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와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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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설교 2022년  01월호 오순절운동과 대각성운동: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심층기획 영미 대각성운동과 한국의 부흥운동

한국 교회가 최대의 위기에 봉착했다. 1990년대부터 양적 성장은 둔화했고, 타종교로의 개종자나 ‘가나안 성도’가 급증했다. 2007년을 기점으로 안티 기독교 세력이 급증하더니 신천지를 포함한 이단들의 발흥과 활동도 거세졌다. 교회 안팎에서 성직자들의 스캔들, 교회 분열, 법정 소송 등 교회의 사회적 신뢰도가 급락했다. 이런 상황에서 2020년 코로나19가 한국 교회를 강타했다. 그 결과 전쟁 중에도 이어가던 예배가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향후, 교회를 포함해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는 예측할 수 없다. 그야말로 종말적인 상황이다. 

해방 이후 한국 교회의 부흥을 성령 운동이 주도해 왔다. 그 과정에서 오순절운동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현재 한국 교회의 위기 상황과 오순절운동 간의 관계도 부정하기 힘들다. 따라서 한국 교회의 갱신과 부흥을 위해 오순절운동이 감당해야 할 사명과 책임이 그 어느 때보다 막중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오순절운동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역사적 관점에서 살펴보는 것은 시기적으로 적절하며 유익한 작업임에 틀림없다. 풀어야 할 문제가 난해할수록 역사를 통한 자기 반성은 현명하고 지혜로운 출발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존 웨슬리와 성결 운동

‘성령 세례’를 강조하는 오순절운동의 기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18세기 영국 복음주의 부흥 운동의 주역인 존 웨슬리를 주목해야 한다. 웨슬리는 ‘이신칭의’ 교리를 강조했던 16세기 종교개혁의 전통을 충실히 계승하며 18세기 영국 교회의 형식화·이성화된 신앙에 문제 의식을 느꼈다. 동시에 ‘명목상의 그리스도인’을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변화·성장시키는 일에 관심을 집중했다. 이런 목적하에 그는 ‘칭의’를 강조하며 칭의와 성화(성결, 기독자 완전)를 동시적 사건으로 이해했던 칼뱅주의에 반대했다. 또한 칭의라는 법정적 개념 대신 ‘중생/신생’(regeneration/new birth)이라는 생물학적 용어를 선호했고, 중생과 성화를 시간적으로 구분했다. 이로써 이름뿐인 신자들이 형식적 신앙을 극복하고 보다 역동적이고 실천적인 신앙으로 발전하도록 유도한 것이다. 하지만 웨슬리는 ‘성령 세례’라는 말의 사용을 자제했다. 성령은 죄인의 중생 체험 순간에 한 번만 역사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웨슬리가 생전에 자신의 후계자로 지명한 존 플렛처는 웨슬리의 논리를 충실히 따르지만 동시에 성화를 성령 세례라고 명명해 웨슬리와 갈등을 초래한다.

이런 웨슬리와 플렛처 사상이 미국에서 형성된 감리교회에 직접적 영향을 끼쳤다. 특히 1830년대 감리교 여성 사역자 피비 팔머가 ‘성결 증진을 위한 화요기도회’를 자신의 언니와 함께 인도할 때 성령의 역사가 강력히 나타났다. 팔머는 웨슬리와 플렛처의 사상을 좀더 단순하게 이론화해 자신의 독자적 신학으로 발전시켰다. 즉, 그녀는 성화의 점진적·즉각적 가능성 모두를 인정했던 웨슬리와 달리 성화의 ‘즉각적’ 체험을 강조했다. 더불어 성화를 성령 세례로 이해했던 플렛처의 입장을 수용했다. 신자들이 제단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믿음으로 헌신할 때 즉각적으로 성화(성결)의 은총을 받는다는 소위 ‘제단 신학’을 주장한 것이다. 이처럼 감리교 내 성결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는 가운데 1867년 감리교 목회자였던 윌리엄 오스본과 존 인스킵의 주도하에 ‘성결 증진을 위한 전국 캠프 집회’가 개최됐다. 이 집회에서 강사들은 중생 이후 제2의 은총으로서 성결을 체험해야 한다고 설교했고, 이 체험은 성령 세례를 통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 집회는 매년 개최돼 전국으로 빠르게 확산됐다. 이처럼 팔머에서 비롯된 성결 운동이 감리교 내에서 확고히 뿌리내리며 제도적 장치를 확보했다. 

이 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며 초창기 의도와 다른 변화를 경험한다. 먼저, ‘성령 세례’ 개념의 변화다. 본래 이들이 추구하던 성령 세례는 성화, 즉 내적인 정결이었다. 하지만 일부 목회자들이 성령 세례를 ‘권능의 부여’(empowerment)로 해석했다. 그 결과 성결 그룹 내 성화를 ‘정결’(purity)로 이해하는 그룹과 ‘권능’(power)으로 주장하는 그룹이 공존했고, 이들 안에서 갈등이 고조됐다. 또 다른 변화는 지방연합회에 가입한 침례교와 장로교 출신 목회자들 속에서 성화 외 신유와 재림 교리를 강조하기 시작했다. 이런 교리는 성결 운동 지도 그룹의 전통적 신학과 상충해 교단 지도부가 강력히 반대·제재했다. 결국 중생, 성결, 신유, 재림을 강조하던 그룹은 ‘급진적 성결 운동’으로 분류돼 1894년을 기점으로 감리교회 내에서 축출되거나 자발적으로 탈퇴했다. 이로써 다양한 이름과 규모의 성결교회들이 탄생했다.

오순절운동과 은사주의운동

오순절운동의 기원에 대한 신학적 논쟁이 뜨겁다. 하지만 방언을 성령 세례의 증거로 강조하는 독특한 오순절 신학은 찰스 퍼햄과 함께 시작했다. 그는 캔자스 주 토피카에 소재한 베델성경학교를 개원해 성결 운동을 위한 사역자를 양성했다. 그런데 1900년 12월 31일 송구영신예배 중, 학생인 아그네스 오즈만이 방언을 말하기 시작했다. 퍼햄은 방언을 성령 세례의 일차적 증거로 해석하며 감리교 및 성결 운동과 구별된 독특한 오순절 교리를 만들어 냈다. 그의 오순절운동은 독특한 방언 교리 외에 신유와 재림의 교리도 적극 수용해 캔자스와 텍사스 지역에 부흥의 불길을 확산시켰다. 

한편, 퍼햄이 텍사스에 임시로 개설한 단기 성경 학교에서 공부했던 흑인 성결 운동가 윌리엄 시모어는 1906년부터 1909년까지 로스앤젤레스의 아주사 스트리트에서 폭발적 부흥 운동을 이끌었다. 이 소식은 로스앤젤레스의 경계를 넘어 미국 전역과 세계로 급속히 확산됐다. 얼마 후, 아주사 스트리트는 새로 임한 오순절 불길을 목격하고 체험하기 위해 미국 전역과 세계 각지에서 몰려온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동시에, 그곳에서 성령 체험을 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고향과 고국으로 이 불길을 옮겨 심었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오순절 교단들이 미국과 세계 도처에 탄생했다. 하나님의 성회(Assemblies of God), 하나님의 교회 클리블랜드파(Church of God, Cleveland), 하나님의 교회 그리스도파(Church of God in Christ), 국제복음교회(International Church of Foursqure Gospel), 오순절성결교회(Pentecostal Holiness Church) 등이 대표적 예다. 

이후 1948년 ‘늦은 비’ 운동으로 알려진 새로운 형태의 성령 운동이 조지 호틴과 헌트 형제를 중심으로 캐나다의 노스배틀포드에 위치한 ‘샤론고아원과 학교’에서 시작됐다. 이후 이 운동은 ‘늦은 비의 새로운 질서’가 됐고, 〈샤론의 별〉(the Sharon Star)이란 잡지도 발행했다. 이 운동은 여러 면에서 오순절운동과 유사하다. 방언, 예언, 거룩한 웃음, 신유, 종말 신앙 같은 신비 현상이 늦은 밤까지 지속된 기도회에서 빈번히 발생했다. 하지만 안수를 통해 성령의 특별한 은사를 부여하는 것, 집단적 방언 찬송, 개인적 예언, 그리고 사도와 예언자 직분이 회복될 것이라는 기대 등 ‘강조점 측면에서’ 오순절운동과 차이가 난다. 이 운동은 초반 오순절운동의 지지를 받았으나 곧 하나님의 성회를 비롯한 주류 오순절교단들에 의해 거부됐다. 하지만 이 운동은 1960년대에 출현한 은사주의운동에 큰 영향을 끼쳤다. 

1960년대에 이르러 이 부흥의 불길이 성공회를 비롯한 주류 교단들과 가톨릭교회로 확산됐다. 소위, 신오순절운동 혹은 은사주의운동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 운동의 막을 연 사람은 휘튼트리니티성공회교회 목사 리차드 윙클러와 로스앤젤레스의 성마가성공회교회 목사 데니스 베넷이다. 이들은 성령 세례를 체험한 이후에도 자신들의 교단을 떠나지 않고 성령운동의 확산에 기여했다. 또한 데모스 샤카리안이 1952년에 설립한 국제순복음실업인연합회와 오순절 에큐메니컬 운동을 주도했던 데이비드 두 플레시 같은 이들이 성령의 불길을 오순절 교단의 담장을 넘어 개신교 전체로 확산시켰다. 특히, 1963년 예일대학교 그리고 1966년과 1967년 가톨릭대학 듀케인대학교와 노트르담대학교에서 방언이 터졌다. 이로써 오순절운동은 개신교와 가톨릭을 모두 아우르는 범 기독교적 성령 운동으로 빠르게 발전했다.

빈야드운동과 신사도개혁운동

1980년대 빈야드운동이 출현했다. 이 운동을 주도했던 존 윔버는 목회 초기부터 은사주의와 깊은 관계를 맺어 왔다. 하지만 성령 세례에 대한 입장 차이로 오순절 은사주의운동과 자신을 철저히 구분하기 시작했다. 윔버는 현재 진행하는 하나님과 사탄의 싸움이 예수의 재림에 의해 하나님의 최종 승리로 끝날 것을 주장하는 ‘왕국신학’에 근거해 ‘능력 전도’를 강조했다. 특히, 윔버는 풀러신학교에서 피터 와그너와 함께 ‘표적, 기사 그리고 교회 성장’이란 제목의 과목을 가르쳤다. 이는 교회성장학의 대가인 와그너가 성령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와그너는 이런 경험과 관찰을 통해 윔버를 중심으로 발생한 새로운 형태의 성령운동을 “제3의 물결”이라고 명명했다. 

1982년 마이크 비클은 미주리 주 캔자스시티에 ‘캔자스시티 펠로우십’(현재 Metro Christian Fellowship)이란 이름의 교회를 개척했다. 이 교회는 빠르게 성장했고, 1986년 ‘그레이스 미니스트리’란 단체를 설립했다. 이 교회는 ‘늦은 비 신학’에 토대를 뒀고, 1987년부터 폴 케인이 주요 강사로 활약했다. 그는 윌리엄 브래넘에게 깊은 영향을 받았으며, 브래넘의 ‘나타난 하나님의 아들들, 혹은 요엘의 군대’ 같은 주장을 선전했다. 이처럼 캔자스시티 펠로우십과 관련된 일군의 사람들 마이클 비클, 폴 케인, 존 폴 잭슨 등이 ‘캔자스시티 예언자들’로 불렸다. 그들은 1990년 존 윔버와 결합해 빈야드교회연합에 가입했으나 윔버와 토론토공항교회가 분열하며 빈야드와 결별했다. 그 후 이들은 토론토블레싱운동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늦은 비 신학’을 계속 전파하고 있다. 그들의 집회는 예언과 강력한 영적 현상들이 빈번하게 나타난다.

1987년부터 남아프리카 출신 로드니 하워드 브라운의 집회에서 ‘웃음 부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1992년 플로리다 주 레이크랜드에 소재한 하나님의 성회 소속의 ‘카펜터스 하우스’에도 1만여 명의 성도가 운집한 가운데 웃음 현상이 나타났다. 이 현상은 다음 해 온타리오 주 토론토에 위치한 ‘빈야드공항교회’에서 더욱 강력하게 터져 나왔다. 존 아놋 목사가 담임하던 이 교회의 집회는 예전에 하워드 집회에 참석했던 랜디 클락 목사가 인도했다. 집회 도중 ‘거룩한 웃음’ 외 울부짖음, 개 짖는 소리, 병아리 소리 같은 ‘동물 소리’가 빈번히 나타났다. 비슷한 시기 영국 런던 근처의 브롬톤에 위치한 ‘성삼위성공회교회’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으며, 영국 신문들이 이 현상을 최초로 ‘토론토 블레싱’이라고 명명했다. 

2000년, 피터 와그너가 존 켈리와 함께 ‘국제사도연합’을 설립했다. 그는 “2001년 제2의 사도 시대가 시작됐다”고 천명함으로 소위 ‘신사도운동’이 공식적으로 탄생했다. 이 운동에 ‘신사도’란 개념이 도입된 일차적 이유는 교회의 핵심 직분들인 ‘사도와 예언자’를 회복해야 한다는 확신 때문이다. 특히, 에베소서 2:20과 4:11-12을 핵심적 성경 본문으로 제시하며 사도와 예언자를 포함한 ‘5중직’을 강조한다. 신사도운동은 교회 성장과 성령의 관계를 강조하기 때문에 신유, 축귀, 영적 전쟁, 예언, 성령에 의한 쓰러짐, 영적 도해, 중보기도 같은 사역을 활발히 행한다. 동시에 지배신학의 영향하에 8개 영역(예술, 예능, 사업, 가족, 정부, 미디어, 종교, 교육)에서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국 교회와 오순절운동

19세기 말 한국에 복음을 전한 미국 선교사들은 대체로 당시 미국에서 절정에 달하던 종말론, 선교 운동, 성결 운동이 결합한 독특한 형태의 성령 운동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뿐만 아니라 20세기 초반 영국, 미국, 인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성령 운동이 이들에게 간접적 영향을 끼쳤다. 이로 인해 1903년 원산에서 부흥운동이 발생했고 그것의 연장선에서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이 일어났다. 부흥 운동은 거대한 회개와 전도 운동으로 표출됐으며, 한국 교회의 체질을 성령 중심으로 재구성했다. 평양대부흥운동을 직접 체험한 후 선교사 노블은 “사도행전 이후 가장 강력한 성령의 역사”라는 평가를 남겼다.

1920년대 말 한국 교회에서 신비주의적 성령 운동이 북한에서 자생으로 발생했다. 원산에서는 이용도, 백남주, 유명화를 중심으로, 철산에서는 김성도를 주축으로 입신과 방언 등의 신비 체험이 강하고 빈번하게 발생한 것이다. 이런 현상은 당시 교회 내 심각한 오해와 우려를 촉발하며 혹독한 비판의 대상이었다. 결국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 이들 중 일부가 통일교와 천부교에 합류해 신종교운동의 한 축을 이룬다. 한편, 1928년 여 선교사 메리 럼지가 한국에 상륙해 방언을 성령 세례의 증거로 간주하는 오순절운동이 시작됐다. 럼지 선교사는 한국인 허홍과 함께 1932년 한국 최초의 오순절교회를 설립했으며, 1938년 허홍, 박성산, 배부근이 한국 최초의 오순절파 목사로 안수받았다.

1940년대부터 용문산 기도원의 나운몽 장로가 입신, 방언, 신유 등을 중심으로 성령 운동을 이끌었고, 1950년대 박태선 장로가 이런 흐름에 합세했다. 1960년대는 그들의 뒤를 이어 조용기 목사가 한국 교회에서 성령 운동을 주도했다. 이들의 영향하에 부흥회가 한국 교회의 신앙 체험과 교회 성장의 핵심적 도구로 자리 잡았고, 부흥사들이 그 운동의 중심 세력으로 부상했다. 이런 성령 운동은 새벽기도회, 금요철야기도회, 여름수련회 등을 통해 한국 교회 전체로 확산돼 한국 교회 영성에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 이 과정에서 전국에 기도원이 세워졌다. 용문산수도원, 오산리금식기도원, 대한수도원, 한얼산기도원 등이 전국적 명성을 얻었다. 또한, 1965년 태백에 세워진 예수원은 수도원 운동, 토지개혁, 성령 운동을 결합한 수도원 공동체를 실험했다. 동시에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1953년)와 대한예수교복음교회(1972년) 같은 오순절교단들이 탄생했고 여의도순복음교회, 은혜와진리교회 같은 초대형 교회들이 성령 운동의 결과로 출현했다. 한편 1980년대부터 온누리교회가 구도자 예배와 성령 운동을 결합해 새로운 장을 열었다.

1990년대 빈야드운동이 한국에 상륙했다. 존 윔버의 세미나와 빈야드공항교회를 다녀온 국내 목회자와 신자들에 의해 한국 교회 내 영적 전쟁, 능력 전도, 빈야드적 사역을 추구하는 연구원과 세미나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것이다. 2000년대 피터 와그너, 체안, 홍정식 등을 통해 신사도개혁운동이 본격적으로 국내에 도입되기 시작해 신사도운동을 추구하는 교회, 교육 기관, 기도회 등이 빠른 속도록 조직·확산됐다. WLI Korea, 한국 HIM선교회, 한국아이합, 하베스트샬롬교회, 영동제일교회, 큰믿음교회, 아가페신학연구원 등이 대표적 예다. 이로 인한 갈등과 논란은 한국 교회에서 여전히 뜨겁다.

한국 교회와 오순절운동의 미래를 위한 제언

한국 교회는 지금, 왜 부흥 운동이 일어나지 않는가. 현재 깊은 잠에 빠진 한국 교회를 다시 깨우기 위해 오순절운동은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또한 해야 할까? 이는 침체에 빠진 오순절운동을 위해서도 매우 절박한 문제다. 오순절운동의 미래를 위해 몇 가지 제언하고자 한다. 

첫째, 영성적 차원에서 한국 교회의 부흥을 추동했던 성령 운동의 전통을 충실하게 보존·계승해야 한다. 한국 교회는 성령의 역사 속에 설립돼 지금까지 존재해 왔다. 비록, 역사의 격랑과 문화적 유혹 속에서 한국 교회가 현재 길을 잃은 것처럼 보이지만 성령 없는 한국 교회는 상상할 수 없다. 어떤 상황에서도 성령이 한국 교회를 떠나지 않도록 오순절운동은 회개와 중보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 기도와 금식, 회개와 탄식이 사라진 한국 교회를 위해 오순절운동은 포기하지 말아야 할 역사적·신앙적 사명이다. 

둘째, 사회적 측면에서 새로운 과제들에 주목해야 한다. 무엇보다 내세 지향적 역사관을 극복하고 역사 변혁적 태도를 육성해야 한다. 전쟁과 평화, 공평과 정의, 환경과 생명에 대한 이 시대의 절박한 문제와 가치에 대해 적극적이고 창조적으로 반응해야 할 것이다. 개인, 영혼, 내세에 함몰된 종교는 더 이상 한국에서 생존할 수도 존재할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셋째, 문화적 측면에서 한국 오순절운동의 성숙한 태도가 요청된다. 오랫동안 한국 오순절운동은 한국의 종교, 예술, 학문 등 전통 문화와의 접촉에 대해 부정적 태도를 견지해 왔다. 이 문제에 대해 보다 큰 시각과 틀 속에서 창조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오순절운동은 교리보다 체험, 신학보다 목회, 이론보다 현장에 무게 중심을 둔 영성을 갖는다. 따라서 한국의 전통 문화에 대해서도 보다 역동적·창조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문화 속에 뿌리내리지 못한 교회는 결코 진정한 구원의 방주로 기능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오순절주의자들은 지난 세기 한국과 세계에서 전개된 다양하고 역동적인 성령 운동을 정직하고 냉철하게 성찰하며 현재 한국 상황에 적합한 새로운 성령 운동을 모색해야 한다. 성령 하나님은 영원하시다. 동시에 성령은 특정한 문화와 역사 속에서 다양하고 역동적인 모습으로 일하셨다. 성령은 끊임없이 잠든 신자들을 깨우고 병든 교회를 치유하셨다. 따라서 사면초가에 놓인 한국 교회의 유일한 희망도 오직 성령 안에 있다. 오순절운동의 과거와 현재를 냉철하게 성찰하며 미래를 위한 성령의 창조적 역사를 간구하고 도전해야 할 것이다. 또 한 번 대각성의 불길을 체험할 것인가? 아니면 종교적 유물로 전락할 것인가? 성령의 사람들이 결단할 때다. 
 

배덕만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연구위원. 백향나무교회 담임목사. 드류대학교(Ph.D., 교회사). 저서로 《21세기에 읽는 오순절 신학》, 《변화하는 한국 교회와 복음주의 운동》 등이 있다. 필자의 다른기사 keyboard_arrow_r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