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목회 사역에서의 은퇴에 관한 어떤 지침도 주지 않는다. 성경은 오히려 육체적 죽음을 맞이하기 직전까지 사역을 계속한 사례를 기록한다. 모세는 죽기 직전인 120세까지 사역을 계속했고, 사무엘도 죽는 날까지 사역했다. 선지자 가운데 은퇴했다는 기록은 성경에 등장하지 않으며, 신약 사도들 가운데 은퇴한 사도도 없다. 목회 사역 은퇴는 성경에 직접적인 근거를 둔 발상이 아니다. 목회자가 목회 사역을 감당할 만한 건강 상태, 월급을 받고 일하는 사회의 다른 직업과의 균형, 교단의 특수한 사정 등을 감안해 교단이 총회의 결의를 통해 교회법으로 정한 규정이다. 

주일예배, 오후예배, 수요예배, 금요철야예배, 새벽예배 등을 위한 설교 준비, 교회 행정과 각종 상담과 훈련과 심방 등 지역 교회의 목회 업무는 너무 과중해 강인한 체력을 요구하며 일정한 노화 단계에 들어선 이후에는 감당하기 벅차다. 또한 공무원이나 교사, 교수처럼 월급을 받으면서 일하는 사회의 직업이 있는 자들이 60-65세를 넘기지 않고 은퇴하는 마당에 동일하게 월급을 받으면서 사역하는 목회자만 은퇴 없이 사역하는 것도 사회의 따가운 눈총을 받을 수 있다. 이런 사정을 감안해 대부분의 한국 교단이 70세 무렵을 목회 업무 은퇴 시점으로 정하고 있다. 

목회자의 은퇴가 절대적인 성경의 명령은 아니지만 목회자의 건강과 사회적 상황을 고려해 목회자의 은퇴 시기를 정하고 있는 교단의 결정은 타당하다고 판단된다. 따라서 교회법상 규정으로서의 목회자 은퇴를 전제하면서 최대한 교회의 덕을 세우고 목회자 자신의 유익을 위해 목회자가 은퇴 이후의 삶을 설계하는 것은 필요하고 지혜로운 일이라고 본다. 

은퇴 후에는 목사에서 교인으로

원래 목회자도 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신앙생활을 시작한 신자이자 교인이었다. 목회자는 교인들 가운데 하나님의 특별한 부르심을 받은 자로서, 부르심을 받는 순간부터 내면적으로 교인들과 구별되기 시작한다. 부름 받은 교인은 ‘하나님이 교회에게 보내는 자’라는 새로운 기능상의 신분을 부여받는다. 부름 받은 교인은 노회에 소속되고, 노회의 위탁으로 신학교에 들어가 목회 업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전문적인 훈련을 받게 되며, 훈련을 받은 후에는 일정한 시험 과정을 거쳐 목사로 안수받고 노회의 정회원이 된다. 그는 노회의 파송을 받고 교회 전임 사역자가 돼 목회 업무를 시작한다. 교회법상으로 목회자는 교회의 회원이 아니라 노회의 회원이다. 

목회자가 은퇴하는 순간, 교회 담임목사로서의 업무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이는 교회법상 목사로서의 업무가 끝난다는 뜻이다. 교인이자 목사였다가 이제는 목사라는 직책이 떨어져 나간 것이다. 물론 은퇴한 후에도 예의상 ‘목사’라고 불러 주기는 하지만 정확한 신분은 교인이다. 평생 목회 업무에 헌신했어도 궁극적인 구원은 다른 교인들과 동일한 조건으로 받지 목회 사역의 결과로 받지 않는다. 그날에는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폐하고 지식도 폐한다”(고전 13:8)는 말은 목회자도 마지막 날에 궁극적 구원은 다른 교인들과 동등한 조건에서 받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따라서 목회자는 은퇴하는 즉시 목회자로서 가졌던 마음의 부담을 내려놓고 교인의 입장으로 돌아가는 연습을 해야 한다. 은퇴를 통해 목회자로서 짊어져야만 했던 지역 교회 목양의 짐을 벗는 것은 엄청난 자유함이자 하나님의 선물이다. 이 선물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즐겨야 한다. 은퇴한 목회자는 단호하게, 그리고 미련 없이 지역 교회 목양의 짐을 벗어버려야 한다. 지고 갈 수도 없는 가상의 짐을 마음속에 만들어서 짊어질 필요가 없다. 이는 본인에게도 유익이 없고 교회에게는 더더욱 유익이 없다.

은퇴목사는 우선 성경을 읽는 관점부터 바꿔야 한다. 목회 사역을 하는 동안 성경을 읽고 연구하는 순간은 설교 준비 작업이었고 교인들을 감동시켜야 한다는 강박관념 안에서 행하는 힘든 일거리였다. 바로 이 일거리로부터 자유함을 얻어야 한다. 은퇴 이후부터는 교회를 위해서 성경을 읽고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신자의 입장에서 자기 자신을 위해서 성경을 읽고 연구해야 한다. 성경을 읽는 가운데 한 명의 신자이자 교인인 자신에게 주시는 위로의 말씀을 듣고 힘을 얻으며, 자신에게 주시는 경고의 말씀을 듣고 회개함으로써 마음속에 있는 죄의 짐을 덜어내야 한다. 그러면 성경 읽기와 연구가 즐거운 시간이 되고 영적으로 자신의 영혼을 살찌우는 훌륭한 쉼의 시간이 된다. 

지역 교회를 담임하려면 평범한 교인들이 갖고 있는 정도의 믿음만으로는 안 되고 특별한 믿음의 능력을 은사로 받아야 한다. 그러나 은퇴한 이후에도 담임 목회를 할 때의 그 능력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목회자로서 사역하는 기간에는 특별한 믿음의 능력을 주시지만 사역이 끝나면 더 이상 그 능력을 주지 않으실 수 있다. 사역하는 동안 행사했던 능력이 줄어드는 것을 아쉬워할 필요가 없다. 큰 능력이 주어진다는 것은 그만큼 책임도 뒤따르는 것이며, 능력이 줄어든다는 것은 책임도 줄어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는 것이 은퇴한 목회자에게 유익하다. 

사역하던 교회를 떠나라 

은퇴목사는 목회 사역에서 떠난 후에 교인의 신분으로 돌아가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사역하던 지역 교회의 교인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교회법상으로는 자신을 파송했던 노회로 돌아가는 것이다. 따라서 은퇴목사는 은퇴하는 순간 자신이 파송 받아 사역했던 교회를 떠나는 것이 바른 결정이다. 담임목사로 평생 목회한 교회가 자신이 개척해 설립한 교회더라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사역이 끝나면 목회자는 그 교회 소속이 아니다. 목회자가 교회를 개척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재정을 교회에 투입했다 해도, 그 재정은 목회자가 교회에 헌납한 것이므로 목회자의 소유가 아니라 교회의 재산이며 교회를 떠날 때 자신이 투입한 지분을 돌려 달라고 요구하면 안 된다. 목회자는 교회가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 정해준 것 외에는 일체 교회 재산에 손을 대서는 안 된다. 

후임 담임목사가 마음이 너그럽고 교인들의 마음이 따뜻하여 은퇴목사에게 계속 교회에 머물러 달라고 권유하는 것은 아름다운 모습이다. 그러나 은퇴목사는 이 권유를 고맙게 생각하되 정중하게 거절해야 한다. 후임 목사가 강단에서 설교할 때 전임 목사가 회중석 말미에 앉아서 ‘설교를 잘 하나 보자’라는 눈빛으로 앉아 있으면 얼마나 부담이 되겠는가? 

은퇴목사에게는 항상 아쉬움이 남는다. 몇 년  더 사역했다면 신앙이 어린 몇몇 성도를 잘 양육해서 성장시켜 놓았을 것이라는 회한도 남는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회한이 아니다. 인류 구속사역을 행하신 예수님의 사역 기간은 딱 3년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몇 년 더 했으면 하는 후회는 전혀 없으셨고 “다 이루었다”고 선언하시며 구속 사역을 마무리하셨다(요 19:30). 바울도 한 사역지에서 사역한 최장 기간이 2년이었다(행 19:10). 

예수님과 바울의 경우를 잠깐만 생각해 봐도 한 사역지에서 수십 년간 사역하고 나서 더 사역하고 싶은 아쉬움을 가진다는 게 과도하지 않은가? 고린도교회에서 바울은 심는 정도의 역할만 하고 떠났고 아볼로도 물을 주어 성장을 돕는 정도의 역할을 하고 떠났다. 왜냐하면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목회자는 하나님이 성도를 돌보실 때 잠시 옆에서 심부름하는 조수 역할 정도일 뿐, 교인이나 교회를 주도적으로 지도하는 목자가 아니다. 목자의 일은 하나님이 하신다. 목회자에게는 교인이나 교회와 영원히 함께하면서 이끌어 줄 능력이 없다. 

교인들이 은퇴목사 앞에서는 은퇴목사에 대한 그리움과 애정을 표현하지만 이 표현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교인들은 점점 늙어 가는 은퇴목사에게 관심이 있기보다 훨씬 젊고 유능하며 힘이 있는 후임 담임목사에게 신선한 기대감을 갖기 마련이다. 교인들의 마음은 은퇴목사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은퇴목사를 떠나 후임 담임목사에게로 이동하게 돼 있으며, 또 그래야 한다. 이 같은 교인들의 심리를 읽어내지 못하고 교인들이 표면적으로 보여 주는 예의상의 친절에 의지해서 거취를 정하면 바로 그 순간부터 은퇴목사는 교인들에게 짐이 되기 시작해 마침내 애물단지가 되고 만다.

은퇴 후 교회에서 봉사할 때 주의할 점 

후임으로 온 담임목사의 배려 하에 은퇴목사가 자신이 섬기던 교회에서 설교나 성경 공부를 인도하는 정도의 봉사를 담당하는 일은 바람직하다. 사실 은퇴목사는 수십 년간 성경을 묵상하고 연구해 왔고 교회를 운영하고 교인들을 상담 지도한 최고의 전문 인력이다. 사람들을 영적으로 이해하고 돌보는 관점이나 기술, 신학적 이해는 연륜이 쌓일수록 깊어지고 넓어지기 마련이다. 은퇴목사가 공적인 목회 업무는 맡지 않는다 해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그가 가진 깊고 넓은 경륜을 어떤 방법으로든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바람직하며, 이 경륜을 활용해 후임 담임목사의 공적 목회 업무를 측면에서 보조할 수 있다. 

은퇴목사가 교회의 설교나 성경 공부를 맡아 봉사할 때 넘어서는 안 될 선이 있다. 이 선을 넘으면 은퇴목사의 봉사는 교회에 부담이 된다. 은퇴목사는 담임목사의 초청을 받은 외부 강사로서 담임목사가 맡기는 사역만을 충실하게 수행해야 하는 신분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물론 수십 년간 목회한 교회이기에 후임 담임목사와 교인들은 최대한 예우를 갖춰서 따뜻하게 대우할 것이다. 교회는 마땅히 은퇴목사를 이런 마음으로 대우해야 한다. 

그러나 은퇴목사 자신은 교회의 배려를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되, 마음가짐에 있어서 자신의 신분이 외부 강사의 신분임을 냉정할 정도로 철저하게 자각하고 있어야 한다. 특히 설교나 성경 공부를 인도할 때, 후임 담임목사가 교회법상 자신에게 부여된 고유한 권한으로 수행하는 교회행정상의 조치들에 관여하는 의견이나 평가, 비판을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은퇴목사는 자기에게 합법적으로 권한이 부여되지 않은 교회행정상 사안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 이런 관여는 교회에 일파만파의 분란을 일으킬 수 있다. 만일 의견이 있으면 후임 담임목사와 개인적으로 만난 자리에서 전달하고 교인들에게 그 의견을 밝히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은퇴목사는 설교나 성경 공부에서 성경이 말하는 복음과 신자의 삶의 원리를 충실하게 가르치는 데 집중해야 한다. 그러면 은퇴목사의 교회 봉사는 후임 담임목사의 목회와 교인들을 영적으로 풍성하게 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이때 은퇴목사가 유의할 또 한 가지는 후임 담임목사와만 모든 소통을 진행하고 교회 안에서의 공개된 교제의 자리가 아닌 한, 교인들과의 사적인 교제는 철저하게 차단해야 한다는 점이다. 

M교회의 담임목사는 적합한 절차를 밟아 후임 담임목사에게 업무를 인계한 직후 바로 교회를 떠났고 교회를 떠난 후 교인들과의 일체의 접촉을 차단했다. 후임 담임목사는 분기별로 한 번씩 주일 낮 예배 설교를 맡도록 배려했고, 은퇴목사는 설교하는 날, 공개된 자리에서 성도들과 하루 정도 따뜻한 교제를 나눈다. 이 정도 선에서 교인들과 사랑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자연스럽게 마음이 멀어지도록 하는 연착륙정책은 매우 바람직하다.

이에 반해 K교회의 경우에는 은퇴한 원로목사가 교회를 떠나지 않고 매주 교회에 출석한다. 그의 친구 목사가 교회를 떠나 자신이 참여하는 은퇴 목회자 예배 모임에 참여할 것을 권유했으나 원로목사는 자신이 사역하던 교회 예배 출석을 고집했다. 이렇게 되면 후임 담임목사가 인지상정상 은퇴목사의 교회 출석을 막기 어렵다. 후임 담임목사는 원로목사를 배려해 한 달에 한 번 주일 낮 예배 설교를 맡겼다. 그런데 은퇴목사는 이 시간에 성경을 충실하게 강해하는 것을 소홀히 하고 후임 담임목사의 권한 하에 있는 교회 행정상의 문제들에 대해 자신의 의견 표명을 반복했다. 이런 의견 표명은 결국 후임 담임목사에 대한 비판으로 비춰지기 마련이다. 이 설교는 후임 담임목사에게 부담으로 누적됐고 급기야는 후임 담임목사가 직권으로 설교를 중지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 

필자는 2021년에 신학대학원 교수직을 은퇴한 이후 네 교회의 협동목사를 맡아 섬기고 있다. S교회는 2001년 교회 개척 당시부터 신학대학원 제자였던 담임목사의 권유로 섬기기 시작해 지금까지 25년 동안 한 달에 한 번 주일 낮 예배 설교를 담당하고 있다. K교회와 A교회에서도 담임목사의 권유로 한 달에 한 번 주일 낮 예배 설교를 담당하고, S교회에서는 전반기와 후반기에 성도들을 위한 집중성경 강좌를 담당한다. 필자는 협동목사로 설교와 성경공부를 인도할 때 앞에서 제시한 원칙들을 철저하게 준수해 왔다. 

첫째, 담임목사를 제외한 모든 교회 구성원과 개인적으로 교제하지 않는다. 부교역자들이라 해도 담임목사의 지시가 없는 한 교제하지 않는다. 둘째, 설교나 성경 강의의 내용은 성경을 충실하게 강해하는 데 집중한다. 셋째, 설교나 성경 공부 시간에 교회 행정상의 사안에 대해서는 거론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