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와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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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 2022년  12월호일하는 목회자와 선교적 삶 일하는 목회자(9)

일하는 목회자들에게 큰 어려움 중 하나는 정체성의 혼란이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 앞에서 머뭇거리곤 한다. 답을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쉽게 답을 내릴 수 없는 상황 때문이다. 큰 결단을 통해 일터에 나 자신을 스스로 선교사로 파송할 수는 있지만, 남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내가 선택하고 살아가는 삶이 선교적인 삶이라고 끊임없이 고백하는 건 쉽지 않다. 선교적 접촉점을 만들어 내고 복음적인 삶을 살고자 시작한 일들이 언제까지나 가치 중심적으로만 진행될 수도 없다. 때로는 시장논리 앞에서 신념이 꺾이기도 한다.

이런 현상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필자는 우리에게 일상을 해석해 내는 힘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특히 2010년 어간부터 담론으로 자리 잡은 선교적 교회론은 조국 교회에 많은 통찰과 인식의 전환을 제공했지만, 이에 대한 우리다운 적용과 고찰이 충분하지 않다는 아쉬움이 많다. 일하는 목회자들을 위한 선교적 교회론과 그 실천은 어떻게 가능할까.
 

일과 영성에 대한 목회자의 네 가지 입장

일하는 목회자를 부르는 이름이 더욱 다양해지고 있다. 이름이 많다는 건, 그만큼 인식의 틀이 다양하다는 의미다. 이중직이라는 표현이 가장 대중적이지만, 해당 단어에 부정적인 의미가 다소 담겨 있다는 인식도 많아졌다. 자비량 목회, 겸직 목회, 두 직업 목회, 자립형 목회, 일터 목회자 등 이를 긍정적으로 표현하려는 다양한 시도 속에 일하는 목회자라는 단어 역시 대중화되고 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어떻게든 목회라는 본질을 잃지 않으려 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현상을 통해 우리는 일에 대한 인식은 조금씩 다르지만, 본질적으로 이들이 목회자이며 일하는 이유 역시 목회를 잘하고 행복하게 하기 위함이라는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일하는 목회자들을 포함해 조국 교회의 목회자들은 일과 영성에 대해 대체로 다음의 몇 가지 입장을 갖고 있다.

첫째는 성과 속을 철저히 분리하는 입장이다. 극단적인 표현 같지만 실은 다수의 목회자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들은 교회 안팎에서 교회의 이름으로 이뤄지는 전통적인 목회 활동만을 목사다운 삶으로 여긴다. 목사는 교회 공동체를 섬기기 위해 부르심을 받았고, 오로지 이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을 포함한 모든 일하는 목회자들의 존재와 그 의미에 부정적이다. 때에 따라 공급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부족한 자로 여긴다. 이들에게 목회는 성직이며, 목회 활동은 노동일 수 없고, 목회 외의 노동은 소명과 반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혹 이러한 입장을 단지 낡고 답답한 것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최근 필자가 주목하는 지점은 일하는 목회자들이 많아지는 것은 분명하지만, 젊고 유능한 목회자들도 몇 번의 새로운 시도 끝에 다시 전통적인 목회로 돌아오곤 한다는 사실이다. 또 다양한 유형으로 지속가능한 목회를 시도하면서도 목양은 우리에게 익숙한 옛 방식을 고수하는 분들도 적지 않다.

이들은 왜 출발점으로 다시 돌아올까?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이러한 새로운 방식의 목회 활동을 통해서는 충족감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목회자 중심, 회집 중심의 목회 활동이 익숙한 영성의 문법에서 벗어나 일터와 일상으로 확장될 때 우리는 때때로 당혹감을 느낀다. 목회자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성도들에게도 그것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상실과 공허로 다가오곤 함을 기억해야 한다.

둘째는 목회자가 세속에서 노동하는 것을 목회의 확장 또는 선교로 이해하는 입장이다. 일하는 목회자들이 일을 하게 되는 계기는 다양하다. 생계 문제나 공간 사용, 혹은 교회 차원에서의 선교 활동으로 일을 하기도 한다. 계기는 다양하지만 이들은 공통적으로 성속이원론을 배격하고 그리스도인에게 일상이 갖는 선교적 의미를 강조한다. 또 세속이 더 이상 우리의 전도를 반기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고, 지역과 각 개인의 일상 안에서 자연스럽게 선교적 접촉을 늘려가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고 믿는다. 예배는 교회 문밖을 나가며 시작되는 것, 마을의 모든 이들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이 마을 목회라는 등의 구호가 이에 해당한다. 이들은 경계의 모호함을 추구하며 선교적 교회를 지향하기 때문에 보냄을 받은 모든 곳을 사역지로 인식한다.

셋째는 일하는 목회자로 살아가는 것을 교회 개혁의 한 측면 또는 대안적 목회로 이해하고 나아가 운동성을 추구하는 입장이다. 이들은 전통적인 목회가 가진 문제를 교회 중심, 목회자 중심의 신앙 활동과 권력 구조에 있다고 본다. 물질만능주의, 기복주의, 이원론적 신앙과 사제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목회자가 직제로서의 역할은 물론이고 성도들과 함께 구체적인 일상 속에서 복음을 증거해야 한다고 믿는다. 규모가 교회의 건강성과 직결된다고 보기 때문에 소신 있는 목회를 하기 위해서는 목회자가 일을 해야만 한다고 주장하며, 교회가 목회자 가정을 부양하는 시대는 끝났다고 본다. 이런 이들은 일하는 목회자는 시대의 부름을 받은 것이며 이들이 많아지는 것이 한국 교회가 건강해지는 길이라고 주장한다.

반면에 일하는 목회자로 살아가면서도 이와 같은 교조화를 경계하는 이들도 있다. 이들은 일과 목회를 병행할 때 마주하는 현실을 이미 충분히 경험했다. 물리적으로 두 가지 영역 모두에서 최고의 성과를 내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노동은 거룩하지만 그로 인해 목회 활동에 필요한 시간을 충분히 갖지 못하는 것은 극복해야 하는 현실이다. 신념을 갖고 일터로 뛰어든 이들도 있고, 어쩔 수 없이 일을 하게 된 이들도 있지만 이들이 공통적으로 경험한 것은 경계(boundary)가 주는 유익이다.

일터에서 선교적 삶을 사는 것과 지역교회 목회자로 살아가는 것이 반드시 일치할 필요도 없고, 적절한 경계를 가질 때에 오히려 목회가 더욱 풍성해지기 때문이다. 이들은 보통 교회의 부흥기와 침체기를 모두 몸소 겪었을 가능성이 높고, 전통적인 목회에 익숙한 회중이 아직 더 많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으며, 사목으로서의 역할에 좀 더 충실하고자 하는 욕구를 가진 목회자들이다.

이와 같이 일과 영성에 대한 인식의 차이는 일과 사역의 방향과 형태를 결정하며, 목회자 자신의 삶을 형성하는 데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나아가 일에 대한 만족감과 목회 활동에 대한 보람과도 깊은 상관관계가 있다. 선교적 교회론에 대한 고찰이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일하는 목회자들이 일을 시작하는 계기는 재정적인 부분이 가장 크겠지만, 목회 활동을 지속하는 힘은 자신의 존재와 정체성에 대한 확신을 바탕으로 한다. 목회자들의 일상은 한 개인의 일상으로 치부하기에는 공적이고 상징적이다. 따라서 우리의 일상은 신학적 성찰을 요구하며, 책임감 있게 해석돼야 한다.

우리의 선교적 교회론은 2009년 지성근 목사가 마이클 프로스트와 앨런 허쉬의 《새로운 교회가 온다》를 번역·출간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북미의 선교적 교회운동, 영국 성공회의 선교형 교회, 교회의 새로운 표현 등이 함께 소개됐다. 서구의 선교적 교회론이 크리스텐덤에 대한 반동으로 일어났던 것처럼, 우리의 초기 담론은 작고 건강한 교회를 지향하는 교회개혁 운동가들에 의해 주도됐다. 주로 카페 교회, 도서관 교회와 같은 유형의 교회를 개척하고 활동하는 이들이 많이 소개됐다. 신학교에서는 새로운 교회 개척의 모델에 관한 세미나를 열어 선교적 교회론을 보급했고, 이들이 강사로 초대되곤 했다.

한편, 김선일 교수는 우리 안에 선교적 교회론이 자리 잡는 과정을 에큐메니컬 운동과 비교한다. 둘은 서로 유사한 점이 많음에도 결과적으로는 큰 차이를 보였는데, 에큐메니컬 운동이 사회 운동에 참여하거나 인권과 정의를 위한 민중 교회를 세우는 방향을 선택한 데 비해 선교적 교회론은 좀 더 지역적이고 생활밀착형으로 발전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특히 ‘선교적 교회’에서 말하는 ‘선교’는 지역적이고 지역민 중심적이며, ‘교회’는 보통의 전통 교회가 가진 범주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1세대 선교적 교회들은 기존 교회들이 가진 목회자 중심의 구조와 전통적 운영 방식을 답습했고, 일부 교회를 제외하고는 교회론의 의미있는 변화를 경험하지 못했다.

이후 선교적 교회론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조국 교회의 선교적 교회론은 교회 중심에서 개인의 선교적 삶으로 그 무게 중심이 옮겨졌다. 북미의 신학자들은 선교적 교회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목회자 중심의 리더십이 회중에게 이양되는 모델을 제시했지만, 우리의 선교적 교회 개척자들은 이것이 우리의 정서와는 맞지 않음을 오래지 않아 깨달았다. 우리는 오랜 시간 목회자 중심으로 교회가 세워지고 운영돼 왔기 때문이다.

선교적 교회론이 교회 공동체에서 개인으로 이동한 데에는 선교적 교회론의 모호함과 추상성도 한몫했다. 보냄을 받은 곳에서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한다는 개념은 기존의 교회론을 뒤바꾸는 근본적인 이야기였지만 실천에 있어서는 지극히 일상적이고 당위적이었기 때문이다. 교회가 지역에서 착한 일을 한다는 점에서는 전통적인 선교론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고 이에 대한 고민은 곧 교회의 사역을 넘어, 보냄 받은 개인의 일상과 삶으로 이어졌다.
 

일하는 목회자의 선교적 삶에 대한 다섯 가지 제언

인식은 다양하지만 일하는 목회자는 전문적으로 훈련받은 사목자이자 한 사람의 성도임에 분명하다. 일을 하는 계기와 목적은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결국 일터에서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갖는 고민을 그대로 안고 있다. 추상적으로 보일 수 있는 선교적 교회론은 보냄 받은 이들을 통해 실천되며 우리 일하는 목회자들의 삶 속에서 체화돼야 한다. 김선일 교수는 선교적 교회론의 5가지 실천 방향으로 장소, 이웃 됨, 일상, 몸, 보냄 받음을 제시한다. 이를 인용해 일하는 목회자들에게 필요한 선교적 삶에 대해 짧게 기술하고자 한다.

첫째는 장소로서의 선교다. 선교적 삶의 실천은 필연적으로 장소를 그 통로로 삼는다. 마을 목회는 마을이, 일터 사역은 일터가 실천 영역이다. 타문화권 선교에서 타문화에 대한 이해와 적응이 필요하듯 장소에 대한 탐색과 연구가 필요하다. 지역교회가 지역 안에서 실제적이고 구체적으로 기능해야 하는 것처럼 일하는 목회자들은 이런 과정을 통해 보냄 받은 곳을 중심으로 이웃들과 교제하고 길벗이 된다.

유의할 것은 전통 지역교회가 가치와 의미에 먼저 집중했다면, 일하는 목회자들은 보냄 받은 곳에서 충실히 기능하는 일이 가장 우선된다. 과일가게라면 우선 맛있는 과일을 판매하는 곳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장소성은 고유의 기능이 역동적일 때 발생하기 때문이다.

둘째로 선교적 삶은 이웃 됨을 전제로 한다. 여기서 말하는 이웃 됨은 이웃을 대상화하지 않고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로 인식하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필요를 채우는 일에 익숙했던 이들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는 이웃을 시혜의 대상으로 여긴다는 점이다. 선교적 삶에서 이웃은 서로 동등할 뿐만 아니라 보살핌으로 각자를 채우는 존재다. 현대 도시 문화는 정주성보다 나그네의 삶이 강조된다.

교회의 각 구성원들은 이미 그렇게 살아가고 있지만, 특히 목회자들은 오히려 낯선 곳에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존재에 가깝다. 성급하게 착한 그리스도인이 되려고 애쓰기보다 일상을 공유하고 같은 리듬으로 살아가려는 노력이 일하는 목회자를 보통의 이웃으로 인식하게 한다.

셋째로 선교적 삶은 일상을 바탕으로 이뤄진다. 우리가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보냄 받은 존재임을 인식하는 일은 신앙의 일상성을 요구받는다는 의미다. 우리에게 익숙한 거룩함이 일상과 대비돼 선명하게 드러날 때, 비그리스도인들은 우리의 존재를 불편하게 여긴다. 교회 바깥에서 타인의 일상을 깨는 것은 선교적 삶과 거리가 멀다. 우리는 성서의 하나님이 몸, 식사, 가정 등 우리의 일상을 재료 삼아 선교하시는 분임을 기억해야 한다. 일상의 각각에서 자연스럽게 관계가 형성될 때까지 우리는 평화해야 한다.

넷째로 선교적 삶은 몸의 선교여야 한다. 몸과 영혼을 분리해 생각하는 이원론적인 사고는 편협한 영적 가치에 몰두하게 한다. 일하는 목회자들은 보냄 받은 곳에서 만나는 이들의 일상에 구체적으로 관심을 갖고 그것을 기억해야 한다. 특히 전도에 초점을 맞춘 피상적 관계는 지양해야 하며, 몸과 몸이 만나 진실된 관계를 맺는 것이 수단이 아닌 목적이어야 한다. 이러한 관계는 현대인이 피로감을 느끼는 탈육체적 세계 안에서 효과적으로 작동하며, 이들의 결핍을 깨닫게 하는 포인트가 된다.

끝으로 선교적 삶은 보냄 받음의 선교다. 일하는 목회자들은 교회 공동체를 섬기기 위해 부름받음과 동시에 일터로 보냄 받은 존재임을 기억해야 한다. 교회 안에서는 사람들의 신앙적인 욕구를 충족시켜야 할 의무가 있지만, 일터에서는 보냄 받은 곳에서 세상을 섬기는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선교적 교회론에서 이러한 파송은 성부 하나님이 성자 예수님을 파송하신 것에 비교된다. 보냄 받은 백성이 존재하는 이유는 그곳에 거하는 이들과 똑같이 살아가기 위함이 아니라 보냄 받은 목적을 이루기 위함이다. 인자가 온 것은 섬기려 하기 위함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우리는 세속의 가치와 맞서 싸우며 세상과는 다른 방식으로 그곳을 섬겨야 한다. 

일하는 목회자들은 목회자라는 특수성 때문에 비목회자들과는 다른 책임을 갖고 있다. 우리가 하는 말과 행동이 곧 조국 교회를 대표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이 우리 안에 성실히 체화될 때에 일하는 목회자들은 그 독특한 위치를 통해 하나님의 선교를 풍성하게 할 뿐만 아니라 교회 공동체에 더욱 큰 유익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박종현 함께심는교회 담임목사. 사단법인 센트 이사.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M.A.). 공저로 《지금 여기, 선교의 시대》가 있다. 필자의 다른기사 keyboard_arrow_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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