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와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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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2019년  09월호 목양 장로란 무엇인가? 한국 교회와 장로직제

한국 교회가 지난 30-40년 동안 부흥하고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한 영혼을 신실한 성도로 세우기 위한 눈물겨운 목회 현장 때문이었다. 점차 목회자와 성도들의 의식이 바뀌면서 교회의 지도자로 세워진 평신도 리더십은 주로 장로라는 직책이라고 생각하고 실제 교회를 운영해 오고 있다. 급속히 세속화되고 각박한 오늘의 현실 속에서도 장로는 목회자와 함께 나름대로 교회를 잘 세워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한국 교회는 교회 내 목사와 장로 사이의 갈등으로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전진하기는커녕 오히려 후퇴하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일단 장로로 세워진 이후에는 더 훈련을 받을 방향성이나 프로그램은 없고 교회 행정에만 관여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교회 안에서 장로의 정체성과 사역 방향 설정이 미궁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한국 교회는 어디에서 그 해결의 돌파구를 찾아야 할 것인가?1

이런 교회의 위기 상황을 맞을 때마다 우리는 시선을 교회사로 돌리게 된다. 과거는 미래를 위한 귀한 스승이기 때문이다.2 특히 16세기 종교개혁 시대가 중요하다. 그 당시에도 교회 안과 밖에는 성난 파도 같은 위기가 존재했다. 그러나 종교개혁 시대의 교회는 그것을 뚫고 성경적인 교회를 회복할 수 있었다. 종교개혁이 성경에서 재발견한 중요한 교회 사역 가운데 하나는 장로 직분이었다. 이 장로 사역의 본질은 교인을 목양하는 것이었다.3 그러므로 우리는 종교개혁 시대에 성경과 초대교회에서 다시 찾았던 목양 장로 사역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잊혀진 장로 제도

중세를 지나면서 초대교회의 장로 제도는 없어지고 교회는 교황 중심의 이익 집단으로 전락했다. 성도들은 신앙의 의미를 모른 채 일상을 살았다. 아무도 그들의 영적인 삶을 신앙으로 격려하고 돌보지 않았다. 방치된 성도들은 성상과 성물을 숭배하면서 영적 불안과 고통을 채웠다.

이러한 중세로부터 탈출하고자 했던 것이 종교개혁이다. 무엇보다 이들은 교회 전통에 묻혀 있던 성경을 재발견했다. 성경에 근거해서 보면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존귀한 존재지만, 죄로 타락하여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 수 없는 존재다. 종교개혁자들에 의해서 원어 성경이 읽히고 또 이 성경이 자국어로 번역되어 대중에게 전달되면서 교회와 삶 속에서 성경적인 가치가 되살아나게 되었다.

신앙의 원리를 중세 1000년 동안 세워진 로마 가톨릭의 전통이 아니라 성경과 초대교회에서 찾겠다는 것이다. 이런 정신으로 강단의 설교가 갱신되었다. 그러나 말씀을 선포하고 그대로 끝이 났다면 어떻게 종교개혁이 전 유럽에서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을까?
그 비결은 목양 장로 사역과 직결된다. 이미 신약성경에서 장로의 본질과 사역이 명확하게 제시되어 있었다. 구약에도 장로들이 성도들의 공동체를 인도하고 있었다. 성경에서 이미 제시해 왔고 초대교회에서부터 존재해 왔지만 중세에 굴절되어 상실한 것 가운데 하나가 목양 장로 사역이었던 것이다.
 

종교개혁과 장로의 목양 사역 재발견

1 성경에 근거한 장로 제도의 재발견
중세 말 그리스도인들은 신앙 따로 삶 따로인 이원론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알아듣지도 못하는 라틴어 미사에 참석했고, 성경이 없던 그들이 교회를 벗어나면 성경과는 관계없는 삶을 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종교개혁은 자신들이 재발견한 성경에서 그동안 잊혔던 것들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다시 조명된 것들 가운데 하나가 장로 제도였다. 장로는 본래 목양의 의미를 함축하면서 초대교회부터 존재했다. 그러나 중세에 들어와서는 땅에 묻히듯이 교회 안에서 사라져 버렸다. 오로지 교황 제도만이 교회를 지배하고 있었다.

종교개혁자 칼뱅(John Calvin, 1509-1564)은 디모데전서 5:17에 말씀을 선포하는 장로와 잘 다스리는 즉 목양하는 장로를 해석하면서 장로 제도가 제네바에 잘 정착하도록 최선을 다했다. 칼뱅은 또한 로마서 12:8, 고린도전서 12:28 등에서도 장로 제도의 성경적 기원을 발견해서 교회 사역에 그대로 적용했다. 실제로 바울이 밀레도에서 에베소 장로들에게 간절히 당부한 것도 목양 사역이었다(행 20:20-30).4

2 목양 장로 회복의 역사
종교개혁이 일어나 누구나 성경을 읽게 되면서 교황 제도의 모순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묻혀 있던 장로직을 다시 발견하게 되었다. 여기에는 보헤미아-모라비안 공동체의 공헌이 컸다. 그들에 감명받은 스위스 바젤의 종교개혁자 외콜람파디우스(Johannes Oecolampadius, 1482-1531)가 1530년 바젤에 장로 제도를 도입해서 성도들을 목양하고 훈련하도록 했다. 그러나 다음 해에 세상을 떠났고, 그의 정신은 스트라스부르에서 종교개혁을 이끌던 마르틴 부처(Martin Bucer, 1491-1551)에게 흘러갔다.5 부처는 1532년에 장로 제도를 도시에 도입하면서 교회의 영적 지도력을 형성했고, 1533년 총회에서 스트라스부르그 규정을 제정하여 장로 제도를 확고하게 정착시켰다.

그 이후 목양 장로 사역을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 자리 잡게 했던 것은 칼뱅이다. 그는 프랑스 출신으로 1536년부터 스위스 제네바에서 사역했던 목회자이자 신학자로서 근대 세계에 신학적 방향을 제시했다. 칼뱅의 제네바 컨시스토리(Consistoire de Genève) 사역에서 우리는 목양 장로 사역의 중요한 모범을 발견할 수 있다.6

칼뱅은 1538년에 제네바를 떠날 수밖에 없어서 스트라스부르에 프랑스 이민 교회 목회를 하러 갔다가 마르틴 부처의 목양 장로 사역에 큰 감명을 받게 된다. 1541년에 다시 제네바로 돌아가면서 칼뱅은 1541년 “제네바 규정서”(Ecclesiastical Ordinances)에 장로 제도를 명시하면서 장로직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직분이라고 강조했다. 초대교회의 장로 제도를 회복시키자는 것이었다.7
요약하면 장로 직분은 성경과 초대교회에 존재하다가 중세 1000년 동안 묻혀 있던 제도였다. 결국 종교개혁 시대가 되어서야 재발견된 것이었다. 한국 교회도 목회적 위기를 맞아서 이 목양 장로 사역을 다시 발견하고 있는 것이다.
 

종교개혁 시대의 제네바: 목양 장로 사역의 실례

왜 장로 제도가 필요했고 또 성공할 수 있었을까? 당시 유럽에서는 도시와 영지, 혹은 국가 단위로 종교개혁으로 돌아오는 일이 많이 발생했다. 그래서 교회가 국가 교회와 같은 형태로 형성되는 일이 발생되었다. 그러다 보니 아직 영적이고 내적인 변화와 삶의 개혁 없이 그저 눈에 보이는 형식만 바뀌었고, 외형적으로 교회 예배에 참석함으로써 성도의 책임이 끝난 것처럼 생각하는 일이 많았다. 결국 무늬만 신앙인인 성도들이 생기는 위기가 컸다.

그래서 종교개혁자들은 중세에 그 의미가 상실되었던 장로 제도를 성경에 근거해 다시 발견하여 이 목양 사역을 통해서 그들의 삶을 권면하면서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했다. 장로의 목양 사역이 활성화된 곳에서 형식적인 신앙인이 변하여 하나님 앞에 경건한 성도들로 성숙해졌던 것이다. 이때 장로의 정체성은 한마디로 목양 장로라고 할 수 있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이 목양 장로 제도들은 종교개혁자들이 만든 제도가 아니라, 성경에 이미 제시되어 있었고 초대교회 시대에 실시된 것들이었다.
종교개혁자 가운데 루터가 종교개혁을 성공적으로 시작했다면 이 운동을 실제 삶에 뿌리내리게 한 것은 칼뱅을 중심으로 한 공동체였다. 16세기 스위스 제네바는 많은 종교개혁자들에 의해서 가장 이상적으로 하나님 나라가 가시화되었던 도시로 평판이 높았다. 제네바가 그런 도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제네바 교회의 컨시스토리 사역 때문이었다. 당시 제네바는 시 의회를 중심으로 모든 시민들이 공식적으로 종교개혁 신앙을 받아들였다. 그래서 모든 시민들은 성인이 되면 의회에서 종교개혁 신앙을 공적으로 고백했다. 그들은 자동적으로 제네바 교회의 성도가 되었으며, 신앙생활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그렇다고 그들이 저절로 신실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목사회에서 보낸 약 12명의 목사들과 시의회에 속한 약 12명의 장로들이 팀을 이루어 제네바 교회의 성도들과 시민들의 일상적인 삶을 영적으로 지도했다. 이 컨시스토리는 당회라고 번역되기도 하지만 보다 독특한 그 시대의 특성을 반영하고 있다.8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장로는 말씀을 설교하는 목사와는 구별되는 직분이었지만, 제네바의 컨시스토리에서 장로는 목사와 함께 교리교육을 내면화하여 삶에 적용시키는 일을 했다. 칼뱅은 그 필요성을 강조했다.9 더 나아가 장로는 컨시스토리를 통해서 사생자, 유기된 사람과 학대받는 아이들에게 새로운 피난처를 제공했으며, 학대받는 부인들과 가난하게 된 과부들에게 새로운 보호처를 제공하기도 했다.

창조주요 구속주이신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통치하실 때 영적인 세계와 일반 세계를 모두 다스리신다.10 교회 직분의 신학적 의미는 교회 안에 직분자를 세워서 그분의 통치를 이루어 가신다는 것이다. 장로의 직분 또한 마찬가지다. 교회 안에서 장로의 직분을 감당할 때는, 그 사역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워나가야 한다. 그러므로 목사와 장로와 같은 직분자는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서로 서로 섬기는 자세로 교회를 이끌어야 한다. 특히 장로는 단순히 교회 안에서 행정 및 회계 관리만 맡는 직분이 아니었다. 장로는 교인들의 개인적이고 구체적인 삶을 돌아보면서 그들의 영적 필요를 채워주는 목양의 성격을 갖는다.

목사는 하나님의 통치를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자이며 성례를 집행하고 교인들을 훈육하는 항존직이다. 그렇다면 장로는 평신도 가운데 선출된 대표로서 목사와 더불어 컨시스토리를 통해 성도들의 삶의 현장에 교리를 내면화 하며 그들의 일상적이고 세밀한 실제 삶을 영적으로 지도하는 목양의 기능을 갖는다. 이 컨시스토리는 목사와 장로를 구성원으로 하는 것으로써 목사와 장로가 서로 협력하여 목회적 돌봄을 감당하는 기관이다. 그 외적인 기능이 권징을 시행하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 같지만, 본질적으로 그것은 목양 사역이다.

그러므로 장로의 목양 사역 또한 다른 교회의 활동과 마찬가지로 말씀으로 그리스도의 통치를 이루어 가는 목사와 협력하며 또한 말씀의 사역자로 부름을 받은 목사의 지도를 받아 전개된다. 장로는 목사와 함께 컨시스토리에서 복잡한 그리스도인의 삶의 문제를 세밀하게 목양하였다.

칼뱅의 제네바에서 실시되었던 컨시스토리 사역은 오늘날 목양 장로 사역의 실제적 모델이다. 목사와 장로가 팀을 이루었던 컨시스토리에서 제네바 시민들의 결혼과 관련된 컨시스토리 사역의 실제적인 사례들을 분석해 보면 그 성격이 보다 선명하게 드러난다.11 특히 이 결혼과 관계된 내용이 중요한 이유는 중세의 봉건적 제도를 벗어나서 근대적인 사회로 나가는 데 있어서 제네바의 컨시스토리 사역이 결혼 제도와 가정생활에 공헌한 바가 매우 크기 때문이다. 또한 실제로 당시 제네바 컨시스토리의 역사적 자료 중 결혼과 관련된 내용이 가장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 역사적 문헌들이 보여 주는 것은 목사와 장로로 구성된 컨시스토리에서 각 가정의 구체적인 생활까지 목양하고 지도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결혼을 법적인 조치라는 정치적이고 법학적인 측면이 아니라 제네바의 컨시스토리의 구성원인 목사와 장로들에 의한 목회적 사역의 자리에서 다루어지도록 했다. 컨시스토리에서 활동하고 있었던 장로들은 이런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사역을 감당한 것이다.

정리해 보면 제네바의 컨시스토리에서 칼뱅과 같은 목사들은 평신도 가운데 선출된 장로들과 함께 복잡한 그리스도인의 삶의 문제를 일일이 목양하고 있었다. 이러한 16세기 제네바 교회의 유형은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의 장로교회들을 통해서 더욱 정교하게 되어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으며, 심지어 근대 민주적인 시민 사회의 질서와 전통을 창출하는 데까지 기여하고 있다.

종교개혁 이후 목양 장로 사역의 간과와 그 결과

16세기 종교개혁 시대 컨시스토리의 목양 사역은 그 이후에는 어떻게 되었을까? 물론 이 목양 장로 사역은 그 이후에도 유럽과 북미 등의 교회들을 통해서 면면히 이어오고 있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 약화되었고 강력한 영향을 주지는 못하고 있다. 왜 그런 것일까? 역사를 통해서 살펴보자.

18세기 프랑스 혁명 이후 유럽에 확산된 계몽주의 사상의 영향이 치명적이었다. 계몽주의 사상은 교회에서 시작한 오랜 사상과 교회의 특권에 반하여 인간적인 자유를 추구한다. 목양 장로 사역의 쇠퇴는 신앙에서 이탈하는 근대 서양의 역사와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다고 보인다. 계몽주의가 교회에 침입하게 된 18세기 이후, 그리스도인들은 교회 밖의 삶에서 더 이상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보다 신앙과 교회로부터 자유롭고 싶어 했다. 당시 사람들은 점차 개인주의적이고 자유주의적인 방향으로 나가게 되었다. 신앙을 가지고 삶을 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이성의 시각으로 신앙을 보게 되면서 목양 장로 사역은 점차 약화되었던 것이다.
교회 안에서도 직분의 계층구조만 남고 목양 장로의 기능이 사라지게 되면서 그 결과 교회에 위기가 찾아오게 되었다. 본고의 취지와 관련해서 말하자면, 목양 장로 사역이 약화되고 간과될수록 개인의 삶의 현장이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는 곳으로 변질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유럽과 북미 교회는 삶의 영적인 에너지를 상실하게 되었고 오늘날처럼 일상의 삶 속에서 기독교의 영향력은 크게 감소하였다.

이런 맥락에서 종교개혁을 통해 재발견된 장로 제도는 그저 박물관에 보관된 역사 유물이 될 수 없다. 성경에 근거하고 역사적으로 확증되었던 장로 직분은 여전히 우리에게 중요하다고 할 것이다.
 

현대에서 목양 장로 제도를 실시하려면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장로의 목양 사역이 성경에 제시되어 있는 내용이며, 역사적으로 종교개혁 시기에 다시 발견되어 역동적으로 실행되었던 것이라면, 오늘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실시할 수 있을까? 점차 교회의 생동감이 사라지고, 목사와 장로의 갈등이 교회 부흥의 저해 요소가 된다면 어떻게 영적인 질서를 존중하면서 목양 장로 사역을 실제로 적용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현실적으로 중요하다. 아무리 신학적으로 맞는 것이라고 해도 목회 현장에 적용할 수 없다면 문제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필자는 목양 장로 사역은 고도의 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싶다. 장로의 직분은 하나님이 주셨고 그 사역의 본질이 목양이라는 것은 명확하다. 그러나 철저하게 훈련되지 못한 목회자와 장로들에게 그 목적의 성취를 기대할 수는 없다. 흔한 예를 들자면, 의사가 칼을 가지고 아픈 부분을 수술하여 고치는 것은 너무 당연하고 중요한 것이지만, 잘 훈련되지 못한 의사가 집도할 때는 달라진다. 마찬가지로 목양 장로 사역이 성공적으로 실시되려면 장로 개개인이 먼저 신실한 그리스도의 제자로 서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목양 장로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서 국내에서 목양 장로 사역을 위한 교육을 가장 모범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국제목양사역원(원장 최홍준 목사)의 경우를 예로 들 수 있다. 담임목사와 목양 장로와 교구 교역자, 그리고 구역장(혹은 소그룹 리더) 등의 상호 소통과 협력이 교회를 건강하게 세우는 데 매우 중요하다. 다양한 목양의 내용들이 교구의 교역자에게 전달되면, 바로 목양 장로와 공유된다. 이 모든 목회 현장의 내용들은 최종적으로 담임목사에게 이어져서 전체적인 목양의 흐름이 완성된다.12 봄과 가을에 걸친 두 번의 콘퍼런스를 통해서 목양 장로 사역을 집중적으로 훈련하는 것도 그 이유다.

나오는 글

16세기 종교개혁 시대에는 성경에 제시되어 있고 초대교회부터 실행되었던 장로의 목양 사역 개념이 재발견되어 활발히 실행되었다. 장로는 평신도 가운데 선출되어 목사와 더불어 컨시스토리를 통해 성도들의 삶의 현장에 신앙을 내면화하며 일상적이고 세밀한 실제 삶을 영적으로 지도하는 목양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었다. 특히 역사적 격변기인 당시에 흔들리고 혼란스러웠던 결혼과 가정에 대한 개념을 성경적으로 다시 정리하는 데 장로의 목양 사역이 큰 기여를 하였다.
역사적으로 볼 때 신앙에 대한 헌신이 약화될수록 목양 사역에 대한 관심도 간과되었다. 그럴 때마다 교회는 더 세속화되었으며 예배당은 비워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한국 교회가 목양 장로 사역을 통해서 전 교회가 살아 움직이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회복될 수 있다면 그것은 곧 종교개혁의 정신을 다시 회복하는 것이고, 또한 현대 교회가 무기력한 모습을 박 차고 일어나는 방편이 될 것이다. 성경에 분명하게 제시되어 있고 초대교회와 종교개혁 교회를 통해서 역사적으로 명백하게 검증된 장로의 목양 사역이 다시 살아난다면 한국 교회는 또 한 번 부흥과 성장의 시대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철저한 목양 장로 사역 훈련을 통해서 한국 교회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거룩하고 행복하게 회복시킬 수 있다.



1) 이와 관련해서 다음을 보라. 최홍준, 《장로: 걸림돌인가? 디딤돌인가?》(부산: 국제목양사역원, 2009).
2) 종교개혁 자체가 혼미한 현실 속에서 성경과 교부의 신학을 통해서 방향을 모색했다. 칼빈이 어거스틴의 어깨 위에 자신의 교회론에 대한 사상적 조명을 받은 것은 다음을 보라. 안인섭, 《칼빈과 어거스틴: 교회를 위한 신학》(서울: 그리심, 2009), pp.333-494.
3) 장로의 목양 사역에 대해서는 다음의 연구가 중요하다. Elsie A. McKee, Elders and the Plural Ministry: The Role of Exegetical History in Illuminating John Calvin’s Theology(Genève: Droz, 1998). 
4) 성경에서 말하는 장로직에 대한 연구를 위해서는 다음을 참조하라. 코넬리스 반 담, 《성경에서 가르치는 장로》(서울: 성약, 2013). 두 종류의 장로에 대한 설명은 다음의 페이지를 보라. pp.164-187.
5) 다음의 연구를 보라. 심창섭, “장로교 정치 제도의 기원은 무엇인가(I)” 〈신학지남〉 vol. 251(1997), pp.66-95. “장로교 정치 제도의 기원은 무엇인가(II)” 〈신학지남〉vol. 252(1997), pp.168-191.
6) 컨시스토리에서 진행된 사역의 내용을 위해서는 다음을 보라. J. Witte, Jr. & R. Kingdon, Sex, Marriage and Family in John Calvin’s Geneva(Grand Rapids: Eerdmans, 2005). 
7) A.E. McGrath, A Life of John Calvin: A Study in the Shaping of Western Culture(Oxford: Blackwell, 1990), pp.111-114.
8) 제네바의 목양 장로 사역에 대한 내용은 다음을 보라. 안인섭, 《칼빈》(서울: 익투스, 2015), pp.221-234.
9) J. Plomp, De Kerkelijke Tucht bij Calvijn(Kampen: Kok, 1969), pp.82-86.
10) Calvin, Joannis Calvini Opera Selecta. [= OS, 이하 OS로 표기함], (ed.) P. Barth & G. Niesel. Vol. V. (Mnchen, 1926), 471-2. [= Calvin, Institutes. (1559), 4.20.1.]. OS. IV, 199-200 [= Institutes. (1559), 3.19.15.].
11) 컨시스토리에서 다룬 사안은 성, 결혼, 가정생활의 영역까지 이른다. 예를 들어 제네바 컨시스토리에서 다룬 결혼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는 다음을 보라. J. Witte, Jr. & R. Kingdon, Sex, Marriage and Family in John Calvin’s Geneva, pp.75-76 그리고 pp.354-382.
12) 김명섭, “목양(목사, 장로) 사역의 실제,” 제36차 목양(목사, 장로) 사역 컨퍼런스: 존경과 신뢰와 사랑을 한몸에 받는 장로의 본질 회복 프로젝트 〈국제목양사역원 자료집〉 (2019. 5. 20-21, 세계로교회), pp.51-60.  

안인섭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역사신학 교수. 네덜란드 캄펜신학대학교(Ph.D.). 저서로 《칼빈과 어거스틴》, 《가정 사역 프론티어 스토리》가 있다. 필자의 다른기사 keyboard_arrow_r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