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와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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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2021년  06월호 영성 성찰과 진단하기 영적 침체를 극복하는 목회

한국 교회는 갈멜산의 엘리야를 지향하는 듯하다. 열왕기상 18장에 등장한 엘리야는 한국 교회 성도, 목회자 그리고 교회의 롤 모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알과 아세라 신의 샤먼(무당)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일갈하며 멋들어지게 승리를 선포한 엘리야는 기독교인들이 닮고 싶어 하는 영웅이다. 그래서인지 실제 한국 교회는 엘리야처럼 한 세기 동안 세계에서 찾아볼 수 없는 물적, 양적 성취를 이뤘다.

그런데 한국 교회는 갈멜산의 엘리야가 이세벨의 한마디에 무기력해진 것처럼 어느 순간부터 영적 침체의 터널을 지나고 있다. 예수님의 말씀(마 11장)에도, 변화산(마 17장)에도, 로마서 11장, 야고보서 5장에도 등장했던 성경 전국구 인물인 갈멜산의 엘리야가 악녀 이세벨의 저주(왕상 19:2)1 앞에 주눅이 든 것처럼 전 세계의 화려한 조명을 거머쥐던 한국 교회는 로뎀 나무 아래로 숨었다.
설상가상으로 한국 교회는 이런 영적 침체의 하향 곡선을 긋고 있던 시점에 코로나19 팬데믹의 직격탄을 맞았다. 가뜩이나 젊은이들이 교회에 나오지 않는 추세에 더해 팬데믹의 진원지 중 하나가 극단적 보수주의자들이 모인 곳으로 지명되면서 교회는 혐오스러운 반사회적 집단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30-40대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들을 감염병으로부터 보호한다는 이유로 교회에 보내지 않아 교회 학교는 더욱 어려움에 빠졌다. 

1948년 제헌국회의 시작을 기도로 연 한국 교회가, 민주화의 선봉에서 반독재와 싸우며 시민성으로 젊은이들을 매료시키던 한국 교회가, 경제화와 상업화 속에서 극단적 무한경쟁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건강한 재정의 원칙을 가르치며 사회를 이끌던 교회가 이제 영향력 있는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마치 로뎀 나무 아래의 엘리야처럼 도망치듯 무기력하다(왕상 19:3-4).2 

진단과 성찰의 시간으로의 초대

이런 시간에 한국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초대는 무엇인가? 갈멜산의 엘리야처럼 세상을 호령하던 한국 교회가 로뎀 나무 아래의 엘리야가 된 지금, 하나님은 한국 교회에 무엇을 원하시는가? 그것은 ‘멈춤’이다. 

“너는 나가서 여호와 앞에서 산에 (멈춰) 서라”(왕상 19:11). 

하나님이 엘리야를 로뎀 나무 아래 멈춰 세우신 것처럼, 하나님은 한국 교회를 그분의 산에 멈춰 세우길 원하시는 듯하다. 그리고 성장과 성취의 모드를 성찰과 진단의 모드로 바꾸기를 원하시는 듯하다. 갈멜산의 엘리야가 듣지 못했던 하나님의 비전과 사명을 로뎀 나무 아래에서 멈추었던 엘리야가 들었기 때문이다. 

“너는 네 길을 돌이켜 광야를 통하여 다메섹에 가서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의 왕이 되게 하고 너는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고 또 아벨므홀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왕상 19:15-16).

우리는 갈멜산의 엘리야처럼 세상을 향해 호령하고 일갈하기 위해 부름 받았다. 그러나 그런 갈멜산의 엘리야도 멈춰 서서 자신의 소명과 부르심을 다시 확인받아야 한다. 멈춰 서서 속도가 아닌 방향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엘리야를 로뎀 나무 아래에 멈춰 세우셨다. 그것처럼 하나님께서는 갈멜산의 엘리야와 같았던 한국 교회를 이제 멈춰 세우시기 원하신다. 

복음화, 제자화를 넘어 영성화로 부르심

가락재 영성원의 정광일 목사는 신앙 형성 과정을 3단계(복음화-제자화-영성화)로 설명한다.3 첫 단계는 복음화고, 복음을 받아들인 후에는 제자화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한국 교회의 성장 과정을 보면 그러했다. 

한국 교회는 빌리 그래이엄(Billy Graham) 목사 등과 함께 여의도 광장에서 100만 명 이상을 모아 ‘세계복음화대성회’를 치뤘다. 뿐만 아니라 1970-1980년대 산골 깊숙이 포진했던 기도원들은 복음으로 육체와 심령을 치유하며 저들의 가정과 나라 위에 ‘복된 소식’(福音)이 가득하길 염원했다. 90년대부터 한국은 제자화에 전념을 다했다. 평신도 제자 훈련, 일대일 양육 훈련 등의 이름으로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제자를 삼으라’라는 명령을 지상과제로 삼아 회사마다 신우회, 기독실업인모임(CBMC), 선교 활동으로 제자를 삼는 것에 전심을 다했다. 그런 열심을 긍휼하게 보신 하나님은 교회마다 복음화와 제자화를 통해 성도들을 예배당에 모이게 하셨고, 전 세계에 한국 선교사가 들어가지 않은 나라가 없을 정도로 한국 기독교는 급속히 팽창했다.

그러나 이제 성도들은 다른 영적 목마름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런 성장주의 기독교에 대해 궁금증을 갖게 됐다. “이렇게 가는 게 맞나?”, “내가 어디로 가고 있지?”, “나는 정말 무엇을 원하지?”, “난 누구지?”와 같은 그동안 달리기만 했던 성도들이 멈춰 묻기 시작했다. 성도들은 교회가, 목회자가, 세상이 던져 주면 누구보다 열심히 달리는 일에는 익숙했지만, 멈춰 서서 내가 정말 갈망하는 것이 무엇인지 질문해 보지 않고 살아왔다. 그러한 갈급함에는 사실, 더욱 하나님을 닮고 싶은 깊은 열망이 있다. 이렇게 하나님을 닮고자 하는 열망이 ‘영성화’다. 

프리드리히 폰 휘겔(Friedrich von Hugel)은 하나님 체험을 제도적, 이성적, 직관적 단계로 설명한다. 제도적 요소는 복음의 의미를 말한다고 볼 수 있는데 그것은 베드로적 영역의 복음화로 설명할 수 있다. 두 번째로 분석적이며 사변적 요소는 이성적으로 복음을 분석하고 따르는 제자화의 과정을 의미한다고 해석할 수 있는데 그것은 바울적 영역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직관적 요소로 하나님 사랑과 연합과 관련된 것으로 요한적 영역을 묘사한 것인데, 영성화의 과정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휘겔의 첫 단계인 베드로적 영역은 복음화 단계로 설명할 수 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라는 베드로의 고백 위에서 믿음은 견고한 반석 위에 서게 된다. 이것이 복음화다. 그리고 바울적 영역은 제자화 단계로 설명할 수 있다. 바울처럼 땅 끝까지 이르러 제자화 삼는 과정이 그것일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영성화다. 하나님의 사랑에 빠지는 단계, 하나님과 연합의 단계, 즉 아빌라(Teresa of vila)가 고백했던 것처럼 내 깊은 갈망을 하나님의 은혜의 빗방울로 채우는 단계가 영성화5다. 

멈춤

그렇다면 복음화, 제자화에 익숙한 한국 교회와 목회자, 성도는 어떻게 영성화로 나아갈 수 있을까? 그리고 어떻게 재복음화, 재제자화로 나아갈 수 있을까? 필자는 엘리야를 멈춰 세우셨던 하나님이 우리도 멈추기를 원하신다고 생각한다. 

어떤 이는 세상에서 흔들리며 사는 우리네 인생을 ‘지남철’(나침반)에 비유했다. 이유는 각자 다르지만 우리는 늘 흔들리며 살아간다. 이 흔들림 때문에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도 힘들게 할 때가 많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나침반처럼 지향점이 북쪽에 맞춰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세상 소리, 사람 소리, 돈이 주는 화려함에 내 마음 빼앗기지 않고, 흔들림 없이 꼿꼿하게 북쪽, 즉 예수님만 바라보고 싶은 것이 필자를 포함해 모든 성도의 마음일 것이다. 나침반과 같은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때가 언제인지는 나침반의 바늘이 언제 멈추는지를 보면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나침반의 바늘은 멈추면 흔들리지 않는다. 이처럼 우리도 멈춰야 한다.6 나를 움직이는 욕망, 나를 움직이는 삶의 엔진을 끄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 한다. 멈추지 않고는, 나를 몰고 가는 나의 엔진을 끄지 않고는 나를 진단할 수 없다.

멈추지 않으면 나도 알지 못하는 욕망이 나를 한 쪽으로 치우치게 만든다. 예수회 창립자였던 이냐시오 로욜라(Ignatius of Loyola)는 이런 치우치는 마음을 ‘편심’(偏心)이라고 명명했다. 편식, 편애에 쓰인 한자인 치우칠 ‘편’을 사용한다. 멈추지 않으면 치우치게 돼 있다. 어쩔 때는 돈이 우리를 흔든다. 어쩔 때는 사람들의 박수 소리가 우리를 흔든다. 흔들면 흔드는 대로 갈대처럼 흔들리는 것이 바로 인간의 마음이다. 그래서 로욜라는 ‘불편심’(不偏心)을 추구했다. ‘편리하지 않다’의 불편(不便)이 아니라 ‘치우치지 않는 마음’의 불편(不偏)을 추구했다. 로욜라는 ‘의식 성찰’의 시간을 통해 하루의 단 10분이라도 멈추기를 권면했다.

의식 성찰

어떻게 멈출 수 있으며, 그 멈춤이 영성 생활에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 로욜라가 제시하는 의식 성찰 시간은 단순하다. 잠자리에 드는 시간이나 이른 아침에 하루를 정리하며 멈추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로욜라는 이 시간을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시간, 내가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영성화 시간이라고 말한다.

로욜라는 이 시간에 어떻게 의식 성찰을 할 수 있는지를 5가지 항목으로 정리했다: 첫째, 이미 받은 은총에 대해서 우리 주 하나님께 감사를 돌려라. 둘째, 나의 죄를 인식하고 그것들을 청산할 수 있는 은총을 간구하라. 셋째,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이 시점까지 혹은 지난날의 각 시기에 따라 생각과 말과 행동에 대해서 자기 양심이 어떠했는지 자세히 성찰하라. 넷째, 나의 잘못에 대해서 우리 주님께 용서를 구하라. 다섯째, 하나님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잘못된 부분을 뉘우칠 뿐만 아니라 수정할 결심을 하라.7 그는 의식성찰이 있어야 영신 수련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강조한다.

필자는 교회 현장에서 의식 성찰을 지도하면서 아주 간략하게 매뉴얼화하고,8 그 이름을 ‘3·3·3’이라고 붙였다. ‘3·3·3’은 총 3번의 침묵을 3분씩 한다는 의미다. 

첫 번째 3분 침묵은 의식 성찰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준비는 ‘감사와 죄 고백’ 시간이다. 침묵 속에서 오늘 하루 내게 주신 은혜에 감사하고, 그 은혜를 거부한 나의 죄를 고백하며 다시 하나님과의 연합을 사모하는 것이다. 준비 과정을 마치고 이어지는 첫 3분 침묵 시간에는 내가 주인공이 돼 살아온 나의 하루를 되돌아본다. 내가 하루 동안 찍은 나의 영화 필름을 되돌린다는 마음으로 머물러 본다. 마치 영화 필름을 되돌려 보는 것처럼 잠잠히 나를 바라보는 시간이다. 

여러 사건이 스쳐지나 갈 것이고, 그로 인해 쏟아진 여러 감정이 나를 움직일 것이다. 그중 내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하나의 감정에 집중한다. 아마 억울함, 분노, 섭섭함, 기쁨, 기대 등의 감정에 집중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아주 피상적인 첫 번째 감정이다. 
두 번째 3분 침묵에서는 첫 3분 침묵에서 알아차린 감정 밑에 있는 ‘더 깊은 감정’(혹은 진짜 감정)을 알아차린다. 침묵하면서 더 깊이 들어가 본다. 예를 들면, 첫 침묵에서 오늘 만난 옛 친구와의 대화 중에 어떤 말이 ‘섭섭함’이라는 감정을 가져다 주었는데, 두 번째 침묵에서 더 깊은 감정으로 들어가 보니 ‘섭섭함’의 기저에는 그 친구에 대한 ‘열등감’을 깨달을 수 있다. 그러니 나의 지금 우울한 감정의 원인은 그 친구가 아니라 그 친구에 대한 나의 열등감, 즉 나에게 있음을 알아차린 것이다.

세 번째 3분 침묵은 첫 번째와 두 번째 침묵을 통해서 알게 된 내 감정을 주님께 그대로 올려 드리는 것이다. “참 힘드네요, 주님” “난 왜 이럴까요, 아직 멀었나요?”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있었습니까!” “무섭습니다, 아버지” “끝은 있긴 있는 건가요?” 등 나의 감정을 꾸밈없이 말하는 것이다. 그런 후 침묵하고, 하나님의 영이 나와 함께 계심을 느끼는 것이다. 

의식 성찰의 목적은 내가 내 감정의 검사가 되어서 낱낱이 조사하는 게 아니다. 그분의 사랑을 깊이 경험하는 것이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침묵 시간을 통해 나를 분석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의식 성찰의 목적은 나를 멈추는 것이다. 나의 엔진을 끄는 것이다. 그리고 나의 얕은 호흡을 좀 더 깊게 내쉬는 것이다. 더 깊게 내 호흡과 영을 내쉬고 들이마시며 하나님을 마시는 것이다. 다시 하나님과 호흡하는 것이다. 다시 하나님과 연합하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알아차린 감정을 그저 말하면 된다(〈표1〉).

〈표1〉 의식 성찰 3·3·3
준비: 감사와 회개
1. 첫 번째 3분 침묵
1) 지난 하루의 내 감정을 살핀다. 생각을 펼치지 않고, 하나님의 초대 안으로 들어간다. 
2) 그리고 침묵한다.
2. 두 번째 3분 침묵
1) 첫 번째 3분 침묵에서 발견한 감정의 이면에 있는 진짜 감정에 집중한다. 그 감정을 바라본다. 
2) 그리고 침묵한다.
3. 세 번째 3분 침묵
1) 두 번째 3분 침묵을 통해 알게 된 내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간다. 그리고 내 감정을 그대로 이야기하며 하나님과의 깊은 대화를 이어간다.
2) 유창한 말 잔치(기도)가 아니라 그분 안에 안기는 시간을 갖는다.
마무리: 감사와 사랑 고백으로 정리한다.
(주의: 모든 성찰은 10분을 넘기지 않도록 한다.)
 

영성 진단 Q&A

이렇게 멈추어 의식 성찰을 통해 나의 엔진을 끄고 직면하면 나를 정확히 진단할 수 있다. 내가 정말 갈망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정말 붙들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왜 특정한 그것 또는 그 사람에 연연하는지, 내가 왜 그 자리에 오르려고 하는지 보이기 시작한다. 이런 멈춤이 없다면 보이지 않았던 것이, 이제 보이기 시작한다. 고은 시인의 시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9 처럼 힘을 빼고 멈춰서니 올라갈 때 보이지 않았던 그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다음 〈표2〉는 영성 진단을 위한 설문지다. 중요한 것은 설문에 임하는 태도다. 이 설문의 목적은 부족한 부분을 체크해서 ‘성공의 괴물’이 되기 위함이 아니라 더욱 힘을 빼고 내 갈망을 직면해 하나님의 사랑 안에 들어가기 위함임을 명심하자. 특히 이 설문지는 구역이나 셀 같은 공동체 모임에서 진행하면 더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 주
1)    “이세벨이 사신을 엘리야에게 보내어 이르되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반드시 네 생명을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과 같게 하리라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한지라”(왕상 19:2).
2)    “그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자기의 생명을 위해 도망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자기의 사환을 그 곳에 머물게 하고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왕상 19:3-4).
3)    정광일, “열린 영성 마을” 강의 중, 2021년 3월 24일.
4)    도로테 죌레, 정미현 옮김, 《신비와 저항》(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2006), p. 18. 
5)    아빌라는 나의 힘이 완전히 빠지는 깊은 수동성의 은혜에 하나님의 온전한 은총을 경험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제 하늘에서 비가 내려서 온 정원에 스며들어 흠뻑 적셔 주는 이 물입니다. 주님은 물이 필요할 때마다 비를 멈추지 않으실 것이고, 정원사는 더 이상 수고하지 않고 그 안에서 기뻐할 것입니다.” 아빌라의 테레사, 고성, 밀양 가르멜 여자 수도원 역, 《아빌라의 성녀 테레사: 자서전》(분도출판사, 2015), p. 184. 
6)    이경희, 《멈춤》(동연, 2021), p. 30.
7)    이냐시오는 첫 번째 단계의 영신 수련에서 의식 성찰법을 제시한다. 이냐시오는 의식 성찰이 영신 수련으로 나아가는 준비요 전제라고 설명하며 중요하게 다룬다. 지금도 예수회에서는 하루를 마무리하며 자신을 돌아보는 의식 성찰을 아주 비중 있는 영성 수련으로 생각한다. 참고: 유해룡, 《하나님 체험과 영성 수련》(장로회신학대학교출판부, 1999), p. 69.
8)    아래의 ‘의식 성찰’은 다음 책을 인용했다. 이경희, 《멈춤》(동연, 2021), pp. 126-128.
9)    고은, 《순간의 꽃》(문학동네, 2001), p. 50.

 

이경희 소망교회 부목사. GTU(Ph.D.), 공저로 《백투더 클래식》, 《오늘부터 시작하는 영성 훈련》이 있다. 필자의 다른기사 keyboard_arrow_r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