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와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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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설교 2024년  07월호 문화적 이해가 있는 설교로 전환하라 새 연재 설교와 문화(1)

지난 4월호 신진학자초대석에서 만난 서울신대 정재웅 박사에게서 들리는 설교를 넘어서 말씀을 경험하는 설교, 설교를 통한 하나님의 현존에 대한 지적인 이해를 넘어서 정서적·신체적 경험을 동반하는 “퍼포먼스 설교학”에 대해 들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현존은 설교에서 어떻게 경험되는 것일까?”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이번 호부터 “설교와 문화”를 시작한다.

설교란 성경이 증언하는 하나님 말씀을 현재를 살아가는 청중에게 살아 있는 복음으로 들리게 하는 것이다. 설교가 문화와 무관하지 않은 이유, 설교자가 문화적 이해력 혹은 문화적 문해력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설교는 성경에 박제된 하나님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에 대한 고고학적 증거와 과거의 기억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 설교는 청중으로 하여금 성경의 하나님을 지금 여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으로 만나게 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의 현재 삶을 변화시키는 기쁜 소식임을 깨닫고 변화된 삶을 살도록 초청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설교는 청중이 살아가는 삶의 자리, 곧 문화를 잘 알아야 한다. 그들의 문화를 모르면 그들이 누구인지 그리고 어떠한 세계를 살아가는지 모르는 것이고, 그들이 어떻게 살아가며 어떠한 가치관과 세계관, 신념을 가지고 사는지를 모르는 것이다. 청중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무슨 행동을 하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는데 무엇이 그들에게 나쁜 소식인지 좋은 소식인지 전할 수 있을까? 청중을 알지 못하고 그들의 문화를 알지 못하는데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

이는 진공 상태에서 소리를 전달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소리는 에너지를 파동을 통해 전달하는 성질을 지니기에 파동을 전달할 수 있는 매질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진공 상태는 소리의 파동을 전달할 수 있는 매질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소리가 전달되지 않는 것이다. 소리는 공기와 같은 기체, 물 같은 액체, 혹은 돌이나 나무 같은 고체 형태의 매질을 통해 전달될 수 있는데, 우주 공간과 같은 진공 상태에서는 이러한 형태의 매질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곳에서 아무리 목청껏 외쳐 봐야 들을 수 없다. 이러한 원리는 설교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설교에서 메시지를 소리라고 한다면, 성경은 소리를 만드는 음원이고 문화는 소리를 전달하는 매질이다. 설교자가 성경을 묵상하고 아무리 탁월한 메시지를 발견했다 하더라도 이를 청중이 들을 수 있는 적절한 문화를 통해 전달할 수 없다면 설교자의 외침은 소리 없는 아우성이 된다. 

들리지 않는 설교는 세상과 소통이 되지 않는 외계어에 불과하다. 문화적으로 단절된 채 종교의 언어만 되뇌는 설교는 청중에게 자폐증 환자의 독백에 지나지 않다. 그러한 기독교는 게토화된 종교에 불과하다. 바울이 말한 바와 같이 믿음은 들음으로서 난다(롬 10:17). 성경으로부터 들은 메시지가 청중에게 들릴 때 복음이 된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성경의 텍스트를 이해하는 성경적 문해력과 함께 설교의 컨텍스트인 문화를 이해하는 문화적 문해력을 키워야 한다. 문화적으로 무관심한 설교 혹은 문화적으로 무지한 설교에서 문화적 지성을 가진 설교 혹은 문화적 이해를 가진 설교로 전환해야 한다.1

설교가 문화를 만날 때

그렇다면 문화적 이해를 가진 설교를 위해 설교자는 무슨 일을 해야 하는가? 문화적 이해를 가진 설교를 위해 필요한 일차적 과업은 문화를 해석하는 것이고 그것이 행할 궁극적 과업은 문화를 통해서 그리고 문화에 대항하여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문화가 무엇인지 이해하는 것이 설교를 위한 첫 번째 관문이다. 

문화란 사람들의 생활 방식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특정 집단의 문화가 어떠한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사는지에 관한 기술을 통해야 한다. 예를 들어 한국 문화의 독특성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한국인이 사람을 만났을 때 나이가 적은 사람이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는 습관을 기술할 수 있다. 이것은 서양 사람이 만나서 악수하거나 끌어안는다든지 혹은 뺨을 비비는 행동을 하는 것과 대조적인 생활 방식이다. 문제는 이러한 생활 방식의 차이는 왜 발생하며 상이한 행동의 의미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이것이 문화의 이해에 복잡성을 만든다. 

문화는 단순한 행동 방식이 아니라 특정한 행동 방식을 통해 의미를 전달하는 상징화된 의미 체계다.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행동은 무의미한 몸짓이 아니라 나이가 어린 사람이 나이 많은 사람에게 자신이 그보다 사회적 위계에서 아래에 위치하고 있음을 인정하고 존경을 표시하는 상징 행동이다. 이는 유교적 전통을 학습해 온 한국에서 승인되고 내면화한 의미 체계의 표현이다. 이런 점에서 인류학자 클리퍼드 기어츠는 《문화의 해석》에서 “문화는 행위로 기록된 문서”라고 말한다.2 따라서 문화를 해석하는 것은 특정 문화 현상을 피상적으로 기술하는 현상 기술(thin description)을 넘어 그 현상 이면에 존재하는 신념, 가치관, 세계관과 같은 의미 체계를 드러내는 중층 기술(thic description)을 포함한다.

이러한 현상 기술과 중층 기술은 문화적 문해력을 높이는 방법이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 말과 행동 방식과 같이 문화적 현상을 현상 기술을 통해 이해하고 해석한다면, 현상 이면의 생각의 방식 곧 신념과 가치, 세계관과 같은 의미 체계를 드러내는 중층 기술을 통해 설교자는 단순히 사람들이 말하고 행동하는 게 무엇인지 인지하는 것을 넘어 사람들의 신념, 선호도, 행동을 형성하는 미묘하고 복잡한 뉘앙스를 인식하고 그 이면에 배인 가치, 신념, 관습, 상징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출 수 있다. 

외국어를 배울 때도 마찬가지다. 단어의 사전적 의미만 알고도 기본적인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좀 더 내밀한 대화를 외국어를 통해 하려면 단어의 사전적 의미만이 아니라 다양한 상황에서 쓰일 때 달라지는 뉘앙스까지 이해하는 더 높은 수준의 문해력이 필요하다. 문화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도 다른 문화 사람들의 말과 행동을 피상적으로 이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러한 말과 행동이 다양한 맥락에서 쓰이는 뉘앙스를 이해해야 하며 그렇게 행동하게 하는 신념, 가치관, 세계관을 이해하는 높은 수준의 문화적 문해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높은 수준의 문화적 문해력을 가질 때에 설교자는 다양한 문화적 배경과 관점을 가진 사람들을 이해하고 문화적으로 적절한 상징, 은유, 이야기, 유머를 사용해 효과적으로 복음을 소통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설교는 성경적 복음을 현 시대 청중에게 전달하기 위해서 단순히 현 시대의 특정 문화 현상을 양태적으로 기술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현상 이면에 존재하면서 현상을 만들어 내는 신념, 가치관, 세계관과 같은 의미 체계로서 문화의 본질을 파악하고 그를 활용해 복음을 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문화가 은연중에 제시하는 이데올로기 혹은 영적 체계를 날카롭게 꿰뚫어 보고 이에 대한 대안 문화이자 대항 문화인 복음을 설득력 있게 제시해 대안 공동체를 이뤄 나가야 한다. 

바꿔 말하자면 설교자는 문화적 문해력을 갖추고 이에 기초하여 문화를 통한 복음 전파를 수행하고 더 나아가 궁극적으로 문화 복음화를 이뤄야 한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문화 요소들을 복음화의 도구나 수단으로 인식하면서 문화를 통해 복음을 실천하는 문화를 통한 복음화(Evangelization through Culture)에 만족할 수 없다. 더 나아가 현대 문화를 능동적으로 받아들여 교회 문화를 재형성하는 문화에 의한 복음화(Evangelization by Culture)를 이루고 궁극적으로 문화를 복음의 힘으로 저항·비판·정화함으로써 그들을 역전시키고 바로잡는 문화에 대한 복음화(Evangelization of Culture)로 나아가야 한다.3 

문화를 통해 설교하기

문화 복음화의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 설교가 수행해야 할 첫 번째 과제는 문화를 통해 효과적으로 설교하는 것이다. 문화는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이라면 어디에나 존재한다. 그러므로 설교는 어떠한 형태이든지 문화를 통해 설교해야 한다. 문제는 설교자와 회중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 곧 문화는 시대와 사회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면서 문화 변동을 일으키는데 이에 적응하지 못한 설교는 불통(不通) 혹은 난시청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때 맞았던 것이 지금도 맞는지, 그때 통했던 것이 지금도 통하는지 확인해야 한다. 문화적 변동으로 인해 문화적으로 달라진 상태를 인지해야 한다. 문화적으로 새로운 현실이 무엇이며 어떠한 특징이 있는지 분별하고 설교를 통해 전달하는 복음의 메시지와 어떻게 공명할 수 있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그래야 설교자와 회중 사이를 새롭게 메우고 있는 문화를 통해서도 복음의 생생한 소리를 전달할 수 있다. 

우주 공간은 진공 상태로, 소리를 물리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매체가 존재하지 않기에 소리를 전달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우주 공간이 완전히 비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우주 공간에는 성대의 울림을 물리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공기는 존재하지 않지만 플라즈마와 전자기 에너지를 띠고 움직이는 입자들로 가득 차 있다. 그러므로 소리를 공기를 통해서 전달하는 대기권 안의 방식은 작동하지 않지만 소리를 전자기 신호로 바꾸어 전달한다면 자유롭게 소리를 전할 수 있다. 오늘날 우주공간을 유영하는 우주인들이 소통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매체의 특징을 파악하고 그에 적합한 전자통신기기를 개발했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현대인들은 이전 시대 사람들이 경험하던 것과는 다른 형태의 문화적 현실을 경험하며 살아가고 있다. 새로운 문화를 통해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새로운 의사소통방식, 새로운 방식의 설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인류는 역사의 발전에 따라 문화적 변동을 경험해 왔으며 이에 따라 의사소통방식을 바꿔 왔다. 구술문화 시대에는 직접 말을 하거나 그럴 수 없다면 사람을 보내 전달했다. 이후 문자의 발명이라는 문화적 혁명을 겪고 나서 인류는 기록으로 말을 전하기 시작했다. 토판부터 목판, 파피루스, 양피지, 종이까지 기록 매체가 다양하기는 했어도 글자라는 기호를 통해 메시지를 기록해 시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진 존재에게 말을 전달한다는 점에서는 같았다. 이러한 문자 문화는 수천 년간 인류에게 공기처럼 당연한 의사소통방식을 구성했다. 

기독교 설교는 문자 문화 속에 발생하고 꽃을 피웠다. 그러므로 기독교 설교가 문자언어를 통한 전달, 곧 글쓰기 형태로 발전한 것은 당연한 것이다. 글쓰기 형태의 설교는 논지를 세우고 연역법이나 귀납법 같은 논리적 구조에 따라 논지를 지지하는 요소들을 배치하는 수사학적 구성을 따랐다. 문자 문화 시대 설교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분명한 주장과 이를 뒷받침하는 탄탄한 논리와 이를 설득력 있게 전개하는 수사학적 구성이었다. 논리에 불을 붙이고 생명력을 입힐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는 설교로 평가받았다. 열정적이지만 명쾌하고 분명한 언어로 논리적으로 요목조목 성경을 강해하며 교리를 설득력 있게 설명하는 방식의 설교-현재까지도 가장 보편적인 방식의 설교는 바로 문자 문화의 총아다. 

이러한 방식은 20세기 후반 인류가 정보통신 기술의 혁명으로 후기문자 문화 시대에 접어들게 되면서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게 됐다. 디지털 신호로 코딩된 정보는 혁신적 정보통신기기를 통해 문자만이 아니라 이미지와 소리를 결합한 동영상의 형태로 손쉽게 전달된다. 자신이 경험한 것을 일일이 말로 설명할 필요도 없고 글로 기록하고 이를 해석할 필요도 없이 녹화 버튼을 눌러 실시간으로 경험을 저장하고 디지털 코드를 통해 전송하면 상대방은 재생 버튼을 눌러 메시지 전송자가 경험한 게 무엇인지 바로 받아볼 수 있다. 컴퓨터 그래픽 기술이 발달하고 이를 편리하게 구현할 수 있는 인공지능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전문가만이 아니라 대중도 자신이 경험한 것이 아닌 상상하는 것조차 현실감 있는 시청각 이미지로 구현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전에는 실존하는 혹은 실존했던 인격과의 소통만이 가능했으나 인공적으로 만들어 낸 가상 인격과의 소통도 가능해지고 있다. 요컨대, 이제 인류는 문자만이 아니라 이미지와 영상을 통해서도 소통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문화적 변화는 설교의 변화를 일으킬 것이다. 아직 문자 문화에 익숙한 세대가 많기에 공존하고 있지만 디지털 영상 문화에 익숙한 세대가 주류가 될 때에 글쓰기 형태의 읽는 설교는 시청각 자료가 결합돼 말씀을 전달하는 보이는 설교에 자리를 내어 주게 될 것이다. 입으로만 하는 설교가 아니라 온몸으로 하는 설교가 돼야 할 것이다. 본문의 증거를 중심으로 사실 관계를 분석하고 이를 논증하는 방식의 설교보다 본문이 현실적으로 느껴지고 현실을 본문의 빛으로 조명하는 설교, 사건의 인과 관계를 중심으로 스토리를 구성하고 미학적 요소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청중으로 하여금 이야기 속으로 몰입하게 하고 참여하는 설교가 더 흡입력을 갖게 될 것이다. 요컨대 배우고 이해하는 설교보다 느끼고 경험하는 설교로 패러다임이 전환될 것이다. 

문화가 변한다고 해서 모두가 문화를 통해 설교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후기 문자 문화 시대를 살아가는 설교자라고 해서 모두 필자가 예상하는 설교의 패러다임 전환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다. 또한 후기 문자 문화 시대라고 해서 문자 문화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공존하기 때문에 기존의 의사소통 체계가 전혀 의미 없는 것도 아니다. 다만 현 시대 문화를 이해하는 문화적 문해력을 갖춘 설교자라면 어떠한 형태로든 설교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효과적인 복음 전달을 위해서 필자가 말한 설교 방식이 아니라도 어떠한 방식이든 현 시대 문화와 소통하고 그 문화를 통해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설교 방식을 발전시켜 나갈 것이다.     

문화 전쟁 속에서 설교하기

설교자의 문화적 이해가 깊어지면 문화를 통한 설교에 그치지 않고 문화를 비평하고 저항하는 설교를 지향하게 된다. 문화는 신념과 가치체계, 세계관 등 의미를 표현하는 생활 방식이기 때문에 가치중립적이지 않으며 종교와 무관할 수 없다. 오히려 폴 틸리히가 “종교는 문화의 실체이고, 문화는 종교의 형식”4이라고 말한 바와 같이 문화는 종교와 분리될 수 없으며 문화는 종교를 표현하고 종교는 문화가 그 의미론적 그물망을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인간 실존의 궁극적 관심이다. 문제는 인간 실존의 다양한 양상만큼이나 다양한 종교적 사유가 문화 안에 녹아 있고 각각의 문화는 어떠한 점에서 갈등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때로 문화적 갈등이 매우 치열하고 심각해질 때 문화 전쟁에 직면하기도 한다. 

문화 전쟁이란 일반적으로 문화적으로 상이한 집단끼리 충돌 및 문화적 가치 반영을 위한 갈등이나 투쟁을 말한다. 이는 19세기 유럽에서 교회와 세속 국가의 갈등을 표현하는 문화 투쟁에서 유래하는 말인데, 이것이 영어권으로 전해지며 종교와 세속의 갈등 및 문화적 이질 집단 간 갈등을 일컫는 문화 전쟁으로 번역됐다. 한국 교회의 경우 미국이나 유럽 같은 양상의 문화 전쟁을 겪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한국 교회는 좀 다른 차원의 문화 전쟁을 겪고 있다. 내부적으로는 세대 간 문화 갈등이 심각하고 외부적으로는 타종교인 및 무종교인을 포함한 비신자와의 문화적 갈등이 심각하다. 

한국교회지도자센터가 조사를 의뢰하고 (주)지앤컴리서치가 60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한 결과를 목회데이터연구소가 연구 분석해 2023년 10월 발표한 ‘세대 통합 목회를 위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교회 내 세대 갈등이 심각하다는 응답은 20% 정도로 앞서 언급한 일반인의 세대 갈등에 대한 인식 수준보다 4분의 1에 그친다.5 문제는 세대 갈등이 정말 없어서 이런 응답이 나온 것이냐는 것이다. 가나안 교인 현상으로 대변되는 젊은 세대의 급격한 교회 이탈 현상은 교회 내 세대 갈등이 없어서라기보다는 세대 갈등을 겪는 교회 내 구성원이 급격하게 이탈한 때문으로 해석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해 준다. 즉 갈등을 겪는 사람들은 이미 교회를 이탈하기 때문에 교회 내 갈등에 대한 응답자에 포함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교회의 폐쇄적 분위기가 갈등을 공개적으로 드러내기 힘든 원인일 수 있다. 해당 조사에서도 교회 밖보다 교회 내부에서 세대 갈등이 적은 이유로는 응답자 중 가장 많은 39%가 ‘교회 분위기상 서로에게 불만을 표출하지 않아서’라고 응답했다. 즉 교회에서는 갈등 요소가 있어도 수용하고 인내해야 한다는 당위성 때문에 갈등이 내재돼 있으나 표출되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교회 내 세대 간 갈등은 주로 문화적 갈등이다. 해당 조사에서도 세대 간 갈등의 원인으로 권위적·일방적으로 비춰지는 윗 세대의 언어와 아랫 세대가 예의가 없다고 느끼는 태도 등 문화적 갈등이 주요 응답 요소였다.6 이는 교회 문화가 불편하다, 교회가 민주적이지 않고 권위주의적이라는 응답이 여러 조사에서 청년 및 3040세대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는 것과 일치한다. 이는 교회 내 세대 간 문화 갈등이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 상당히 심화된 상태임을 시사한다. 

또한 타 종교인 및 무종교인 등 비신자와 신자 사이의 문화적 갈등 역시 실재하는 심각한 문제다. 흔히 한국은 완벽한 다종교 사회이고 종교간 갈등이 별로 없다고 하지만 2020년 국제 여론 조사 기관 입소스와 영국 킹스칼리지런던 정책연구소가 발표한 연구 결과에서 보듯이 국민들이 인식하는 종교 갈등은 조사 대상이었던 23개국 중 가장 높은 응답률을 보일 정도로 심각한 수준(78%)이다.7 문제는 이러한 종교 갈등의 주 원인으로 개신교가 지목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개신교에 대한 사회적으로 낮은 신뢰 수준과 개신교가 종교 갈등 원인 제공 1순위로 지목된다는 점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난다.8 

종교 갈등은 종교 단체에 대한 정부 재정지원이나 종교 정책에 대한 갈등 등 정책적 차원의 갈등도 있지만 문화적 차원의 갈등인 경우가 더 많다. 봉은사 땅 밟기 사태, 불상이나 단군상 훼손, 공공장소에서 공격적인 선교, 제사 및 장례 문화와 관련된 갈등 등 배타적이며 공격적인 태도로 인한 문화적 갈등만이 아니라, 최근에는 영화 등 각종 대중매체를 통해 기독교인이 직장 내에서 신앙을 빙자해 이기적이며 위선적인 태도를 보이고 이로 인해 문화적 갈등 원인을 제공하는 것으로 비춰지고 있다. 

이러한 현실이 크리스천들에게 억울한 책임 전가로 느껴질지 모른다. 그저 복음을 전했을 뿐인데, 그리스도인답게 살려고 노력한 것뿐인데, 영적으로 무지하고 닫혀 있는 이들이 복음을 거부하고 교회를 모욕하는 것이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한국 교회 설교자들이 이러한 갈등을 부추겨 온 것일 수 있다. 정복주의적인 문화이해에 기초해 복음화란 세상에서 비기독교적인 세속 문화를 제거하고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기독교적 문화가 지배하도록 하는 것이란 생각을 설교를 통해 전파하고 신자들은 이를 자연스럽게 체화해 일상에서 실천한 결과일 수 있다. 이는 복음에 대한 문화적 이해를 결여한 데서 비롯한 문제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1세기 지중해의 팔레스타인이라는 특정한 문화 속에서 표현됐고 이후 2천여 년 동안 유럽과 북미, 대양주의 다양한 문화를 체화한 형태로 우리에게 전달됐다. 그러므로 우리가 순수한 복음이라 생각하는 것 속에는 문화가 반영돼 있다. 또한 세상 문화라 할지라도 바울이 말한 바와 같이 그 안에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비취어 있기 때문에(롬 1:20) 문화 안에 복음의 그림자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설교자에게 문화 속에서 복음을 분별하고 복음이 옷 입은 문화를 분별하는 문화적 문해력이 필요하다. 더 나아가 복음이 문화와 어떤 지점에서 충돌하는지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월터 브루그만은 그것을 왕권 의식과 예언자적 의식의 충돌로 표현했다.9 제국 지배자의 문화를 내면화한 왕권 의식은 히브리적인 예언자 의식과 충돌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충돌을 통해 현실 너머에 하나님의 통치를 바라보게 하는 대안적 상상이 발생한다. 문화 복음화를 추구하는 문화적 이해를 가진 설교가 문화 전쟁 속에서 설교하는 방식은 이와 같이 깊은 수준의 문화적 통찰을 필요로 한다. 그러한 문화적 통찰력을 가진 설교가 복음을 이 시대 청중에게 확성기와 같이 들리게 할 것이다.  


1) Matthew D. Kim, Preaching with Cultural Intelligence: Understanding the People Who Hear Our Sermons (Baker Academic, 2017), pp. 4-6.
2) 클리퍼드 기어츠, 《문화의 해석》(까치, 2020), p. 20.
3) 김민수, 《디지털 시대의 문화 복음화와 문화사목》(평사리, 2008), pp. 120-135.
4) 폴 틸리히, 《문화의 신학》(IVP, 2018), p. 63.
5) 목회데이터연구소, 〈넘버스〉 213호(2023), p. 5.
6) 앞의 책, p. 11.
7) Duffy, B., Murkin, G., Skinner, G., Benson, R., Gottfried, G., Hesketh, R., Hewlett, K., & Page, B. (2021). Culture wars around the world: how countries perceive divisions. https://doi.org/10.18742/pub01-054
8) 대한불교조계종 불교사회연구소, 《한국의 사회문화 및 종교에 관한 대국민 여론조사 보고서》 (2011), pp. 46-47. 
9) Walter Brueggemann, Prophetic Imagination (Fortress, 2001), pp. 21-36.

 

정재웅 서울신대 설교학 교수. 미국 게렛신학대학원(Ph.D.). 필자의 다른기사 keyboard_arrow_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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