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와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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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설교 2020년  11월호아브라함 카이퍼는 어떤 인물인가? 심층기획 아브라함 카이퍼와 한국 교회

2020년 11월 8일은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 1837-1920)가 소천한 지 100주년이 되는 날이다. 그는 ‘제2의 칼뱅’으로 불리기도 하고, 헤르만 바빙크와 벤저민 B. 워필드 등과 더불어 세계 3대 칼뱅주의자로 불린다. 그는 목회자요, 신학자였으며, 두 개의 신문 편집인이었고, 국회의원이자 반혁명당 설립자와 당수였으며, 자유대학교를 설립했고, 돌레안치(Doleantie)라고 하는 교회 개혁 운동을 통해 네덜란드 개혁교회를 설립했다. 생애 정점에는 네덜란드 수상(1901-1905)으로 재임했다. 

이러한 다채로운 이력뿐 아니라 그가 남긴 260여 종의 방대한 저술을 생각할 때에 당대인이 왜 그를 일컬어 “10개의 머리와 100개의 손을 가진 사람”이라고 평가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 그는 살아 있을 때만 많은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 아니라 소천 100년을 맞은 이 시점에서도 다방면에 걸쳐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를 통해 네덜란드 개혁교회가 갱신되었고, 사문화되던 칼뱅의 종교 개혁신학이 부흥했다. 뿐만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그리스도의 주권을 더 높이기를 원했던 그의 생애 모토에 찬동하는 수많은 추종자가 학문, 예술, 정치 등 삶의 다방면에 걸쳐서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개혁을 시도했고 성공하기도 했다. 영어권이나 한국의 현 상황을 생각할 때 카이퍼는 이제야 읽히고 있고, 크게 유익을 얻을 수 있는 적시점에 이르렀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시점에서 카이퍼가 남긴 유산들을 확인하고 살펴보는 기회를 가지는 것은 매우 시의적절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여러 필자의 논의들에 앞서 본고에서 필자는 아브라함 카이퍼가 누구인가를 평이하게 소개해 보려고 한다.1 이어질 여러 논의들의 배경 지식으로 이러한 소개가 필요할 것이다. 본론에서는 우선 카이퍼가 살고 활동했던 시대의 배경에 대해서 먼저 살펴보고, 이어서

이상웅 총신대학교신학대학원 교수. 총신대학교(Ph. D.). 저서로 《조나단 에드워즈의 성령론》, 《박형룡신학과 개혁신학 탐구》 등이 있다. 필자의 다른기사 keyboard_arrow_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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