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언어로 기록된 책이다. 언어를 통해 세계를 여는 책이며 언어라는 창문을 통해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바라보는 것이다. 이 연재는 그 창문을 통해 성경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려는 시도다. 히브리어라는 낯선 언어와 그 언어가 기반하고 있는 ‘히브리적 사고’를 통해 성경을 여는 첫 책인 창세기의 세계를 12회 연재로 탐험해 보고자 한다.
이 연재는 창세기를 구성하는 30여 개의 히브리어 단어나 구절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단순히 어원을 해설하거나 문법적 지식을 전달하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처음으로 받은 고대인의 시선으로 세상을 다시 보고, 하나님과 사람과 땅을 연결하고자 한다. 말씀으로 지어진 세계에서 그 말씀을 살아내는 것이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함께 성찰하는 여행이 되기를 소망한다.
바라와 바달: 창조의 시작, 질서의 시작
1. 최초의 동사 ‘바라’: ‘창조하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
성경에서 최초로 등장하는 동사는 ‘바라’다. 성경이 기록하는 하나님의 첫 행동이며,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다. 창세기(創世記)라는 제목의 첫 글자 ‘창(創)’은 ‘열 창’ 자다. 이 바라를 번역한 것으로, 세상을 처음 여는 이야기라는 뜻이다.
이 단어는 오직 하나님만을 주어로 삼는다고 알려져 있다. ‘만들다’라는 의미의 아사 ‘빚다’라는 뜻의 야짜르 등은 인간에게도 쓰이는 동사다. 하지만 ‘바라’는 하나님만을 주어로 하는 동사다. ‘죄를 용서하다’는 살라흐처럼 바라도 하나님의 고유한 활동으로 간주돼 왔다. 하지만 ‘바라’의 어원은 조금 더 복잡하다. 성경에서 사람이 주어가 돼 사용된 경우도 있다.
“… 브리스 족속과 르바임 족속의 땅 삼림에 올라가서 스스로 개척하라(바라) 하니라”(수 17:15).
“무리가 그들을 돌로 치며 칼로 죽이고(바라) … 그 집들을 불사르리라”(겔 23:47).
이 두 경우 모두 문맥에 맞게 의역한 것으로, 어원적 의미는 ‘(돌이나 나무를 칼로) 깎다, 조각하다, 자르다’라는 뜻이다. 칼로 깎고 다듬듯이 땅을 조각하라는 의미고, 사람들을 칼로 조각내 죽이라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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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어에서는 추상적인 의미가 아니라 구체적인 동작에서 단어가 출발한다. 무엇인가 자르고 깎는 매우 물리적이고 촉각적인 활동에서 ‘만들다’, ‘창조하다’라는 의미로 확장된다고 보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다. 인간도 할 수 있는 아사나 야짜르와 같은 단어로 하나님의 행위를 묘사하는 데 전혀 주저함이 없는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이, 굳이 깎고 자르는 행위와 하나님의 창조 행위를 구별하려고 애를 쓸 필요는 없어 보인다. 하나님의 창조를 마치 혼돈 속에서 형태를 깎아내고 경계를 나누는 조각가의 행위에 비유하는 것은 전혀 신성 모독이 아니다.
2. 창조의 의미 ‘바달’: ‘나누다, 구분하다’
창세기 1장에서 바라 못지않게 중요한 동사가 있다. 바로 ‘바달’, 곧 ‘나누다, 구별하다’라는 의미의 동사다. 이 동사는 하나님의 창조 행위 전체를 설명하는 키워드다. 하나님이 빛을 창조하시기 이전의 상태는 다음과 같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창 1:2). 성경의 관심은 빛이 만들어지기 이전의 상태가 “흑암”과 “깊음”이 한 데 붙어 있는 “혼돈”과 “공허”의 세계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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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창조의 의미가 드러난다. 하나님은 빛을 창조하신 뒤 곧장 이렇게 하신다: “빛과 어둠을 나누사”(창 1:4). 첫 창조의 목적은 구별하고 나누기(to divide) 위함이다. 둘째 날에 하늘(궁창)을 만드시고, “물과 물로 나뉘게 하셨다”(1:6-7). 셋째 날에는 물을 한 곳으로 모으시고, 육지와 바다를 구분하신다(1:9-10). 넷째 날, 하늘의 광명체들을 만드신 목적도 “낮과 밤을 나누기 위함”(1:14)이다.
창조 기사의 또 다른 핵심어는 “각기 종류대로”(레미네후)다. 하나님은 생명체를 마구잡이로 퍼뜨리지 않으신다. 식물과 나무, 물고기와 새, 들짐승과 가축이 모두는 “각기 종류대로” 창조된다(1:1112, 21, 2425). 이 “종류대로”라는 표현은 창세기의 질서 언어다. 단순히 다양한 종을 만들었다는 의미가 아니다. 혼돈 속에서 질서를 세우고, 무질서 속에서 조화를 만들어내시는 하나님의 방식이다. 창조란 종류 없는 무질서의 공간을, 제각기 종류를 가진 존재들이 살아가는 생명의 공간으로 바꾸는 일이다. 하나님은 혼돈 속에서 선을 긋고, 영역을 나누며, 경계를 만드신다. 빛과 어둠이, 물과 물이, 바다와 땅이, 낮과 밤이 섞이지 않고 각자의 자리를 찾아가는 것. 그것이 창조의 본질이다. 하나님은 세상을 정돈하신다. 창조란 무언가를 ‘없던 것을 새롭게 만든다’는 의미지만, 그것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제자리를 찾아 주는 일’이다
3. 창조의 아름다움: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창세기 1장에서 일곱 번 반복되는 말이 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이 ‘좋다’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토브’다. 현대어에서 ‘좋음’은 주관적 선호의 언어지만, 히브리어에서 ‘토브’는 심미적인 동시에 윤리적인 ‘선(善)’의 개념을 포함한다. 좋은 것은 옳은 것이기도 하다. 옳은 것이 좋은 것이다. 무엇이 하나님께 ‘좋게’ 보였는가? 단지 빛이 눈부시게 아름다워서, 동물이 귀여워서가 아니다. 문맥을 보면, “좋았더라”라는 선언은 늘 ‘나눔’이나 ‘구분’ 뒤에 등장한다(창 1:4, 10). 즉,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것’은 정돈된 세상이다. 무질서에서 질서로, 혼돈에서 조화로 이끄는 창조의 과정 자체가 ‘선’이다.
4. 질서를 창조하시고 질서로 창조하신 하나님
창세기 1장의 창조 개념은 ‘무에서의 창조’(creatio ex nihilo)보다도, ‘혼돈에서 질서로’(from chaos to order)의 창조에 더 가깝다. 성경은 물이 언제 생겼는지, 흑암과 깊음이 어떻게 존재하는지 말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것들이 뒤섞여 있을 때 하나님이 어떻게 그 안에 질서를 심으셨는가다. 하나님은 나누셨다. 종류대로 구별하셨다. 그리고 그것을 ‘좋다’고 선언하신다. 창조란 존재를 만드는 일만이 아니라, 각 존재들이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를 찾아 주는 일이다.
아침에 해가 뜨고 저녁에 지고, 계절이 순환하며, 별들이 예측 가능한 궤도를 따라 움직이고, 콩을 심으면 콩이 나오는 이 규칙적인 세계. 이 규범적 질서를 창조하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다. 이것이 바로 성경을 여는 최초의 신앙고백이다.
세상이 움직이고, 세상을 움직이게 하는 그 깊은 원리를 헬라어로는 ‘로고스’라 부른다. 요한복음 1장의 “태초에 말씀(로고스)이 계시니라”라는 선언은, 입을 열어 말로써 무언가를 만들어 냈다는 뜻이라기보다, 하나님이 세상의 이치와 질서를 창조하셨고, 그것이 지금도 유효하다는 고백이다. 로고스는 혼돈을 가르고, 빛과 어둠을 나누며, 각각을 그 자리에 두는 창조 질서를 의미한다. 그리고 요한의 복음은 세상이 창조된 하나님의 질서가 곧 사랑이었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이것보다 더 큰 복음이 또 있을까.
동양에서는 이런 원리를 ‘도’(道)라 불러왔다. 흥미로운 것은, 1900년에 간행된 우리말 성경(신약전서)에서 요한복음 1장의 ‘로고스’를 ‘도’로 번역했다는 점이다.
3 창세기의 창조가 보여 주는 그 분별과 나눔의 질서, 그 규범의 언어를 로고스 또는 도라 부르는 것은, 단어를 넘어서 믿음의 감각을 일깨우는 번역이다.
우리 눈에 세상은 여전히 혼돈과 어둠으로 가득해 보이지만, 믿음의 눈이란 그 안에 하나님의 질서가 변하지 않고 흐른다는 것을 볼 수 있는 눈이다. 세상이 온통 가시들로 무장한 나무 같고 모두들 얼음 송곳으로 서로를 찔러 대는 것 같아도, 우리를 태어나게 하고 지금까지 살아 있게 한 것은 결국 사랑이었음을 깨닫는 것이 신앙이다. 이것이 창조의 복음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오늘도 그 위에 질서를 말하고, 나눔을 세우며, 종류대로 정리하신다. 삶이 엉켜 있을 때, 그 한가운데 하나님이 일하신다. 혼돈에서 조화를, 무질서에서 질서를, 어둠에서 빛을 창조하신 하나님. 그분이 지금도 우리 안에 사랑을 창조하신다.
첼렘과 데무트: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것은
1.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됐다는 선언은 우리에게 위로와 자긍심을 주는 구절이기도 하다. 모든 피조물 중 유일하게 하나님의 모습을 닮은 존재, 창조 세계의 중심이자 대표로 지음 받은 인간. 어떤 이들은 이 “형상”을 불멸성과 같은 신적인 속성으로 이해한다. 인간은 죽지 않고, 고귀하고, 거룩하며, 모든 생물보다 탁월한 존재, 본래 천사처럼 신비하고 영적인 본성을 지니고 태어났다고 이해한다.
하지만 정말 그러한가? 만약 인간이 본래부터 하나님의 형상대로, 곧 신적인 지혜와 불멸을 지닌 존재였다면, 왜 선악과를 먹고 나서야 비로소 눈이 밝아지고 선악을 알게 됐을까? 만약 인간이 창조부터 불멸의 존재였다면, 왜 하나님은 인간이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고 영생하게 될까 우려하셨을까? 하나님의 형상으로 태어난 것이 곧 ‘불멸성’을 뜻한다면, 생명나무나 선악과는 애초부터 필요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 인간을 자신의 형상으로 지었다고 말씀하신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형상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이 질문은 단지 신학적 사유를 위한 개념 정리가 아니다. 이 질문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우리는 인간이란 존재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 그리고 우리 삶의 방향과 목적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를 새롭게 정리하게 된다. 이 글은 바로 그 질문에서 출발한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이라는 말이, 단지 과거의 자부심이 아니라 오늘의 소명으로 들리기 위해서는, 그 형상이 무엇이며 지금도 유효한 것인지, 본문 속으로 들어가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
2. “우리의 형상(첼렘)을 따라 우리의 모양(데무트)대로”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시며 두 개의 단어를 사용하신다. 첼렘과 데무트는 각각 ‘형상’과 ‘모양’으로 번역됐고, 그 두 단어의 의미는 비슷하지만 동시에 단순히 같은 뜻을 반복한 것은 아니다. 첼렘은 주로 눈에 보이는 외형적 이미지를 가리키고, 데무트는 닮음이나 유사성을 뜻하는 말이다. 하지만 의미의 차이점을 강조하는 것은 좋은 해석 방법이 아니다. 서로 다른 어원에서 비롯한 단어들을 한 데 엮어 하나의 의미를 창출하는 히브리어의 평행법(parallelism)이라는 원리에 비추어, 이 두 단어의 유사점이나 공통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 단어의 의미를 잘 나타내는 성경 구절은 다음과 같다.
“그 땅의 원주민을 너희 앞에서 다 몰아내고 그 새긴 석상과 부어 만든 우상(첼렘)을 다 깨뜨리며 산당을 다 헐고”(민 33:52).
“그러므로 너희는 너희의 독한 종기의 형상(첼렘)과 땅을 해롭게 하는 쥐의 형상(첼렘)을 만들어…”(삼상 6:5, 11).
“그 가장자리 아래에는 돌아가며 소 형상(데무트)이 있는데…”(대하 4:3).
개역개정의 번역에서 보듯이 첼렘과 데무트를 모두 “형상”이라고 번역해도 무방할 정도로 두 단어의 쓰임은 거의 동일하다. 첼렘은 눈에 보이는 외형이자 만들어진 이미지다. 그 형상 자체가 어떤 능력이나 속성을 지닌 존재인 것은 아니다. 소의 외형(데무트)을 본떴다 해서 살아 움직이는 소가 되지는 못한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사람을 창조했다는 창세기 1장의 선언이 무색하게 이사야는 하나님을 그 어떤 형상과도 비교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형상으로 사람이 창조됐다는 말은 어떤 의미인가? 이 선언은 인간에게 어떤 역할을 부여하며, ‘하나님 닮은 존재’로서의 인간은 그 형상을 잃어버렸는가, 아니면 여전히 유효한가?
3. 하나님의 형상이란 무엇을 뜻하는가?
창세기 1:26이 인용한 하나님의 말씀은 이렇다.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이 문장은 두 개의 청유형 문장으로 구성된다: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 + “그들로 다스리게 하자.” 히브리어 구문론에 따르면, 이런 구조는 뒷문장이 앞문장의 목적(purpose)이나 결과(result)의 의미를 가진다.
4 즉, 하나님이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신 목적은 그들로 하여금 창조 세계를 다스리게 하기 위함이다. 이는 28절에서 한층 더 명확해진다.
여기에서 ‘형상’은 하나님의 능력이나 본성을 나눠 받은 존재라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통치와 질서 부여의 사역을 인간에게 위임하셨다는 뜻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표현은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일을 대리하는 소명과 책임을 인간에게 부여한다. 형상은 본래적 속성이나 정체성이 아니라, 부여된 역할이다. 존재론이 아니라 소명이다.
4. 타락 이후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하나님의 형상
아담과 하와의 타락 이후, 과연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렸는가? 적어도 창세기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데무트)대로 지으시되 … 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데무트) 곧 자기의 형상(첼렘)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창 5:13).
이 본문은 세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려 준다. 첫째, 인간은 여전히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됐다고 기록돼 있다. 둘째, 형상과 모양은 단지 아담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식에게도 이어진다. 셋째, 아담과 셋 사이의 관계는 단지 외형의 유사성을 넘어, 역할의 계승을 보여 준다.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면 그 사람의 피도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첼렘)대로 사람을 지으셨음이니라”(창 9:6).
이 말씀은 노아 홍수 이후, 즉 인류의 타락과 폭력이 극에 달했던 시점 이후에 주어진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여전히 인간을 자기 형상대로 지으셨다고 말씀하신다. 이는 단지 과거형 진술이 아니다. 지금도 그렇다는 선언이다. 즉, 인간은 죄를 지었어도, 타락했어도, 하나님의 형상은 여전히 그 안에 남아 있다. 그 형상은 사라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간의 본성에 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기 때문이다.
5. 타락 이후에도 끊어지지 않은 관계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금이 가게 만들었다고 주장할 수는 있지만 그 관계가 단절된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범죄한 이들에게 나타나 말씀하시고 손수 가죽옷을 지어 입히신다. 아벨의 제사를 받으시고, 동생을 죽인 가인에게 나타나 말씀하시고 그에게 표를 주어 보호하신다. 노아에게 나타나셔서 그와 그의 가족을 구원하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삶을 인도하신다. 이스라엘 백성의 끊임없는 범죄와 배신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들과의 관계를 결코 끊지 않으신다. 인류의 탄생 이래 단 한 번도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가 끊어진 적이 없다는 것이 성경의 증언이다.
하나님은 결코 인간을 포기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타락한 인간을 여전히 부르시고, 찾으시고, 말씀하신다. 그분은 인간을 그분의 형상대로 지은 존재로 여전히 대우하고 계신다. 형상이란 바로 그 관계 속에서 살아 움직인다. 죄로 인해 흐려졌을 수는 있지만, 형상은 여전히 남아 있으며, 하나님은 그 형상을 따라 우리에게 계속 말씀하고 계신다.
이제 우리는 마지막 질문을 향해 나아간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았다는 말은, 오늘의 우리에게 어떤 소명을 말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형상은 어떻게 회복되고, 어떻게 실현되는가?
6. 하나님의 형상, 지금 여기에
형상은 불멸이 아니다. 전능함도 아니다. 하나님의 형상이란, 세상을 다스리고 돌보도록 위임받은 존재로서의 인간의 자리, 그리고 그 인간을 향해 끊임없이 말을 거시는 하나님의 관계적 의지 안에서 정의돼야 한다. 하나님의 형상은 인류가 한때 소유했지만 잃어버린 어떤 특권이 아니다. 창세기 5장에서 그것은 세대 간에 전해졌고, 창세기 9장에서 그것은 죄로 더러워진 세상 속에서도 여전히 유효함이 선언됐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다는 말은, 하나님과 같이 됐다는 선언이 아니라 하나님과 연결된 존재로 창조됐다는 고백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형상은, 되찾아야 할 유실된 상태가 아니라, 이미 부여된 소명에 대한 응답이다.
그 형상을 따라 살아간다는 것은 하나님처럼 구별하고 나누고 질서를 세우며, 하나님처럼 관계를 맺고, 책임을 지고, 생명을 살리는 일에 동참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은 관계 안에서 깨어지고, 관계 안에서 회복된다. 형상은 기억이 아니라 응답이며 실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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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전학계에서는 하나님의 바라와 인간의 바라를 서로 다른 동사로 나누려고 한다. 하나님의 창조는 무에서 유를 만들어낸 것, 인간의 창조 행위는 유에서 유를 빚은 것으로 구분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히브리어의 언어적 감각은 조금 다르다.
?2) ‘흑암’(호쉐크)과 ‘깊음’(테홈)이 정확히 무엇이며 언제 만들어졌는지, ‘물’(마임)이 있으라는 말씀도 없었는데 물은 어떻게 창조됐는지 성경은 설명하지 않는다.
3) “처음에 도가 이스되 도가 하느님과 함게 하니 도는 곳 하느님이라 이 도가 처음에 하느님과 함게 하매 만물이 말무야 다 지여스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