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와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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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2021년  06월호 앙케트 5인의 목회자가 말하는 ‘영적 침체, 나는 이렇게 회복했다’ 영적 침체를 극복하는 목회

영적 침체는 신앙의 여정에서 누구나 겪는 과정이다. 심지어 성경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행사했던 위대한 인물들도 한 순간에 영적 침체에 빠졌던 것을 미뤄 보면, 영적 침체를 부끄러워하거나 외면할 것이 아니다. 목회자도 예외는 아니다. 강준민 목사(L.A. 새생명비전교회 담임), 박진석 목사(기쁨의교회 담임), 유진소 목사(호산나교회 담임), 정갑신 목사(예수향남교회 담임), 정준경 목사(우면동교회 목사)에게 ‘나의 영적 침체 회복’이라는 주제로 다음과 같은 5가지 질문을 던졌다. 

1.    목회하다가 영적 침체에 빠진 적이 있다면 어떤 침체를 경험했는가? 
2.    자신이 영적 침체에 빠졌다는 것을 어떻게 감지하고 대처했는가? 
3.    영적 침체를 어떻게 회복했는가? 
4.    목회자가 영적 침체에 빠지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5.    평소 영적 침체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예방법은 무엇인가?

5인의 응답을 소개한다.



강준민 L.A. 새생명비전교회 담임목사

고갈되기 전에 채우기

1.    
내가 경험한 영적 침체의 경험은 1989년 로고스교회 개척 후에 일어났다. 나는 32세의 나이에 큰 꿈을 품고 교회를 개척했다. 하지만 현실은 비참했다. 꿈과 현실의 간격이 너무 컸다. 큰 충격이었다. 또한 부목회자로 섬길 때 그토록 하고 싶었던 설교가 담임목회자가 됐을 때는 쉽지 않았다. 개척한 지 3개월이 지났을 무렵 설교는 무거운 짐으로 다가왔다. 토요일 늦은 시간까지 설교 준비는 끝이 나지 않았다. 1989년 6월 13일 주일 새벽까지 설교를 준비한 나는 바로 그 주일에 숨을 쉴 수 없을 정도의 심한 공포가 엄습해 오면서 쓰러지고 말았다. 병원에 갔지만 육체적으로 아무 이상이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것은 육체적인 문제가 아니라 영적 침체였다. 공황장애와 함께 영적 침체가 찾아온 것이다. 더불어 무력감, 식욕 상실, 의욕 상실, 절망감 등이 병행됐다. 하나님을 향한 불신이 나를 괴롭혔다. 

2.     
영적 침체의 순간들을 통과하면서 왜 내게 영적 침체가 왔는지를 깊이 연구했다. 또한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을 연구하고, 영적 침체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영적 침체의 원인과 현상에 대해 연구했다. 하나님이 사용하신 대부분의 인물들은 영적 침체를 통과했다. 영적 침체의 현상은 의욕 상실, 현실 도피, 무력감이다. 죽고 싶은 마음까지도 생긴다. 모세와 엘리야도 하나님께 당장 죽여 달라고 애원했다. 

영적 침체를 경험할 때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지도 않다. 혼자 있고 싶다. 영적 침체는 곧 탈진이다. 그것은 육체적, 정서적, 영적으로 고갈된 느낌이다. 이때 본인의 영적 침체가 육체적인 피곤인지, 정서적인 문제인지, 영적인 문제인지를 분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육체적인 문제라면 쉬어야 한다. 잠을 자야 한다. 정서적인 문제라면 자신을 격려하고 위로해 주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 영적인 문제라면 하나님 앞에서 침묵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이 필요하다. 

3.     
나는 영적 침체에서 회복하는 데 상당히 많은 시간이 걸렸다. 우선 영적 침체의 원인을 깨닫기 위해서 책을 읽었다. 특별히 인간 심리를 이해하는 책들이 큰 도움이 됐다. 영적 침체가 영적인 문제로만 오는 것이 아니라 육체적 피곤, 사람들과의 갈등, 심한 스트레스를 통해서 찾아옴을 경험했다. 좋은 책들은 나를 성찰하도록 도와주었다. 책을 통해 나의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을 이해하게 됐다. 또한 생각을 바꾸는 법을 배웠다. 

영적 침체는 쉼 없이 사역만 할 경우에도 찾아온다. 엘리야의 경우에 갈멜산 전투에서 승리한 후 백성들이 변화되지 않음을 보며 좌절했다. 또한 과도한 에너지를 사용한 후 탈진한 상태에서 이세벨의 공격을 받았을 때 두려움이 그를 사로잡았다. 그때의 엘리야는 로뎀 나무 아래에서 쓰러져서 차라리 죽기를 원했다. 

하나님이 천사를 그에게 보내어 먹고 마시고 잠을 자게 하셨다. 그의 경직된 몸을 어루만지게 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주셨다. 새로운 목표를 주셨다. 영적 침체에서 벗어나 회복되기 위해서는 충분한 쉼이 필요하다. 충분히 쉰 후에 하나님이 보여 주시는 새로운 목표를 향해 정진할 때 영적 침체에서 회복되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4.     
한마디로 말하긴 어렵다. 영적 침체에 빠지는 이유는 목회자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목회자마다 기질과 성향이 다른 것도 영적 침체에 영향을 끼친다. 목회자의 가정 환경과 목회 환경도 영적 침체에 영향을 준다. 건강 상태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회자가 영적 침체에 빠지는 가장 큰 이유를 든다고 하면 말씀의 고갈이다. 영감의 고갈이다. 설교를 준비하는 것이 힘들어질 때 영적 침체에 들어가게 된다. 

또한 하나님의 일을 성령님의 도우심이 아니라 육신의 힘과 방법으로 하려고 할 때 영적 침체에 빠지게 된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자신이 품은 꿈과 현실의 간격이 클 때 침체에 빠진다. 주님이 주신 비전이 아니라 야망을 성급히 이루려고 할 때 침체에 빠진다. 목회의 본질에서 벗어나 세상적인 기준으로 성공을 이루려고 할 때 침체에 빠진다. 조급한 마음, 비교하는 마음, 경쟁심과 질투심도 영적 침체의 원인이 될 수 있다. 

5.     
자신을 잘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언제 영적 침체가 찾아오며, 어떤 상황에서 영적 침체에 빠지기 쉬운지 잘 알아야 한다. 영적 침체가 깊을수록 그 침체에서 빠져나오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그런 까닭에 가능한 한 영적 침체의 깊은 늪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나의 예방법은 고갈되기 전에 채우는 것이다. 

목회자의 가장 중요하면서도 무거운 짐은 설교다. 설교는 두려운 영광이다. 그래서 설교의 영감이 고갈되지 않도록 늘 영혼을 채우려고 한다. 성경 연구와 묵상 그리고 독서로 설교의 영감이 고갈되지 않도록 한다. 또한 마음에 염려와 두려움이 엄습해 오면 쉬는 시간을 갖는다. 잠만 충분히 자고 나도 침체가 사라지는 것을 경험했다. 목회는 단거리 경주가 아니다. 마라톤과 같이 장거리 경주다. 절대 조급해서는 안 된다. 멀리 보고 정진해야 한다. 또한 주어진 여건에 자족하는 훈련과 감사하는 훈련이 영적 침체 예방에 도움이 된다. 교회 형편상 안식월이나 안식년을 갖기 어렵다면 일주일에 하루 정도를 온전히 쉬는 것이 좋다. 또한 매일 어느 정도 안식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좋다. 


박진석 기쁨의교회 담임목사 

성경의 풍성한 원리와 지혜에서 해답 찾기

1.     
예수 믿지 않는 불신 가정에서 은혜를 받아 성령에게 강권 당하듯 목회자가 됐기에 여러 시험과 개인적인 한계를 많이 겪었다. 부족함이 많았기에 더 열정적으로 배우고 충성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17년 전 담임목회를 시작하면서 처음 10년 동안 어려움 중에도 교회가 메마른 덤불에 불붙듯 크게 일어나는 결실이 있었기에 별로 힘든 줄 몰랐다. 그러나 새롭게 교회를 건축하고 더욱 담대하게 새로운 비전을 향해 전진하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했던 여러 문제와 어려움에 직면하게 됐다. 이전에 겪었던 시험들과는 차원이 다른 엄청난 중압감과 외로움으로 심히 고통을 겪었다. 정신적, 체력적, 영적 고갈이 서서히 진행되다가 어느 한도를 넘어서자 차라리 죽고 싶다는 지경에 이르러 목회를 포기하고 싶던 적도 있었다.

2.     
목회자로서 웬만한 크고 작은 어려움과 시험은 씩씩하게(?) 이기며 잘 전진해 왔다고 자부했다. 그러나 이 깊은 침체와 시험은 목회자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나의 한계를 철저하게 깨닫게 된 쓰디 쓴 은혜의 시간이었다. 주님의 경고가 몇 차례 있었음에도 자신의 영혼육의 필요보다 교회와 성도들의 시급한 필요와 문제들을 해결하느라 일중독자처럼 몰두하다 보니 결국 탈진과 깊은 침체의 늪에 빠졌다. 교회 공동체를 말씀으로 먹이고 인도해야 할 중책을 맡은 목회자로서 먼저 자신을 주의 말씀으로 목양하여 잘 먹여야 하는 우선순위를 더 철저하게 지키려고 노력한다. 목회 사역은 영육간에 많은 에너지가 소진되기에 효과적으로 충전 회복할 수 있는 시스템과 원칙을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3.     
약 6년 전, 1년가량 집중적으로 겪어야만 했던 혹독한 영적 침체와 탈진(burn-out)은 크리스천 리더십 전문가 클린턴 박사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지도자를 다루시는 고립의 시간(Isolation Period)이요 집중적인 연단의 과정(Deep Processing)이었다. 믿음의 선배들의 전기에서 만나는 “영혼의 밤”, “불 시험”의 때라 할 수 있다. 깊은 영적 침체에서의 회복은 단지 기도와 말씀에 전념한다고 되는 것 같지는 않다. 주변의 신실한 동역자들, 성도들, 가족들의 격려와 지지, 중보기도가 필요하다. 특별히 육신적 건강 때로는 정신/심리적 건강과 관련된 전문가의 조언도 필요하다. 그러나 나의 경우 핵심적인 지렛대 역할을 한 것은 세미한 음성과도 같은 주님 주신 각성과 약속의 한 말씀이었다. 바로 마가복음 12:30의 말씀을 주님께서 친히 주신 겨자씨 한 알의 약속으로 붙잡고 잘 간직하여 가꾸면서 서서히 회복되기 시작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결국 목회자의 침체 회복의 가장 중요한 기반은 마음 중심에서 꺼지지 않고 계속 불타오르는 약속의 말씀에 대한 담대한 확신이라고 할 수 있다. 

4.     
목회자의 역할은 사람들의 1만 가지 다른 마음 밭에 하나님의 말 씨를 뿌려 물을 주고 가꾸어야 하는 생명에 관한 일이기에 아주 민감하고 스트레스가 많다. 또한 하나님의 백성을 집중 공략하라는 특명을 받은 악한 사명자 사탄은 특별히 지도자의 연약함과 부족의 틈을 귀신같이(?) 잘 찾아내 집중 공략한다. 야고보 사도가 많은 시험을 몸소 체험하고 극복하는 과정에서 깨달은 야고보서 1:2-4의 권면처럼 목회자의 영적 침체는 이겨 낼 수만 있다면 더 성숙한 지도자로 연단받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결국 목회자에게 가장 귀한 상급이요 열매는 겉으로 드러난 사역의 성과나 업적보다 주님을 더 신뢰하고 사랑하고 알아가는 중심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사역을 감당하는 과정에서 영적 침체를 포함한 모든 시험조차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주님을 담담히 신뢰하며 감사로 인내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5.     
예방법에는 여러 처방이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독서, 적절한 운동, 취미, 잘 쉬는 것, 과욕을 피하는 것, 멘토링 네트워크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나의 침체 회복 체험을 통해 나누고 싶은 가장 중요한 예방법이 있다면 성경을 보는 것이다. 성경에도 정도의 차이와 수준만 다를 뿐 수많은 영적 침체와 자기 한계들과 씨름했던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그러므로 성경에는 이 시대의 목회자들이 당면한 여러 시험과 영적 침체 요인들에 대해 넉넉히 이길 수 있는 실마리와 원리적 지혜들이 숨어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을 더 깊이 체계적으로 탐구함으로 자신뿐 아니라 동료 목회자들과 성도들에게 회복과 예방을 위한 성경적 원리를 제공할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유진소 호산나교회 담임목사

영성의 기본을 유지하기

1.    
여러 번 영적인 침체에 빠졌다. 가벼운 것부터 좀 심각한 것까지 다양한 영적 침체에 빠져서 그것 때문에 고통했다. 침체 기간에 있어서도 짧은 침체도 있지만, 상당히 긴 기간 동안 계속되는 것도 있고, 어떤 경우에는 그야말로 만성적인 영적 침체에 빠져 괴로워한 경우도 있다. 영적인 침체의 종류를 말한다면, 우울증에 빠져서 고통하는 것이 가장 심각하다고 본다. 우울증은 그 안에 에너지가 없다는 의미인데, 신앙인에게는 영적 침체를 말한다. 

우울증까지는 아니어도 무력증이나 열정 없음 등이 바로 내가 경험한 영적 침체다. 목회뿐 아니라 삶 자체에 대해 무력한 느낌에 빠지고, 그야말로 삶이 재미가 없다는 생각에 잡히는 것이 바로 영적인 침체다. 또 한 가지는 두려움과 자신 없음이다. 목회에 대하여 정말 자신이 없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 강하게 엄습하는 것도 내가 경험한 영적인 침체다. 

2.    
활력(exciting)이 없어지는 것이 가장 먼저 감지가 되는 영적 침체의 증상이라고 생각한다. 목회란 열정을 갖고 신나게 사역을 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만일 그렇지 못하고 재미가 없다고 한다면, 그것은 영적 침체에 빠졌다는 신호다. 그리고 또 하나는 부담감이다. 목회라는 것이 늘 부담이 있지만, 만일 그 부담감이 스스로 느끼기에도 힘들고 버겁다면, 그것은 영적인 침체에 빠졌다는 뜻이다. 그런데 무엇보다 영적 침체에 빠졌다는 것을 나타내는 가장 강력한 신호는 하나님이 함께하라고 주신 사람들, 즉 가족이나 성도, 동역자에 대하여 자꾸 못마땅하고 화가 나는 것이다. 이것은 아주 분명한 영적 침체의 증상이다. 이럴 때 가장 중요한 대처는 자신이 영적 침체에 빠졌다는 것을 인정하고, 신앙의 본질과 목회의 기본으로 돌아가서 차근차근 풀어가는 것이다. 즉 영적 침체에 대하여 대증요법으로 치료하기보다는 근원에서부터 처치해야 한다. 

3.    
지금까지 목회하면서 꽤 여러 번 영적 침체를 겪었고, 그중 몇 번은 아주 심각하기도 했다. 결론적으로는 주님의 은혜로 이기고 벗어났다. 마치 엘리야가 영적 침체에 빠져서 로뎀 나무 아래에 누었을 때, 하나님이 그를 일으켜 세우셨던 것처럼, 나 역시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그 시간들을 벗어날 수 있었다. 다만, 내가 한 것이 있다면, 하나님이 역사하시도록 맡기고 기다렸다는 것이다. 자신의 신앙과 목회의 기본을 꾸역꾸역이라도 감당하면서, 멈추거나 급격한 해결을 도모하지 않고, 감당하면서 견딘 것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정말 생각하지 못한 그런 방법으로 혹은 예상하지 못했던 어떤 일들이 일어나면서, 때로는 상황은 변화가 없는데 마음이 갑자기 달라지면서 영적 침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4.    
영적 침체에 빠지는 이유는 영적 공격 때문이다. 목회자를 무너뜨리는 대적의 공격 가운데 가장 교활하고 집요한 것이 바로 영적인 침체다. 영적 침체의 가장 큰 이유는 내면의 상처다. 모든 목회자들이 상처가 있는데, 대적은 그 상처를 이용해서 공격을 한다. 때문에 영적 침체도 상처로 인해 오는 것이다. 내 경우에는 주된 상처가 ‘거절감’이다. 바로 이 거절감의 상처가 올라왔을 때, 어김없이 영적 침체에 빠졌다. 특히 목회하면서 성도들로부터 이런저런 방법으로 비난을 받거나 억울한 소리를 들었을 때 거절감이 폭발하면서 영적 침체에 빠졌던 것이 대부분이다. 

5.    
너무나 당연한 것이지만, 영성의 기본을 잘 유지해야 한다. 예배 생활, 기도 생활, 말씀 생활이라는 영성의 기본을 잘 유지하는 것이 영적 침체에 빠지지 않는 최고의 예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배우자나 가족,  동역자들과 자신의 내면과 영적인 상태에 대해 계속 이야기하고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나누다 보면 영적 침체에 빠지지 않게 자신의 내면을 관리하는 데 도움이 된다. 특히 자신의 상처에 대한 부분은 늘 하나님 앞에서 잘 살피고 관리해야 한다. 어린 왕자가 항상 분화구를 청소하듯이 그렇게 자신의 상처를 잘 관리해야 한다. 그래야 그곳으로 공격이 와도 피하고 이겨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자기 내면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정갑신 예수향남교회 담임목사

자기 영혼을 위한 말씀 묵상에 힘쓰기 

1.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영적 침체의 빈도와 깊이는 상당히 달라지겠으나, 정의의 향방이나 깊이에 관계없이, 나의 경우 모든 침체의 선명한 현상은 ‘떠남과 분리를 향한 쏟아지는 마음’이었다. 목양의 현장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모든 종류의 관계 자리를 멀리하고 싶었고, 심지어 자신의 존재로부터 떠나고 싶기까지 했다. 충동적이고 다혈질적이고 염세적인 기질에 걸맞게, 모든 일상의 자리에서 즉시 분리되려는 강렬한 열망이 솟구쳤다. 소수 ‘패거리’의 노골적인 대적 혹은 단 한 사람의 심각한 오해, 혹은 근거 있는 적대감과 그 주위 사람들의 ‘경계심 가득한’ 시선에 일정 기간 노출되면, 여지없이 떠남과 분리의 주제가 반복적으로 전면에 등장하곤 했다. 그때, 나의 경우에는 신체적 반응이 확연해지는 편이다. 손발이 저리고, 심장이 벌떡거리고, 머리가 아프고, 입맛이 떨어지고, 깊은 숨을 쉬지 못한다. 따라서 근심은 길고 생각은 짧아진다.

2. 
하나님의 뜻과 자기 합리화 사이에 애매한 함정들이 널려있듯, 정당한 목회적 스트레스와 영적 침체 사이에도 불분명한 감정들이 가득하다. 정직한 통찰과 자기직면이 정답이지만, 주관적인 해석에 불과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우울감(증)이 호르몬의 작용과 깊은 연관이 있는 것처럼, 로이드 존스 목사에 따르면 신체적 상태와 영적 침체감 사이에는 깊은 연관이 있다. 다시 말해, 몸과 마음을 일정 기간 쉬어 주면 될 일을 영적 침체라고 느끼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정당한 목회적 스트레스와 신체적 피로 현상과 영적 침체가 상호 교차하는 동시에 본질적으로는 매우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의 경우에는 앞에서 언급했던 ‘떠남과 분리를 향한 쏟아지는 마음’의 지속성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편이다. 적어도 6개월 이상 지속될 경우, 반드시 진단과 회복을 위해 공동체적 도움을 받고자 한다.

3.    
나의 경우에는 분노와 우울이 1년 가까이 지속됐기 때문에 진단은 명백했고, 회복은 매우 쉽거나 어려울 수 있었다. 모든 것으로부터 분리되려는 갈망이 극에 달했기 때문에, 약물과 상담으로는 한계가 있었고 삶의 의미는 완벽하게 증발했다. 살고자 하는 의지가 없는 상황에서도 살아야 했다. 하나님과 주신 사명을 위해서가 아니라 가족을 위해서였다. 나는 목사가 아니라 사람이었다. 일단, 공동체의 배려로 일정을 느슨하게 만들었다. 의료적 도움을 받아 상담과 약물 투약을 지속했다. 의사의 처방대로 면역 회복을 위한 건강식품과 비타민을 꾸준히 복용하는 한편 운동을 지속했다. ‘걷기’는 이 시기에 세포가 기억하는 습관이 됐다. 이 과정에서 친구들의 정기적인 방문과 동반 산행, 대화들이 큰 도움이 됐다. 하지만 결정적이라고 말해야만 하는 것은 내 안의 우상에 대한 명쾌한 각성이었다. 모든 목회적 표현 뒤에서 강력한 동기로 작동하던 인정 욕구, 존재감을 증명하려는 우상의 얼굴을 발견했고, 주의 긍휼을 구하는 기도와 회개로 맞서면서, 회복에 현저한 속도가 붙었다.

4.    
나의 경험상 영적 침체의 원인은 결핍의 목회다. 주님께서 부르신 내 모습이 충분하지 않다는 강박, 현재의 목회적 열매로는 여전히 부족하다고 확신하는 강박, 지금보다는 좀 더 나은 목회적 결과들이 객관적으로 확보돼야만 비로소 만족할 수 있을 것처럼 느끼게 하는 강박 등이 활발하게 작동하는 목회다. 다시 말해,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고, 예수님과 동역하고, 예수님을 기뻐하는 것으로 충분한 ‘넘침’의 목회가 어느 순간 현장의 중심에서 물러났기 때문이다. 목회자의 목회적 활동에서 ‘인정 욕구’로 작동하는 ‘존재 증명의 욕망’이 활발할 때, 영적 침체는 필연적이다. 인정 욕구로 작동하는 존재 증명의 욕망은 어떤 경우에도 충족될 수 없기 때문이다. 예수를 지극히 사랑한다면, 모든 크기와 양상의 목회적 결과가 예수 안에서 동일하다는 이상적 선언이 진짜가 돼야 한다.

5.    
주님의 마음과 자신에 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하려는 마음의 치명적인 위험성을 의지적으로 의식한다. 이를 위해, 매일 아침 자신의 영혼을 위한 말씀 묵상에 사력을 다하면서, 어제까지의 생각도 언제든 수정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한다. 주일 아침에도 설교 준비와 관계없이 영혼을 위한 묵상을 건너뛰지 않으려 노력한다. 신체적으로는 스트레칭과 걷기와 오르기에 힘쓰면서 마음을 보호할 수 있는 몸의 수준을 지키려 애쓰는 한편, 공적인 연합 사역들 외에 최소 5개 이상의 정기적인 목회 공동체 모임을 만들어 책 읽기를 통한 생각 나누기 및 열린 대화에 열중하는 중이다. 이를 통해, 자기 존재를 지속적으로 상대화하고, 교회와 사역으로부터 거리를 두려고 노력한다.


정준경 우면동교회 담임목사

하나님과 긴밀한 관계 유지하기 


1.     
당연히 있다. 첫 번째는 사역의 열매가 없을 때였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질적인 열매가 아니라 양적인 열매가 없을 때였다. 개척 교회 시절에 정말 열심히 기도하고 설교하고 전도했는데 교회는 한 해 동안 1명도 전도를 하지 못했다. 작은 지하 예배당에서 교우들이 아이들과 함께 고생하는 것이 나의 무능함 때문인 것 같았다. 하나님께서 나를 정말 목회자로 부르셨는지 의문이 들었다. 두 번째는 사랑할 수 없는 성도들이 생겼을 때였다. 교회에는 다른 성도들을 말과 행동으로 힘들게 하는 분들이 있다. 목회자 가정에 대해서 악한 루머를 퍼뜨리는 성도들도 있다. 그들을 용서하고 사랑하지 못해서 힘들었다. 세 번째는 시골에서 혼자 사시던 어머니에게 칼을 든 강도가 들어왔을 때였다. 그 사건은 어머니의 삶을 송두리째 망가뜨렸다. 강도에 대한 분노와 아들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나에 대한 미움으로 하루하루 견디기 힘들었다. 하나님께도 서운했다. 

2.     
처음에는 영적인 침체에 빠졌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목회자는 아무리 힘들어도 해야 할 사역들이 있기 때문에 겉으로는 문제가 없어 보인다. 시간이 되면 설교하고 기도하고 찬양하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마음이 힘들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영적인 열정이 사라지고, 습관적이고 형식적인 사역을 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사역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적인 방법으로 사역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성도들은 늘어나고 사역의 열매들도 있었다. 그런데 그 열매들은 내 영혼의 진정한 기쁨이 되지 못했다. 공허했다.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로는 내 영혼의 갈급함을 채울 수 없었다. 내 영혼의 갈급함은 오직 하나님만으로 채워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른 방법이 없었다. 영적인 침체를 해결해야 했다. 

3.     
영적인 침체를 벗어나는 데 특별한 방법이 있을까? 하나님의 은혜밖에 없다.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으려면 정직하게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자신의 상태를 고백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한다. 하나님 한 분만으로 충분하다고 고백하며 목회를 시작했는데, 개척하고 나서 성도들이 늘어나지 않으니까 힘들었다. 교회가 자립해야 한다는 욕심을 내려놓기 위해서 몸부림쳤다.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하나님 한 분만 있으면 되는 목사가 됐을 때 역설적으로 교회는 성장하기 시작했다. 사랑하기 힘든 성도들은 기도가 답이었다. 그 성도들을 위해서 억지로라도 기도하기 시작하니까 어느 순간부터 긍휼의 마음이 생겼다. 나의 마음이 변하니까 그 성도들도 서서히 변했다. 어머니의 강도 사건은 어떻게 벗어났는지 모르겠다.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다. 몸부림치며 잠 못 드는 수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아직도 힘들고, 용서는 진행 중이다. 

4.    
지나고 보니 영적인 침체는 모두 나의 문제였다. 제대로 준비되지도 못한 나에게 어떻게 하나님께서 천하보다 귀한 영혼들을 맡기실 수 있을까? 사역의 열매는 나와 교회가 성숙하면 자연스럽게 맺히는 것이었다. 그런데 기도하면서 목회하다 보니 마음을 비우게 됐다. 개척을 했다고 해서 모든 교회가 성장하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목회자와 교회가 성숙하게 잘 준비됐는데도 적은 수의 성도들만 모인다면 그 성도들에게는 더 많은 목회자의 사랑과 기도가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성도들도 사랑하지 못하면서 원수까지 사랑해야 한다고 설교했던 모습을 보게 됐다. 부끄러웠다. 기도하면서 힘들게 하는 성도들을 사랑하는 법을 터득하자 정말 원수가 나타났다. 강도다. 입에 모래를 넣고 기도하는 것 같았다. 억지로 기도하다 보니 강도도 용서하고 사랑하게 됐다. 

5.     
목회에는 수많은 유혹과 위기의 순간들이 있다. 영적인 침체에 빠질 위험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중요하다. 목회자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좋으면 영적인 침체에 쉽게 빠지지도 않고, 침체에 빠지더라도 곧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면 정직해야 한다. 하나님은 거짓말을 정말 싫어하신다. 내 영혼의 가면을 벗어 던질 때까지 하나님은 만나 주시지 않았다. 정직하고 겸손하게 나의 한계를 인정하고 도우심을 구할 때 하나님은 만나 주셨다. 

그런데 목회의 경험이 쌓이다 보면 하나님의 임재 없이도 얼마든지 목회를 할 수가 있다. 은혜로운 설교를 할 수도 있고, 뜨겁게 기도를 할 수도 있고, 사역의 열매가 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목회자들은 위험하다. 그런데 하나님의 임재가 없으면 그 모든 것은 껍데기일 뿐이다. 그나마 내가 영혼의 가면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주님께서 깨닫게 해 주신 것은 성경을 붙들고 씨름했기 때문이다. 
 

편집부 정리 목회와신학 편집부 필자의 다른기사 keyboard_arrow_r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