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목사님, 지금 행복하십니까?
오늘날 우리는 매체를 통해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목회자의 탈진과 일탈 소식을 마주한다. 존경의 대상이었던 목회자의 권위는 실추돼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르고, 실망한 성도들은 교회를 떠나 ‘가나안 성도’의 대열에 합류한다. 한마디로 목회자는 지금 ‘위기’에 처해 있다. 이 거대한 파도 앞에서, 과연 목회자는 하나님께 받은 사명과 비전을 어떻게 건강하고 아름답게 감당할 수 있을까?
1. 숫자가 말해 주는 ‘괜찮지 않은’ 현실
10여 년 전, 필자가 본지의 편집장으로 섬길 때 일이다. 당시 기획했던 특집 중 지금까지도 뇌리에 깊이 남아 있는 주제가 있다. 바로 “목사님, 건강하십니까?”라는 제목으로 다뤘던 ‘목회자의 전인 건강’에 관한 내용이었다.
1 당시 350명의 목회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그 결과는 충격적이면서도 시사하는 바가 컸다. “정신적으로 건강한가?”라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의 88.86%가 ‘건강하다’고 답했다. 그러나 “현재 겪고 있는 구체적인 정신적 어려움이 있는가?”라고 다시 묻자, 무려 87.71%가 자신의 고통을 토로했다. 더 나아가 실제로 ‘정신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응답한 비율도 44.29%에 달했다. 이 ‘숫자의 모순’은 무엇을 말해 주는가? 많은 목회자가 실제로는 사역, 관계, 건강, 목회 정체성 등 산적한 문제들로 속이 타들어가면서도, 겉으로는 “나는 문제없다”고 스스로를 기만하거나 고통을 억누르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최근 2025년 한국 교회의 정신건강 문제인식 조사 결과(넘버즈 291호)에 의하면 500명의 목회자 응답자 중에서 33%가 주변에 정신질환이 있는 목회자가 있다고 대답했으며, 주변에 정신질환을 가진 목회자 사모(43%)와 목회자 자녀(44%)가 있다고 응답했다. 목회자 및 가정의 정신 건강 문제가 여전한 과제임을 보여 준다.
목회자는 ‘하나님의 종’이자 ‘그리스도의 대리인’이라는 거룩한 부르심을 입었지만, 동시에 사랑과 지지, 돌봄이 절실히 필요한 연약한 인간이다. 따라서 목회자의 자기 돌봄은 사치가 아니라, 교회를 살리기 위한 필수 생존 전략이다.
2. 분노한 목회자, 그 이면의 외로움
어느 날, 필자가 지도하는 목회학 박사과정의 한 제자가 연구실을 찾아왔다. 40대 중반의 나이로 중견 교회 부목사로 사역 중인 그는, 자신의 논문 주제로 ‘목회자의 자기 돌봄’을 다루고 싶다고 말했다. 필자는 그 제안이 무척 반가웠다. 필자 역시 신학대학원에서 ‘상담과 자기 돌봄’을 가르치며 오랫동안 천착해 온 주제였기 때문이다.
제자는 자신이 겪은 담임목사들에 대한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탁월한 학력과 설교 능력을 갖추었음에도, 당회에서 장로들과 타협 없이 다투거나 부목사들의 작은 의견조차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이며 날카롭게 반응하는 모습을 자주 봤다는 것이다. 그러나 제자의 결론은 비난이 아니었다. “교수님, 그분들이 얼마나 힘들고 외로우면 저러실까 싶습니다. 그 모든 날 선 반응의 뿌리에는 결국 ‘자기 돌봄의 부재’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제자를 돌려보내고 한참을 생각에 잠겼다. 그의 진단은 오늘날 한국 교회가 앓고 있는 깊은 통증을 정확히 찌르고 있었다. 비단 목회자뿐이겠는가? ‘더 잘 섬기고 싶다’는 우리의 가장 선한 열망이, 왜 역설적으로 우리 자신을 소진시키고 무너뜨리는가?
3. ‘행복’이라는 인테리어 vs ‘기쁨’이라는 기초
필자는 그 근본 원인 중 하나가 목회자가 구해야 할 ‘기쁨’(Joy) 대신 ‘행복’(Happiness)의 부스러기를 쫓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기쁨과 행복은 비슷해 보이지만 질적으로 다르다. 자극적인 인공 감미료에 길들여진 혀가 슴슴한 자연식의 참맛을 잃어버리듯, 세상이 주는 일시적 쾌락에 익숙해진 영혼은 하나님이 주시는 깊고 잔잔한 기쁨을 맛보지 못한다. 세상은, 그리고 때로는 목회 현장조차 우리에게 ‘거짓된 기쁨’을 속삭인다. 설교에 “은혜받았다”는 칭찬을 들을 때의 짜릿함, 집회의 성공이 주는 성취감 등은 분명 달콤한 ‘행복’이다. 그러나 이 행복은 다음 주 설교에 대한 부담감과 행사 실적에 대한 걱정으로 안개처럼 사라져 버린다. 반면, 성령의 열매인 기쁨(갈 5:22)은 상황과 조건을 뛰어넘어 우리 존재의 중심을 붙드는 힘이다(합 3:17-18).
이를 집에 비유해 보자. 세상의 행복은 집을 꾸미는 화려한 ‘인테리어’와 같다. 그러나 기쁨은 그 집을 떠받치는 ‘기초’다. 비난의 화살이나 재정난, 관계의 갈등 같은 인생의 폭풍우가 몰아칠 때, 우리를 지켜 주는 것은 화려한 사역의 결과물(인테리어)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던 단단한 영적 기초(기쁨)다. 많은 목회자가 무너지는 이유는 기초를 다지기보다 인테리어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아부었기 때문이 아닐까? 기초가 부실한 집의 가장이 가족을 위험에 빠뜨리듯, 기쁨의 기초가 흔들리는 목회자는 결국 교회 공동체 전체를 영적 침체로 이끌 수밖에 없다.
4. 회복을 향한 여정을 시작하며
이번 연재를 통해 필자는 목회상담학자로서의 전문성과 다양한 목회 경험을 바탕으로, 목회자의 전인 건강을 위협하는 실제적인 주제들을 다루고자 한다. 스트레스, 탈진, 우울, 불안, 죄책감과 수치심, 중독, 그리고 고독과 친밀함에 이르기까지, 목회 현장의 아픈 손가락들을 하나하나 짚어 볼 것이다. 이 글들은 단순한 위로를 넘어, 심리학적 통찰과 성경적 지혜가 어우러진 구체적이고 치유적인 대안을 제시할 것이다. 이 여정을 통해 독자들이 자신의 목회를 정직하게 돌아보고, 삶과 사역의 현장에 ‘건강한 자기 돌봄’을 적용하기를 소망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소진된 사역자가 다시 일어나,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기쁨으로 목회의 길을 걷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영광의 빛, 그 뒤의 그림자
목회자라는 직분은 세상에서 가장 영광스러우면서도, 동시에 가장 외로운 자리다. 많은 이들이 목회자를 신앙의 모범이자 선망의 대상으로 바라보지만, 그 이면에는 누구에게도 쉽게 털어놓지 못하는 깊은 고독과 중압감이 자리 잡고 있다. 목회자는 종종 영광의 빛 뒤에 가려진 심각한 스트레스의 피해자가 되곤 한다.
앞서 언급한 〈목회와신학〉 설문조사 결과는 이러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평소 스트레스를 얼마나 받습니까?”라는 질문에 ‘거의 받지 않는다’고 답변한 목회자는 전체의 11.14%(39명)에 불과했다. 반면, ‘스트레스가 심하다’고 호소한 응답자는 12.29%(43명), ‘어느 정도 받고 있다’는 응답자는 무려 76.29%(267명)에 달했다. 실로 전체 응답자의 88.58%가 스트레스에 노출된 셈이다. 이는 목회자가 결코 스트레스의 무풍지대에 있지 않음을, 아니 오히려 그 폭풍의 한가운데 서 있음을 통계적으로 보여 준다.
이 수치들이 말해 주듯, 뜨거웠던 사역의 열정이 어느 순간 감당하기 힘든 짐으로 변하고, 현장의 무게에 짓눌려 신음해 본 경험은 목회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었을 것이다. 물론 세상 누구도 스트레스와 위기가 없는 평탄한 삶을 살 수는 없다. 그러나 목회자가 겪는 스트레스는 일반인의 그것과는 결이 다르다. 영적 책임감과 정서적 노동이 뒤섞인 이 필연적인 스트레스를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과연 스트레스는 무조건 피하거나 제거해야만 하는 절대악(惡)일까?
나는 얼마나 스트레스 가운데 있는가?
1. 스트레스, 몸과 마음이 보내는 구조 신호
먼저 스트레스의 실체를 명확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일반적인 정의에 따르면 스트레스란 ‘적응하기 어려운 환경에 처할 때 느끼는 심리적·신체적 긴장 상태’를 뜻한다.
2 흔히 우리는 “짜증난다”, “불안하다”, “피가 마른다”는 말로 이 상태를 표현하곤 한다. 문제는 이 긴장이 해소되지 않고 장기화될 때 발생한다. 만성적인 스트레스는 고혈압이나 심장질환 같은 신체적 질병을 물론, 불면증과 우울증 같은 심리적 부적응을 초래한다. 따라서 목회자에게 스트레스는 단순한 기분 변화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목회자의 몸과 마음, 관계, 심지어 영성까지 뒤흔드는 전인적 도전이자 위협이다.
그렇다면 내가 위험 수위의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정확한 자기 인식은 치유의 시작이다. 다음의 구체적인 증상들을 통해 자신의 상태를 정직하게 점검해 보자.
- 식습관의 급격한 변화: 억제할 수 없는 과식을 하거나, 반대로 식욕을 완전히 잃는다.
- 의존적 행동의 증가: 커피 섭취량이 급격히 늘거나, 밤늦도록 의미 없는 인터넷 서핑에 몰두하고, 단 음식이나 특정 기호품으로 스트레스를 풀려는 횟수가 잦아진다.
- 주의집중 곤란 및 결정 장애: 설교 준비나 업무에 집중하기 어렵고, 사소한 결정조차 내리지 못해 하염없이 망설인다.
- 감정 통제의 어려움: 별것 아닌 일에 불같이 화가 치밀어 오르거나, 이유 없이 눈물이 쏟아진다.
- 해소되지 않는 만성 피로: 충분히 잠을 자도 몸이 무겁고 피로가 풀리지 않는다.
- 분노의 증가 및 억압: 가족이나 동료에게 지나치게 화를 내거나, 반대로 그 화를 억지로 삭이느라 속이 타들어 간다.
이러한 신호들은 목회자들에게는 더욱 미묘하고 복합적인 양상으로 나타난다. 예컨대, ‘지속적인 피로감’은 단순한 육체적 과로를 넘어, 기쁨으로 드렸던 새벽기도가 의무감으로만 느껴지거나 성도들을 향한 미소가 ‘가면’처럼 느껴지는 ‘영적 소진’으로 다가온다. ‘주의 집중 곤란’은 말씀 앞에 앉아 있어도 자꾸만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회피 행동으로, ‘감정 통제의 어려움’은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상처를 입히고 돌아서서 깊은 자괴감에 빠지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기억하라. 이처럼 몸과 마음이 보내는 신호들은 하나님과의 관계, 그리고 소중한 사람들과의 관계에 적신호가 켜졌음을 알리는 ‘영혼의 경고등’이다. 이 경고음이 들릴 때, 우리는 멈춰 서서 그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2. 목회자의 스트레스, 그 원인
기독 상담가 로이 오스왈드는 목회자가 경험하는 스트레스의 원인을 다각적으로 분석하며, 목회자를 소진시키는 주요 요인으로 다음의 항목들을 제시했다. 이 목록은 목회 현장의 복잡성을 여실히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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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할 모호
역할 갈등
역할 과부하
과도한 시간 요구
자기 돌봄 결여
지지 부족
지역 재이동
정치, 경제적 불확실성
도움 전문가 정체성
아마도 현장의 목회자라면 이 목록 뒤에 숨겨진 치열한 현실에 깊이 공감할 것이다. 신학교에서 만난 한 교육전도사의 사례는 이 목록들이 실제 삶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잘 보여 준다. 그는 학업과 사역을 병행하는 신학생이자, 동시에 임신한 아내와 어린 자녀를 둔 가장이었다. 월 100만 원 남짓한 사례비로 한 가정을 책임져야 하는 현실 앞에서 그는 자조 섞인 질문을 던지곤 했다. “과연 내가 마음 편히 쉬어 본 적이 있었던가?”
그의 삶은 오스왈드가 언급한 스트레스 요인들의 집약체였다. 첫째, 그는 ‘역할 과부하’와 ‘역할 모호’에 시달렸다. 교육부서 사역자, 신학생, 그리고 남편이자 아빠라는 다면적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면서, 정작 ‘나’라는 존재의 정체성은 희미해져 갔다. 둘째, 턱없이 부족한 사례비는 ‘경제적 불확실성’이라는 날카로운 스트레스가 돼 매일 그를 찔렀다. 이는 “내가 과연 가족을 끝까지 책임질 수 있을까?”라는 가장으로서의 근원적인 두려움으로 이어졌다. 여기에 마음을 터놓을 ‘지지 그룹의 부족’과 ‘자기 돌봄의 결여’가 더해진다면, 단순한 스트레스를 넘어 완전한 탈진(Burnout)으로 이어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이처럼 목회자가 겪는 스트레스는 단일한 이유가 아니라,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얽혀 한 개인을 서서히 벼랑 끝으로 몰아세우는 파괴적인 힘을 지닌다.
3. 스트레스의 파괴적인 결과
만약 이 교육전도사가 자신을 짓누르는 스트레스를 적절히 다루지 못한 채 방치한다면, 그의 삶은 어떻게 전개될까? 오스왈드는 스트레스가 초래하는 파괴적인 징후에 대해 엄중하게 경고한다.
가장 먼저 나타나는 변화는 ‘인지 능력의 저하’다. 강단에 서기 위해 말씀을 준비해도 도무지 집중이 되지 않고, 평소라면 능숙하게 처리했을 행정 업무조차 감당하기 벅찬 짐으로 느껴진다. 사고의 폭이 좁아지면서 ‘선택지의 상실’도 경험한다. 압박감에 갇혀 “지금 사역을 그만두는 것 외에는 답이 없다”는 식의 극단적인 이분법적 사고에 빠지기 쉽다.
가정이나 대인관계에서도 ‘유아적 퇴보’ 현상이 나타난다. 사소한 자극에도 짜증을 내거나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고, 그런 자신의 미성숙한 모습에 다시금 깊은 좌절감을 느끼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더욱 위험한 것은 ‘파괴적 관계’로의 도피다. 고갈된 정서적 에너지를 잘못된 방식으로 채우려다 성적 일탈이나 부적절한 관계의 유혹에 취약해질 수 있다.
결국 이 모든 과정은 만성적인 피로와 우울, 그리고 원인을 알 수 없는 신체적 질병으로 이어져 그의 몸과 마음, 영혼을 서서히 잠식한다. 관리되지 않은 스트레스는 우리의 존재를 남김없이 태워버리는 탈진으로 이끄는 매우 위태로운 다리와 같다.
다시, 일어서는 지혜
1. 관점의 전환: 스트레스를 적으로 만들지 말라
그렇다면 이 깊은 스트레스의 늪에서 우리는 어떻게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스트레스는 무조건 나쁘다’는 오래된 편견을 깨뜨리는 것이다. 흔히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최신 심리학 연구들은 이러한 통념에 반기를 든다. 건강심리학자 켈리 맥고니걸의 연구는 우리에게 놀라운 전환점을 시사한다. 그녀에 따르면, 사람을 병들게 하는 것은 스트레스 자체가 아니라 “스트레스가 해롭다”고 믿는 ‘믿음’이다. 어떤 렌즈를 끼고 보느냐에 따라 스트레스는 독이 되기도 하고 약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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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해석이다. 스트레스가 나쁘다고 여겨 무조건 피한다고 해서 스트레스가 사라질까? 결코 그렇지 않다. 목회라는 사역의 특성상, 스트레스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자 ‘거룩한 부담’이다. 더 나아가 맥고니걸의 주장대로 의미 있는 삶일수록 스트레스가 많은 법이다. 따라서 스트레스 없는 목회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맥고니걸의 제안처럼, 스트레스가 주는 위협(Threat)을 도전(Challenge)으로 재정의해야 한다. 즉, 스트레스를 나를 무너뜨리는 적으로 규정하지 말고, 삶을 성장시키는 거룩한 동력으로 삼으라는 것이다.
이 원리를 앞선 교육전도사 사례에 적용해 보자. 당장 이번 주 설교 준비가 막막하게 느껴질 때, “아, 도망치고 싶다. 나는 왜 이 모양일까”라는 위협 반응 대신, 이렇게 생각을 전환해 보는 것이다. “지금 내 심장이 뛰고 식은땀이 나는 건, 하나님이 이 말씀을 잘 선포하라고 내 몸에 에너지를 공급해 주시는 신호야. 이것은 ‘도전 반응’이다!” 재정적인 압박으로 아내와 다툴 때도 “이 가난은 저주야”라고 체념하는 대신, “이 어려움은 우리 가정이 하나님만 의지하도록 훈련하시는 과정이야”라고 상황을 재해석하는 것이다.
이처럼 관점을 바꿀 때, 우리 뇌는 흥미롭게도 성과를 높이는 호르몬(옥시토신)을 분비해 더 용감하게 행동하게 하고, 고난으로부터 배우게 한다. 이것이 맥고니걸이 말한 ‘용기의 생물학’(The biology of courage)이다. 물론 벼랑 끝에 선 목회자에게 이런 생각의 전환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기억하자. 우리 뇌와 몸을 이렇게 창의적으로 설계하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시다. 스트레스의 노예가 되어 끌려다니기보다, 하나님이 주신 창의성을 발휘하여 스트레스를 친구로 삼아 보면 어떨까?
예수님께서는 불치병에 걸린 아들로 인해 평생 극심한 스트레스 속에 살았던 한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 9:23). 어쩌면 스트레스는 우리가 상황에 함몰되는지, 아니면 상황 너머의 하나님을 바라보는지를 가늠하는 ‘믿음의 리트머스 시험지’인지 모른다.
2. 고립이 아닌 연결로: 약함이 능력이 되는 신비
앞서 우리는 스트레스를 위협이 아닌 도전으로 바라볼 때, 성장의 동력이 된다고 했다. 그러나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보자. 하나님은 스트레스를 통해 우리를 홀로 두지 않고, ‘고립’이 아닌 ‘연결’의 자리로 이끄신다.
흔히 스트레스 상황에서 코르티솔(Cortisol)만 분비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우리 뇌는 놀랍게도 옥시토신(Oxytocin)이라는 호르몬을 함께 분비한다. 코르티솔은 심박수 증가와 혈압 상승 등 신체 반응을 유도해 위기 상황에 즉각 대처하도록 에너지를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동시에 분비되는 옥시토신은 ‘사랑의 호르몬’ 혹은 ‘포옹 호르몬’으로 불리며, 뇌의 사회적 기능을 관장하고 타인과의 유대감을 강화하여 불안을 잠재우는 역할을 한다.
즉, 스트레스를 받을 때 옥시토신이 함께 분비된다는 것은, 고통의 순간에 혼자 끙끙 앓지 말고 누군가와 연결되어 위로를 얻으라는, 우리 몸에 심겨진 하나님의 창조 섭리다. 스트레스는 우리를 사회적 관계로 인도하고, 타인의 온기를 찾게 만드는 강력한 생물학적 초대장인 셈이다.
이 놀라운 원리를 앞선 교육전도사의 삶에 적용해 보자. 지금까지 그는 ‘가장’이자 ‘사역자’라는 무게감 때문에 모든 짐을 홀로 짊어지려 했을 것이다. 아내에게조차 “나 힘들다”는 말을 하지 못한 채, 자신이 져야 할 책임이라고 믿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생물학적으로나 영적으로나 가장 해로운 반응이다.
지금 그에게 필요한 가장 위대한 용기는 자신의 연약함을 정직하게 개방하는 것이다. “여보, 나 사실 너무 힘들어. 당신의 기도가, 당신의 도움이 필요해.” 이 솔직한 한마디가 뇌 속의 스위치를 켠다. 스트레스 호르몬을 관계와 치유의 호르몬으로 바꾸는 순간이다. 실제로 옥시토신은 스트레스로 지친 심장 세포를 재생하고 보호하는 기능을 한다.
결국, 타인을 돌보느라 정작 자신은 돌보지 못했던 사역자가 먼저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손을 내미는 것, 그 ‘거룩한 의존’이야말로 나 자신을 살리고 가정을 회복시키는 가장 전인적인(holistic) 스트레스 대처법이다.
3. 가장 완벽한 모델: 예수님의 자기 돌봄
스트레스가 우리를 짓누르는 이유는 믿음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을 돌보는 일에 소홀했기 때문에 그 파괴력이 증폭되는 것이다. 따라서 자신을 건강하게 돌보는 행위야말로 스트레스를 극복하고 사역을 완주하기 위한 가장 근본적이고 지혜로운 전략이다.
가장 완벽한 모델은 예수님이시다. 완전한 하나님이신 동시에 완전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이라고 스트레스가 없었을까? 복음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예수님은 복음 전파와 제자 양육, 끊임없이 몰려드는 병자들로 인해 식사할 겨를조차 없는 살인적인 일정을 소화하셨다. 여기에 바리새인들을 비롯한 종교지도자들의 집요한 공격과 감시는 엄청난 심리적 압박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결코 스트레스의 노예가 되거나 상황에 지배당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하늘의 지혜와 철저한 자기 관리로 그 무게를 감당하셨다. 예수님의 사역 속에 숨겨진 ‘자기 돌봄의 원리’를 배워 보자.
1) 의도적인 물러남과 기도의 리듬(Spiritual Retreat)
예수님은 사역의 절정에서도 오히려 군중을 떠나셨다. 새벽 미명이나 밤늦은 시간, 주님은 ‘한적한 곳’으로 물러가 기도하시며,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를 그 무엇보다 최우선으로 두셨다(마 14:23; 막 1:35; 눅 5:16). 목회자에게도 이 시간이 절실하다. 주중 단 몇 시간이라도 사역과 사람으로부터 자신을 분리하여 오직 하나님 앞에만 머무는 ‘거룩한 고독’의 시간을 의도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이는 개인의 성향이나 기질의 문제가 아니라, 고갈된 영적 에너지를 위로부터 공급받기 위한 필수적인 ‘생존 전략’이다.
2) 혼돈 속에서의 쉼(Rest)
제자들이 공포에 질려 광풍이 몰아치는 갈릴리 바다 한복판에서 떨고 있을 때, 예수님은 홀로 배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깊은 잠에 드셨다(막 4:38). 목회학 교수 커크 존스는 이 장면을 두고 예수님은 배 뒤편에서 자기를 돌보고 계셨다고 통찰력 있게 해석한다.
5 이는 외부의 혼란에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내면의 평온을 유지하신 예수님의 영적 상태를 보여준다. 사역의 폭풍 속에서 의도적으로 멈추어 쉬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해결되지 않는 문제 앞에서 전전긍긍하기보다, “이 문제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라고 고백하며 잠시 눈을 감고 깊이 호흡을 내쉬어 보라. 이 짧은 ‘거룩한 멈춤’이 혼돈에 삼켜지지 않도록 당신을 지켜 줄 것이다.
3) 분명한 경계 설정(Boundaries)
예수님은 모든 병자를 고치거나 모든 요청에 응답하지 않으셨다. 때로는 억지로 자신을 왕으로 삼으려는 군중을 피해 떠나셨고(요 6:15), 자신을 찾는 이들을 뒤로한 채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막 1:38)라고 하시며 사명의 우선순위를 분명히 하셨다. 이는 자신의 사명에 집중하기 위한 명확한 경계 설정이었다. 목회자 역시 예수님처럼 ‘거룩한 거절’(No)을 배울 용기가 필요하다. 감당할 수 없는 요구 앞에서 자신의 한계를 겸손히 인정하고, 가족과의 시간이나 영적 건강을 침해하는 요청에는 단호하게 선을 그어야 한다. 이는 결코 이기적인 행동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을 끝까지 완수하기 위한 가장 거룩하고 책임감 있는 자기 관리다.
맺으며: 나를 돌보는 것은 거룩한 책임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목회자의 스트레스 원인과 파괴적인 결과에 주목하며, 이를 창조적으로 다루기 위한 지혜를 모아 보았다. 우리는 스트레스를 위협이 아닌 도전으로 재정의하고, 고립을 넘어 연결로 나아가는 전략,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자기 돌봄 모델을 통해 그 가능성을 확인했다. 비록 이러한 제안들이 바쁜 목회 현장에서 실천하기에는 쉽지 않은 과제일지라도, 이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사명의 필수 조건이다. 현재 깊은 스트레스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 모든 사역자에게 이 원리들이 분명한 탈출구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우리가 앞서 살펴본 교육전도사는 어떻게 되었을까? 만일 그가 자신의 스트레스를 외면한 채 사역의 짐만 계속 짊어졌다면, 자신과 가족, 그리고 섬기는 교회마저 위태로워졌을지 모른다. 그러나 다행히 그는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용기를 내어 주변에 도움을 요청했다. 아내뿐만 아니라 가족, 동료, 지도교수에게 자신의 상황을 솔직하게 개방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생각지도 못한 도움의 손길을 통해 재정적 압박이 해소됐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공동체의 깊은 위로와 지지를 경험했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의도적인 쉼을 확보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지혜롭게 구분하며 삶의 무너진 질서를 다시 세울 수 있었다.
자신의 영혼을 살피고 슬기롭게 돌보는 것은 교회를 살리는 길이며, 나아가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구현하는 가장 근본적인 순종이다. 오늘, 지친 당신의 머리를 누일 ‘배 고물’은 어디인가? 당신이 홀로 주님을 대면할 ‘한적한 곳’은 어디인가? 그곳을 찾는 용기, 그리고 잠시 물러서는 거룩한 멈춤을 통해, 소진되지 않는 열정의 샘이 바로 오늘 당신의 삶에서 다시 솟아나기를 소망한다.
성찰과 실천을 위한 질문
1. [자가 진단] 최근 나의 몸과 마음, 그리고 영혼이 보내는 ‘경고등’(수면 패턴의 변화, 식욕 부진/과식, 감정 조절의 어려움 등)은 무엇인가? 나는 그 신호를 단순한 피로로 치부하여 무시하고 있는가, 아니면 돌봄이 필요하다는 하나님의 사인으로 해석하고 있는가?
2. [관점의 전환] 스트레스를 나를 무너뜨리는 ‘위협’이 아닌, 성장시키는 ‘도전’으로 재정의하기 위해, 위기의 순간 나 자신에게 들려줄 ‘새로운 믿음의 언어’는 무엇인가? (예: “이것은 재앙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거룩한 도전이다.”)
3. [구체적 적용] 예수님이 보여 주신 자기 돌봄의 원리(의도적인 물러남, 혼돈 속의 쉼, 분명한 경계 설정) 중, 지금 나에게 가장 시급하고 필요한 한 가지는 무엇인가? 이번 한 주간, 구체적으로 언제, 어디서, 어떻게 그 시간을 확보할 것인가?
주
1) “특집: 목사님, 건강하십니까?” , 〈목회와신학〉 2012년 9월호, pp. 24-97.
2) 스트레스(Stress)라는 용어와 개념을 학문적으로 체계화한 학자는 한스 셀리에로, 그는 스트레스를 “정신적, 육체적 균형을 깨뜨리는 자극에 맞서 안정 상태를 유지하려는 신체의 불특정 반응”으로 정의한다: Hans Selye, The Stress of Life (McGraw-Hill, 1956).
3) 로이 오스왈드(Roy Oswald)는 미국의 목회자이자 컨설턴트로, 특히 목회자의 자기 돌봄과 리더십 분야에서 많은 저술을 남겼다: 로이 오스왈드, 《목회자의 자기관리》, 김종환 옮김(세복, 2000).
4) 켈리 맥고니걸, 《스트레스의 힘》, 신예경 옮김(21세기북스, 2020).
5) Kirk E. Jones, Rest in the Storm: Self-Care Strategies for Clergy and Other Caregivers, Judson Press, 20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