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와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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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2019년  12월호예수님처럼 광야로 나아가는 목회 목회, 시대에 접속하다

한국 교회의 전통은 엄격한 신앙 태도에 있다. 매일 새벽기도를 드리고, 수요일에는 성경 공부, 금요일에는 철야기도를 했다. 특히 주일예배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일이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주일을 지키기 위해 믿음의 선배들이 어떠한 일을 했는지를 들어왔다. 올림픽 메달을 포기했던 영국의 육상 선수 이야기도 있고, 자격 시험을 포기하는 등 삶의 어려움을 감수했던 이야기도 있다. 주일에는 일을 하면 안 되기에 공부를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잘 아는 교수님은 유학 중에도 주일이면 공부를 쉬었다고 한다. 월요일에 시험이 있으면 주일 밤 12시가 지나 공부를 시작해 밤을 샌 후 시험을 치렀다고 한다.

한 목사님은 주일이면 어머니가 다리미에 숯을 얹어 다려 주신 지폐를 헌금으로 드렸다고 한다. 정성에 정성을 다해 헌금을 드렸던 것이다. 이런 열심과 헌신이 있어서 한국 교회가 부흥할 수 있었다. 자기 것을 아까워하지 않고 드렸으며, 온 힘을 다해 예배의 자리에 나아가길 꺼려하지 않았다.
 

불출석 교인과 비정규직 교인

그런데 10여 년 전부터 교인들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특히 교회 출석에 있어서 아주 급격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가나안 성도의 등장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불출석 교인이다. 기독교인이라는 정체성은 있지만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 이들이다. 2017년에 실시된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의 한국 기독교 분석 리포트에 따르면 개신교인이라고 응답한 사람 중에 교회에 불출석하고 있는 교인이 23.3%에 달했다. 이는 앞서 시행했던 세 번의 조사(1998년, 2004년, 2012년)에서 11% 안팎을 유지했던 것에 비하면 2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기존 기독교인들에게 신앙을 갖는 것은 교회 출석을 의미했다. 교회를 출석하는 것과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분리해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제 이러한 공식이 깨어졌다. 신앙이 있고, 그리스도인이라고 응답할 수 있지만 교회에는 불출석하는 이들이 생겼다.

행여 이것을 젊은 사람들의 일시적인 현상으로 오해하면 안 된다. 연령별로 보면 40대가 가장 많은데, 전체의 34.1%에 이른다. 평균에 비하면 10% 이상 차이가 난다. 또한 특정한 연령대가 아니라 전 연령대에서 불출석 교인이 나타나고 있다. 물론 60세 이상에서는 11.7%로 낮아지고 있다. 하지만 19-29세 27.9%, 30-39세 23.9%, 50-59세 22.2%가 교회에 다니지 않고 있다고 응답한다. 즉 젊은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이라든가, 어느 연령대에 특정해 있다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교회 출석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이 변했다는 것을 시사한다.

또 다른 특이한 현상도 있다. ‘비정규직 교인’의 증가다. 2017년 학원복음화협의회에서 대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지난 한 달간 참석한 교회 예배 종류’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 결과는 5년 전에 했던 동일한 조사와 비교해 볼 때 주일예배와 청년예배에 참석하는 비율이 현저히 낮아졌다는 것이다. 주일예배는 76.4%에서 59.4%로 약 17%가 줄어들었다. 또 청년예배에 참석하는 비율은 55.8%에서 34.3%로 21.5%나 줄었다. 예배에 참석하는 비율이 줄어드는 것은 이미 알려져 있지만 줄어드는 속도가 상당히 빠르다.

그런데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이렇게 정규 예배에 참석하는 비율이 급격히 줄어드는 데 비해서 비정규 예배라고 할 수 있는 주일 저녁(오후)예배나 금요예배/철야예배 등에 참여하는 비율은 많이 늘었다. 주일 저녁(오후)예배에 참석하는 비율은 5년 전 8.9%에서 2017년에는 19.1%로 2배 이상 증가했다. 금요예배/철야예배에 참여하는 인원도 6.0%에서 14.6%로 역시 두 배 이상 증가한 것을 볼 수 있다. 이외에도 수요예배는 11.2%에서 15.1%로 늘었고, 주일 학교(학생회) 예배는 14.3%에서 16.6%로 늘어났다.

정리하면 정규 예배인 주일예배나 청년예배에 참석하던 사람들이 비정규 예배인 주일 저녁(오후)예배에 참석하거나 금요예배/철야예배에 참석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주일예배에 참석했던 사람들이 주일 저녁이나 금요예배에 참석하는 것이 아니라, 주일 아침에 드리는 예배나 청년부가 따로 드리는 정규 예배에 참석하는 대신에 자신이 교회에 가기에 편한 시간에, 또는 자신이 정한 주일에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이들에게 주일은 ‘일요일’이 아니라 자신이 교회에 가는 날이다. 교회가 정한 주일이 아니라 내가 정한 날이 주일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정규 예배에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는 생각이 사라지고 비정규 예배로 대신하게 된다. 이런 교인들을 칭해서 사회에서 말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비교하여 ‘비정규직 교인’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헌금에 대한 의식 변화

헌금에 대한 생각도 많이 변했다. 앞서 언급한 한목협 조사에서 십일조에 대한 질문을 했다. 먼저는 십일조를 어디에 드려야 한다고 생각하는가를 물었다. 이 질문에 59.4%가 자신이 속한 교회에 드려야 한다고 대답을 했고, 다른 교회나 단체에 드릴 수 있다고 대답한 사람은 40.6%였다. 이것은 5년 전 조사와 큰 차이다. 2012년에는 자신이 속한 교회에 드려야 한다는 응답이 83.7%로 5년 후와 비교할 때 24.3%의 차이가 있다. 즉 그 사이에 십일조를 자신이 속한 교회에 드려야 한다는 생각이 많이 줄어들었다. 물론 이와 반대로 다른 교회나 단체에 드릴 수 있음은 동일한 비율로 늘어났다.

또 이런 의식에 대한 질문과 함께 실제적으로 십일조를 어느 곳에 드리는가를 물었는데 자신이 속한 교회에만 드린다는 비율이 84.2%였다. 즉 생각과는 다르게 실제적으로는 십일조를 자신이 속한 교회에만 내는 사람들의 비율은 높았다. 하지만 이렇게 의식과 실제가 다르다는 것은 머지않아 의식을 따라가게 되리라는 점을 예시한다.

위와 같이 교인들의 의식이나 태도가 달라지고 있다. 한국 교회가 가지고 있었던 전통에 대한 철저함이 사라진 지 오래다. 아니 그렇게 사라지기 시작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 속도가 너무 빠르다. 그러다 보니 우리가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잘 모르고 있다. 물론 정답이 있을 수는 없지만 이해를 위한 시도는 꼭 필요하다. 이를 위해 두 가지 방면으로 정리를 해 보고자 한다. 먼저는 시대적 변화다. 사회의 변화가 교회의 변화를 이끌어 낸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현대인들의 종교성의 변화다. 이 두 부분을 살펴보고자 한다.
 

유튜브 현상에서 찾는 의미

스탠리 파커라는 여가사회학자는 1983년에 쓴 ‘현대 사회와 여가’에서 TV와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사회가 여유가 생기면서 이제 각 집마다 TV가 몇 대씩 있게 되었는데 이를 계기로 가족이 함께하는 시간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집에 TV가 하나일 때는 온 가족이 거실에 모여서 TV를 시청했다. 그런데 TV가 늘어나자 각자 자기가 보고 싶은 프로그램을 자기 방에서 보게 되었다. 그래서 여가의 질이 더 떨어지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요즘 가족의 풍경은 어떨까. 이제는 TV가 의미가 없어졌다. 채널은 더 늘어나고 재미는 더해졌지만 더 이상 가족 구성원이 TV에 매달리는 일은 없다. 각자 자신의 핸드폰이나 컴퓨터를 통해 자신이 보고 싶은 것을 본다. 최근 나온 책 《트렌드 코리아 2020》에 보면 TV나 대형 냉장고가 더 이상 필수 가전 제품에 속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제 이것은 선택 가전이 되었고 오히려 의류 건조기, 식기 세척기, 로봇 청소기가 필수 가전이 되었다고 한다. 즉 가족이 모두 모여 사용해야 하는 가전 제품의 중요성이 그만큼 떨어졌다는 의미다.

이러다 보니 집의 구조도 달라진다. 이전에 거실이 집의 가장 중요한 공간이었다면 이제는 침실이 더 중요해졌다. 각자의 공간이 더 필요해진 것이다. 여기에 더해서 이제는 알파 공간이 인기라고 한다. 이 공간은 침실이나 거실과 같은 기존 개념이 아니라 남편의 서재로, 또는 아내의 작업실로 사용할 수 있는 곳이다. 주목할 사실은 여기에 아이라는 변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대변할 수 있는 특별한 현상은 유튜브의 인기다. 최근 갑작스럽게 증가하고 있는 유튜브의 영향력은 이제 가히 최고라고 할 수 있다. 한 달 동안 유튜브 이용자는 19억 명이다. 이것도 실제적으로 로그인을 하여 사용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놀라운 것은 2019년 1월 기준 한국에서 구독자수가 10만 명을 넘은 채널 수가 1770개에 달한다는 것이다. 유튜브의 시대라고 할 만하다.
유튜브 현상이 보여 주는 몇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 TV와 달리 개인 소비 성향을 가지고 있다. TV는 방송국에서 일방적으로 제작하여 시청자들에게 공급하는 형태다. 특히 지상파 방송의 잘 되는 프로그램의 경우 20% 정도의 시청률이 나오는데, 이는 전국의 5명 중 1명은 같은 시간에 이 프로그램을 동시에 시청하는 것을 의미한다. 유튜브는 이와 같은 중앙집권적인 공급 시스템을 가지고 있지 않다. 오히려 시청자들이 자신이 원하는 프로그램을 찾아서 본다. 사람들은 이제 핸드폰을 통해서 자신이 보고 싶은 것을 보고, 심지어 자신이 보고 싶은 장면만을 본다. 소위 ‘짤방’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이 방송 프로그램 등에서 단 몇 분, 또는 단 몇 십 초의 장면을 제공한다. 사람들은 1시간짜리 예능 프로그램을 정해진 시간에 보지 않고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내가 보고 싶은 시간에, 또 내가 보고자 하는 장소에서 본다. 그런데 이제는 그것도 아쉬워서 1시간짜리 예능 프로그램 중에 불과 몇 분, 몇 십초만 보기도 한다. 아주 철저히 소비자 중심으로 짜여 있는 것이다.

둘째, 이런 소비 패턴에 따라 개인에 맞는 콘텐츠를 제공한다. 19억 명이 각자 보고 싶은 콘텐츠를 이 유튜브의 세상에서 찾아내고 있다. 말도 못 알아듣는 어린아이가 보고자 하는 것에서부터 연세가 많으신 어르신에 이르기까지 각자의 취향에 따른 내용들을 찾아볼 수 있다. 그만큼 많은 콘텐츠가 제공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 수많은 콘텐츠 중에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찾아내는 것도 쉽지 않다. 그래서 유튜브는 실적을 따라 정보를 제공한다. 그것은 구독자수나 조회수 등으로 나타난다.

또 유튜브는 개인의 취향을 기억하고 있다. 빅데이터로 저장된 개인의 취향은 유튜브를 사용할 때마다 개인에 맞는 콘텐츠를 전면에 세워서 우리의 검색을 쉽게 해 준다. 또 이러한 내용은 클라우드에 저장되어 우리가 컴퓨터를 통해 인터넷을 사용할 때도 같은 취향의 광고를 제공한다. 또 노트북이나 탭을 사용할 때도, 심지어 핸드폰을 통해 전 세계 어디를 다닐지라도 좇아다닌다. 이 모든 것은 유튜브의 원 주인인 구글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구글이 우리의 모든 움직임과 취향, 심지어 내밀한 그 무엇까지 다 알고 있다가 관련된 내용들을 제공하기도 하고, 개인에게 맞는 광고까지 제공하는 것이다.

셋째, 소비자가 곧 생산자가 된다는 것이다. 즉 양방향 소통 및 양방향 소비 생산이 진행된다. 많은 사람은 콘텐츠의 소비자이면서 생산자다. 요즘 어떤 행사에 참여해 보면 실시간 중계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길거리를 다닐 때도 녹화를 하고, 심지어 실시간 중계를 하는 이들도 있다. 그곳에서 댓글을 통해 서로 소통하고, 시청자의 댓글에 따라서 반응하기도 한다. 이렇게 일방향이 아니라 양방향으로, 그리고 소비와 생산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굳이 유튜브를 통해서 이렇게 의미를 찾아보고자 한 것은 이 지면의 주제인 ‘규모보다 내실’, 즉 기존 한국 교회가 가지고 있는 틀을 벗어나는 현대 신앙인들의 현상을 이해해 보고자 하는 의도다. 아주 자연스럽게 개인 소비 성향을 가지고 있고, 개인에 맞춘 콘텐츠를 제공받으며, 동시에 소비자이자 생산자로, 그리고 양방향 소통에 익숙한 이 개인들이 교회에 들어왔을 때 경험해야 할 그 무게는 가히 짐작을 할 수도 없을 정도이다. 주일 오전예배, 남자 어른들 중심의 예배 순서, 알 수 없는 의사 결정 구조, 강요되는 신앙생활, 거스를 수 없는 신조 등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교회의 모습일 수 있다. 우리에게는 익숙한 그 무엇이 누군가에게는 어색할 수도 있다.
 

밀레니얼 세대의 등장

최근 사회에서는 밀레니얼 세대에 대한 연구가 많이 되고 있다. 밀레니얼 세대는 1981년부터 1996년까지 태어난 사람들을 말한다. 이들은 21세기에 성인이 되어가는 사람들로서 지금 20대와 30대를 차지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이전 세대와는 많은 부분에서 다르다. 보통 70년대에 태어난 사람들을 일컬어 X-세대라고 한다. 90년대에 성인으로 진입하거나 청소년이었던 이들은 확실히 이전 세대와는 달랐다. 하지만 이들을 하나로 묶어서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워낙 이들의 개성이 남달랐기 때문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예를 든다면 90년대 가요계에 나타난 ‘서태지와 아이들’과 같은 가수들이다. 이들의 행태나 모습은 기성 세대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또 이들에게서 어떤 유행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들도 찾을 수 없었다. 하나의 트렌드라면 기존의 고정관념을 깨는 것이었다. 그래서 학자들은 이들을 일컬어 X-세대라고 했다.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으로 규정할 수 없는 이들이기에 그렇게 이름을 붙인 것이다. 그런데 이후의 세대는 X-세대보다 더 불확실했다. 그래서 이들의 이름을 따로 지을 수가 없어서 X 다음에 나타나는 영어 철자인 Y로 이름 붙였다. 바로 이들이 밀레니얼 세대라고 하는 이들이다.

이런 불확실성 속에서도 그나마 확실한 점은 이들은 개인주의가 철저하다는 것이다. 자기중심적인 사고가 자연스럽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으로 유명한 소비트렌드 연구가 김난도 교수는 ‘Welcome to Me World’라는 이름을 붙였다. 즉 밀레니얼들은 자신의 세계에 묻혀있다는 것이다.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고, 자기중심적으로 행동하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나오는 현상들이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소확행, 현재 자신의 행복을 중시하고 소비하는 태도를 나타내는 ‘욜로’(You only live once), 일과 여가의 밸런스를 의미하는 워라밸, 돈은 적게 들어도 마음에 만족을 얻는다는 가심비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기성 세대의 사고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이들이지만 실은 이들 나름의 원칙이 있다. 바로 각자 자신의 삶을 살아가겠다는 것이다. 그 무엇에 충성하고 헌신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여 그곳에 충실히 살겠다는 것이다.

이처럼 사회에서는 개인주의가 빠르게 정착하게 되었다. 이들을 중심으로 사회는 또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사회는 개인이 자기중심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다. 특히 기술이 발달하면서 모든 개인에 맞는 소비가 가능하고,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되었다. 누구라도 원룸에 갇혀 인터넷과 핸드폰만 연결되어 있으면 모든 삶이 가능하다. 이런 상황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유튜브의 발전이다. 개인 소비 성향을 장려하고, 개인에 맞는 콘텐츠를 제공하며, 쌍방향으로 소통하며 개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 정해진 규칙과 공동체를 강조하는 교회라는 틀이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 들어야 당연한 것이다.
 

영적이지만 종교적이지 않은 이들

종교사회학계에서는 개인주의적인 성향에 관심을 기울였다. 가나안 교인이나 불출석 교인 등에 대한 연구는 독일이나 서구에서는 이미 7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사회의 세속화와 맞물려 개인주의적인 종교성이 드러나는 것에 대해 살폈다. 특히 개인들이 기존의 신앙과 신학의 틀을 깨고 개인 맞춤형 종교를 만들어 가는 것에 주목했다.

이러한 현상은 몇 가지 유행성 구호로 표현된다. ‘Believing without Belonging’, 즉 믿기는 하지만 소속되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신앙은 가지고 있지만 기성 교회의 틀 속에 속하지는 않겠다는 말이다. 그것은 단순히 교회의 출석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기존 교회가 지닌 교리나 가르침 등에서도 자유롭게 신앙하겠다는 의미이다. 이와 비슷한 말로 ‘Spiritual but not Religious’란 말도 있다. 영적이지만 종교적이지는 않다는 의미이다. 영적인 관심은 있지만 기존 체계를 가진 종교에는 속하지 않겠다는 의지다.

또 다른 의미로 ‘DIY 종교성’도 있다. DIY는 ‘Do it Yourself’의 약자로 스스로 한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는 가구를 살 때 자신이 직접 조립하는 것을 의미한다. 완성된 가구가 아니라 재료만 제공하여 집에서 조립하게 하는 것이다. 이렇듯 사람들이 종교를 스스로 만들어 가고 있다. 가구를 조립하듯 여러 종교적 상징들을 모아 자신만의 종교를 만들어 가고 있다. 그래서 기독교인이지만 기독교인 같지 않은, 아닌 척 하지만 또 기독교인인 모습이 드러나는 것이다.

또 ‘패치워크 종교성’이라는 말도 한다. 패치워크라고 하는 것은 조각천을 이어 붙여 이불이나 담요 등을 만드는 것을 말한다. 서로 다른 조각천을 바느질해서 하나의 작품을 만들 듯 사람들이 자신들의 종교적 조각들을 모아 스스로의 종교를 만들어 간다. 성서적 기반을 가지고 있지만 거기에 불교의 윤회설도 들어가고, 힌두교의 명상과 동양 종교의 선이 혼합된다. 거기에 윤리적 기준들은 지극히 포스트모던한 자세를 가지고 있다. 어느 한 종교로 표현할 수 없지만 그는 기독교적 뿌리에 가지를 두고 있다. 우리가 볼 때는 다원주의지만 스스로는 기독교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한국 교회 교인들도 점점 이러한 모습을 띤다. 주일 성수에 대한 매임에서 벗어났으며, 주일에 대한 정의도 달라졌다. 십일조나 교회가 제공하고 있는 관습은 이미 깨어진 지 오래다. 또 일상에서 기독교적인 윤리나 도덕이 드러나지 않는다. 기독교인들의 윤리적 의식이나 태도를 조사해 보면 일반 사회인의 의식이나 태도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 기독교인이라고 구별되고 특별해야 한다는 생각조차 사라진 것 같다. 이러한 때에 과연 교회의 틀이 유지될 수 있을지조차 의문스럽다.
 

예수님처럼 나아가야 한다

우리는 결단의 순간에 섰다. 이들을 교회의 틀에서 벗어난 이들로 배제하고 갈 것인지 아니면 더 적극적으로 안고 갈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 교회에 충성하는 마니아들로 교회를 구성할 것인지 주변으로 벗어나고 있는 이들을 향해 나아갈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 실은 선택의 여지는 없다. 무엇으로 규정할 수 없을 정도로 파편화 되어 있기 때문에 한국 교회가 선택을 한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

오히려 교회도 다양화되어야 한다. 개인에게 맞는 콘텐츠를 제공하는 유튜브처럼 다양한 교회를 만들어 가야 한다. 모두가 대형 교회를 지향할 것이 아니라 다양한 모습의 작은 교회들을 만들어 가야 한다. 모두가 주일 오전에 드리는 예배만을 지향할 것이 아니라 주일 오후, 수요일, 금요일, 토요일에도 다양한 형태의 예배를 드려야 할 것이다. 심지어 인터넷이나 방송을 통해 예배에 참여하는 자들까지 고려하는 형태도 고려해야 한다. 이제 예배당으로 모으는 목회는 한계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예수님처럼 광야로 나아가 그들에게 물고기와 떡을 제공할 수 있는 교회로 거듭나야 한다.
 

조성돈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목회사회학 교수. 마르부르크대학교(Dr.theol.). 저서로 《목회사회학-현대 사회 속의 기독교회와 생활 신앙》, 《세상을 사는 그리스도인》 등이 있다. 필자의 다른기사 keyboard_arrow_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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