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와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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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2021년  01월호 코로나 시대의 새로운 구역 모임 비전 2021 목회 전망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한 전 세계적인 팬데믹으로 새로운 시대(뉴노멀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스마트 국가 시대와 일시 멈춤의 세상, 탈세계화, 지역화, 인간 안보 중심 시대, 머니폴리시 국가 등의 새로운 이슈들 가운데 교회는 ‘탈중앙화’라는 현상에 빠져 기준과 중심을 상실한 시대를 경험하고 있다. 교회의 최고 상위 기구인 당회의 권위는 국가의 지침과 지역 사회 여론을 뛰어넘지 못하게 되었다. 주일성수에 대한 목사의 설교보다도 국가 방역 지침이 교회 출석 여부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주게 되었고, 코로나 재확산의 진원이 되었던 교회는 지역 사회 안에서 공공의 적이 되고 말았다. 교회 지도자는 “하나님이 가라사대”라는 비상식적인 종교의 표현 대신에 객관적이며 정확한 정보와 증거를 제시하면서 말씀을 전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코로나19는 교회뿐만 아니라 세상에서도 기준과 중심을 사라지게 만들고 있다. 

세상은 더욱 개인주의가 만연해지는 시대로 가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도 사회는 ‘1인 체제 시대’를 걱정하고 있었는데, 이제 더욱 심화된 상태로 ‘혼밥’(혼자 밥 먹기), ‘혼술’(혼자 술 먹기), ‘혼트’(혼자 운동하기) 등 혼자 즐기고 누리는 삶이 자연스럽다. 이렇게 가다가는 소설 《로빈슨 크루소》와 영화 〈캐스트 어웨이〉와 같이 혼자 사는 시대가 우리의 일상이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그렇다면 코로나 전후로 심화하고 있는 ‘개인주의화’의 이유는 무엇인가? 《2020 트렌드 모니터》에서 저자는 세상이 각 개인에게 공동체 안에서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야 할 충분한 설명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며, 또한 세상의 리더들이 지금까지는 매우 억압적이고 권위적으로 각 구성원을 대해 왔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특별히 코로나19의 상황 속에서 개인은 더욱 자신에게 관심을 갖고 혼자 즐기고 홀로 누리는 세상에 집착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는 존재다. 최근 문화는 혼자 지내고 혼자 살 수 있는 것처럼 사람들의 심리를 몰아가지만, 그 또한 ‘돈’이 되는 상술일 뿐, 인간은 누군가를 의존하지 않고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달아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인간은 정치적, 사회적 동물’이라는 사실은 지금도 유효하다. 

‘공감’할 수 있는 소그룹을 만들라

인간은 여전히 이웃이 필요하다. 《2020 트렌드 모니터》에 따르면, 나와 비슷한 취향이 있고 관심사 또한 유사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에 대해서 약 70%의 사람들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할 용의가 있다고 동의했다(〈표1〉). 곧 아무 공감 없는 모임은 거부하지만, 나와의 관심과 취미, 생각과 삶의 태도가 비슷하다면 얼마든지 공동체와 모임을 이루겠다는 것이 현대 사람들의 특징이다. 이에 대해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그와 같은 사람들의 마음을 신앙 공동체로 끌어오기 위해서 교회는 사람들의 ‘공감’을 붙잡아야 한다. 곧 교회는 이제 ‘공감의 공동체’로 나아가야 하며, 교회 안에 구역과 소그룹도 ‘공감’을 나누고 즐길 수 있는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 모태신앙인이고 세례교인, 직분자니까 교회에 와야 하고, 교회가 내린 지침에 따라 모임과 행사를 참여해야 한다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설득력이 없다. 이제 교회도 서로를 향한 만남과 관계를 위해서 성도들이 필요로 하고 요청하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그에 대한 공통된 접점을 찾아 공감을 만들어가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코로나 시대를 겪으면서 교회는 교회 내 구역 모임이 ‘공감’을 끌어내지 못하는 문제점들을 발견하게 된다. 먼저는 구조적인 문제로 대부분의 교회는 구역 편성을 기계적으로 분할해 왔다. 유럽제국의 열강들이 아프리카 국경을 자를 대고 분할하고, 우리나라가 일제로부터 해방한 후 미국과 소련의 분할 정책에 따라 한반도를 기계적으로 나눠 38선을 만들었던 것처럼, 교회의 구역과 지역을 기계적인 방법으로 분할 편성하거나 아파트 브랜드 이름 또는 단지의 규모에 따라 구역을 편성해 왔다. 그런 방법은 성도들의 의사를 거의 무시하거나 배제한 편성이다. 

또 목회자들은 교회를 큰 엔진으로 생각해 구역을 교회라는 전체 엔진을 돌리는 부속품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경영학의 조직 관리를 통해 구역을 운영하려는 모습은 공감대를 만들어 내야 하는 작은 공동체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 마지막으로, 코로나 시대에는 구역장과 같은 소그룹 리더들의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전에는 단순한 인품과 성품, 신앙의 정도에 따라 리더십이 발휘되었지만, 이제는 구역원들의 건강과 안전까지도 지킬 수 있는 뉴노멀 시대의 리더십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다양성을 추구하라

이러한 코로나 시대에 발견된 구역 소그룹의 문제점들은 다양성과 축소성, 지역화를 통해 수정·보완하면서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구역 모임의 비전을 만들어 갈 수 있다. 

첫 번째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구역 모임의 비전은 성도들의 다양한 요구를 충족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각 교회의 구역 모임은 과거 20-30년 전과 유사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그 시절 열심히 교회에 출석하던 현재의 노령층 성도들에게 적합한 과거의 구역 모임이 새로운 시대 속에서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다양한 세대들은 다양한 요구와 관심을 드러낸다. 구역 모임은 과거에 유지된 형태를 고수하기보다 현재 구역 구성원들의 요청과 관심이 반영된 형태를 만들어 가는 것이 필요하다. 세대별이나 취미, 관심에 따라 구역을 편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남자 성도들의 구역 소그룹 활성화를 위해 스포츠와 게임 중심으로 구역을 편성하거나 반려견을 키우는 소그룹이나 입양한 자녀를 둔 소그룹 등을 구상해 볼 필요가 있다. 간단하게는 세대별(나이별)로 구역을 재편해서 활력을 만들어 보는 것도 필요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각 교회적 상황에 성도들의 의사와 관심의 확인이다. 이는 구역 재편에 절대적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또한 수십 년 동안 쌓여 내려온 반복적인 구역 모임의 피로도를 개선하기 위해 신앙적인 미션을 가진 모임을 편성하는 것도 다양성을 추구하는 구역 모임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가족 전체가 성지 순례나 단기 선교를 준비하는 구역을 만들어 미션을 함께 준비하고 나누는 것으로 한 해의 구역 모임을 갖는 것이다. 

작게, 그러나 많이 만들라

두 번째 비전은 축소성이다. 교회 소그룹의 축소성은 구역을 작게, 그러나 많이 만드는 것을 말한다. 피라미드 구조처럼 상위에 있는 모체가 클론이 되어 하위의 수많은 개체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다양성을 확보한 ‘많은’ 소그룹을 만들고, 그 많은 소그룹이 서로 조밀하고 유기적으로 연결되도록 하기 위해 작게 만드는 것이 구역의 축소성이다. 

미국 새들백교회는 2009년부터 온라인 교회를 준비했고, 10여 년 준비 과정을 통해 현재 코로나19 상황을 적절히 대처할 수 있게 되었는데, 그 중심에 ‘소그룹의 확대 증가’가 있다. 새들백교회는 코로나 이전에 6000여 개였던 소그룹을 코로나 이후 3000여 개 이상 더 만들어 총 9000여 개의 소그룹을 진행하고 있다. 코로나로 새로운 구역 소그룹 운동을 위해, “두 명의 친구가 있는 사람은 누구나 소그룹을 만들 수 있다”는 모토로 온라인 중심의 소그룹을 3000여 개 이상 만든 것이다. 소그룹 크기를 줄이고 대신 많은 소그룹을 만들어 효율적인 소그룹 모임을 지켜내려고 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코로나 시대에 구역의 구성원 수는 더 줄여야 하고, 대신 소그룹 수는 더 늘려야 한다. 이런 상황을 교회는 미리 대처해야 한다. 이런 구역 모임의 축소성 비전은 ‘사람이 먼저’라는 가치에 있다. 구역이라는 조직에 매몰되지 않고, 구역 공동체도 살리면서 각 구역 성도들이 자신의 삶을 신앙 공동체 안에서 나눌 수 있는 조건을 만들기 위해서는 더 작게, 그러나 더 많은 구역을 편성해야 한다. 더 작게 그러나 더 많아진 구역을 잘 연결하는 것은 뉴 노멀 시대의 교회 사역이 될 것이다. 

지역화로 작은 교회를 만들라

세 번째는 지역화다. 코로나19 사태는 교회의 체질을 바꿀 가장 좋은 기회다. 그전까지 ‘셀처치(가정 교회)’에 대한 목회적 방법론은 교회 성장 중심의 논의와 실행을 전제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제는 현실적인 셀처지를 교회마다 만들어 가야 할 때가 되었다. 코로나19 이후 셀처치, 곧 가정교회는 기존의 방법론을 따르는 것이 아니다. 다시 초대 교회 같은 모습을 회복하기 위해 중앙의 교회가 아니라 교회로부터 자립적으로 분산된 각 구역 모임이 바로 초대 교회의 역할을 하도록 작은 교회 운동을 교회가 중심이 되어 이끄는 것이다. 1960년대 선구적 생태주의 운동의 구호는 “지구적으로 생각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Think Globally, Act Locally)였다. 이 표현처럼 교회는 앞으로 생각은 교회적으로 하되, 행동은 각 구역 모임 안에서 해야 한다. 이전에는 구역을 교회 아래 부속된 조직처럼 생각했다면, 이제는 구역을 교회의 몸을 이루는 세포처럼 생각해 작은 교회로서의 역할을 모두 진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돕는 것이 목회자들과 당회가 해야 할 사역이다. 

예를 든다면, 코로나19로 성찬식을 진행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그러나 코로나 시대에 지역화된 교회라면, 각 구역 모임이 작은 교회가 되어 구역 모임마다 성찬식을 진행해 옛 초대 교회 같은 모습을 회복할 필요가 있다. 또한 심각한 코로나19 전파로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 단계가 발생했을 때(3단계 이상) 한 구역의 가정에서 주일예배 드리는 장면을 전교인에게 온라인 예배로 송출할 수도 있다. 한 구역의 예배가 주일예배의 대표성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를 통해 교회는 건물이 아니며 살아 있는 공동체임을 증명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교회는 먼저 교회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오는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 교회는 작년을 기준으로 올해 무엇을 할 것인지 정책 당회를 하기 전에 성도들의 의견 수렴 과정을 반드시 진행해야 한다. 의견 수렴을 위한 설문지 작성 작업은 어떤 사역보다도 더욱 집중될 필요가 있다.

또한 코로나 시대의 구역 편성은 반드시 기존과 달라야 하며, 패러다임이 전환된 뉴노멀의 구역 편성을 지향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에 화상 모임을 진행하는 온택트(On-tact) 구역 공동체를 비롯해 대면과 비대면 모두 수용할 구역 모임을 다양하게 구성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이제 각 구역 공동체는 교구 목사 아래에서 관리를 받는 구역 조직이 아니라 개별 교회의 역할을 감당하는 작은 교회의 모습으로 나아가야 한다. 교역자와 교회는 구역이 초대 교회 정신을 강하게 품은 모임이 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과거에는 당연히 콘텍트(Contact)를 통해 만남과 모임을 유지할 수 있었고, 그래야만 했었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는 콘택트의 세상을 언택트(Un-tact)로 만들었다. 하지만 인간은 절대로 혼자 살 수 없고, 언택트와 같은 형태로 사회를 유지할 수 없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나온 대안이 온택트(On-tact) 시대라고 한다. 즉 온라인으로 생활을 유지하는 것이다. 사람을 만나되, 온라인으로 만나고, 학교 수업과 시험도 온라인으로, 직장 일과 회의도 온라인으로, 모든 것을 온라인으로 하게 되는 시대가 일상화되리라고 전문가들은 예측한다. 

그러나 교회는 한걸음 더 앞서야 한다. 언택트와 온택트를 넘어 홀리택트(Holy-tact)와 옴니택트(Omni-tact) 공동체로 가야 한다. 전방위적인 만남과 교제, 관계와 대화할 수 있는 옴니택트 시대를 이끌어야 한다. 때로는 직접적인 만남으로, 때로는 언택트와 온택트로 대화하되, 옴니택트와 홀리택트를 통해 영적으로 교감하고 연결해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신앙 공동체를 만드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김주용 연동교회 담임목사. 시카고 루터란신학교(Ph.D.). 저서로 《하나님과 창조 그리고 생명》이 있다. 필자의 다른기사 keyboard_arrow_r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