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 대법원은 지난 6월 24일, 임신 24주까지는 낙태를 허용하던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었다. 임신 15주 이후의 낙태를 전면 금지한 미시시피 주 법의위헌법률 심판에서 6대 3으로 합헌 판결함으로써 미시시피 주를 비롯해 텍사스, 아칸소, 미주리, 노스다코타 등 13개 주에서는 즉각적으로 낙태가 금지됐다. 향후 적어도 미국 50개 주 가운데 절반 이상이 낙태를 금지하는 법률이 시행할 수 있게 됐다.
이러한 미 연방 대법원의 결정은 미국 내 엄청난 찬반 논쟁을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우리 나라를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도 그 파장이 증폭되고 있다. 더욱이 한국은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낙태에 관한 입법이 이뤄지지 않아 입법 공백 상태다. 이번 결정은 향후 입법에도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어 낙태를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양 진영에서 결코 양보할 수 없는 대접전을 예고한다.
이 시점에서 기독교인이 어떤 관점으로 이를 바라봐야 할지 분석하고 정리하는 일은 매우 시의적절하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먼저 ‘로 대 웨이드’ 판결 내용을 세밀히 파악하고, 이번 결정의 배경과 의미를 분석해 보고자 한다. 또한 이를 통해 한국 낙태 입법에 끼칠 영향을 예측하며, 한국 교회와 기독교인은 어떠한 자세를 갖고 실제 삶에서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제안하고자 한다.
로 대 웨이드(Roe vs. Wade) 판결
미국 텍사스 주의 비혼 여성인 노마 매코비(가명: 제인 로)는 원치 않는 임신을 했고, 낙태를 금지한 텍사스 주 법이 사생활의 헌법적 권리를 침해했다며 대법원에 소송을 했다. 1973년 미 연방 대법원은 다수 의견 7과 소수 의견 2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1 이로 인해 낙태를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미국의 모든 주와 연방의 법률이 폐지됐다. 전 세계적으로 낙태를 생명권의 차원에서 다루기보다 여성의 자기 선택권으로 보는 견해가 우세해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이다.
로 대 웨이드 판결 이후 민주당과 공화당은 각각 낙태 찬성과 반대로 나뉘어 지난 50년간 논쟁을 이어왔다. 대통령 선거에서 가장 주된 쟁점으로 낙태 문제가 부상했다. 미국의 정치인들은 낙태 문제를 자신들의 선거 전략에 활용했다. 공화당은 보수적인 기독교 복음주의 신도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낙태 반대 입장에 섰고, 대부분의 복음주의 교회 성도들은 공화당을 지지하는 강한 카르텔을 형성했다. 가장 주된 전략의 핵심은 미 연방 대법원 판사 9명의 구성을 어떻게 하느냐에 있었다. 공화당은 몇 명의 대통령을 배출하면서 미 연방 법원의 판사 성향을 진보 대 보수 비율을 7대 2에서 4대 5로 만들었고, 급기야 트럼프 대통령 재임 기간 중 보수 성향의 판사를 대법관으로 선임해 역전의 기틀을 마련했다.
2
미국 기독교 복음주의 생명 운동
로 대 웨이드 판결 뒤집기는 물론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 지도자들의 선거 전략의 결과이긴 하지만 그동안 꾸준히 생명의 소중함을 외쳐온 프로라이프운동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아울러 지난 50년을 한결같이 기도해 온 수많은 기독교인의 응답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인간의 양심 안에 생명을 죽이는 것에 대한 최소한의 죄책감이 존재하기에 그 누구라도 낙태의 실상을 알고 나면 이를 지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최근 상영한 영화인 〈제인 로 케이스 뒤집기〉(Reversing Roe, 2018)와 〈언플랜드〉(Unplanned, 2019)를 보면 얼마나 많은 복음주의 기독교인이 낙태 확산을 막기 위해 온몸을 던져 애쓰고 있는지 소상히 보여 준다. 반면 페미니즘의 가치를 선거에 전략적으로 받아들여 여성과 젊은이들의 표를 얻으려는 민주당은 낙태를 허용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엄청난 지원을 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기관이 가족계획협회로 미국 전역에 많은 기관을 설립하고 부설 낙태 시술 기관을 세워 한해 150만 건 이상의 낙태를 시행해 왔다.
많은 교회와 프로라이프 운동가들은 1명의 태아라도 더 살리기 위해 간절한 마음으로 낙태 시술 기관이나 가족계획협회 앞에 모여 함께 찬양하고 예배하며, 낙태 시술을 받으러 가는 여성을 향해 낙태 실상을 알렸다. 또한 그를 위해 기도하는 사역을 전국적으로 시행해, 상당히 많은 주의 낙태 시술 기관이 문을 닫거나 규모를 축소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하지만 일부 과격한 복음주의 낙태 반대 운동가들은 무력으로 낙태 시술 기관을 공격하기도 했고, 일부 급진적인 운동가들은 태아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명분으로 낙태 시술 전문의에게 총기를 난사해 여러 명이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건도 심심치 않게 일어나 사회적 이슈가 되기도 했다.
복음주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여성의 자기 결정권’
2019년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 후 여성 단체들은 연일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주장하며 낙태 전면 허용을 관철하려고 전력을 다하고 있다. 그렇다면 자기 결정권은 과연 무엇인가. 자기 결정권의 시작은 창세기의 인간 창조에서 시작한다.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흙으로 빚으시며, 무조건 신의 명령에만 순응하는 로봇보다는 스스로 자유로이 선택해 하나님을 찾길 바라셨다. 그래서 인간에게만 자유 의지를 주셨는데 이것이 ‘자기 결정권’의 출발이다.
생명이 가지는 가장 중요한 네 가지 원칙은 다음과 같다. 첫째, 자율성 존중의 원칙이다. 모든 결정은 자기 스스로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가령 암 환자가 치료를 받을 때도 가족이 결정하거나 의료진이 결정하는 게 아니라 환자 본인이 결정해야 한다. 무턱대고 아무런 정보 없이 결정해서는 안 될 것이다. 생명 윤리에서는 이를 ‘충분한 설명 후 동의’(Informed Consent)라고 말한다. 수술 방법과 합병증, 항암제 종류와 부작용, 방사선 치료의 기본 원리와 후유증에 대해 충분히 설명을 들은 후 본인이 결정해야 한다.
여성은 낙태 과정에서 몇 차례 자기 결정의 기회를 얻는다. 임신은 저절로 이뤄진 것이 아니며 여성의 자기 결정 결과다. 강간을 제외한 모든 성관계는 여성의 동의와 결정으로 이뤄지고, 임신은 그에 수반한 결과물이다. 때문에 자기 결정에는 반드시 책임이 뒤따른다. 그 결정에 여성도 남성만큼이나 책임의 주체인 것이다. 문제는 생명이 잉태될 뿐 아니라 이후 양육에 이르기까지 책임이 수반되는 중대한 결정에 충분한 정보를 갖지 못한다는 것이다. 성관계가 의미하는 사랑, 쾌락, 생명에 대해 얼마나 진지한 고려를 하면서 성(性)을 누리고 있는가. 원치 않는 임신이라는 말이 의미하는 바가 얼마나 무책임한 것인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낙태는 이보다 더 끔찍한 결과를 초래한다. 목숨 걸고 보호해야 할 자신의 아기를 스스로 해치는 잔인한 자기 결정도 실은 제대로 알지 못하고 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낙태가 무엇이며 어떤 시술 방법을 사용하는지, 후유증과 합병증은 무엇인지, 만일 임신을 지속할 시 어떻게 되고 정부의 지원과 사회적 제도가 준비되는지, 아기가 태어나고 엄마가 되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아무런 설명도 듣지 않은 채 차가운 낙태 수술대 위에 오른다.
자기 결정권은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자신의 결정으로 다른 사람이 고통받거나 생명을 잃는다면 다시 생각해야 한다.
3 마스크를 쓰지 않고 유흥 주점에서 신나게 노는 자기 결정의 권리가 있지만 코로나19를 전파해 다른 사람을 고통에 빠뜨린다면 자기 결정권은 일정 부분 제한받아야 마땅하다. 성관계의 자기 결정권은 존중받아야 하지만 생명의 잉태 가능성도 생각해야 한다. 최근 ‘임신 중단’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하는 데, ‘임신 중단’은 단지 여성의 임신만 중단되는 것이 아니다. 독립적인 한 인간의 생명이 목숨을 잃는 양면성을 갖는다. 뱃속의 엄연한 생명체의 소중한 생명권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낙태의 자기 결정권을 주장하기에 앞서 임신의 자기 결정권에 책임져야 할 것이다.
국내 복음주의 프로라이프운동의 현황과 전망
미국 상황과는 정반대로 국내 현실은 무척이나 심각한 상황이다. 3년간 낙태법 개정입법 자체가 이뤄지지 않아 낙태에 대해 무법천지인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스스로 자신의 생명을 지켜내지 못하는 가장 연약한 인간 생명인 태아를 위해서 그 어떤 법도 존재하지 않는 나라가 세상 그 어디 있단 말인가? 그럼에도 한국의 복음주의 교회의 역할은 거의 미미한 상황이다. 가톨릭과 달리 복음주의 교회는 분명한 낙태 반대 입장을 세상에 공언하지 않았고,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이나 제자 훈련의 그 어떤 과정에서도 낙태 문제는 다뤄지지 않았다. 이에 기독교인의 낙태율과 인식이 비기독교인의 비율과 아무런 차이를 나타내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대통령 선거나 지방 선거, 국회의원 선거에서 굳이 낙태 문제를 다루지 않아도 선거에 아무런 영향이 없으니 교회를 향해 도움을 요청하거나 복음주의 성도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낙태에 대해 입장 표명을 하지 않아도 당선에 아무런 지장 없는 현실이다.
우리가 미국 복음주의 교회에 대해 배울 점은 그들은 낙태를 이슈화했을 뿐 아니라, 정치 지도자들이 복음주의 성도들의 지지를 받지 않으면 당선될 수 없는 거대한 영향력을 갖게 된 사실이다.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이루기 위해서는 생명이 존중받아야 한다.
이를 위한 정의로운 법 체계가 만들어져야 하고, 이를 만드는 올바른 국회 의원을 선출해야 한다. 더불어 집행하는 올바른 대통령과 도지사를 선출해야 하고 아울러 바로잡아 줄 올바른 대법관과 헌법 재판관을 선출해야 할 것이다. 성도는 하나님의 공의가 이뤄지는 땅이 되기 위해 적극 선거에 참여할 뿐 아니라, 훌륭한 기독교인 정치인과 법조인을 배출해 기독교적 가치관이 사회에 영향을 끼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비록 연약하지만 지난 50년간 생명의 소중함을 외쳐 온 프로라이프운동이 이제 조금씩 커지면서 미국과 같은 새로운 변화를 이루어 낼 것으로 확신한다. 낙태반대운동연합, 성산생명윤리연구소, 기독교생명윤리협회, 기독교윤리실천운동 등을 통해 기독교생명윤리운동이 이어져 왔다. 더욱 고무적인 것은 작년부터 한국 로잔위원회가 프로라이프와 함께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작은 태아의 모습으로 성육신 하신 4월 1일을 ‘생명의 날’로 지킨다. 4월 첫째 주일을 ‘생명 주일’과 ‘생명 주간’으로 지켜 온 교회가 함께 산모와 태아를 위한 기도회를 갖는 일은 기독교생명윤리운동이 교회를 중심으로 재출발하는 계기가 되리라 기대된다. 낙태를 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아이를 키울 수 있는 환경과 대안을 마련하는 일에 교회가 적극 앞장서야 할 것이다.
우리 기도의 외침 외에도 그동안 죽어간 수많은 태아의 비명과 신음 소리에 주님께서 귀 기울이시며 응원하신다. 합리적인 이성과 양심으로 솔직히 판단해 보자. 우리 모두 태아이지 않았는가? 모든 이목구비를 갖추고 심장이 뛰며 손가락을 빨고 발을 움직이는 인간 생명을 처참히 죽이는 것이 진정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도리인가? 그 어떤 동물도 낙태하지 않는데 유독 만물의 영장인 인간만이 낙태하는 이 안타까운 상황이 이제 막을 내리길 간절히 소망한다. 미국 연방 대법원의 결정처럼 우리나라 국회와 정부에 올바른 생명 존중의 입법을 강력히 촉구하며, 이를 위한 한국 교회의 변혁을 기도한다.
주
1) 로 대 웨이드 판결 이후 노마 매코비는 낙태하려 했던 아이를 낳았고, 한동안 낙태 반대 운동에도 앞장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죽기 직전 인터뷰에서 이는 낙태 반대 운동 단체의 매수에 의한 것이라고 폭로해 아직도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2) 미국 연방 대법관은 평생 종신직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2명의 사망한 대법관을 포함해 3명의 보수 대법관을 임명해 보수 대 진보의 비율을 6대 3으로 바꾸는 데 기여했다.
3) Tom L. Beauchamp, James F. Childress, Principles of Biomedical Ethics(Oxford University Press, 2001)에 의하면 생명 의료 윤리의 4원칙 중 ‘악행 금지의 원칙’이 두 번째로 언급되고 있지만, 고대 히포크라테스부터 생명 윤리의 가장 핵심적인 원칙은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말라(Do no harm!)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