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와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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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2019년  08월호 은혜(선물)에 관한 바울의 새로운 관점 전문가의 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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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과 선물》 존 바클레이 / 새물결플러스 / 1,096쪽 / 55,000원


지금 이 시간에도 쏟아지듯 나오는 바울 연구서와 소논문은 해 아래 새 것이 없다는 말을 비웃는 듯하다. 하지만 수많은 바울 관련 연구물은 대부분 기존 학계의 통설에 대한 작은 변주곡에 불과하며, 이러한 현상 자체가 역설적으로 바울 학계가 답보 상태에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그래도 가끔 학문적 지형을 뒤흔들고 뜨거운 이슈를 생산하는 책이 등장한다. 더럼(Durham)대학교에서 제임스 던(James D. G. Dunn)을 이어 명예 교수가 된 존 바클레이(John M. G. Barclay)가 수십 년의 작업 끝에 세상에 내놓은 《바울과 선물》(Paul and the Gift)이 바로 그런 책이다. 이미 많은 학자들이 지난 20-30년 동안 나온 바울 연구서 중에 가장 중요한 책이라고 손꼽는다. 

어떤 독자는 이 책의 신학적 성향이 무엇인지 궁금할 것이다. 바클레이가 한국어판 서문에서 말했듯이, 이 책에서 전개된 논지는 명확히 특정한 ‘학파’(이를테면 새 관점)나 ‘—주의’에 속하지 않는다. 저자는 아우구스티누스와 루터, 그리고 칼뱅의 바울 해석에서 중요한 점을 받아들이고, 샌더스(E. P. Sanders)의 ‘언약적 율법주의’의 통찰을 인정하며(그러나 동시에 더 정교하게 교정한다), 묵시론적 세계관 안에서 바울을 해석하는 학자들의 요지에 동조한다(하지만 다른 이유로). 보수적 신앙을 가진 독자나 진보적 신앙과 신학을 견지하는 독자 모두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책이다.  

그런데 왜 저자는 하필 ‘선물’을 연구 주제로 택했을까? 선물이 기독교 신앙을 대표하는 용어는 아니지 않은가? 바클레이는 두 가지 이유를 든다. 은혜라는 너무나 ‘잘 알려진’ 개념을 분석할 때 가장 중요한 준거 틀은 ‘선물’이다. 익숙한 주제를 낯설게 만드는 것은 그 주제를 새롭게 바라보는 관점을 얻는 좋은 수단이다. 2천 년간 수없이 많이 논의된 은혜라는 단어는 이미 많은 신학적 의미를 담은 채 통용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바클레이는 “선물이라는 범주를 통해 ‘은혜’(카리스) 주제에 접근함으로써, ‘은혜’의 특정 신학적 의미와 어느 정도 분석적 거리를 두길 희망한다”(p.25). 갈라디아서 2:21에 나오듯 “은혜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 상징인 그리스도의 죽음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바울처럼 그리스도의 죽음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은 곧 하나님의 은혜를 이해”하는 것이다(p.149). 결국 바울 신학의 핵심을 고대의 선물에 대한 이해와 논쟁이라는 정황 속에서 새롭게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다.  

바클레이가 은혜라는 주제에 집중하는 이유는 또 하나 더 있다. 바로 샌더스의 언약적 율법주의를 넘어서고 바울에 관한 새 관점을 넘어서는 것이 목표다. 샌더스는 1977년에 고대 유대교가 율법주의 종교, 공로로 구원을 얻는 종교가 아니라, 개신교처럼 은혜의 종교라는 사실을 설득력 있게 밝혔다. 이스라엘 백성이 아무런 공로나 선행을 쌓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먼저 이스라엘을 ‘은혜로’ 자기 백성을 삼으셨다. 샌더스의 논지에 기대어 바울 신학을 새롭게 정립한 것이 ‘바울에 관한 새 관점’이다. 바클레이는 샌더스의 주장을 받아들이면서도 그의 ‘은혜’에 대한 이해가 너무 평면적이고 단조롭다고 비판한다. 바클레이는 다음과 같은 명징한 문장으로 샌더스의 논지를 비판하고 넘어선다. “은혜는 제2성전 시대 유대교 문헌 모든 곳에서 나타나지만, 그렇다고 이 모든 곳에서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p.30). 

책은 매우 견고한 구성이다. 총 3부로 이루어졌는데, 1부는 인류학자들의 선물 연구를 소개하고, 그리스-로마 시대에 살던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선물 개념을 여러 고대 문헌을 통해 재구성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사실은 바울과 동시대에 살았던 이들에게 선물이라는 개념과 관습은 현대인들의 통념과 상당히 다르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말해, 선물을 주는 사람은 선물을 받는 사람이 선물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지 신중하게 선택했고, 선물을 받은 사람은 답례해야 한다는 의무(감)가 있었다는 것이다. 

현대인과는 다르게 ‘선물’을 이해한 고대 문헌을 해석하기 위해 ‘선물’이라는 개념이 지닌 다양한 뉘앙스를 세심하게 분류하는 것이 필요하다. 바클레이는 여기에서 ‘극대화’(perfection)라는 개념으로 선물의 다양한 의미를 분석한다(극대화에 대한 설명은 아래를 참조하라). 2부는 제2성전기에 작성된 대표적 유대 문서를 골라 각 문서가 은혜라는 주제에 집중하면서도 어떻게 은혜의 개념이 지닌 다양한 뉘앙스 중에 특정한 의미를 극대화시켰는지 비교 분석한다.     3부는 이전 장들에서 관찰한 결과들을 갈라디아서와 로마서에 적용하며 바울의 독특한 은혜(선물) 이해가 이 중요한 서신들을 새롭게 해석하는 열쇠가 됨을 보여 준다.  

책의 주요 논지와 관찰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자. 선물 주고-받기는 고대 사회의 결속과 보전에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따라서 선물을 주는 사람은 ‘전략적 차원’에서라도 선물을 받는 사람을 신중하게 선택해야 했다. 선물 수혜자가 선물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지 잘 따져보고 신중하게 선물을 주어야 했고, 바로 그것이 ‘좋은 선물’이었다. 한편 수혜자는 답례, 보답의 의무를 느껴야 했다. 선물은 사람 사이의 관계를 형성하고 존속시키는 근간이었으므로, 선물을 받은 사람은 어떠한 형태로든지 그 ‘은혜’를 갚아야 했다. 자신의 실속을 차리는 ‘선물’과 이타적인 선물이라는, 현대인이 보기에 완전히 다른 두 가지가 그리스-로마시대에는 하나로 뭉쳐져 있었다.  “‘자발적’이면서 동시에 ‘의무적’이고, ‘사심이 없으면서’ 동시에 ‘사심이 있고’, ‘관대하면서’ 동시에 선물이 표현하는 사회적 관계에 의해 ‘강요당할’ 수 있다”는 것이 고대인들의 선물 개념이었다”(p.58). 우리 현대인에게 익숙한 ‘순수한’ 선물이라는 개념은 대체로 11세기와 19세기 사이에 나타난, 비교적 뒤늦게 등장한 개념이다.  

1부의 2장은 책 전체의 연구 방법론을 소개하는 부분으로서 신중하게 읽어야 한다. 바클레이가 ‘개념의 극대화’(perfection)라는 용어를 케네스 버크라는 학자의 연구에서 빌려오는데, 극대화란 “명확한 정의 혹은 수사적 또는 이데올로기적 이점을 얻기 위해 어떤 개념을 그 말단이나 극단까지 끌고 가는 경향”을 일컫는다(p.127). 위에서 잠깐 보았듯이 고대인들이 생각하는 선물이라는 것은 복잡한 사회관계를 형성하는 매개체이기 때문에 다중적인 의미를 띄고 있었다. 극대화(perfection)라는 렌즈로 고대의 선물에 대한 글을 보면 많은 이들이 선물이라는 똑같은 단어를 쓰면서도 서로 선물의 다른 측면·의미를 극대화시킴을 관찰할 수 있다. 바클레이는 선물이라는 단어가 두드러지게 지니는 여섯 가지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초충만성(superabundance): ‘선물의 크기, 중요성, 또는 영속성에 관한 것’으로 선물의 압도적 규모와 풍성함을 지칭한다(p.131). 
•단일성(singularity): 선물 수여자의 특정 행동방식으로서 오로지 ‘순전하고 전적으로 선한 것’만 주는 것을 말한다(pp.132-133). 
•우선성(priority): 선물을 주는 시점에 관한 것으로 ‘어떤 요구나 요청에 대한 반응’과 상관없이 먼저 주어지는 선물을 말한다(p.134). 
•비상응성(incongruity): ‘받는 자의 가치를 고려하지 않고 주어지는 선물’을 말한다(pp.135-136). 
•유효성(efficacy): ‘선물의 원래 의도를 충분히 성취하는’ 효과적인 선물을 말한다(p.136). 
•비순환성(non-circularity): 답례를 기대하지 않고 주는 선물을 말한다(pp.138-140). 

극대화라는 개념 도구를 사용할 때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이 있다. “선물 수여의 한 측면을 극대화한다고 해서 선물의 다른 측면 혹은 모든 측면이 극대화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p.141). 바클레이는 샌더스가 은혜의 우선성을 지나치게 강조했다고 본다. 
이러한 선물의 여섯 가지 극대화의 렌즈로 제   2성전기 유대 문헌 분석에 들어가기 전 바클레이는 기독교 역사에서 은혜라는 모티브 해석에 큰 족적을 남긴 신학자들의 신학을 간결하게 정리한다. 이러한 작업은 보통 해석의 역사(해석사)로 불리는데, 바클레이의 책에서도 유독 빛나는 부분이다. 아우구스티누스, 루터, 칼뱅은 물론 20세기 주요 바울 해석자들을 균형 있게 다룬다. 그가 해석사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는 이유에 주목해야 한다. “해석사는 우리가 인지하고 있는 것보다 더 깊은 차원에서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며, 각 신학자가 은혜를 ‘극대화’한 방식을 살펴보면 현대의 ‘바울과 유대교’에 대한 논의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p.150).  

바울에 관한 새 관점을 주창하는 학자들에게 쏟아졌던 비판 중 하나는 종교개혁자들의 신학을 너무 피상적으로 다루었다는 것이었다. 이런 비판을 의식하듯 바클레이는 아우구스티누스, 루터, 그리고 칼뱅의 신학을 일차자료에 근거해 입체적이고도 섬세하게 정리하고 설명한다. 그 다음으로 불트만이나 케제만, 바르트를 비롯 루이스 마틴 같은 조직신학자와 신약학자의 바울 이해를 명료하게 요약한다. 은혜라는 모티브가 이 신학자들이 남긴 작업의 주요 주제였음에도 불구하고 서로 다르게 ‘극대화’함으로써 상당히 다른 해석을 남기게 되었음에 주목한다. 예를 들어, “펠라기우스는 모든 인간적 행위보다 앞서 행해진 하나님의 은혜의 초충만성을 굳건히 고수했다. 그러나 (신학적인 이유에서) 펠라기우스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은혜의 비상응성이라는 극대화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 아우구스티누스가 펠라기우스보다 은혜를 더 많이 믿었던 것은 아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단지 은혜를 펠라기우스와 다르게 믿었을 뿐이다”(p.144). 

은혜의 신학적 해석사를 마무리한 후 바클레이는 극대화라는 도구를 사용해 제2성전기 유대 문서들을 분석한다. 솔로몬의 지혜서, 필론의 저작, 쿰란 호다요트, 위-필론의 성서고대사, 에스라4서를 선택한 뒤 각 문헌에서 하나님의 은혜/선물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극대화’되고 있음을 밝힌다. 이러한 작업은 앞서 말했듯 샌더스의 ‘언약적 율법주의’가 미처 포착하지 못한 은혜의 다양한 의미는 물론, 유대인들 사이에서도 상이한 ‘은혜’ 이해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결론적으로 샌더스가 유대교를 은혜의 종교라고 말한 것은 기본적으로 옳으나 유대교 내의 다양한 신학과 신념을 섬세하게 포착하는 작업에는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마지막 3부에서는 바울 서신을 직접 다룬다. 갈라디아서와 로마서의 신학 차이를 뚜렷하게 보여주면서도, 이 두 서신에서 바울이 은혜의 ‘비상응성’을 극대화하고 있음을 설득력 있게 주장한다. 지면의 한계상 주요 구절들에 대한 신선한 해석과 주해를 일일이 소개하긴 어려우므로 간략한 스케치만 해보겠다. 갈라디아서에서는 선물을 받을 만한 가치가 없는 인간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 지닌 비상응성이 크게 강조되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인간이 세운 가치 기준을 전혀 고려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의미하며, 결과적으로 그리스도인 역시 사람이 세운 모든 가치와 규범에 얽매이지 않고 가치의 재조정에 이르러야 한다는 함의를 지닌다.  

“그리스도-선물과 이 선물의 수혜자가 과거에 지니고 있던 가치, 이 둘 사이의 비상응성은 그리스도-선물의 성격과 이 선물의 수혜자가 지니고 있는 정신, 이 둘 사이의 깊고 지속적인 적합성을 가져오도록 고안되었다.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영생을 거둘’ 것이다(6:8). 이미 지금도 그리스도-선물과 이 선물의 수혜자를 통해 증명된 삶의 특성, 이 둘 사이에는 ‘적합성’이 존재한다”(p.737). 

로마서에서도 역시 선물의 비상응성이 강조되는데, 갈라디아서와는 조금 다르게 비상응적 선물이 지닌 힘—창조성과 부활의 힘—이 전면에 부각되며 변화된 인간을 빚어내시는 하나님의 사역이 주 내용으로 등장한다. “하나님의 은혜는 순종을 낳도록 계획되어 있다. … 하나님이 인간의 상태를 변화시키려 하시기 때문이다”(p.820). 신이 주신 선물의 창조적 힘에 의해 새로운 공동체가 형성되는데, 이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변화된 자신들의 정체성(은혜의 효과)을 몸으로 구체적으로 표현하게 된다. 이는 “그리스도에 의해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창조된 것을 표현해내는 것이다”(p.839). 다음의 문장은 길게 인용할 가치가 있다. “바울은 선물의 비상응성(가치 없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은 극대화하지만 선물의 비순환성(답례를 기대하지 않는 것)은 극대화하지 않는다.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하나님의 선물은 무제약적인 것(unconditioned: 어떤 사전 조건에 기반을 두고 있지 않는 것)이지만 무조건적인 것(unconditional: 후속적 요구가 없는 것)은 아니다”(pp.833-4). 따라서 그리스도-선물은 “인간의 죄를 눈감아주는 무조건적 선물”이 아니다(p.829). “그리스도-선물은 변혁 능력”을 갖게 되어 그 선물의 수혜자는 “의의 선물을 받고(5:17) 의롭게 된다고 한다(5:19)”(p.829). 이러한 상태를 보통 ‘새 생명’으로 부르는데, “이 새 생명이 신자들에 의해서 행동으로 증명되지 않을 경우, 이 새 생명은 신자들 안에서 활동한다고 말할 수 없다”(p.839). 새 생명을 지닌 사람, 새로 변화된 마음(12:2)을 지닌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에게는 “새로운 지각 및 목표를 구현하는 집단적 실천”이 요구된다(p.847). 

갈라디아서와 로마서를 해석하는 3부는 일종의 간이 주석(mini commentary/concise commentary)으로 사용하기에 손색이 없다. 굉장히 복잡하게 얽힌 바울 해석의 이슈들을 바클레이는 특유의 박식함과 명료함으로 요약하고, 놀라울 정도로 경제적으로 주요 연구서들을 신중하게 골라 대화의 상대자로 삼으며 자신의 답을 제시한다.  

이 책은 학술서이기 때문에 읽기 쉽지 않다. 하지만 시간과 힘을 투자하여 일독하면 신학자나 신학생은 물론 목회자에게도 큰 선물이 될 수 있다. 난해한 갈라디아서와 로마서의 논지를 명료하게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며, 바울 신학이 지닌 여러 함의가 목회 현장에서 부딪히는 다양한 문제에 해결책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책의 제목은 그 중요성에 비해 그다지 임팩트가 없다. 하지만 영어로는 ‘Paul and the Gift’로서 선물 앞에 정관사가 붙어 있다. 직역하면, 바울과 그 선물이 된다. 바울은 다양하게 은혜를 극대화시켜 이해한 유대인 은혜 신학자 중 한 명이다. 바울 혼자만 은혜의 비상응성을 강조하지 않았다. 그러나 바울은 은혜의 비상응성을 그리스도-선물이라는 특이한 사건을 통해 새롭게 조망한 사람이다. 그리스도-사건은 그냥 선물이 아니라 바로 ‘그’ 선물이다.

김선용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객원 교수.  시카고대학(Ph.D.). 저서로는 《The Pauline Gospel Protected with A Curse》가 있다.  필자의 다른기사 keyboard_arrow_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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