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공상소설가이자 문학·문명 비평가, 기독교 변증가인 C. S. 루이스는 1938년부터 1946년까지 우주를 소재로 한 공상과학소설 3부작, 《침묵의 행성 밖에서》(Out of the Silent Planet, 1938), 《페렐란드라》(Perelandra, 1944), 《그 가공할 힘》(That Hideous Strength, 1946)을 발표했다.1 루이스는 〈우주 3부작〉을 통해 20-21세기를 장악하고 있는 시대사조인 과학적 유물론의 악마적 탐욕, 교만, 그리고 죄악성을 비판적으로 조명했다.
본고에서는 첫 번째 작품인 《침묵의 행성 밖에서》를 분석하고 과학적 유물론에 대한 비평이 어떻게 나타나 있는지 살펴보고, 다음 호에는 《페렐란드라》, 그 다음 호에는 《그 가공할 힘》을 순차적으로 다루고자 한다.
인간을 제물 삼아 태양의 피를 찾아 떠나는 여행
영국의 시골 지역인 나더비(Nadderby)를 여행하던 언어학자 랜섬(Ransom, 의도적으로 속전이라는 뜻의 이름을 붙임)은 여관을 찾지 못해 어느 노파의 집에 방문한다. 노파에게는 저능아 아들이 하나 있는데 그 이름은 해리(Harry)다. 노파는 랜섬에게 집 근처 스턱(Sterk)에 있는 과학 실험실 ‘더 라이즈’(The Rise)에 끌려간 해리를 구해 달라고 사정한다. ‘더 라이즈’는 망상에 사로잡힌 과학자 웨스톤(Weston)과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업가 디바인(Devine)이 전략적으로 손을 잡고 설립한 실험실이다. 웨스톤과 디바인은 일종의 산학협동 관계에 있는 셈이다.
웨스톤은 과학기술을 통해 무한성과 영원성을 인류의 손에 쥐어 줄 수만 있다면 한 개인의 생명, 심지어 백만 명의 생명을 희생하는 것도 문제되지 않는다는 신념의 소유자다. 그는 랜섬과 같은 인문학자가 대학에서 강의하는 것은 과학 연구에 투자돼야 할 돈을 낭비하는 짓이라며 분통을 터뜨린다. 루이스는 웨스톤의 입장을 ‘과학적 이상주의’(scientific idealism)라고 명명한다.
웨스톤이 무한성과 영원성을 인류의 손에 쥐어 주기 위해 사용한 방법은 말라칸드라(Malacandra, 화성을 모델로 해 구상해 낸 이상적인 나라)의 통치자에게 납치한 사람을 제물로 바쳐 많은 쾌락과 권력을 얻을 수 있는 수단인 ‘태양의 피’(sun’s blood)를 얻는 것이다. 웨스톤과 디바인은 해리를 납치하려 했으나 랜섬의 등장으로 실패한다. 대신 랜섬에게 약을 먹여 제압한 후 우주선에 태워 말라칸드라로 간다.
루이스는 세 사람이 우주선을 타고 여행하는 우주는 공간(space)이 아니라 하늘(heaven)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말한다. 공간은 단순한 물리적 개념으로, 우주선, 입자, 빛과 어두움으로만 가득 차 있지 인격적 존재는 전혀 없는 황량하고 적막한 빈 장소이다. 반면, 하늘은 온갖 유형의 다양한 인격적 생명체로 채워진 삶의 장소이다.
말라칸드라
말라칸드라는 전지전능한 세상 창조자이자 통치자로 설정된 말엘딜(Maleldil)이 지배하는 곳이다. 말라칸드라는 고원지대인 하란드라(harandra)와 낮고 험준한 협곡지대인 한드라미트(handramit)로 구성돼 있다.
말라칸드라는 플라톤적 세계관을 회화적으로 구현한 세계다. 하란드라는 생명체가 살기 힘들고 산소가 희박한 지대다. 이곳에 말엘딜의 휘하에서 말라칸드라를 통치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신인 오야르사(Oyarsa)의 거처 멜디론(Meldilorn, 호수 한 가운데 있는 땅)이 있다. 하란드라의 중간 동굴 지대에는 지성을 갖고 있는 동물인 소른(sorn)이 거주하고, 한드라미트에는 풍류를 즐기는 동물인 흐로스(hross)들이 거주한다.
허무하게 끝나는 여행
랜섬, 웨스톤, 디바인이 탄 우주선은 한드라미트 협곡 가운데 있는 바닷가에 착륙한다. 착륙 직후 랜섬은 두 사람을 따돌리고 도망한다. 그리고 흐로스 가운데 하나인 휘오이(Hyoi)의 도움으로 오야르사가 있는 멜디론으로의 여행을 시작한다. 가다가 오야르사가 랜섬을 데려오기 위해 보낸 해양 동물 흐나크라(hnakra)를 만난다. 휘오이는 흐나크라가 랜섬을 해치기 위해 왔다고 오해해 죽인다. 하지만 뒤따라온 웨스톤의 총에 맞아 휘오이도 절명한다.
이 광경을 목격한 흐로스는 랜섬과 대화를 나누며 지구인들의 잔인성을 이렇게 토로한다. “그들은 동료 흐나우들(hnau, 흐로스가 지구인을 부르는 명칭)의 죽음이 자기들에게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하면 이들이 인간임을 알면서도 죽이기를 서슴치 않는다.”
안내자 휘오이를 잃은 랜섬은 소른의 도움을 받는다. 랜섬은 소른의 목에 올라타 여행해 마침내 멜디론에 도달한다. 소른들은 랜섬과 대화하는 중에 툴칸드라(Thulcandra, 작품에서 지구를 가리키는 명칭)에서는 전쟁, 노예, 매춘이 끊이지 않는다는 말을 듣는다. 그리고 그 이유가 지구인들에게는 오야르사가 없고, 자신들이 직접 작은 오야르사가 되려 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이 말을 기독교 세계관적으로 해석하면 지구 사회에 끊임없이 문제가 일어나는 이유는 지구인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자신들이 직접 신이 되려는 교만한 마음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마침내 오야르사 앞에 랜섬이 불려 나온다. 웨스톤과 디바인도 체포돼 끌려오고, 죽은 휘오이의 장례식도 진행된다. 오야르사는 자신이 랜섬을 말라칸드라로 유인하기 위해 태양의 피를 미끼삼아 일을 계획했다고 밝힌다. 그 이유는 지구에 관한 소식을 듣기 위해서였다.
오래전 말라칸드라에서는 오야르사와 타락한 오야르사 사이에 전쟁이 있었다. 이 전쟁에서 타락한 오야르사가 패하여 쫓겨나 툴칸드라로 갔다. 그런데 이후 아무 소식도 들을 수 없었다. 결국 툴칸드라는 ‘침묵의 행성’이 돼 버렸다. 답답한 오야르사는 툴칸드라의 소식을 듣고 싶어 랜섬을 말라칸드라로 오게 했다.
이어서 웨스톤과 디바인이 오야르사 앞에 끌려 나온다. 오야르사는 두 사람에게 찬 물 항아리에 머리를 담그는 벌을 내린 후에 이들이 무한성과 영원성을 획득하기 위해 찾아 온 말라칸드라가 사실은 이상적인 나라가 아니라 툴칸드라보다 더 황량한 곳이라는 실상을 밝힌다. 지구보다 더 오래된 행성인 말라칸드라의 고원지대인 하란드라는 차가운 죽음이 덮쳐서 생명체가 살 수 없는 황량한 땅이 돼 버렸고, 생명체가 살 수 있는 지대는 낮은 협곡 지대인 한드라미트로 위축됐기 때문이다.
말엘딜은 말라칸드라의 생명체들을 애초에 영생하는 존재로 만들지 않았으며, 조만간에 말라칸드라는 폐쇄될 운명을 맞이할 것이다. 웨스톤과 디바인이 헛된 꿈을 꿨음이 여실히 드러나는 순간이다. 웨스톤이 마침내 속내를 드러내 인간을 영원히 살 수 있게 해 달라고 요청하자 오야르사는 이렇게 답변한다. “너는 온 세상의 것들이 다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는가?”
오야르사는 웨스톤과 디바인을 준엄하게 책망한다. “너희들의 세계를 살펴보니 너희들은 몸에 관해서는 위대한 지혜를 터득했구나. 이 지혜를 갖고 하늘을 가로지를 수 있는 우주선도 만들 정도로! 그런데 이 모든 일을 해내는 너희는 짐승의 마음을 갖고 있다!”, “너희는 지금 랜섬을 너희들이 두려워하는 악에게 내어주려고 하지 않은가? 지금도 너희 자신의 생명을 구해 보려고 또 한 번 더 랜섬을 내게 바치려고 하지 않는가? 내가 그를 해칠 의도를 가진 것으로 오해하고서! 이것이 너희 지구인이 동료 지구인을 다루는 방식인가?” 이 책망을 듣고 웨스톤은 자신을 변호한다. “당신이 보기에는 내가 날강도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나는 인류의 운명을 내 어깨 위에 짊어지고 있는 것이오.”
오야르사에게 있어서 웨스톤과 디바인은 ‘말하는 짐승’(talking animal)이었다. 웨스톤과 디바인의 꿈은 과학기술의 힘으로 행성 하나를 정복해 그 행성의 생명체들을 다 죽이고 지구인의 식민지로 만든 다음, 그 행성이 기능을 다하면 다른 행성으로 옮겨 가기를 반복함으로써 다른 행성의 생명체들과 다른 행성 자체를 무자비하게 파괴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지구인들의 영원한 삶을 확보하고자 하는 망상을 실현하려 한다.
오야르사는 세 지구인을 죽이지 않고 살리기로 결심한다. 특별히 랜섬에게는 말라칸드라에 남는 것과 툴칸드라로 돌아가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제안한다. 랜섬이 툴칸드라로 돌아가는 편을 선택하자 우주선에서 사용할 90일 분의 산소와 식량, 엘딜(eldil, 천사에 해당)의 보호를 제공한다. 그리고 웨스톤과 다비인을 경계하라고 주문한다. 세 사람은 우주선을 타고 툴칸드라 곧 지구로 귀환한다.
과학적 우주관과 과학기술의 한계
루이스의 공상과학소설 제1부작인 《침묵의 행성 밖에서》는 영적 세계의 실재를 거부하는 현대 과학적 유물론에 대응해, 영의 실재를 강조하는 플라톤적인 이원론과 중세적인 기독교적 세계관이 융합된 상상 속의 세계를 구상하고, 등장인물이 나누는 대화를 통해 현대 과학기술의 일천한 세계관과 비인간적인 탐욕을 비판한다.
루이스가 구상한 세계는 성경의 세계관으로 본다면 황당한 설정이다. 이 세계가 과연 진리인가를 성경적인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어차피 허구는 거짓말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루이스의 공상적 세계는 상징에 불과하며, 이 상징이 담고 있는 의미를 파악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루이스는 이 상징을 통해 기독교 신학 체계를 재구성하려는 것이 아니라 문명 비평의 관점에서 과학적 유물론의 비인간적인 탐욕과 어리석음을 드러내고자 한다. 유물론자들의 신념을 흔들어 놓고 그 허구성과 황폐함을 드러냄으로써 복음 전도를 위한 길을 닦는 예비 작업을 하고자 한다.
루이스는 현대 물리학자들이 우주를 공간으로 호명하는 것에 이의를 제기한다. 현대 과학자들은 과학 이론과 발달된 과학기술을 통해, 과거 어느 시대와도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우주와 인간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자부심에 취해 있다. 이에 대해 루이스는 과학적 세계관에 사로잡혀 있는 현대만큼 세계를 바라보는 시야가 편협하고 폐쇄적인 시대는 없었다고 비판한다. 그 증거가 결정적으로 나타나는 영역이 바로 우주에 대한 이해의 영역이다.
과학자들이 말하는 우주 공간(cosmic space)은 빛, 어두움, 우주먼지, 각종 우주광선, 파동, 화학분자 등으로 꽉 차 있는 적막하고 황량한 곳이다. 여기에는 인격적 존재들의 활력 넘치는 삶이 없다. 그러나 루이스가 말하는 하늘은(heaven) 각종 생명체들로 가득 차 있는, 생명이 숨 쉬는 공간이다. 어떤 이해가 성경에 더 가까운가? 당연히 루이스의 하늘이 성경에 가깝다. 물론 루이스가 말하는 생명체와 성경이 말하는 생명체는 일치하지 않는다. 루이스가 말한 생명체들이 만화 같고 유치한 허구들이라면 성경이 말하는 생명체들은 실재이며, 훨씬 더 장엄하고 완전한 인격성을 갖췄다. 하늘에는 완전한 인격을 갖추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 하나님이 편재하신다. 천사의 군단들, 타락한 사탄과 귀신들, 죽어서 천국에 간 성도들, 죽어서 지옥에 간 인간들로 가득 차 있다.
자신을 알려면 자신을 벗어나 자신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오야르사를 포함해 말라칸드라에 사는 지성적 존재들이 보는 지구인들은 자신이 개발한 과학 지식과 기술의 힘에 우쭐해져 마음에 신을 두기를 싫어하고 스스로가 신이 되고 싶어 한다. 동료까지도 잔인하게 희생시켜가며 탐욕을 충족하고자 한다. 유물론에 장악된 현대인들은 인간의 탈을 쓰고 있으나 내면은 자기 이익에 혈안이 돼 탐욕을 추구하는 짐승의 마음으로 가득 차 있다. 웨스톤과 디바인은 해리와 랜섬을 희생 제물로 삼아 자신들의 탐욕을 끝없이 충족시켜 줄 수 있는 ‘태양의 피’를 획득해 무한성과 영생에 이르고자 한다. 그러나 이 시도는 헛된 꿈이었다.
생명공학은 배아줄기세포를 이용해 난치병을 치료하고 영생을 얻으려는 의도로 연구에 매진하지만 길이 막혀 있다. 배아줄기세포는 성인 몸에 주입되면 암세포로 전환되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기술은 소프트웨어의 무한복제기능에 의지해 지식의 무한하고 영원한 축적을 시도하며 영생의 가능성을 엿본다. 하지만 소프트웨어는 전기가 차단되는 순간 모든 움직임이 정지되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하나님이 생명나무의 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인간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차단하셨기 때문에(창 3:24) 하나님이 마련하신 영생의 길을 통하지 않고 인간의 능력으로 영생에 이르는 길은 없다.
주
1) C. S. 루이스, 《침묵의 행성 밖에서》, 공경희 옮김(홍성사, 2012); C. S. 루이스, 《페렐란드라》, 공경희 옮김(홍성사, 2011); C. S. 루이스, 《그 가공할 힘》, 공경희 옮김(홍성사, 20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