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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권에서는 예부터 청빈한 생활을 강조해 왔다. 뇌물을 받지 않으며 부정 축재를 멀리해 가난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 청백리상이 그러한 것이다. 반면에, 서양에서는 종교개혁 과정에서 신교가 탄생하면서 근면하고 성실하게 일해 부를 축적하는 사람이 선택된 자라는 믿음이 확산되면서 청부의 삶이 존경받는 문화로 자리 잡았다.¹

그렇다면 기독교인들은 어떠한 모습을 추구해야 하는가? 이 질문은 얼마 전 한국 교회에서도 청빈론(淸貧論)과 청부론(淸富論)이라는 형태로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물질에 초연한 삶을 강조하는 청빈론과 근면 성실을 통해 얻은 부를 선하게 사용하는 청부론 사이에서 기독교인들은 재물에 대한 성경적 태도를 고민했다.² 이러한 논쟁 속에서 많은 기독교인들은 십계명의 제8계명인 ‘도둑질하지 말라’라는 명령을 자신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마치 도둑이나 사기꾼에게나 해당되는 계명으로 간과하기 쉽다. 

과연 이 계명은 우리와 무관한 것일까? 오늘날 우리 사회는 코인, 주식, 부동산으로 ‘인생 역전의 대박’을 꿈꾸는 동시에, ‘부자’에 대한 극심한 혐오와 갈망이 공존하는 모순적인 현실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사회 속에서 ‘도둑질’이라는 개념은 단순히 남의 물건을 훔치는 행위를 넘어, 다양한 형태로 우리의 삶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 정직하지 못한 이득, 부당한 착취, 노동자의 정당한 품삯을 가로채는 행위, 심지어 다른 이의 시간이나 기회를 빼앗는 행위까지도 이 계명의 범주에 포함될 수 있다. 그렇다면 신약성경은 제8계명을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하며, 오늘날 우리의 삶에 어떤 의미를 던져주는지 깊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십계명의 제8계명

제8계명 “도둑질하지 말라”(출 20:15; 신 5:19)는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 개인의 재산권을 보호하고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규범이었다. 도둑질은 기초적인 경제 질서를 파괴하는 사회적인 범죄이므로, 어느 역사나 사회에서도 절도 행위는 엄격하게 금지됐다. 그러나 구약에서 도둑질을 금지하는 것은 단순히 사회, 경제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더욱 깊은 신학적 이유에 근거한다. 도둑질이란 일하지 않고 부당하게 이익을 얻는 행위며, 다른 사람이 애써서 이루어 놓은 노력의 결과를 훔치는 것이다. ‘일’이란 본래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속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므로 피조물인 인간도 일하면서 살아야 하고, 일한 수고의 대가로 생활을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도둑질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질서를 파괴하는 행위다.³

제6계명, 제7계명과 마찬가지로 제8계명의 ‘도둑질하지 말라’라는 계명도 두 단어(‘로 티그노브’)로 이루어졌고 목적어가 명시돼 있지 않다. 구약에서는 제8계명에서 사용된 동사 ‘가나브’의 목적어로 다양한 것들이 제시된다. 소, 양, 염소와 같은 가축(출 22:1)이나 돈, 은, 금과 같은 보물(창 44:8; 출 22:7)뿐만 아니라, 사람(출 21:16), 사람의 시신(삼하 21:12), 사람의 마음(삼하 15:6), 하나님께 바친 물건(수 7:11), 드라빔과 신상(창 31:19, 30), 심지어는 하나님의 말씀(렘 23:30)도 도둑질의 대상이 될 수 있다.⁴ 이처럼 도둑질은 단순히 물질적인 소유물에만 국한되지 않으며, 사람의 존엄성, 신뢰, 심지어 영적인 영역까지 침해하는 광범위한 개념이다. 그리고 이러한 광범위한 도둑질의 개념은 십계명의 제8계명이 단순히 개인의 소유물을 보호하는 것을 넘어, 하나님의 창조 질서 안에서 인간의 노동과 삶의 기반을 존중하고, 나아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올바른 재산관을 정립함을 시사한다. 

구약에 나타난 재산에 대한 이해

구약은 개인의 재산에 대한 독특한 이해를 제시한다. 첫째, 성경은 소유권에 대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분명한 입장을 취한다.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레 25:23),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시 24:1)라는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토지를 분배해 주었지만, 그 토지의 궁극적인 소유는 한 개인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음을 보여 준다. 따라서 구약에서 말하는 재산은 엄밀한 의미에서 ‘소유권’이라기보다는 ‘사용권’이라는 것이 더 적합할 수 있다.⁵ 그러므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재산에는 사람이 임시적으로 하나님의 것을 빌려 쓰거나, 하나님의 것을 대신 맡아 대리인으로 사용한다는 의미가 있다.

이러한 재산에 대한 구약의 이해를 하나의 상징과 제도로 표현한 것이 바로 희년 제도다. 희년은 50년이 되는 해에, 이스라엘 백성이 이제까지 행사하던 재산권을 포기하고 원래대로 되돌리는 제도다. 이는 졌던 빚을 탕감하고, 삼았던 노예를 해방하며, 팔렸던 땅을 원래 소유주에게 돌려 주는 것을 포함했다.⁶ 이와 같은 희년 제도는 사회적 평등화의 초기 형태로서 대내적으로 사회 안정을 보장하고, 가난한 이들의 경제적 기반을 보호하며, 국가의 부가 소수의 가문에 집중되는 것을 방지했다. 이는 이방인과 거류민을 포함한 전체 사회가 경제적 활동 능력을 유지하도록 하려는 의도였다고 볼 수 있다.⁷

둘째, 구약성경은 개인의 재산이 사회적 공유의 의미가 있다고 알려 준다. 즉 하나님께서 개인에게 주신 재산은 자기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필요한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다는 의미다. 구약성경은 사유 재산을 인정하지만, 무제한의 사유권이나 무제한의 권리 주장은 정당하지 않음을 보여 준다.⁸

이러한 관점에서 제8계명을 개인주의적 시각으로만 바라보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는 계명의 본뜻은 다른 사람의 생존 기반을 빼앗아서도 안 되고, 다른 사람이 자립하기 위한 필요 조건을 가로채서도 안 된다는 것을 포함한다.⁹ 따라서 제8계명은 사유 재산을 보호하는 동시에 사유 재산에 사회에 대한 의무를 부여한다. 따라서 제8계명은 단순히 재산 보호를 넘어 인간의 존엄성과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재물에 대한 올바른 태도를 가르치려는 목적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의 제8계명 해석

예수님은 제8계명에서 문자적인 도둑질 금지를 넘어 재물에 대한 근본적인 태도와 마음의 중심을 강조했다. 예수님은 재물이 하나님과 같은 위치에 오를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고 경고하시고, 이어 진정한 보물에 우리의 마음을 두게 함으로써 ‘도둑질하지 말라’라는 제8계명을 새롭게 해석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 6:19-21).

이 말씀은 진정한 보물이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한 가치에 있음을 강조하며, 물질에 대한 탐욕이 결국 영적인 도둑질로 이어질 수 있음을 경고한다. 또한 예수님은 재물(맘몬, μαμωνᾶς)이 하나님을 대신하는 우상이 될 수 있음을 경고했다. 이는 재물에 대한 탐심이 곧 하나님께 대한 불신실함이자, 우리의 마음을 도둑맞는 것과 같음을 의미한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 6:24).

누가복음 12:13-21에서 예수님은 유산에 대한 질문을 받으시고 ‘어리석은 부자’ 비유를 들려 준다. 이 비유에 등장하는 부자는 곡간을 크게 지어 평생 걱정 없이 살고자 했다. 그는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눅 12:19). 그러나 그에게 진정한 평안은 요원하기만 하다. 이는 재물을 소유하되 ‘그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 것’이 중요함을 보여 준다. 따라서 예수님은 제8계명을 ‘절제’, 곧 세상 재물에 지나치게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 것과 ‘사회 정의 추구’, 곧 이웃의 재물을 빼앗으려는 욕망을 억제하고 그들의 몫을 돌려 주고자 하는 것으로 설명한다.¹⁰

신약성경에서 가장 잘 알려진 도둑질 이야기는 요한복음 12:4-6에 나오는 가룟 유다의 이야기다. 마리아가 매우 값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자, 옆에 섰던 가롯 유다는 마리아의 선물이 엄청난 낭비라고 생각하며 아쉬워한다. 그러나 요한은 독자들에게 예수님을 배반할 유다가 사실 가난한 사람들을 염두에 두고 이 말을 한 것이 아니었음을 알려 준다.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12:6). 요한은 유다가 도둑이며, 그가 평소에 돈을 훔치던 공동 경비 주머니의 돈이 향유로 인해 줄어들 것을 아쉬워했다고 기록한다. 이처럼 가룟 유다의 사례는 재물을 사회 정의를 위해 사용하자는 겉으로 드러난 목적이 아무리 훌륭할지라도, 그 이면에 개인적인 탐욕과 도둑질의 의도가 숨어 있다면 이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음을 분명히 보여 준다. 

또한 예수님은 세리 삭개오의 이야기를 통해 재물에 대한 태도의 변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 준다(눅 19:1-10). 삭개오는 부자였지만, 예수님을 만난 후 자신의 재산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남의 것을 속여 빼앗은 것이 있으면 네 배로 갚겠다고 선언했다(눅 19:8). 그리고 예수님은 이에 대해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 19:9-10)라고 말한다. 삭개오의 변화는 단순히 도둑질을 멈추는 것을 넘어, 재물을 통해 이웃을 섬기고 불의를 바로잡는 적극적인 실천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 준다. 이는 재물에 대한 탐심에서 벗어나 진정한 구원에 이르는 길을 제시하며, 제8계명이 재산이나 소유에 대한 이해의 변화와 실천적 삶에 깊이 연결돼 있음을 강조한다.

바울서신서에 나타난 제8계명

사도 바울도 제8계명을 부정적인 의미와 긍정적인 의미로 모두 해석하며 그리스도인의 삶에 적용한다. 예수님이 재물에 대한 마음의 태도와 탐심의 위험성을 강조하며 제8계명의 의미를 내면으로 확장했다면, 사도 바울은 이 계명을 그리스도인의 실제 삶과 공동체적 책임에 더욱 구체적으로 적용한다. 바울은 단순히 도둑질을 금하는 소극적인 차원을 넘어 재물에 대한 올바른 태도와 적극적인 사용을 통해 이 계명을 긍정적으로 실천할 것을 강조한다. 

에베소서 4:28에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권면한다.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이 구절은 단순히 도둑질을 멈추는 소극적인 자세를 넘어, 적극적으로 일해서 이웃을 돕는 선한 삶을 살라는 긍정적인 명령으로 확장된다. 바울은 도둑질하지 말고 선한 일을 하라고 권면하는데, 그 이유는 개인의 재산은 소유가 아니라 ‘가난한 자를 구제’하기 위해 있기 때문이다. 즉 도둑질하던 사람이 도둑질하지 않는 것으로 제8계명이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 남에게 유익하고 좋은 일을 하기 위해 열심히 제 손으로 일해야 이 계명이 제대로 지켜진다는 것을 의미한다.¹¹

아울러 바울은 재물에 대한 탐심의 위험성을 강력하게 경고한다. 디모데전서 6:10에서 바울은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라고 경고한다. 이는 탐심이 모든 악의 뿌리가 되며, 도둑질의 근본적인 동기가 될 수 있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또한 갈라디아서 5:24에서도 육체의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권면하며, 탐욕과 같은 육체의 소욕을 제어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중요한 부분임을 강조한다. 

또한 바울은 제8계명의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명령으로 로마, 갈라디아, 고린도 등에 있는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다른 성도들을 위한 연보(헌금)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는 물질을 통해 공동체를 섬기고 어려운 이들을 돕는 행위가 곧 제8계명의 긍정적인 실천임을 보여 준다. 

예를 들어, 고린도전서 16:1-2에서 바울은 “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관하여는 내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 것 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 매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수입에 따라 모아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라고 지시한다. 또한 고린도후서 8장에서는 여러 번 연보를 ‘은혜’(χάρις카리스)라고 표현하면서 이 사역에 동참할 것을 촉구한다.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고후 8:4), “그가 이미 너희 가운데서 시작하였은즉 이 은혜를 그대로 성취하게 하라 하였노라”(8:6),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할지니라”(8:7). 

이는 그리스도인들이 재물을 단순히 개인의 소유로만 여기지 않고, 공동체의 필요와 약한 지체들을 위해 기꺼이 나눠야 함을 강조한다. 이처럼 바울은 연보의 정신과 태도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며, 자원하는 마음과 넉넉하고 인색하지 않은 마음으로 연보에 참여할 것을 권면한다. 이는 물질적 나눔이 하나님의 은혜(8:9)에 대한 감사와 이웃 사랑의 구체적인 표현임을 시사한다. 

따라서 바울에게 제8계명은 단순히 물질적인 도둑질을 금하는 것을 넘어 재물에 대한 탐심을 경계하고, 적극적인 노동을 통해 이웃을 구제하며, 공동체를 섬기는 삶으로 확장된다. 

일반서신서에 나타난 제8계명

바울이 재물에 대한 탐심을 경고하고 노동과 나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면, 야고보서는 더욱 직접적으로 부의 맹목적인 축적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불의를 강력하게 경고하며 제8계명의 사회·경제적 적용을 심화시킨다. 사도 야고보는 다음과 같이 경고한다. 

“들으라 부한 자들아 …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 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보라 너희 밭에서 추수한 품꾼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 지르며 그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 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방종하여 살륙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찌게 하였도다 너희는 의인을 정죄하고 죽였으나 그는 너희에게 대항하지 아니하였느니라”(약 5:1-6).
 
이 말씀은 부자들이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재물을 축적하고 특히 노동자들의 품삯을 가로채는 행위가 곧 도둑질이며, 이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임을 분명히 경고한다. 이는 제8계명이 단순히 개인적인 도둑질을 넘어 사회·경제적인 불의와 착취에도 적용됨을 보여 주며, 부의 축적이 타인의 고통 위에서 이뤄질 때 그것은 심판의 대상이 됨을 강조한다.

나아가 야고보서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임을 강조하면서 재물을 사용해 다른 형제들을 실질적으로 돕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마땅한 행함임을 역설한다. 

“…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약 2:14-17). 

이 말씀은 단순히 도둑질을 금하는 부정적인 명령을 넘어 가진 것을 나눠 가난한 이들을 돕는 적극적인 사랑의 실천이 곧 제8계명의 긍정적인 명령임을 보여 준다. 즉, 재물을 불의하게 취하지 않는 것뿐만 아니라, 정당하게 얻은 재물을 이웃의 필요를 위해 사용하는 것이 진정한 믿음의 표현이자 도둑질하지 말라는 계명의 온전한 실천이라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제8계명

요한계시록에는 직접적으로 제8계명이 명시되지 않지만 그 핵심 정신인 물질에 대한 탐욕과 불의, 이로 인한 영적 타락에 대한 경고가 강력히 드러난다. 요한계시록 17-18장은 세상의 죄악 된 세력을 상징하는 ‘큰 음녀 바벨론’의 몰락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이 음녀는 땅의 임금들과 더불어 음행했고, 땅에 사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게 한 자(계 17:2)로 표현된다. 여기서 ‘음행’은 단순히 성적인 간음을 넘어 세상 권력과 물질, 우상 숭배에 대한 탐욕과 영적인 불신실함을 총체적으로 나타낸다. 바벨론은 세속적인 부와 권력 그리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죄악의 정점으로서, 그 속성은 곧 음행으로 나타난다. 세상의 왕들과 거민들이 이 음행의 포도주에 취했다는 것은 세상이 우상 숭배와 타락한 물질적 욕망에 깊이 빠져 있음을 보여 준다. 

요한계시록은 이러한 세상의 음행이 하나님의 진노를 초래하며, 결국에는 심판 받아 멸망할 것임을 분명히 경고한다(18:2-3). 이는 제8계명을 어기는 물질적 탐욕과 불의가 개인의 죄를 넘어 세상의 종말론적인 심판과 연결돼 있음을 보여 준다. 

요한계시록은 또한 세상의 상인들이 바벨론의 멸망으로 인해 슬퍼하는 모습을 통해, 그들의 부가 불의한 거래와 착취를 통해 얻어졌음을 암시한다. 

“땅의 상인들이 그를 위하여 울고 애통하는 것은 다시 그들의 상품을 사는 자가 없음이라 그 상품은 금과 은과 보석과 진주와 세마포와 자주 옷감과 비단과 붉은 옷감이요 각종 향목과 … 계피와 향료와 향과 향유와 유향과 포도주와 감람유와 고운 밀가루와 밀이요 소와 양과 말과 수레와 종들과 사람의 영혼들이라”(계 18:11-13).

그들은 값진 물건뿐 아니라 사람의 영혼까지도 사고팔았다. 여기서 ‘사람의 영혼’을 사고팔았다는 것은 구약에서 도둑질의 대상에 사람이 포함됐던 것처럼(출 21:16), 물질적 탐욕이 인간의 존엄성까지도 상품화하고 착취하는 극단적인 불의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이는 제8계명의 정신이 단순히 물건을 훔치는 것을 넘어, 인간의 가치를 훼손하고 착취하는 모든 형태의 경제적 불의를 포함한다는 것을 종말론적 관점에서 강조한다. 그리고 이 바벨론의 멸망은 이처럼 불의한 경제 시스템에 대한 하나님의 최종적인 심판을 상징하며, 성도들에게는 세상의 탐욕에 물들지 않고 하나님의 공의를 추구하는 삶을 살 것을 촉구하는 메시지가 된다. 

나가는 말

오늘날 우리가 제8계명 ‘도둑질하지 말라’를 따르고자 할 때 가장 큰 어려움은 이 계명이 우리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우리의 삶이 욕망의 포로가 돼 있음을 고려할 때 우리는 제7계명인 ‘간음하지 말라’를 가장 부담스러운 계명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실상 우리에게 가장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것은 제8계명인데, 이 계명이 우리의 삶이 토대를 두는 잘못된 탐욕의 마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기 때문이다. 특히 현대 사회의 사회·경제 체제는 우리가 도둑질에 얼마나 깊이 연루됐는지 깨닫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¹²

이러한 맥락에서 제8계명은 단순히 도둑질의 문제를 넘어, 제3계명과 깊이 연결돼 있음을 깨닫게 한다. 도둑질은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우상인 부의 신 ‘맘몬’을 섬기는 실제적인 우상 숭배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맘몬의 지배력은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이 맡겨주신 선물이라는 것을 인정할 때 극복할 수 있다. 우리가 받은 물질적 소유는 ‘하나님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오늘날 우리는 물질 만능주의와 불공정한 경쟁이 만연한 사회 속에서 살아간다. 이러한 시대 속에서 제8계명은 우리가 어떻게 재물을 바라보고, 어떻게 사용하며, 어떻게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중요한 영적 지침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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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1)    고봉준, “청빈(淸貧)과 청부(淸富), 인식의 전환”, 〈제주일보〉, 2015년 3월 19일자.  
2)    김은홍, “청부·청빈론, 성경적 근거 약하다”, 〈기독신문〉, 2004년 5월 31일자. 
3)    박준서, 《십계명 새로보기: 박준서 교수의 십계명 이야기》 (한들, 2001), pp. 141-142.
4)    김지찬, 《데칼로그: 십계명,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생명의말씀사, 2016), pp. 379-380.
5)    강영안, 《강영안 교수의 십계명 강의》 (IVP, 2009), p. 286.
6)    앞의 책, p. 287.
7)    노트커 볼프 외, 《그러니, 십계명은 자유의 계명이다》, 윤선아 옮김 (분도출판사, 2012), p. 181.
8)    강영안, 앞의 책, p. 291.
9)    노트커 볼프 외, 앞의 책, p. 180.
10)    스탠리 하우어워스 외, 《십계명》, 강봉재 옮김 (복있는사람, 2011), pp. 170-171.
11)    강영안, 앞의 책, p. 280.
12)    스탠리 하우어워스 외, 앞의 책, pp. 159-1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