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권의 종결부, 특별한 왕적 시편
시편의 배열 자체가 신학적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 시편 1권의 처음과 끝에 배치된 시편들도 예외가 아니다.
1 시편 1편은 “복 있는 사람”()으로 시작하여 토라 중심의 경건을 제시한다. 시편 2편은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로 시작하여 기름 부음 받은 왕()과 그의 통치를 노래한다. 이 두 시편은 전체 시편집의 서론이지만, 또한 시편 1권의 신학적 문을 여는 열쇠이기도 하다. 토라(1편)와 왕권(2편)이라는 두 기둥 위에 1권 전체가 서 있다. 그렇다면 시편 1권은 어떻게 마무리되는가? 시편 41편은 1권의 마지막 시편으로, 13절의 송영(“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영원부터 영원까지 찬송할지어다 아멘 아멘”)은 1권 전체를 찬양으로 갈무리한다. 이 송영은 2권 끝의 72편, 3권 끝의 89편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나는 편집적 표지다.
2 그러나 41편을 다른 권의 종결 시편들과 비교하면 한 가지 문제가 드러난다. 시편 72편은 솔로몬을 위한 장엄한 왕적 시편이며, 89편은 다윗 언약의 위기를 다루는 긴 탄식시다. 이에 비해 41편은 상대적으로 짧고, 왕적 특징이 명확하지도 않다.
제럴드 윌슨은 이 문제에 주목하여, 시편 41편을 다른 “가장자리 시편들”(marginal psalms)과 함께 왕적 시편으로 분류했다.
3 그의 관찰에 따르면, 41:1의 “가난한 자를 돌보는 자가 복이 있도다”는 표현은 고대 근동에서 널리 알려진 왕의 책임, 즉 과부와 고아, 가난한 자를 보호하는 의무를 가리킨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만으로는 2권과 3권의 종결 시편들이 갖는 무게감에 비하기가 어렵다.
여기서 우리는 40편과 41편을 함께 고려해야 할 필요성을 발견한다. 40편이 왕적 시편인가에 대한 학계의 논쟁이 있지만, 40편과 41편을 함께 읽을 때 비로소 1권 종결부의 지닌 왕적 특징이 온전히 드러난다. 두 시편을 하나로 묶는 접착제는 바로 “가난한 자”라는 신학적 주제다. 40편은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나”(40:17)로 끝나고, 41편은 “가난한 자를 돌보는 자가 복이 있도다”(41:1)로 시작한다. ‘왕이 스스로를 가난한 자로 낮추는 것’(40편)과 ‘가난한 자를 돌봄’(41편)이라는 두 측면이 하나의 신학적 비전을 형성하는 것이다.
이 연속 기고에서 우리는 8편에서 창조 신학과 고난의 관계를, 19편에서 토라 시편의 의미를, 31편에서 전인적 치유를 살펴보았다. 이제 1권의 정점인 40-41편에 이르러 우리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인 구원의 문제와 마주한다. 왕조차 어떻게 구원받는가? 제사와 의식 외에 구원에 이르는 또 다른 길은 무엇인가? 시편 1권은 이 질문에 대해 놀라운 답을 제시한다.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왕이라도 가장 낮은 자리의 가난한 자와 같이 돼야 하며, 동시에 가난한 자를 돌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1권이 토라와 왕권이라는 두 기둥 사이에서 발견한 구원의 길이다.
‘가난한 자’, 두 시편의 경첩(hinge)
시편 40편과 41편을 각각 독립된 시편으로 읽을 때와 하나의 연결된 단위로 읽을 때, 그 의미는 현저히 달라진다. 두 시편을 하나로 묶는 문학적 장치는 바로 “가난한 자”를 지칭하는 히브리어 어휘군이다.
시편 40편은 복잡한 구조를 갖는다. 1-11절은 과거의 구원에 대한 감사로, 시편 기자는 진흙 구덩이와 수렁에서 건짐받은 경험을 회상한다(2절). 이 구원의 경험은 찬양으로 이어지며(3-5절), 특별히 6-8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제사가 아니라 순종임을 선포한다. 그러나 12절부터 분위기는 급격히 전환된다. 감사는 탄식으로, 찬양은 간구로 바뀐다. “나의 죄악이 나를 덮쳐서”라는 고백(12절)과 함께 시편 기자는 다시 위기에 처한 자신을 발견한다. 그리고 마지막 17절에서 그는 놀랍게도 자신을 이렇게 묘사한다: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나”. 여기서 사용된 (아니)와 (에비온)은 시편에서 “가난한 자”, “궁핍한 자”를 지칭하는 대표적 용어다.
4 이 두 단어는 종종 쌍을 이루어 나타나며(삼상 2:8; 욥 5:16; 시 72:13; 82:4; 113:7 등), 경제적 빈곤뿐 아니라 사회적 무력함과 영적 겸손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40편의 화자가 왕이라면 이것은 놀라운 자기 규정이다. 왕이 스스로를 “가난한 자”로 부르는 것은 단순한 수사적 겸손을 넘어서는 신학적 진술이다.
시편 41편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한다. 1절은 복 선언(beatitude)으로 시작하는데, “가난한 자를 돌보는 자가 복이 있도다”가 그것이다.
여기서 (달)은 “약한 자”, “비천한 자”를 의미한다.
5 크레이기가 지적했듯이, ‘에비온’과 ‘달’은 히브리 성경에서 자주 함께 사용되는 동의적 병행어이기 때문에,
6 40:18의 ‘아니’, ‘에비온’ 41:1의 ‘달’은 사실상 동일한 대상인 가난한 자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두 시편 사이의 문학적 연결 고리는 명확하다.
40:17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나” - 왕의 자기 정체성
41:1 “가난한 자를 돌보는 자가 복이 있도다” - 왕의 공로 진술
40편은 “가난한 자가 되는 것”(as the poor)으로 마무리되고, 41편은 “가난한 자를 돌보는 것”(for the poor)으로 시작한다. 이 전환이 두 시편을 하나의 왕적 고백으로, 하나의 완결된 신학적 진술로 통합한다. 40편에서 자신을 가난한 자로 낮춘 왕은, 41편에서 가난한 자를 돌본 공로를 근거로 하나님께 구원을 간청한다. 41편의 나머지 부분(4-12절)은 병상에 누운 왕의 탄식과 친구의 배신,
7 그리고 하나님께 대한 신뢰 고백으로 채워져 있다.
“가난한 자”라는 주제는 단순히 두 시편을 연결하는 문학적 장치를 넘어선다. 이것은 1권 종결부가 제시하는 새로운 왕권 신학의 핵심이다. 왕조차도, 아니, 왕이야말로 하나님 앞에서 가난한 자처럼 겸손해야 하며, 동시에 가난한 자를 돌보아야 한다. 이 이중적 요구가 시편 40-41편을 관통하는 신학적 경첩(hinge)이다.
시편 40-41편에 나타난 “가난한 자의 신학”은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고대 근동의 오래된 왕권 이데올로기로부터 점진적으로 발전해 온 히브리 신학적 전통의 한 지점이다. 이 발전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 먼저 시편 9/10편과의 비교가 필요하다. 시편 9/10편(칠십인역에서는 하나의 시)은 가난한 자를 돌보는 왕의 의무를 노래한다. 9편 9절은 “여호와는 압제당하는 자의 요새시오”라고 선포하며, 10편 18절은 “고아()와 압제당하는 자()를 위하여 심판하시리니”라고 말한다. 여기서 (다크, “억압받는 자”)와 (야톰, “고아”)은 왕이 보호해야 할 사회적 약자들이다.
이것은 고대 근동 전역에서 발견되는 보편적 왕권 이데올로기를 반영한다. 예를 들어, 함무라비 법전 서문에서 함무라비 왕은 자신이 “과부와 고아를 보호하기 위해” 법을 제정했다고 선언하고, 우가릿 문헌에서도 이상적 왕 케렛(Keret)은 “고아의 아버지, 과부의 남편”으로 묘사된다. 그러므로 시편 9-10편에서 가난한 자를 돌보는 것은 왕의 의무이지만, 그것은 우주적 질서(cosmic order)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왕이 정의를 실현하지 못하면 세계는 혼돈(chaos)에 빠진다. 따라서 왕의 선행은 사회 질서 유지라는 실용적 목적을 갖는다. 이것이 “가난한 자의 신학”의 원시적, 고대 근동적 형태다.
그런데 시편 40-41편에서는 질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가난한 자를 돌보는 것은 더 이상 단순히 왕의 의무 정도가 아니다. 그것은 왕 자신의 구원을 위한 조건이 된다. 더 나아가 시편 40:17에서 왕은 스스로를 가난한 자로 정의한다. 이것은 외적 행위(가난한 자 돌봄)와 내적 태도(자기 겸비)가 결합된 새로운 차원의 신학이다.
제사 신학을 다루는 시편 40:6-8은 이러한 신학적 전환의 핵심과 맞닿아 있다.
“주께서 제사(제바흐, 화목제)와 예물(민하, 소제)을 기뻐하지 아니하시고 나의 귀를 통하여 내게 말씀하셨나이다 주께서 번제(올라, 번제)와 속죄제(하타아, 속죄제)를 요구하지 아니하시나이다 그 때에 내가 말하기를 내가 왔나이다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되었나이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거워하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
여기 나열된 제사 용어들은 레위기 1-7장의 제사 규정과 직접적으로 대응한다. 레위기에서는 번제(올라, 레 1장; 6:1-6), 소제(민하, 레 2장; 6:7-16), 화목제(제바흐, 레 3장; 7:11-21, 28-34), 속죄제(하타아, 레 4:1-5:13; 6:17-23)의 순서로 제사들이 제시된다. 시편 40:6의 목록은 시편 기자가 레위기에 등장하는 형식화된 제사제도를 알고 있었다는 증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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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중요한 것은 시편 기자가 이 제사들을 “거부”하는가 하는 점이다. 모빙켈은 이 구절을 “제사의 원칙적 정죄”로 해석하는 시각을 비판했다.9 그는 시편 기자가 제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내적 준비 없는 형식적 제사를 비판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6절의 “나의 귀를 통하여 내게 말씀하셨나이다”는 직역하면 “귀를 뚫으셨나이다”인데, 이것은 출애굽기 21:6의 평생 봉직하기로 한 종의 귀를 뚫는 의식을 연상시킨다. 즉, 귀를 뚫는다는 것은 평생 순종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시편 기자는 제사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제사보다 순종이 우선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러한 신학은 예언서 전통과도 일치한다. 이사야 1:10-17은 시편 40-41편과 놀라울 정도로 유사한 주제적 흐름을 보여 준다.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사 1:10-11).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한 행실을 버리며 …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사 1:16-17).
이사야의 흐름은 다음과 같다.
(1) 제사 거부 → (2) 죄악 지적 → (3) 하나님의 부재 → (4) 구원의 길 제시(정의, 약자 보호).
시편 40-41편도 동일한 구조를 따른다.
(1) 제사의 상대화(40:6-8) → (2) 죄 고백(40:12) → (3) 구원 간청(40:13-16) → (4) 가난한 자로 낮아짐(40:17), 가난한 자를 돌봄(41:1-3).
이러한 주제적 평행은 두 본문이 유사한 시대적 배경을 공유함을 시사한다. 이렇듯, 시편 40-41편의 가장 독특한 특징은 왕의 이중적 정체성이다. 40편 후반부의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나”라는 고백은, 만약 화자가 왕이라면, 자기 겸비의 극치라 할 수 있다. 왕은 사회의 정점에 있는 인물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가장 낮은 자리, 가난한 자의 위치를 취한다. 그런데 바로 다음 구절인 41:1에서 동일한 화자는 “가난한 자를 돌보는 자가 복이 있도다”라고 선언하며, 자신이 가난한 자를 돌본 순종의 공로를 암시한다. 41:4에서의 “나의 죄를 고치소서” 고백은 41:1-3의 복 선언을 근거로 한 구원 요청이다.
바로 여기에 역설이 있다. 가장 높은 자리의 왕이 가장 낮은 자리의 가난한 자가 돼야 한다. 그리고 동시에 가난한 자를 돌보아야 한다. 이 두 가지가 결합될 때 비로소 왕은 구원을 경험할 수 있다. 이것은 시편 9-10편의 원시적 형태로부터의 명백한 신학적 진전이다.
이제 외적 행위(가난한 자를 돌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내적 태도(자신을 가난한 자로 낮추는 겸손)가 동반돼야 한다. 의무(duty)는 구원의 조건(condition for salvation)으로 변화했다.
시편 40-41편은 바벨론 포로기 전후, 곧 왕정 말기와 포로기 초기 사이의 ‘중간 단계’에 놓인 텍스트로 볼 수 있다. 이 시기는 다윗 왕조가 붕괴의 위기에 처했지만 아직 완전히 무너지지는 않았고, 후대의 종말론적 메시아주의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이전이다. 시편 40-41편은 여전히 왕정의 회복을 희망하면서도, 새로운 방식의 구원론을 모색하는 과도기적 신학을 보여 준다.
‘하나의 책’ 안에서: 시편 40-41편의 편집적 위치
40편에서 왕이 자신을 가난한 자로 낮추는 것과 41편에서 왕이 가난한 자를 돌보는 것, 이 두 측면이 결합될 때 비로소 1권 종결부는 완전한 왕적 시편의 면모를 갖추게 된다.
10 시편 40-41편을 함께 읽을 때, 1권의 종결부로서 72편, 89편과 어깨를 나란히하는 왕적 시편의 특징이 갖춰진다. 시편 40-41편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 1권 전체의 신학적 흐름 속에서 그 위치를 파악해 보자.
시편 1-2편: 토라와 왕권의 서론
시편 3-14편: 창조와 일상의 고난(첫 번째 집록)
앞선 연재에서 우리는 3-14편이 하나의 작은 시편 모음집(집록)을 형성하며, 그 중심에 8편이 위치함을 살펴보았다. 이 집록은 탄식시들로 둘러싸인 가운데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찬양(8편)을 배치함으로써, 일상의 고난 속에서도 창조주를 바라보는 신앙을 가르친다.
시편 15-24편: 토라의 왕, 메시아 대망(두 번째 집록)
15-24편은 성전 입장례(15편)로 시작하여 토라 시편(19편)과 왕적 시편(18편, 20-21편)을 중심으로 배치된다. 특히 19편은 하나님의 율법이 온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킨다고 노래하며, 이 토라가 참된 왕의 통치 원리임을 보여 준다. 22-24편은 고난(22편)에서 목자의 돌보심(23편)을 거쳐 영광의 왕 찬양(24편)으로 나아가는 메시아적 여정을 그린다.
시편 25-34편: 시온 신학, 성전, 고난에서 겸손과 자비로(세 번째 집록)
25편부터 시작되는 세 번째 집록은 시온 신학과 성전 전통을 강조한다. 29편은 하나님의 위엄을 찬양하고, 30편은 질병에서의 회복을 감사하며, 31편은 전인적 치유를 다룬다.
시편 35-41편(네 번째 집록)
시편 40-41편에 이르러 시편 1권의 신학은 정점에 도달한다. 1편에서 제시된 토라 중심의 경건과 2편에서 선포된 왕권이, 3-39편을 거치는 동안 다양한 고난과 위기를 만난다. 그리고 마침내 40-41편에서 새로운 형태의 왕권 신학이 제시된다.
토라를 지키는 것은 창조의 주님을 기억하고 붙드는 것, 그분을 시온에서 찬양하는 수직적 차원의 신앙과 함께, 가난한 자를 돌보며 그들처럼 자신을 낮추어 겸비하는 수평적 차원을 포괄한다. 토라의 수호자인 메시아 왕은 삶의 지평 전반에서 토라의 정신을 구현하는 입체적 인물이다.
시편 40-41편의 신학적 의미는 2권과 3권과의 연결 속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맥칸이 지적했듯이, 1-3권의 편집 목적은 포로와 디아스포라가 제기한 문제, 즉 전통적인 다윗/시온 언약 신학의 명백한 실패를 다루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2권의 종결부인 시편 72편은 왕의 의무가 확장되는 것을 다룬다. 이 시는 “솔로몬을 위하여”라는 표제를 갖고 있으며, 이상적 왕의 통치를 장엄하게 노래한다. 특히 12-14절은 왕이 가난한 자를 구원하는 장면을 생동감 있게 묘사한다.
“그는 궁핍한 자가 부르짖을 때와 도움이 없는 가난한 자를 건지며 그는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불쌍히 여기며 궁핍한 자의 생명을 구원하며 그들의 생명을 압박과 강포에서 구원하리니 그들의 피가 그의 눈에 귀하리로다.”
여기서 아니, 에비온, 달이라는 40-41편의 핵심 어휘군이 다시 등장한다. 그러나 72편에서 가난한 자를 돌보는 것은 여전히 왕의 의무로 제시될 뿐, 왕 자신의 구원 조건으로는 제시되지 않는다. 40-41편에서 나타난 신학적 진전―왕이 스스로 가난한 자가 되고, 그것이 구원의 조건이 된다―은 72편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3권의 종결부인 시편 89편은 다윗 언약의 위기를 다룬다. 89편 1-37절에서 다윗 언약의 영원성을 장엄하게 찬양하다가, 38절부터 갑작스럽게 절규로 전환된다. “그러나 주께서 주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노하사 물리쳐 버리셨으며”(시 89:38). 이 시편은 다윗 언약이 역사적 위기인 바빌론 포로기를 만났을 때의 신학적 고뇌를 담고 있다.
1-3권을 관통하는 신학의 흐름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권(1-41편): 토라와 왕권 → 고난 속에서도 신뢰 → 새로운 왕권 신학(겸손과 자비)
2권(42-72편): 성전 그리움 → 왕의 의무 확장
3권(73-89편): 지혜와 위기 → 다윗 언약의 절규
40-41편은 이 흐름에서 과도기적 위치를 차지한다. 다윗 왕권이 붕괴하기 이전, 왕권 신학―겸손하고 자비로운 왕―이 등장하는 순간을 포착하고 있다. 72편에서 왕의 의무가 더욱 구체화되고, 89편에서 언약의 위기가 절정에 달한 후, 4권(90-106편)에서는 “야웨 말라크”(여호와께서 다스리신다) 신학이 등장하여 인간 왕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영원한 통치를 선포한다. 그리고 마침내 5권(107-150편)은 메시아 대망 사상과 종말론적 찬양인 할렐루야로 시편 전체를 마무리한다. 우리는 차차 이러한 신학적 전개 과정을 살펴볼 것이다.
40-41편은 이러한 신학적 여정의 중요한 이정표다. 여기서 왕권은 위기를 맞이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다. 왕도 가난한 자처럼 겸손해야 한다는 이 역설적 진리는, 후에 신약에서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마 20:28)라는 그리스도의 선언으로 성취된다.
시편 40-41편이 제공하는 세 가지 설교적 통찰
시편 1권은 토라(1편)와 왕권(2편)이라는 두 기둥으로 시작하여, “어떻게 사는가”와 “누가 다스리는가”라는 두 가지 근본적 질문을 제기했다. 3편부터 39편까지 이어지는 여정은 이 두 질문이 일상의 고난과 만나는 과정을 보여 주었다. 창조주를 바라보는 신앙(8편), 토라를 묵상하는 경건(19편), 고난에서 영광으로의 여정(22-24편), 전인적 치유(31편) 등의 높고 낮은 등선을 거쳐, 시편 1권은 마침내 그 답을 제시한다. 그것은 역설적이다. “가장 높은 자도 가장 낮아져야 한다.”
왕조차, 아니, 왕이야말로 하나님 앞에서 가난한 자처럼 겸손해야 하며(40:18), 동시에 가난한 자를 돌보아야 한다(41:1). (‘벌거벗은 임금님’을 오마주하여) ‘가난한 임금님’의 영성이 시편이 가르치는 왕권 신학이다. 토라 중심적인 경건은 왕권의 실천과 결합되고, 그 실천은 외적 의식이 아닌 내적 태도로부터 출발한다. 제사보다 순종(40:6-8), 형식보다 본질, 권위보다 섬김이다.
이것이 1권이 도달한 신학적 정점이다. 시편 1권은 단순히 다윗의 개인적 경건을 모아 놓은 시집이 아니다. 이것은 치밀하게 편집된 신학서다. 정리해 보자면, 시편 40-41편은 현대 설교자에게 세 가지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1. 리더십의 역설: 섬기는 자가 가장 큰 자다
40-41편이 제시하는 가장 강력한 메시지는 리더십의 역설이다. 왕이 스스로를 “가난하고 궁핍한 자”(40:17)로 부르는 것은 단순한 수사적 겸손이 아니다. 이것은 권력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 재정의다. 참된 권위는 명령이 아닌 섬김에서, 군림이 아닌 겸손에서 나온다. 이 신학은 신약에서 그리스도를 통해 완전히 성취된다. 빌립보서 2:5-8은 시편 40-41편의 신학적 완성이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가장 높은 자가 가장 낮아졌다. 하나님의 아들이 가난한 자가 되었다.
현대 교회의 리더십에도 이 원리가 적용돼야 한다. 교회 지도자는 권위를 내세우는 자가 아니라, 스스로를 낮추고 섬기는 자여야 한다. 목회자는 회중 위에 군림하는 자가 아니라, 회중과 함께 “가난한 자”의 위치에 서야 한다. 직분은 권위의 상징이 아니라 섬김을 통해 드러나는 실천으로 존경받아야 한다. 40-41편은 이러한 섬기는 리더십의 성경적 근거를 제공한다.
2. 형식과 본질: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
시편 40:6-8의 메시지―“제사와 예물을 기뻐하지 아니하시고 … 나의 귀를 통하여 내게 말씀하셨나이다”―는 형식과 본질에 대한 예언자적 비판을 담고 있다. 하나님은 제사의 외적 형식이 아니라 순종하는 귀를 원하신다. 예배의 본질은 의식의 화려함이 아니라 마음의 준비에 있다.
이 메시지는 히브리서 10:5-7에서 그리스도론적으로 재해석된다. “그러므로 주께서 세상에 임하실 때에 이르시되 주께서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느니라.” 그리스도의 순종과 자기 희생이 모든 제사를 완성했다. 이제 신자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산 제물”(롬 12:1), 곧 자신의 몸을 드리는 전 존재적 헌신이다.
현대 교회는 예배의 형식주의를 경계해야 한다. 아무리 화려한 예배당, 정교한 전례, 훌륭한 음악이라도 그것이 내적 준비와 순종 없는 형식에 그친다면,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지 않으신다. 코로나19 이후 예배 형식을 둘러싼 논쟁에서도 우리는 이 원리를 기억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어디서, 어떤 형식으로 예배하는가가 아니라, 순종하는 귀와 겸손한 마음으로 예배하는가다.
3. 구원의 새로운 차원: 타자를 향한 책임
시편 41:1-3은 놀라운 선언을 담고 있다. “가난한 자를 돌보는 자가 복이 있나니 재앙의 날에 여호와께서 그를 건지시리로다.” 이것은 구원론의 새로운 차원을 열어 준다. 구원은 더 이상 개인과 하나님 사이의 수직적 관계에만 머물지 않는다. 구원은 타자, 특히 가난하고 연약한 자를 향한 수평적 책임을 포함한다. 야고보서 2:13은 이 원리를 더욱 분명히 한다.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마태복음 25:31-46의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도 최후 심판의 기준은 “지극히 작은 자 하나”를 어떻게 대했는가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 25:40).
우리는 개인 구원의 강조 속에서 사회적 책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가난한 자, 고아와 과부, 외국인과 소외된 자를 돌보는 것은 선택 사항이 아니라 구원받은 자의 필수적 표지다. 이것은 사회 복음이나 진보 신학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것은 시편 40-41편, 이사야 선지자, 예수 그리스도, 사도 야고보가 일관되게 가르친 성경의 중심 메시지다. 자비를 행하지 않는 신앙은 죽은 신앙이다(약 2:17).
주
1) 이 내용은 2018 St Andrews Symposium for Biblical and Early Christian Studies (주제: Atonement - Sin, Sacrifice, and Salvation in Jewish and Christian Antiquity)에서 발표한 내용(2018.6.4.-6)과 저자의 박사 학위 논문(“Theologies of the Poor in the Psalter”, University of Aberdeen, 2022)에 기초하고 있음을 밝힌다.
2) Gerald H. Wilson, The Editing of the Hebrew Psalter (Scholars Press, 1985), pp. 184-188.
3) Wilson, The Editing of the Hebrew Psalter, p. 209.
4) BDB, s.v. (아니), (에비온)
5) BDB, s.v. (달), 70인역(LXX)은 이 구절을 번역하면서 π?νητα(페네타, “가난한 자”)를 추가하여 그 의미를 더욱 명확히 했다.
6) Peter C. Craigie, Psalms 1-50, (WBC; Word Books, 1983), p. 320.
7) 특히 41:9 “나의 신뢰하는 바 내 떡을 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의 발꿈치를 들었나이다”는 요한복음 13:18에서 유다의 배신을 예언하는 구절로 인용된다.
8) 시편 40-41편의 신학적 위치를 더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언어학적 단서와 편집사적 맥락을 고려해야 한다. 40:7의 (올라)는 레위기에서는 항상 로 표기되지만, 시편 40:7은 완전서법(scriptio plena)인 를 사용한다. 이 형태는 이사야 40:16; 56:7, 예레미야 7:21; 17:26, 에스겔 40:38, 42 등 후기 문헌에서 발견되며, 아람어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여겨진다.
9) Sigmund Mowinckel, The Psalms in Israel’s Worship, trans. D. R. Ap-Thomas (Abingdon Press, 1962).
10) 그뤼네발트(Groenewald)는 시편 41편의 편집 과정에서 “‘가난한 자의 신학’에 의해 특징지어진 편집”이 이루어졌다고 주장했다. Alphonso Groenewald, “A Trauma Perspective of the Redaction of the Poor at the end of Book I (Pss 3?41) and Book II (Pss 42-72) of the Psalter” in OTE 31/3 (2018), 790?811; 806. 그는 이 편집이 사회적 위기 속에서 주변화된 사람들에 의해 수행됐으며, 그들이 공동체의 핵심을 형성하기를 희망했다고 해석했다. 그러나 윌슨이 41편을 왕적 시편으로 분류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리고 1-3권 전체에서 다윗 왕권의 중요성이 일관되게 강조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1권 종결부의 41편을 왕적 시편으로 이해하는 것이 시편집 전체의 구조를 더욱 일관되게 설명한다. Wilson, The Editing of the Hebrew Psalter, p. 2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