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와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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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 2021년  01월호 교회 개척자와 재정 양현표 교수의 교회개척론 시리즈(5)

목사가 가난하게 사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렇게 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는 본다. 교회 규모의 크고 작음이나 사례비의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목사가 그 문화권에서 가난하게 산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소리다. 교회가 부자가 되고 목사가 세상의 상류층이 되는 것은 결코 성경적인 현상이라고 볼 수 없다. 많은 것을 소유하지 않은 단순한 삶을 사는 것이 좋다. 가난하게 산 결과로 혹여라도 남는 것이 생겼다면, 그것을 세상으로 흘려 보내는 것이 목사의 삶이라고 본다.

하지만 목사가 생존의 위협을 받을 정도로 가난해서는 안 된다. 목사와 그의 가족의 삶을 위협받을 정도의 가난이라면 매우 위험한 현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목회가 활발하게 되려면 목사의 가정이 경제적으로 버틸 수 있어야 한다.

교회 개척 현장에서 회자되는 매우 불경스러운 한마디가 있다. 그것은 “월세가 소명보다 힘이 더 세다”라는 말이다. 돈의 위력이 소명의 능력보다 강력하다는 현장의 씁쓸한 자조 섞인 푸념이다. 그렇다. 교회 개척자의 생존이 가능하지 않으면 교회 개척이 가능하지 않다.

신약성경에 나타난 사도들의 교회 개척을 보면, 교회 개척에 있어 돈이 그렇게 중요한 요소가 되지 않았다. 1-3세기에는 손님을 대접하는 사회적 풍습이 있었고, 교회는 가정 교회 형태의 소규모 교회였으며, 모임 장소는 성도의 가정집 혹은 공공장소였다. 이러한 사실은 당시 교회 개척에 큰 비용이 소요되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따라서 당시 교회 개척자들은 기존 교회들의 작은 후원만으로도(빌 3:15-16), 혹은 바울처럼 스스로의 노동을 통해서만도(행 20:34-35) 생존과 교회 개척에 별 무리가 없었다.

필자는 오늘날 교회 개척에도 초기 교회의 이러한 원리가 적용되어야 한다고 절대적으로 믿는다. 즉 사도적 교회 개척이야말로 성경적인 교회 개척이라는 것이다. 사도적 교회 개척은 돈을 들여서 하는 개척이 아니다. 다만 오늘날 사도적 교회 개척을 실행하면서 한 가지 고려해야 하는 것은, 교회 개척자의 생존 문제만큼은 당시 사도들의 상황과 많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오늘날 교회 개척자의 생존은 그리 쉽지 않다. 저절로 해결되지 않는다. 따라서 교회 개척자는 대안을 갖고 교회 개척에 임해야 한다. 이제 성경이 허용하는 목사의 생존 방법을 먼저 살펴보고, 교회 개척자가 어떻게 재정을 마련할 수 있는지 그 방법과 그에 따른 유의사항 등을 풀어보려고 한다.

목사가 생존하는 세 가지 형태

첫 번째는 전업(한 직업)/전액 보조(Single-Vocational/Fully Funded) 형태의 생존이다. 목사가 자신의 생존을 전적으로 교회에 의존하는 형태이다. 교회가 충분한 재정적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목사의 생존을 전적으로 책임을 지는 형태다. 가장 바람직한 목사 생존 형태라고 판단되며, 모든 교회 개척자가 목표로 삼는 생존법이라고 하겠다.

두 번째는 믿음 의존(Faith Mission)1 형태의 생존이다. 이 형태는 목사가 자신의 생존을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적 공급에 의존하는 것이다. 필자는 이러한 형태의 생존법을 ‘까마귀 의존’ 생존법이라 부른다. 하나님께서 까마귀를 통해 엘리야에게 음식을 공급하셨던 것처럼(왕상 17:4-6), 하나님이 공급해 주시면 살고, 그렇지 않으면 죽는 형태다. 

세 번째는 겸업(두 직업)/부분 지원(Bi-Vocational/Partially Funded) 형태의 생존이다. 이 형태는 목사가 자신의 생존을 교회가 완전히 해결해 주지 못하기에 교회 밖의 다른 직업에 의존하는 것이다. 이러한 형태의 생존법을 사용하는 목사를 가리켜 흔히 겸직 목사, 자비량 목사, 전문직 목사, Tent-Making 목사, 이중직 목사 등으로 부른다. 

이상의 세 가지 형태 중에서 하나 혹은 그 이상의 형태를 통해 목사는 생존한다. 중요한 사실은 이 세 가지가 모두 성경의 지지를 받는다는 점이다. 물론, 지역과 문화에 따라 어느 형태는 금기시되고, 어느 형태는 장려되는 등의 차이점은 분명 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는 겸업(두 직업) 목사를 터부시하는 대표적인(필자의 견해에로는 유일한) 나라다. 그럼에도 이 세 가지 목사 생존 형태는 모두 성경적이다.

전업 목사는 성경의 여러 곳에서 그 정당성을 인정받는다(고전 9:7; 딤전 5:18). 믿음 의존 목사의 대표적인 경우는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엘리야이며, 하나님의 신비적이고 예상하지 못한 직접적 개입에 의해 생존했던 성경 속 인물들과 사건들은 허다하다(출 16:31; 왕상17:16; 요 6:13). 겸업/두 직업 목사의 성경적 근거는 사도 바울이 그 자체이며, 성경의 여러 인물들이 자기의 직업을 갖고 있었고, 교회사 속에서 겸업 목사의 형태를 찾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동시에 이 세 가지 생존 형태 모두가 위험한 요소들을 내포한다. 전업 목사는 생존이 보장된다. 따라서 쉽게 교만해질 수 있으며,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다. 믿음 의존 목사는 위험하고 과격한 형태의 생존 방법에 의존한다. 많은 믿음 의존 목사들이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목회를 포기해야 하며, 어떤 경우에는 소명이 회복되지 못하고 그들의 가정이 해체되기도 한다. 두 직업 목사는 말 그대로 두 개의 직업을 갖는다. 당연히 돈과 명예에 빠질 수 있는 위험성을 지니며 목회에만 전념할 수 없다는 단점을 가진다. 

교회 개척자의 세 가지 재정 마련 방법

1.    교회 개척자가 스스로 재정을 마련하는 방법
이 방법은 교회 개척자 본인이 무한 책임을 지고 본인과 교회의 생존을 위한 모든 재정을 마련하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축적된 개인 자산을 사용하든지 아니면 스스로 일해서 해결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축적된 자산을 활용해 교회 개척을 하는 경우는 매우 특별한 경우다. 대부분 본인(혹은 배우자)이 일해서 해결하는, 소위 말해 겸업/두 직업 목사(Bi-Vocational Pastor) 형태다.

비커(Dennis W. Bicker)는 두 직업 목사를 “교회에서 유급 목회 위치에서 봉사하면서 동시에 다른 개인적 소득원을 가진 사람”2이라고 정의했다. 두 직업 목사는 자신의 소명을 성취하기 위해서 생활비의 일부분 혹은 전체를 목회 이외의 직업을 통해서 조달하는 목사를 말한다. 물론 다른 직업을 반드시 생존만 위해서 택하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 “생계형 두 직업 목사”겠지만, 소명 자체가 교회에 생계를 의존하지 않는 것이라고 확신하는 “자비량형 두 직업 목사”가 있으며, 어느 지역의 복음화를 위해 교회보다 직업 현장에 먼저 뛰어드는 “전략형/선교형 두 직업 목사”가 있고, 지역의 이슈나 토산물 공동 판매에 개입하는 “지역 공동체 운동 참여 두 직업 목사” 등 목적에 따라 두 직업 목사를 다양하게 구분할 수 있다. 

교회 개척과 관련한 재정을 교회 개척자가 스스로 모색해야만 하는 구조는 실상 바람직하지 않다. 교회 개척은 개인 소명자들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교단이 주관해야 할 일이다. 필자가 경험한 어느 미국 교단의 경우, 교단 차원에서 교회 개척자를 선별하고 훈련해 가장 적절한 지역에 적어도 3년의 생존이 가능한 재정과 함께 파송한다. 상당히 부러운 시스템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교회 개척은 개인 소명자들의 책임으로 여겨진다. 개척자 개인이 모든 재정을 확보해야만 하는 무한 책임을 떠안고 있다. 현실적으로 교단적 지원은 매우 미미하다. 거의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다(교단 재정은 교회 개척, 목회자 연장 교육, 그리고 목사 후보생 교육에 투자되어야 한다고 필자는 주장한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교회 개척이 성공해도 문제가 되고 실패해도 문제가 된다. 성공하면 교회 개척자의 공로가 강조될 뿐만 아니라 교회 개척자가 교회에 대한 소유욕을 갖게 된다. 결과적으로 제왕적 목회를 추구하게 되며, 은퇴할 때에 응분의 보상을 요구하게 되는 불상사가 일어난다. 반면, 실패했을 경우 엄청난 빚을 떠안고 인생의 패배자가 되어 수면 밑으로 가라앉는다. 개척자 본인은 재기할 수 없을 정도의 소명감 상실을 경험하고, 가족은 깊은 상처와 패배감으로 심한 경우 우울증과 같은 정신적 질병을 경험한다.

꿈이 있으면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재정을 준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거리에서 조그마한 좌판 장사를 계획하는 사람도 그것을 위한 자본을 저축한다. 일을 이루기 위해 재정을 미리 준비하는 것은 인간의 당연한 행동이고 보편적인 책임이다. 그런데 목회를 준비하는 목회자 후보생을 비롯한 목사들만은 미래를 위한 자본을 준비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목회는 거룩하고 영적인 일이지만, 그 목회는 당연히 땅 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곧, 목회가 땅 위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은 반드시 재정이 관여됨을 의미한다. 따라서 목회를 준비할 때에 당연히 재정 문제도 포함시켜야 한다. 전도사 시절부터 목회 비용을 준비해야 한다. 비록 그것이 얼마 되지 않는다고 하여도 그 위에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이다. 그것이 인간의 최소한의 의무이자 책임이다.

2.    여러 후원을 통해 재정을 마련하는 방법
재정 후원을 받는 것은 하나님 나라 자원을 공유한다는 차원에서 성경적이다. 하지만 재정 후원에는 언제나 ‘관계’가 동반되기에 유의할 사항 또한 많다고 하겠다. 교회 개척자의 가장 일반적인 후원자는 개인적 관계 속의 후원자들로서 혈연에 기초한 가족, 친구, 친지 등일 것이다. 또한 사역을 통해 관계를 맺은 성도들도 일반적인 후원자에 포함된다. 하지만 이러한 개인적인 후원자들과의 지속적인 관계를 위해서 지혜가 필요함은 당연하다. 지나치게 부담을 주거나 강요를 하게 되면 관계가 깨질 수도 있다. 후원 때문에 사람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교회 개척자는 기억해야만 한다. 또한 이전에 섬겼던 교회의 성도에게 개인적인 후원을 받을 경우 더욱 주의가 필요하다. 자칫 후원자가 속한 교회의 담임목사와의 관계까지도 어긋날 수 있기 때문이다. 후원금에만 지나치게 매달림으로 말미암아 후원자와의 관계가 깨지면 안 된다는 것이 중요하다. 재정 후원을 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목회 윤리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모교회의 후원, 개인적으로 관계된 교회의 후원, 그리고 노회나 총회의 후원 등을 확보하는 것도 교회 개척자에게 매우 중요한 재정 확보 방안이다. 물론 이러한 기관 후원의 경우 일반적으로 기한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안이 필요함이 사실이다. 최근에는 크라우드펀딩(crowdfunding)을 통해 재정을 마련하는 새로운 방법이 자리 잡아간다. 온라인을 통한 소액 후원자를 모집하는 것이다. 교회 개척자의 교회론과 목회 철학 그리고 비전 등을 공유함으로 이에 동의하는 자들의 후원을 구하는 것이다. 문제는 후원하는 그들이 누구인지 모르며 후원금이 어떤 돈인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자칫 이단에 속한 돈이 위장되어 개입할 소지를 주는 위험성도 있다.

교회 개척자가 개인이나 기관에 후원을 요청할 때 주의사항이 있다. 첫째는 후원을 요청하는 데 주저하지 말고 다소 공격적이어야 한다. 후원 요청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요청하면 누군가가 후원을 할 것이다. 누군가가 스스로 알아서 도와주지는 않는다.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교회 개척자가 해야만 하는 일이다. 문제는 자원(Resource)이 없다거나 후원자가 되려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교회 개척자가 후원을 요청하지 않거나 잘못 요청하는 것이다(약 4:2-3). 교회 개척 전문가 스테쳐(Ed Stetzer)는 말하기를 “하나님의 백성이 교회 개척자의 삶의 헌신이 그들의 후원과 물질적 도움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면 그들은 참여할 것이다”3라고 했다.

둘째는 땀 흘리는 노력이 필요하다. 어떤 이들은 자신은 기도만 했을 뿐인데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물질을 제공해 주셨다고 간증한다. 참으로 귀한 간증이다. 그런데 더 가치 있는 간증이 있다. 그것은 교회 개척자가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발로 뛰어다니면서 확보했다는 간증이다. 땀 흘려서 후원을 받는 것은 자신의 기질과 자존심까지도 극복해야만 하는 사명 감당의 위대한 몸부림이다. 어떻게 보면 재정을 위해 기도만 하는 것, 그것이 가장 쉬운 방법이며 재정 공급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가장 그럴듯한 명분이다. 당연히 기도해야 한다. 그러나 기도만 하는 것은 바른 신앙인의 모습이 아니다. 최선을 다한 준비와 지혜로운 전략을 통해 후원을 요청해야 한다.

셋째는 교회 개척자가 후원을 요청할 때 마치 구걸하듯 하는 모습이서는 안 된다. 절망스러운 형편을 호소하면서 애걸하듯 도움을 요청하지 말라는 것이다. 동시에 하나님을 들먹이면서 겁박하거나 의무감을 강조하거나 죄책감을 갖게 하거나 조작적인 방법(manipulation)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할 경우 당장은 한 번의 재정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두 번의 도움은 없을 것이며 조만간 인간관계까지도 끊어질 확률이 대단히 높다. 재정 후원 요청은 당당하게, 열정적으로, 그러나 겸손하게 자신을 통해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해 오셨고 앞으로 하실 일에 대한 생동감 있는 간증이나 비전을 공유하는 것이다. 비전은 전염되는 법이며 비전이 공유될 때 물질적 후원이 이루어진다.

3.    교회 자립을 통한 재정을 마련하는 방법
이 방법이야말로 재정 마련의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라 하겠다. 그런데 “교회 자립”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교회 개척자는 교회 자립의 정의를 잘 내려야 한다. 교회 자립의 기준을 소박하게 설정할 필요가 있다. 교회 개척 초기에는 교회가 단순히 연명되고, 목사가 생존할 최소한의 조건만 갖추어도 자립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수준의 자립은 실제로 단지 다섯 가정만의 십일조를 통해서도 가능하다. 처음부터 자립의 기준이 높으면 목회가 결코 행복하지 않다. 즉 현재 상황을 잘 살피고 그 안에서 만족하는 교회 개척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점차 상황에 따라 상향되는 자립 목표를 세워가라는 의미다.

교회 자립은 개척 멤버(Core group)의 헌신 혹은 교회의 성장을 통해 가능하다. 그러나 이것만이 교회 자립의 길은 아니다. 예를 들어 수익 사업을 겸한 사역을 통해서도 교회 자립이 가능하다. 오늘날 많은 교회가 카페와 교회, 공부방과 교회, 도서관과 교회 등 각종 수익을 창출하는 사업과 교회를 결합해 자립을 시도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교회를 중심으로 한 협동조합의 조직, 국가의 예산을 사용하는 노인 사역과 어린이 사역 등 사역과 자립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많은 방법이 자리한다. 결국, 교회 자립을 위해 교회 개척자의 창의력이 필요하다.

물론 이러한 교회 개척 방법 혹은 목회 방법을 세속적인 방법이라고 여겨서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있다. 하지만 그러한 시각은 단지 전통에 익숙해진 사람들의 편향된 시각일 뿐이다. 교회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는 한, 다른 모양의 교회나 다른 형태의 목회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오늘날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교회의 모습, 그리고 목회 방법 역시 사람이 형편에 따라 만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교회 개척자는 교회의 자립을 위해 교회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창의력을 발휘해야만 한다(물론, 교회의 모습과 목회 방법이 교회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분명한 교회론 정립이 우선되어야 함은 당연하다).

개척된 교회가 가능한 빠르게 자립 교회로 가기 위해서는 목사의 역할이 지대함을 부인할 수 없다. 목사의 역할과 자세에 따라 교회 자립을 앞당길 수도 있으며 영구히 미자립 교회로 굳을 수도 있다. 교회 자립을 조금이나마 앞당기기 위한 목사의 자세 한 가지가 있다. 그것은 교회 개척자가 재정 운영에서 매우 투명하고 공개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가 목회 현장에 있을 때, 선교사들을 후원하면서 늘 궁금한 것이 한 가지 있었다. 그것은 우리 교회가 후원하는 그 선교사님이 실제 매달 후원받는 총액이 얼마나 되느냐는 궁금증이었다. 그런데 그 어느 선교사도 자신이 후원받는 선교비 총액이 얼마인지 공개하지 않았다. 소위 말해 후원받는 선교비 총액은 선교사들에게는 일급 비밀이었다. 필자가 이러한 것에 관심을 두게 된 이유가 있다. 그것은 선교사들 사회에서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정치력과 경제력이 있는 선교사는 더 자주 미국에 들어와 더 많은 교회에 선교 보고를 하고, 그 결과 더 많은 후원금을 지원받지만, 그렇지 못한 선교사는 미국에 들어올 경비도 없고 인맥도 없어서 선교지에 머물 수밖에 없으며, 그 결과 후원금이 갈수록 줄어드는 현상을 보았다. 따라서 필자는 필자의 교회가 후원할 선교사를 직접 찾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심지어 한 달에 200달러를 후원하기 위해 2000달러의 경비를 들였던 기억도 있다.

개척 교회 성도들은 목사가 어떻게 생존할 수 있는지에 대해 궁금해한다. 자신들의 헌금하는 양에 비해 목사가 훨씬 잘살고 있음을 보고 성도들은 의아해한다. 전국의 맛집을 꿰뚫고 있으며, 최신식 전자기기를 사용하고, 자녀에게 상대적으로 과한 투자를 하는 목사의 삶을 보면서, 성도들은 헌금할 필요성과 책임성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 결국, 성도들은 최소한의 헌금을 하게 되고 교회 자립은 요원하게 된다.

때문에 교회 개척자는 처음부터 후원액을 공개하고 투명하게 집행해야 한다. 단지 당신을 안다고 당신에게 돈을 거저 주는 사람은 없다. 당신이 목사이고 당신이 교회를 개척했기에 당신에게 돈을 주는 것이다. 그러니 그 후원금은 당연히 공적인 돈이다. 따라서 처음부터 목사 개인 계좌로 입금될 것이 아니라 교회의 계좌로 입금되어야 할 것이며, 재정의 모든 집행은 반드시 공적인 절차를 거쳐야만 한다. 사례비 역시 공적으로 책정되어 후원자가 아닌 교회에서 받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 교회 개척자의 바른 재정 운영이다. 동시에 성도들과 협의로 후원금을 점차 줄여나가야 할 것이다. 당연히 줄인 후원금만큼 목사와 성도가 더 부담하고 희생한다는 각오가 전제되어야 한다.

목사 입장에서는, 특별히 교회 개척자에게는 이 모든 절차가 매우 불편한 과정이다. 그러나 교회 자립을 조금이라도 앞당기고 싶은 교회 개척자라면 이 불편을 감수해야만 한다. 진정으로 현명한 목사는 불편함이라는 브레이크 시스템을 자발적으로 자신의 목회 현장에 장착하는 목사다. 브레이크 시스템이 없는 목사는 결국에 가서 패망한다. 그러한 경우를 우리 모두가 너무나 자주 보아오지 않았던가? 팀 켈러(Tim Keller)는 외부에서 재정 보조를 받는 교회는 운동 역동성(Movement Dynamic)이 사라지게 된다고 강조했다. 그렇다. 외부 후원을 기대하는 교회의 성도는 절대로 헌금하지 않으며, 그 결과 자립하지 못하게 되고 시간이 갈수록 역동성을 잃어버리고 어쩌면 영구히 미확립 교회로 자리를 잡을 수 있다.

나가는 말

교회 개척을 준비할 때부터 재정과 관련해 교회 개척자가 주의할 사항이 있다. 그것은 초기 투자를 최소화하라는 것이다. 제발 그렇게 하지 말라는 교회 개척 방법이 있다. 그것은 평생을 통해 비축한 재산, 친인척에게 빌린 돈, 그리고 금융권 융자를 받은 돈 등을 긁어 모아 그럴듯한 공간을 임대하고 음향시설을 비롯해 최고급 시설을 갖추고 시작하는 교회 개척이다. 교회 개척자는 하나님의 집을 최고급으로 꾸며야 한다는 성전주의를 극복해야 한다. 재정적으로 무리하면 안 된다. 그 결과는 망함이다. 재정 문제를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실 것이라는 지나친 믿음과 낙관주의를 피해야 한다. 교회 개척이 분명 영적인 일이지만, 그러나 현실을 기초로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적어도 3년간의 총 예산을 예측하고, 처음부터 그에 대한 대비책을 갖고 시작해야 한다.

돈으로 개척하면 후에 본전 생각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빚에 쪼들리어 성도를 돈이 나오는 원천 혹은 생계의 수단으로 보게 되는 순간, 바른 교회론이 구현될 수 없으며, 진정한 목양이 이루어질 수 없고, 오직 생존을 위한 투쟁과 타 교회와의 경쟁만이 남게 된다. 욕심내지 않고 빚 없이 가는 원칙을 세우라. 교회당 없는 교회 개척을 생각해 보라. 



1)    “Faith Mission”이란 “중국내지선교회”(China Inland Mission)를 결성했던 제임스 허드슨 테일러(James Hudson Taylor)가 그의 선교사들에게 적용했던 선교 원칙이었다. 
2)    Dennis W. Bicker, The Work of the Bivocational Minister (Vally Forge, PA: Judson Press, 2007), p. 2.
3)    Ed Stetzer, Planting Missional Church (Nashville: B&H Academic, 2006), p. 225.

양현표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실천신학 교수. 남침례신학대학원(Ph.D.). 저서로 《사도적 교회개척》이 있다. 필자의 다른기사 keyboard_arrow_r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