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와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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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설교 2019년  10월호현대 교회 개척 환경의 변화와 전략 교회 개척과 자립 신모델

교회 개척! 참으로 다루기 어려운 주제다. 그 이유는 교회 개척 자체가 쉽지 않을 뿐 아니라 최근에 이르러서는 교회 개척에 대한 부정적인 기류마저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오늘날 교회가 너무 많다고 한다. 거리마다 골목마다 빌딩마다 교회들이 넘쳐난다고 한다. 그런데 왜 교회 개척이 필요하냐는 것이다. 이미 존재하는 교회들이나 잘 간수하고 살려야 하지 않느냐고 말한다. 필자는 이러한 부정적인 기류가 비성경적이라는 충분한 신학적 견해와 논리를 제공할 수 있지만, 본고의 목적에 부합되지 않음으로 생략하려고 한다.

다만 한 가지, 교회 개척은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하나님의 ‘유일한’ 전략이라는 사실만은 강조하고 싶다.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것은 다름 아닌 교회의 숫자가 증가하는 것이라고 확신한다. 교회 성장은 교회의 숫자가 많아지는 것이지, 하나의 교회가 필요 이상으로 커지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하나의 교회가 커지는 것은 교회 성장이라기보다는 ‘교회 비대’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새로운 교회를 세워 가심으로써 그분의 나라를 확장해 오셨다. 그렇기에 교회 개척은 지금도 필요하다. 더 많은 새로운 교회들이 이 땅에 탄생해야만 하는 당위성이 있다.

그런데 교회 개척의 실패율이 너무나 높다.1 왜일까? 물론 교회 개척이 쉬울 리 없다. 아니 쉬워서는 안 된다. 개척된 교회마다 살아남는 것이 하나님의 뜻은 아니다. 교회 역사를 보건대, 하나의 교회가 세워지기 위해 수많은 순교자가 배출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지금도 순교까지는 아니지만 순교에 가까운 교회 개척자의 희생과 헌신의 결과로 하나의 교회가 세워진다. 필자는 현재의 교회 개척 실패율이 높은 것을 매우 정상적인 현상으로 바라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교회 개척 실패율을 지금보다는 줄일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그 방법을 오늘날의 교회 개척자들이 이 세상을 파악하고 이 시대에 작동하는 교회 개척 방법을 시도하는 것이라고 본다. 이 시대의 교회 개척자들이 세상을 읽지 않는다. 그리고 단지 80년대에서 90년대에 성행했던, 한 때의 붐으로 끝났던 교회 개척 방법론을 그대로 모방하고 있다. 이 시대의 많은 교회 개척자들이 교회 개척 신학과 이론으로 무장하지 않는다. 교회 개척자들에게 교회 개척 신학과 원리가 없다는 것이다. 단지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여 믿음과 기도로만 교회 개척에 접근한다. 결국은 실패한다.

필자는 교회 개척 원리가 사도들이 사용했던 원리로 돌아가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이 시대를 읽고 이 시대에서 작동하는 방법을 채택해야 한다고 믿는다.

포스트모더니즘, 4차 산업혁명, 후기 기독교 사회

그렇다면 먼저 교회 개척자들이 파악해야만 하는 현재의 세상을 몇 가지로 분석해 보자.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그리고 그 변화의 내용은 교회 개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따라서 교회 개척자들은 그러한 세상의 변화를 파악하고 정리할 필요가 있다. 21세기 초반의 교회에 영향을 행사하는 대표적인 현상이 무엇인가? 필자는 적어도 세 가지를 제시하고 싶다. 첫째는 정신사조와 관련된 것으로서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이고, 둘째는 기술과학과 관련된 것으로서 ‘4차 산업혁명’(Fourth Industrial Revolution)이며, 마지막으로 기독교와 관련된 것으로서 ‘후기 기독교 사회’(Post-Christianity Society)다. 이 세 가지 현상은 현재 교회와 교회 개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특별히 이러한 현상들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교회의 개척과 존재 양식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교회 개척자들이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된다.

포스트모더니즘이 기독교가 주장하는 절대 진리를 거부했다. 그 결과 사람들은 특별한 종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종교이며, 모두가 진리 창조자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직 예수만이 길이라는 배타적 진리를 고집하고 선포하는 교회는 세상에서 설 자리가 없어지고 있다.

제4차 산업혁명은 전통적인 교회의 형식을 무너뜨리고 있다. 산업기술의 발달은 얼굴과 얼굴을 맞대어 만들어지는 유기체적 교회 공동체를 무너뜨리고 있다. 기술진보로 인해 공간과 시간을 제한받지 않는 모임이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기술진보는 전통적인 목회 형태를 바꾸고, 헌금의 형식을 바꾸며, 가르침과 소통의 방법을 혁명적으로 뒤엎고 있다.

‘탈기독교 사회’라고도 불리는 후기 기독교 사회가 되었다는 점 역시 지금의 교회에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2 후기 기독교 사회라 함은 이 사회가 더 이상 기독교 중심적인 사회가 아니라는 것이다. 기독교는 주류가 아니라 이제는 비주류(minority)에 속하는, 한 개인의 의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사적인 영역으로 전락된 그 사회를 의미한다. 이러한 개념은 다분히 기독교가 과거 주류로 자리 잡았던 서구에서 나온 개념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렇기에 우리나라에서 과연 기독교가 주류였던 적이 있었느냐고 물었을 때, 우리는 기독교가 주류였던 적이 없었기에 후기 기독교 사회라는 개념이 우리나라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기독교가 양적인 측면에서 우리나라의 주류였던 적이 있었다고 보지 않는다. 그러나 영향력 면에서는 충분히 주류의 역할을 감당해 왔다고 믿는다. 개화기를 비롯하여 일제강점시대를 거쳐 20세기 끝자락에 이르기까지 기독교는 한국 사회의 영향력 있는 도구요 동시에 발전과 변화의 촉진제였다. 하지만 한국 사회 속에서 기독교는 더 이상 그러한 역할을 감당하지 못한다. 영향력을 잃어버린 것이다.

이러한 세 가지의 주요 현상의 영향 아래서 교회와 교회 개척에 영향을 주는 다양한 현상들이 일어나고 있다. 교회가 경쟁해야만 하는 대체 종교나 유사종교들이 범람하고 있다. 여러 사회적 기관들이 출현하여 전에는 교회만이 줄 수 있었던 의미와 보람을 제공한다. 이제는 교회에 가지 않아도 만족과 보람을 얻을 수 있는 대체물이 많다. 교회는 그러한 기관이나 이단들과 경쟁해야만 하는 위치에 처하게 되었다. 과학기술의 발달이 인간에게 가져다 주는 편안함은 사람들로 하여금 물리적으로 교회에 가야만 하는 이유를 찾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무엇보다도 교회가 스스로 수없이 자책골을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교회 개척이 더욱 어렵게 한다. 교회가 사회적으로 그 영향력과 권위를 스스로 내버림으로 인해 교회 개척이 정말 어렵게 되었다. 특별히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큰 대형 교회들의 자책골은 교회 개척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오늘날 세속화(배금주의)에 점령당한 교회는 세상 속에서 ‘고립된 성’이 되고 말았다.3 교회에 대한 세상의 낮은 신뢰도는 교회의 현주소를 보여 주고 있다.4 따라서 교회 개척이 점점 더 쉽지 않은 것이다. 더구나 교회 내부적으로 목사의 과잉 공급과 정상적이지 못한 청빙 시스템 등은 사역지를 찾을 수 없는 40대 중반 이후의 목사들을 갑자기 개척으로 내몰고 있다. 개척 외에 다른 방법을 찾지 못한 이들은 여기저기서 빚을 내어 순식간에 교회 개척을 시도한다. 그렇게 시작한 교회 개척이 성공할 확률은 그리 높지 않다. 결과적으로 우리나라의 교회 부도와 매매는 아주 심각한 수준이다.5

다르게 교회를 개척하라

교회 개척 생태계는 이미 달라졌다. 우선은 이 생태계에 적응하고 살아남는 교회 개척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 현재의 생태계에서 작동하는 교회 개척 원리와 방안을 사용해야 한다. 교회 개척자는 당연히 창조적이어야 한다. 교회 개척자에게 상상력이 필요하다. 그것을 필자는 ‘다르게’라고 말하고 싶다. 익숙한 말로는 이것을 ‘패러다임 전환’(paradigm shift)이라고 한다.

이제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전통적인 교회개척 방법에서 탈피할 필요가 있음이 너무나 자명하다. 많은 교회개척자들이 형식과 전통을 진리로 여기고 그것들을 고수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이것은 바르지 않다. 그 진리를 담고 선포하는 교회의 형태는 초대교회 이래 지금까지 끊임없이 바뀌어 왔다. 따라서 교회를 다르게 한다고 해서 진리를 훼손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최근 필자가 저술한 《사도적 교회 개척: 신학과 실천과 방향》이란 책 내용의 한 대목을 그대로 아래에 옮기고자 한다.

팀 켈러는 “교회 개척자들은 기존 사역을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역을 창조해야 한다”6고 했다. 존 스토트 역시 복음의 맥락화를 주장했다. 그는 말하기를 “목욕물과 함께 아기를 내다 버리기보다는, 아기는 지키되 목욕물은 교체하라”고 했다. 이 말은 주어진 문화적·현실적 상황 속에서 복음의 핵심은 지키되 교회를 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창조적으로 접근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페인이라는 교회 개척 전문가는 낚시를 예로 들면서 수많은 낚시 종류와 그에 따른 다양한 낚시 방법이 있듯이, 교회 개척을 위한 방법들 역시 다양하며, 상황과 문화에 합당한 다양한 방법을 사용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7

교회 개척자는 교회 개척에 대한 고정관념을 버려야만 한다. 만약 교회 개척자 자신이 알고 있는 교회의 틀을 파격적으로 깬다면, 할 수 있는 교회의 모습과 사역은 무궁무진할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많은 교회 개척자들이 자신들이 몸담고 섬겼고 보았던 익숙한 교회와 전통을 단순 모방하고 있는 형편이다. 여기저기서 빚을 내어 자금을 마련하여 예배 장소를 구하고, 간판을 걸고, 사람들이 오기를 기다린다. 과거에는 통했지만 지금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 건물(장소) 중심의 교회 개척 방법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형편이다. 스테쳐와 레이너는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너무나 많은 교회들이 과거의 성공에 묶여 있다. … 그러나 이 과거의 영광은 시간과 함께 흘러가 버렸다. 더 이상 영광이 될 수 없다.”8

교회 개척에서 생존하기

이제 원리적 측면에서 이 시대의 교회 개척자들이 생존을 위해 반드시 고려해야만 하는 방향 몇 가지를 제안하려 한다. 이 시대의 교회 개척자들의 일차적인 목표는 살아남는 것이어야 한다. 살아남는 것은 세속적이거나 천박한 것이 아니라 실로 거룩한 일이다.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당연히 성경의 원리로 돌아가야만 한다. 그 핵심적 원리는 다음과 같다.

1.  건물 중심에서 사람 중심으로

오늘날의 교회 개척자는 건물 중심에서 사람 중심의 교회 개척을 시도해야 한다. 교회 개척이라 함은 장소를 구해 예배 처소를 마련하고 교회 이름 간판을 거는 것이 결코 아니다. 교회 개척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구원한 사람을 제자화하는 과정이다. 성경에 나타난 교회 개척은 언제나 한 영혼의 구원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사도들은 교회를 개척하기 위해 건물을 찾지 않았다. 사람을 찾았다. 사람이 있는 곳으로 가서 사람을 구원하여 그 사람이 교회가 되도록 했다. 그렇기에 초대교회의 교회 개척은 대체로 가정집에서 이루어졌다.

건물이나 공간은 교회 개척을 위한 필수요소가 아니다. 예배만을 위한 전문 교회당은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기독교 공인 이후에야 나타났다. 어떤 이들이 주장하는 대로, 화려한 교회당의 등장은 교회가 공인된 이후 이방 종교의 신전을 본 딴 것일 수도 있다. 기독교는 원래 신전이나 형상이나 가시적인 숭배 대상을 갖지 않은 종교였다. 놀랍게도 예배 전용 건물이 등장하면서 기독교는 능력을 잃어버리고 세속화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기독교가 전파되는 어느 곳에서든지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현상이다. 오늘날 널리 유행하고 있는, 공간을 먼저 구하고 그 공간을 채우려 하는 방식의 교회 개척은 성경에는 없는 방법이다. 오늘날도 가정집은 교회 개척의 좋은 장소다.

2.  양적 성장에서 공동체 형성으로

오늘날의 교회 개척자는 양적 성장 목표에서 작지만 강한 공동체 형성을 목표로 교회 개척을 시도해야 한다. 물론 교회가 자립하는 것과 자립해서 중대형 교회로 성장하는 것은 좋은 현상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오늘날의 시대적 정황과 교회 생태계를 보건대, 양적 성장은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 가운데 이루어지는 일이지 일반적인 현상은 아니라고 본다. 교회 개척자가 양적인 성장을 교회 개척의 절대 목표로 삼는다면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양적 성장을 목적으로 삼는 목회자는 타목회자와 자신을 자꾸만 비교하게 되고 결국은 자족하는 목회를 할 수 없다. 그 결과 행복하지 않은 목회를 하게 된다.

그렇기에 작지만 강한 진정한 공동체 교회를 형성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이러한 자세가 성경에 나타난 교회 개척자의 자세이기 때문이다. 사실 개척 교회는 주변의 중대형 교회와 경쟁해야만 한다.  중대형 교회와 경쟁할 만한 요소를 갖추어야 한다. 중대형 교회와 똑같이 해서는 인적, 물적 자원의 열세로 경쟁이 되지 않는다. 결국 개척 교회의 경쟁력은 작음 안에 자리 잡은 튼튼한 공동체성이다.

3.  까마귀 의존에서 스스로의 능력으로

오늘날의 교회 개척자는 자신과 가족의 생존을 위한 현실적인 대안을 갖고 교회 개척에 임해야 한다. 목사가 생존을 해결하는 적어도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는 ‘까마귀 의존 목사’(Faith Mission Pastor)다. 이는 까마귀를 통하여 엘리야를 먹이신 하나님의 능력을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이다. 둘째는 ‘전액 보조 목사’(Fully Funded Pastor)다. 이는 교회가 자립하여 목사의 생계를 책임지는 것이다. 셋째는 ‘두 직업 목사’(Bi-vocational Pastor)다. 목사가 스스로 세속 직업을 가짐으로써 생계를 해결하는 것이다. 목사는 이 세 가지 중에서 한 가지 혹은 그 이상을 결합하여 생존을 해결한다.

물론 전액 보조 목사 형태가 가장 이상적인 형태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오늘날의 교회 생태계에서 개척된 교회가 경제적 자립을 이루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오늘날의 교회 개척자에게 전액 보조 목사 형태를 기대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까마귀 의존 형태 또한 교회 개척자에게 위험천만한 방법이다. 오늘날 많은 교회 개척자들이 까마귀 의존을 염두에 두고 버티다가 결국은 교회가 파산하고 문을 닫는다. 그리고 그 후유증으로 인해 목사와 그 가족들은 심각한 트라우마를 겪게 된다. 결국 오늘날의 교회 개척자는 생존을 해결하기 위한 스스로의 방안을 마련하고 장착해야 한다.

필자는 두 직업 목사 형태를 교회 개척자들에게 제안한다. 두 직업 목사 형태는 성경의 강력한 지원을 받는 형태로서, 목사의 생존을 해결하는 방안 중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형태다. 두 직업 목사가 마치 비성경적인 것처럼 여겨지는 곳은 아마도 우리나라뿐일 것이다. 어떠하든 오늘날 목사의 생존에 대한 방안이 마련되지 않은 교회 개척은 성공하기 어렵다고 필자는 확신한다.

4.  담장 세우기에서 담장 허물기로

교회 개척자는 시작부터 세상으로 나아가겠다는 자세로 교회를 개척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교회의 존재 방식은 교회를 성역화(聖域化)하는 것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회를 거룩하게 여기고 교회와 세상의 담장을 높이 쌓고 세상 사람들이 교회에 들어오기를 기다리는 패러다임이었다. 이러한 패러다임이 작동했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또한 이러한 패러다임은 성경적 패러다임도 아니다. 이제는 교회가 보다 적극적으로 세상 속으로, 마을 속으로, 지역 속으로 들어가야만 한다. 교회와 세상의 구분을 담장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로부터 어느 정도 떨어져 있는가 하는 간격으로 해야만 한다.9 이러한 패러다임의 교회를 요즘 말로 하면 선교적 교회 패러다임이라고 할 수 있다. 교회 개척 역시 마찬가지다. 마을 안에서의 교회 개척이 아니라 마을과 함께하는 교회 개척이어야 한다. 마을을 위한 교회 개척이라기보다는 마을 그 자체가 되는 교회 개척이어야 한다. 교회 개척자는 담임목사가 되기 이전에 그 지역의 주민이 먼저 되고, 학부모가 먼저 되고, 동호회 회원이 먼저 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만 한다.

글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교회 개척이 쉬웠던 적은 없다. 교회 개척은 원래가 어려운 일이었다. 한때 교회 개척이 쉬웠던 시절이 있었는데, 필자는 오히려 그 시절이 비정상적인 시대라고 평가하고 싶다. 교회 개척이 어렵기 때문에 교회 개척자들은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 개척 원리로 돌아가야 한다. 어려운 일일수록 본질을 붙잡아야 한다. 그렇기에 오늘날의 교회 개척자들은 과거 사도들의 교회개척에서 원리를 배우고 그 방법을 배워 응용해야만 한다. 돈으로 시작하는 건물 중심의 교회 개척에서 벗어난 사람 중심의 교회 개척, 양적 성장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난 작지만 강한 공동체 형성의 교회 개척, 하나님과 타인에게 생존을 의탁하기보다는 스스로 생존 능력을 지닌 교회개척, 강대상 뒤에 숨어서 세상이 교회 안으로 들어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으로 직접 뛰어드는 교회 개척! 이것이 사도들이 사용한 본래적인 교회 개척이며, 이 시대에서 살아남는 교회 개척 방향이라 확신한다.





1) 개척 교회의 생존율이 정확히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근거 있고 구체적인 통계는 없다. 어떤 이는 250개 중에 하나가 살아 남는다고까지 하지만 그 근거는 없다. 다만, 2012년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정부의 영세사업자 실태를 근거로 하여, 교회는 식당의 생존율과 동일한 25%라고 밝혔다.
최영경, “[개척교회 ‘2012 新풍속도’] 카페·식당… 개척 교회는 변신 중”, 〈국민일보〉(2012년 8월 17일).
2) Stuart Murray, Post-Christendom: Church and Mission in a Strange New World (Milton Keynes, MK: Paternoster, 2005), pp.11-12를 참고하라.
3) 김진호, 《시민 K, 교회를 나가다: 한국 개신교의 성공과 실패, 그 욕망의 사회학》 (서울: 현암사, 2012), p.137.
4) 기독신문, http://www.kidok.com/news/articleView.html?idxno=102016.
5) 김진호에 의하면, 대체로 연간 1천 개의 교회의 생겨나고 1천 3백여 교회가 문을 닫는다. 김진호, 《시민 K, 교회를 나가다: 한국 개신교의 성공과 실패, 그 욕망의 사회학》(서울: 현암사, 2012), p.156.
6) Timothy Keller, Center Church: Doing Balanced, Gospel-Centered Ministry in Your City; 《팀 켈러의 센터처치》, 오종향 옮김(서울: 두란노, 2016), p.31.
7) J. D. Payne, Apostolic Church Planting: Birthing New Churches from New Believers, (Downers Grove: IVP, 2015), p.82.
8) Ed Stetzer & Thom S. Rainer, Transformational Church; 《교회혁명: 변혁적 교회》, 궁인 옮김(서울: 요단출판사, 2014), p.42.
9) 프로스트와 허쉬(Michael Frost & Alan Hirsch)는 그들의 저서 《새로운 교회가 온다》에서 “경계 구조의 접근”과 “중심 구조의 접근”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경계 구조의 접근”은 교회 주변에 경계 벽을 쌓고 그 안으로 끌어 모으는 교회의 형태를 의미하고, “중심 구조의 접근”은 벽을 세우기보다는 중심부에 그리스도를 놓고 사람들이 필요에 의해 그 중심을 향해 다가오기를 기다리는 교회의 형태를 의미한다.

양현표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실천신학 교수. 남침례신학대학교(Ph.D.). 저서로는 《사도적 교회 개척》이 있다. 필자의 다른기사 keyboard_arrow_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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