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트렌드 코리아 2026》은 인공지능(AI)이 사회 전반에 깊숙이 자리 잡는 ‘AI 대전환의 시대’를 맞아, 인간과 기술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지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제공한다. 

이 책은 2026년 말(馬)의 해를 맞아 AI의 역동적인 힘과 인간의 지혜로운 통제를 결합한 ‘호스 파워(HORSE POWER)’를 핵심 키워드로 제시했다. 이 거침없는 힘에 휩쓸려 낙마할 것인가, 아니면 고삐를 쥐고 이 힘을 활용해 더 멀리 나아갈 것인가에 대한 인간의 의지를 내포한다. AI라는 야생마를 길들이고 그 등에 올라타는 ‘주체적 역량’이 2026년의 핵심 과제임을 시사한다.

10대 키워드

1.    휴먼 인 더 루프

AI의 자동화 기능이 극대화되는 시대에도 인간의 개입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의미다. 최종적인 판단과 책임은 인간이 져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미국의 유력 일간지인 〈시카고 선타임스〉와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는 2025년 5월, 여름 추천 도서 목록을 발표했다. 그런데 독자들이 막상 찾아보니 진짜로 존재하는 책은 5권뿐이었고 나머지 10권은 ‘가짜 책’이었다. 이 특집 기사를 작성한 프리랜서 기자는 해당 콘텐츠를 생성형 AI로 만들었으며, 별도의 사실 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고 밝혔다”(pp. 135-136).

이 사건은 AI가 만들어 낸 그럴듯한 거짓 정보, 즉 ‘환각’이 공신력 있는 매체의 명성을 얼마나 쉽게 무너뜨릴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 주었다. 누군가 한 사람만이라도 확인해 보았다면, 그 언론의 명성은 무너지지 않았을 것이다. AI와 동행하는 시대일지라도, AI가 수행하는 과정에는 반드시 사람이 개입해야 한다. 

2.    필코노미

감정과 기분이 소비의 결정적 요인이 되는 경제 현상을 말한다. 이제 소비자는 ‘가성비’보다 ‘감성비’를 묻는다. ‘가격표’보다 ‘감정표’가, ‘얼마냐?’보다 ‘느낌 있냐?’가 중요하다. 물건이 좋아도 느낌이 없으면 장바구니에 담지를 않는다는 것이다. “저기압일 때는 고기 앞으로!” 고깃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문구다. 사실 기분이 울적할 때 고기를 먹으면 왠지 기운이 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기분’ ‘감정’은 인공지능 시대에 가장 인간적인 감정이다. 이 기분과 감정이 경제의 중요한 요소가 된다. 

3.    제로 클릭

AI의 추천과 예측으로 인해 소비자가 여러 단계를 거쳐 정보를 탐색하는 클릭 과정이 생략되는 새로운 소비 패러다임을 말한다. 점점 클릭이 사라진다. 사용자가 능동적으로 찾고 선택하지 않아도 AI 시스템이 먼저 판단하고 제안한다. ‘제로 클릭’은 디지털 소비 여정의 근본적 변화를 의미한다. 인터넷 상용화 이후 30년간 우리는 ‘검색-클릭-비교-선택’의 과정을 거쳤다. 

그러나 생성형 AI는 이 중간 과정을 생략시킨다. 사용자가 검색창에 질문을 입력하기도 전에, AI가 의도를 파악해 최적의 답을 단 하나의 형태로 제시하거나, 구매 버튼을 누르지 않아도 필요한 생필품이 배송된다. 

4.    레디코어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해 스스로 계획하고 학습하며 주도적으로 자신의 삶을 준비하는 ‘준비된 개인’들이 부상한다. 불확실성이 상수가 된 시대, 요즘 세대는 삶의 모든 과정을 미리 시뮬레이션 학습하고 준비하여 실패 가능성을 제거하려 한다. ‘레디코어(Ready-core)’는 준비가 삶의 중심이 된 현상이다. 즉 ‘예측불가능함’ 속에 함몰되지 않으며, ‘설계 가능함’ ‘내가 어느 정도는 통제할 수 있음’을 추구하는 것이다. 맛집 방문 전 메뉴와 웨이팅을 미리 살펴보고, 직무 수행 전 브이로그로 업무를 시뮬레이션한다. 심지어 결혼과 출산조차 엑셀 파일로 철저히 기획한다. 이는 예측 불가능한 사회에서 어느 정도 내가 컨트롤하는 통제감을 느끼기 위한 생존 본능이다. 

5.    AX 조직

AI의 전면적인 도입으로 과거 계층과 부서로 나뉘어져 있던 조직은 와해되고 프로젝트별 업무 중심의 유연하고 자율적인 조직으로 빠르게 개편되고 있다. 과거의 피라미드형 위계 질서는 정보의 흐름을 막고 의사결정을 지체시킨다. 

반면, AI를 활용하는 조직은 실무자가 AI의 도움을 받아 임원급의 통찰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되면서, 직급 파괴와 수평적 소통이 가속화된다. ‘어떤 직급인가’보다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가 중요해지는 프로젝트 중심의 조직으로 재편된다. 이는 조직의 민첩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생존 전략이다.

6.    픽셀 라이프

‘픽셀 라이프’는 디지털 고해상도 화면의 픽셀처럼 삶의 단위가 더욱 작고 세밀하게 나뉘는 흐름을 의미한다. 0.5인분 식사, 소용량 상품, 짧은 영상 콘텐츠처럼, 일상 속 소비와 경험이 작고 즉각적인 만족 위주로 변하고 있다. 곰삭은 오랜 경험이나 관계보다, 빠르고 간결한 순간적 선택이 강조된다. 긴 호흡의 독서·사색·대화는 설 자리를 잃고, 사람들은 시간을 쪼개 시성비(시간 대비 성능)를 따지며, 멀티태스킹을 일상화한다. 삶이 픽셀화되면서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서사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기승전결이 있는 이야기 대신, 자극적인 장면의 나열만이 남는다.

7.    프라이스 디코딩

소비자가 제품의 최종 가격만을 보고 구매를 결정하던 시대는 지났다. ‘프라이스 디코딩’은 소비자가 가격의 구성 요소를 하나하나 해체(Decoding)하여, 그 가격이 합당한지 검증하는 고도로 이성적인 소비 행태다. AI 도구의 발달로 글로벌 가격 비교와 유사 제품 탐색이 쉬워졌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이 무조건 싼 것을 찾는 것이 아니다. 품질이 우수하다면 비싼 가격도 납득하지만, 브랜드 이름값만으로 부풀려진 가격은 배격한다. 

소비자들은 묻는다. “이 화장품이 비싼 이유가 원료 때문인가, 아니면 모델료와 광고비 때문인가?” 이러한 의구심은 명품과 유사한 품질을 갖췄지만 브랜드 로고를 떼고 가격을 낮춘 ‘듀프’(Dupe, 복제품) 소비 열풍으로 이어진다. 프라이스 디코딩 시대의 소비자는 말한다. “나는 더 이상 포장에 속지 않는다. 진짜를 원한다.”

8.    건강 지능

100세 시대를 맞아 건강 관리는 선택이 아닌 필수 생존 능력이 됐다. ‘건강 지능’(HQ)은 신체적 건강뿐 아니라 자신의 건강 데이터를 이해하고 관리하는 문해력을 뜻한다. 즉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관리하고 실행하는 능력이다. 이는 건강을 단순히 ‘아프지 않은 상태’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관리하고 향상시켜야 할 자산으로 보는 관점이다. 과거에는 아프면 병원에 갔지만, 이제는 웨어러블 기기로 수면, 혈당, 스트레스를 실시간 모니터링하고 예방한다. 유전자 검사를 통해 맞춤형 식단을 짠다. 건강 관리는 생존을 넘어 삶의 질을 결정하는 척도가 됐다. 건강 키워드가 결합되지 않은 비즈니스는 생존하기 어려울 정도로, 헬스케어는 전 산업의 기본값이 되고 있다.

9.    1.5가구

1.5가구는 가족 형태의 재구성이다. 전통적인 4인 가족(1.0)도 고립된 1인 가구(2.0)도 아닌, 그 중간 지점인 ‘1.5가구’가 새로운 주거 표준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는 “혼자 살고 싶지만 외로운 건 싫고, 같이 살고 싶지만 간섭받기는 싫은” 현대인의 욕구를 해결하는 대안이다. 치솟는 주거비용을 분담하기 위한 경제적 선택인 동시에, 개인의 자유를 침해받지 않으려는 라이프스타일의 반영이다. 

청년들은 비싼 주거비를 나누고 외로움을 덜기 위해 이 방식을 선택한다. 중장년과 시니어도 고독을 예방하고 생활을 도울 벗을 찾기 위해 이런 관계를 원한다. 서로 부담은 덜고 따뜻함은 더하는 삶의 방식이 1.5가구의 핵심이다. 셰어하우스 같은 곳에서 개인 공간은 철저히 분리하되 공용 공간에서 교류하거나, 취향 기반의 살롱 문화를 즐기는 형태다. 이는 AI 시대 심화되는 고립과 외로움에 대한 사회적 처방전이기도 하다. 혼자이되 혼자가 아니고, 함께이되 과도하게 얽매이지 않는 신중한 관계의 시대가 열렸다.

10.    근본이즘

책의 대미를 장식하는 키워드다. 빠르게 변화하고 자극이 넘쳐나는 시대 속에 본질과 기본, 클래식한 가치를 추구하는 경향이다. 변화무쌍한 AI 세상, 픽셀화된 삶, 얄팍한 상술에 지친 사람들은 이제 ‘진짜’, ‘원조’, ‘변하지 않는 가치’를 찾아 나섰다. 화려한 기교보다 투박한 진정성에 끌리고, 최신 유행보다 시간을 견뎌 낸 클래식(Classic)에 열광한다. AI가 1초 만에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시대에, 인간이 오랜 시간 공들여 만든 결과물은 ‘비효율’이 아니라 마음을 적시는 ‘예술’이 된다. 근본이즘은 딥페이크와 복제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오리지널리티와 진정성을 갈망하는 현상이다.

트렌드를 좇는 자가 될 것인가, 시대를 넘어서는 자가 될 것인가

《트렌드 코리아 2026》이 전망한 2026년의 풍경은 인공지능이 더 이상 ‘신기한 기술’이 아닌 ‘공기’와 같은 생활 인프라로 자리 잡은 세상이다. 이 책이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기술은 도구일 뿐, 답은 결국 사람에게 있다.”

김난도 교수는 2026년을 전망하며 AI와 공존하는 인간을 ‘켄타우로스’에 비유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반인반마(半人半馬) 켄타우로스에서 말(Horse)인 하체는 강력한 힘과 속도(AI)를 상징하고, 인간인 상체는 방향을 잡고 무기를 다루는 지혜(Human)를 상징한다. 강력한 힘을 가진 야생마인 AI 기술을 인간이 어떻게 길들이고, 그 위에 올라타 주도적으로 방향을 설정할 것인가? 

이 질문은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주제다. 교회는 이 켄타우로스의 ‘상체’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인공지능이라는 말은 무서운 속도로 질주할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빠른 속도라도 방향을 잃으면 재앙이 된다. 교회가 고삐를 쥐고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지 않는다면, 기술은 인간성을 파괴하고 영혼을 피폐하게 만드는 흉기가 될 것이다. 여기서, 이세돌 9단이 알파고와의 대결에서 보여 준 ‘78수’를 기억하자. 그것은 AI의 방대한 데이터를 넘어선, 가장 인간적이고 창의적인 한 수였다.

2026년 한국 교회가 세상에 두어야 할 제78수는 무엇인가? 그것은 기술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을 압도하는 ‘거룩한 영성’과 ‘진정한 공동체성’이다. ‘근본’을 찾는 세상의 흐름은 교회가 다시 복음의 본질로 돌아가 승부할 수 있는 최적의 타이밍이다. 한국 교회는 시대와 트렌드를 읽되 트렌드에 함몰되지 않고, 트렌드를 좇는 자가 아닌 넘어서는 자가 돼, 변하지 않는 진리로 변하는 세상을 이끄는 빛과 소금이 돼야 한다. 

AI가 정보를 줄 때, 교회는 지혜를 줘야 한다. 세상이 더 빠른 길을 찾을 때, 교회는 잃어버린 길을 밝혀 주어야 한다. 세상이 스크린 속 빛을 좇을 때, 교회는 어둔 밤을 밝히는 ‘생명의 빛’을 켜야 한다. 세상이 픽셀 단위로 쪼개질 때, 교회는 전체 그림을 보여 주어야 한다. 세상이 즉각적인 만족을 좇을 때, 교회는 영원한 소망을 보여 주어야 한다. 세상이 가짜와 모조품에 지쳐 있을 때,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오리지널’을 세상에 소개해야 한다. 

우리는 잘 안다. 이 세상의 거룩과 행복은 AI로도 되지 아니하며, 사람의 능력으로도 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의 영으로 된다. 그러니 기도하고 또 기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