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출간된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은 전 세계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능력주의’에 관한 논쟁을 촉발시켰다. 현대사회에서 세속적 성공과 도덕적 탁월성을 보증하는 모두의 공공선으로 작동하는 ‘능력’이 과연 공정한 경쟁을 통해서 형성되는 것인지 의문을 제기했다.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 공화당 후보를 지지했던 미국 백인 노동자층이 느꼈던 좌절감과 불평등을 관찰하면서, 미국에서 능력이 많은 엘리트에게 부여되는 기회가 얼마나 불공정한지를 파고들었다. 미국 고등학생의 SAT 점수는 소득에 따라 10배 가까이 차이가 났고, 하버드대학의 입학생 중 소득 상위 1%인 가정이 상당하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가정 소득과 교육 기회의 상관성을 지적했다.

오늘날 능력주의는 출발선의 불공정성을 지적하지 않은 채, 결과의 공정성이 보장돼야 한다는 논리 하에 사회적 불평등을 더욱 견고히 유지해 왔다. 실력에 따라 개개인에게 다르게 보상이 주어져야 한다는 원칙은 대학의 문턱을 밟지 못한 이들에게는 가혹한 형벌과도 같다. 유능함을 추구하려는 인간의 순수한 본능과는 다르게,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공정 투쟁을 벌여야 하는 현대인들은 ‘공정이라는 허울뿐인 신화’에 갇힌 경쟁을 이어갈 뿐이다. 무한 경쟁 속에서 자신의 기량을 뽐내는 것은 순수한 자기 능력의 결과라기보다는 주어진 환경에 따른 차이라면 승자가 독식하는 사회는 치킨 게임에 불과하다. 샌델은 공공선의 추구를 위해 능력에 따른 보상보다 약자와 연대하고 보상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배려와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더 나아가 공동체의 가치를 인정하고 겸손한 마음과 서로 존중하려는 자세를 요청한다. 

볼프의 《야망의 대가》는 능력주의가 갖는 죄성을 윤리신학적 관점에서 접근한다. 더 나아지려는 인간의 열망이 과연 창조주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선한 본성과 의지에 근거한 것인지, 아니면 타락한 인간의 죄성에 의한 것인지를 구별하면서, 배타적 포용성이 자신과 타인을 어떻게 무너뜨리는지를 다루면서, 모두에게 유익이 되는 포용적 탁월성을 제안한다(물론 볼프가 우월성을 ‘배타적’ 또는 ‘포용적’으로 명시적으로 구분하지는 않는다. 이는 필자가 볼프의 논의를 바탕으로 개념화한 것이다). 그는 샌델의 문제의식을 이어받아 신앙의 관점에서 우월성을 추구하려는 이기심을 벗어내고 자신의 자아 됨, 즉 더 나은 자기를 향한 탁월성에 이르기를 제안한다. 

우월함을 추구한 세 이야기

우월함을 추구하려는 인간의 열망은 선한 것일까 악한 것일까? 볼프는 이 책에서 타인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려는 야망이 순수한 목표를 가지게 할 수도 있지만, 그 이면에 감춰진 비교의식과 자아도취는 야망의 대가가 얼마나 우리를 소진시키고 쇠잔하게 만드는지를 폭로한다. 그는 1부 “남보다 나아지려는 야망, 그 끝에 남은 허기”에서 동로마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1세, 철학자 쇠렌 키르케고르, 문학자 존 밀턴을 통해 야망의 대가에 대해 살핀다. 이어 2부 “비교와 경쟁 너머, 탁월함을 향하여”에서는 신학자 사도 바울, 예수님의 가르침과 창세기의 이야기들이 이 문제에 어떤 대안을 제시하는지를 탐구한다. 각각의 사례는 샌델의 접근과는 다르게 인간 내면의 우월성, 또 영적인 우월성이 어떻게 구체적인 결과물로 나타나는지를 묘사한다.

볼프의 최근작들은 공적 이슈와 같은 큰 사건을 다루기보다는 일상의 소소한 주제에 몰두한다. 공공신학의 관점에서 인종 문제, 평화 문제, 종교 문제 등을 삼위일체론과 기독교 윤리학적으로 전개하던 방식에서 The Hunger for Home(2022), The Home of God(2022), Life Worth Living(2023)처럼 거주 공간과 삶의 방식에 관한 논의로 옮겨 가고 있다. 공공선이 공론장에서 다뤄야 할 이슈지만 각각의 적용은 실제적인 삶의 자리에서 펼쳐져야 하기 때문이다. 

볼프는 이 책의 첫 장에서 흥미롭게도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한 솔로몬 왕과 자신을 비교했던 동로마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1세를 비교하며 글을 열어 간다. 이스탄불에 자리한 하기아 소피아(성 소피아 성당)는 537년 동로마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대제에 의해 완공됐다. “내가 이 과업을 감당할 자격이 있다고 여겨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오 솔로몬이여, 내가 그대를 능가했노라!” 건축을 마치고 그가 했던 고백은 하나님의 성전을 짓고자 했던 왕의 본심을 잘 보여 준다. 하기아 소피아를 완성한 유스티니아누스는 솔로몬의 성전보다 더 크고 화려한 성전을 건축하면서 자신의 우월함을 증명하려 했다. 하나님의 우월성을 증명하기 위한 성전은 하나님이 아닌, 인간의 우월성을 증명하는 방식으로 바뀌었고, 이는 신실한 믿음에서 비롯된 동기가 아니라, 다른 인간 왕들보다 더 우월해지려는 그릇된 욕망에서 출발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무관한 자기 과시는 하나님을 도구로 이용한 헛된 야망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의 믿음을 누군가와 비교하면서 증명해야 한다면, 과연 누가 하나님 앞에 올바르게 설 수 있을까? 

볼프는 우월성(excellence)이 아닌 탁월성(superiority)을 추구하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탁월성은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지속적인 성장과 향상을 위한 노력이라 정의했다. 어제의 나보다 더 나아지려는 노력만이 건강한 우월성의 출발임을 제안한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인간은 자신의 우월함을 타인에게서 인정받으려 할까? 바로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스스로 불완전한 존재임을 알기에 이를 감추고자 하는 열망과 연약함을 솔직히 받아들이려는 자세가 동시에 혼재한다. 키르케고르는 이러한 비교의식을 영혼의 ‘독’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백합과 작은 새 이야기를 통해 열등한 비교의식과 허황된 우월성의 추구가 낳은 비참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솔로몬의 영광보다도 아름다운 한 백합이 있었는데, 사악한 새 한 마리가 백합의 아름다움을 질투하여, 세상에는 훨씬 더 아름다운 크라운 임페리얼 백합이 있다고 말해 준다. 그 백합은 작은 새의 이야기에 사로잡혀 화려한 백합들이 사는 곳으로 이사가고 싶었고, 작은 새에게 부탁해 땅에 박힌 뿌리를 뽑아 달라고 간청한다. 결국 작은 새는 조금씩 백합의 뿌리를 뽑았고, 그 영광을 향해 땅으로 가는 도중, 결국 백합은 죽고 만다. 불안한 비교의식은 결국 영혼을 병들게 한다. 그 비교 대상은 미적 아름다움, 탁월한 성과, 도덕적인 완결성을 넘어서 하나님에게까지 질투심을 느끼게 한다. 눈에 보이는 타인이 아닌 보이지 않는 대상을 넘어서려는 무모함마저 보인다. 

존 밀턴은 《실낙원》과 《복낙원》을 통해서 경쟁에서 이기려는 우월성의 추구가 어떻게 하나님을 대항하게 하는지를 세밀하게 표현했다. 모든 천사 중에 가장 존귀한 존재였던 사탄은 자신이 경배해야 하는 하나님보다 더 뛰어난 존재가 되려 했다. 하나님에게서 열등감을 느꼈던 사탄은 하나님이 만드신 인간을 유혹하여 거짓된 우월성을 추구하게 하면서 타락시킨다. 하나님의 불완전성을 공격하고자 열등감에 사로잡힌 인간을 이용한 것이다. 사탄은 여자에게 선악과를 먹으면 연약한 존재를 넘어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있다고 유혹한다. 열등감은 우월해질 수 있다는 착각을 만날 때, 거짓된 해방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인간은 절대로 자기 열등감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존재일까? 《복낙원》에서 밀턴은 사탄에게 시험받으시는 예수님의 모습과 그분의 대답을 통해 자기 혐오적인 능력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한다. 예수님은 사탄의 유혹에도 스스로 영광을 취하지 않으신다. 광야에서 받은 세 가지 시험은 하나님의 아들이 연약한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이지, 신적 능력을 발휘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님을 밝히 보여 주셨다. 하나님의 영광 아래에 머물러 있는 것이 얼마나 값지고 지혜로운 것인지, 하나님을 찬양할 때 그분의 영광이 어떻게 우리에게 덧입혀지는지를 보이셨다. 스스로 우월함을 추구하려는 존재는 자신의 덫에서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 자신보다 더 우월하신 분 앞에 겸손히 엎드릴 때 비로소 자신의 연약함이 발견되지 않을까!

포용적 탁월성을 향하여 

볼프는 자기 만족적인 우월성을 극복할 수 있는 두 가지 접근에서 예수님과 바울의 입장을 소개한다. 성경을 통한 해결책 제시가 너무나 뻔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볼프가 성경을 통해서 논지를 펼쳐 가는 모습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사실 전작 《하나님의 집》에서 지나치게 성경을 토대로 글을 전개하기에 글쓰기 스타일이 바뀌었다고 생각했다. 기독교 윤리학자들이 받는 비판 중에 하나는 학제 간 연구에 집중하면서 신학의 근거로서 성경을 제대로 살피지 않는다는 점이다. 볼프의 바울서신 해석에 전부 동의하지는 않지만, 능력주의와 관련하여 그가 성서해석에 상당한 공을 들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볼프는 바울서신에서 두 가지의 통찰을 제시한다. 하나는 동등한 돌봄이다. 고린도전서의 분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바울이 제시한 몸의 은유에서 각자의 은사는 서로의 잘남이 아니라 ‘덜 귀히 여기는’ 지체들의 동등한 존중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소개한다. 이 과정에서 볼프는 기독교 공동체가 빠질 수 있는 ‘도덕적 능력주의’를 경계한다. 타인보다 더 나아지려는 세속적 능력주의와 다르게 종교적 능력주의는 자신이 얼마나 더 경건한지, 신과 가까이 있는지, 섬김과 구제에 최선을 다하는지 율법적(외식적) 능력주의에 빠질 수 있다. 볼프는 빌립보서에 나오는 그리스도 찬가에서 종의 형체를 취하시며 사람으로 오신 성육신한 그리스도는 자신의 낮추심으로 하나님의 높이심을 보이셨다고 주장하면서, 먼저 낮추는 자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높이시는 은혜를 설명한다. 

바울이 제시하는 우월성은 다른 사람보다 나아지려는 선택이 아니라, 모두와 함께 성취할 수 있는 포용적인 우월성이다. 그 길은 치열한 경쟁과 비교의식을 통해 완성되지 않으며 자신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자기 겸허와 비움을 통해 이뤄진다. 바울은 오히려 ‘자랑할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고 권면한다. 여기에서 자랑하다는 헬라어 카우카오마이()를 사용하는데 ‘자랑하다’, ‘기뻐하다’란 뜻 외에도 ‘무엇을 영광으로 삼다’란 의미가 있다. 즉 인간적인 조건을 자랑삼지 말고, 하나님 안에서의 영광스러움을 즐거워하며 그것을 내세우라고 주장한다. 세속의 우월성 추구는 인간의 내외적 조건을 전제로 하지만, 그것은 타인과의 경쟁, 공동체의 붕괴, 내적 기쁨의 소실을 가져오기에 배타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바울이 내세우는 우월성은 나의 잘남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잘남이다. 그리스도의 잘남은 그분과 연결된 모든 지체의 잘남으로 이어진다. 서로를 향한 존경과 동등한 돌봄을 통해서 그리스도 공동체는 명예를 향한 경주를 멈추고 연약함(수치)을 향한 경주로 나아갈 것이다. 우리는 예수 안에서, 예수를 통하여, 예수와 함께 십자가의 수치가 가져온 탁월한 영광스러움을 보게 될 것이다.

우월함에서 소명으로 

볼프는 마지막 장에서 예수님의 제자인 세배대의 아들들이 주의 나라에 임할 때,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해 달라는 대목에서,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돼야 한다는 말씀에 주목한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분명하다. 믿음 안에서 지위는 취득되는 것이 아니라, 주권자에 의해서 주어지는 것이다. 은혜의 선물로 하사된 것이다. 사탄은 자신의 공적에 대해 인정받지 못함을 두고 하나님께 대항했지만,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지위는 무공로적이지 조건적이지 않다.

섬김은 영광에 이르는 수단이 아니라, 영광이 무엇인지를 드러내는 방식이다. 내가 누구를 섬기는지는 곧 나 자신이 누구인지, 누구와 함께하며 살아가기를 기뻐하는지를 드러낸다. 하나님은 우리를 우월한 자로 부르신 것이 아니라, 섬기는 자로 부르셨다. 모든 사람의 종으로 섬기는 자는 세속적 능력주의를 극복할 뿐 아니라 탁월함에 이르는 덕스러운 존재가 될 것이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더 깊고 고귀한 목표로 ‘은혜로 말미암은 탁월함’(excellence)을 제시한 볼프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물이니 끝없는 경쟁과 비교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기 헌신과 낮춤을 통한 영광 성취의 삶으로 우리를 이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