지다. 거짓된 기도는 궁극적으로 인간의 필요만을 생각하고, 참된 기도는 하나님의 이름과 뜻과 나라를 가장 먼저 생각한다.
타락 이후 인간의 자기중심성은 거듭난 신자가 됐을 때에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이것은 기도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신자들은 기도를 하면서 기도를 들으시는 분에게 관심을 가지기보다는 기도하는 자신에게 관심을 더 가진다. 그러다 보니 기도할 때 전부 자기의 필요를 열거할 뿐이다. 그러나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해 보자. 기도를 하는 인간은 누가 봐도 죄인이고, 기도를 들으시는 분은 가장 의로우신 분인데 그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이 점에 있어서 우리는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눅 18:9-14)를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두 사람은 동일한 장소, 즉 성전에서 기도했다. 하지만 기도의 내용은 전혀 달랐다. 바리새인은 십일조나 금식 등 자신의 여러 행위들을 통해 자신의 의로움을 증명하려고 했다. 하지만 세리는 가슴을 치며 자신의 죄인 됨을 고백했다. 하나님은 세리를 의롭다 하시고 그의 기도를 들으셨다. 이 점에서 우리는 다윗의 기도를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시 51:17).
물론 기도는 우리의 필요를 하나님께 구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점에서도 우리는 주의할 것이 있다. 죄인된 인간은 무엇을 하나님께 구해야 하는지 제대로 알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성년 자녀들은 생선이 아니라 뱀을 구할 수 있고, 알이 아니라 전갈을 구할 수도 있다(눅 11:11-13). 만약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라는 기도를 모른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신자들은 일주일이나 한 달 양식을 위해서 기도할 것이다. 주기도문을 모르면 결국 신자도 비신자와 똑같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를 위해서 기도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정말 우리의 필요를 다 아시고 먹고 마시는 문제를 해결해 주신다는 것을 확실하게 믿는다면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기도해야 할까? 아마 처음에는 기도할 것이 별로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먹고 마시는 것을 구하는 것은 이방인들이나 하는 일이다. 하지만 우리 아버지는 그 모든 것들이 우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신다(마 6:31-34). 따라서 우리가 구해야 할 것은 아버지의 나라와 아버지의 의다. 하나님이 누구신지에 대한 믿음이 분명해질수록 신자들은 세상적인 것들보다는 하나님 나라를 구하게 된다.
어떻게 기도할 것인가?
이제 기도의 구체적인 형식을 살펴보기로 하자. 기도의 형식과 관련해 가장 중요한 것은 기도 시간의 정기적 확보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정기적인 기도가 신앙 공동체 속에서 시행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다니엘은 하루 세 번 예루살렘을 향해 창문을 열어 두고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단 6:10). 하루 세 번 기도하는 것은 오랫동안 유대인들의 전통이 됐다. 바울 사도 역시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가르쳤다(살전 5:17). 이것을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겠지만 정기적인 기도를 중단하지 말라고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기도 시간과 관련해 시편 기자는 이렇게 노래했다. “주의 의로운 규례들로 말미암아 내가 하루 일곱 번씩 주를 찬양하나이다”(시 119:164). 물론 이 일곱의 의미는 많이 혹은 충분히 기도한다는 의미를 내포하지만 문자적인 일곱을 굳이 배제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실제로 이 시편에 근거해 중세 수도원에서는 하루 일곱 번 기도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성무일도(officium divinum)라는 기도의 시간이 제정되기도 했다.
종교개혁으로 말미암아 교리의 개혁뿐만 아니라 기도의 개혁도 이뤄졌다. 가장 큰 변화는 라틴어로 된 기도가 폐지되고 모국어 기도가 도입됐다는 것이다. 종교개혁 이전에 회중은 기도의 내용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기도의 내용을 아는 것이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사제들이 교회 전통에 따른 기도문에 근거해 바른 형식에 따라 기도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회중은 사제들이 라틴어로 제대로 기도하는지조차도 분별할 수 없었다.
종교개혁을 받아들인 잉글랜드 교회는 모국어 기도를 받아들였지만 기존의 로마교회 기도문들은 거의 그대로 사용했다. 성인들이나 죽은 자들을 위한 기도와 같은 비성경적인 기도문만 제거됐을 뿐이다. 잉글랜드 교회는 로마 가톨릭교회에 맞서 잉글랜드 내의 교회 일치를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에 모든 교회의 기도문을 통일시키려고 했다. 그리하여 작성된 것이 《공동 기도서》다. 기도문을 포함해 잉글랜드 교회의 주요 예식들을 모두 모아 둔 예식문이다.
잉글랜드 교회의 《공동 기도서》는 로마교회의 누룩을 제거했다는 점에서는 훌륭한 기도서였다. 무엇보다 라틴어가 아니라 영어로 작성돼 신자들이 쉽게 읽을 수 있었다. 더 나아가 여기에 담긴 기도문은 거의 대부분 시편이나 다른 성경에 나오는 기도문이다. 내용만 따지면 크게 문제될 것이 없었고 이전의 로마교회의 기도문에 비해서는 훨씬 개혁된 기도문이었다. 하지만 이 기도문이 각 교회에 획일성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됐다. 이 점에 대해서 가장 문제를 제기한 사람들이 청교도였다.
일반적으로 청교도들이 《공동 기도서》 자체를 반대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 견해는 수정이 좀 필요하다. 청교도들이 주로 반대한 것은 공동 기도서의 획일적 사용이었다. 비록 《공동 기도서》가 잘 만들어진 기도서이기는 하지만 신자들은 성경에 따라 더 나은 기도를 할 수 있는 자유를 주님으로부터 받았다고 생각했다. 청교도들은 신앙과 예배에 있어서는 오직 성경만 신자의 양심을 구속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에 국가나 교회가 기도문을 개교회에 강제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 결과 청교도들은 마음에서 떠오르는 대로 기도하는 즉시적 기도를 선호했다.
청교도적인 신앙을 전수받은 한국 교회는 통성기도와 같은 즉시적 기도가 보편화됐다. 예배 시간에 기도문 없이 대표 기도하는 경우도 많다. 만약 한국 교회 교인들에게 성공회처럼 기도문을 가지고 기도하라고 하면 그들은 매우 어색하게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즉시적 기도는 스스로 기도할 수 있는 성도들이 많을 때에는 별 문제가 없지만 명목상의 신자들이 늘어날 경우에는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요즘 수련회에 참석해 보면 열성적으로 기도하는 소수와 그냥 가만히 눈 감고 있는 다수로 구분된 모습을 자주 본다. 이전과 달리 이제 성도들에게 유익한 기도문이 필요한 시기가 됐을지 모른다.
결론: 지침이 사라진 기도
잉글랜드 혁명 기간 동안 청교도들은 교회를 개혁하면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작성했을 뿐 아니라 이 신앙고백에 근거해 The Directory for the Public Worship(공예배지침)도 작성함으로 예배와 기도의 개혁도 도모했다. 이 예식서는 《공동 기도서》가 강제한 획일적인 형식이 아니라 자유의 남용이나 오용을 제한하는 지침(directory)이었다. 이 지침들은 개체교회들이 그대로 따라하도록 작성되지는 않았다. 청교도들은 기도에 있어서 신자의 자유가 가져올 위험성을 충분히 인식했다. 따라서 획일성과 방종 사이에 중도적 균형(즉, 지침)이 요구됐다.
청교도들에게 즉시적 기도가 가능했던 이유는 충분히 신학적으로 성숙돼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기도할 때 자기의 개인적인 감정에 휩쓸려 기도하지 않았다. 그들은 말씀을 철저히 훈련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기도하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아쉽게도 오늘날 한국 교회 특히 장로교회는 ‘지침‘의 전통이 사라졌다. 그 결과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기도하는 문화가 계속 뿌리를 내리고 있다. 무엇보다 기도가 말씀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기도를 위한 좋은 지침서들이 계속 발간될 필요가 있다.
주
1) 수련이라고 번역할 수도 있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