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와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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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 2019년  09월호 명절 당일 주중 예배, 어떻게 생각하세요? 3인 3색

주중 예배도 하나님 앞에 동일한 예배다


임병교 새벽빛교회 담임목사

언젠가부터 절대적인 가치들이 점점 가벼워지는 것만 같다.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가치는 개인의 인권이나 인간 중심의 편리 속에 묻히는 경우가 많다. 특히 종교적 가치의 세속화가 보편화되고 있다. 5일제 근무로 인해 여가 문화가 활성화되면서 “주일예배를 본 교회에서 꼭 드려야 하는가?”라는 문제점이 생기기 시작했다.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가나안 교인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여러 상황 가운데 성도들의 영적 상태가 전반적으로 어떠한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환경에 상관없이 불굴의 신앙으로 극복하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환경이 교회의 담장을 허무는 여우와 같이 교회의 세속화를 가져올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명절 연휴 주중 예배에 대한 신학적 신앙적 체계가 없다면 예배를 소홀히 하기 쉽다. 예배에 대한 근본 원리를 잘 알아야 한다. 주일예배의 보조 예배쯤으로 소홀히 여겨왔던 인식을 바로잡아야 한다. 교회가 모여서 드리는 공예배에서부터 세상으로 나아가서 전인적으로 드려지는 산 제사인 삶으로서의 예배도 주일예배만큼이나 소중히해야 한다. 주중 예배도 하나님 앞에서도 동일한 예배임을 인식하는 마음이 중요하다. 성도들이 모여 예배드리는 것은 요일 구분이 무의미하다. 우리의 모든 것이 예배가 되어야 한다. 예배를 드릴 여건이 됨에도 불구하고 명절이라는 이유로 해이해져서는 안 된다. 부득이한 경우에 한해서는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지혜를 가장해 세상적인 방식과 타협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향으로 행하는 것이 지혜다.

이러한 원칙을 허물지 않는 것이 예배에 대한 영적인 무장이자 훈련이다. 어렵고 힘든 환경 속에서도 예배는 변함없이 드려져야만 예배에 대한 자세가 허물어지거나 소홀히 되지 않는다. 당장 명절 연휴에 참석 인원이 적고, 나오기 힘든 사정이 있는 성도들에게 부담을 줄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쉬어서는 안된다. 각자 알아서 하는 것이 괜찮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가뜩이나 주중 예배를 소홀히 하고 참석에 소홀한 세태에 빌미를 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명절기간 주중 예배
편의를 위해서 부담을 덜고 맘 편하게 한다고 해서 신앙적인 유익이 있는 것은 아니다. 좀 더 구체적인 방법으로 명절 기간의 주중 예배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첫째, 교인 이동이 많은 경우 교인 수에 따라 다를 수가 있다. 그렇지만 소규모라도 모이는 인원이 최선을 다해서 드리는 것이 원칙이다. 이 원칙을 구태여 바꿀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단 한 사람이라도 본 교회에 예배를 드릴 수 있으면 드려야 한다. 성도가 작더라도 은혜로운 예배가 되도록 예배의 중요성과 어떤 상황과 어려움 속에서도 예배를 드리려는 신앙을 강조하는 설교를 하도록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예배를 드릴 때 오히려 믿음을 지키고 교회의 예배를 소홀히 하지 않는 영적인 무장을 갖출 수 있다. 작은 타협에서부터 예배의 거룩성은 무너진다.

둘째는 명절로 인해 출타하는 성도들에게 주중 예배의 중요성을 강조해야 한다. 어느 곳에서건 최선을 다해서 예배하도록 권면한다. 더욱이 주중 예배를 주일예배보다 소홀히 여기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고민이 필요하다. 차량으로 이동 중이거나 가족들이 예배 드리기 어려운 분위기라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함께 생각해야 한다. 차량 이동 중에 잠시 시간을 내어 예배를 드리는 경우 본교회에서 예배드리는 시간을 생각하면서 예배를 드리면 좋다. 고향 교회를 찾아가서 예배를 드리거나, 가족이 함께 가정예배를 드려도 된다. 그 예배의 중심이 하나님을 향하면 되지 않을까? 명절의 주중 예배를 영적 무장의 기회로 삼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해이해지기보다는 신앙의 선친들이 핍박과 환난의 상황에서도 순교를 각오하고 예배를 드렸던 믿음을 강조하면서 상황을 극복하는 영적인 유익이 있도록 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좋겠다.

셋째, 중대형 교회의 경우에는 명절 연휴 기간에도 기본적으로 모이는 인원이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도시의 소형 교회나 소수의 사람만이 드릴 수 있는 경우에는 또 다른 영적인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실시할 수 있지 않을까? 소수의 사람이 예배를 드려야 하는 경우 가까운 곳의 집회가 있는 기도원이나 수련회에 참석하거나 또는 영성 프로그램을 실시할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이 활성화되면 명절에 귀향하지 않고 집에서 보내는 성도들에게는 매우 유익한 시간들이 되지 않을까?

예배를 받으시기 위해 인간을 창조하셨다. 그러나 인간의 편의에 의해서 드려지는 예배는 결코 예배답지 않다. 더욱이 예배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의 표현이다. 교회는 예배를 위해서 존재한다. 예배다운 예배를 드릴 때 교회다운 교회가 되지 않을까? 예배를 통해서 우리 신앙의 좌표를 점검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어떤 사람은 예배를 순교자 같은 심정으로 드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극장에 영화 한 편 보는 것과 같은 마음으로 감상하는 사람도 있다. 하나님 앞에 예배자로 올바로 서있는가! 오늘의 예배를 지성소로 들어가는 대제사장의 심정으로 드렸는가!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이 옴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 10:25).
 

명절은 가정예배로 대치해


이광재 대조제일교회 담임목사

부목사 시절, 명절이 다가오면 교역자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눈치 게임이 시작된다. 누군가는 남아서 명절 기간 동안 주중 예배를 인도해야 하기에 혹시나 내 이름이 불릴까 마음 졸였던 적이 있다. 명절 후에 들은 이야기지만 명절 기간 주중 예배에 출석했던 인원은 극소수였는데 왜 예배를 과감하게 쉬지 못하는지 안타깝다는 한 부교역자의 푸념이 기억난다. 하지만 교회가 정한 예배 시간을 뛰어넘거나 쉬어서는 안 된다는 몇몇 열정적인 분들의 주장이 결국 명절 예배를 쉬는 것을 ‘넘사벽’으로 만들고 말았다.

명절 주중 예배 쉬는 것은 ‘넘사벽’인가?
그렇다면 명절 주중 예배를 쉬는 것은 여전히 소위 ‘넘사벽’일까? 아마도 명절 주중 예배를 ‘절대 쉬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분들 중에는 정말 예배를 사모하는 마음을 가진 분들도 있을 것이다. 또한 예배를 사람의 생각과 형편에 따라 조정하는 것은 ‘불경(不敬)하다’는 생각을 가진 분들도 있다. 그리고 정해진 예배이니 당연히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가진 분들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런 예배에 대한 경외감을 가진 분들의 생각을 무시하거나 가볍게 대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예배란 칼 바르트의 말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고, 가장 긴급한 것이며, 가장 영광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존 스토트의 말처럼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할 수 있는 가장 고상한 활동이 예배”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예배는 믿는 자들에게 가장 중요하고, 긴급하고, 영광스럽고 그리고 가장 고상한 활동이 맞다. 그러나 그러한 예배가 어떤 정해진 시간이나 형식 그리고 특별한 공간적인 자리에서만 행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 왜냐하면 예배는 자신을 계시하시는 하나님과 그것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만나는 영적인 자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요한복음 4장에서 예배의 자리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이 산(사마리아)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영과 진리로 예배하라”라고 말씀하신다. 이는 예배의 자리나 형식이 아니라 예배의 본질을 강조하신 말씀이다. 예배는 하나님과의 만남이 핵심이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반응이 일어나야 하는 현장이다. 그래서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명절이기 때문에 ‘주중예배를 드려야 하는가’보다 더 중요한 핵심은 명절이기 때문에 다른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필자가 시무하는 교회는 법령이 정한 명절 공휴일에는 주중 예배를 쉬기로 결정했다. 물론 필자 부임 이전에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원로목사님께서 교회에 남아 계시면서 직접 헌신적으로 그리고 열정적으로 모든 예배를 인도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자는 그렇게 할 만한 능력도 헌신도 부족했다. 그리고 지방에 계신 연로하신 부모님을 찾아 뵙고 명절을 함께 보내는 것이 크리스천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부모 공경이라고 믿었다. 그렇다고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부교역자들에게 시키는 것도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솔직하게 당회의 동의를 구했다.

“명절 기간 동안 저는 지방에 계신 부모님을 뵙기 위해 내려가야 하는데 혹시 명절에 지방에 내려가지 않으신 장로님들 가운데 예배를 인도하실 분이 있으십니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명절 기간 동안 각종 예배를 쉬고, 대신 가정예배 유인물을 만들어 명절 아침 예배로 모든 예배를 대신하게 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하고 물었더니 반대 의견이 없었다.

그리고 주일 광고 시간에 성도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이번 설 명절부터 명절 기간 동안 주중 예배는 쉽니다. 개인적으로 오셔서 기도하실 분들을 위해 예배당 문을 개방하겠습니다. 오셔서 자유롭게 기도하시고 명절 당일에는 각 가정에서 예배드릴 수 있도록 가정예배 순서지를 준비해 두었으니 가져가시기 바랍니다.” 성도들 중에서 반대하는 분들은 없었다. 그리고 명절 기간 동안 교회에 나와 기도하는 열성적인 성도들도 없었다.

물론 명절에도 반드시 예배를 드려야 하는 특수한 상황에 처한 교회들도 있을 것이다. 또한 명절에 교회에 모여 교제하고 예배드리기를 원하는 목회자들이나 성도들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몇몇 교회나 사람들의 생각이 일반화되기보다 명절 기간만이라도 목회자나 성도 모두 자유롭게 가족들과 함께 아름다운 교제와 만남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이번 2019년 추석에도 우리 교회는 12일(목)부터 14일(토)까지 새벽예배와 기도회를 쉰다. 이것은 정해진 예배의 시간과 자리를 범하는 불경스러운 행동이 아니라 교회가 아닌 가정에서 그리고 개인적으로 하나님과 가지는 만남의 시간 즉 ‘예배 자리의 이동’이다.
 

개척부터 명절 주중 예배는 쉬기로


김현설 새로운교회 담임목사

누나와 형은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를 12년간 개근했다. 어머니는 자식들이 우등상은 못 받아도 개근상은 받아야 한다는 신념으로 내게도 열성을 다하셨다. 나는 고등학생 때 하필 수학여행을 하루 앞두고 급성 맹장 수술을 받아 병결 처리되어 끝내 개근상을 놓쳤다. 그때의 아쉬움을 표현하면 내 딸은 “뭣이 중헌디” 하며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야유한다. 며칠 결석한 것이 무슨 대수냐면서. 한 번 시작하면 끝장을 봐야 하고, 가다 중단하면 아니 간만 못하다는 근거 없는 잠언이 불변의 법칙인 양 교회 사역과 목회에도 맹위를 떨친다.

명령과 필요 구분하기
‘명절 당일에 있는 주중 예배를 드려야하는가 쉬어도 되는가’라는 논란은 우리 교회 입장에서 일찍 정리되었다. 우리는 4년 전 교회를 개척할 때부터 쉬기 때문이다. 우선 오해가 없도록 용어부터 말하겠다. 우리 교회의 공적 예배 및 집회는 주일 오전 예배와 주일 오후 예배, 그리고 주일을 제외한 새벽기도회와 수요기도회 및 금요심야기도회이다. 물론 모든 기도회는 찬송과 설교가 빠지지 않는다. 그러나 기도회는 무엇보다 합심 기도와 개인 기도가 주를 이룬다. 주일예배를 제외한 모든 기도회는 우리 교인들이 기도의 필요성을 느껴 시간과 형식을 정했다. 또한 다른 행사나 불가피한 사유 등으로 기도회의 소요 시간과 형식을 유연하게 바꾸기도 한다.

우리는 설과 추석 등 명절 연휴 3일 동안 주일이 아닌 이상 일체의 예배나 기도회로 모이지 않는다. 주일예배야 ‘창조적 명령’(안식일, 결혼, 노동)으로 폐지할 수 없지만 각종 집회(명칭이 예배이든 기도회이든)는 어떤 필요에 따라 모였으니 다른 필요에 따라 잠시 쉴 수 있다 생각한다. 예외를 인정하지 않는 규칙성과 반복성이 본질은 아니며 절대선은 더욱 아니다. 성경 공부와 제자 훈련은 학기가 마치면 일정 기간 쉬지 않는가? 우리 교회는 월 2회 실시하는 전교인 노방 전도를 작년 폭염 때문에 한 달 쉬었다.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
명절 기간의 휴무는 교인들과 목회자들에게 새로운 안식과 기회를 제공한다. 예전 전통적인 중형 교회에서 목회할 때 명절 집회의 휴무를 제안하자 8명의 장로들 모두 기다렸다는 듯이 흔쾌히 동의했다. 한 장로는 은밀하게 다가와 아무도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지 못한 세월이 30년이라며 고마워했다. 우리는 단 하루도, 단 한 번도 쉬지 않는 모임과 개근에 나의 영적 명운이 달린 것처럼 돌진한다. 주께서 벗겨 주신 율법의 멍에를 고집스럽게 다시 얹는 것이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명절에 가족 모임으로 집회에 빠질 때 교인들은 죄책감과 교회를 홀로 지킬 목사에게 미안한 뜻을 전했다. 불필요한 짐이요, 요식 행위일 뿐이다. 그들은 자유를 갖고 가족들 속으로 들어가 1년에 한두 번뿐인 기쁨과 교제를 나눌 자격이 있다.

나는 전형적 목회자로서 명절 가족 여행에 한 번도 가지 못했다. 다행스러운 건지 부모님은 모두 실향민으로 찾아 갈 고향도, 돌아볼 선영도 없었고, 인사드릴 친척도 거의 없었다. 그러나 이제 새로운 가족들이 많이 생겼고 명절마다 모여 재회의 기쁨을 누린다. 몇 년 전 명절에는 형제 가족들과 설악산에서 이틀을 지냈다. 40년간 홀로 사신 노모께서는 목회자인 내가 처음 참여한 것을 보고 감격하셨다. 명절 휴무가 준 최고의 효도였던 것이다.

쉬는 것도 사역이다
이 주제를 놓고 성경신학적 근거를 묻는다면 난감하다. 내 수준으로는 마땅한 근거를 찾을 수 없다. 단지 내가 발견한 것은 반가운 예수님의 격려다. 바쁜 사역에 먹을 시간도 없이 수고한 제자들을 향해 주께서 위로하셨다.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막 6:31). 예수님께서는 기름을 준비하지 않은 것을 꾸짖으셨지 잠을 잔 것에 대해 나무라신 것이 아니다. 그분은 우리가 늘 곤고한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아신다. 때가 되면 우리를 쉬라 하신다. 그리고 때가 되면 일으키신다. “일어나라 함께 가자”(막 14:42). 쉬는 것도 사역이다.

임병교, 이광재, 김현설 임병교 새벽빛교회 담임목사, 이광재 대조제일교회 담임목사, 김현설 새로운교회 담임목사 필자의 다른기사 keyboard_arrow_r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