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와 신학

  • {{x.scr_name}}
  • 미분류

특집 2021년  05월호 아동학대란 무엇인가? 아동학대 예방과 교회의 역할

아동학대에 대한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

최근 들어 믿을 수도 없을 만큼 잔인한 아동학대 사례가 계속 보고되고 있다. 아이를 남겨 두고 혼자만 이사해서 결국은 3세 여아가 숨진 채로 발견된 구미 사례, 여행 가방에 아이를 넣어 숨지게 한 천안 사례, 장기가 파열될 정도의 매질과 물고문 등으로 자녀를 학대해 사망케 하고는 다른 자녀가 죽인 것으로 자백하게 한 칠곡 사례 등 거의 매년 끊임없이 부모의 학대로 어린이들이 세상을 떠나가고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몇몇 극단적인 잔인한 사례들이 계모나 계부에 의해서 벌어져서, 일반인들은 그들이 친부모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동권리보장원에서 발행한 〈2019년 아동학대 주요 통계〉에 따르면, 아동학대로 판단된 3만 45건 중에서 친부모에 의한 경우가 72.3%였고, 계부나 계부에 의한 경우는 3.0%에 불과했다. 

또한, 어린이집에서 원아들을 상대로 멍이 들 정도로 때리거나 밥을 토할 때까지 억지로 먹이고 아이를 내동댕이쳐서 골절을 입힌 예도 있다. 아이돌보미가 신생아의 팔만 잡아 끌어 올리거나 머리에 충격이 될 만큼 심하게 흔든 예도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이런 사례들을 보면 자격 없는 사람들이 자신의 자녀가 아니라서 함부로 어린아이들을 학대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아동학대에 관한 통계에서는 친부모에 의한 아동학대가 가장 많고(72.3%), 어린이집이나 기타 아이돌보미, 초·중·고등학교 교직원 등, 대리 양육자에 의한 학대는 16.6%였다.

극단적이고 잔인한 아동학대 사례가 보고될 때마다 우리 사회는 일제히 분노하며 가해자들에 대한 엄중 처벌을 외친다. 그런데 가해자들에 대한 엄한처벌만으로 우리의 책임을 다하는 것일까? 아동학대는 잔인하고 무자비한 범죄자들이 하는, 우리와 같은 선량한 일반인, 더욱이 기독교인과는 무관한 일이니까 그들을 우리 사회와 격리하고 죗값을 치르도록 하면 되는 것일까? 그렇게 하면 우리 사회에서 아동학대가 없어질까? 물론, 아동학대 범죄에 대한 처벌을 공정히 엄격하게 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동안 아동이 같은 정도의 상해를 입었어도 친부모에 의한 상해일 경우에는 타인에 의한 경우보다 처벌을 덜 받기도 했다. 피는 물보다 진하며, 부모의 사랑은 한이 없고, 부모는 자식이 잘되게 하려고 매를 드는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자녀에 대한 심각한 신체적 학대는 체벌로, 이로 인한 상해나 사망은 사고 정도로 이해해 적절한 처벌을 하지 못했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아동학대 사건은 심각한 범죄로 인식하고 이에 대한 처벌을 엄중하게 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는 2014년부터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을 제정해 과거와는 달리, 보호자가 자녀를 심각하게 학대하는 것을 범죄로 규정하고 처벌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과연 그것으로 충분할까?

무엇이 아동학대인가?

이제 우리는 아동학대에 대해서 좀 더 진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성숙한 기독 시민으로서 우리는 사회에서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는 아동학대와 관련하여 아무런 책임이 없을까? 아무런 상관조차 없을까?

아동학대에 대한 이해를 조금 깊이 하고 보면 이 질문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더욱이 기독 시민으로서 아동학대에 관한 책임이 전혀 무관한 사람은 없다. 아동학대는 위에 열거한 극단적인 상황만으로 규정되지 않는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먼저, 언론의 속성상 극단적인 학대 사례가 자극적으로 보도됨으로써 일반인들이 아동학대를 자신들과는 전혀 상관없는 가학적인 정신장애인이나 잔인무도한 범죄인만이 하는 행동으로 잘못 이해하게 하는 듯하다. 

처벌을 받을 수위에 있는 아동학대는 범죄로 규정되지만, 아동복지법상 ‘아동학대’는 ‘보호자를 포함한 성인이 아동의 건강 또는 복지를 해치거나 정상적 발달을 저해할 수 있는 신체적·정신적·성적 폭력이나 가혹 행위를 하는 것과 아동의 보호자가 아동을 유기하거나 방임하는 것’이라고 규정한다. ‘아동’은 18세 미만인 사람을 말하며, ‘보호자’란 친권자, 후견인, 아동을 보호·양육·교육하거나 그러한 의무가 있는 자 또는 업무·고용 등의 관계로 사실상 아동을 보호·감독하는 자를 말한다(아동복지법 제3조). 18세 미만을 아동으로 규정하여 성인의 보호가 필요한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아동학대의 주체에 보호자를 포함한다. 보호자는 마땅히 아동을 안전하게 보호하며 건강하게 성장·발달할 수 있는 양육 환경을 제공해야 하고, 이를 저해하는 행위는 아동학대로 규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동의 건강 또는 복지를 해치거나 정상적 발달을 저해할 수 있는 행위’가 무엇인지 규정하는 일이 쉽지 않다. 실제로 아동보호전문기관1에 아동학대로 신고되어 가해자로 판정이 된 대부분의 부모는 아동을 훈육하기 위해서 체벌을 가한 것이라고 말한다. 여전히 많은 사람이 자녀를 올바로 키우기 위해서는 매를 아끼지 말라고 하고, 성경에도 자녀의 훈육을 위해 매를 아끼지 말라거나, 채찍과 꾸지람이 지혜를 준다는 등의 말씀이 있다(잠 13:24; 22:15; 23:13-14; 29:15). 또한 가정과 학교에서 아동의 훈육과 교육을 위해서는 체벌이 필요하다고 믿는 사회적 분위기도 존재한다. 

과연 어떤 행위는 아동을 위한 체벌이고, 어떤 행위는 아동에게 해가 되는 학대일까? 회초리로 엉덩이를 때리는 것은 체벌이고, 손바닥으로 뺨을 때리는 것은 학대일까? 회초리로 엉덩이를 100대를 때린다면 학대가 될까? 그렇다면 몇 대까지 때리는 것이 아동을 위한 체벌이고, 몇 대부터 학대가 되는 것일까? 같은 행위라도 아동이 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도 중요할 것이다. 한 대를 맞아도 심각한 심리적 상처를 받아 정서적인 어려움을 겪게 된다면 학대로 봐야 하지 않을까? 이처럼 아동의 올바른 성장과 발달을 위한 체벌과 이를 저해하는 학대의 구분은 쉽지 않다. 역사적으로도 체벌과 학대에 관한 인식은 매번 변해 왔고, 문화적으로도 다르며, 개인마다 다르기도 하다. 

어디까지가 체벌이고 어디부터가 학대인지 구분이 쉽지 않다는 것은 어쩌면 모든 부모를 학대 부모와 비학대 부모로 양분할 수 없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대부분은 애정 어린 양육을 해 온 부모라고 해도 일생에 한두 번은 자녀에게 상처를 주는 행동이나 말을 했을 수 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한두 번의 행동이나 말 때문에 자녀와 돌이킬 수 없는 관계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학대와 애정 어린 훈육을 단순히 이분법적으로 양분하기보다는 부모들의 모든 훈육 행동을 연속선상에 놓고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왼쪽 끝에 언론에서 보도되는 극단적인 아동학대 행위를 놓고, 오른쪽 끝에 가장 바람직한 애정 어린 훈육 행동을 놓고 선을 그어 보자. 모든 부모의 양육 행동은 연속선상의 어떤 점에 위치할 것이다. 자녀를 학대하여 사망에 이르게 한 부모라 하더라도 때로는 오른쪽 점에 속하는 양육 행동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늘 오른쪽 끝에 속하는 행동을 하는 부모도 중간을 넘어 왼쪽 점에 속하는 행동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물론 우리 사회가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왼쪽 극단의 행동만을 하는 부모에 대해서는 공정하게 처벌해야 마땅하지만, 이런 부모는 상대적으로 소수에 불과하다. 매년 아동학대로 신고받아 조사를 받고 처분을 받는 대부분의 학대 행위자들은 이렇게 연속선상에 그들의 모든 양육 행동을 놓고 볼 때, 중간과 왼쪽 점에 속하는 행위를 주로 하는 상황이며, 적절한 훈육 방법을 습득할 기회가 주어지면 오른쪽 점으로 옮겨 갈 수 있고, 옮겨 가게 해야 한다. 적절한 치료적 개입 이후 자녀를 학대하던 부모 5명 중 4명이 학대를 멈췄다는 보고가 있다.

아동학대의 유형

아동학대의 정의에서 이해해야 하는 또 다른 문제는 아동학대의 유형이다. 극단적인 아동학대 범죄 사건에서 주로 신체적 가혹 행위나 성폭력을 다루기 때문에 그러한 행위만을 아동학대로 이해하기 쉽다. 하지만 앞서 아동복지법상 아동복지의 정의에서 언급한 것처럼 아동학대의 유형에는 신체적·성적 폭력뿐만 아니라 정신적 폭력이나 아동을 유기하거나 방임하는 것까지를 포함한다. 

신체학대는 보호자를 포함한 성인이 아동에게 우발적인 사고가 아닌 상황에서 신체적 손상을 입히거나 신체 손상을 허용한 모든 행위를 말한다. 예를 들면 아동을 때리거나 차거나, 도구로 상처를 주는 행위 등이 포함된다. 특히 1세 미만의 영아를 심하게 흔드는 행위는 심각한 뇌 손상으로 사망에 이르게 할 수도 있는 학대 행위다.

정서학대는 언어적으로 모욕을 주거나 욕을 심하게 하거나 위협해서 정서를 해치는 행위로 잠을 재우지 않거나, 벌거벗겨 내쫓거나, 시설 등에 버리겠다고 위협하거나, 형제나 친구 등과 비교하고 차별·편애하는 행위, 미성년자 출입금지 업소에 아동을 데리고 다니는 행위 등이 있다. 그밖에 아동이 가정 폭력 장면을 목격하게 하는 일도 자주 발생하지만 아동학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정서학대 상황이다. 

성학대는 자신의 성적 충족을 목적으로 행하는 모든 성적 행위를 의미하는데, 직접적인 성폭력이나 성추행뿐만 아니라, 아동에게 성적인 노출을 하거나 성매매를 시키거나 성매매를 매개하는 행위를 포함한다.

방임은 적극적인 위해를 가하는 다른 유형의 학대와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일반인들에게 그 위험성이 덜 알려진 유형인데 물리적 방임, 교육적 방임, 의료적 방임, 유기로 구분된다. 물리적 방임은 아동의 보호자가 아동에게 필요한 의식주를 제공하지 않거나 불결하거나 위험한 환경에서 지내도록 하는 것이다. 교육적 방임은 특별한 사유 없이 초등학교와 중학교까지의 의무교육을 받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최근에는 홈스쿨링을 한다는 명목으로 자녀를 학교에 보내지 않고 방치하는 사례가 종종 발생하고 있다. 의료적 방임은 아동에게 필요한 의료적 처치를 하지 않는 행위로서 우리나라에 아동학대 관련법을 제정하게 된 계기가 되었던 신애 사례(1999년 방송 보도)를 들 수 있다. 완치율이 상대적으로 높았던 소아암에 걸려 있던 아동을 부모가 기도로 치료하겠다며 의료적 치료를 거부해서 결국은 사망하게 한 안타까운 사례였다. 

한편, 아동에게 필요한 행위를 하지 않는 것을 방임이라고 하는데, 유기는 이를 넘어서 아동을 버리는 행위를 말한다. 생존 능력이 없는 영유아를 유기하는 것은 아동을 사망에 이르게 하며, 이를 막고자 베이비 박스가 생겨났다. 하지만 베이비 박스는 아동을 유기하는 통로를 만들어 준다거나, 아동의 입양을 어렵게 한다는 등의 문제가 지적되고 있다.

2019년 전국 아동학대 통계에 따르면, 한 해 동안 총 4만 1389건이 아동학대 의심으로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신고되었다. 이 중 3만 45건이 아동학대로 판정되었는데, 이는 전년도 대비 약 13.7% 증가한 것이다. 아동학대는 특성상 어떤 한 가지 유형의 학대만 행해지기보다는 중복적으로 행해지는 경향이 있다. 신체학대와 정서학대가 함께 행해진 경우가 38.6%였고, 모든 종류의 중복학대를 다 합치면 48.2%나 되었다. 그 다음 단일 유형의 학대로 정서학대가 25.4%, 신체학대가 13.9%, 방임이 9.6%, 성학대가 2.9%의 순으로 보고되었다 . 

아동학대가 끼치는 영향

다양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매년 증가하는 아동학대는 학대받은 아동에게 즉각적으로는 신체적 상처나 고통을 주며 의료적 처치를 필요로 하게 한다. 하지만 심각한 경우라면 영구적인 신체 장애나 뇌 손상, 질병으로 남게 될 수도 있고 극단적으로는 사망에 이르게 한다. 또한 눈에 보이지 않는 심리·정서적 후유증은 평생 지속되기도 한다. 

아동이 건강하게 성장·발달하기 위해서는 성인 보호자의 안전한 보호와 애정 어린 보살핌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학대는 아동에게 안전한 환경을 제공하지 못하고, 적극적으로는 아동의 안전을 위협한다. 또한 아동에게 애정 어린 보살핌을 제공하지 못하고, 애정을 철회하거나 적극적으로는 경멸·증오·무가치함을 느끼게 함으로써 자아존중감이 낮아지게 만든다. 이는 정서적으로 성장을 멈추거나 손상을 입게 돼서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으로 자라게 한다.

최근 보고된 한 연구에 따르면, 아동기의 학대는 뇌 발달에 영향을 주며, 학대를 경험하지 않은 일반인과 비교해서 뇌의 기능이나 구조에서 확연한 차이가 있다. 이는 단지 아동기 학대 경험의 부정적인 영향이 아동기에만 단기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이나 충동을 제어하는 좌전대상이나, 갈망 등의 내적 느낌과 충동을 통합하고 조정하는 전두엽 우측 섬엽, 또 자기 중심적 사고과 연관된 영역인 우측 쐐기전소엽의 발달에 영향을 주어서 성인기 대인 관계나 심리·정서적 문제를 일으키게 하고, 공격적인 행동이나 범죄 행동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2

아동기 학대 경험의 후유증에 관한 이와 같은 실증적인 연구 보고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왜 어떤 청소년은 사소한 시비에도 잔인한 폭력으로 대응하는 것일까? 왜 어떤 부모는 자녀에게 충동적인 폭력을 휘두르는 것일까? 왜 어떤 범죄자는 피해자에게 잔인한 고통을 주고도 죄책감이 없는 것일까? 물론 모든 폭력과 범죄의 원인이 아동기 학대 경험에서 온다고 할 수는 없지만, 아동기의 학대 경험은 적절한 치료적 개입을 받지 못하면 감정이나 충동을 통제·통합하지 못하거나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하게 하는 원인이 된다.

결국 아동기 학대 경험은 장기적으로 영향을 미쳐서 폭력적인 성인이 되게 한다. 부모가 되면 자녀나 배우자, 또는 아동기에 자신을 학대하던 부모를 학대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를 ‘학대의 세대 간 전승’이라고 한다. 학대받은 경험이 학대를 하게 하는, 즉 가정 내에서 부모로부터 학대를 받은 아동이 사회적으로 청소년 폭력이나 비행을 저지르게 되고, 성인기에 범죄자가 되고, 또 이번 세대에서 행한 폭력이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양상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물론, 아동기에 학대 경험을 한 사람이 모두 성인기에 학대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성인기에 폭력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의 80% 이상은 아동기 학대를 경험했다는 보고도 있다.

아동학대 예방과 개선을 위해

아동기 학대 경험의 영향에 대해 이처럼 간략히 살펴보아도 청소년의 잔인한 행동에 대해 무조건 처벌 연령을 낮추고 강력한 처벌을 해야 한다거나, 자녀를 학대하는 부모는 무조건 엄벌에 처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 조심스러워진다. 이들이 혹시 아동기 학대 경험의 피해자는 아니었을까 신중하게 검토해 봐야 할 것이다. 

물론 누구나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하지만, 아동기에 심각한 학대를 경험하고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한 채, 제대로 된 부모 노릇이 무엇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부모가 되었다면, 자신이 받은 아동기의 경험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부모로부터 학대를 받아서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준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청소년을 무조건 처벌만 하는 것은 공정하고 효과적인 대응일 수 없다. 

언론에 보도되는 정도의 극악무도한 범죄자를 옹호하려는 것이 아니다.  2019년 아동학대로 판정된 3만 45건의 사례가 모두 이런 극단적이고 잔인한 아동학대는 아니므로 보다 적극적으로 학대를 중단할 수 있는 적극적인 치료적 개입을 위해 사회적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1874년 뉴욕에서 처음으로 메리 앨랜(Mary Ellen)이라는 아동이 학대받은 아동으로 발견되어 아동학대에 대한 법률을 제정하고 제도를 만들기 시작했다. 영국에서도 빅토리아 클림비(Victoria Climbie)라는 아동의 부모가 여러 주로 이사를 다니면서 자녀를 학대했고 결국 사망에 이르게 했다. 이를 계기로 아동학대 사례에 대해서 전국적인 공조 체제를 구축했다. 아동학대에 대한 적극적이고 체계적인 노력을 하고 있는 나라들조차 아동의 희생으로 아동학대 예방 체계를 시작하고 개선해 왔다. 어떤 아동도 다른 아동을 위해 희생되어서는 안 되지만, 아동의 희생이 단지 가해자 처벌로 끝내는 것은 더욱 안 될 일이다. 

상처받은 아이들, 상처받은 어른들이 많은 사회에서 나만, 우리만 행복할 수 있을까? 지금의 나는 단지 내 능력과 의지로 이 자리에 있게 된 것일까? 아름다운 꽃들이 지천에 피는 5월에 우리 사회에 태어난 모든 아이들이 안타깝게 지지 않고 꿈을 활짝 펼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자녀로 귀하게 양육할 책임이 있음을 알고 각자의 처소에서 학대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1)    2020년부터는 아동학대에 대한 공적 책임을 강화하고자 수사기관과 아동학대전담공무원이 아동학대범죄 현장에 출동하여 조치하도록 하고 있다.
2)    출처: Teicher, M. H., Samson, J. A., Anderson, C. M., & Ohashi, K., “The effects of childhood maltreatment on brain structure, function and connectivity,” Nature Reviews Neuroscience, 17(10) (2016), pp. 652-666.


 

박은미 서울장신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연세대학교대학원(Ph. D.). 공저로 《아동복지론》, 《사례관리의 이해》 등이 있다. 필자의 다른기사 keyboard_arrow_r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