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와 신학

  • {{x.scr_name}}
  • 미분류

신학·설교 2023년  02월호 작은 교회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멤버십 강화를 통한 작은 교회 생존 직분과 교회론(2)

경제가 쇠퇴하면 서민들이 가장 고통을 받듯이 교회 전체가 쇠퇴하면 작은 교회들이 가장 큰 고통을 받는다. 이것은 누가 봐도 명확한 사실이기 때문에 모든 그리스도인은 이들의 고통 소리를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아쉽게도 이들의 목소리는 여러 가지 이유로 잘 들리지 않는다. 따라서 의도적으로 안테나를 세우고 이들의 고민과 호소를 들으려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노력이 없으면 앞으로 몇 년 안에 수많은 작은 교회들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불편한 질문

“작은 교회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할 수 있을 것이다. 1) 작은 교회는 살아남아야 한다. 2) 하지만 대부분의 작은 교회는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 3) 그럼에도 어떤 작은 교회는 살아남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질문은 “어떤 작은 교회가 살아남을 수 있는가?”다. 아마 몇몇 특별한 교회는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담임목사가 특별한 병 고침의 은사가 있거나, 주변 지역이 갑자기 개발됐거나, 이웃 교회가 이사를 하거나, 분쟁이 일어나는 경우다. 하지만 절대 다수의 보통 교회는 그런 특별한 혜택을 받기 어렵다.

작은 교회를 위한 특별한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대부분의 평범한 작은 교회는 비법이 아니라 정도(正道)를 추구해 내공을 길러야 한다. 이것을 한마디로 ‘강소형 교회’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볼 때 작은 교회는 약점이 많다. 하지만 약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약점을 최대한 줄이고 강점을 최대한 강화시키는 것이 작은 교회가 갈 길이다. 사실, 대형 교회들도 자신들의 강점을 잘 살리고 약점을 최소화하면서 점차 규모 있게 자리 잡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작은 교회는 자신들의 강점과 약점을 정확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것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면 강점을 약화시키고 약점을 강화시켜서 작은 교회를 더 어렵게 할 수 있다. 보통 작은 교회의 약점을 이야기해 보라고 하면 가장 먼저 재정 문제를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과연 재정 문제를 하나님께서 어느 정도 해결해 주시면 그 교회가 성장한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재정 문제가 결코 작은 난관은 아니지만 작은 교회의 본질적인 약점은 아니다. 따라서 작은 교회일수록 교회의 속성에 대해서 보다 근본적으로 성찰할 필요가 있다.

무엇을 어떻게 강화시킬 것인가?

1.     예배
예배는 교회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작은 교회의 가장 큰 단점은 예배 경쟁력이라고 생각한다. 작은 교회는 소수가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 교회다. 소수가 드리는 예배와 다수가 드리는 예배 중 어떤 형태가 더 생동감이 있을까? 통상적인 예배 관념에 따르면 다수가 드리는 예배가 더 멋있어 보인다. 그리고 실제로 이것은 대부분 사실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약점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작은 교회가 든든히 세워질 수 있는 가능성은 희박하다.

예배 참석 인원과 관련해 주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 18:20). 우리 주님의 말씀에 따르면 예배에서 참석 인원수는 본질적인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수가 아니라 ‘예수님의 이름’이다. 물론 이것을 모르는 교인이나 목사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경험적으로 우리는 2-3명이 아니라 2-3천 명이 모인 교회가 더 낫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에 갇혀 있는 한, 작은 교회가 예배 경쟁력을 강화시키는 것은 쉽지 않다.

겉으로 봤을 때 교회 규모와 상관없이 모든 교회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인다. 그렇다면 예배의 아름다움은 그리스도의 이름이 얼마나 선명하게 드러나는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큰 교회는 하나님의 이름이 화려하고 우렁차게 전달된다. 하지만 작은 교회는 그렇게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작은 교회는 기도 소리도 작고 찬송 소리도 작을 수밖에 없다. 성도들의 “아멘” 소리도 잘 들리지 않는다. 성도들에게 “아멘”을 크게 외치라고 설교해서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처음에는 몇 번 큰소리로 아멘이라고 화답하겠지만 곧 사그라질 뿐이다.

작은 교회가 작은 소리를 피할 수 없다면 작은 소리의 아름다움을 강화시키는 것이 작은 교회가 가야 할 길이다. 찬송에 담긴 감동적인 메시지는 큰 소리로 전달할 수도 있고 작은 소리로 전달할 수도 있다. 따라서 작은 교회는 작은 소리로 아름답게 찬송을 부를 방법을 발전시켜야 한다. 큰 소리에 적합한 찬송이 있고, 작은 소리에 적합한 찬송이 있다. 예를 들어 “마귀들과 싸울지라”(348장)와 같은 찬송은 큰 교회에 적합하고 “내가 깊은 곳에서”(363장)는 작은 교회에 보다 어울린다. 헨델이 작곡한 “저 높고 푸른 하늘과”(78장)나 베토벤이 작곡한 “오늘 모여 찬송함은”(605장)과 같이 웅장한 찬송은 찬양대에 보다 어울린다.1

이것은 하나의 예일뿐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작은 교회는 예배의 작은 모든 요소를 아름답게 만들어야 한다. 작은 소리로 기도하고 찬송을 하더라도 참석한 자들이 은혜를 받도록 성도들을 훈련시켜야 한다. 대표 기도를 맡은 성도가 깊은 내용을 담아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할 때 비록 소리는 작더라도 참석한 사람들이 큰 은혜를 받을 수 있다.

이를 위해서 작은 교회는 잘 작성된 기도문을 사용하는 것이 더 낫다고 본다. 또한 내용면에서는 기도 중의 기도라고 할 수 있는 시편과 하이델베르크 교리 문답에 제시된 주기도문 해설이 좋은 안내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2.     노출 빈도
작은 교회의 목사는 성도들에게 거의 모든 것이 노출된다.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가족들의 사생활도 보호가 되지 않는다. 사실, 이것은 모든 목사가 짊어져야 할 짐이지만 작은 교회의 경우 그 정도가 심하다. 반대로 큰 교회의 경우 목사의 삶은 거의 노출이 되지 않는다. 어떤 목사는 의도적으로 자신의 모든 삶을 감추기도 한다. 성도들에게 보이는 목사의 모습은 화려한 조명이 비치는 강대상에서 설교하는 경건한 모습일 뿐이다. 목사가 평소에 어떻게 사는지는 성도들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다.

작은 교회의 목사에게 노출 빈도는 양날의 칼이라고 할 수 있다. 목사의 경건이 아주 뛰어나다면 노출 빈도는 목사에게 큰 힘이 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교회 성장에 큰 걸림돌이 될 뿐이다. 작은 교회 교인들은 목사의 모습에 실망할 때 쉽게 교회를 떠난다.
실제로 작은 교회의 교인이 교회에 오는 가장 큰 이유는 목사에게 있다. 목사 때문에 교회에 등록했으니 목사 때문에 교회를 떠나는 것은 자연스럽다. 목사 때문에 교회에 등록했지만 예수님 때문에 교회를 다닌다는 생각으로 바꿔 줘야 하는데 상당한 시일이 걸린다.

목사는 과도한 노출 빈도를 줄일 필요가 있다. 특히 가족들은 최대한 보호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작은 교회일수록 목사 자신을 비롯해 사모와 자녀들이 교회 봉사에 참여하게 되고 교인들에게 더 많이 노출될 수밖에 없다. 빈번한 노출은 목사를 가볍게 보게 할 위험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노출 빈도의 적성선이 어디까지인가 대한 정답은 존재할 수 없겠지만 목사는 자신만의 기준을 갖고 있어야 하고 그에 따라 목회를 해야 한다. 노출 빈도가 높은 것을 피할 수 없다면 그것을 강점으로 바꾸도록 노력해야 한다. 간단히 말하면 목사 개인의 경건을 높여야 한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이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성도들이 목사를 자주 만날 수 있고, 만나고 나서 힘을 얻어야 정상적인 목양 관계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목사도 사람이고 따라서 한계가 있다. 그러한 만남은 목사의 힘을 소진시키고 이는 설교 준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따라서 작은 교회 목사는 평소에 경건에 이르기를 부단히 힘써야 한다(딤전 4:7).

이것은 가족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 목사의 아내, 목사의 자녀라는 삶은 이미 주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경건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 목사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예전에는 교회를 위해서 목사의 가정이 희생된 경우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환경을 지속시켜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아도 많이 위축돼 있는데 목사로부터 위로를 받지 못한다면 그들의 삶은 점점 피폐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목회 자체가 위기에 처할 수 있다. 작은 교회 목사일수록 성도보다는 가정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목사의 삶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들이 목사의 설교에서 은혜를 받아야 작지만 강한 교회를 세울 수 있다.

회원권(membership)을 강화해야 한다

교회가 작아진다는 것은 할 수 있는 일이 줄어들거나 그 질이 이전보다 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큰 교회는 선교나 구제도 많이 할 수 있고 기독교 학교를 운영할 수도 있다. 이것이 잘 이루어지면 그 교회는 계속 성장한다. 하지만 작은 교회는 여러 측면에서 이런 일을 잘 감당하기 어렵다. 따라서 작은 교회는 일보다는 사람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작은 교회 성도일수록 소속된 교회에 자부심을 가지도록 목회 방향을 정해야 한다. 회원의 숫자는 늘릴 수 없다고 하더라도 회원의 수준은 높여야 한다.

1.     목사의 수준
일반적으로 한 교회의 수준은 그 교회 담임의 수준을 뛰어넘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절대적인 진리는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특히 작은 교회 목사들이 주목해야 할 말일 것이다. 그들이 절박하게 교회의 성장에 관심을 갖는 것은 이해가 된다. 하지만 정작 더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자신들의 성장이다. 의외로 작은 교회 목사일수록 자신들의 성장에 별 관심을 갖지 못하는 것을 본다. 사실 자신을 어떻게 성장시켜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것 같다.

목사의 수준을 여러 가지 측면에서 말할 수 있겠지만 가장 대표적인 기준 중 하나는 설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 신학 교수의 입장에서 한두 가지 말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대체적으로 봤을 때 소위 설교 실력(?)은 그렇게 쉽게 늘지 않는다. 깊은 성찰과 노력과 훈련이 필요하다. 설교를 증진시키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설교를 잘하는 사람에게서 개별적으로 지도와 평가를 받는 것이다. 그러나 신학교를 졸업하는 순간 그럴 기회를 갖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평가 없이 성장 없다!) 설교를 그나마 잘한다고 평을 듣는 목사들도 보통 50대 중반이 넘어가면 매너리즘에 빠지는 경우를 많이 본다.

설교를 계속 잘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자기 성찰이 있어야 하고 신학적 안목을 계속 길러야 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여러 가지 이유로 이런 노력들을 위해 시간을 투자하지 않는다. 이와 같은 상황은 작은 교회 목사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설교가 퇴보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원인은 자신의 설교를 객관적으로 검증하지 않기 때문이다.

목사를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은 실제적으로 동료 목사 외에는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마음이나 뜻이 맞는 설교 소그룹을 만드는 것이 좋은 방법 중 하나다. 요즘에는 인터넷이 발달해서 얼마든지 모임을 구성할 수 있다. 함께 정해진 본문에 대해서 토의하고, 발표도 하고, 평가를 나눈다면 조금이지만 설교 능력이 계속 진보할 것이다. 사실 이것이 신학교에서 실시하는 설교 실습의 핵심이기도 하다.

2.     성도의 수준
목사의 수준과 성도의 수준은 서로 상관관계에 놓여 있다. 목사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는 성도의 수준도 높여야 한다. 성도의 수준이 높은데 목사가 그 수준을 맞추지 못한다면 교회에 큰 시험이 생길 수밖에 없다. 정상적인 경우 성도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목사의 설교를 들으면서 신앙이 자란다. 초신자와 10년 정도 신앙생활을 한 성도의 수준이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성도는 신앙이 자랐는데 목사는 제자리에 있는 경우다. 예전에 잘 따랐던 성도가 여러 불만을 제기할 때 목사는 당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은 이유 때문에 “성도들에게 잘 가르칠 필요가 없다”는 주장도 심심치 않게 제기된다. 어느 정도 이해가 되지만 작은 교회가 취해야 할 방향은 아니다.

우리는 코로나를 통해서 이와 같은 주장이 얼마나 위험한지 절감했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코로나 이후 약 30% 정도의 성도가 교회 출석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결국 그들은 신앙을 떠날 것이다. 작은 교회는 더 많은 타격을 받고 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작은 교회일수록 성도 한 명 한 명의 신앙을 바르게 세우는 데 관심을 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 명의 성도가 교회 분위기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작은 교회의 목사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작은 교회일수록 한 사람, 한 사람을 말씀 위에 바로 세워야 한다. 교인 한 명을 늘리기보다 성도 한 명의 신앙을 강화시키는 것이 궁극적으로 작은 교회가 가야 할 방향이다. 비록 성도 수는 적더라도 성도들의 신앙 수준이 높으면 목사도 자기 자신을 성장시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교회는 작더라도 성도들 스스로 자부심을 갖게 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성도의 수준을 높이는 방법 중의 하나는 회원권을 적절하게 강화시키는 것이다. 교회마다 다르겠지만 오늘날 교인 등록을 보면 백화점 고객 등록과 별 차이를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쉽게 교회 회원이 되면 쉽게 교회를 떠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반대로 어렵게 교회 회원이 되면 그 교회를 보다 소중하게 생각한다. 보통 주일예배 출석과 헌금을 주요 지표로 삼는 경우가 많은데, 가장 중요한 것은 삼위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신앙고백이다. 이 신앙이 분명할수록 주변 환경에 흔들리지 않는다. 작은 교회 목사는 이 고백을 어떻게 강화시켜야 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3.     어린 자녀의 수준
작은 교회일수록 어린이들에 대한 관심이 떨어지는 것을 본다. 역시 가장 큰 어려움은 어린이 수가 너무 적다는 것이다. 저출산 시대에는 규모 있는 교회도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전과 같이 독립된 주일학교를 운영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게 됐다. 그들을 위한 부교역자를 구하는 것은 쉽지 않을 뿐 아니라 재정적으로도 상당한 부담을 져야만 한다. 교회가 여유 있다면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현재의 주일학교 시스템은 재고될 수밖에 없다.

결국 작은 교회가 가야할 길은 세대 통합예배다. 예배는 부모와 자녀들이 같이 드리도록 하고, 어린이들을 위한 분반 교육을 강화시킬 수밖에 없다. 이것은 예배에 있어서 큰 전환을 의미한다. 어린이와 함께 예배드리기 위해서는 고려해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예배의 모든 요소(찬송, 설교, 기도)에서 어린이들을 ‘고려’해야 한다. 이것은 단지 설교를 할 때 어린이 목소리를 흉내내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차라리 시간이 들더라도 어린이들의 수준을 높이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어린이들의 수준과 관련해 한두 가지 언급할 필요가 있다. 필자가 어렸을 때는 중학교 1학년이 되면 ‘보조 교사’라는 직함을 받고 초등학생들에게 선생님이라고 불린 적이 있었다. 하는 일은 주로 신발 정리나 심부름이었지만 교사회에도 참석했다. 사회적 분위기가 다르기 때문에 이전과 같이 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린이라고 해서 무조건 낮춰보기 보다는 그들을 잘 교육시켜서 어른 예배를 소화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것이 좋다. 잘 준비된 설교라면 어린이들도 충분히, 혹은 상당 부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성도들의 수준을 높였다면 그들이 어린이 성경공부 정도는 어렵지 않게 인도할 수 있을 것이다.

4.     직분자의 수준
작은 교회의 직분자는 대우를 받기가 쉽지 않다. 이것은 노회에 참석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큰 교회에서 온 장로 총대는 주목을 받지만 작은 교회에서 온 장로 총대는 별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사실, 작은 교회에서는 직분자를 세우기도 쉽지 않다.
이 점에 있어서 작은 교회는 큰 결단을 내려야 한다. 작은 교회에서는 성도 한 명도 영향이 적지 않은데, 직분자의 영향은 말할 것도 없다. 조급한 마음에서 직분자 한 명을 잘못 선출하면 회복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 따라서 작은 교회일수록 직분자의 수준을 높여야 한다.

이를 위한 방법으로는 무엇보다 직분자 수를 줄이는 것이다. 교회 내 직분자의 수가 많아질수록 직분의 고귀함도 상대적으로 줄어든다. 교인의 대다수가 집사라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어떻게 집사의 중요성을 인식할 수 있겠는가? 또한 직분자 교육도 현재보다는 대폭 강화할 필요가 있다. 직분자가 될 만한 성도가 없다면 차라리 기다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작은 교회일수록 직분의 아름다움이 빛나는 교회로 만들어 가야 한다.

작은 교회의 단점 중 하나는 일반적으로 교회 생활을 오래한 직분자의 만족도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작은 교회는 무엇을 해도 가시적 결과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봉사를 해도 표가 나지 않는다. 자신의 노력과 헌신을 알아 주지 않으면 쉽게 낙심하기도 한다. 이들이 어떻게 계속 행복하게 교회 봉사를 할 수 있겠는가? 직분자가 예배 시간에 설교를 통해 은혜를 받는 방법 외에 다른 길이 존재하지 않는다. 작은 교회의 직분자를 훨씬 더 강한 믿음의 소유자로 성장시켜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1)    찬송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에 대해서는 다음 저서를 참고하라. 이성호. 《바른 예배를 위한 찬송해설》 (SFC, 2018).

이성호 고려신학대학원 교회사 교수. 미국 칼빈신학교(Ph.D.). 저서로 《직분을 알면 교회가 보인다》, 《성찬: 천국 잔치 맛보기》 등이 있다. 필자의 다른기사 keyboard_arrow_r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