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신이라는 보수적인 교회에서만 자란 필자는 미국 유학 중 다른 진보적인 교단 목사들과 처음으로 교제를 한 적이 있다. 그곳에 있는 목사들은 대부분 나이가 많았는데, 그 중에 한 명이 동갑이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정말 제가 몰라서 그러는데 목사님은 부활을 정말로 믿습니까?” 그 말은 들은 젊은 목사는 주위를 잠시 둘러보더니 나이 드신 선배 목사들이 가까이 없는 것을 확인한 다음, 필자에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어떤 의미에서 부활을 말하는가요?”라고 되물었다. 그 반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잘 알았기에 필자는 “아! 그렇군요.”라고 말하면서 대화를 종결했다.
이제 한 세대가 지났으니 현재 상황은 더 심각해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목사들은 모두 강단에서 “예수님이 부활하셨습니다”라고 설교를 하지만, 그 의미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듣는 청중은 예수님이 실제로 죽었다가 살아났다고 믿겠지만 그것을 전하는 목사는 예수님의 고귀한 희생정신이 회복되었다는 의미로 설교할 수도 있다. 실제로 자유주의 신학에 영향을 받은 대부분의 신학자가 예수님의 부활을 그와 유사하게 논증한다. 그들의 논증은 그들이 저술한 책에 실려서 젊은 세대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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