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제르 케넥도(עֵזֶר כְּנֶגְדּוֹ): ‘돕는 배필’이란 어떤 존재인가?

‘돕는 배필’이라는 표현은 하와가 아담의 갈빗대에서 창조됐다는 기사와 더불어, 오랜 세월 동안 여성이 차지할 자리를 규정하는 성서적 근거로 사용돼 왔다. 창세기 2:18,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는 말씀은, 여성이 남성을 보조하는 존재로, 그의 곁에 붙어 그의 일과 사명을 돕는 존재로 해석됐다. 많은 이들이 이 구절을 읽으며 ‘도우미’라는 이미지를 떠올린다. 혼자 있는 남성은 무언가 부족하고 외롭기에, 그 곁을 메워줄 조력자(혹은 비서, 내조자, 종속된 동반자)가 필요하다는 해석이다. 그리고 이러한 이해는 곧 ‘여성은 남성을 보조하는 역할’이라는 위계적 성 역할 구도로 이어진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그의 창세기 주석¹에서 여성이 남성을 돕기 위해 존재한다고 주장했고, 토마스 아퀴나스는 여성이 본성상 남성보다 약하며, 갈빗대에서 지어진 사실은 그녀가 남자 아래에 있는 존재임을 상징한다고 봤다.² 기독교만이 아니라 초대 유대교 역시 사정이 다르지 않다. 유대 랍비 전통의 대표적 본문인 창세기 랍바 17.8은 이러한 해석의 전형을 보여 준다. 이 미드라시는 여성이 남성과는 ‘다르게’(그리고 본질적으로 ‘열등하게’)창조됐음을 강조하며, 여성의 신체적 특성, 감정, 행동 양식을 창조의 순서와 재료(갈빗대)에서 유래한 것으로 해석한다. 예를 들어, 흙은 그대로 두어도 냄새가 나빠지지 않기 에 남성은 향수를 사용할 필요가 없으나, 며칠만 두어도 역한 냄새가 나는 뼈로 창조된 여성은 반드시 향수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³ 반면 현대의 성경 번역자들과 해석자들은 이러한 남성 중심적 해석을 극복하고자 시도한다. 개역개정이 사용한 ‘배필’이라는 번역은 그 단어가 지닌 오래된 위계적 뉘앙스 ― 결혼 제도 안에서 보조적 역할을 여성에게 부여하는 ― 를 풍기기 때문에, 최근의 여러 번역 성경들은 보다 수평적이고 상호적인 관계성을 강조하는 어감을 지닌 ‘짝’이라는 표현을 선택했다.⁴

이처럼 ‘짝’이라는 단어는 ‘배필’보다 상대적으로 평등한 호명이며, 상호성을 지닌 관계를 의식한 표현이다. 그러나 여전히 여성을 남성의 조력자로 제한하는 뉘앙스가 남아 있다. ‘그를 도울’(새한글), ‘그의 일을 거들’(공동번역) 등의 표현은, 여성의 존재 이유를 남성의 과업에 대한 보조로 해석하는 여지를 남긴다.  

창세기 2:18에서 하나님이 창조하시려는 존재는 ‘에제르 케넥도’다. 이제 이 두 단어의 어근과 문맥, 그리고 성경 전체에서 이 단어들이 어떻게 쓰이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1.    케넥도(כְּנֶגְדּוֹ): 앞에 있는, 함께 마주 선 존재
우선 두 번째 단어인 ‘케넥도’부터 살펴보자. 이는 전치사 ‘케’(, -처럼, -에 대해)와 ‘네게드’(, 앞에, 맞은편에, 마주하여)에 인칭접미어 3인칭 남성 단수 ‘오’(, 그의)가 붙은 형태다. 즉 ‘그 앞에’, ‘그에 맞서’ 혹은 ‘그를 마주해’라는 뜻을 지닌다. ‘네게드’는 성경 전체에서 물리적 또는 관계적 방향성을 나타내는 전치사로 쓰인다. 그것은 어떤 대상을 마주보는 상태, 곁이 아니라 정면이다.⁵ 랍비 문헌에서도 전치사 네게드는 ‘논쟁할 수 있는 대등한 위치’, ‘정면에 서 있는 존재’, ‘거울처럼 반영하는 상대’를 뜻한다. 이는 곁에서 종속돼 따라다니는 존재가 아니라, 서로를 마주보며 관계를 이루는 존재다. 따라서 ‘케넥도’는 단순히 ‘곁에서 도와주는 자’가 아니라, 나와 ‘마주 선 자’를 의미한다. 위계가 아니라 대면이며, 종속이 아니라 긴장 속의 관계다. 성경이 묘사하는 최초의 인간관계는 그렇게 평행하게 마주 서는 것에서 시작된다.

2.    에제르(עֵזֶר):  힘을 지녀 도울 수 있는 자
다음은 ‘에제르’다. 이 단어는 ‘돕다’를 뜻하는 히브리어 어근 (아자르)에서 파생된 명사로, 일반적으로 ‘도움’ 또는 ‘돕는 자’를 의미한다. 그러나 문제는 그 도움의 성격과 방향이다. 전통적 해석은 ‘돕는다’는 행위를 ‘권력과 지위에서 약한 사람이 사람이 힘 있고 높은 자를 보조한다’는 구조로 오해했다. 그러나 성경에서 에제르가 쓰이는 문맥은 대부분 그 반대다. 

구약성경에서 ‘에제르’는 총 21회 등장하는데, 그중 16회는 하나님이 인간을 도우실 때 사용된다.6 여기서 하나님은 결코 인간의 비서가 아니다. 오히려 인간보다 더 크고 강하며, 상상할 수 없는 능력을 가진 분으로서, 위기 가운데 있는 인간을 구출하시고 붙드신다. 이처럼 ‘에제르’는 힘 있는 존재의 돌봄이며, 강함에서 흘러나오는 도움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과 동일한 어휘로 묘사된 여성을 남성 아래에 두는 해석은 과연 정당한가? 하나님이 인간을 돕는다고 해서 하나님이 인간보다 낮은 존재가 아닌 것처럼, 여성이 남성을 돕는다고 해서 그가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일 수 없다. 에제르란 강함의 손길이며, 대등한 관계 속에서 서로를 붙드는 손이다.

‘에제르 케넥도’는 남성을 위로 들어올리는 비서를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마주 선 자요, 동등한 도움이며, 함께 살아갈 관계의 시작이다. 남자의 부족함을 채워 주는 도우미가 아니라, 함께 존재의 긴장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또 하나의 인간이다. 하나님은 그런 존재를 ‘그 앞에(케넥도) 있는 에제르’로 빚으셨다. 여기서부터 우리는 창세기 2장이 말하는 인간관계의 본질을 다시 써야 한다. 위계가 아닌 마주함, 종속이 아닌 긴장, 비서가 아닌 동행. 하나님은 그런 만남을 ‘좋다’고 말씀하신다. 이런 만남이 없는 상태를 ‘좋지 않다’고 말씀하신다. 

3.    에제르 케넥도의 의미: 서로를 일으키는 언어
우리가 오래도록 사용해 온 ‘돕는 배필’이라는 번역은 한쪽이 주체고, 다른 한쪽은 그를 보조하는 종속적 존재라는 인상을 남겨 왔다. 실제로 많은 설교와 교재 속에서 이 표현은 여성을 ‘남성을 위해 존재하는 조력자’로 해석하게 했고, 이러한 이해는 여성의 정체성과 소명을 왜곡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히브리어 본문의 의미는 오히려 전혀 다른 세계를 가리킨다.

‘에제르’는 단순히 누군가를 도와주는 동사적 행위에 그치지 않는다. 이 단어는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실 때 자주 사용되는 단어다(시 121:1­2). 이처럼 ‘에제르’는 하위적·부차적인 역할이 아니라, 위기 속에서 능동적으로 일으켜 세우는 강한 힘을 뜻한다. 인간이 간구할 때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에제르’며, 이는 결코 낮은 위치에서의 도움이 아니다.

그렇다면 ‘케넥도’는 이 도움의 성격에 어떤 의미를 더해 주는가? 이 표현은 직역하면 ‘그의 맞은편에서’, 또는 ‘그를 마주해’라는 뜻이다. 단순히 곁에 있는 존재가 아니라, 서로를 향해 마주 서 있는 관계를 묘사한다. 거울 앞에 선 사람처럼 서로의 모습을 비추고 견주며 함께 자라는 대면 구조다. 이 마주 섬은 복종이나 의존이 아니라, 긴장 속의 상호성과 균형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에제르 케넥도’는 열등한 쪽이 우월한 쪽을 보조하는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본래의 관계, 곧 서로를 향해 마주 선 존재로서의 동반자적 구조를 가리킨다. 창세기 2장은 인간이 혼자서는 온전할 수 없음을 말하며, 서로를 마주할 때 비로소 충만해지는 존재로 창조됐음을 선언한다. 아담은 혼자일 때 불완전했으며, 하와 또한 독립된 자아로서가 아니라 마주 섬을 통해 함께 ‘사람’이 됐다.7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은, 그가 혼자가 아니라 마주함 속에서 존재하도록 하신 데 있다. 그 마주함은 때로 위로가 되고, 때로는 도전이며, 때로는 상처와 깨어짐을 통한 성숙으로 나아가는 관계다. 

우리가 ‘에제르 케넥도’를 다시 읽는 것은 단지 단어 하나에 대한 이해를 수정하고 교정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 사이의 관계 언어를 새롭게 빚어내는 작업이다. 배우자를 향한 말, 동료를 향한 태도, 이웃을 향한 시선이 ‘지시와 보조’의 구조가 아니라, ‘마주봄과 일으킴’의 질서로 변화돼야 함을 뜻한다. 

창세기 2장이 전하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인간은 홀로 있을 때 불완전하며, 서로를 향해 마주 설 때에야 비로소 온전해진다. ‘에제르 케넥도’는 인간이 인간에게 주어진 거울이며, 동행자이며, 하나님께서 세우신 창조 질서의 마주봄을 나타내는 언어다. 오늘 우리의 공동체에서 이 말씀이 다시 울려 퍼질 때, 그것은 어느 한쪽의 권위를 정당화하는 언어가 아니라, 서로를 일으키는 부르심의 언어가 돼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창세기 본문이 열어 주는 깊은 진실, 곧 하나님 앞에 마주 서서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서의 인간의 자리를 회복하게 될 것이다.

펜 테무툰(פֶּן־תְּמֻתוּן):  “죽을까 하노라” ­ 하와의 말 다시 듣기

말 한마디로 오랜 세월 오해를 받아온 가장 대표적인 인물은 하와일 것이다. 성경 전체에서 하와는 단 두 번 짧게 말할 뿐이지만(창 3:2­3, 13), 그 첫 번째 발언이 오늘날까지도 수많은 비판의 대상이 돼 왔다. 하와의 첫 말은 이렇다.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창 3:3).

하와의 말이 하나님의 말씀과 차이가 있다는 사실 위에 오랜 해석의 역사가 켜켜이 쌓여 왔고, 그것은 단지 성경 한 구절에 대한 해석 문제를 넘어, 하와라는 인물 자체를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한 최초의 존재로, 그리고 인류 최초의 타락이 여성의 불순종에서 비롯됐다는 논리로 이어졌다. 심지어 ‘여자는 처음부터 하나님 말씀을 온전히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남편의 권위 아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을 정당화하는 데 이 구절이 인용되기도 했다. 하와의 말 한마디가 여성 전체에 대한 의심과 불신의 근거가 된 셈이다.

그러나 이러한 전통적인 해석은 다시 생각해 볼 여지를 품고 있다. 주목할 사실은, 성경 그 어디에서도 하와의 발언을 문제 삼는 장면이 없다는 점이다. 창세기 3장에서 하나님은 하와가 자신의 말씀을 잘못 전달했다거나, 그 내용을 왜곡했다고 꾸짖지 않으신다. 성경의 후속 이야기 속에서도 하와의 발언은 단 한 번도 부정적으로 언급되지 않는다. 예수님도, 바울도 하와의 말을 문제 삼거나 비판한 적이 없다. 바울이 하와에 대해 언급할 때에도, 그 초점은 하와가 유혹을 받았다는 사실에 맞춰져 있을 뿐, 그녀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전했다거나 그것이 죄의 기원이 됐다는 논평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디모데전서 2:14에서 바울은 말한다.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고 여자가 속아 죄에 빠졌음이라.” 고린도후서 11:3에서도 그는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라고 기록한다. 여기서 하와는 뱀의 유혹에 넘어간 인간 대표로서 등장할 뿐, 말씀을 고의적으로 왜곡하거나 하나님의 뜻을 불순하게 전한 인물로는 묘사되지 않는다. 테르툴리아누스, 이레나이우스, 아우구스티누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등의 기독교 교부들의 저서들도 하와의 발언이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했다고 지적하지 않는다. 기원후 300-500년경 유대 랍비들의 창세기 해석 모음집인 창세기 랍바에서 최초로 “만지지도 말라”고 덧붙인 하와의 말이 뱀에게 논리적 반격의 여지를 줬다고 언급한다.⁸ 

하와의 말은 정말 왜곡이었을까?

이제 히브리어 원문을 살펴보며, 하와의 말을 ‘왜곡’으로 보는 전통적 해석이 과연 타당한지 다시 질문해 봐야 한다. 먼저 하나님의 직접 명령이 담긴 창세기 2:17 원문 번역은 다음과 같다: “좋음과 나쁨의 지식을 주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필자 사역).⁹

여기서 “반드시 죽으리라”는 표현은 단순히 강조 부사가 아니라, 히브리어 문법상 부정사 절대형(모트)이 동사( 타무트) 앞에 위치함으로써 반복을 통한 강한 강조를 나타내는 구조다. 이는 성경 히브리어에서 명령이나 결과를 강조할 때 흔히 쓰이는 방식이다. 
그에 비해, 하와가 뱀에게 말한 구절인 창세기 3:3의 원문 번역은 다음과 같다. “동산 한가운데 있는 나무의 열매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그것을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죽지 않으려면”(필자 사역).¹⁰

이 두 문장을 비교하면 차이가 있다. 첫째, 하와는 나무를 “동산 가운데 있는 나무”라고 표현하며, 이는 하나님께서 직접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라고 부르신 것과 다르다. 그러나 이 표현의 변화는 본질을 왜곡한 것이 아니라, 위치를 통해 같은 대상을 지칭한 것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둘째, “만지지도 말라”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명령에 없던 내용이 첨가된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약화’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이 문장은 경계선을 보다 명확히 하려는 신중한 태도로도 읽힐 수 있다. 율법 전통 속에서 하나님 말씀에 ‘울타리를 세우는’ 것이 오히려 그것을 존중하고 두려워하는 태도로 여겨졌다. 셋째, “반드시 죽으리라”와 “죽지 않기 위하여(פֶּן־תְּמֻתוּן)”는 문장의 어조가 다르지만, 의미상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히브리어 접속사 ‘펜’( פֶּן)은 가능성을 말하는 ‘-일지도 모른다’가 아니라, ‘-하지 않기 위해’라는 분명한 경고의 어조를 가진 표현이다. 영어로는 lest 또는 so that… not 정도로 번역된다.

이 모든 문법적 차이를 고려해 보더라도,¹¹하와의 발언이 하나님의 명령을 변질시키거나 약화시켰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다.

하와의 진정한 ‘왜곡’: 단수에서 복수로

하와를 비난하는 전통적인 해석이 간과하는 사실 하나가 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명령하실 때 하와는 아직 창조되기 전이라는 점이다. 하나님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는 날 반드시 죽을 것이라 경고하신 후에(창 2:17),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않다고 하시며(18절), 각종 들짐승과 새를 창조하시고(19절), 하와는 그 이후에 창조된다(22절). 따라서,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말씀을 직접 들은 것은 아담 혼자이며, 하와가 설령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전적으로 하와의 잘못인지, 아니면 아담이 잘못 전달했는지 본문은 명확히 말하지 않는다. 그러니 하와에게 하나님의 명령을 왜곡한 책임을 오롯이 하와에게만 지우는 것은 온당한 해석이라 보기 어렵다. 

오히려 하와의 말에서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보다 깊은 차이는, 단어 몇 개가 첨가되거나 삭제된 것보다 더 본질적인 변화가 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명령을 단수에서 복수로 바꿨다는 점이다. 창세기 2:17에서 하나님은 선악과를 금하실 때, 명백하게 2인칭 남성 단수로 아담에게 말씀하신다.  이 문장에 사용된 모든 동사는 2인칭 남성 단수형이다. 이 명령은 아담 혼자에게 주어진 것이며, 하와가 창조되기 이전의 사건이다. 그런데 창세기 3:3에서 하와는 이 명령을 뱀에게 전할 때, 이를 2인칭 복수형으로 바꿔 전달한다. 이는 단순한 실수가 아니다. 하와는 하나님이 아담에게만 주신 말씀을 자기 자신에게도 해당되는 명령으로 받아들였다. 하나님은 하와에게 “먹지 말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없으나, 하와는 스스로를 그 명령 안에 포함시킨 것이다. 다시 말해, 하와는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거나 왜곡한 것이 아니라, 그 뜻 안으로 자기를 초대한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하와의 이 결정은 이후 본문에서도 중요한 흐름으로 이어진다. 선악과를 먹은 직후,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물으신 말씀은 이렇다.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창 3:11). 동사의 어미와 명령어 모두 2인칭 남성 단수형이다. 즉, 하나님은 이 명령을 아담 개인에게 주신 것임을 분명히 하시고, 하와에게는 따로 책임을 묻지 않으신다. 이어지는 심판 선언에서도 이러한 구조는 반복된다.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창 3:17). 여기서도 명백하게 책임은 아담에게만 지워진다. 하와는 선악과를 먼저 먹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따로 지적하지 않으신다. 아담이 그 열매를 받아먹은 것이 심판의 기준이 됐다.

에덴에서 쫓겨나는 장면에서도 다음과 같은 문장이 등장한다.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그 사람을 내쫓으시고”(창 3:23, 필자 사역). 여기서 ‘그 사람을’이라는 단어는 남성 단수 대명사를 번역한 것이다. 하와는 언급되지 않는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아담을 에덴에서 내쫓으셨다고만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하와도 함께 동산을 떠났다. 그녀는 자신에게 직접 주어지지 않은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말씀으로 받아들였고, 이제는 자신에게 내려지지 않은 하나님의 심판을 함께 짊어진다. 하와는 그 운명에 기꺼이 동참했다. 비록 따로 내쫓기지 않았지만, 함께 떠났고, 따로 정죄받지 않았지만, 함께 짐을 졌다. 이것이야말로 창세기 2장에서 하나님이 만드신 ‘그 앞에 마주 선 돕는 자’(에제르 케넥도)의 모습이다. 그녀는 혼자가 아닌, 함께 살아가도록 지어진 존재로서 아담과 운명을 같이한다.

우리는 이 본문을 읽으며, 남자와 여자,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타락 이후에도 완전히 무너진 것이 아님을 본다. 죄와 부끄러움, 두려움과 탓하기가 뒤섞인 와중에도 그들은 함께했다. 함께 열매를 먹었고, 함께 동산을 떠났으며, 함께 자식을 낳고 살아간다. 그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보여 주는 인간의 자리다. 혼자 서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향해 서 있는 존재. 서로의 잘못에도 불구하고 등을 돌리지 않고, 함께 운명을 살아가는 동반자. 창세기는 인간의 타락을 기록하는 동시에, 인간의 연대를 지워버리지 않는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간(人間)이란 누구이고 무엇인가? 말씀 앞에서, 타인의 잘못 앞에서도, 함께 살아가는 존재란 누구인가? 하와는 그 질문 앞에 서 있는, 인류 최초로 ‘함께’를 선택한 사람이었다.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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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Augustine, De Genesi ad Litteram.
2) Thomas Aquinas, Summa Theologiae, II-II, 92
3)  항아리에 흙을 담아 흔들어도 큰 소리가 나지 않지만(남자의 경우), 뼈를 담아 흔들면 시끄러운 소리가 나므로 여성의 목소리가 크고 날카롭게 들린다고 설명한다.
4) (창 2:18, 새번역) “남자가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를 돕는 사람, 곧 그에게 알맞은 짝을 만들어 주겠다.”; (공동번역) “아담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의 일을 거들 짝을 만들어 주리라.”; (새한글) “사람이 혼자 있으니 좋지 않아. 그를 도울 짝을 만들어 주어야겠군.”
5) 관련 구절은 다음과 같다. “이스라엘이 거기 산 앞에 장막을 치니라”(출 19:2); “네 번제가 항상 내 앞에 있음이로다”(시 50:8).
6) 대표적인 예는 다음과 같다. “이스라엘이여 너를 도우시는 이는 여호와시라”(신 33:29), “여호와는 나의 도움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시 118:7), “내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시 121:2).
7) 그러나 우리의 언어 속에서 이 진실은 종종 축소·왜곡돼 전해진다. ‘돕는다’는 말은 흔히 보조적이고 하위의 역할로 이해되기 쉽고, ‘배필’이라는 단어도 종종 제도 안의 역할 분담으로만 해석된다. 그러나 본문의 의도는 특정한 제도나 역할을 정당화하는 데 있지 않다.
8)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에 첨가함으로써 손해를 보았다. 이는 율법에 첨가하지 말라는 계명의 근거로 제시된다, 창세기 랍바 19.3.
9) 우메츠 핫다아트 토브 바라아 로 토칼 민멘누 키 베욤 아콜카 민멘누 모트 타무트.
10) 우미페리 하에츠 아쉐르 베토크-핫간 아마르 엘로힘 로 토켈루 민멘누 벨로 틱게우 보 펜-테무툰.
11) 참고로, 새번역은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하셨다. 어기면 우리가 죽는다고 하셨다”로, 새한글성경은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셨어. 죽지 않으려면 말이지”로 번역함으로써, 이 구절이 지닌 경고와 금지의 어조를 충분히 살려서 번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