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와 신학

  • {{x.scr_name}}
  • 미분류

특집 2019년  09월호 장로 임기제의 필요성 한국 교회와 장로직제

‘장로 임기제’란 무엇인가? 성경에서는 장로 임기제에 대해 뚜렷하게 설명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 주제에 대한 찬반 논란은 당연하다. 문제는 어떤 신학적 주제를 다루든지 무엇이 ‘성경적인가’에 대해 객관적으로 서술하지 못하는 경우다. ‘성경적’이라고 말하려면 몇 개의 구절이 성경 전체에 적합해야 하며(종합적) 하나님의 계시 전체와 상호 의존적으로 하나를 이루어야(유기적) 한다. 몇몇 성경 구절 혹은 단어를 ‘자의적으로’ 해석해 ‘성경적’이라고 외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아울러 통전적으로 성경을 이해하려는 노력, 이성적 판단, 성경 시대와 교회 시대의 역사 자료 분석 등을 해석학적 기제로 사용하면서 무엇이 객관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인지를 귀납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필자는 이런 의미의 ‘성경적’이라는 기준으로 장로직의 적합한 임기가 70세 정년제가 아닌 1-3년 정도의 임기제임을 밝히고자 한다.

비록 장로 임기제가 갖는 한계와 단점이 있음에도 이 제도는 목사와 장로 혹은 장로들 사이의 다툼이 일상화된 한국 교회를 개혁하는 데 유용하다. 임기제는 당회 구성원의 교체 주기를 제도화해 당회 안의 독점적 권력층 설립을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때 당회원은 주된 사역인 교인 돌봄과 권면 등의 일에 집중하게 할 수 있다. 우리가 잘 알듯이 장로교든 감리교든 혹은 침례교든 오순절 교회이든 한국 교회의 분쟁과 분열 그리고 분리의 중심에는 당회(혹은 이와 유사한 의사결정기구)가 있다. 임기제는 제도적으로 권력 남용 또는 권력 지향 의식을 훨씬 희석시켜서 교회 안의 갈등을 최소화한다. 이미 이런 장점을 고려해 칼뱅 또는 개혁 교회 그리고 장로교 교단 대부분의 교회에서 임기제를 실시해 왔다.

성경의 ‘장로’와 오늘날의 ‘장로’의 차이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성경은 한 장로가 특정한 기간 동안만 그 직분을 갖는다든지 혹은 임기제와 같이 1-3년 단기간 사역하고 일정 횟수만큼 재신임 할 수 있다든지 등의 장로 임기에 관한 그 어떤 명백한 가르침도 제시하지 않는다. 굳이 성경적 근거를 찾는다면 직접적인 증거보다는 간접적인 데에 있다.

성경의 직접적인 증거가 없음을 이해하려면 우선 성경에서 말하는 장로와 오늘날의 장로가 완전하게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성경에서 말하는 장로가 사도 또는 목사 또는 감독과 함께 불리던 직책이라면1 오늘날의 장로는 두 장로(곧 ‘가르치는’ 장로와 ‘다스리는’ 장로) 중 ‘가르치는 장로’로서의 목회자를 제외한 ‘다스리는’ 평신도 장로의 직책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성경의 장로가 현대 교회의 장로와 다르다는 증거는 베드로가 스스로 장로라 칭했던 점(벧전 5:1), 은사 배치와 관련해 오늘날의 치리장로를 언급하지 않는다는 점(고전 12:28; 엡 4:1-12), 그리고 장로가 목양에 대해 책임지는 것은 물론 이단에서 보호할 감독과 동일시된다는 것에서도 찾을 수 있다(행 20:17, 28).

물론 오늘날의 치리장로를 의미하는 것처럼 보이는 “잘 다스리는 장로들”(딤전 5:17)이 언급된 것도 사실이다. 이를 근거로 장로교회 헌법에서 평신도로서의 ‘다스리는 장로’를 명문화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말씀을 앞서 언급한 여러 구절과 어떻게 조화시킬지, 나아가 장로의 정체성에 대한 정확한 개념은 무엇인지에 대해 약간의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 문제는 이 한 구절 외에 대부분의 성경에서는 장로를 목사, 감독과 동일한 자로 묘사한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칼뱅을 비롯한 대다수 신학자들도 동의한다. 따라서 위의 디모데전서의 말씀은 아마도 단순히 오늘날의 ‘평신도’로서의 장로라기보다는 목회도 할 수 있으면서 ‘다스리는’ 일에 특화된 자들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들 ‘다스리는 장로’는 성도를 양육하고 교회를 지키는 일에서 설교에만 집중하는 목사보다 다스리는 은사가 뛰어나서 ‘감독’으로서 인정될 자들이라 할 수 있겠다. 장로 중에 리더십이 가장 뛰어난 ‘잘 다스리는’ 장로를 감독으로 세워 장로들 가운데 분쟁을 조정하며2 교회를 지켜내고 성도들을 이단에서 보호하는 것을 기대했다. 그래서 바울은 이러한 ‘잘 다스리는’ 장로를 배나 존경하라고 했던 것이다.

그러면 같은 구절에 있는,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에게는 더욱 그리할 것이니라”라는 말씀은 어떻게 볼 것인가? 장로교 헌법에 있듯이 ‘다스리는 장로’와 구별되는 ‘가르치는 장로’를 언급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 성경은 일관되게 이 둘을 구별하지 않고 동일시 혹은 혼용한다. 그래서 고대의 교회에서는 ‘잘 다스리는’ 감독도 설교해야 했다.3 이는 성경에 나타난 ‘잘 다스리는’ 장로가 오늘날 교회의 평신도 장로를 말하는 것이 아님을 증명한다. 따라서 ‘가르치는 장로’에 대한 것으로 보이는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해 복음을 전하는 일의 ‘중대성’을 강조한 것으로서, 이 일은 교회의 행정 일을 관장하는 것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교회 사역의 본질 중에 본질임을 의미할 뿐이다. 이런 이유로 웨스트민스터 총회에서 초대 교회가 이 ‘두 장로’(딤전 5:17) 교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판단했던 것은 당연하다.4 최근에는(1983년) PCUS(미국남장로교)와 UPCUSA(미국연합장로교)의 통합 교단인 PCUSA(미국장로교)에서 ‘두 장로’ 제도를 헌법에서 삭제하기도 했다.5

그렇다면 오늘날의 현대 교회가 도입한 ‘두 장로’ 제도는 완전히 잘못되었는가? 그렇지는 않다. 비록 앞에서 설명한 디모데전서 해석과 달리하더라도 교회는 성경의 교회 개념을 충실하게 반영하면서 교회가 처한 상황에 맞게 새롭게 교회 정치제도를 만들 수 있다. 실례로 칼뱅이 ‘두 장로’ 제도를 도입하면서 평신도 장로제를 구상한 것을 들 수 있다. 그는 교황제와 같은 권력 남용을 막기 위해 이미 고대 교회에서도 실시한 ‘다수 통치’에 의한 교회 치리, 즉 평신도 장로가 포함된 치리회 제도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했다.6 나아가 다른 나라들에서도 이 제도가 교회를 보호하고 경건의 도를 심화 발전시킨다고 생각해 자신들의 상황에 맞도록 약간의 수정을 거쳐 교회 정치 체제 안에 편입시켰다. 한국 교회도 마찬가지다.

다만, 다른 나라에서의 ‘두 장로’ 제도를 통해, 또는 더 나아가 상당수 교회에서 임기제를 실시해 교회 보호는 극대화하고 교회 안의 부패와 타락은 저지한 것과 반대로 우리나라의 교회는 온갖 교회 분쟁의 중심에 ‘두 장로’ 제도가 자리한다. 그 이유 중에 하나로 장로의 70세 정년 보장이 있다고 본다. 물론 담임목사의 타락 등 다른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장로 임기제의 책임도 분명하다.
칼뱅은 ‘성경적’ 교회 장로 제도를 실시함에서 ‘두 장로’ 제도를 도입하면서도 철저하게 장로 임기제를 선택했다. 두 장로 제도가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이 제도를 성경의 교회 정치 체제 원리 혹은 개념에 따라 실시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즉 장로의 항존 임기가 가져올 권력 독점화의 폐해 혹은 위험에 대해 잘 간파했기에 임기제로 평신도 장로제를 안전하게 정착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장로 임기제에 대한 성경의 ‘간접적’ 근거

그러면 장로 임기제에 대한 성경의 간접적 증거는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하자.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 안의 정치 제도는 바울의 몸 비유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바울은 그리스도만이 머리이고(엡 4:15),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엡 4:7) 받아 직분을 맡은 자들로서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노력하는 자들이며, 이들은 상호 의존적인 방식으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엡 4:16) 살아가는 존재들이라고 말했다. 교회의 질서는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로 두면서 성도들이 상호 섬김의 관계를 갖는 지체 혹은 상호 의존적 유기체로 유지되도록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느 한 지체도 다른 모든 지체의 실질적인 머리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머리가 되는 정치 체제여야 한다. 성도들은 직분상 차이가 있을 뿐 본질적으로는 서로 평등하다.

물론 직책상의 중요도 차이로 어떤 자에게는 존경하고 순종해야 한다. 앞에서 말한 잘 다스리는 장로나 말씀을 잘 가르치는 목사와 같은 직분의 소유자를 존경하고 설교와 교회 행정 지도와 치리에 순종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이들의 사역은 그리스도가 유일한 지도자임을 전제로 해 공적으로는 장로 또는 감독, 목사의 신적 권위를 인정받아 시행되는 ‘그리스도의’ 거룩한 일로 간주하기에 가능한 것이다. 당연이 감독이든 말씀을 가르치는 자이든 ‘지배자’ 의식을 가져서는 안 된다. 현대 교회 안의 질서 혹은 정치 제도로서 현대적 의미의 장로제에 대해 논의할 때도 반드시 성경적 교회 정치의 기초, 즉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지체 의식에 근거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장로의 임기를 논의한다면, 앞에 언급한 독점적 지배 체제의 유혹을 원천 봉쇄할 장치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가 머리임을 실제적으로 부인하는, 1인 혹은 다수의 독재가 가능하게 하는 제도라면 단연코 거부해야 한다. 담임목사 1인 독재가 가능하도록 하는 것, 1인 독재 장로 또는 일정 수의 독재 장로 그룹이 교회를 지배하도록 하는 것 모두 피해야 한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다는 것은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성도가 ‘평등한’ 지체임을 전제로 하는 것인데, 만일 제왕적 교회 정치 제도가 가능하다면 그리스도가 아닌 인간이 머리가 되는 구조로서 비성경적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비성경적 교회의 전형이 바로 교황제였다. 교황이 교회의 머리가 되고 다른 성직자들은 철저하게 교황 아래의 단계별 계급적 지위에 종속되었다. 교황이 그리스도를 대체한 것이다. 이로 인해 ‘평생직’ 교황은 교회 권력을 독점해 중세 교회가 부패하도록 만들었다.

그러므로 에베소서의 ‘몸 비유’를 근거로 장로의 임기를 생각할 때, 70세 보장 제도보다 임기제가 더 성경적임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한 번 장로가 된 후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계속 장로로 존재하는 것보다 재신임 혹은 단기간 봉사하도록 하는 임기제가 더 적합하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라는 말이 있듯이, 임기제보다는 70세 정년제가 ‘절대 권력’에 이르게 할 위험이 더 크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40세에 임직한 장로가 30년 동안이라는 긴 세월 동안 교회의 중요한 모든 행정을 결정한다면, 독하게 자신을 수련하지 않는 한 아무리 신앙 인격이 출중해도 독점적 권력 행사의 유혹을 떨치기는 쉽지 않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수십 년을 이어가면서 권력의 중심에 이르기 때문이다. 본인이 권력의 의지를 절제해도 주위에서 그를 권력의 중심으로 몰아세울 수 있다. 나아가 장로가 일반 신도들에 의해 간헐적이든 지속적이든 검증받을 기회를 실질적으로 거의 갖지 못하기에 본인의 의도와 다르게 스스로 권력의 노예에서 해방되기 힘들다.

반면에 임기제는 주기적으로 재신임 절차를 거치거나 1회에 한정해 장로로 봉직하기 때문에 ‘절대 권력’의 위험에 상대적으로 덜 노출된다. 이런 이유로 칼뱅은 재신임이 가능한 1년 임기제라는 장로 정치 제도를 도입했다. 그는 1인 독점 지배 체제의 타락과 부패성을 교황제를 통해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에 자신도 독점적 권력 행사를 하지 못하도록 스스로 철저하게 교회 성도들에게 견제 받았고, 장로 역시 권력 남용에 이르지 않도록 1년 임기제를 통해 독점적 지배 구조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려 했던 것이다.7

장로 임기제는 그리스도만이 교회의 머리일 뿐, 모든 성도들은 지체라는 것을 구현할 실제적으로 유용한 교회 정치 체제다. 이런 의미에서 장로 임기제는 70세 정년제에 비해 상대적으로 ‘성경적’ 근거를 더 지닌다고 말할 수 있다. 에베소서의 몸 비유가 장로 임기제의 직접적인 증거는 될 수 없지만 간접적 증거는 될 수 있다. 교회 안의 안정적인 정치 체제를 구현하는 데 장로의 임기제가 실제적으로 유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현대 교회에서도 누구든 그리스도가 아닌 사람이 머리되도록 만든다면 몸만 개신교인일 뿐이지, 현대판 교황제를 즐기는 자라고 할 것이다. ‘권력 향유’를 즐긴 교황제의 ‘개신교 버전’을 막기 위해서라면 더욱 장로 임기제를 도입해야 한다.

장로 임기제의 사례와 한국 교회의 장로직 ‘신분제’

실제적으로 장로 임기제를 택한 교단들은 매우 많다. 칼뱅은 물론이거니와 제네바에서 칼뱅의 목회를 보고 배운 스코틀랜드의 장로교 창시자인 존 낙스도 장로 임기제를 택했다. 낙스는 제네바의 영국 피난민 목회를 하던 중 장로의 1년 임기제를 시행한 바가 있고, 스코틀랜드로 귀국해 장로교회의 〈제1치리서〉를 만드는 데 주도적으로 참여해 여기에서도 장로 1년 임기제를 명문화했다(멜빌이 주도해 만든 〈제2치리서〉에서는 임기제가 아닌 항존 혹은 종신직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이후에도 75년 동안 매년 장로 임기제를 실시했다.8). 물론 칼뱅이나 존 낙스의 상황과 오늘날 한국 교회의 상황은 다르다. 그들은 세속 권력(로마 가톨릭 국가 권력)에서 교회를 보호해야 했고 타락한 도시 속 성도의 성화를 도와야 했기에 평신도 장로의 도움이 필요했다. 아울러 목사가 독선적으로 목회해 자칫 교회의 머리 역할을 하는 것을 견제할 장로가 있어야 했고, 일반 성도들은 자신의 신앙을 감독할 자들이 자격이 있는지 알아야 했으며, 장로들 또한 권력 남용을 하지 못하도록 어떤 장치가 필요했다. 그것이 바로 장로 임기제였다.

개혁 교회 혹은 장로교의 장로 임기제 정치 제도는 미국으로 건너가서도 거의 그대로 유지되었다. 미국의 기독교 개혁 교회(CRC)는 1년 임기제, 미국의 장로교 중 주류라고 할 미국 장로교(PCUSA)에서는 3년 임기제9, 북미 연합 개혁 교회(URCNA)에서는 보통 3년 임기제(지금은 기한 미확정)10 정통 장로교(ORC)에서는 종신 혹은 3년 임기제 선택11 등 장로교 계통 혹은 개혁 교회 교단들에서는 임기제를 광범위하게 시행한다. 물론 장로 임기제와 관련해 미국에서도 매년 장로직 자격에 부합하는 사람을 찾는 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토로하는 등 현실적 난관이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왜 이들 대다수의 유럽과 미국 장로교 혹은 개혁교단의 교회는 임기제를 고집하는가? 그리스도를 유일한 머리로 하여 성도들이 서로 섬김의 지체가 되는 교회의 의미를 실제화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지 않을까? 미국 장로교(PCUSA)가 헌법에서 ‘장로교 정치 제도의 기초’ 항목의 교회에 대한 언급을 하면서 제일 처음에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PCUSA 〈미국 장로교 헌법〉 F-1.02)라고 선언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국장로교는 이러한 장로교 정치 제도를 구체화할 장로 임기에 대한 건설적인 장치(3년 임기 후 2회까지 총 6년)를 마련했던 것이다.

이런 의도에서였는지 서구 교회에서는 중직자들 사이의 분쟁이 거의 없고 만일 있다고 하더라도 합리적으로 해결된다. 물론 장로 임기제를 실시했기 때문에 교회가 조용했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평생직을 취하는 미국 장로교(PCA)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개혁 교회 혹은 장로교회에서 임기제를 실시한다고 할 때, 임기제의 권력 남용 장치가 일정 부분 효과를 발휘했다고 여길 수는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교회는 분란이 끊이지 않는다. 앞서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교회의 분란 중심에 목사와 장로로 구성된 당회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외국의 대부분 장로교와 달리 70세 정년제를 택한 것이 분쟁의 가장 큰 원인이 된다. 인간은 원래 전적으로 타락해 선을 행할 능력이 없는 자여서 죄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기 때문이고12, 이런 연약한 자들이 오랫동안 교회의 모든 결정의 중심이 된다면 결국 명예와 권력의 노예로 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더욱이 전통적인 유교적 신분제의 영향 아래 놓여 있던 초기 한국 교회는 교회 직분을 수직적 개념의 신분제로 이해해 장로를 집사에서 ‘신분’이 ‘상승한’(?) 것으로 여겼을 것이다. 당연히 이 신분을 죽을 때까지 내려놓기 힘들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마을의 ‘어른’으로서 장로가 있었고 그 장로는 죽을 때까지 그 마을의 장로였다. 불교에서도 존경받는 나이 많은 스님을 ‘장로’(‘長老’)라 일컫게 되었고, 천도교에서도 ‘장로실’(長老室)을 두어 나이가 많고 덕이 높은 장로로 이루어진 자문기관을 두기도 했다.13 교회가 시작되기 전에 이미 유교의 장유유서 문화에 따라 나이 많은 어른이 어떤 조직의 지도자급의 장로를 세웠던 것이다. 한국에 도입된 장로 제도 역시 이런 문화적 범주에서 ‘항존직’으로 이해된다. 분명히 한국 교회의 장로제는 암묵적으로 신분제화 되어 탈장로교 직제로 변환되었다. 이로 인해 원래 장로교 정치가 의도한 교회 보호, 교인 신앙 감시 및 검증, 목회자의 목회 조력, 목사의 독선적 목회 견제, 그리고 장로들의 능력과 도덕성에 대한 상시 검증 등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장로 임기제의 필요성 

이제 한국 교회는 교회의 평화와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성경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고, 교회사를 통해 입증된 장로 임기제를 과감하게 도입해야 된다. 70세 항존직이라고 정한 헌법을 고치는 것이 제일 바람직하지만, 개교회에서 자발적으로 ‘내규’를 만들어 시행해도 된다. 실제로 이런 방식으로 장로 임기제를 시행하는 한국의 교회도 여럿 있다. 목회자가 칼뱅과 같이 자신도 철저하게 검증받으며 목회하겠다고 다짐하고 장로를 설득하면 된다.

왜 오늘날 장로 임기제 도입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하는지는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교회 안의 평화의 상태를 최대한 구비해 안정적인 목회를 하려는 데에 있다. 한국 교회 내의 목사와 장로 사이의 긴장은 늘 교회 분쟁의 중심을 이루고 있어서 목회의 안정적 운용은 늘 위협받는다. 교회 분쟁을 극대화시키는 정점에 장로 정년제 혹은 70세 항존직이 있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러한 장로 제도는 실질적으로 장로를 견제 무풍지대에 속하도록 만들어 칼뱅이 우려한 권력 남용을 일상화하도록 만든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도 투표를 통해 선출된 자가 평생직을 갖는 경우는 거의 없다. 국회의원, 시장, 도지사 임기제가 바로 그 실례다. 임기제를 하는 이유는 이들이 국민 또는 주민을 대표하는 자이기에 ‘지속적으로’ 투표권자들에게 검증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권력의 독점화가 불가피할 것이고 그 피해는 모두 국민과 주민에게로 돌아간다. 장로 임기제는 이러한 사회 통념에도 부합한다.

장로 임기제의 장단점

한국 교회의 경우, 장로 임기제가 현실적 한계를 지니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장로 임기제의 장단점을 살펴본다. 우선 장로 임기제가 건강한 목회를 위해 얼마나 필요한지 또는 임기제의 장점이란 무엇인지 논의해보자. 첫째로, 임기제는 교회 직분이 ‘신분’이 아니라 ‘봉사’라는 개념을 주지시키는 교육적 효과가 있다. 권력을 행사해 교회의 ‘머리’가 되려는 유혹을 덜 받게 한다. 또한 권력의 남용을 실제적으로 덜 행사하게 한다. 성경이 말하는 직분이란 명예가 아닌 ‘종’의 개념인데, 임기제는 이를 가르치는 산교육의 현장을 구현한다. 즉 우리나라의 교회 성도들이 갖는 유교 문화적 신분 개념을 성경적 봉사 개념으로 대체시켜 준다. 한 번 장로가 되면 영원히 장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장로의 ‘직’을 행할 때에 장로임을 제대로 교육할 수 있는 것이다.

둘째, 임기제는 모든 평신도들에게 본인이 장로 자격에 부합하는 한, 장로로 선택될 기회를 많이 부여받게 할 것이다. 70세 정년제의 경우 자격이 있는 평신도라도 현실적으로 장로로 선택될 시기를 얻기가 쉽지 않다. 이로 인해 일정 부분 평신도들의 사기가 저하될 수도 있다. 반대로 임기제는 봉사에 대한 열의가 투철한 장로의 자격이 있는 자들에게 일할 기회를 자주 얻게 해 교회 안에 인재를 잘 구비하도록 한다.

셋째, 임기제는 장로 자신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다. 임기제를 통해 장로는 ‘봉사직’으로서의 장로의 직무를 충실하게 감당할 수 있다. 아울러 짧은 기간 동안 최선을 다해 ‘섬김의’ 삶을 구현할 기회를 갖는다. 장기간 장로직을 수행하면서 매너리즘에 빠지는 위험을 막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장로 개인이 신앙의 내면화와 성숙을 도모하는 데 더 관심을 기울일 수 있다. 이는 장로 개인의 영적 성장을 책임지는 목회자에게도 큰 보람이 될 것이다.

끝으로 장로 임기제가 갖는 한계 또는 단점은 무엇인지 살펴보자. 첫째, 유교의 서열 문화가 여전히 지배적인 한국 교회에 장로 임기제를 성공적으로 안착시키기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한 번 장로가 된 후 다시 집사가 되는 것이 우리에게는 ‘수치’로 여겨질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임기제는 끊임없이 장로를 선출해야 하는 부담을 갖게 한다. 특히 중소 교회에서 이는 더 큰 문제로 나타날 것이다. 때로는 장로 자격을 갖춘 사람을 발견하지 못할 수도 있어서 임기 만료된 장로를 대체하지 못하는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셋째, 업무의 연속성이 약화될 우려가 있다. 

이상의 단점들이 있음에도 장로 임기제는 성경적인 교회 정치 체제를 구현할 적합한 제도라 할 수 있다. 이미 전 세계의 대다수 교회가 이를 실시해 왔다. 장로의 권력화 방지, 권력 남용의 최소화, 교회의 내적인 일치와 평화, 평등한 지체 의식의 실제적 구현, 장로 개인의 영성 성장의 도모, 봉사직으로서의 직분 개념의 부활 등 상당히 많은 장점을 생각할 때 임기제의 도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좋겠다. 




1)    존 칼뱅, 《기독교강요》, 김종흡 외 3인 옮김(서울: 생명의말씀사, 1986), IV.iii.8.
2)    존 칼뱅, 《기독교강요》, IV.iv.2
3)    존 칼뱅, 《기독교강요》, IV.iv.3.
4)    T. F. Torrance, “The Eldership in the Reformed Church”, Scottish Journal of Theology 37, No. 4(1984): p.507.
5)    The Constitution of PCUSA: Part II Book of Order, 2017-2019, 〈미국장로교 헌법: 제II부 규례서, 2017-2019〉, 공식 한국어 번역판, F-3.0202 ‘장로들에 의한 치리’: “이 교회는 장로들에 의해서, 즉 사역장로들과 교역장로들(또는 말씀과 성례전의 목사들이라 불림)에 의해서 치리된다. 사역장로는 그들이 회중 위에 ‘군림’하기(마 20:25) 때문이 아니라,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에 신실한지를 분별하고 신실한 삶으로 인도하며 교회의 신앙과 삶을 강화하고 양육하기 위해 회중에 의해서 선택받기 때문에 그렇게 불린다. 말씀과 성례전의 목사들은 그들의 모든 일 가운데에서 언행으로 믿음을 가르치고, 하나님의 백성이 사역과 증거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데 헌신해야 한다”(Louisville: Presbyterian Distribution Service, 2017).
6)    존 칼뱅, 《기독교강요》, IV.iii.15, xi.6, iv.10-11. 
7)    Mark J. Larson, “John Calvin and Genevan Presbyterianism”, Westminster Theological Journal 60(1998): pp.50-51.
8)    하지만 종신직의 탄생은 교회의 자치권을 효과적으로 얻기 위한 비상적 혹은 실천적 조치에 기인한 것이었음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교회가 로마 가톨릭의 영향권 아래에 있는 왕의 간섭에서 개신교 교회를 보호해야 했던 것이다(Douglas M. Murray, “The Recent Debate on Eldership in the Church of Scotland” in The Ministry of Elders in the Reformed Church, Lukas Vischer ed. Bern: Evangellische Arbeitsstelle Oekumne Schqeiz Sulgenauweg, 1992, 189-190. 재인용. 배광식, 《장로교 정치사상사》, p.143.).
9)    〈미국 장로교 헌법: 제II부 규례서, 2017-2019〉, G-2.0404 ‘임직 기간’: “사역장로(장로)들과 집사들은 삼 년을 넘는 임기로 당회와 집사회에 선출될 수 없으며, 개체교회의 규칙에 따라 재선 자격이 주어질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사역장로(장로)나 집사도 연속 육 년을 넘는 기간 동안 시무할 자격을 갖지 못하며 연속 육 년 시무한 사역장로(장로)나 집사는 최소한 일 년 간 당회나 집사회에 선출될 자격이 없다.”
10)    이승구, “교회의 임직자 선출과 사역 분담의 모범적 사례들”, 〈한국장로교회와 교회직분제도〉, 2019년 봄 한국장로교신학회 제33회 학술발표회 자료집(2019년 3월 23일): pp.17-20.
11)    http://www.christurc.org/blog/2011/06/24/should-elders-be-ordained-for-life, “Should Elders Be Ordained for Life?”(June 24, 2011)
12)    존 칼뱅, 《기독교강요》, II.iii.5. 
13)    권문상, “한국 장로교회와 장로직”, 〈한국개혁신학〉, 35(2012), p.59.

권문상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영국 아버딘대학교(Ph.D), 저서로 《초신자의 질문》, 《성경적 공동체》 등이 있다. 필자의 다른기사 keyboard_arrow_r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