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계명의 논리

지난 호에서 나는 가장 중요한 열 가지 계명 안에 안식일 준수 계명이 들어 있는 게 유별난 일이라고 했다. 제5계명, 즉 부모 공경의 계명이 십계명 중 하나로 꼽힌 것도 유별나기는 마찬가지다. 두 가지 이유 때문에 그렇다.

첫째, 한 민족의 삶과 운명을 생각할 때 부모 공경의 계명은 그리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한 사회를 질서 있게 유지하고 개인의 안녕을 보장하기 위해 그보다 더 중요한 법은 수없이 많다. 그것에 비하면 부모에 대한 효를 요구하는 이 법은 매우 사적이다. 각자 알아서 하면 되지, 굳이 나라가 개입할 문제가 아닌 것처럼 보인다.  

둘째,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도덕률에 속한다. 법은 도덕 규범이 요청하는 것의 최소한을 규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법이 무한히 오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부모를 공경하라’라는 법을 만들면 모두를 범법자로 만들 수 있다. 아무리 지극한 효자라도 흠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부모를 버리지 말라’라는 것은 법이 될 수 있다.¹ 오용의 여지가 제한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부모 공경의 계명이 가장 중요한 열 가지의 계명에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됐을까? 제1계명부터 제4계명까지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지침이다. 앞에서 본 것처럼, 안식일 준수 계명은 하나님에 대한 계명에 속하면서도 뒤이어 나오는 사람에 대한 계명으로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제5계명부터는 사람에 대한 계명인데, 그중에서 부모 공경의 계명이 맨 처음에 나온다. 이 위치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구약성경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에 대해 남편과 아내의 비유에 더해 부모와 자녀의 비유를 자주 사용한다. 하나님은 어머니처럼 이스라엘을 낳으셨고 아버지처럼 기르셨다. 그래서 모세는 하나님의 뜻을 저버린 이스라엘을 부모의 뜻을 거역한 자녀에 비유해 이렇게 말한다. 

“너를 낳은 반석을 네가 상관하지 아니하고 너를 내신 하나님을 네가 잊었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보시고 미워하셨으니 그 자녀가 그를 격노하게 한 까닭이로다”(신 32:18-19). 

‘너를 낳다’에 사용된 히브리어 ‘옐라드카’(יְלָדְךָ)와 ‘너를 내신’에 사용된 ‘므홀를레카’(מְחֹלְלֶךָ)는 산모의 해산 과정을 묘사하는 단어들이다. 하나님을 명시적으로 어머니라고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암시적으로는 하나님을 어머니에 비유한다. 구약성경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지만 위에서 인용한 말씀과 같이 종종 그분을 어머니로 묘사한다(시 131; 사 49:15; 66:12-13; 애 2:12). 

제1-4계명에서 하나님은 영원하신 부모로서 당신을 어떻게 예배해야 하는지를 말씀하셨다. 그런 다음 육신의 부모에 대한 공경을 명령하신다. 참되고 영원한 부모에 대한 태도는 육신의 부모에 대한 태도로 이어지는 것이 마땅하기 때문이다. 

십계명은 처음부터 끝까지 논리적인 구조를 가진 하나의 통일체다. 십계명 전체를 관통하는 논리적 흐름을 무시하고 계명 하나 하나를 떼어 놓고 보면 많은 것을 잃는다. 제5계명은 앞의 네 계명을 충분히 숙지하고 받아들인 사람만이 제대로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다. 

인간 사회의 기초

믿는 이들은 가장 먼저 마음의 눈을 들어 경배 받기에 합당하신 한 분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분을 그분의 위엄에 맞게 섬겨야 한다. 그런 다음, 마음의 눈을 내려 보아야 할 첫 번째 대상이 부모다. 부모는 자녀에게 하나님 아래, 자신 위에 계신 존재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사람이라면 부모를 부모답게 섬긴다. 세상 종교들 중에 부모의 위치를 이 정도로 높여 주는 종교나 법이 또 있을까? 

이 위치의 의미를 제대로 깨달아야 할 사람은 가장 먼저 부모 된 사람이다. 부모 된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제한된 기간 동안 대신 맡아 기르는 양부모다. 육신의 자녀를 대할 때, 부모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을 맡겨 주신 것이라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자녀들을 양육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고 그 뜻에 따라 자녀들을 양육하려고 힘쓸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모가 먼저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겨야 하고, 그분의 뜻을 따라 살아야 한다. 그럴 때 말과 행동에 무게가 실리게 된다. 자녀가 함부로 할 수 없는 권위가 생겨난다. 

반면, 하나님을 진실하게 섬기는 사람이라면 부모를 하나님에게서 위임 받은 대리 부모(guardian parents)로 여겨야 한다. 부모됨을 부정하라는 뜻이 아니다. 부모 위에 참되고 영원한 부모가 계시며, 인간 부모는 참 부모의 뜻을 따라 자신을 대신 양육하는 존재임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 부모의 과제는 어린 자녀들을 양육해서 참되고 영원한 부모를 찾고 그분에게 돌아가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존 웨스터호프 3세는 “자녀는 하나님에게서 받은 최고의 선물이다. 따라서 부모는 자녀를 하나님께 돌려드릴 최고의 선물로 양육해야 한다”라고 했다.

그렇다면 부모 공경의 계명은 자녀들이 성장한 후에는 더 이상 지키지 않아도 되는가? 자신을 낳아 하나님의 자녀로 양육해서 참되고 영원한 부모를 만나게 해 주었다면, 그 이유로 더욱 존경해야 하고 섬겨야 한다. 학자들은 제5계명이 노년의 부모를 위해 성인 자녀들에게 주어진 것이라고 본다.² 어릴 때는 하나님의 대리 부모로서 양육하기 때문에 존경하고 순종해야 하고, 성인이 돼서는 자신을 위해 거룩한 소임을 다해 준 것에 대한 감사로 인해 순종하고 존엄성을 끝까지 지킬 수 있도록 부양해야 한다. 

이 계명의 위치는 또한 모든 인간 관계의 시작점이 부모와의 관계에 있다는 의미를 전한다. 제6계명부터 10계명까지는 다양한 인간 관계를 다룬다. 다른 인간에 대한 태도는 부모와의 관계에서 시작되며, 부모와의 관계는 다른 모든 인간 관계를 규정한다. 이 사실은 현대 심리학자들과 상담가들에 의해 충분히 밝혀졌다. 한 사람에게 부모는 가장 먼저 만나는 세상이다. 부모와의 관계 안에서 만들어진 성격과 습관이 성장해 다른 사람과 맺는 모든 관계에 영향을 준다. 

이렇게 보면, 제5계명이 열 개의 가장 중요한 계명들 중에 자리를 차지하게 된 이상한 현상을 이해할 수 있다. 

약속 있는 계명

제5계명은 이렇게 돼 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 20:12).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신 5:16). 

여기서 ‘공경하라’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카베드’(כָּבֵד)로서, 일차적으로는 ‘무겁게 여기다’라는 의미를 가진다. 따라서 부모를 공경하라는 명령은 부모의 존재와 그들의 말을 ‘무겁게 여기라’는 뜻이다. 하나님을 대리해서 자녀를 양육하는 존재이니 당연히 그렇게 여겨야 한다. ‘공경하다’라는 말은 ‘존중하다, 경청하다, 순종하다’라는 뜻으로 확장될 수 있다. 물질적인 부양도 당연히 포함된다. 하지만 물질적인 부양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부모를 향한 마음과 태도다.

우리말 번역에서는 ‘부모를 공경하라’라고 했는데, 원문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라고 돼 있다. 십계명과 율법이 주어지던 시대는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문화가 강할 때였다. 그런 시대에는 ‘네 아버지를 공경하라’라는 말로 충분했다. 그런 배경을 감안하면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라는 표현은 반문화적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개역개정과 새번역의 ‘부모’라는 번역은 아쉽다. 다행히, 새한글성경은 ‘네 아버지와 네 어머니를’이라고 바로잡아 놓았다. 레위기 19:3에서는 아버지보다 어머니를 먼저 언급한다(새번역, ‘너희는 저마다 어머니와 아버지를 공경하여라’). 개역성경은 이 말씀을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라고 번역함으로 반문화적인 급진성을 제거했다.  

열 개의 계명 중 여덟 개는 ‘정언 명령’(apodictic commandment)이다. 군더더기 없이 ‘하라’ 혹은 ‘하지 말라’라고 명령하고 있다는 뜻이다. ‘에흐예 아셰르 에흐예’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명령이므로 무슨 이유나 조건이 필요 없다. 피조물인 인간으로서는 하나님이 하라면 하고, 하지 말라면 하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안식일 준수 계명과 부모 공경의 계명은 예외다. 안식일 준수 명령에는 그 명령을 주신 이유에 대한 설명이 붙어 있고, 부모 공경의 계명에는 그 명령을 지킬 때 얻을 수 있는 유익에 대한 설명이 붙어 있다. 출애굽기 본문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존경하고 순종하고 섬길 때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라고 돼 있다. ‘땅에서 오래 산다’라는 말은 히브리어의 관용적 표현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충만하게 누린다’라는 의미다.³ 신명기 본문에서 모세가 ‘복을 누리리라’라는 말을 덧붙인 이유는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라는 말의 의미를 풀어 쓴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런 까닭에 바울 사도는 제5계명을 ‘약속이 있는 첫 계명’(엡 6:2)이라고 불렀다. 

그렇다고 이 약속을 하나의 공식처럼 간주하면 안 된다. 부모 공경의 계명을 지킨 사람은 그 어떤 경우에도 장수할 것이라는 뜻이 아니라는 말이다. 어떤 사람이 복되게 살고 있다면, 그것은 수많은 요인들이 결합돼 작용한 결과다. 한 사람의 목숨의 길이를 결정하는 요인도 수만 가지다. 따라서 ‘네 생명이 길리라’ 혹은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라는 약속은 부모 공경이 복된 삶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는 뜻이다.

이 지점에서 생각할 점이 하나 더 있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전체를 한 가정으로 여기곤 하셨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제5계명은 일차적으로 개인의 가정에 적용해야 하지만, 이스라엘이라는 민족 공동체에도 적용해야 하는 지침이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라는 명령은 조상으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가르침을 귀하게 여기라는 뜻으로도 해석돼야 한다. 

“너는 센 머리 앞에서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레 19:32). 

이 말씀은 제5계명을 확대한 가르침이라 할 수 있다. 노인을 공경하라고 말씀한 다음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라고 덧붙인 것은 하나님에 대한 계명을 주신 다음 부모 공경에 대한 계명을 주신 것과 같은 맥락이다. 부모는 가장 가까운 조상이며, 조상의 끝에는 참되고 영원한 부모이신 하나님이 계시다. 

노인에 대한 존경은 저절로 생겨나지 않는다. 가족이 아닌 이웃에게 존경받기 위해서는 의롭게 살아야 한다. 그래서 솔로몬은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공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잠 16:31)라고 했다. 이런 근거에서 조안 치티스터는 “이 계명은 우리보다 앞서 가면서 길을 보여 준 사람들을 돌보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다. 동시에 이 계명은 앞서 간 세대에 대해 우리가 빚지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⁴라고 말한다.

주 안에서

예수님은 다른 계명과 율법에 대해 그렇게 하신 것처럼 제5계명에 대해서도 그 본래의 의미를 회복하고 실천하도록 가르치셨다. 세월이 가면서 계명이나 율법의 본뜻은 무시되고 형식적으로만 지켜지는 경향으로 흘렀기 때문이다. 

어느 날, 제자들이 음식을 먹을 때 정결례 규정을 따르지 않는 것을 보고 바리새파 사람들과 서기관들이 시비를 걸어온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반박하시면서 ‘고르반 전통’을 예로 드신다. 고르반 전통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마련된 규정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물질적으로 넉넉한 사람들이 부모 부양의 의무를 피하기 위해 이 전통을 악용했다. 그래서 예수님은 “너희가 너희 전통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도다”(막 7:9)라고 책망하셨다. 여기서 언급한 ‘하나님의 계명’은 제5계명을 가리킨다. 

공생애 이전의 예수님의 가정 생활에 대한 정보는 누가복음 2장에 나오는 열두 살 때의 이야기 하나 밖에 없다. 그분은 열두 살 때 부모와 함께 예루살렘에 갔다가 수일 동안 미아가 됐다. 사흘째 되는 날, 부모는 성전에서 율법 교사들과 토론에 몰두하고 있는 아들을 발견한다. 마리아가 아들에게 역정을 내자 소년 예수는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49절)라고 반문한다. 이 이야기를 통해 누가는, 예수님이 어릴 때부터 이중적인 자기 이해를 가지고 사셨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그분은 육신의 부모에게 양육 받으면서도 참되고 영원하신 하늘 아버지를 기억하셨다. 육신의 아들로서 의무를 다하면서 하늘 아버지께 받은 사명을 따라 나설 때를 기다리셨다.

예수님은 가족에 대해서도 이중적인 이해를 가지고 계셨다. 피를 나눈 가족이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일은 하늘 아버지 아래에서 믿음의 형제 자매들을 얻는 일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때가 됐을 때 생물학적 가족을 떠나 영적 가족을 불러 모으셨다. 그분이 제자들에 둘러싸여 말씀을 가르치고 있을 때 어머니와 형제 자매들이 찾아와 만나려 하자, 그분은 “누가 내 어머니이며 동생들이냐”(막 3:33)라고 물으시고는 주위에 둘러 앉은 사람들을 보시며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을 보라”(34절)라고 하셨다. 

그분은 이 말씀으로 생물학적 가족을 부정하신 것이 아니다. 그분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 전에 사랑하던 제자에게 어머니를 돌봐 달라고 부탁하실 정도로 아들의 책임을 다하셨다(요 19:26-27). 하지만 그분은 생물학적 가정을 초월해 하늘 아버지를 모신 영적 가정을 위해 사셨다. 그리고 그 삶의 절정에서 그분은 하늘 아버지의 뜻을 따라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영원한 영적 가정을 낳으셨다. 

예수님은 영적 가정을 생물학적 가정보다 중요하게 여기셨다. 참되고 영원하신 하늘 아버지에 눈 뜨면 육신적인 가정의 연대를 뛰어 넘게 된다고 하셨다. 그래서 예수님은 가정에 대해 다음과 같은 도발적인 말씀을 남기셨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마 10:34-37). 

하늘 아버지를 찾기 전까지 생물학적인 부모는 궁극의 충성의 대상이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늘 아버지를 찾고 나면 궁극의 충성이 그분께 향한다. 하나님 없는 삶을 살아오던 한 가정에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된 사람이 생기면 필경 분열과 갈등이 시작된다. 그래서 예수님은 검을 주러 왔다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온 가족이 하나님에게 눈 뜨고 모두가 하늘 아버지 안에 있는 형제 자매임을 깨닫게 되면 세상이 흔들 수 없는 평안을 누리게 된다.

바울 사도가 가정 생활 지침을 주면서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엡 6:1)라고 말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공경하라’라는 명령을 ‘순종하라’라는 명령으로 바꾼 이유는 어린 자녀들을 염두에 두고 썼기 때문일 것이다. 부모들에게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라’(엡 6:4)라고 명령한 것에서도 그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렇게 권면하면서 사도는 ‘주 안에서’라는 단서를 덧붙인다. 만일 부모의 명령이나 가르침이 주님의 뜻에 일치하지 않거나 반대되는 경우에는 순종의 의무가 면제된다는 뜻이다. 

바울 사도 역시 생물학적인 가정을 소중히 여기도록 가르쳤지만, 생물학적인 가정의 범위를 초월하는 데까지 나가도록 권한다. 그리고 그 자신이 그렇게 살았다. 바울이 회심한 후에 생물학적인 가족과 어떤 관계에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사도행전도, 바울의 편지들도 침묵한다. 그 침묵이 생물학적인 가족과 연을 끊고 살았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생물학적인 가족을 부양하는 것이 바울의 주된 관심사가 아니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가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평생을 산 것도 같은 이유다. 그에게는 하늘 아버지의 뜻을 위해 사는 것이 가장 중요했고, 믿음의 식구들을 얻어 교회라는 영적 가정을 세우는 것으로 충분했다. 그는 그렇게 사는 것이 가장 좋은 선택이라고 믿었다. 다만, 그것은 은사가 있어야만 하는 일이다(고전 7:7).

이렇게 본다면, 새 언약에서도 제5계명은 여전히 유효하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 아버지를 새롭게 찾은 사람은 생물학적 가족에 대한 책임과 의무에 성실하되 그것을 넘어설 수 있어야 한다. 믿는 이들에게 생물학적 가정은 하늘 아버지 아래에서 모이는 영적 가정을 보게 하고, 이 땅에서 얻은 영적 가정은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가정을 소망하게 한다.  

---

註
1)    실제로 제5계명의 원형은 ‘네 부모를 버리지 말라’라는 것이었다고 추측하는 학자들이 있다. Brevard Childs, Exodus, p. 418. 
2)    Douglas Stuart, Exodus 2, p. 461.
3)    Brevard Childs, Exodus, p. 419; Philip Graham Ryken, Written in Stone, p. 122.
4)    Joan Chittister, The Ten Commandments: Laws of the Heart, p. 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