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와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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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2019년  10월호유신진화론? 믿지 말아야 합니다 전문가의 책 읽기

기사 메인 사진 J. P. 모어랜드 외 4명/ 부흥과 개혁사/ (상) 678쪽/ 37,000원 (하) 552쪽/ 30,000원

유신진화론은 현대 진화론을 진리로 받으면서 교회에 생명의 창조에 대한 신앙고백과 신학을 수정하라고 요구한다. 하나님께서 생명체를 직접적으로 무에서 창조하신 것이 아니며, 진화라는 메커니즘을 사용했다는 식으로 창조에 대한 이해를 수정하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어떠한 판단을 내려야 할까? 이 책은 유신진화론의 주장은 잘못이며, 교회는 받아서 안 될 것임을 밝힌다. 이것을 위해 세 가지 측면에서 상세한 비판 논증을 제공한다. 그 논증의 범위는 포괄적이며, 내용의 깊이는 핵심 논점을 정확하게 집고 있다. 구체적으로 ‘1부: 유신진화론에 대한 과학적 비판,’ ‘2부: 유신진화론에 대한 철학적 비판,’ ‘3부: 유신진화론에 대한 성경적·신학적 비판’을 제공한다. 이러한 세 가지 측면으로 책의 구성을 3부로 한 것은 이 《유신진화론 비판》의 비판이 견고하며 설득력을 가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유신진화론을 비판함에 있어서 과학적인 측면에서 살피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유신진화론의 문제는 궁극적으로 신학적 성격을 갖고 있지만, 그 주장을 과학이 진화론을 지지한다는 데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유신진화론에 대해 평가를 내릴 때, 교회는 신학적 토의와 더불어 과학적 비평을 필요로 한다. 유신진화론은 과학이 진화론을 지지하며, 더 나아가 (유신진화론자들의 경우) 진화론은 중력의 법칙이 확실한 것만큼이나 확실하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정당한 과학적 비평의 작업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두 권으로 번역된 이 책은 상권에서 과학적 비판을 철저히 다루고 있다. 여기서 유신진화론을 지지하는 과학자들이 과학의 이름과 권위로 진화론을 정당화하는 것에 대하여 적확한 반론을 제시한다. 유신진화론의 주장에 대한 반론과 비판의 초점은 무엇보다 진화론을 지탱하는 두 가지 측면에 맞추어 전반부와 후반부로 내용을 구성하고 있다. 전반부는 ‘신다윈주의의 실패’라는 제목으로 진화론을 비판한다. 신다윈주의란 과거의 진화론이 형태학적인 측면에서 전개된 것과 달리, 유전학적 측면에서 다윈주의를 옹호하는 견해를 말한다. 자연선택, 무작위적 변이의 매카니즘을 통해서 새로운 유전적 정보를 가진 새로운 종류의 생명체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 신다윈주의의 주장이다.

《유신진화론 비판》은 이러한 메커니즘이 새로운 종류의 생물이 나타나기 위해 필요한 유전 정보의 기원을 결코 설명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잘 지적한다. 한마디로 진화는 메커니즘이 입증되지도 않은 이야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드러낸다. 진화에다 유신론을 덧붙이면 어떨까? 여기에 ‘유신론적’이라는 말을 덧붙여도 아무런 설명을 더하여 주지 못한다고 말한다. 유신진화론은 진화의 과정에 초자연적 개입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곧 진화론이 성립되지 않으면 유신진화론 자체도 성립되지 않는다. 더구나 진화론이 성립하려면 근원적으로는 화학적 진화 메커니즘이 성립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책은 그것은 전혀 과학적으로 밝혀진 것이 아니며, 어느 누구도 단순한 유기 화합물이 어떻게 생물로 탄생할 수 있는지를 이해하는 자는 없음을 지적한다. 이것은 최소한 진화론이 과학적으로 입증된 것이라는 주장이 결코 과학적이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을 보여 준다.

진화론자들은 이러한 과학적 비판에도 불구하고 물러서지 않는다. 진화론자들 가운데 일부는 무방향적이며 무작위적인 돌연변이와 자연 선택, 그리고 자연에 의해 선택받은 유전 인자의 유전 등의 설명으로는 생물의 출현을 설명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인정한다. 이에 이들은 진화의 메커니즘을 강화하기 위하여 여러 변형된 새로운 아이디어들, 곧 ‘확장된 진화 종합 이론’이라고 불리는 것을 제안한다. 이 책은 이러한 일체의 시도들이 결국에는 생물의 형태와 그것을 구성하는 정보의 기원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지지받을 수 없음을 적절히 비판한다.

이 책은 제시하는 과학적 비판은 두 번째 주제로 진화론의 보편적 공통 계보의 문제를 다룬다. 과연 지구상의 모든 생물체는 공통 조상에서 기원된 것일까? 이것은 흔히 교과서에 실려져 있어 잘 알려진 ‘진화 생물 계통수’에 대한 비판이다. 유신진화론자들 가운데 일부는 돌연변이와 자연 선택의 메커니즘이 생물의 발생과 현상들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거의 모든 유신진화론자들은 보편적 공통 계보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이러한 신념은 생물지리학과 화석, 그리고 해부학적 상동성과 발생학적 유사성에 더하여 신다윈주의적 차원에서 분자적 상동성에 근거하고 있다. 그러나 《유신진화론 비판》은 이러한 것들이 얼마나 증거적 차원에서 무너지고 있는가를 잘 보여 준다.

공통 계보의 문제는 인간론에 이르면 매우 심각한 양상을 보인다. 공통 조상의 문제는 인간이 침팬지와 공통 조상을 가진 진화의 산물임을 주장한다. 그렇다면 인간은 인간 나름대로의 고유한 기원을 갖지 않고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결국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을 따라 지으신 특별한 피조물이라는 성경의 교훈을 수정하거나 포기해야 하는 것이다. 앞서 신다윈주의를 비판하면서 유전 정보의 변이와 축적에 의한 새로운 생물의 등장이 잘못된 것임을 지적한 것에 이어서, 공통 계보론의 비판에서는 전이형태를 설명할 화석의 증거가 없을 밝힌다.

《유신진화론 비판》은 과학적 비판의 부분을 마무리하면서 아주 중요한 주제를 빠뜨리지 않고 제공한다. 그것은 과연 과학계가 객관성을 토대로 연구를 정직하게 평가하고 있는가의 문제다. 적어도 오늘날 진화론을 중심으로 과학계는, 특별히 진화생물학과 우주론은 객관적이라기보다는 주관적 추측에 근거하여 주장을 하는 일들이 빈번함을 지적한다. 이것은 거의 ‘새로운 종교’에 가깝다고 평가한다. 이러한 현상이 어떻게 유지될 수 있는 것일까? 그것은 연구기금 배분과 과학 논문에 대한 평가를 동료 전문가가 하는 평가 시스템으로 인하여 이미 형성된 주류 견해와 다른 것을 이단자로 걸러내는 역할을 한다는 데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고 비판한다. 그렇다면 유신진화론은 이러한 풍토에서 기인한 것이므로 적어도 학계의 명성에 의하여 성경적 창조론을 포기하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유신진화론 비판》이 1부 과학적 비판의 후반부에서 다루는 공통 계보에 대한 비판은 다음의 내용을 다루고 있다. ‘10장 화석 기록과 보편적 공통 조상,’ ‘11장 보편적 공통 계보에 대한 통합적 비평,’ ‘12장 공통 계보에 대해 누구나 물어야 할 다섯 가지 질문,’ ‘13장 인간의 기원을 둘러싼 전투(14-16장)의 서론,’ ‘14장 빠진 전이형태들: 인간의 기원과 화석 기록,’ ‘15장 인간의 독특성에 대한 증거,’ ‘16장 대안적인 집단유전학 모델,’ ‘17장 순응을 강요하는 것은 과학의 편향을 초래할 뿐이다.’

이 책을 비판하는 일은 과학적 비판에 이어서 더하여 철학적 논의를 또한 필요로 한다. 일반적으로 진화론은 무신진화론을 함의함에도 불구하고, 유신진화론은 유신론과 진화론을 조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진화론은 만물의 생성에 대한 논의 자리에서 창조주를 내쫓고 자연을 그 자리에 둔다는 점에서 유신론과 대척점에 있는 것으로 이해되어 왔다. 진화론은 자연 안에 있는 복잡하며 특정한 질서 현상이 자연 안에 있는 무작위적이며 무방향적인 유전자 변이의 결과일 뿐이라는 이해를 담는다. 진화론은 자연적 원인 이외에 어떠한 초자연적 원인을 고려하지 않으며, 초자연적 존재를 상정할 필요성은 고사하고 배격한다. 그렇기 때문에 무신론자들의 관점에서 유신진화론은 불필요한 상상일 뿐이다. 진화론은 초자연적 존재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어떤 형이상학적 존재를 상정할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신론자들은 유신진화론이란 유신론자들이 자신들의 신앙에 따라 진화론에 초자연적 존재를 연결시키는 것일 뿐이라고 판단한다.

무신진화론자들이 잘 지적하고 있듯이, 진화론은 유신론과 함께하지 않는데, 유신진화론자들은 자신들의 견해를 어떻게 설명하는 것일까? 진화론은  무작위적이며 방향성이 없는 우연적인 변이들에 의존하기 때문에 초자연적인 지적 설계 정보와 결코 함께할 수 없다는 창조론자들이나 지적 설계론자들의 비판이 정당하지 않는가? 유신진화론이 이에 대해 토론할 때 사용하는 주된 개념은 ‘방법론적 자연주의’다. 유신진화론은 방법론적으로는 자연주의를 따라 진화론을 주장할 수 있으며, 이러한 관점은 형이상학적 자연주의를 따를 필요가 전혀 없다고 말한다. 말하자면 방법론적으로는 초자연적 존재를 고려할 필요가 없이 자연주의적 진화론을 주장하면서도, 형이상학적으로는 신을 믿는 일에 아무런 저항을 받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방법론적 자연주의’의 개념으로 생명이 자연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기원한다는 것을 고백하면, 이것은 ‘틈새의 하나님’을 주장하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유신진화론이 도리어 ‘틈새의 자연주의’를 고백하는 것임이 지적되어야 한다. 지금은 자연주의로 설명할 수 없지만 언제인가는 설명할 수 있다는 주장 자체가 자연주의 신념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유신진화론 비판》은 2부에서 바로 이러한 철학적 문제를 깊게 그리고 풍성하게 다루고 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18장 과학에 왜 철학이 필요한가,’ ‘19장 유신진화론은 방법론적 자연주의에 의존해야 하는가,’ ‘20장 전투에서 지는 법: 방법론적 자연주의는 왜 유신진화론을 붕괴시키는가,’ ‘21장 기독교에서 개연적 설득력을 박탈하고 성경이 지식의 근원이란 신념을 빼앗은 유신진화론,’ ‘22장 세계 안의 신의 활동을 이해하는 방식,’ ‘23장 유신진화론과 자연적 악,’ ‘24장 베이컨 다시 데려오기: 오늘날 과학과 성경의 상호작용,’ ‘25장 양심의 기원에 대한 유신진화론과 지적 설계의 견해,’ 그리고 ‘26장 피고석의 다윈: 진화에 대한 C. S. 루이스의 견해.’

마지막으로 3부에서 이 책은 성경적, 신학적 비판을 다룬다. 유신진화론이 신학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이상, 유신진화론에 대한 비판은 결국 신학적이며 성경적인 관점에서 토론되어야 한다. 유신진화론은 사실 과학자들에 의해 판단될 과학적 사안이 아니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신학적 주장이다. 유신진화론에 대한 유력한 지지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과학자들이지만, 유신진화론은 진화론에 대한 과학적 신념을 토대로 신학적인 수정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신학적 성격을 벗어나지 못한다. 유신진화론과 관련된 신학적 주제들은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신학 전반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다.

이를테면, 유신진화론은 하나님의 창조를 기술하는 성경에 대한 관점과 해석, 하나님의 창조 사실과 방식에 대한 이해와 안식일을 포함하는 구속사적인 이해,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인간의 이해와 죄와 죽음의 문제,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에 대한 이해, 아담과 그리스도의 관계에 대한 이해, 아담에 대한 그리스도와 바울의 이해, 그리고 죄에서의 구원과 관련한 부활과 재창조의 종말에 대한 이해와 관련한 전통적인 신학의 결과를 수정할 것을 요구한다.

《유신진화론 비판》은 이와 관련하여 다음의 내용을 제공한다. ‘27장 유신진화론은 열두 가지 창조 사건과 몇 가지 중요한 기독교 교리의 기반을 허문다,’ ‘28장 구약성경의 가르침과 양립할 수 없는 유신진화론,’ ‘29장 신약성경의 가르침과 양립할 수 없는 유신진화론,’ ‘30장 역사적 기독교 교리와 양립할 수 없는 유신진화론,’ 그리고 ‘31장 덧붙이는 말: 워필드는 오늘날의 유신진화론을 지지하지 않았다.’

이 책의 북리뷰를 마무리하면서 마지막으로  “유신진화론을 따르지 맙시다”라고 간청하고 싶다. 유신진화론은 교회를 세우지 못한다. 유신진화론은 진화론에 기생하는 기형적 신학과 신앙을 요구한다. 유신진화론은 성경을 믿어 온 이천년 교회사의 신앙의 토대와 근본을 허문다. 그리고 유신진화론은 이를 지지하는 자들이 주장하듯이 다음 세대, 혹은 젊은 세대를 교회로 이끄는 힘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이들로 하여금 더 이상 기독교 신앙을 가져야 할 이유를 상실케 하며, 교회의 미래를 어둡게 할 것이다. 지금 이때에 《유신진화론 비판》이 번역 출간된 것은 실로 고단한 복음 사역의 현실에 큰 위로가 아닐 수 없다.

김병훈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미국 칼빈신학교(Ph.D.). 저서로는 《소그룹 양육을 위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이 있다. 필자의 다른기사 keyboard_arrow_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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