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인 그루뎀의 《조직신학》(Systematic Theology, 1994) 초판이 출간된 지 25년이 지난 2020년 개정증보판이 출간됐다. 그로부터 4년 후인 2024년에 한글로 완역돼 우리 손에 들려지게 됐다. 많은 분의 수고로 인해 한층 업그레이드된 그루뎀의 조직신학을 맛보게 된 것이다. 

아무 신학이나 막 먹으면 안 된다. 그러다가 배탈이 난다. 검증된 신학을 먹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그루뎀의 《조직신학》은 25년 동안 전 세계적으로 ‘검증’된 조직신학 교본이다. 고든콘웰신학교, 리폼드신학교, 탈봇신학교, 트리니티복음주의신학교, 서던뱁티스트신학교, 웨스트민스터신학교 등 수많은 북미 복음주의권·개혁주의권 신학교에서 이미 조직신학 교재로 활발히 사용되고 있는 검증된 조직신학 교본이다. 

한국어,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아랍어, 중국어, 네팔어, 러시아, 루마니아어 등 전 세계 19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 출간된 책이기도 하다. 이런 놀라운 기록은 그루뎀의 《조직신학》이 얼마나 전 세계적으로 검증된 책이며 얼마나 마음껏 먹어도 큰 배탈 없이 안전한 책인지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성경적 교리: 가장 큰 미덕

조직신학 책은 저마다 결이 다소 다르다. 역사신학적으로 접근해 교회 역사 속에서 벌어졌던 주요 교리 논쟁들을 중심으로 조직신학을 전개해 나가는 책이 있는 반면, 철학적으로 접근해 형이상학적 틀이나 철학적 체계 위에서 조직신학을 전개해 나가는 책도 있다. 때로는 실천신학적으로 접근해 교리와 삶 사이에서 밀접한 접점을 찾으려고 시도하는 조직신학 책도 있다. 이 모든 방식은 저마다의 미덕과 유익이 있다.

그렇다면 그루뎀의 《조직신학》이 가진 가장 큰 미덕은 무엇일까? 그루뎀은 조직신학을 전개함에 있어 역사적, 철학적, 실천적으로 접근하기 전에 먼저 ‘성경적으로’ 접근하기 위해 부단히 애쓴다. 이는 매우 의도적인 접근 방식인데 성경으로만 교리를 풀어내겠다는 그루뎀의 강렬한 의지가 책 곳곳에 걸쳐 매우 뚜렷하게 드러난다. 

예를 들면 어떤 특정한 교리를 설명하기 전 가장 먼저 ‘설명과 성경적 기초’라는 영역을 통해 관련된 성경 구절을 거의 대부분 인용하면서 얼마나 이 교리가 성경에 기초한 교리인지를 철저히 드러내고자 부단히 노력한다. 

혹자는 조직신학이라는 학문 자체를 비판하기도 하는데, 그 비판의 주요 이유가 바로 조직신학은 인간이 만든 교리에 대한 향연일 뿐이고 성경 자체가 말하는 바와는 거리가 먼 사변적 고안물이라는 것이다. 그루뎀의 《조직신학》은 이런 비판이 얼마나 잘못됐는지를 철저히 변증할 수 있는 책이다. 그루뎀은 성경적이지 않은 교리는 버린다. 오히려 성경적인 교리만 교리로 삼는다. 

그루뎀이 성경적 교리를 만들어 가는 방식도 주목할 만하다. 특정 교리를 설명할 때 관련 성경 구절을 단순히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각각의 성경 구절이 과연 어떤 교리적 국면을 터치하고 있는지를 정확히 지적하며 성경으로 교리를 풀어 나간다. 

칭의 교리를 예로 들어 보자. 그루뎀은 칭의의 성경적 기초를 설명할 때 논제별로 구별한다. “칭의는 하나님에 의한 법적 선언을 포함한다”(2권, p. 160),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이 보시기에 의롭다고 선언하신다”(2권, p. 163),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에게 전가하기 때문에 우리가 의롭다고 선언하실 수 있다”(2권, p. 165), “전통적인 로마 가톨릭 칭의론과의 차이”(2권, p. 167) 등이다. 그 후에 그 논제에 합당한 성경 구절을 연결 지으며 설명하는 방식을 취한다. 이는 매우 효과적인 교육 방식인데, 그 이유는 특정 교리의 성경적 기초와 더불어 그 성경적 기초가 선사하는 교리적 조망까지 한눈에 들어오게 만드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신학의 본질이다. 그루뎀의 《조직신학》이 100만 독자에게 사랑을 받았던 이유는 바로 이런 본질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본질은 통한다. 성경적인 본질에 충실한 교리 책은 우리 모두의 고개를 끄덕거리게 만들 만큼 설득력이 있다. 그루뎀의 《조직신학》이 주는 설득력이 바로 이 성경적 본질로부터 오는 것이다. 

무엇이 개정·증보됐는가?

개혁된 교회는 계속 개혁돼야 하고, 개혁된 신학도 계속 개혁돼야 한다. 조직신학이란 학문도 마찬가지다. 조직신학도 지속적으로 개정과 증보가 필요하다. 그 이유는 신학은 시대에 따라, 맥락에 따라, 사안에 따라, 흐름에 따라 계속 다양한 응전을 맞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조직신학이란 학문은 신학적 변화에 기민하게 반응하여 그 변화의 건강함에 대해 신학적 분별을 해야 하고 신학적 결정을 지속적으로 해 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신학도 고인물이 된다. 고인물의 문제는 곧 썩는다는 점이다.

그루뎀의 《조직신학》 초판이 출간된 지 벌써 30년의 세월이 흘렀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고인물 속에서 썩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개정·증보판을 통해 그루뎀의 《조직신학》에 새로운 물이 공급됐다. 고전이 주는 안정감 위에 신선함이 더해진 셈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개정·증보됐는가? 조직신학은 크게 7가지의 각론이 존재하는데 성경론(서론), 신론, 인간론, 기독론, 구원론, 교회론, 종말론이 바로 그것이다. 이번 개정·증보판에서는 조직신학의 이 모든 영역이 한층 더 업그레이드됐다. 성경론의 영역에서는 모든 성경 인용문을 RSV에서 ESV로 바꿨으며, 성경의 무오성과 관련된 까다로운 난제 본문들에 대해 추가적으로 논의했다(5장). 성경의 명료성에 대한 논의도 개정·증보했다(6장). 신론의 영역에서는 하나님의 무시간적 영원성(11장),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서의 성부와 성자의 관계(14장) 등을 추가로 논의했다. 신론의 영역 중 하나님의 창조 사역을 다루는 부분이 있는데 이 부분에서 괄목할 만한 개정·증보가 이뤄졌다. 예를 들면 유신 진화론에 대한 비판, 지적 설계와 지구의 나이에 대한 최근 논의(15장) 등이 추가로 증보됐다. 기독론의 영역에서는 형벌 대속 이론에 대한 최근 비판에 반론을 가하는 장이 증보됐다(27장). 구원론의 영역에서는 ‘값없는 은혜’ 개념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35장), ‘바울에 대한 새관점’(N.P.P.)에 대한 비판적 고찰(36장) 등을 증보했다. 교회론의 영역에서는 구도자 친화적 교회에 대한 논의(44장), 교회 안에서 여성의 역할에 대한 논의(47장), 현대 예배 음악에 대한 논의(51장) 등이 개정·증보됐다. 종말론의 영역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주후 70년에 이미 오셨다는 과거주의 관점을 비판하는 내용이 증보됐다(54장).

이처럼 그루뎀의 《조직신학》 개정·증보판은 현대적 논의들과도 적극적으로 대화·소통하는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 주기 때문에 과거지향적 방향성이 아니라 오히려 미래지향적 방향성을 취하는 진취적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조직신학이라는 학문은 그 본연의 속성상 자칫 잘못하면 과거 속에 갇혀 과거로 한없이 함몰될 확률이 높아지는데, 그런 측면에서 그루뎀의 《조직신학》은 과거로부터 발돋움하여 미래를 향해 뛰어가는 역동성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특히 그루뎀이 서문에서 밝힌 것처럼 《조직신학》 개정·증보판은 전 세계 독자들이 보내 준 이메일 질문과 25년 동안 신학교에서 조직신학을 가르치면서 받았던 수많은 질문을 ‘다수 반영’해 수정함으로써 마치 저자와 독자가 유기적으로 합작한 느낌을 자아낸다. 

송영(doxology)의 신학

처음 그루뎀의 《조직신학》을 접했을 때의 충격이 아직도 기억에 선하다. 분명 조직신학 책인데 각 챕터의 마지막이 찬송으로 마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처럼 그루뎀의 《조직신학》은 신학 함(doing theology)의 본연의 의미를 한껏 고취시킨다. 

신학을 한다는 것은 지적 허영심만을 채우는 작업이 아니요, 하나님을 차가운 개구리 해부대 위에 올려놓고 마구잡이로 난도질하는 교만 섞인 작업도 아니며, 남을 죽이고 정죄하기 위해 서슬 퍼런 칼날을 갈고 닦는 작업 또한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신학을 하는 이유는 절대주권을 가진 무한한 하나님 앞에서 피조물이 소유하고 있는 연약함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무릎 꿇어 한량없는 은혜를 구하기 위함이며,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시는 계시의 범주 내에서만 겸비하게 하나님을 인식하며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즐거움을 누리기 위함이다. 다시 말해, 신학을 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알고, 그 앎에 근거해 그분 앞에 무릎 꿇고 그분께만 경배하고 예배하기 위함이다. 그루뎀의 《조직신학》이 바로 그 역할을 모범적으로 하고 있다.

특히 개정·증보판은 각 장 마지막에 수록된 찬송가와 더불어 현대 찬양곡까지 추가시켰다. 기존에 수락된 찬송가는 클래식한 분위기가 더해진 영광스럽고도 장엄한 찬송가였다면, 추가로 소개되는 현대 찬양곡은 젊은이들의 눈높이와 마음 높이에 맞춰 좀 더 현대적인 언어로 하나님께 송영을 올려드리는 데 초점이 맞춰진 곡들로 꾸며져 있다.

혹자는 조직신학이라는 학문은 송영과 가장 거리가 먼 학문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참된 송영, 바른 송영을 위해서라면 조직신학은 필수 중 필수다. 그 이유는 하나님을 바르게 알지 못하면 절대로 참되고 바른 송영이 창출될 수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만약 하나님을 바르게 안다면 그 바른 앎이 우리의 전인(全人)을 찬양의 자리로 이끌게 된다. 하나님의 영광스러움과 하나님의 엄위하심을 제대로 깨닫는 사람은 찬양하지 않을 수가 없다. 송영하지 않을 수 없다. 돌들도 하나님 앞에서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다. 

바른 송영을 위해서라면 바른 조직신학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런 관계성이 몸소 체화돼 글로 피력된 결과물이 바로 그루뎀의 《조직신학》이다. 예배하는 자리로 우리를 이끄는 신학이 가장 바른 신학이다.

다양성과 통일성

신학적 색깔은 매우 다채롭고 다양하다. 물론 정통 신학이라는 ‘통일성’이 철저히 담보돼 있기만 한다면 그 통일성 위에서 다양성은 아름답고 찬란하게 꽃을 피울 수 있다.

그루뎀의 《조직신학》도 신학적 다양성 가운데 존재한다. 그루뎀은 기본적으로 칼뱅주의에 입각한 침례교 계통의 복음주의 신학자이므로 여타 다른 교단들이 추구하는 신학과 다소 결이 다른 신학을 전개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장로교단이 인정하는 유아 세례를 반대한다든지, 역사적 전천년설을 진리의 형태로 가져간다든지, 혹은 성령의 은사에 대해서 다소 열린 자세로 접근하는 모습은 확실히 그루뎀의 신학이 갖고 있는 신학적 다양성의 맥락에서 읽힐 수 있는 부분들이다.

그러나 그루뎀의 이런 다양성은 여전히 성경적 원리 위에 철저히 천착해 있고 그 원리 위에서 신학적 논리를 펴 나가기 때문에 그 다양성이 일탈로 느껴진다기보다는 오히려 통일성 위에서 다채로운 존재를 뽐내는 다양성으로 아름답게 느껴지기도 한다.

신학의 근본 토대인 삼위일체 하나님도 성부·성자·성령 세 위격이라는 다양성과 한 본성과 본체라는 통일성으로 존재해 계신 것처럼, 조직신학이라는 학문도 성경적인 통일성 위에서 얼마든지 다양성의 다채로움을 뽐낼 수 있다. 그루뎀의 《조직신학》은 이런 다양성과 통일성의 유기적 조화로움을 맘껏 꾀하고 있다.

나가며

조직신학은 늘 개정·증보돼야 한다. 물론 바르고 참되게 개정·증보돼야 한다. 바르고 참되게 개정·증보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그루뎀의 《조직신학》 개정·증보판이 모범적으로 보여 준다. 개정·증보된 성경적 조직신학을 통해 우리의 죄악 된 영혼도 바른 말씀과 바른 교리로 개정·중보되길 소망한다. 이 일을 위해 그루뎀의 《조직신학》이 귀하게 사용될 줄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