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와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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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설교 2020년  08월호 신약의 구약 사용에 대한 총론 심층기획 신약 속 구약,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신약의 구약 사용1 총론이라는 본 글의 성격에 대해 서두에서 밝혀 두는 것이 좋을 듯하다. 이 글은 성서학계에서 다루고 있는 신약의 구약 사용에 관한 해석상의 이슈들에 관한 것이 아니다. 본 글은 목회자들로 하여금 구약을 사용하는 신약 저자들의 특정한 관점, 즉 신약 저자들로 하여금 구약을 특정한 방식으로 사용하게 만들었던 기저 사상에 관한 성경적 이해를 갖게 하려는 의도를 지닌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이 글은 구약에서 하나님이 행하신 일과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행하신 일 사이에는 정확한 일치가 있으며, 이 때문에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신 여호와께서 행하신 일을 이해하지 못하고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를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견해다. 또한 율법과 복음의 대비, 이스라엘과 교회의 대비, 예수의 인성과 사역에 대한 잘못된 해석인 헬라 전통의 이원론적인 그리스도와 구원에 대한 이해, 즉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사하셨고 이를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고 죽은 후에 천국에 들어가게 하신다는 잘못된 이해를 가질 수 밖에 없음을 주목하고자 한다. 

동일한 맥락에서 만약 신약의 구약 사용이 예수가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실 메시아라는 사실을 증명하거나 변증하거나 정당화하기 위해서 이루어진 것이라면, 한 걸음 양보해서 단순히 예수만 아니라 기독교 전체가 전혀 새로운 것이거나 ‘교묘히 만든 이야기’가 아님(벧후 1:16)을 논증하기 위해서 이루어진 것이라면2 구약은 신약의 증거 본문(proof text) 그 이상의 역할밖에 하지 않게 되며, 이것은 구약이 신약보다 열등하다는 위험한 함의를 나타낸다.

신약의 구약 사용은 ‘신약 저자가 구약을 어떻게 사용했는가?’라는 인용 방식에 관한 논란의 장이 되었을 뿐만이 아니라 인용 범위를 포함해 수많은 다른 전제와 상충하는 장이 되어 왔다.4 이 논란의 기저에는 구약과 신약의 관계라는 이슈와 성경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다음과 같은 근본적인 질문들이 놓여 있다. 

신약 저자에게 있어서 구약은 무엇이었나? 그들은 구약을 어떻게 받아들였고 어떻게 이해했는가? 구체적으로 말해 예수 사건(the Jesus events)을 직간접적으로 목격했던 사도들과 특히 바울은 어떤 의미에서 히브리인들의 성경(the Jewish or Hebrew Bible)인 구약을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의 성경(the Christian Bible)으로 받아들였는가?5 

이와 함께 제기해야 할 질문들은 다음과 같다. 만약 신약 저자들이 구약의 정체성을 특정한 방식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였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왜 신약 저자들은 구약을 자신들의 특정한 방식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였는가? 단순히 그들이 친히 경험했던 그리스도 사건이 너무도 중요했기에 구약을 임의적으로 다루고 자신들의 목적에 맞게 수정했는가? 이것은 신약의 구약 사용이 진보진영 학자들에 의해 비판의 대상이 되는 단초를 제공한 계기가 되었다. 

아니면 그리스도 사건이 하나의 전기가 되어 구약을 제대로 볼 수 있게 되었고, 그래서 전에는 보지 못했던 방식으로 구약을 새롭게 볼 수 있게 되었던 것인가? 이것은 전통적으로 보수 진영 학자들이 주장하는 바다. 문제는 이 주장 역시 구약이 신약보다 열등하다는 암시를 지닌다는 것이다. 

아니면 구약은 창조와 구속 목적을 이루신 오직 은혜로우시며 신실하신 하나님(참조,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신 여호와의 정체성을 묘사한다. 출 34:6)이 인간의 공로를 철저히 배제하고 오직 메시아를 통해서 이 목적을 이루실 것임을 일관되게 천명했고 신약의 그리스도 사건은 이것에 대한 명시적인 매듭짓기로 볼 수 있는가? 

이 마지막 입장이 필자의 입장으로서 본 글은 이 입장을 설명하는 데 주력한다. 이 입장의 요지를 간단히 말하자면, 구약과 신약은 모두 하나의 거대 담론(the grand discourse of God) 곧 하나님의 단일한 이야기와 이 이야기를 구성하는 중요한 상징들(symbols)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러한 하나님의 이야기와 상징들의 관점에서 신약의 구약 사용을 본다면 신약의 구약 사용은 신약 저자 편에서 이루어진 임의적 수정이나 새로운 독창적 해석이라는 극단적인 두 주장을 피할 수 있다고 본다. 

어떤 경우든 신약의 구약 사용에 관한 진보진영과 보수진영의 논쟁은 단순히 신약 저자들의 구약 인용 방식의 문제에 관한 것이 아니라, 성경관과 성경해석에 관해 어떠한 전제를 바탕으로 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해석자가 성경 기록에 대한 역사적 재구성에 관심을 두는 통시적인 역사-비평적 전통에 서 있는가 아니면, 주어진 성경 기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되 신약의 구약 인용의 표면적인 차이를 본문을 바르게 해석하고(textual interpretation), 문맥을 정확히 읽어 내며(contextual interpretation), 본문이 속한 책 안에서 문학적-신학적 역할과 메시지를 찾고자 하는 책-내 읽기(intra-textual interpretation)와 본문이 속한 책 밖에서 특별히 구약과의 관계에서 본문이 담고 있는 성경-신학적인 의미를 찾고자 하는 책-간 읽기(intra-textual interpreation) 같은 공시적인 해석 전통에 서 있는가에 달려 있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성경 해석자들이 서 있는 전통과 그들의 전제가 신약의 구약 사용에 대한 이해의 관건이다.6

거대 담론(the Grand Discourse)과 구성적 상징(constituent Symbols)들 


1.    서론적 고찰 
이런 점에서 신약 저자의 구약 인용과 관련한 논란은 두 전통인 ‘인간 이성 중심’의 역사-비평적인 신학 전통과 ‘그리스도에 대한 맹목적 믿음 중심’의 근본주의적인 신학 전통으로 양극화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필자는 이러한 양극화된 논란에 대한 바람직한 대안은 이 두 전통의 학자들이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최종적인 계시를 믿는 크리스천들이라면, 현재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최종적인 형태의 문헌으로서의 성경이라는 문헌적 콘텍스트7에 충실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보다 구체적으로 성경 콘텍스트에 충실하다는 것은 성경의 거대 담론인 하나님의 이야기와 그 전반에 놓여 있는 근본적인 중요 상징들을 유기적 관계 속에서 보려는 통합적인 노력이다. 

먼저 성경의 거대 담론인 하나님 이야기는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서술할 수 있다. 하늘과 땅은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와 거하시는 성소로8 창조되었고(Yahweh, the monotheistic God of Israel), 하나님은 자기-낮춤의 사랑으로 이 땅에 창조하신 인류를 자신의 백성으로 삼으셨으며(the elected People of God), 하나님은 이 백성과 이 땅에서 영원히 함께하기를 원하셨다(the future for God and his People)는 이야기다.9 달리 표현하자면 하나님은 인류와 영원토록 함께 살면서 ‘이들의 하나님이 되고 이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를’ 원해서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것이다(레 26:11-12; 겔 37:26-28; 고후 6:16; 계 21:3. 참조, 창 17:7-8; 출 6:7; 겔 34:30; 렘 31:33; 히 8:10).10 하나님의 이러한 일관된 바람은 창세기 1-2장과 요한계시록 21-22장이 성경 전체의 수미상관구조를 이룬다는 점에서 특별히 잘 나타난다. 즉 창세기 1-2장에서 옛 하늘과 옛 땅의 창조로 시작해서 요한계시록 21-22장에서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로 끝을 맺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11 

이러한 하나님에 의한 천지와 인류의 창조는 구체적으로 인류의 소명과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이 소명에 대한 총론적인 선언이 창세기 1:28에 나타난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이 표현은 2연구 형태의 동의적 평행법으로서, ‘땅은 인류로 충만하고, 인류는 땅을 다스리라’는 뜻을 담고 있다. 즉 인류에게 이 땅을 하나님의 천상의 의로 섭정하라는 왕적 소명을 주신 것이다. 

창세기 2:15에서 이 소명에 대한 각론이 인류의 원형적 인물인 아담에게 주어진다.12 “여호와 하나님이 사람/아담(~dah)13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시니 이는 그것을 섬기고(to work or serve) 지키게(to keep) 하려 하심이라.”14 여기서 d”Þb.[r”(m.v는 많은 학자에 의해 성소 혹은 지성소로서 에덴 가운데 계신 하나님의 임재를 섬기며 하나님의 임재가 훼손되지 못하도록 즉 성소가 더럽혀지는 것을 막는 제사장적인 소명을 가르치는 용어들로 해석되고 있다.15 이러한 성소로서의 에덴과 인류의 원형인 아담에게 주어진 제사장 소명에 대한 이해는 곧 이어지는 선악과 명령과 그에 대한 불순종으로 에덴에서 추방, 후대에 이스라엘이 안식의 땅이요 하나님의 임재 장소인 가나안 땅에서 쫓겨나는 것 사이에 놀라운 유비를 통해서도 강화된다. 


아담이 인류의 원형적인 인물이며 또한 이러한 인물에게 주어진 창세기 1:28과 창세기 2:15의 왕적·제사장적인 소명의 유기적인 관계를 분명하게 인식한다면, 노아 홍수 이후에 노아에게 주어진 복(참조, 창 9:1-2)이 정확히 창세기 1:28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과 또한 이스라엘이 출현하는 시점에서 이스라엘 자손에 대한 기술(참조, 출 1:8)이 창세기 1:28을 반향하고, 결국 이러한 이스라엘을 온 나라에 대한 하나님의 제사장 나라(priestly kingdom)로 규정하며 또한 이러한 왕적 제사장적 소명이 구약과 신약 모두에서 명시적으로 언급되고 있다는 것은 결코 놀랄 일이 아니다(참조, 출 19:6; 벧전 2:9; 계 1:6, 5:10; 20:6).

이러한 구약의 창조 이야기와 이에 따라 인류의 원형적 인물인 아담에게 최초로 주어지고 아브라함에게 확언되고(참조, 창 12:1-3, 17:4-6), 이스라엘에게 이관된 소명 이야기는 이를 구성하는 중요한 네 상징들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첫째는 ‘이스라엘’으로서 하나님 백성의 근본 정체성(identity)에 관한 것이며, 둘째는 ‘율법’으로서 하나님의 왕적 다스림의 의의 구체적인 표현이요 동시에 의를 이루는 방식에 관한 것으로 결국 성취(fulfillment)의 문제로 귀결된다. 셋째는 ‘성전’으로서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사는 하나님 백성의 본질(essence)에 관한 것이다. 마지막은 ‘땅’으로서 이 모든 하나님의 일이 이루어지는 장소와 시간의 문제(time and place)에 관한 것이다.16 

그래서 간단히 이 상징들을 설명하고자 한다. ‘이스라엘’은 아담의 왕적-제사장적 소명을 이어받는 자들로서 아담의 선악과 금지 명령을 어긴 사건이 역설적으로 보여 주듯이 인간 주도적인 반역과 우상숭배적인 삶은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할 수 없는 삶임을 인식하고 하나님-주도적인 역사에 대한 신실한 의존과 신뢰를 근본 특징으로 하는 자들이다[참조, 마 3:17, 4:1-12(참조, 마 4:4; 신 8:3; 마 4:7, 6:16, 마 10, 6:5,13); 히 11장의 믿음의 조상들인 구약 백성]. ‘율법’은 은혜로 주어진 하나님의 천상의 의가 이 땅에 실현되어 이 땅을 충만하게 하는 구체적인 방식이며(참조, 사 45:8), 이런 점에서 하나님의 의는 율법으로 표현되고 율법은 의를 요구한다고 할 수 있다(참조, 마 5:17-20). 이사야 45:7-8은 유일신 창조주 하나님이 온 피조 세계가 하나님의 의로 가득 찰 것을 예언하고 있으며 이러한 예언은 이사야 40-55장에서 기술하는 메시아를 통한 성취와 직결된다. 이런 점에서 율법은 근본적으로 창조와 인간의 왕적 다스림의 소명과 이것의 성취와 직결된다. 

‘성전’은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사는 일에 관한 것으로 하나님 백성의 본질 곧 예배의 문제다(참조, 요 4:21-26; 계 21:2-3). 특별히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임재를 섬기며 임재를 하나님께 영광으로 돌려드리는 제사장적인 소명과 관계된 것이다. 이는 성경의 일관된 메시지인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는 말씀의 의미 즉 하나님의 배타적인 영광스러운 임재로 가득 찬 세상을 만들라는 제사장적 소명에 관한 것이다(참조, 출 15:17; 사 66:1; 행 7:49; 요 4:23-24; 히 9:11). 

끝으로 ‘땅’은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와 의의 다스림이 실현되는 장소와 시간의 문제를 상징한다. 창조 시에는 하늘과 땅(the Heavens and earth)이 이 상징의 최초 구현이었고, 에덴의 추방 이후 이스라엘을 통한 인류 구속의 시기에는 약속의 땅(the Land of the Promise)이었고, 가나안 땅의 추방 이후에는 예루살렘이었고, 새 창조의 시작인 신약에서는 온 땅(the whole earth), 마지막으로 새 창조의 완성의 시기에는 새 하늘과 새 땅(the New Heaven and the New Earth, 계 21:1-5)이 바로 이 상징이다. 

이제 이러한 구약의 거대 담론과 이를 형상화하는 이상의 구체적인 상징들이 어떻게 신약에서 인용되는가 혹은 암시되고 반향되는가를 신약의 한 본문을 통해 간단히 예증하겠다. 

2.    구약의 거대 담론과 상징들의 결정적인 계시요 절정인 예수 사건에 대한 예증: 마가복음 1:10-11과 마가복음 15:37-39의 수미상관구조와 신학적 메시지를 중심으로 

마가복음은 기념비적인 두 개의 묵시론적-종말론적 사건인 예수의 수세-장면 시 일어난 하늘이 찢어지는17 사건(막 1:10-11)과 예수의 십자가 죽음의 때에 일어난 성소 휘장이 찢어지는 사건(막 15:37-39)에 의해서 처음과 끝이 둘러 쌓여 있다. 이 두 사건은 단순히 ‘찢어짐’이란 단어상의 연결뿐만 아니라 단어상 그리고 주제상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18 분명히 마가는 예수의 지상 사역 가운데서 일어났던 이 두 사건 사이의 요소들이 지닌 상관관계를 인식함으로써 이 두 사건을 구조상, 주제상 마가복음을 열고 닫는 수미상관구조로 사용해 자신의 복음서를 구성하고 있다.19 

먼저 마가복음의 예수 세례 장면은 구약을 반향하는 하늘이 찢어지고 성령이 내려오는 사건 하나와 역시 구약을 반향하는 하늘의 음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중요한 것은 이 사건과 음성이 중요한 세 개의 구약 구절을 반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늘이 찢어지는 사건은 이사야 64:1을 반향하며, 성령이 내려오는 사건은 이사야 63:11을 반향한다[참조, 사 63:11 MT; 사 63:19 MT(64:1 LXX) ; 사 63:14 LXX]. 이사야 문맥에서 볼 때 성령이 내려오는 사건은 여호와의 시원적-묵시론적인 구속적 역사 개입의 사건이었던 옛 출애굽을 상기시키면서 새 출애굽을 청원하는 기도로 이어진다. 이 기도가 바로 몇 절 뒤인 64:1(MT)에 가서 “하나님이여 하늘을 찢고 내려 오소서”라는 청원의 기도다. 

이어지는 하늘의 음성은 시편 2:7과 이사야 42:1(사 42:1 MT와 LXX)을 반향한다[참조, 사 11:2, 4(LXX)]. 시편 2편은 통상적으로 왕의 시편으로 이스라엘 왕의 대관식에서 사용되어 이스라엘 왕이 하나님의 천상의 의를 구현하는 섭정자로서 인준됨을 보여 준다. 특히 시편 2:7은 중간기 시대의 유대 문헌 가운데서 종말론적-메시아적인 의미로 크게 재해석되고 회자되었던 본문이다(참조, 4 Qflor 1:18-2:3; Psalms of Solomon 17:23-24).20 

이러한 이스라엘의 왕의 섭정의 역할을 반향하는 시편 2:7-8(“너는 내 아들이라… 내가 열방을 유업으로 주리라”)은 이스라엘의 성경 전승 즉 성경의 거대 담론인 하나님의 이야기에 익숙하고 정통한 신약 저자들에게는 창세기 1:26-28을 충분히 상기시켰을 것이다(참조, 열방을 유업으로 주는 것은 아마도 창 12:1-3을 반향한다). 인류의 원형인 아담과 하와에게 주어진 “땅을 정복하고 …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는 위임 명령을 반향하기 때문이다. 

특별히 하나님의 천상의 왕권을 지상에 구현하라는 창세기의 시원적 모티프인 섭정의 역할이 시편 8편에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시편 8:4에서 ‘아담/사람’과 ‘인자’가 동의적인 의미로 교차적으로 사용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주: The Lord)는 이 ‘사람’과 ‘인자’에게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 발아래 두셨다”(6절). 

또한 다니엘 7:13-14에서는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가 바로 이 “인자 같은 이”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셨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천상 왕권이 원형적 인류인 아담에게 주어졌고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이스라엘의 왕에게 이관되었으며 인류를 대표하는 인물인 인자에게로 주어진 것으로 표현한다. 근본적인 중요성은 땅을 포함한 하나님의 피조 세계에 대해 대표적 인간에게 주어진 이러한 섭정의 왕권이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최종적으로 주어질 뿐만 아니라 이 왕권이 성취되고 있다는 점이다. 마태복음 28:18에서 예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내게 주어졌다”고 말씀하시며 “모든 족속을 제자 삼으라” 말씀하신다. 특별히 마태복음 28:18-20은 성경의 거대 담론을 역동적으로 반향한다.21 이런 맥락에서 이사야 42:1 이하의 메시아에 대한 예언은 하나님의 아들의 왕적인 의의 다스림을 궁극적으로 이루시는 예수에게서 성취되고 있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예수의 세례 장면에서 하늘이 찢어지고 성령이 내려온 사건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기뻐하는 자”라는 음성은 성경의 하나님의 단일한 이야기와 이를 구성하는 근본적인 상징들에 친숙하고 정통했던 신약 저자들에게는 분명 원래 창조 이야기(original creation story) 즉, 처음 하늘이 열리고 창조를 가능케 했던 성령(참조, 창 1:2)과 창조의 목적을 구체화하는 소명을 받았던 인류의 원형인 아담(참조, 창 1:26-28, 2:15)과 새 창조와 새 창조의 소명을 이룰 메시아(참조, 사 63:11, 64:1; 시 2:2, 6, 7; 사 42:1)를 분명하게 상기시켰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신약 저자들은 구약을 인용하게 된 것이다. 물론 인용된 구약 구절은 신약 저자들이 하나님의 원래 창조를 근본적으로 새롭게 하시는 예수의 새 창조의 이야기를 그려내는 데 하나의 접점(contact point)이 되었음을 인정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한걸음 더 나아가 마가는 이러한 예수의 세례 장면에서 일어난 사건과 하늘의 음성을 자신의 복음서의 마지막 장면인 예수의 죽음 사건(막 15:37-38)과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수미상관적인 구조는 모든 신약 저자가 그러했듯이 예수 사건이 창조와 이스라엘의 구속의 하나님의 거대 담론(the grand discourse)의 결정적 성취요 이 담론을 구성하는 중요 상징들의 궁극적인 구현이라는 점을 반영한다. 마가복음 15:37-39은 문장 구조에 따르면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예수께서 숨/영을 내어 쉬셨고, 그 결과 성소 휘장이 찢어졌으며, 예수께서 숨/영을 내 쉬어 성소 휘장이 찢어진 것을 본 백부장이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었다’고 고백했다.”

여기서 ‘성소’는 마가의 수난 기사인 11-16장 전반에 걸쳐서 돌로 지은 성전을 나타날 때 사용되는 성전 단지(the Temple complex)를 가리키는 i`ero,n[참조, 막 11:11, 15(2번), 16, 27; 12:35; 13:1, 3; 14:49]이 아니라 예수의 죽음으로 대체될 지성소를 포함한 성소(the Sanctuary, 막 14:58, 15:29, 15:38)를 가리키는 naoj가 사용된다.22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던 성소 휘장이 찢어짐으로써 이제 하나님의 가장 깊은 내면이 마침내 드러나 온 우주를 향해 열려 있게 되었고, 열방들을 포함한 온 인류 공동체를 향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이 사건은 단순히 예루살렘 성전의 멸망을 암시하는 것이 아니라, 창세기 1:2이 암시하듯이(참조, LXX “… kai. pneu/ma qeou/ evpefe,reto evpa,nw tou/ u[datoj)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영이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어 자신의 거처인 성전으로 삼으셨듯이, 예수의 사건은 마침내 온 세상을 자신의 영광스러운 임재로 가득 차게 하시는 새 창조가 시작되었음을 보여 준다.23

이방 백부장의 고백인 “진실로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었다(avlhqw/j ou-toj o` a;nqrwpoj ui`o.j qeou/ h=n).” 역시 성경의 거대 담론과 관련한 중요성을 지닌다. 첫째로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예수의 참된 정체성은 지금까지 오직 하나님에 의해서 발설되었는데(참조, 1:11과 9:7) 오직 여기서만 인간에 의해 그것도 이방인 백부장에 의해서 고백된다. 예수는 실로 하나님의 천상의 의의 다스림을 온 땅과 이방인을 포함하는 인류 가운데 구현하는 분이심을 의미한다. 

두 번째로 고백 중 ‘이 사람’은 ‘인자’ 곧 ‘사람의 아들’과 연결되며, 특히 인자는 마가복음 문맥에서 볼 때 단순히 고난을 받아 죽임 당하는 인간 예수만을 지칭하지 않는다.24 마가복음에서 인자는 땅에서 죄 사함의 권세를 가진 자요(참조, 2:10), 안식일의 주인이며(참조, 2:28), 보다 중요하게 권능과 영광과 나라가 주어진 자로 묘사되고 있다(참조, 13:26, 14:61-62). 이 표현은 분명 아담에게 주어진 소명이요 아브라함에게 확언된 약속이며(참조, 창 12:1-3, 17:4-6), 이스라엘에게 이관되었던 소명(참조, 출 19:5-6)인 왕적 소명을 이루는 분이신 그리스도와 연관된다. 이에 대한 근거는 두 가지인데 첫째로 마가복음 1:1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천명하고 있으며, 두 번째로 ‘하나님의 아들’은 앞서 예수의 세례 때 들린 하늘의 음성에 대한 해석에서 지적했듯이, 메시아 사명을 궁극적으로 이루시는 분 즉 하나님의 천상의 왕권을 지상에 온전히 구현하는 분으로 하나님의 아들을 뜻한다는 점이다.25 

그렇다면 마가의 예수 세례 사건이 구약을 반향하고 있으며 보다 중요하게 마가의 문학적 저작 가운데서 예수의 십자가 죽음 사건과 수미상관적인 구성 형태를 띠고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이는 신약 저자의 일원인 마가가 구약의 거대 담론인 하나님의 창조를 구속을 통해 새 창조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의 이야기의 절정과 이 이야기를 구성하는 중요 상징들인 이스라엘(예수를 통한 이스라엘의 정체성이 근본적으로 구현됨), 성전(예수를 통한 하나님의 온 피조 세계의 임재가 구현되어 우주적 차원의 참된 예배가 실현됨), 땅(예수를 통한 하나님의 의의 다스림과 거룩한 임재가 현재적으로 여기서 구현됨), 그리고 율법(예수를 통해 하나님 의가 성취되어 우리에게 주어짐).26

이 신약에서 ‘그리스도 안에서(evn auvtw/),’ ‘그리스도를 통하여(diV auvtou),’ ‘그리스도를 목표로(/eivj auvto.n)’로 근본적으로 성취되었다(참조, 골 1:15-20)27는 점에서 신약의 구약 사용을 잘 예증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결론 

이상의 마가복음 본문을 통해 간략하게 예증하고자 했듯이, 신약 저자들의 구약 사용은 구약 구절의 자구적이며 문자적인 혹은 임의적인 사용이 아니다. 나아가 예수의 인격(the person)과 사역(the work)이 구약의 하나님 이야기의 결정적인 성취요 이 이야기가 담고 있는 중요한 상징들의 근본적인 구현들이라는 확신 가운데, 정확히 말해서 예수는 약속에 신실하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육하신 현현이라는 확신 가운데 구약을 사용한다고 할 수 있다.28 



1) 신약의 구약 사용은 모두가 동의하듯이, 직접 인용, 간접 인용, 암시, 반향이라는 넓은 범주를 담고 있다. 편의상 구약 사용 혹은 구약 인용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 이 이슈를 다루려면 곧바로 양면의 칼날 같은 작용을 하는 인용의 범주를 정하는 문제와 직면한다. 이것은 신약의 구약 사용은 단순한 사용 방법에 관한 논쟁으로 환원할 수 없음을 웅변적으로 말해 준다.
2) 월터 카이저는 프레드릭 가디너를 인용해서 신약이 구약을 인용하는 네 가지 유형(논쟁, 보편성, 예화, 원래의 의도)을 열거하는데 그중 첫 번째가 바로 이러한 논증이다. 그는 이러한 논증이 실제적으로 이루어지는 구체적인 방식을 조셉 피츠마이어를 인용해 문자적 이해, 현대화, 조정, 종말론적 이해 등 네 가지로 열거한다. 참조, 월터 카이저, 《신약의 구약 사용》, 성기문 옮김 (크리스챤다이제스트, 2003), p. 24.
3) 모형론, 약속과 성취, 하나의 구원사와 같이 구약과 신약의 관계 사이의 연속성을 강조하려는 해석 경향을 포함해서 포괄적인 구약과 신약의 관계에 대한 보다자세한 설명을 위해서 다음을 참조하라. 데이비드 베이커, 《구약과 신약의 관계》, 임요한 옮김 (부흥과개혁사, 2016). 
4) 신약의 구약 인용과 관련한 논쟁들은 다음에서 잘 요약되어 있다. 그레고리 빌, 《신약의 구약 사용 핸드북》, 이용중 옮김 (부흥과개혁사, 2013), p. 18 이하. 인용의 범위에 관한 논쟁은 상게서 p. 71을 참조.
5) 이와 관련해 우리는 신약의 세 정황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1. 예수의 정황(예수 전승)-창조의 회복인 새 창조의 복음 즉 하나님의 종말론적인 다스림의 도래라는 복음을 친히 구현하신 예수의 삶의 정황; 2. 사도들의 정황(사도들의 케리그마)-이 복음을 선포한 사도들의 삶의 정황; 3. 초대교회의 정황-이 복음을 삶으로 살아내던 초기 교회 공동체의 삶의 정황(복음서와 서신서들). 보다 자세한 설명을 위해 다음을 보라. 조나단 T. 패닝톤, 《복음서 읽기》, 류호영 옮김 (CLC, 2015), pp. 107-113. 
6) 신약의 구약 인용과 관련해 현재의 정경적 형태로 주어진 신약의 구약 인용에 대한 복음주의 전통의 해석의 예증들을 위해 다음을 보라. G. K. Beale and D. A. Carson, ed.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Use of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Baker Academic, 2007); G. K. 빌 & D. A. 카슨 편집, 《신약의 구약 사용 주석 시리즈 1-5》 김용재 외 옮김 (CLC, 2012).
7) 이 말은 성경이 본래 신학적 저작이라는 본래적 성격에 비추어 볼 때, 성경과 성경해석을 둘러싼 역사적 논쟁보다는 문헌적인 논쟁(본문 비평을 포함해서) 이 더 바람직하다는 뜻이다.
8) 우주 창조와 이 땅의 창조를 인류 중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성소로 이해하는 것에 대해 다음을 참조하라. 존 월튼, 《아담과 하와의 잃어버린 세계》, 김광남 옮김(새물결플러스, 2018), 특히 195 이하; J. 미들턴, 《새 하늘과 새 땅》 이용중 옮김 (새물결플러스, 2015,), p. 71이하.
9) 성경의 이러한 핵심 주제인 하나님-유일신과 창조, 이스라엘-선택, 미래-종말론이라는 삼중적인 구조에 대한 보다 자세한 설명을 위해 다음을 참조하라. N. T. Wright, “How Paul Invented Christian Theology” in https://www.youtube.com/watch?v=WkcjFHYIugY&t=5s.
10) 이에 관해서 학문적이지 않지만 유용한 다음의 책을 보라. 존 팀머, 《성경, 흐름을 잡아라》 (원제: They Shall be my people) 박혜영 외 옮김 (홍성사, 2000).
11) 이러한 성경의 수미상관구조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위해 다음을 보라. 그레고리 빌, 《신약성경신학》, pp. 74-77.
12) 창세기 1:28과 2:15의 이러한 관계를 위해 다음을 참조하라. Terence E. Fretheim, “The Book of Genesis: Introduction, Commentary, And Reflections,” 351, The New Interpreter’s Bible, Vol. I (Abingdon Press, 1994). 
13) ~d'a'h'은 아담과 사람 모두를 의미할 수 있다.
14) 이 번역은 히브리어 본문의 두 개의 부정사를 목적 혹은 결과라는 의미로 해석한 것이다. “Hr'm.v'l.W Hd'b.['l.”
15) 이 두 단어의 제사장적인 이해를 돕는 자세할 설명을 위해 다음을 보라. 참조, 그레고리 빌, 《성전신학》 (새물결플러스, 2014), 89이하; 월튼, 《아담과 하와의 잃어버린 세계》, p. 195 이하. 
16) 이 상징들에 대한 보다 자세한 설명은 다음을 참조하라. 데이비드 E. 홀베르다, 《예수와 이스라엘》, 류호영 옮김 (CLC, 1995); N. T. 라이트, 《신약성서와 하나님의 백성》, 박문재 옮김 (크리스챤다이제스트, 2003), pp. 372-387.
17) ‘찢어짐’에 대해 다른 복음서에서 avnoi,gw(열리다)가 사용되는데 반해(참조, 마 3:16; 눅 3:21), 여기서는 scizw((찢어지다)가 사용된다. 이것은 이 사건에 대한 마가의 묵시론적 이해를 보여 주는 중요한 단서들 중 하나이다. 이는 돌이킬 수 없는 우주적 변혁을 암시한다. 왜냐하면 열린 것은 다시 닫힐 가능성을 내포하지만, 찢어진 것은 원래의 상태로 쉽게 돌아가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참조, D. H. Juel, Mark, Augsburg Commentary on NT (Augsburg, 1990), p. 33.
18) 영에 대한 언급 (1:10 pneu/ma/15:37 evxe,pneusen);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 됨을 가리키는 공식어구의 사용(1:11 su. ei= o` ui`o,j mou/15:39 ou-toj... ui`o.j qeou/ h=n);“봄”이란 동사의 사용(1:10 ei=den/15:39 ivdw.n); 엘리야 상징 혹은 이미지의 사용(마가복음 내에서 세례 요한은 엘리야를 상징한다(참조, 9:13. 예수의 십자가 처형장면에서 예수의 부르짖음의 소리가 엘리야로 오해되고 있음을 주목하라. 참조, 15:35); 세례라는 모티브의 사용(십자가의 죽음을 세례로 이해하는 마가의 신학적 통찰을 주목하라: 참조, 10:38-39).
19) J. Marcus, The Way, 57; Donald Senior, The Passion of Jesus in the Gospel of Mark (Michael Glazier, Inc,1984).
20) 참조, Joel Marcus, The Way of the Lord (Westminster/John Knox Press, 1992), pp. 62-66. 
21) 간단히 말해서 마태복음 문맥 내에서 보면 새 아담이요 새 이스라엘인 예수에게, 인류의 원형인 아담에게 주어진 왕적 소명 즉 하나님의 천상의 왕권을 지상으로 확장하여 구현하라는 복된 약속이 성취의 형태로 주어졌고, 그 결과 예수는 하나님의 새 인류 공동체인 예수의 제자 공동체에게 온 민족을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백성으로 삼으라는 명령을 주시고 있다. 보다 중요하게 이 모든 것은 결국 창조시 우리 중에 거하시려고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예수를 통해서 우리 중에 영원히 거하신다는 성취된 약속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이다. 
22) 성전과 성소의 이러한 구별을 위해 다음을 참조하라. R. Brown, Death of the Messiah, vol. 1 (Yale Univ. Press, 1994), pp. 438-439. 
23)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위해 다음을 보라. 조엘 마커스, 《마가복음 II》 앵커바이블 (CLC, 2016), p. 1842 이하. 
24) 이렇게 보는 주장을 위해 다음을 보라. M. Boring, Mark: A Commentary, NTL (Westmister John Knox Press, 2006), p. 434. 
25) ‘그리스도/메시아’와 ‘하나님의 아들’의 관계 즉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그리스도/메시아’에 대한 보다 자세한 설명을 위해 다음을 참조하라. 류호영, “마태복음 16:16-19에 나타난 예수의 정체성과 하나님 나라의 유기적 관계”, 〈신약 연구〉 제17권 제4호(한국복음주의신약학회, 2018년 12월), pp. 491-525, 특히 pp. 503-506.
26) 참조, 이사야 2:3; 미가 4:2. 여기서 약속으로 주어진 의의 형태로서의 시내산 율법에 대비되는 율법 즉 성취된 의의 형태로서의 시온산 율법을 주목하라. 
27) 골로새서 1:15-20에서 주목할 점은 15-17절은 옛 창조와 관련해 그리스도를 말하며, 18-20절은 새 창조와 관련해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으며 양쪽 모두에서 이상의 세 표현이 모두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점은 하나님의 창조 이야기와 새 창조의 이야기 모두가 그리스도 중심적이며 이런 점에서 구약과 신약의 관계나 신약의 구약 사용은 단일한 거대 담론과 이 담론을 구성하는 근본적 상징들의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확언해 준다. 
28) 예수가 ‘구약의 하나님의 현현’이라는 점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위해 다음을 보라. Richard B. Hays, Echoes of Scripture in the Gospels (Baylor Univ. Press, 2016).


 

류호영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 교수. 영국 글래스고우대학교 (Ph.D.). 역서로 《이스라엘의 성경 전승과 공관복음서》, 《성경해석학 총론》 등이 있다. 필자의 다른기사 keyboard_arrow_r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