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 세 가지 방법이 가능하다. 먼저, 청중의 기호에 부응하여 짧게 설교하는 것이다. 아니면, 체감적 길이를 줄이는 방법도 좋다. 가장 설교학적인 대답일 수 있는데, 물리적 길이는 충분히 확보하되, 설교 구성이나 전달 기술을 활용해 체감적으로 짧게 느껴지도록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읽으면서 웃음을 지을 수도 있는데) 청중을 잘 훈련하여 긴 설교에 적응시키는 것이다. 이 셋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보려 한다.
물리적 시간 줄이기
먼저, 설교의 물리적 길이를 줄이는 방법이다. 설교 시간은 어느 정도가 적합할까? 설교 시간에 절대적 기준은 없다. 청중의 기대나 상황에 어느 정도 맞추는 것이 설교자의 지혜다. 난 곳 언어로 설교하는 것이 지혜일진대, 청중의 특성에 맞추는 것을 타협이라 볼 수 없다. 어린아이에게 설교할 때 시간을 조절하지 않는 설교자는 없다. 청중의 특성에 맞추는 설교자의 배려다. 어른 청중도 시대 풍조가 그렇다면 시간을 줄여 주는 것도 지혜다. 긴 설교도 쉽지 않지만, 짧은 설교는 더 많은 에너지를 요구할 때가 많다. 필요한 수고라면 해야 하지 않겠는가.
상황적으로 긴 설교가 요구될 때도 있다. 전해들은 이야기인데, 어느 교회가 부흥사경회를 개최하고 유명한 강사를 초청했다고 한다. 유명세가 있는 분이라 외부에서도 많이들 왔는데, 아뿔사 사고가 났다. 20분 정도 찬양하고 본격적으로 설교가 시작됐는데 불과 30분 만에 설교가 끝나 버렸다. 그래서 강사 목사님이 내려오신 후 초청하신 목사님이 기도회를 아주 길게 인도했다고 한다. 어느 정도 상황에 부응해 주는 것도 지혜다.
체감적 시간 줄이기
두 번째는 체감적 시간을 줄이는 방법이다. 청중이 짧은 설교를 좋아한다고 전할 내용을 포기할 수는 없다. 시간이 걸려도 할 말은 해야 한다. 그렇다고 청중의 기호를 무시한 채, 채소 먹기 싫어하는 아이 입에 억지로 쑤셔 넣듯 할 수는 없다. 그건 성숙한 영적 주부의 태도가 아니다. 지혜로운 주부라면 채소를 고기처럼 요리해 아이가 눈치채지 못하게 먹게 한다.
AI도 그렇게 생각했다. 편집부에서 질문지를 받고 AI에게 물어보았다. 대답이 신통하다. 핵심 메시지 정리하기, 스토리텔링 활용, 비주얼 자료 사용, 질문을 통한 청중의 참여 유도, 간결한 언어 사용, 구체적 행동을 촉구하는 설교 총 여섯 가지다. 온라인상에 떠도는 여러 자료를 정리한 게 아닐까 짐작한다.
평소 내 생각과 많은 부분 겹쳐서 반갑기도 했다. 필자는 《퇴고 설교학》에서 들리는 설교의 원리를 네 가지로 제시했다. 선명한 주제, 탄탄한 구조, 충성된 예화, 그리고 잘 들리는 말이다. 주제가 선명하면 체감 길이가 짧아진다. 긴 설교도 선명하면 지루하지 않다. 반면에 물리적으로 짧아도 중구난방으로 흩어지면 길고 지루하게 느껴진다. 설교의 체감 길이를 줄이는 첫걸음은 선명한 주제다.
더하여, 구조가 탄탄할 때 체감 길이가 줄어든다. AI가 정리해 준 원리 가운데 이 항목이 보이지 않아서 섭섭하다. 기존 자료에서 이 대목을 강조하지 않는 모양인데, 필자의 경험으로는 설교의 체감 길이를 줄이는 데 매우 효과적이다.
알고 가는 길이 짧게 느껴진다. 하루 일정으로 두어 시간 운전해서 어디를 다녀온다고 생각해 보라. 수련회 답사 같은 경우인데, 대체로 갈 때보다 돌아올 때 짧게 느껴진다. 오면서 조금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초행길의 설렘도 있지만, 어디쯤 왔는지 예측 가능성이 여정을 더 편안하게 만들어 준다.
대지 설교의 첫째, 둘째라는 신호어가 그 기능을 한다. 설교가 지금 어느 지점에 왔는지를 알려 줌으로써 청중의 듣기를 수월하게 돕는다. 지금 이 글도 설교 대지처럼 굵은 글씨로 쓴 소제목이 메시지를 미리 요약해 줌으로써, 읽기를 수월하게 하리라 기대한다. 기승전결도 좋고, 어떤 형식이든 좋은데, 청중에게 대략적인 위치를 일러 줄 수 있는 구획을 정하는 것은 심리적 지루함을 덜어준다.
재미와 감동도 큰 힘을 발휘한다. AI도 소개했지만 스토리텔링과 비주얼 자료, 질문을 통한 청중과의 소통 등 다양한 방법으로 설교에 활력을 불어넣음으로써 설교의 체감 길이를 줄일 수 있다. 여기에 감동적인 설교라면 길이 자체는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짧은 콘텐츠에 익숙한 청소년도 좋아하는 가수의 공연 길이가 짧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더해 달라고 앵콜을 외친다. 이래저래 설교자의 숙제지만 청중을 위해 최선을 다하자.
청중을 훈련하여 긴 설교에 적응시키기
마지막으로 짧은 콘텐츠에 익숙한 세대에게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청중을 훈련하여 긴 설교에 적응하도록 만드는 것도 한 방법이다. 청중의 욕구에 꼭 부응해야 하는 건 아니다. 주일에 놀러 가는 걸 좋아하는 세대라고 예배를 포기할 수는 없다. 너무 극단적인 예일 수 있겠지만, 이 세대를 꼭 본받을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일주일에 한 번 오직 주일 설교를 통해 주의 말씀을 듣는 이들도 있을 텐데, 선포해야 할 말씀이라면 시간이 가도 선포하라. 청중이 몸을 비틀며 졸아도 깨워서 말씀을 선포하라.
사도 바울의 놀라움이 여기에 있다. 유두고 사건을 보면 그는 죽었었다. 죽을 뻔한 게 아니고 정말로 죽었고, 주님도 민망하셨는지 바울의 기도로 살려주셨다. 참 놀라운 일이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래 놓고도 바울은 또 새벽까지 설교했다. 나 같으면 겁이 나서라도 그만할 거 같은데, 바울은 계속 설교한다. 전해야 할 메시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전해야 할 메시지라면 시간에 구애받지 말고 전하라. 성도들에게 꼭 필요한 말씀이라면, 그렇게 확신한다면, 시간이 지체돼도 그래서 1부와 2부 예배 사이 주차장이 난리가 나도, 그게 진심이라면 그러는 게 맞다. 우리가 지켜야 하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말씀과 성도들이다. 다만 나의 고집이 돼선 안 된다. 설교단은 나의 고집이 아니라 거룩한 사명으로 서는 자리다. 맡겨 주신 영혼에 대해 설교자가 책임지는 자세로 임한다면, 짧은 설교든 긴 설교든 주님도 청중도 인정해 주시리라 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