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와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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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2023년  06월호 김미희 외의 《공직자, 하나님을 만나다》 전문가의 책 읽기

기사 메인 사진 한국 교회는 신앙의 원론은 강하나, 생활의 각론이 부족하다는 말이 있다. 교회 안엔 훌륭한 신앙인이 많지만 세상 속에 영향력 있는 복음의 증언이 약하다는 것이다. 한국 교회만의 문제는 아닌 듯하다. 미국 역사가 마크 놀은 《복음주의 지성의 스캔들》에서 복음주의 지성의 부재가 스캔들이라고 탄식한 적도 있다. 여기 그 안타까움을 넘어설 소망을 보여 주는 이야기가 있다. 《과학자, 하나님을 만나다》와 《공직자, 하나님을 만나다》다. 한 교회에 출석하는 25명의 과학자와 20명의 공직자의 증언이다.

기고자들은 한 해 동안 책을 어떻게 쓸지를 놓고 머리를 맞댔다고 했다. 많은 대화가 오가며 친교와 서로를 격려하는 복이 임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들이 증언하는 것은 교회에 갇혀 자신과 영혼만을 위하는 사적 복음이 아니다. 자신의 직무를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으로 믿고 성심으로 섬겼던 사례들이다. 업무를 수행하면서 부딪치는 문제들을 믿음으로 극복한 경험들이다. 가장 세속화됐을 뿐 아니라 세상을 불신앙적 가치로 이끄는 고등 학문과 공공기관에서 필자들이 체험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눠 준다.

이 책들은 히브리서 11장의 오늘을 보는 듯하다. 앞서 간 믿음의 조상들만 아니라 우리와 같은 시대를 살아가면서 믿음의 싸움과 역사를 이뤄 가는 훌륭한 증인들이 많음을 보여 준다. 저자 모두가 이 시대의 요셉, 에스더, 다니엘과 친구들이다. 대한민국이 얼마나 복된 나라인지를 보여 준다. 이 나라에 주신 사명을 기억하게 한다. 은혜는 언제나 ‘소명’이다.

책의 서문은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골 3:23)다. 모든 글이 그 말씀의 순종이다. 공직이든 연구와 교육이든 신앙과 무관할 수 없다. 창조주 하나님이 세상의 주인이시기 때문이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던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보여 준다. 일터에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이 이것이다.

연구실과 교실에서의 은혜의 체험

학문은 창조의 비밀을 밝혀 삶을 이롭게 한다. 교육은 다음 세대 기독교 과학자를 기르는 사역이다. 전공 영역에 따라서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이 독특하다. 유전공학자는 DNA 구조에서 생명을 설계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솜씨와 능력을 본다. 진화를 연구하며 무신-진화론이 얼마나 비과학적인지를 확인하는 ‘특권’을 누린다. 통신의 원천 기술은 기도임을 깨달은 전기공학자도 있다. 각 연구 분야의 속성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창조의 경이와 아름다움을 찬양한다.

“연구란 하나님이 이미 창조하신 천지 만물의 질서에서 하나님의 지혜를 발견해 내는 작업일 뿐”이라고 고백한다. 그래서 실험실에서도 하나님과 양방향 통신을 통해, 주파수를 맞추고자 한다. 난관에 부딪칠 때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고 응답으로 돌파하는 간증이 가득하다. “기술 개발에 참여할 때도 기도가 나의 능력”이라는 간증에도 공학자의 독특한 신앙 고백이 느껴진다.

전문 분야에서 복음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사명감과 수고도 돋보인다. 학원 선교와 캠퍼스 교회에 헌신한 것은 기본이다. 20대에 대학 교수가 된 과학자는 잘 알려진 기독교 대학 총장으로 섬겼다. 미국이나 유럽의 기독교 학자나 기관과의 교류에도 앞장섰다. 적정 기술을 통해 개도국 과학 기술 지원 사업을 하고 선교를 돕는 경험담도 소개된다.

이런 이들이 오늘날에도 사회 곳곳에서 하나님 역사에 헌신하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용기가 되는지 모른다. 절망의 시절 구한말에 쓰임받은 서재필, 안창호, 윤치호, 조만식을 생각하게 된다. 이들은 모두 ‘평신도’였다. 필자 45명도 열방을 향해 삶의 구석구석을 변화시키며 다음 세대로 하나님 나라를 펼치라는 부르심을 붙잡은 ‘평신도’다.

공직 수행을 통한 복음 증언

공직의 기본은 국민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봉사하는 것이라는 고백도 참 귀하다. 정책을 실행하는 공직자가 바르지 않으면 샬롬의 하나님 나라 확장이 일어날 수 없다. 공공선을 위해 일선에서 겪은 신앙의 씨름, 그리고 승리,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감사가 글마다 가득하다.

남성 중심과 술 회식 문화가 지배하던 시절에 다니엘처럼 뜻을 정해 이겨 낸 여성들도 있었다. 다니엘 같은 에스더다. 농고를 졸업하고 19살에 무주 구천동 덕유산 한복판에서 최말단인 9급 공무원을 시작해 산림청장에 이르기까지 37년 봉사한 이야기는 감동적이다. 퇴직 후에도 산림아카데미를 설립해 섬기는 입지전적인 증언이다. “먹고살기 위해” 시작했다지만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는 찬양으로 마친다.

모두가 국민을 섬기는 일에 최선을 다하며, 어려운 동료와 소외된 이를 배려하며, 부정부패와 불의를 피하며, 정직하고 경건한 제자의 삶으로 복음에 합당한 공직 문화 조성에 힘써 온 사명자다. 작은 일에도 충성하며, 맡겨진 일을 능숙하게 처리하는 지혜를 기도로 구하며 상관에게 성실한 자세로 복종한다. 직무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한다. 기독공직자 윤리 강령의 실천이 몸에 밴 이들이 다양한 상을 받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다니엘의 삶은 지금도 우리에게 유용한가?”를 시편 1편으로 답한 글이 눈을 사로잡는다. 시기와 음모가 난무하는 공직 세계에서 악인의 꾀를 좇지 않고, 청렴과 정직으로 죄인의 길에 서지 않고, 겸손을 통해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다.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이 주야로 묵상하며, 국가 정책이 “하나님의 성품에 어긋나지 않도록 결정”되게 할 것, 국수주의와 패권주의 세계관에 빠짐없이 세상을 넒은 사랑으로 품으시는 하나님의 선한 청지기가 되려 한다는 다짐도 참 귀하다.

풍수지리와 역술을 공부해 족보박물관 학예사가 된 이는 자신을 ‘탕자’라고 불렀다. 하지만 “개똥도 약에 쓰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놀람으로 고백한다. 민속 연구와 박물관 운영에 기독교 신앙이 반영되기를 바라며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물관은 주말과 주일에도 개방한다. 주일 성수와 업무 충돌을 피해 주말과 명절 근무를 자원해 설날과 추석에도 쉰 적이 없다고 했다.

부르심을 받은 곳에서 신실한 증인이 됨

두 책은 “책으로 드린 영적 예배”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칼뱅의 《기독교강요》, 영문학자 C. S. 루이스의 《영광의 무게》처럼 말이다. 구체적 일상 생활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린다. 직장은 실질적인 살아 있는 예배의 자리다. 거기서 이 세대를 본받지 않겠다는 신앙고백을 한다.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온전한 뜻을 분별하게 되기를 기도하며 노력한다.

초대교회 지도자들은 화려한 신학적 수사 대신 삶의 증언으로 변증하는 것을 선호했다. 1세기 《바나바 서신》은 “당신이 이미 의로워진 양 자신에게만 갇혀서 고립된 삶을 살면 안 된다. 오히려 함께 모여 공동선을 추구하라”고 했다. 2세기 《디오그네투스에게 보낸 편지》엔 세상 속에 있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은 삶을 강조했다. 3세기 교부 오리겐은 변증을 일상의 문제라고 했다. “그리스도는 진정한 제자들의 삶을 통해 스스로를 변호하신다. 그들의 삶이 확실한 진리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무슬림 신자가 라마단 기간의 오찬 대신 저녁에 먹게 박스에 담아 달라는 요구하는 모습에 놀라며 도전을 받은 경험도 나눈다. 국가와 대통령을 위시한 ‘위정자’들을 위한 기도는 예배에서도 한다. 하지만 ‘특허청과 청장을 위한’ 기도는 누가 해야 할까? 거기서 근무하는 신앙인이라고 했다. 신우회의 존재 이유를 찾았다. 하나님의 자녀이자 공직자라는 이중 정체성을 잘 붙잡은 결과다.

참된 성도는 부르신 자리에서 최선의 헌신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하는 것을 사명으로 인식한다. 직무를 만족시키되 그 안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를 찾아 섬긴다는 원리다. 모든 직업이 하나님의 부르심이라는 ‘만인제사직’의 원리다. 과학자와 공직자로 주어진 일들을 신실하게 감당하며 사는 것도 ‘왕 같은 제사장’이 되는 길이다.

이 책의 글들은 ‘성공담’보다 더 감동적이다. 이런 책은 간증일 뿐 아니라 예배이며, 지금 성도들의 삶을 통해 쓰이는 사도행전 29장이다. 오늘의 히브리서 11장이다. 신앙인의 품격, 믿음의 자존심을 지키는 신자 행전이다. 단순한 간증집이 아닌 증언이며 오늘을 사는 평범한 신앙인의 결단을 모은 사례집이다.

일상의 자리에서 드리는 영적 예배

오래전 거의 모든 교우가 학생이거나 그 가족인 교회를 섬긴 적이 있다. 전공은 다양해도 하나님을 찾고 섬기는 훈련이 공감대였다. 교우 대부분이 금요 성경 공부에 다양한 그룹에 참여했다. 열띤 토론으로 밤 늦게까지 씨름하곤 했던 기억이 있다. 관심사와 삶에서 씨름하는 내용이 비슷하기에 그것이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데 큰 힘이 될 수 있음을 보았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모든 신앙인이 같은 세상 속에서 동일한 직종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세상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일이다. 이를 통해 진리와 정의가 강같이 흐르게 하는 일이다. 온 교회 성도가 치열하게 살아야 하는 직업의 세계 속에 씨름한 이야기를 이처럼 나눌 수 있으니 참 부럽다. 세속화된 학문 세계와 공직과 같이 신앙에 도전적인 분야에서 외롭지 않을 수 있어 얼마나 큰 축복인가!

직장은 성도들이 거기에 몸담고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다. 은혜가 가장 필요한 곳이다. 이 책은 그 은혜의 생생한 체험을 들려준다. 복음은 사적이 아니다. 복음을 일터에서 성실한 업무 수행을 통해 드러내는 것이 선교적 교회의 본질이다. 성도들이 있어야 할 곳에 신실하게 증인의 삶을 통해 삶으로 드리는 예배가 절실하다.

《기독교는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의 저자 제임스 데이비슨 헌터는 3%의 사람들이 미국 사회를 바꾼다고 했다. 이들은 세상 속에서 치열하게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일하며 그 일을 해낸다는 것이다. 기독교인이 20%에 가까운 우리 사회가 변화하지 않는 이유는 기독교인이 없어서가 아니다. 성도들이 부르심을 받은 곳에서 신실한 증인의 역할을 못하기 때문이 아닌지를 돌아봐야 한다.

과학주의와 인본주의에 밀려 교회로 후퇴하거나 공적 세계에서 밀려나 신앙을 개인과 가정의 사적인 세계 그리고 교회에 국한시켜 온 것이 복음의 증언을 위축시켰다. 이 책들에 담긴 은혜 체험에 한국 교회가 귀를 기울어야 하는 이유다. 삶의 현장인 대학교와 공직에서 무신론과 불신 세속 권력에 맞선 경험과 은혜 체험은 지금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용기를 준다. 
 

신국원 총신대학교 명예교수. 웨신대학교 초빙교수. 네덜란드 자유대학교(Ph.D.). 저서로 《니고데모의 안경》, 《지금 우리는 여기서 무엇을 꿈꾸고 있는가》 등이 있다. 필자의 다른기사 keyboard_arrow_r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