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 브뤼헌 목사는 교리문답을 배워야 하는 이유를 “여호와께서는 주께서 영원한 은혜의 언약을 맺은 무리 가운데 여러분도 이미 속하도록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언약 안에서 주님은 여러분이 그분을 알고 사랑하며 순종할 것을 권고하십니다”(잠 8:18; 전 12:1)¹라고 했다. 교리문답을 배우는 일이 무엇보다 “은혜 언약에 속한 자의 책무”라는 것이며, 이 은혜 언약에 속한 자의 책무란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며 순종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고 순종하기 위해서는 교리문답을 배워야만 한다. 교리문답을 배우는 일과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고 순종하는 일”은 연결돼 있다. 그래서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의 작성자였던 우르시누스와 올레비아누스는 교리문답의 1문답에서 ‘위로’를 말한 뒤, 곧이어 그 위로를 얻기 위해 “알아야 할” 것을 말한다. 야훼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서, 그분께서 주시는 참된 위로 안에서 살아가기 위하여는 반드시 필요한 바가 있다는 것이며,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전체는 이에 대한 대답이다. 제2문답은 교리문답 전체의 개요인 셈이다.²

제2문   이러한 위로 가운데 복된 인생으로 살고 죽기 위해서 당신은 무엇을 알아야 합니까? 
답   다음의 세 부분을 알아야 합니다. 첫째, 나의 죄와 비참함이 얼마나 큰가? 둘째, 나의 모든 죄와 비참함으로부터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 셋째, 그러한 구원을 주신 하나님께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하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교리문답이 알려 주고 있는 이 세 지식은 간단히는 ‘비참’, ‘구원’, ‘감사’라는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다. 제2문답의 이 세 가지 대답이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의 ‘구조’를 형성한다. 우리는 바로 앞의 글에서 주제, 곧 ‘위로’라는 주제를 다뤘는데, ‘구조’는 이 주제가 구현되는 방식이다. 

교리문답은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위로’라는 주제로부터 멀어지지 않는데, 이 주제가 효과적으로 구현되기 위해 구조를 사용하는 데 있어서도 매우 일관적이다. 말하자면 이 교리문답의 구조를 따라가기만 하면 반드시 그 목적지인 ‘위로’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믿을 수 있는 것이다. 김헌수 교수는 이를 “삼중적 지식 안에서 자라 감”³이라는 말로 표현했는데, 제2문답이 제시하고 있는 이 삼중적 지식 안에서 반드시 참된 위로로 성장할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왜 비참인가?

첫째, 왜 비참인가? 비참을 아는 일은 왜 우리로 하여금 ‘위로’에 도달하게 해 주는가? 우르시누스는 “비참을 아는 그 자체가 위로를 주는 것은 아니다”라고 하면서(덧붙여 “그 자체는 위로를 주기보다는 오히려 경각심을 갖게 한다”고도 하였다), “우리의 비참한 처지에 대한 지식이 우리 속에서 구원을 얻고자 하는 열망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⁴라고 설명했다. 이는 칼뱅이 《기독교 강요》를 시작하는 방식이기도 한데, 칼뱅은 이 책을 처음 열면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우리 자신을 아는 지식과 연결돼 있다”⁵고 말한다. 이때 우리 자신을 아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열쇠가 된다는 말은 “나로서는 하나님을 알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나님을 알 수 있다”⁶는 의미다. 즉 이 말이 비참을 깨달아야 하나님을 알 수 있다는 뜻이다.

우르시누스가 말한 “비참을 아는 것이 그 자체가 위로를 주는 것은 아니”라는 이 주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비참은 ‘땔감’이다. 비참은 그 자체가 열매가 아니다. 설교자는 교리문답을 설교할 때뿐 아니라 성경의 다른 어떤 본문을 설교할 때도 이를 잊지 말아야 한다. 비참은 복음을 향해 가기 위한 ‘필수적인 땔감’이지만, 반드시 ‘땔감일 뿐’이어야 한다. 비참이 자신의 지위를 상실하고 ‘더 중요한 위치’를 점유하게 되면, 파괴적 영향력을 행사하게 됨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예를 들어, 구약의 선지서들은 ‘심판’을 말한다. 그러나 ‘심판으로 결과지어지는’ 선지서는 거의 없다. 대부분의 선지자의 메시지는 심판을 혹독하게 말하더라도 반드시 ‘회복을 함께’ 말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파멸의 주’가 아니라 ‘구원의 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분명 심판하시지만, 심판이 하나님의 본연이 아니다. 하나님의 본연은 ‘구원’이시다. 

따라서 시편 또한 하나님께 구원을 요청하고 자신의 죄를 고백하더라도 죄의 토로 자체로 끝나는 시편은 거의 없다. 시편은 언제나 ‘소망의 주’를 내다본다. 왜냐하면 죄로 말미암은 비참은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필수적인 땔감’이지만, 땔감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 자체에 머물면 파괴적 영향력을 행사할 뿐, 생명을 주지 못하게 된다. 

내가 아는 한 젊은 부부는 우리 교회에 출석하던 당시 복음주의 대형 교회를 다니다가 청교도 신앙을 접했다고 했다. 부부 중 특히 형제가 독서에 매달렸다. 끊임없이 조나단 에즈워드와 존 오웬을 읽었다. 그러고는 ‘자기 점검’이 시작됐다. 이 형제는 가혹하리만큼 자신의 죄에 집중했다. 그러고는 나에게 말했다. “예전에는 신앙생활이 참 행복했는데, 지금은 지옥 같습니다.”

그 형제는 소위 개혁신앙을 찾아 우리 교회에 왔다. 하지만 죄를 지적하는 개혁파를 만났으나 잘못 만났다. 끝없이 자기 점검에 매진했지만, 추악한 내 속을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지옥밖에 없다. ‘죄와 심판’이라는 주제는 기독교의 본질이지만 그 자체가 본질은 아니다. 

죄를 지적하는 일은 땔감이다. 그것을 부스터로 하여 본연을 향해 치고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본연이 무엇인가? ‘구원하시는 하나님’이다. ‘생명을 주시는 그리스도’다. 물론 죄를 지적하지 않고, 비참을 경유하지 않은 채 마냥 흐느적거리는 기쁨만 전달해 주는 현대 복음주의 교회가 너무도 많다. 이 역시 문제지만 동시에 죄를 지적하는 일 자체에 몰두해 하나님을 심판과 정죄의 하나님으로밖에 볼 수 없는 것도 커다란 문제다. 

우리는 단호하게 말해야 한다. “비참을 알아야 참된 위로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기억하자. “비참을 아는 일은 땔감이다.” 비참을 아는 일은 구원을 향한 지식에 도달하기 위한 필수적이지만 한계를 분명히 해야 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범죄 이전에는 나름대로 완전했던 인간의 육체가 범죄 이후에 나약하고 죽음에 종속됐다는 것은 죄의 정당한 갚음이라고 하겠지만, 그것마저도 주님의 엄격하심보다는 자비를 더 보여 준다. 그 덕분에 우리는 육체의 욕망들을 등지고, 진리의 영원한 유(有)에로 우리 사랑을 돌려야겠다는 신념이 생기기 때문이다.”⁷  죄와 응보조차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을 보여 준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속하시다

그리고 교리문답은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가 우리에게 위로를 준다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교리문답은 제2부의 대부분을 사도신경 해설에 할애하는데, 이유는 사도신경이 고대 교회의 세례 문답에서 기인했기 때문이다.⁸ 교리문답은 제7주일의 사도신경 본문에 이르기까지 구원을 향한 과정을 논리적으로 구성하고 있다. 이 내용을 간단히 정리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제2주일의 결론
우리는 비참 가운데 빠져 있다.

제3주일 
제6문 원인이 하나님께 있는가?(첫째 질문)
답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사람을 선하게, 하나님의 형상, 곧 참된 의와 거룩함으로 창조하셨다.

제7문 그렇다면 타락한 본성은 어디에서 왔는가?
답 우리의 시조 아담과 하와가 낙원에서 타락하고 불순종한 데서 왔다.

제4주일 
제9문 어쩔 수 없이 빠질 수밖에 없는 덫으로 자유의지의 시험이 주어진 것이라면 이는 부당한 것이 아닌가?(둘째 질문)
답 그렇지 않다. 이것은 덫이 아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선을 행할 수 있도록’ 지으셨고, 따라서 죄악 이후의 인간인 지금의 우리들처럼 선을 선택하는 것이 더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죄악 이전의 아담은 선을 행하는 일이 더 쉽고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아담은 ‘고의로 불순종’하였고, 따라서 모든 죄와 죄책은 사람에게 있는 것이다. 하나님 탓이 아니다. 

제5주일 
제12문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떻게 1) 이 형벌을 피하고, 2)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수 있는가?(셋째 질문)
답 하나님의 공의가 만족돼야 한다.

제13문(공의의 문제 1) 스스로 이 의를 만족시킬 수 있는가?
답 그럴 수 없다. 오히려 우리는 죄책을 증가시킨다.

제14문(공의의 문제 2) 우리 대신 다른 피조물이 이 의를 만족시킬 수 있는가?
답 그럴 수 없다. 첫째, 하나님은 인간의 죄책 때문에 다른 피조물을 형벌하기를 원치 않으시며(공의), 둘째, 그 어떤 피조물도 이 죄책을 감당할 능력이 없다(능력).

제15문(공의의 문제 3) 그렇다면 어디에서 이 의를 만족시킬 이를 찾아야 하는가?(논리적 결론)
답 참 인간이면서 동시에 참 하나님뿐이다. 인간이어야만 앞의 첫째 문제, 곧 “하나님은 인간의 죄책 때문에 다른 피조물을 형벌하기를 원치 않으신다는 ‘공의의 문제’가 해결되며, 하나님이어야만 이 죄책을 감당할 수 있다는 ‘능력의 문제’가 해결된다. 

교리문답은 이렇게 진술을 마치고 나서 결론으로 사도신경을 제시한다. 

제6주일
제19문 당신은 이것을 어디에서 압니까?
답 거룩한 복음에서 압니다.

제7주일
제22문 그러면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믿어야 합니까?
답 복음에 약속된 모든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 복음은 보편적이고 의심할 여지없는 우리의 기독교 신앙의 조항들인 사도신경이 요약하여 가르쳐 줍니다.

필자는 대학 시절, 당시 선풍적 인기를 구가하고 있던 이문열 씨의 《사람의 아들》을 무엇에라도 홀린 듯 탐독했다. 거기 신앙의 핵심적 질문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문열 씨는 거기에서 성경에는 ‘사탄’으로 나와 있는 광야 시험을 내건 실체를 ‘아하스페르츠’로 표현한다. 그는 하나님에 대한 본질적 질문을 이렇게 공격적으로 시전한다. “사람에게 자유의지를 주었다고 하지만, 결국에 넘어질 수밖에 없는 시험을(선악과) 던져줘 놓고 연약한 자유의지로 인해 비틀대며 거기 떨어진 인간을 영원한 지옥에 던지는 신이라면, 인간의 고통스런 선택을 보고 낄낄대는 사디스트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이 책을 읽고 가장 아끼던 후배에게도 권해 주었는데, 그 후배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만약 이 책을 선배가 권해 준 것이 아니라 내가 찾아 읽었다면 나는 신앙을 버렸을지도 몰라요.” 내가 권해 주었기 때문에 비록 그 책이 굉장한 설득력이 있는 것처럼 보여도 그에 대한 신앙의 답 역시 있을 것이 분명하다는 의미였다. 

물론이다. 답이 있다. 성경은, 그리고 이 교리문답은 그 답을 알려 준다. 사도신경으로 가는 길목을 통해 교리문답은 하나님이 이문열의 상상처럼 “넘어질 수밖에 없는 시험”을 주신 것이 아님을 알게 해 준다. 오히려 첫 아담은 (죄 이후의) 우리와는 달리 훨씬 더 강력했다. 아담은 매우 강력하게 선을 행할 수 있는 능력과 의지를 갖고 있었다. 하나님은 결코 “넘어질 수밖에 없는 시험”을 주신 것이 아니다. 아담은 충분히 그 시험을 이길 수 있었다. 아니 이기는 것이 오히려 그에게는 당연한 일이었다. 

따라서 잘못은 우리에게 있다. 그래서 교리문답이 사람이 죄에 떨어진 것을 묘사할 때 “고의로 불순종”했다고 말한 것이다. 오히려 하나님은 이 우리들의 과오에 대해 답을 마련하셨다. 그 논리적 과정이 교리문답의 제7주일에 오기까지 설명돼 있으며, 그 해답, 곧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길’이 여기 사도신경을 통해 제시된다. 바로 ‘삼위 하나님을 향한 지식’이다. 

율법의 셋째 용법과 감사의 삶

삼중적 지식의 마지막은 구원 이후의 삶에 대한 것으로서 이를 약하여 ‘감사’라고 했다. 교리문답은 이조차 우리의 위로를 위해 필수적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신자의 삶이란 구원을 ‘쟁취’하는 자체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신자의 삶의 본질은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이다. 따라서 구원 이후의 삶, 그리고 그 요약으로서의 ‘감사’는 대단히 중요하다. 그리고 이 강조가 개혁자들에게 몹시 중요했기 때문에 이 점에 대한 강조가 오히려 더 필요하다. 

통상 개혁자들은 율법에 세 가지 용법이 있다고 말했다. 이는 멜란히톤에게서도 나타나고 칼뱅의 《기독교 강요》에도 상세히 설명돼 있다. 멜란히톤은 율법의 세 용법을 정리하면서⁹ “율법의 첫째 용법은 시민적 용도라고 할 수 있다. 율법은 가르치고 두려움과 형벌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그 율법의 제제 하에 있도록 하는 것이다”, “율법의 두 번째 용법은 더 중요하니, 이는 하나님의 진노를 선포하는 용도이다. 율법의 선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마음의 잘못을 지적하고 놀라게 하며 … 우리의 마음을 그런 불안과 슬픔에로 몰아간다”, “율법의 세 번째 용법은 신자가 된 이들,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중생한 성도들, 그들에 대하여 ‘내가 나의 율법을 그 마음에 두며’라고 하신 그 사람들에 대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들 안에 거하시며, 빛을 주시고, 그들로 하여금 따르게 하는데,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일어나는 것이다”라고 했다. 

칼뱅 또한 《기독교 강요》 2권 7장에서 이 내용을 다루는데¹⁰, 칼뱅에게서는 첫 번째 기능이 정죄의 기능이고(“그 첫 번째 부분은 하나님의 의를 드러냄으로써 각 사람에게 그 자신의 불의에 대하여 경계하고 알리고 깨우치고 정죄하는 부분이다.”), 두 번째 기능이 악인과 불신자들을 억제시키는 기능, 곧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는 기능이며(“율법의 두 번째 기능은 … 사람들에게 율법에 주어져 있는 무서운 위협을 접하게 하여 형벌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함으로써 그들을 억제시키는 것이다”), 세 번째 기능이 신자들을 가르치며 권고하는 기능(“율법의 세 번째 기능은 … 그들이 사모하는 바 주의 뜻의 본질을 날마다 더 철저하게 배우게 해 주며 또한 그 뜻을 깨닫고 있음을 확증하게 해 주는 최고의 도구가 된다. 이는 마치 마음을 다하여 주인을 섬길 자세를 갖춘 종이 주인의 뜻에 자기 자신을 온전히 맞추기 위해서 주인의 이모저모를 살피고 관찰하는 것과도 같다”)이다. 

칼뱅과 멜란히톤을 비교해 보면 셋째 용법은 같고, 첫째 용법과 둘째 용법이 순서가 바뀌어 있다. 멜란히톤에게는 하나님의 진노를 선포함으로 그리스도께로 가게 만드는 것이 둘째 용법이지만 칼뱅은 이를 첫째 용법으로 말했고, 따라서 멜란히톤에게는 시민적 용도, 곧 형벌이 두려워 죄를 짓지 못하게 하는 용도가 첫째 용법으로 제시돼 있지만, 칼뱅에게는 이것이 둘째 용법이다. 통상 이것은 (칼뱅의 순서대로 말하자면) 신학적 용법, 시민적 용법, 규범적 용법이라고 불린다. 

그런데 이때, 칼뱅은 율법의 기능들 중 셋째 용법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고 가장 많은 분량을 다루었다. 명시적으로도 “이는 율법의 가장 주된 기능이요 또한 율법의 고유한 목적에도 더 가까운 것이다”¹¹라고 말하기도 했다. 멜란히톤의 《신학총론》에서도 루터와의 차이를 말할 때 첫 번째 요소로 율법의 제3 용법에 대한 강조를 꼽고 있다.¹²

왜 셋째 용법이 중요한가? 율법이 ‘하나님의 심판을 상기시킴으로써 그리스도께로 가게 하기만 하면’ 충분하지 않은가? 그렇지만은 않다. 율법의 중요성은 ‘하나님의 성품을 보여 준다’는 것이며, 그렇다면 율법이 더 이상 정죄의 기능을 하지 않는 신자, 곧 이미 구원을 얻어 정죄와 심판에 놓여 있지 않은 우리들에게는 오히려 범죄 이전의 아담에게서처럼 율법은 ‘하나님의 아름다우심’을 알려 주는 지표가 된다.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탐심을 알지 못하”(롬 7:7)는 것이다. 곧 율법은 우리에게 “하나님은 도둑질을 싫어하신다”는 점을 알려 준다. 율법이 이를 알려 주지 않았다면 우리는 하나님이 무엇을 좋아하시고 무엇을 싫어하시는지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중생한 신자에게 율법은 ‘이제 신자가 됐으니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따라 살려고 하는 우리를 위한 지침’이 된다. 어느 길로 가야 할지를 알려 주는 이정표가 되는 것이다. 

교리문답은 첫째로 ‘비참’, 둘째로 ‘구원’을 통해 신자가 구원얻는 법을 알려 줌을 통해 우리에게 ‘위로’를 제시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만약 이것이 하나님의 본래 뜻이었다면 신자가 중생하는 즉시 천국에 데려가셨을 것이다. 우리가 여전히 죄 많은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이유는 ‘새롭게 태어난 이의 삶’이 어떤 것인지를 우리가 삶에서 실증하면서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시험받고 있는데, 이 시험은 우리를 곤경에 빠뜨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우리를 입증’하는 일이다. 

교리문답은 이 감사의 삶을 알려 주기 위해 두 가지 해설을 준비하고 있다. 하나는 십계명 해설이고, 또 하나는 주기도문 해설이다. 
십계명을 감사의 삶에 배치한 것은 십계명을 ‘강제 규정’ 같은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는 의미다. 앞서 율법의 셋째 용법에서 말한 대로 십계명을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의 삶을 위한 지침’으로 여겼기 때문에, 교리문답은 이를 셋째 부분에 배치했다. 기도 역시 마찬가지다. “기도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감사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며”(제45주일 제116문답)라고 했는데, 이는 ‘감사 기도’를 하라는 것이 아니라 기도야말로 이 중생한 신자의 ‘감사로서의 삶’의 필연이라는 의미다. 하나님과의 교제만이 중생한 신자의 참된 삶의 동력이라는 것이다.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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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얀 판 브뤼헌,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해설》, 김선수·성희찬 옮김(성약, 2020), p. 19.
2) 우르시누스는 2문답을 해설하면서 “비참을 아는 것이 왜 위로를 주며”, “구원을 아는 것이 왜 위로를 주며”, “감사를 아는 것이 왜 위로를 주는지” 각각 항목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해설은 자카리아스 우르시누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해설》, 원광연 옮김(CH북스, 2006), ff. 67.
3) 김헌수,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강해 1》(성약, 2009), p. 28. 해당 언설에서 저자는 관련된 몇 가지 성경 본문을 주해하면서, 성경이 어떻게 이 삼중적 지식이 “위로”에 도달하게 해 주는지를 잘 설명하고 있다. 
4) 자카리아스 우르시누스, 앞의 책, p. 67.
5) 기독교 강요, I.1.1.
6) 칼뱅의 표현을 필자가 정리한 것.
7) 아우구스티누스, 《참된 종교: 교부 문헌 총서 3》, 성염 옮김(분도출판사, 2011), pp. 15, 29.
8) “사도신경이 세례와 아주 밀접하게 연관돼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사도신경의 배경은 마태복음 28:19 이다. 이 본문을 대개 ‘대위임령’이라고 부르는데 구체적으로는 세례 명령이다. 이 명령을 따라 고대교회는 세례를 베풀기 위하여 세례 준비자에게......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교육했다. 이 때문에 사도신경은 3부로 구성돼 있다.”(유해무, 《예배의 개혁, 참된 교회 개혁의 길》, 그라티아, 2013, p. 43)
9) 필립 멜란히톤, 《신학총론》, 이승구 옮김(CH북스, 2000), ff. 252.
10) 기독교 강요, II.7.6. 이하 여러 조항.
11) 기독교 강요, II.7.12.
12) 필립 멜란히톤, 앞의 책, p.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