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와 신학

  • {{x.scr_name}}
  • 미분류

특집 2022년  06월호 성도들을 뜨겁게 사랑하는 마음으로 설교하라 후배 목회자들에게

설교에 관한 전문적인 이야기는 하기 어렵고, 일반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 다만 내 이야기를 하겠다. 1986년 겨울, 경기도 안양의 작은 교회에서 흐릿한 ‘한 점’으로 존재하던 교육 전도사는 서울의 명일동, 역삼동, 석관동 그리고 경기도 안산에서 부교역자 시절을 보냈다. 서초동에 있는 교회의 담임목사직을 거쳐 2009년 여름 화성의 한 ‘촌’에 교회를 개척했고 그 후 13년이 흘렀다. 그 모든 세월 내내, 전 존재를 휘감아 온 설교의 고통과 기쁨 혹은 영광에 관해 잠시 이야기를 나누겠다.

설교의 고통

설교가 설교자에게 고통을 준다는 건 일반적이다. 내게도 그랬다. 사범대학원 다니던 시절 안양에서 그리고 신학대학원 입학 전후 명일동에서 교육 전도사로 사역하는 동안에는, 설교를 어떻게 하는 건지 모르면서도 해야만 했기에 고통스러웠다. 담임 교역자 설교에 감동받지 못할수록 나라도 잘하고 싶었으나 할 수 없어 고통스러웠고, 감동이 클수록 존경심을 덮는 질투심으로 더 잘하고 싶었으나 어떻게 하는 것이 잘하는 건지 몰라 고통스러웠다. 강도사와 목사가 된 후에도 한동안 같은 이유로 고통스러웠다. 오랜 세월 ‘배 아프고 어설픈’ 설교자였다. 특히 성도들을 감화시키는 동료 설교자에게 거부할 수 없는 질투심을 느낄 때면, 망망대해에 떠 있는 작고 초라한 섬이 됐다. 물론, 행복을 느끼는 시간도 있었다. 청소년 시절부터 ‘입담’이 좋은 편이었으므로, 스토리를 극적으로 전하는 어린이 설교로 동심을 흔들고, 그에 감동하는 교사들 반응을 즐기며 기쁨을 느꼈던 건 분명하다. 하지만 어린이들과 교사들에게 박수를 받을수록, 혼자 있을 땐 왠지 모를 고통을 느꼈다. 유능한 영업사원의 가방을 들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고통의 큰 원인은 잘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잘해서 잘 보이고 싶었고 설교 잘하는 목사라는 말을 듣고 싶었다. 설교도 잘하는 데다 유능하고

정갑신 예수향남교회 담임목사. 총신대(M. Div.). 저서로 《대답하는 공동체》, 《사람을 사람으로》 등이 있다. 필자의 다른기사 keyboard_arrow_right

목회와 신학

7월의 주요기사

추천 연재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