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와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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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 2022년  08월호 에스겔 2:1-10,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바르고 힘센 설교를 꿈꾸는 채경락 목사의 설교 클리닉(8)

듣든지 아니 듣든지(겔 2:1-10)

에스겔 2:1-10은 하나님이 에스겔을 선지자 혹은 말씀 사역자로 세우시는 장면이다. 1절부터 10절 사이의 본문에 “듣든지 아니 듣든지”(5절, 7절)라는 문구가 2번 나온다. 설교란 청중이 잘 들어도 쉽지 않은 일인데, 듣지 않을 가능성이 많은 청중이니 에스겔의 앞길이 녹록하지 않다. 

심지어 하나님은 “패역한 백성, 나를 배반하는 자에게”(3절) 그를 보낸다고 선언하신다. “얼굴이 뻔뻔하고 마음이 굳은 자”(4절)와 가시와 찔레, 전갈(6절) 이야기까지 나온다. 

“그 얼굴을 무서워하지 말지어다”(6절)라고 당부하시는 걸 보면 백성이 에스겔에게 심히 무섭게 다가올 모양이다. 그럼에도 가서 말씀을 전하라는 묵직한 사명의 본문이다.

사도 바울을 통해 주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딤후 4:2)라는 당부가 떠오른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마 10:16)라고 하신 말씀도 떠오른다. 설교란 이리가 양 앞에서 해도 떨리고 쉽지 않은 법인데 양이 이리 떼 한가운데서 하라니, 설교자의 걸음은 예나 지금이나 쉽지 않은 모양이다. 설교자로서 묘하게 위로가 되는 것도 같다.

본문은 기본적으로 말씀 사역자에게 주시는 말씀이다. 적절한 각도 조절과 적용을 거치면 모든 성도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본문의 온도만큼 뜨거운 말씀을 기대한다.

설교A. 소명자

〈설교 구상〉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백성을 향한 말씀의 소명을 주시는 본문이다. 설교 주제는 소명자, 설교의 목표는 우리도 하나님의 소명을 받은 자로서 세상을 향해 담대함을 품게 하는 것으로 잡았다. 

대지 흐름은 먼저 소명자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임을 선포한다. 둘째, 소명자는 듣지 않는 자에게 보냄받은 자임을 확인한다. 마지막으로 말씀을 전할 때 두려워하지 말라고 권면했다.

서론: 소명자는 어떤 사람인가?

어느 날 대통령이 찾아와서 나를 외교관으로 임명하면 기분이 어떨까요? 무척 당황스럽겠지요. 관련 공부도 하지 않았고 마음의 준비도 되지 않았는데, 갑작스럽게 임명이 된다면 심히 당황스러울 테지요. 그런데 오늘 에스겔에게 그 일이 일어납니다. 온 세계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그를 말씀의 종으로 세우십니다. 에스겔만이 아니라 우리에게도 그리하십니다. 에스겔을 부르신 말씀에 담긴 메시지가 무엇일까요?

    1.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
하나님은 우리를 말씀 전하는 자로 부르십니다. 4절에 말씀하시길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 
주께서 에스겔을 찾아오신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소명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소명자는 자기 생각이나 경험을 말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때로 그것이 더 효과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설교자도 소그룹 리더도 나의 경험과 생각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2. 듣지 않는 자에게 전하라
3절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패역한 백성, 나를 배반하는 자’로 소개합니다. 4절은 ‘얼굴이 뻔뻔하고 마음이 굳은 자’라고 부릅니다. 심지어 6절은 ‘가시와 찔레’ 같은 자로 소개합니다. 말씀을 듣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소명자가 상대하는 사람은 말씀을 향해 마음이 열린 자들이 아니고 오히려 듣지 않는 자들입니다. 심지어 말씀 앞에 욕을 하거나 위협을 하는 자도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바로 그런 사람에게 보내셨습니다. 복음을 들으려 하지 않는 가족과 형제, 이웃에게 보내셨습니다. 소명자는 그런 사람입니다.

    3. 그러니 전할 때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은 말씀을 전할 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6절). 왜냐하면 하나님이 보내셨기 때문입니다. 3절에 분명히 선포하십니다. “내가 너를 보내노라.” 5절에 패역한 백성이지만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보낸 자임을 알아보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복음의 도구로 부르셨습니다. 우리가 전할 대상은 여전히 말씀에 귀를 막고, 때로 위협을 가하는 자들입니다. 
하지만 두려워하지 않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고 세우셔서 말씀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가진 명예를 반드시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결론: 우리는 소명자로 부름받았다
하나님이 우리를 소명자로 부르셨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오늘도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를 기도합니다.
 

설교 이해

소명자가 누구인지를 묻고 답하는 설교다. 보낼 사(使), 사명자도 가능하겠지만, 설교자는 부를 소(召), 소명자를 썼다. 단순 어감일 수 있지만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사명이 일에 초점을 둔다면 소명은 사람에게 무게가 실린다는 생각이 든다. 소명자가 해야 할 일, 혹은 소명자에게 요구되는 태도를 중심으로 세 가지를 선포한다.

내 생각이나 경험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 듣지 않는 자에게 전하라, 전할 때 두려워하지 말라. 대지1이 선포의 내용에 관한 것이라면, 대지2와 대지3은 태도에 방점이 있다. 듣는 이의 반응에 휘둘리지 말고 담대하게 주의 말씀을 선포하라는 메시지다.

1.     대지 문장을 최대한 선명하게 다듬으라
대지 문장 퇴고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다듬고 또 다듬어야 한다. 청중에게 가장 직접적으로 선포되는 문장이 대지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설교에 집중하는 청중이라 해도 말씀 전체를 기억할 수는 없다. 한 문장, 혹은 서너 문장의 대지를 기억할 뿐이다. 그러니 설교자로서 여기에 선명한 메시지를 담아야 한다. 설교를 필기하는 분도 많다. 필자의 성도 중에도 꽤 많은 분이 있다. 특히 대지가 선포될 때 많은 분이 고개를 숙이고 필기하는데, 이는 성도들에게도 대지 문장의 중요성이 각인된다는 말이다. 중요한 만큼 최대한 선명하게 다듬어 전하는 것이 지혜다. 내용을 그대로 살리면서 대지 문장을 아래와 같이 다듬을 수 있다.

    소명자는 어떤 사람인가?
대지1.    내 생각이 아니라 주의 말씀을 전하라
대지2.    듣지 않는 자에게도 성실하게 전하라
대지3.    주눅 들지 말고 담대하게 전하라

의미를 선명하게 하는 방법 가운데 ‘not A but B’ 형식도 꽤 효과적이다. 설교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라고 했는데, ‘not A’를 넣어 “내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 혹은 “내 생각이 아니라 주의 말씀을 전하라”라고 선포하면 더 선명하다. 세 번째 대지 “전할 때 두려워하지 말라”도 “주눅 들지 말고 담대하게 전하라”로 다듬으면 더 선명할 것이다.

2.     우산 질문과 대지의 자연스러운 조합을 확인하라
필자가 거듭 강조하지만, 문법적으로 대지는 우산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내용의 조화도 중요하지만, 문법적으로 질문과 대답이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 

설교 초두에 “소명자는 어떤 사람인가?” 하고 물었는데 정작 대지 문장은 명령형으로 주어진다. 박자가 어긋나는 느낌이다. “어떤 사람인가?”라고 물었을 때 자연스러운 대답은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의 형태다. 대지 문장을 명령형으로 가져오려면 우산 질문을 그에 맞게 바꾸면 된다.

    소명자에게 주시는 말씀은 무엇인가?
대지1.    내 생각이 아니라 주의 말씀을 전하라
대지2.    듣지 않는 자에게도 성실하게 전하라
대지3.    주눅 들지 말고 담대하게 전하라

혹은 우산 질문을 고정한 채 대지 문장을 바꿀 수도 있다. 우산 질문이 “누구인가?”를 물었으니 대지는 ‘이러이러한 사람’이라고 대답하는 것이다.

    소명자는 누구인가?
대지1.    내 생각이 아니라 주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
대지2.    듣지 않는 자에게도 성실하게 전하는 사람
대지3.    주눅 들지 않고 담대하게 전하는 사람

소명자 앞에 ‘참된’ 혹은 ‘주께서 찾으시는’과 같은 수식어를 넣을 수도 있다. “참된 소명자는 누구인가?” 혹은 “주께서 찾으시는 소명자는 누구인가?”라고 물으면 설교에 보다 힘이 실린다. 단순 선포가 아니라 그렇게 돼야 한다는 거룩한 다그침이 될 수 있다.

3.     유사한 대지는 하나로 통합하라
내용이 유사한 대지가 있다면 하나로 묶는 것이 원칙이다. 수사학에서 강조 원칙 가운데 하나가 메시지의 진전(progress)이다. 메시지가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말이다. 고인 물이 썩듯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맴도는 대지는 청중의 마음을 닫을 수 있다. 필자의 판단으로는 대지2와 대지3이 그러하다. “듣지 않는 자에게 전하라”라는 권면 속에는 “전할 때 두려워하지 말라”라는 메시지도 포함된다. 필자가 위에서 대지를 수정하면서 대지2에 ‘성실하게’를 넣었는데 두 대지 사이에 고유한 메시지를 확보하려는 의도였다. 그렇지만 여전히 한계는 보인다. 본문을 묵상하면서 필자는 대지3에 하나님의 사랑을 담아내기를 추천한다.

    소명자에게 주시는 말씀은 무엇인가?
대지1.    내 생각이 아니라 주의 말씀을 전하라
대지2.    듣지 않는 자에게도 담대하게 전하라
대지3.    하나님의 사랑으로 전하라

설교자가 두려움을 이기기를 강조하는 것은 ‘패역한 백성, 나를 배반하는 자’ 등의 표현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표면적으로 매우 거칠고 부정적인 표현들이지만, 역설적으로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 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런 패역한 백성에게 하나님은 왜 선지자를 보내실까? 그렇게 얼굴이 뻔뻔하고 마음이 굳은 자에게 왜 귀한 선지자를 보내실까? 그들을 여전히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포기할 줄 모르시는 하나님의 사랑이다. 말씀 사역자는 단지 말씀을 전함을 넘어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이 뜨거운 마음을 전할 수 있어야 한다.
 

설교B. 누가 구원받은 자입니까?


〈설교 구상〉

구원의 ‘이미’와 ‘아직’의 구도를 선포하는 설교다. 자신이 구원받은 자인지를 고민하는 성도에게, 그 고민과 답은 이미 자신 안에 있음을 확인시키려 한다. 본문의 메시지를 소명, 견고, 사랑으로 구분하고 구원의 전인적인 차원을 은밀하게 제시하려 한다. 결론부에서 구원을 확인한 자로서 선지자적 사명을 일깨우고 세상을 향해 담대히 나아가야 함을 선포하는 흐름이다.

서론: 누가 구원받은 자일까요?
누가 구원받은 자일까요? 교회에 출석한 지 오래됐고, 직분도 받았지만 나의 삶을 보면 거룩함이란 찾아보기 어려운데, 나는 과연 구원받은 사람일까요? 본문을 통해 구원의 시금석, 우리 구원의 확실성이 분명히 드러나기를 소망합니다.

    1.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 여러분이 구원받은 자입니다 - 소명
하나님의 부르심이 우리의 구원을 확인합니다. 1-3절에 반복되는 문구가 있는데 바로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말씀하신다는 문구입니다: 그가 내게 이르시되, 그가 내게 말씀하시되, 내게 이르시되. 하나님이 친히 에스겔을 부르십니다. 이것이 에스겔이 구원받은 주의 백성임을 드러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 음성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메시지가 있습니다.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지침과 방향, 즉 소명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주시는 소명이 구원의 증표입니다.

    2. 세상을 깨우는 자가 구원받은 자입니다 - 견고
에스겔은 세상을 깨우는 자로 부름받았습니다. 선지자가 전하는 메시지는 백성에게 거리끼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패역한 족속이기 때문입니다. 뻔뻔하고 마음이 굳은 자, 고집이 세고 완고한 자들입니다. 그러나 선지자는 괘념치 않고 본분에 충성합니다. 듣든지 아니 듣든지 하나님께 받은 말씀을 그대로 전합니다.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께 부름 받은 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를 통해 패역한 백성 가운데도 하나님의 선지자가 존재합니다. 이렇게 존재만으로 세상을 깨우는 자들, 그들이 바로 구원받은 자들입니다.

    3.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자가 구원받은 자입니다 - 사랑
이 세상에 많은 소리가 있지만,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만을 사랑하고 찾습니다.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이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헐떡거리며, 하나님이 먹여 주시는 것에 입을 벌립니다. 그로부터만 참된 힘과 세상을 향한 담대함을 얻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자들을 또한 사랑하셔서 그들에게 다시 말씀을 주십니다. 일반 계시만이 아니라, 특별 계시를 주십니다. 하나님의 책을 주십니다. 말씀의 은혜를 풍성히 내려 주십니다.

결론 : 하나님을 증언하는 자로 살아가길
우리에게도 이런 은혜가 있지 않습니까? 부르심, 견고함, 사랑이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구원받은 자입니다.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택하심과 완전한 사랑을 받은 자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감격하며 오늘도 이 하나님을 세상에 증언하고 깨우는 자로 살아가시길 축원합니다.
 

설교 이해

구원의 확신을 심어 주려는 의도의 설교다. 주의 말씀을 받아 패역한 백성에게 선포하는 어려운 사명을 받았는데, 설교자는 이 모든 것이 구원의 증표라고 선언한다. 메시지의 스케일이 과도하게 축소되는 느낌이다. 비유하자면, 목사 임직식에서 오늘 목사로 임직받는 것이 우리가 구원받은 주의 백성임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선포하는 격이다. 그 어떤 직분보다 그 어떤 사명보다 우리가 구원받은 주의 자녀라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메시지라고 할 수 있으나, 조금은 넘치는 파격이라는 생각도 든다.

1.     앵커와 마그넷의 원리를 잘 실천하는 설교다
형식적인 측면에서 매우 정갈하게 준비된 설교다. 우산 질문과 대지가 문법적으로 질문과 대답의 관계를 견고하게 지키고 있다. 설교를 있는 그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누가 구원받은 자일까요?
대지1.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 여러분이 구원받은 자입니다
대지2.    세상을 깨우는 자가 구원받은 자입니다
대지3.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자가 구원받은 자입니다

우산 질문은 누가 구원받은 자인지를 묻고, 각 대지가 어떤 사람이 구원받은 자인지를 선포한다. 질문과 대답이 견고하게 연결됨으로써 설교를 듣는 청중에게 선명한 메시지가 전달될 것이다. 

각 대지 말미에 “~자가 구원받은 자입니다”라는 문구가 후렴구처럼 반복되는데, 이를 두고 브라이언 채플(Bryan Chapell)은 앵커 절(anchor clause)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각 대지의 고유한 부분을 마그넷 절(magnet clause)이라고 부른다. 앵커 절은 닻이라는 이름대로 각 대지가 오늘 설교의 중심 메시지로 견고하게 닻을 내리게 한다. 마그넷 절을 통해 대지가 진전되지만 앵커 절을 통해 설교는 구원받은 자가 누구인지의 이슈로 돌아가고 또 돌아간다. 단순하지만 초점 있는 메시지를 전하는 데 유용한 도구다. 이 경우 후렴구를 생략함으로써 대지를 단축할 수도 있는데 다음과 같다.

    누가 구원받은 자일까요?
대지1.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 여러분
대지2.    세상을 깨우는 자
대지3.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자

대지1은 ‘여러분’이라는 2인칭을 쓰고, 대지2와 대지3에는 ‘자’라는 일반 지시어를 사용하는데 설교자의 의도가 무엇일까?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지만, 세상을 깨우고 말씀을 사랑하는 자리까지 나가지 못하는 경우에 대한 성찰로 보인다. 대지3이 매우 기술적이라고 생각하는데, 8절에서 주님이 에스겔에게 말씀의 두루마리를 먹으라고 하시는 대목을 설교자는 말씀 사랑으로 해석한다. 세상을 향해 말씀을 선포하기 전에, 내가 먼저 말씀을 사랑하고 지켜야 한다는 뜨끔한 권면이다.

2.     본문의 일차 메시지에 무게를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설교의 기본은 본문의 의미를 전하는 것이다. 적용의 차원이 있지만, 본문에서 저자가 의도하는 메시지에 중심을 두는 것이 설교의 기본이다. 목회적인 판단이 가미될 수 있지만, 그때도 본문 메시지의 중심성을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된다. 그런 차원에서 오늘 본문에서 구원의 확실성 혹은 구원의 확신을 선포하는 것이 과연 저자의 의도에 부합할까? 해석과 적용의 연쇄를 통해 본문에서 구원의 확신 메시지를 이끌어낼 수는 있지만, 거기에 메시지의 초점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본문이 선포하는 일차 메시지는 사명이다.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주고자 하시는 것은 구원의 확신이 아니라 사명이다. 패역한 백성에게 가서 주의 말씀을 선포하라는 사명 선언이다. 그런 차원에서 오늘 본문에서 구원의 확신을 선포하는 것은, 과도한 겸손이다. 본문이 성도의 기본기를 점검한다면 설교 역시 구원의 확신과 같은 기본기를 다져야겠지만, 본문이 사명을 선포한다면 설교자도 사명을 선포하는 쪽이 합당하다. 사명 쪽에 좀 더 무게를 둔 대지를 구상해 보면 다음과 같다.

    우리는 누구인가?
대지1.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
대지2.    말씀으로 세상을 깨워야 할 자
대지3.    먼저 말씀을 진심으로 사랑해야 할 자

“우리는 누구인가?”로 물었지만 “우리는 누가 돼야 하는가?” 혹은 “우리는 어떤 사람이 돼야 하는가?”의 의미도 포함된다. 대지1이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의 신분에 집중한다면, 대지2와 대지3은 우리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 우리의 사명을 선포한다. 

연결하면 우리는 주의 부르심을 받은 성도로서(신분), 주의 말씀을 선포해 세상을 깨워야 하는데(사명), 말씀으로 세상을 깨우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그 말씀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그 안에 푹 잠겨야 한다(자격)는 메시지다. 대지 사이에 미세한 결의 차이가 보이지만 이 정도는 단일한 우산 질문으로 충분히 엮어낼 수 있다.

3.     성도에서 교회로 대상을 옮길 수도 있다
같은 내용을 교회에도 적용할 수도 있다. 우산 질문을 “우리는 누구인가?”에서 “교회인 우리는 누구인가?”로 치환하면, 에스겔의 사명은 성도 개인을 넘어 공동체로서 교회의 사명이다. 개인화의 폐해를 감안할 때 교회에 초점을 두는 것이 지혜롭다는 생각도 든다.

    교회인 우리는 누구인가? 교회인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무엇인가?
대지1.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공동체
대지2.    말씀으로 세상을 깨울 공동체
대지3.    말씀대로 사는 말씀의 공동체

대지3의 표현을 조금 바꾸었는데, 말씀의 실천이 교회 안에서 먼저 일어나야 함을 강조한다. 산상수훈에서 주님은 우리의 착한 행실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빛이어야 한다(마 5:16)고 말씀하셨다. 같은 주님이 요한복음에서는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모습을 통해 모든 사람이 우리가 주님의 제자인 줄 알리라(요 13:35)고 말씀하셨다. 성도 개인의 착한 행실도 귀하지만, 교회 공동체가 착한 공동체가 되는 모습이 더욱 강력한 힘이 있을 것이다.

같은 본문, 다양한 설교

설교A와 설교B는 공히 사람을 설교의 중심에 세운다. 설교A는 소명자를, 설교B는 구원받은 성도를 선포한다. 언제나 그러하듯 하나님을 메시지의 중심에 세울 수도 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묻고 본문을 통해 하나님을 선포하는 것이다.

    본문에 나타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대지1.    우리에게 말씀 주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대지2.    거부하는 백성에게도 말씀 주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대지3.    결코 백성을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에스겔이 하나님의 소명을 받는 본문이지만, 동시에 하나님이 백성을 위해 에스겔을 보내시는 본문이다. 

에스겔의 사명 이전에 하나님의 일하심이다. 하나님은 기술자나 정치인이 아니라 말씀 사역자를 보내신다. 백성에게 꼭 필요한 것은 그 무엇보다 말씀이라 판단하셨기 때문이다. 

패역한 백성이라 부르면서도 에스겔을 보내시는 것은 비록 못난 백성이지만 그들에게도 생명의 말씀 전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패역한 백성이라는 언어는 백성의 허물을 지적하면서, 동시에 그럼에도 그 백성을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열심을 선포한다. 결코 식지 않는 하나님의 열심이 패역한 백성을 구원한다. 이것이 복음 아닌가.

소명자 혹은 사명자에게 요구되는 자세를 보다 간명한 언어로 선포하는 설교도 가능하다. 대지 언어는 간명한 것이 좋다. 특히 사명자에게 요구되는 자세를 정초하는 설교라면 특히나 선언적이면서도 간명한 뜨거운 언어가 요긴하다.

    소명자에게 요구되는 자세는 무엇인가?
대지1.    말씀을 향한 신실함
대지2.    상황을 핑계하지 않는 담대함
대지3.    사람을 향한 따뜻함

신실함, 담대함, 따뜻함이라는 문구가 성도들의 가슴에 새겨지기를 의도하는 설교다. 내용은 설교A와 유사하다. 나의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함을 말씀을 향한 신실함으로 표현했고, 듣지 않는 자에게도 전하라는 메시지를 상황을 핑계하지 않는 담대함으로 정리했다. 여기에 필자의 판단으로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담아내야 한다는 뜻에서 사람을 향한 따뜻함을 추가했다. ‘함’으로 끝나는 세 단어가 설교에 간명함과 힘을 부여할 수 있다.

부르심과 보내심을 중심으로 우리 성도가 어떤 사람인지를 묻고 답하는 설교도 가능하다.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이면서 동시에 그분의 보내심을 받은 자다. 그리고 부르심과 보내심의 중심에 주의 말씀이 있다.

    성도는 어떤 사람인가? 우리는 누구인가?
대지1.    부르심을 받은 사람 ­ 구원
대지2.    보내심을 받은 사람 ­ 사명
대지3.    말씀을 받은 사람 ­ 힘

‘부르심 ­ 보내심 ­ 말씀’으로 연결되는 메시지다. 부르심이 하나님의 구원이라면, 보내심은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이다. 그리고 말씀은 우리에게 주셔서 세상을 구원케 하시는 그분의 능력이다. 

채경락 샘물교회 담임목사. 미국 남침례신학교 (Ph.D.). 저서로 《쉬운 설교》, 《설교자들이 알아야 할 절기와 상황 설교》 등이 있다. 필자의 다른기사 keyboard_arrow_r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