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현대인과 마찬가지로 목회자도 ‘바쁘다’라는 말을 달고 산다. 목회 현장에서 목회자는 늘 시간의 압박에 시달린다. 설교를 준비하고, 성도들을 심방하며, 행정을 끊임없이 처리하는 일정 가운데 시간 ‘관리’의 중요성을 생각한다. 그러나 바쁜 생활 속에서 정작 시간의 ‘본질’은 깊이 생각할 여유를 잃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음이 많은 목회자가 처한 현실이다.
시간과 역사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책
제임스 스미스의 《시간 안에서 사는 법》은 우리에게 시간과 역사에 대한 근본적인 재고를 요청한다. 이 책은 “우리는 어느 때에 존재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는 단순히 시계를 확인하라는 게 아니라 우리의 역사적 위치를 묻는 것이다. 스미스는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이 역사와 단절돼 있으며, 마치 시간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오해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이를 ‘무시간의’(nowhen) 기독교라고 말한다. 시간 및 역사와는 무관한 영구한 원리에 자신들이 지배받는다고 생각하기에 자신들이 처한 시간과 때를 분별하지 못하는 기독교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스미스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영적 시간 지키기’라고 말한다. 이는 “우리가 역사 안에 자리 잡고 있음을 자각하고 우리의 시간성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과 관련돼 있다. 영적 시간 지키기는 다음 네 가지 근본 신념으로 표현된다. ‘피조물적 유한성’, ‘언약으로 형성된 시간 감각’, ‘성령께서 우리를 모든 진리로 인도하신다는 약속’, ‘미래를 지향하는 소망’. 이 네 가지 신념이 이 책의 전체적인 방향을 설정한다.
우선 ‘시간의 피조물’(1장)에서 저자는 우리가 단순히 시간의 흐름을 겪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흡수하고 그 영향을 받는 존재임을 설명한다. 과거의 경험은 우리의 현재를 형성하고, 동시에 미래의 가능성을 열어 준다. 저자는 ‘던져진 가능성’이라는 개념을 통해, 우리가 특정한 상황에 놓여 있으면서도 그 안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인간의 마음’(2장)에서는 우리가 과거를 다루는 방식에 주목한다. 스미스는 단순히 과거를 그리워하는 향수나 과거를 완전히 부정하는 태도 모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대신 저자는 ‘산코파 새’의 이미지를 통해 바람직한 태도를 제시한다. 이 새는 뒤를 돌아보면서도 앞으로 나아가는데, 이는 과거로부터 배우되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자세를 상징한다는 것이다. ‘카이로스의 거룩한 접힘’(3장)에서는 기독교적 시간 이해의 독특성을 설명한다. 하나님의 백성은 시간을 단순히 선형적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순환적 측면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덧없음을 받아들이기’(4장)에서 저자는 유한성을 하나님의 선물로 받아들이는 법을 논한다.
6장 ‘시간보다 앞서 살아가지 않는 법’에서는 종말론적 관점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법을 다룬다.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되 현재의 책임을 소홀히 하지 않는 균형을 강조한다. 또한 ‘안식’의 중요성도 언급한다. 이는 우리의 한계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는 신앙의 표현이다.
책이 주는 통찰
이 책은 목회 현장에 새로운 시각과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먼저 목회와 사역이 시간과 계절에 대한 인식 없이 이뤄지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한다. 우리는 종종 ‘시간 없는’ 진리를 전하려 하지만, 실제로 모든 진리는 특정한 시간과 역사적 맥락 속에서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 이 책의 중요한 지적이다. 이는 우리의 설교가 추상적인 진리의 나열이 아니라, 구체적인 삶의 맥락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는 작업이어야 함을 상기시킨다. 또한 우리 사역이 시간을 분별하는 데 기초해야 함을 기억하게 한다.
또한 저자의 통찰은 우리의 영성과 신앙 형성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영성은 단순히 개인의 내면 문제가 아니라, 시간과 역사 속에서 형성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영성 형성의 목표는 성도들과 교회 공동체가 자신의 역사를 이해하고, 현재를 분별하며, 미래를 소망하도록 하는 데 있어야 함을 이 책은 잘 보여 준다. 이는 영성 훈련이 자신의 삶을 역사의 맥락에서 해석하고 하나님의 시간표와 연결하는 작업을 포함해야 함을 의미한다. 이와 더불어 이 책은 우리가 종말론을 어떻게 이해하고 성도들에게 가르쳐야 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기준을 제공한다. 종말론은 미래에 대한 예측이 아니다. 오히려 현재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지침이어야 한다. 이는 극단적 세대주의의 폐해가 여전한 한국 교회 상황에서 매우 중요한 지점이라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마라나타’는 재림에 대한 현실도피적 기다림이 아니라 소망에서 나오는 현재의 분투다.
스미스는 우리에게 시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요구한다. 이는 우리의 유한성을 인정하고, 순간의 의미를 발견하며,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 안에서 안식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시간 이해는 우리의 목회 전반에 깊은 영향을 미칠 것이며, 교인들이 미래를 소망하며 현재를 살아가도록 돕는 토대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