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와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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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2026년  04월호 사도적 증언에 근거하여 부활의 복음을 들려주고 보여 주는 자 부활, 일상을 꿰뚫는 복음의 빛

고신이라는 보수적인 교회에서만 자란 필자는 미국 유학 중 다른 진보적인 교단 목사들과 처음으로 교제를 한 적이 있다. 그곳에 있는 목사들은 대부분 나이가 많았는데, 그 중에 한 명이 동갑이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정말 제가 몰라서 그러는데 목사님은 부활을 정말로 믿습니까?” 그 말은 들은 젊은 목사는 주위를 잠시 둘러보더니 나이 드신 선배 목사들이 가까이 없는 것을 확인한 다음, 필자에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어떤 의미에서 부활을 말하는가요?”라고 되물었다. 그 반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잘 알았기에 필자는 “아! 그렇군요.”라고 말하면서 대화를 종결했다. 

이제 한 세대가 지났으니 현재 상황은 더 심각해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목사들은 모두 강단에서 “예수님이 부활하셨습니다”라고 설교를 하지만, 그 의미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듣는 청중은 예수님이 실제로 죽었다가 살아났다고 믿겠지만 그것을 전하는 목사는 예수님의 고귀한 희생정신이 회복되었다는 의미로 설교할 수도 있다. 실제로 자유주의 신학에 영향을 받은 대부분의 신학자가 예수님의 부활을 그와 유사하게 논증한다. 그들의 논증은 그들이 저술한 책에 실려서 젊은 세대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다. 

누구의 부활인가?

부활은 한자로 ‘復活’이다. 다시 살아났다는 말이다. 따라서 부활은 죽음을 전제한다. 부활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는 말이다. 죽지 않은 사람이 부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부활을 다시 살아났다는 말로만 이해하면 부활에 대한 올바른 의미를 이해하기 어렵다. 

성경에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들이 많다. 구약에는 엘리야가 사르밧 과부의 아들을 살렸고(왕상 17:17-24), 엘리사는 수넴 여인의 아들을 살렸다(왕하 4:32-37). 예수님 역시 야이로의 딸을 살렸고, 나인 성 과부의 아들을

이성호 고려신학대학원 교회사 교수. 미국 칼빈신학교(Ph.D.). 저서로 《직분을 알면 교회가 보인다》, 《성찬: 천국 잔치 맛보기》 등이 있다. 필자의 다른기사 keyboard_arrow_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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