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가 ‘기린’ 하나님 이름, 하나냐가 ‘가린’ 하나님 이름
예레미야 28장에는 선지자 두 명이 나온다. ‘선지자 하나냐’(하난야 한나비)와 ‘선지자 예레미야’(한나비 이르메야). 둘 다 BC 6세기 초 유다 왕국의 패망을 마주해야 했던 자들이었지만, 둘의 됨됨이는 아주 상반된다. 흔히 하나냐를 거짓 선지자로, 예레미야를 참 선지자로 부르지만, 성경 본문에는 그런 명칭이 나오지 않는다. 하나냐나 예레미야나 그냥 다 같이 선지자(한나비)로만 소개된다(렘 28:1, 5, 6, 10, 12, 15, 17).
BC 6세기 초, 예레미야는 유다 사회가 ‘바벨론 왕의 멍에를 메어야 한다’(렘 27:11, 12)라고 외쳤고, 하나냐는 ‘유다는 바벨론 왕의 멍에를 메지 아니하리라’라고 외쳤다(렘 27:8-10, 15, 16; 29:8-9, 21). 예레미야는 왕국의 패망을 하나님의 심판으로 새겼으며, 바벨론 왕을 섬기려는 결단에서만 유다 백성의 살길이 열린다고 보았다(렘 27:12, 14, 17; 28:11, 14). 그러나 하나냐는 달랐다. 예레미야는 항복을 권유했지만, 하나냐는 항쟁을 외쳤다. 하나냐는 바벨론에 있던 유다 포로들이 2년 안에 귀환한다고 예고했고(렘 28:3), 예레미야는 70년이 차야 그 귀향이 이루어진다고 보았다(렘 29:10). 하나냐는 예레미야의 나무 멍에(렘 27:2-3)를 빼앗아 꺾어버렸지만(렘 28:2, 10), 하나님은 다시 쇠 멍에를 만들어서 예레미야의 목에 걸게 하셨다(렘 28:12-13). 하나냐는 군중 심리를 대변했지만, 예레미야는 끝까지 하나님의 뜻을 대언하는 자리를 사수했다.
예레미야서는 하나냐를 가리켜 ‘거짓 선지자’라고 부르지는 않지만, 하나냐나 하나냐 부류가 외친 ‘바벨론의 왕을 섬기게 되지 아니하리라’(렘 27:14)라는 신탁을 두고 ‘거짓(셰케르)을 예언한다’라고 여러 차례 단정한다(렘 27:10, 14, 18; 28:15; 29:9, 21, 23). 하나냐도 전령자 공식(Messenger Formula)이라고 부르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길’(코 아마르 야훼)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네움 야훼)라는 어구를 내세우며 외쳤다는 것은 예사롭지가 않다(렘 28:2, 4). 하나냐는 자기 생각이나 세간의 여론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포장했다. 참과 거짓을 판별하기가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하나냐의 속내는 출애굽의 은총을 기대하는 정서일 수 있다. 출애굽의 역사가 자기 시대에 재현되기를 바라는 소망일 수 있다. 하나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출애굽의 길을 걷게 하실 때 애굽 왕 바로의 멍에를 꺾어버리셨음을 상기한다. 하나님께서는 애굽 땅의 이스라엘 자손을 강하고 큰 팔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해 데려가셨지 않은가. 과거의 역사(歷史)에서 역사(役事)하셨던 하나님은 오늘의 역사에서도 역사하신다.
왕국의 존폐가 걸린 시공간에서 출애굽의 은총을 기대하는 정서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출애굽의 역사가 BC 6세기 초 유다 왕국사에서 재현되기를 바라는 소망이 잘못된 것도 아니다. 문제는 하나냐나 하나냐와 부화뇌동하는 자칭 선지자들이 출애굽의 은총을 오해했다는 데 있다. 유다 백성은 몸으로는 ‘출(出)애굽’ 했지만, 삶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살아 내지 못했다. 그랬기에 하나님은 유다 백성의 처지를 ‘환(還)애굽’의 환경으로 되돌리시고자 했다. 하나냐는 그런 하나님의 뜻을 외면하고 자기 생각을 반영하는 반(反) 멍에를 하나님의 뜻이라고 우겼다. 유다 백성에게 거짓(샤케르)을 믿게 했다(렘 28:15).
예레미야와 하나냐의 차이를 어떻게 따져야 할까? 제3계명의 주제에 따르면, 예레미야는 자기 생각을 낮추고 하나님의 이름을 ‘기렸지만’, 하나냐는 자기 생각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가렸다’.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출 20:7)라는 깨우침이 여기에 있다. 신명기 법전(신 12-26장)에 제3계명의 실천으로 ‘여호와께서 … 행하라 명령하신 도에서’(신 13:5) 이스라엘을 꾀어내는 선지자나 꿈꾸는 자 등을 따르지 말라고 엄히 다짐하는 사실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신 13:1-11).
하나님의 이름, 그 이름을 아는 ‘이로움’과 그 이름의 ‘이룸’
제3계명의 밑거리는 하나님의 이름이다. 제3계명의 밑가락은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도용(盜用), 남용(濫用), 오용(誤用)하지 말라는 지시다.
1 제3계명의 올림말은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로 팃사 에트-솀-야훼 엘로헤이카 랏사베)다.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순이지만, 개역개정 성경에서의 첫 문장은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이다.
제3계명의 으뜸글인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은 읽기에 따라서는 ‘네 하나님의 여호와란 이름’일 수도 있다. 이 글을 ‘여호와의 이름을’로 읽을 경우, 제3계명의 속내는 여호와를 일컫는 하나님의 여러 호칭을 조심스레 아우르게 하고, ‘여호와란 이름’으로 읽을 경우, ‘이름은 곧 실체다’(nomina sunt realia, Names are real things)라는 경구의 안내로 여호와라는 이름에서 하나님의 실재와 마주하게 한다.
구약에서 ‘하나님’(엘, 엘로힘)의 이름은 여럿이다. 전능하신 하나님(엘 샤다이, 창 17:1; 28:3; 35:11; 43:14; 48:3),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엘 엘리온, 창 14:18, 19; 단 3:26; 4:2; 5:21), 질투하시는 하나님(엘 칸나, 출 20:5; 34:14; 신 4:24; 5:9), 영원하신 하나님(엘 올람, 창 21:33), 이스라엘의 하나님(엘 엘로헤 이스라엘, 창 33:20) 등. 이 이름들은 기호(sign)나 라벨(label)이 아니라, 어려운 표현을 빌리자면, 하나님이라는 ‘개별성에 대한 표식’(mark of particularity)이다. 한자의 ‘이름 명’(名) 자가 ‘저녁 석’(夕)과 ‘입 구’(口)로 이루어져 있는 것도 예사롭지 않다. 캄캄한 밤에 누군가를 식별할 수 있는 수단은 오로지 입으로 밝히는 이름뿐이다.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깨닫게 하는 언어적 표식이다. 예컨대 전능하신 하나님을 앎으로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소통하게 되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부름으로 하나님과 주체적으로 만날 수 있다. 김춘수 시인이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됐다’라고 하지 않는가! 이름을 아는 이로움이 여기에 있다. 하나님의 이름을 알고 부름으로 우리 삶은 하나님의 작품으로 빚어지게 된다.
구약이 증언하는 출애굽 여정은 하나님의 이름을 묻는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자기 이름을 계시하시는 대목으로 시작한다(출 3:9-15). 창세기는 일찍이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던 자들을 소개했지만(창 4:26; 12:8; 13:4; 21:33; 26:25), 430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자손은 여호와란 이름을 잊고 지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자기 이름을 이렇게 밝히셨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출 3:14-15).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해석에는 긴 논란이 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모세에게 자기 이름을 ‘에흐예 아쉐르 에흐예’(개역개정에서는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새번역에서는 ‘나는 곧 나다’, 출3:14a)로 밝히셨다는 사실이다. 그런 뒤 ‘에흐예(스스로 있는 자)가 너를 보내셨다 하라’(에흐예 쉘락하니 알레이켐)라고 말씀하시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에흐예’(문자적으로는, ‘나는 있을 것이다’, 출 3:14b)로 소개하셨다. 히브리어 구문 ‘에흐예 아쉐르 에흐예’는 ‘나는 함께 있어 줄 에흐예’로도 읽힐 수 있다.
2 하나님의 이름을 ‘에흐예’로 읽을 경우 그 뜻은 명사적이기보다는 동사적이다. 출애굽기 3:15는 그 ‘에흐예’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의 여호와(야훼)로 풀어 놓았다.
‘여호와’란 표기는 적합하지 못하다. 하나님은 자기 이름을 ‘야훼’로 소개하셨지만, 사람들은 ‘야훼’라고 부르지 않았다. 야훼를 가리키는 히브리어 자음(YHWH)을 글자대로 발음하지 않고 ‘주님’(아도나이)이라는 별칭으로 불렀다. 그러다 보니 야훼의 히브리어 자음에 ‘아도나이’의 모음이 첨가된 이름자 ‘예호바’(Yehowah, Jehovah)가 생겨났고, 거기에서 ‘여호와’라는 우리말 표기도 나왔다.
히브리어에서 ‘하나님’(엘, 엘로힘)은 하나님의 성품을 명사적으로 나타낸다. 이에 비해 히브리어 야훼(여호와)의 속내는 동사적이다. 예컨대 이스라엘 신앙은 여호와를 만군의 여호와(에훼 체바오트, 삼상 1:3, 11),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야훼 메카디세켐, 출 31:13; 레 20:8),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여호와(야훼 케도쉬 이스라엘, 사 10:20; 30:15), 공의로우신 여호와(야웨 치드케누, 렘 23:6; 33:16),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야훼 멜렉 이스라엘, 사 44:6), 이스라엘의 구원자인 만군의 여호와(고알로 야훼 체바오트, 사 44:6),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야훼 로페카, 출 15:26)로 고백한다. 여호와란 이름씨에는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는 여호와에 대한 고백이 담겨 있다. 제3계명을 아는 자는 우상(偶像, 愚相, 愚想)에 매이지 않고 여호와가 이루시는 사역을 마음껏 누려야 한다. 그 이름을 아는 자는 그 이름의 이루심을 진정 체험할 수 있다. 호세아 선지자도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호 6:3)라고 외치지 않았는가.
되새겨 들어야 할 ‘망령되게·망령되이’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로 팃사 에트-쉠-야훼 엘로헤이카 랏샤브)로 시작하는 제3계명에서 우선 되새겨야 할 문구는 ‘망령되게’다. 개역개정의 ‘망령(妄靈)되게’라는 표현은 히브리어 ‘랏샤베’(전치사 ‘레’ + 관사 + 명사 ‘샤베’)에 상응하는 우리말로는 적합하지 않다. ‘망령되다’라는 우리말은 노쇠해서 생긴 정신 장애가 일으키는 비정상적인 말이나 판단, 행동을 주로 가리키지만, 제3계명의 본디는 비정상적인 심신 상태가 빚은 망상(妄想)·망념(妄念)·망령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정신 장애를 지닌 자가 외치는 허튼소리는 제3계명의 본바탕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제3계명의 정언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일컬어지는 자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외치고 다니는 헛소리에 대한 엄중한 경고다.
제3계명에서 주목해야 할 글자는 히브리어 명사 ‘샤베’다. 이 글자는 헛됨(헛된 제물, 사 1:13), 허무한 것(렘 18:15), 우상(허탄한 거짓, 시 31:6), 허언(虛言, 거짓된 풍설, 출 23:1), 허망한 것(거짓을 말하며, 사 59:4), 허위(虛僞, 거짓 증거, 신 5:20), 허탄(허탄한 것, 시 24:4), 가치 없음(허망한 사람, 욥 11:11) 등을 의미하고, 부사적으로는 무익하게(헛되이, 렘 2:5), 헛되이(망령되이, 출 20:7), 허무하게(시 89:47), 하찮게(헛되니, 말 3:14) 등을 뜻한다.
‘샤베’의 용례는 크게 셋이다. 하나는 ‘거짓 증거’(에드 샤베, 신 5:20), ‘거짓된 풍설’(쉐마 샤베, 출 23:1), ‘거짓을 말하고’(샤베 예답베르 립보, 시 41:6)에서처럼 ‘거짓’(falsehood)을 뜻하고, 다른 하나는 ‘허무한 것’(샤베, 욥 15:31), ‘헛된 것’(샤베, 욥 35:13), ‘헛됨’(샤베, 시 60:11)에서처럼 ‘허무함’(vanity)을 뜻하며, 나머지 하나는 ‘허망한 사람’(메테이-샤베, 욥 11:11; 시 26:4), ‘허탄한 것’(샤베, 시 119:37)에서처럼 ‘가치 없음’(futility)을 뜻한다. 제3계명의 속내가 여기에 있다. 하나님의 사람은 거짓된 일에, 헛된 일에, 가치 없는 일에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거론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주목할 것은, 출애굽기의 제3계명에서 ‘망령되게’(출 20:17)로 번역된 히브리어 ‘샤베’가 ‘거짓’으로도 읽힌다는 점이다. 신명기의 제9계명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지니라”(신 5:20)에 나오는 ‘거짓 증거’(에드 샤베)가 그런 경우다.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라는 계명의 속내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거짓된 일에 거론하지 말라’에 있다는 것이다.
제3계명이 경고하는 ‘망령되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짓은 ‘거짓을 예언’(렘 27:15)하는 짓이다. 하나냐가 유다 백성에게 ‘거짓’(샤케르, 렘 28:15)을 믿게 하고자 저질렀던 언행은 ‘거짓된 풍설’(쉐마 샤베, false report, 출 23:1)이자 헛된 짓, 가치 없는 짓, 허망한 짓이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을 함부로 퍼뜨리는 자를 가리켜 하나님의 말씀을 ‘도둑질하는 선지자’(렘 23:30)라고 꾸짖는다. 그들은 ‘혀를 놀려’(렘 23:31) 자기 생각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위장한다. ‘거짓과 헛된 자만으로’(렘 23:32) 하나님의 백성을 미혹하게 한다. 여호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도둑질하는 자,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혀를 놀리는 자, 하나님의 백성을 거짓으로 미혹하는 자를 그냥 놔두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 “내가 치리라”라고 외치지 않으시는가(렘 23:30-33).
제3계명의 으뜸 가락은 거룩한 하나님의 이름을 속된 것으로 더럽혀서는 안 된다는 깨우침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거론하지 않으려면 그 마음이 진실해야 한다. 가치 없는 일에 하나님의 이름을 쉽사리 운운하지 않으려면 그 삶이 신실해야 한다. 거짓된 일에 무작정 하나님의 이름을 끄집어들이지 않으려면 그 영혼이 순수해야 한다.
십계명에서 제3계명은 히브리어 ‘샤베’를 가지고 십계명의 처음 세 금령을 총괄하는 역할을 한다. ‘하나님 외에, 하나님 곁에, 하나님 앞에 다른 신을 두지 않는 신앙’(제1계명), 세상 풍속과는 다르게 ‘새긴 우상에 절하지 않고 하나님을 그 어떤 형상으로도 대체하지 않는 신앙’(제2계명)은 하나님의 이름을 속되게 하지 않으려는 경건(제3계명)과 긴밀하게 맞닿아 있다(레 22:32).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기대를 누리는 길을 완주하려고 하는 자는 누구나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드높여야 한다.
‘부르지 말라·일컫지 말라’의 중층적 의미
이제 우리 관심을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에서 ‘부르지 말라’에 두어야 할 차례다. 우리말 성경에서는 ‘부르지 말라’(출 20:7), ‘일컫지 말라’(신 5:11)지만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문자적으로는 ‘높이 들어 올리지 말라’(로 팃사)다. 히브리어 동사 ‘나사’는 본래 ‘손을 들다’(시 28:2), ‘얼굴을 들다’(욥 11:15), ‘(머리를) 높이 들다’(왕하 25:27), ‘들어 올리다·메다’(삼하 6:13), ‘데리고 가다’(왕하 4:19), ‘나르다’, ‘지다·메다’(애 3:27)처럼 힘을 써서 들어 올리거나 메어 나르거나 등에 지는 동작을 가리킨다. 그만큼 히브리어 ‘나사’에는 일상생활에서 반복되는 몸동작이 담겨 있다. 여기에 은유적인 뜻인 ‘(책임을) 지다’(신 1:9)나 ‘죄를 지다·담당하다’(사 53:12)가 담기면서 히브리어 ‘나사’에는 무겁게 진 죄를 들어 올리다 → 죄를 벗기다 → 용서하다(창 18:24)는 영적인 의미까지 더해진다.
우리말 성경은 제3계명의 히브리어 동사 ‘나사’를 ‘목소리를 높이다’로 옮겼다. 예컨대 ‘소리 높여 울다’(창 27:38)에서처럼 ‘하나님의 이름을 소리 높여 부르다’로 읽었다. 삶에서 자기 목소리를 높이는 경우가 언제인가? 살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경우는 어느 때인가? 거짓 맹세를 할 때 사람들의 목소리가 커진다.
레위기 19장에 십계명 형태로 수록된 말씀에 “너희는 내 이름으로 거짓 맹세함으로 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이니라”(레 19:12)라는 조항이 있음을 눈여겨봐야 한다. 게다가 고대 서아시아 지역의 여기저기에서 이른바 저주 문헌(execration texts)이 발굴됐던 것을 고려한다면,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라는 제3계명에는 하나님의 사람이란 이방인들처럼 누군가를 하나님의 이름으로 저주해서는 안 된다는 다짐도 담겨 있다. 하나님의 이름을 지키는 일에서도 이스라엘은 이방 풍속을 좇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제3계명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 맹세를 하거나 누군가를 저주하지 말라’라는 뜻 외에도, 말 그대로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 세우지 말라’나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 들어 올리지 말라’라는 뜻으로도 새길 수 있다. 제3계명에서 히브리어 ‘나사’라는 글자가 사용된 맥락은 짐을 들어 올리고, 지고, 나르는 일상이 아니라, 제1계명과 제2계명에 이어서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우상과 형상을 배격하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지성(至誠)으로 거룩하게 여기는 자리다. 그런 점에서 제3계명의 금령은 우상을 숭배하고자 하나님의 이름으로 떠벌렸던 아론의 금송아지 사건을 되새기게 한다.
3
이스라엘이 시내 광야 시내산에서 벌였던 소동이 무엇이었는가? “일어나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엘로힘)을 만들라”(출 32:1)라는 것이지 않았는가. 아론이 백성의 성화에 쫓겨 만들어 세운 것이 무엇이었는가? 금송아지 형상이지 않았는가(출 32:4). 아론이 금송아지 형상을 만들어 백성 앞에 세워 놓고 뭐라고 외쳤는가?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엘로헤이카)이로다”(출 32:4)라고 하지 않았는가. 아론은 하나님의 이름을 금송아지 형상에 덮어 씌었다. 금송아지 우상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높이 들어 올렸다. 아론의 말에 백성이 ‘이튿날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 번제를 드리며 화목제를 드리고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던(출 32:6) 일이야말로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도용, 남용, 오용한 경우다. 그래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이름을 남용하거나 오용하거나 도용하는 일은 사람이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짓이다.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죄 없는 줄로 인정하지 아니하리라’를 부언한 까닭
제3계명은 이런 말로 매듭을 짓는다.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출 20:7b). 이 맺음말은 십계명의 다른 계명들과 분위기에서 다르다. 다른 계명에는 계명과 어긋나게 처신하는 자를 가리켜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라고 단죄하는 조항이 없다. 제3계명에만 이런 조항이 명시돼 있다.
십계명이 정언 형식의 글말인 점을 기억하자. 십계명의 ‘…하지 말라’라는 형식의 금령을 흔히 필연법(apodictic law)으로 기억하지만, 십계명의 금령에 처벌·형벌(penalty)이 없다는 사실은 십계명의 속내를 법보다는 삶을 위한 지침(ethos)으로 보게 한다. 이런 맥락에서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라는 제3계명의 끝맺음은 특이하다. 계명을 따르지 않는 자에게 이런저런 처벌이 뒤따른다고 밝히지 않는 것은 십계명의 전반적인 구도와 호흡을 같이 하지만, 제3계명에 ‘죄가 없다고 하지 아니하리라’라는 조항이 들어 있다는 것은 예사롭지 않다.
제3계명이 다짐하는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에서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가 말하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구약에는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는 자는 사형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규정이 엄연히 존재한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누구든지 그의 하나님을 저주하면 죄를 담당할 것이요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면 그를 반드시 죽일지니 온 회중이 돌로 그를 칠 것이니라 거류민이든지 본토인이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면 그를 죽일지니라”(레 24:15-16).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는 자는 반드시 죽음에 처해야 한다. 거짓된 사실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외치고 다니던 자들을 향한 예레미야의 경고도 이 점에서는 마찬가지다.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하니 내가 너희를 몰아내리니 너희와 너희에게 예언하는 선지자들이 멸망하리라”(렘 27:15).
십계명에서는 단언적인 처벌이 거론되지 않는다. 십계명의 본질이 법이기보다는 에토스인 까닭이다. 십계명은 하나님의 사람에게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게 하는 창(窓)이다. 제3계명의 마무리,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라는 맺음말은 우리를 다음과 같은 결단 앞에 서게 한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 ‘넓은 문으로 가는 멸망에 이르는 길과 생명을 얻는 좁은 문으로 가는 길 중 어느 길을 선택해야 하는가?’
‘길이 있어서 가기보다는 가다가 보니 길이 된다’라는 할라카(Halakha)의 정신이 제3계명에는 진하게 서려 있다. 살면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함부로 맹세하지 말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웃을 저주하거나 정죄하지 말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 서원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서원을 하고서도 서원을 지키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남용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팔아서 자기 욕심이나 야망을 채우지 말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악용하는 신성모독을 저지르지 말라는 것이다.
제3계명에서 들리는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라는 소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드러내는 삶으로 우리 길을 이끈다. 사람이 더럽힌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께서 친히 거룩하게 하시지만(겔 36:22), 제3계명이 다짐하는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도용·남용·오용·악용하지 말라’라는 지침은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제대로·온전히·바르게·참되게 져야 한다’라는 소리로 들어야 한다. 이 소리는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2)라는 말씀과 공명을 이룬다.
註
1) 박준서, 《십계명 새로 보기》 (한들출판사, 2001), p. 72.
2) 박철현, “출애굽기 3:13-15의 하나님의 이름 해석에 대한 연구,” 〈구약논집〉 24(2022.12), pp. 131-170.
3) Calum M. Carmichael, Law and Narrative in the Bible: The Evidence of the Deuteronomic Law and Decalogue(New York: Cornell Univ., 1985), pp. 318-3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