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와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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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2023년  06월호 새 시대를 위한 한국 선교의 자세 한국 선교, 더 깊은 길을 향한 부르심

한 시대를 평가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 시대 속에서 일어난 사건들은 그것들이 초래한 결과를 어느 정도 알 수 있는 후대에 이르러서야 의미 있는 해석을 할 수 있다. 지난 40여 년 동안의 한국 선교 운동1이 한국 교회나 사회 그리고 세계 역사와 인류 복음화 측면에서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를 다각도로 평가할 때가 올 것이다. 본고2에서는 1980년부터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발발까지를 한국 선교 운동의 첫 번째 주기(개척기-성장 및 성숙기-전환기)가 진행됐던 시기로 보고, 먼저 그 시대의 특징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한국 선교 운동의 기반이 되는 한국 교회에 초점을 맞춰 분석하도록 한다. 이어서 코로나19 팬데믹 시기를 거치면서 우리가 맞닥뜨리게 된 새로운 상황 가운데 한국 선교는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를 제시할 것이다.

선교 세력으로의 한국 교회

1980년부터 2020년 어간이 인류 역사상 아주 독특하고 이례적인 시기였다는 평가가 있다. 인구 구조적 측면이나 인간이 처한 여건에 있어서 그 시기가 세계화의 축복을 누린 태평성대의 황금기였다는 것이다.3 레빈슨(Marc Levinson)이 ‘제3차 세계화’로 분류한 그 시기에 전 세계에서 극단적 빈곤 인구가 급감했고, 기대 수명이 증가했다. 세계 무역은 급증했고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퇴조 현상과 더불어 금융 시장이 호황을 누렸다.4 바로 그 기간 동안 한국 선교 운동의 첫 물결이 크게 일어났다. 1884년 한국에 개신교 선교가 공식적으로 시작되고 100여 년의 세월이 흐른 1980년대에 한국은 선교지에서 세계 선교를 위한 선교 세력으로 부상하게 됐다.

최근 필자는 한국 선교 운동의 첫 물결에 20-30대 젊은이들이 대거 참여하게 만들었던 요인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연구 대상은 한국선교훈련원(이하 GMTC)에서 제8기로 훈련(1993.8-1994.5)을 받고 졸업 이후 30여 년간 선교사로 살아온 총 28명이었다.5 그들의 인생 여정은 한국 선교 운동의 첫 물결이 어떻게 시작되고 진행됐는지 그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일종의 창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1993년 8월 25일, 늦여름부터 시작된 GMTC 8기 훈련은 그해 가을과 겨울을 지나 다음해 봄인 1994년 5월 10일까지 10개월에 걸쳐 진행됐다. 28명의 훈련생은 13가정의 부부와 2명의 여자 싱글로 구성됐는데 남자 13명, 여자 15명이었다. 연령대는 25세(1967년생)부터 40세(1953년생)까지로, 20대가 10명, 30대가 17명, 40대가 1명(만 40세)이었고, 평균 나이는 31.5세(남자 32.8세, 여자 30.3세)였다.6 GMTC 훈련은 가족 단위로 참여하기 때문에 1세 미만부터 10세에 이르는 19명의 자녀들도 함께했다. 훈련생의 대부분은 한국의 베이비부머 세대(1955-63년)에 속했는데, 그들이 자라난 원가족의 형제, 자매는 총 134명으로, 평균 5.15명이었다. 한편, 13가정의 부부는 졸업 후 10명의 자녀들을 더 출산해 그들의 자녀들은 총 29명이다. 이는 한 가정당 평균 2.23명의 ‘MZ’세대(1980-2010년) 자녀들을 뒀음을 의미한다.

훈련생 남자 13명 중 12명은 신학대학원(M.Div)7 졸업자였던 반면, 여자 중 신학대학원 졸업자는 한 명도 없었다. 남자 중 한 사람만이 일반 직장에서 20여 년 가까이 일한 경력을 가진 ‘평신도’였고, 나머지는 목사 내지는 목사 후보생이었다. 이는 한국 선교 운동 개척기에 선교사 지망생들은 대체로 목회자 출신이었다는 것을 짐작하도록 만든다. 한편, 1970-1980년대는 한국 대학교 안에서 복음주의 학생 운동이 활발히 일어났던 시기였다. GMTC 8기 훈련생 중 16명은 제자 훈련과 선교를 강조하던 학생 선교 단체에서 훈련 내지는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었다.8 필자는 그들을 형성하고, 한국 선교 운동에 참여하는 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시대적 요인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 봤다.

1.    역동적 경제 성장
그들이 태어나고 자란 시기는 한국전쟁 후 한국 사회에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며 도시화와 산업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던 때였다. 이어령이 《흙 속에 저 바람 속에》(1962)서 묘사했던 “못살고 헐벗은 나라에서 ‘갓’만 쓰고 허청거리던” 국민들 가운데 무기력과 비활동과 비사회적인 환경을 탈피하려는 움직임이 강하게 일어났다. 오랜 시간 일본의 식민지 역사와 한국의 근대화가 함께 싹튼 까닭에 ‘개화한다’는 것은 곧 ‘죄악’과 ‘압박’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사회9가 산업 사회, 도시 사회로 도약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로 여겨졌었다.

인류학자 김은희가 분석했듯이 “1960년대 성인이었던 한국인들에게 문화를 전수한 세대의 가치관은 조선조 양반 사회의 가치관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10 1960년도 1인당 국민소득은 100달러가 안 됐고, 전력 생산 능력이 멕시코의 6분의 1에 불과했으며, 산림의 4분의 3은 벌거벗은 민둥산이었던 한국이, 경제 성장을 이루고 세계 경제 체제의 일부로 편입되는 과정은 오랜 유교적 농민 사회의 평등 경제의 가치를 극복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한국이 경제 발전을 경험하면서 대다수 사람의 생활수준이 월등하게 향상됐다고 느끼게 된 때는 1970년대다. 1990년대 중반 수집된 충청도 어느 농촌 여성들의 구술 자료는 한결같이 ‘새마을 운동’ 이후로 못살았던 사람들이 다 잘살게 됐다고 언급하고 있다.11

따라서 그들은 가난과 빈곤의 경험이나 ‘추억’을 간직한 세대였던 동시에 경제 및 사회적 환경이 발전하면서 교육과 경제적 측면에서 그 이전 세대보다 많은 기회를 가질 수 있었던 사람들이었다.

2.    ‘유사 크리스텐덤’ 사회
장동민은 일제에서 해방된 후부터 1970년대 말에 이르는 약 30년의 기간 동안 대한민국 사회는 일종의 ‘유사 크리스텐덤’ 사회로서 특징을 지녔다고 평가했다.12 이는 한국에서 기독교가 공식적인 국교가 아니었음에도 한국 현대사의 흐름 속에서 서구 크리스텐덤 사회에서나 차지할 법한 위치를 점유했던 현상을 일컫는다. 기독교는 구한말에 도래한 외래 종교였음에도 불구하고 반봉건, 반외세라는 사회적 의제를 선도하며 민심을 얻었고 한민족에게 영향력을 발휘했다. 이러한 토대 위에 해방 후 기독교의 위상은 급부상했는데, 정치·교육·문화계 등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기독교 배경을 가졌을 뿐 아니라 냉전 시대에 교회는 친미, 반공의 보루가 됐고 산업화 시대에 필요한 사상적 동력을 제공하는 역할을 했다.13

이런 몇 가지 역사적 이유로 인해 한국 사회 일반은 기독교나 교회가 하는 일에 대해 관용적이었다. 이런 시대적 분위기 속에 1973년 ‘빌리그래함 전도대회’, 1974년 ‘엑스플로 전도대회’, 1980년 ‘세계복음화성회’ 등 대규모 집회가 열릴 수 있었고, 그 결과 한국 교회는 폭발적인 성장을 했다. 한국 선교 운동의 첫 물결에 참여했던 이들은 한국 교회의 ‘열정과 부흥’을 경험한 세대였다. 초·중·고등학교 시절 다양한 방식으로 교회의 영향을 받았으며, 대학에서도 복음주의 선교 단체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는 시기에 전도와 양육을 받으며 사역자로서 경험을 축적할 수 있었다.

3.    세계화와 ‘세계 복음화’ 운동의 맞물림
그들이 청년기에 이르렀을 때는 이미 한국 선교 운동이 왕성하게 일어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돼 있었다. 1987년 한국 사회의 민주화 운동에 이어 1988년 서울 올림픽 개최와 뒤이은 해외여행 자유화 조치가 있었다. 국제적으로는 독일의 통일(1990.3)과 소련의 붕괴(1991.12)로 인한 중앙아시아 지역의 개방 그리고 무엇보다 한중수교(1992.8) 같은 굵직한 사건이 벌어지면서 한국 선교사들이 사역할 수 있는 선교지가 대폭 확대됐다. 세계 선교계에서는 1989년 제2차 로잔국제대회가 마닐라에서 개최됐고, 뒤이어 AD 2000년까지 세계 복음화를 완수하자는 운동이 일어나 선교 열기를 고조시켰다. 특별히 학생 선교 단체들이 주축이 된 ‘선교한국’ 운동이 1988년 시작돼 매 2년마다 개최됨으로 많은 청년이 선교의 꿈을 꾸게 되고, 미래 선교사 자원으로 준비되는 중요한 전기를 마련했다.

한편 GMTC 8기 훈련 기간 중에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1993-98)가 출범하면서 ‘세계화’를 표방하는 가운데, 선교 단체들은 선교사 파송을 더 가속화할 수 있었다. GMTC 8기 졸업생들이 선교지로 나가던 1990년대는 한국 선교 운동의 ‘위대한 10년’ 시기로 한국 교회의 선교사 숫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14 이 시대를 생각할 때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선교 지도자들의 활약이다. 세계적으로는 빌리 그래함과 존 스토트 같은 복음주의적 지도자들의 영향이 전 세계에 미치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복음주의 4인방(옥한음, 홍정길, 하용조, 이동원) 같은 목회자들의 선교적 관심과 GMTC의 설립 및 한국 해외 선교회(GMF) 초대 이사장으로 지도력을 발휘한 이태웅 목사 같은 이들의 역할이 중요했다.

새 시대와 한국 선교

우리가 어떤 질서와 그것이 조성한 환경에 안착하게 되면, 이를 우리 정체성의 핵심으로 삼는 오류를 범하기 쉽다. 한편, 급격한 변화는 우리에게 많은 혼란과 두려움을 준다.15 21세기에 들어서면서 한국 사회는 유럽이나 북미 사회가 이미 경험한 세속화, 탈종교화, 탈교회화 현상에 직면하고 있다. 무엇보다 코로나19는 한국 사회 안에 반(反)기독교 기류를 크게 확산시켰다. 교회 및 선교 단체 관련 집단 감염 사례가 지속적으로 언론에 보도되면서 일반인들에게 교회는 혐오시설로, 기독교인들은 상식이 없는 무리들로, ‘선교’는 무엇인가 괴이한 일을 도모하는 것으로 비춰지게 됐다.16 이러한 위기는 교회로 하여금 고수해야 할 정체성의 핵심은 무엇이며, 변화시켜야 할 부분은 무엇인지를 고심하게 만들었다. 여기에서 필자는 한국 교회가 새로운 상황에 선교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몇 가지를 제안하고자 하는데, 구체적인 실천방안이라기보다는 새로운 태도와 관련된 것이다.

1.    사라져가는 옛 질서에 연연하지 말아야 한다
한때 ‘유사 크리스텐덤’이라고 느낄 만큼 기독교에 대해 호의적이었던 한국 사회는 이제 반(反)기독교 사회라고 할 만큼 기독교에 대해 적대적이고, 냉소적이다. 만일 우리가 이런 상황 변화에 대한 분명한 인식을 갖지 못한 채, 교회 본질의 회복에 대한 관심 대신 “아, 옛날이여!” 하면서 사라진 질서와 환경을 되돌려 놓으려는 시도에 우리의 역량을 집중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근래 미국의 사례를 통해 그 결과를 예측해 볼 수 있다. 드레허(Rod Dreher)는 문화 전쟁에서 패배한 보수주의자들이 기독교적 도덕성의 복원과 사회 통합을 기대하며 트럼프 대통령 당선에 강력한 지지를 보냈던 것이 반(反)트럼프 역류를 가져와 교회 평판에 심각한 손상을 입힐 것이라고 이미 수년 전 경고했었다.17

한국에서도 교회에 우호적인 정치적 세력을 확보해 기독교적 가치와 질서를 사회 전반에 부과하려는 움직임이 있지만 그것은 정치에 대한 과도한 기대이며, 옛 질서에 연연하는 모습이다. 장동민은 한국 교회와 기독교인에게 자신들을 사회의 중심 세력으로, 혜택을 받는 위치로 간주하던 과거 ‘유사 크리스텐덤’의 기억을 떨쳐 버리고 소수자로 살아가는 자세를 가질 것을 조언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포스트 크리스텐덤 시대’를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18 그는 오랜 세월 소수파로 살아온 ‘일본 교회와 기독교인’으로부터 우리가 배워야 한다는 충격적인 제안도 한다. 그들의 경험과 영성이 앞으로 한국 교회와 기독교인들이 벤치마킹해야 할 자세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19 오랜 세월 크리스텐덤 속에 존재하던 서구 교회는 포스트 크리스텐덤 시대를 경험하면서 강자가 아닌 약자의 입장에서 복음을 증언하는 법을 가르쳐 주는 신약성경의 메시지를 좀 더 이해할 수 있었다.20 지난 수십 년간 ‘유사 크리스텐덤’ 시대에 한국 교회가 깨달을 수 없었던 진정한 선교적 태도를 이제 우리는 터득해야 한다.

2.    지난날 선교를 숙고하고 ‘창조적 축적’을 해야 한다
한국 교회의 고도 성장 시대를 거치면서 급성장했던 한국 선교 운동 역시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우리는 한때 세계 선교에서 서구 교회가 했던 역할을 대체하는 선교 세력이라는 자부심을 가졌다. 그러나 현시점에 이르러 우리가 세계 복음화에 대해 지나치게 낙관적이고 낭만적인 선교 전략과 태도를 가졌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됐다. 좀 단순하게 표현하자면, 한국 선교 운동은 서구의 ‘19세기적’ 선교 패러다임을 그대로 이어받아 20세기 말에 적극적으로 수행했던 것이다. 이에 대해 한국 선교 운동에 주요한 동력을 제공해 왔던 ‘선교 한국’은 2015년 〈선교 한국 미래를 위한 보고서〉를 발간하였다. 그 보고서는 제3장 ‘선교 신학적 고찰’에서 한국 선교 운동의 내용과 방향을 형성한 결정적인 개념으로 루이스 부시와 랄프 윈터 등에 주창된 미전도 종족 및 10/40창 전략 등을 들고 있다. 그러면서 선교신학적 성찰과 반성이 부족했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선교의 관점에서 선교를 바라보는 관점 없이 선교 운동을 이끌어 온 한계를 고백하고 있다.21

그러나 지난 40년 동안 크게 일어났던 한국 선교 운동의 첫 물결이 잦아들었다 해서 그것이 결코 ‘헛된 일’이 아니었음을 알아야 한다. 전환기에 들어서 있는 우리가 지금 해야 일 중 하나는 한국 선교가 어떤 도전을 했고, 어떤 시행착오를 했었는지 경험을 통해 얻은 것들을 잘 보존하고 기록을 남겨놓는 일이다.22 모든 혁신은 시행착오 축적의 결과라고 한다. 우리가 기존 경험을 선교신학적 성찰을 거쳐 창조적으로 축적할 수 있다면 장차 한국 선교 운동은 새로운 모습으로 더 강하게 일어나게 될 것이다.

3.    선교의 기초를 새롭게 다져야 한다
선교를 교회나 선교 단체가 파송한 소수 선교사들이 해외에서 행하는 사역(Missions)과만 연결시켜 생각했던 개념은 현재 세계와 선교 사역을 의미 있게 해석하거나 지도할 수 없게 됐다. 이제 우리는 선교를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전체 창조 세계의 구속과 회복 및 새 창조의 완성을 위해 일하시는 총체적 선교 개념(Missio Dei)으로 이해하는 과정에 있다.23 또한 소수 선교사들만이 아니라, 교회의 전체 회중이 “하나님의 택함을 받고 이 세상으로 보냄을 받은 선교적 공동체”라는 자각을 가져온 ‘선교적 교회론’을 크게 환영해야 한다.

하지만 교회가 존재하고 있는 지역 자체가 선교지가 된다는 생각을 강조한 나머지 타문화권 선교에 대한 중요성을 약화시키는 기독교계 일각의 ‘선교사 파송무용론’이나 “모든 그리스도인은 선교사다”라는 구호성 주장에 대해서는 분별력을 갖고 대응할 필요가 있다. 선교적 교회론의 기초를 제공했던 레슬리 뉴비긴은 그의 생애를 통해 시종일관 타문화 선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는 주님의 대위임령이 교회가 받은 명령의 중심에 서 있으며, 이것을 잊어버리거나 무시하는 교회는 ‘보편적’이고 ‘사도적’ 교회라는 이름을 주장할 권리를 빼앗기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24 따라서 한국 선교 운동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선교의 큰 그림 안에서 교회의 선교, 선교사들의 선교 사역 사이의 연결성을 충분히 이해하는 가운데 선교를 전개할 수 있는 선교신학적 기초 다지기에 공들여야만 한다.

데이비드 보쉬는 기존 선교 사역의 타당성이 모국이나 해외에서 의심받는 처지가 되면, “선교사 자신도 머지않아 의심에 사로잡혀 과연 사역을 계속할 것인가 스스로 묻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25고 했다. 선교사는 선교 사역을 하나님의 온 우주를 향한 창조 목적을 이루는 일과 연결시키는 관점을 세워가야 한다. 그때 선교사들은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 참여하는 동역자(고후 6:1)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비록 작은 역할이라도 의미 있게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글을 마치며

우리는 지난 몇 년간 견고하게 보이던 많은 것들이 흔들리는 상황을 겪었다. 바이러스 앞에서 세상 모든 나라와 글로벌 경제 시스템, 교육과 의료 체계, 그리고 선교도 취약성을 드러냈다.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흔드실 것에 대해 말씀하면서 “그것은 흔들리지 않는 본질적인 것들을 말끔히 정돈된 모습으로 서 있게 하시려는 것입니다”(히 12:27, 메시지성경)라고 했다. 많은 것이 흔들리는 모습 뒤에는 그것들을 흔드시는 하나님의 손이 있다.

지금 한국 및 온 세계는 팽창이 아니라 모든 것이 줄어드는 ‘수축사회’(홍성국, 2018)로 전환되고 있다. 한국 교회는 이러한 상황 변화에 대응하는 지혜가 부족했다. 더욱이 이번 코로나19 사태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하면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더욱 가파른 교세 축소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럴 경우 역사적으로 서구 교회가 그랬듯이 한때 승리주의에 근거해 가졌던 한국 교회의 자기 도취와 교만함은 급속한 소심함과 염려로 대체될 것이 예상된다. 유럽의 그리스도인이 계속 줄어 아주 극소수로 전락할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뉴비긴의 다음과 같은 성찰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26 이런 현상이 발생하면, 그것은 교회가 더 많은 열매를 맺도록 하나님이 가지를 손질하고 계신 것으로 봐야 한다(요 15:1 이하). 그런 일이 발생하면 많은 고통이 따를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내 아버지는 정원사다”라고 우리를 안심시키신다. 그분은 자신이 하는 일을 잘 알고 계시므로, 우리는 그분을 신뢰할 수 있다. 그것은 우리를 자아 성찰과 회개와 새로운 헌신으로 부르는 소리임에 분명하다. 이는 염려할 문제가 아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시며, 자신이 시작하신 일을 온전히 이루실 것이기에. 




1)    본고에서 ‘한국 선교 운동’은 한국 교회가 해외에 선교사를 대규모로 파송하는 커다란 움직임(Missionary Movement)을 의미한다. 한국 교회는 초기부터 한민족 복음화에 열심이었을 뿐 아니라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소수지만 해외에 선교사를 파송하는 열정을 보였다. 그러나 선교사를 대규모로 파송하기 시작한 운동이 시작된 것은 1980년대였다.
2)    본고는 필자가 최근 비슷한 주제로 〈선교연구〉 제84, 86, 87, 88호에 기고했던 글 중 일부내용을 목적에 맞게 수정한 것이다.
3)    피터 자이한, 《붕괴하는 세계와 인구학》, 홍지수 옮김(김앤김북스, 2022), p. 85. 그가 언급한 정확한 시기는 1980-2015년까지다.
4)    마크 레빈슨, 《세계화의 종말과 새로운 시작》, 최준영 옮김(Page2, 2023), pp. 276-277.
5)    GMTC는 1986년 설립됐다. 필자의 연구 결과는 〈선교연구〉 제88호(2023), pp. 2-13에서 자세히 볼 수 있다.
6)    참고로 현재 진행 중인 GMTC 66기(2023.1.15-6.1) 훈련생의 평균 나이는 40.7세다.
7)    침신대원 4명, 총신대학원 3명, 합동신학원 2명, 장신대원 1명, 고신대원 1명, 서울신대원 1명.
8)    CCC 6명, 네비게이토 4명, 죠이 3명, 예수전도단 2명, DCF 1명.
9)    이어령,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문학사상, 2022), pp. 123, 127, 235.
10)    김은희, 《신양반사회》(생각의힘, 2022) p. 102.
11)    앞의 책, pp. 85-123.
12)    장동민, 《포스트크리스텐덤 시대의 한국 기독교》(새물결플러스, 2020), p. 144.  
13)    앞의 책, pp. 141-175.
14)    1996년 말 4,400여 명이었던 한국 선교사 숫자는 1990년대를 지나면서 2007년 말에는 16,500명으로 늘어났다.
15)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기부양을 위한 정부 재정지출 확대와 늘어난 가계 부채로 예고됐던 경기침체와 인플레이션이 현재 가시화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가속화된 탈세계화와 신냉전의 기류 속에서 ‘고실업, 고물가, 고금리’의 현상은 사회적 고통을 증가시킬 것이다. 최윤식·최현식, 《빅체인지 한국 교회》(생명의말씀사, 2021), pp. 286-296.
16)    한 조사에 따르면 한국교회가 코로나19에 대응을 잘못했다는 응답이 비개신교인 중 76.2%, 개신교인들의 59%였고, 특히 기독 청년들은 66.1%가 매우 부정적인 평가를 했다. 목회데이터연구소, 《한국 교회 트렌드 2023》(규장, 2022), pp. 223-225.
17)    로드 드레허, 《베네딕트 옵션》, 이종인 옮김(IVP, 2019), pp. 127, 130.
18)    장동민, 앞의 책, pp. 197, 201.
19)    앞의 책, p. 208
20)    레슬리 뉴비긴, 《오픈 시크릿》, 홍병룡 옮김(복있는사람, 2012), p. 23.
21)    선교 한국(Mission Korea), “선교 한국 미래를 위한 보고서”(2015.10.28), pp. 22-23.
22)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선교에 있어 지역 교회 및 지도자들의 역할, 선교 동원과 훈련, 선교 행정, 현지 팀사역과 필드 시스템 구축, 제자 훈련과 교회 개척 및 지도력 이양, 선교사 자녀(MK)들과 관련한 학교 운영, 선교 병원과 같은 프로젝트, 구제사역 및 전문인 사역과 BAM, 위기 대책과 멤버 케어 등의 영역에서 한국 선교가 어떻게 해왔는지 평가하고 정직하게 기록을 남겨놓는 것이 필요하다.
23)    특별히 코로나19 팬데믹을 통해 인류는 환경 및 생태계 파괴의 심각성을 인식하게 됐는데 이는 교회로 하여금 창조 세계 돌보기(Creation Care)가 선교의 매우 중요한 일부분이라는 사실을 깊이 인정하게 만들었다.
24)    Lesslie Newbigin, “The Enduring Validity of Cross-Cultural Mission”, in International Bulletin of Missionary Research(April, 1988): pp. 50-53.
25)    데이비드 보쉬, 《길의 영성》, 김동화 외 옮김(한국해외선교회출판부, 2023), p.29. 
26)    레슬리 뉴비긴, 《다원주의 사회에서의 복음》, 홍병룡 옮김(IVP, 2007), p. 449.

변진석 한국선교훈련원 원장. 미국 트리니티복음주의신학대학원(Ph.D.). 저서로 《한국 선교 운동과 선교사-GMTC가 걸어온 길》(이태웅 공저)가 있다. 필자의 다른기사 keyboard_arrow_r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