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와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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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2019년  07월호 팀 켈러의 설교 사역과 그의 설교의 변증적 특성 팀 켈러의 설교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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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이 본질이고 중심이다.


본래 기독교 설교는 히브리 세계와 헬라 세계에 예수 그리스도의 구주(메시아) 되심을 선포하면서 시작했다. 그러므로 그 본질이 예수 그리스도의 케리그마 선포에 있다면 그 특성은 변증의 기능을 수행했다. 특히 헬라 세계의 화려한 수사학과 철학의 관점에서 보면 그 주장과 논리가 보잘것없어 보였지만 그것이 성령님의 능력으로 수행되었다는 점에서 세상을 바꾸는 힘으로 작용했다. 당시 설교자들은 그런 확신으로 충만했고, 그들의 가슴에는 떨림이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어리석게 들리는 설교를 통하여 믿는 사람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신 것입니다”(고전 1:21, 새번역). “어리석게 들리는 설교를 통하여” 그것이 초기 설교자들의 확신이었으며 그것은 오늘의 설교자들에게도 가장 필요한 요소다. 

일렁임과 출렁임으로

기독교 설교는 이렇게 가슴 떨림으로 시작했다. 초기 설교자들은 도무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신비, 단번에 인류의 죗값을 치르시고 믿는 자에게 구원을 허락하시는 복음 신비, 죽음에서 생명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옮겨진 파스카 신비로 인한 황홀한 떨림이 있었다. 이로 인해 그들은 일어섰고, 그 떨림 앞에서 경계선은 존재하지 않았다. 회당에서, 시장터에서, 화려한 이방 신전 앞에서, 수많은 재화로 넘쳐나는 환락의 도시에서, 황량한 들판과 작은 다락방에서 그들은 그 신비를 소리 높여 선포했다. 초기 설교자들이 그렇게 타락한 도시를 향해, 화려한 이방 신전 앞에 엎드린 자들에게 자신만만하게 복음을 외칠 수 있었던 것, 권력자들이 휘두르는 감옥과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당당했던 것은 그들의 가슴 속에 복음에 대한 황홀함이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평생 시골 초등학교 교사와 교장으로 40여 년을 재직하고, 은퇴 직전에 암이 발병하여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던 한 시인은 긴 투병 끝에, 그 죽음의 자리에서 벗어나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황홀 극치〉라고 표현한다.1 고요한 문장들로 이어지는 시인의 시에는 일렁임과 출렁임이 가득하다. ‘황홀’이라는 단어와 ‘극치’라는 단어가 조합하면서 그 강도는 훨씬 더 크게 다가온다. 정작 설교 사역은 이런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설교자의 가슴에 이런 일렁임과 출렁임이 없이는 세속화된 도시에서 사는 그 거주민들을 복음으로 결코 덮을 수 없다. 한 도시를 가슴에 품고 말씀 사역을 감당한 팀 켈러에게서 우리는 그런 차원 ― 일렁임을 통한 복음의 역사 ― 을 보게 된다. 그의 설교 사역은 도시를 향한 ‘복음의 변증’이라는 뚜렷한 특징이 있는데, 이것은 그의 사역·복음·설교 이야기를 통해서 보다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사역 이야기: 복음으로 도시를 덮으라

팀 켈러의 사역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다. 설교학적 관점에서 보면 그의 사역의 핵심은 세속화된 도시 가운데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여 춤추게 하는 데 있었다. 1989년, 세계에서 가장 세속적인 도시 가운데 하나인 뉴욕 맨해튼 한복판에 리디머장로교회(Redeemer Presbyterian Church)를 개척하여 30년 동안 사역했다. “세속적인 도시를 복음으로 변화시키겠다”는 비전과 함께 시작된 교회는 현재 맨해튼 네 개 지역의2 다양한 영역에서 일하는 5천여 명의 젊은 전문인들과 다양한 인종이 모여 예배한다. 1개의 센터교회와 7개의 지교회가 연합하여 복음에 대해 적대적인 코스모폴리턴 도시 선교와 다문화 선교를 위해 전력하고 있으며, 가장 세속적이고 현대적인 도시에서 가장 복음적 교회로 평가를 받고 있다. 팀 켈러는 28년 동안 수행한 담임목회직에서 은퇴하면서 후임(한인 2세)에게 물려주었고, 현재는 “리디머 시티투시티”(Redeemer City to City)3 사역에 전념하고 있다. 이 사역은 “모든 대륙의 국제도시들에서 다양한 신학적 전통을 가진 교회 개척에 참여하는 비영리조직”으로 그동안 교회가 지향해 온 신학적 비전을 중심으로 훈련과 코칭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켈러와 리디머장로교회 사역의 중심을 관통하는 세 가지 요소가 있다. 복음, 도시, 교회 개척이 그것이다. 이러한 요소는 복음의 축, 문화의 축, 운동의 축으로 설정되어 실행되고 있다. 첫 번째 축에서 그들은 복음의 신학적 깊이를 추구하면서 “복음을 명확하고 효과적으로 소통하는 방법”에 깊은 관심을 기울인다. 두 번째 축에서 그들은 그 교회가 서 있는 지역(도시) 공동체와 사회적 환경, 문화와의 상관성에 깊은 관심을 기울인다.4 세 번째 축에서 그들은 도시에서 복음 사역을 통해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을 펼치는 하나님 나라의 운동, 복음 운동에 깊은 관심을 기울인다. 이러한 사역을 통해 오늘날 전 세계의 대도시에 같은 정신을 가진 2백여 개의 교회가 새로 세워졌고, 켈러는 담임목회직에서 은퇴한 후 이 사역에 전념하고 있다. 단적으로 평가할 수는 없겠으나 이러한 사역의 결과로 교회가 시작되던 당시 복음주의 그리스도인은 맨해튼 인구의 0.5%에 불과했지만 약 30년이 지난 오늘 5%를 넘어서고 있음에는 교회의 강력한 사역의 힘이 일조했음을 알게 한다. 

복음 이야기: 복음은 본질이며 중심이다

켈러에게 있어서 ‘복음’은 사역의 본질이며, 중심이다. 그에게 있어서 복음은 하나님과 우리 관계를 바로잡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가 무엇을 이루셨는가에 대한 소식이며, “우리가 행하는 무엇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 행해진 무엇”으로 이해한다(《팀 켈러의 센터처치》, pp.55-56). 설교자(사역자)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복음에 대한 바른 이해다. 그는 초대교회 교부 터툴리안의 경구 ― “예수님께서 두 강도 사이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처럼, 복음은 두 오류 사이에서 십자가에 못 박힌다” ― 를 인용하면서 종교와 비종교, 율법주의와 율법폐기주의, 도덕주의와 상대주의, 또는 실용주의 등의 양극단으로 빠질 수 있는 위험성을 경고한다. 이러한 오류에 빠지게 되면 복음의 메시지는 오염되며, 그 능력을 상실하게 된다(pp.58-59). 그에게 있어 복음은 “무한히 풍성한 것이기 때문에 교회의 한 가지 핵심이 되기에 충분”하며, “우리를 위해 성취하신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한 소식”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무엇을 행하셨고, 무엇을 하실 것인지에 대한 소식이며, 반드시 전달되어야 할 소식이다(p.73, 89). 복음은 단순하지 않고 표준적인 단일 형태로 포장되기가 어렵다. 그래서 켈러는 복음이 가지는 특징을 몇 가지로 나누어 제시한다. 복음은 위에서 아래로 임하는(upside-down) 성육신의 속성이 있으며, 안에서 바깥으로 임하는(inside-out) 속죄의 속성, 미래를 앞서 경험하는(forward-back) 부활의 속성이 있는 것으로 이해한다. 복음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시작부터 완성까지 관통하는 것으로, 복음을 받아들이고 믿음으로서 구원을 얻고 살아가는 동안 마음과 감정, 인생의 모든 국면을 변화시켜 가는 역동성으로 작용한다(pp.95-98). 그에게 있어서 복음은 마음과 생각,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이며, 복음의 능력은 언제나 두 가지를 고백하게 만든다. “나는 내가 감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한 죄인이고 허물 많은 존재입니다”와 “나는 내가 감히 바랐던 것보다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용납되었습니다”라는 고백이다(p.99).

우리 시대에 가장 필요한 것은 삶을 변화시키는 복음의 재발견과 그것을 어떻게 오늘의 시대에 전달할 것인가다. 이는 매우 중요하며 그것이 왕성해지는 상태를 켈러는 “복음 부흥”으로 규정한다. 이것을 가장 효율적으로 이루는 사역이 설교이기 때문에 설교자들에게 바른 구분이 필요하다. 설교자는 종교와 복음을 구분해야 하고, 은혜의 풍성함을 전하기 위해 거룩함과 하나님의 사랑을 모두 설교해야 하며, 진리에 대해 명확하면서도 실제적으로 설교할 수 있어야 하고,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 모두에게 동시에 설교해야 하며, 모든 본문에서 그리스도를 설교할 것을 요청한다(pp.161-167). 이렇게 켈러에게 있어서 복음은 하나님을 만나게 하는 소중한 통로다. 또한 그의 사역의 최종 목표는 도시민들에게 복음을 정확하고 충성되게 전달하는 데 있다. 

설교 이야기:복음의 선포이며 변증이어야 한다

켈러는 신학교 교수였으며 도시를 가슴에 안고 복음을 전한 설교자였다. 그는 철저하게 본문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계시가 온전히 드러나는 설교가 좋은 설교이며, 그것이 오늘의 상황과 연관성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설교에는 세속 문화를 복음으로 덮을 만한 깊이가 있어야 하며, 설교자가 늘 염두에 두고 연구해야 할 대상은 성경과 그 말씀을 듣는 청중이라고 주장한다.5 좋은 설교의 조건은 그리스도를 설교하는 것, 문화의 심장부를 향해 설교하는 것, 성령의 능력에 사로잡혀 설교하는 것으로 규정한다. 설교자는 매번 강단에 오를 때 그 설교를 통해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섬기고 사랑해야 하고 … 우리 앞에 있는 사람들을 섬기고 사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설교자는 성경 본문을 선명하게 들려주고 복음을 설교할 때 말씀을 온전히 섬기는 것이며, 사람들에게 다가가 그 시대의 문화와 마음을 향해 설교할 때 자신의 과업을 온전히 수행하는 것으로 설명한다(《팀 켈러의 설교》, pp.38-39).

켈러의 설교 이해에는 세 가지 중심이 있다. 그의 사역 이야기에서 언급했던 내용과 중첩되지만 이것은 사역과 설교의 중심을 이룬 내용이었음을 감안할 때 이해되는 부분이다. 첫째, 켈러의 설교는 성경 본문과 복음 중심의 설교라는 특징이 있다. 성경 본문의 중요성을 강조한다는 것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지만 켈러는 설교자가 설교하기 위해 강단에 오른다면 성경 본문의 진리를 드러낼 책무가 있다고 이해한다. 그리고 성경 중심의 설교를 바로 ‘강해설교’로 연결하면서 바로 이것이 “기독교 공동체를 위한 설교의 주 메뉴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팀 켈러의 설교》, p.50). 물론 이것은 성경 본문이 무엇을 말씀하고, 그것이 오늘의 시대에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분명히 드러내 주어야 한다는 점에서는 동의할 수 있지만 설교 형태론적 관점에서 강해설교만을 절대화하는 것은 다소 편협한 이해로 보인다. 그는 강해설교를 거의 절대화하면서도 그것을 “너무 과하게 정의하는 데에는 위험이 따른다”고 인정하고 있으며, 강해설교의 열렬한 지지자들에게 이러한 이해는 “우려스러운 부분이 없지 않다”는 견해를 밝히기도 하고, 대지설교나 현대 설교학이 제시하는 틀도 과감히 수용함에서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팀 켈러의 설교》, p.61, pp.299-305, 307-309). 이런 점에서 보면 차라리 그것을 ‘성경적 설교’로 규정하면 더 좋았을 것으로 보인다. 탄탄한 설교학적 이론을 통해 독특한 설교 이론이나 스타일을 제시하려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본질과 적용에 대해서 오랫동안 숙고”하면서 도시 가운데 복음을 전하려고 하였던 점과 조나단 에드워즈가 언급한 “복음의 규칙”에 충실해지려는 의도를 담고 있는 주장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겠다(《팀 켈러의 센터처치》, pp.22-23). 여기에서 그가 덧붙여 강조하는 것은 복음과 그리스도가 중심을 이루게 하고 그것이 설교 전반을 관통하게 하라는 점이다. 성경의 중심이 복음이고 그리스도이며, 그리스도의 구원 사건과 복음을 증언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설교자는 “본문을 설교하지 않은 채 급하게 그리스도를 설교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고, 반대로 그리스도를 설교하지 않은 채 본문만 설교하지도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팀 켈러의 설교》, p.93). 그는 성경 전체에 걸쳐 있는 수없이 많은 이야기나 주제, 원리들을 관통하는 것이 복음이며, 마틴 루터가 이해한 대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조항”이라고 이해하면서 설교자에게 권고한다. 

내 정체성의 기초를 예수 그리스도가 해 주신 일과 내가 그분 안에서 은혜로 영원한 이름을 얻었다는 사실에 둔다면, 나는 한편으로 누구에게도 우월감을 품을 수 없고 또 한편으로 어느 누구를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아예 자신을 그들과 비교할 필요가 없다. 내 정체성의 기초는, 나를 위해 배제되신 분, 나 때문에 내쫓기신 분, 원수를 사랑하신 분께 있다. 그래서 나도 타자를 포용하는 사람으로 변한다. 물론 기독교인도 자신에게 주어진 자원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그대로 살아가지 못할 때가 많다. 하지만 그렇게 살아갈 역량을 지닌 사람이 세상에 수없이 많이 필요하다. 복음이 우리를 떠밀며 그런 능력을 부여한다.6

둘째, 켈러의 설교는 끊임없이 세속화된 도시와 그 문화를 지향한다는 변증의 특성을 가진다. 그는 이것을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설교”라고 규정하면서 설교자에게는 “청중의 삶을 향한 책임”이 있는 만큼 “몸담고 있는 문화를 향해 그리스도를 설교하라”고 권면한다. 설교자는 비그리스도인들의 감수성에 대해, 도시 중심부의 정서적·지성적 지형에 대해 깊이 숙고해야 하며, 무엇보다도 상황화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팀 켈러의 설교》, 2부). 그는 이것을 “주위의 문화와 공명하면서도 저항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이해하는데, “사회의 우상을 대적하면서도 한편으론 그 사람들과 그들의 희망과 염원을 존중”하는 자세를 의미하는 용어로 사용한다(《팀 켈러의 설교》, p.135). 여기에서 단지 이해와 존중의 방식이 아니라 확신과 변화를 주는 방식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설교는 변혁적이고 변증적 특성이 있다.7 그에게 있어서 설교는 현대 문화 속에 복음을 변증하는 행위다. 그러면서도 그는 “과도한 상황화”를 경계하는데, “복음의 실제 내용을 타협한다면 군중은 모을 수 있을지 모르나 아무도 변화되지 않을 것”이며, 이것은 설교자의 직무를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게 된다고 경고한다. 반대로 상황화의 미흡은 복음을 효과적으로 들려줄 수 없고,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없다(p.139). 이것은 설교자가 기독교 신앙과 복음에 대해 적대적인 세속화된 시대와 도시에서의 복음 증거에 필수적으로 고려해야 할 요소다. 설교는 그 시대와 문화를 향해 행하는 사역이며, 모든 문화에 딱 맞는 방법은 없으므로 설교자는 문화와 그 시대 정신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오늘의 시대 정신은 “무조건 순응해야 할 … 외부의 우주 질서”와 절대 진리를 거부하면서 자율성에 강조를 두는 시대로, 종교를 “궁극적인 적”으로 이해하는 시대이며, 삶의 의미와 성취를 발견하는 데 하나님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시대다. 자신들이 보기에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따라 자유롭게 살려는 그들에게 어쩔 수 없이 종교는 거침돌이고 방해물이라고 생각하는 시대다. 주권적 자아가 강조되고 절대적인 것을 부정하는 세속주의 사회와 포스트모던 내러티브에 대해 설교자는 깊이 이해하고, 기독교적 답변을 제시하는 것이 설교의 중심 목적이라고 이해한다. 

실제로 그의 설교 신학을 정리한 책에서 이러한 시대 정신에 대해 하나님의 말씀으로 변증하는 다양한 사례를 제시한다(《팀 켈러의 설교》, 5장 참고). 이러한 시대 정신에 영향을 받는 현대 도시민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그 문화를 존중하고 공감하면서 문화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그는 이것을 “효과적 상황화”라고 설명한다. 마치 고속도로 건설 현장에서 거대한 바위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바위의 중심부에 작은 구멍을 뚫고 폭약을 넣어 중심부에서부터 폭발시켜야 한다는 사실을 예로 설명한다. “구멍만 뚫고 폭발시키지 않으면 바윗덩어리를 제거하지 못할 것”이며, “반대로 구멍을 뚫지 않고 폭약을 바위의 표현에서 폭발시킨다면 그저 표면만 그을릴 뿐 바위는 그대로 남을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이 두 가지 작업이 동시에 필요함을 강조한다. 즉 그 시대와 지역의 문화를 존중하고 공감하면서 문화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드릴로 바위를 뚫는 것과 같지만 문화와 성경적 진리가 충돌하는 곳에서는 문화에 맞서야 함을 강조하면서 그것은 폭약을 터뜨리는 것과 비슷한 작업이라고 설명한다. 물론 문화에 대한 존중과 이해, 그리고 문화와의 대립은 모두 필요한 작업이지만 그것이 결코 수월한 일은 아니라는 사실을 언급하면서 문화의 포로가 되는 것과 세상 문화와 혼합되는 것은 모두 피해야 할 요소로 설명한다. 이때 어떻게 문화 속으로 들어가 적응할 것이며, 어떻게 문화에 직면하여 맞설 것인가를 책에서 상세하게 제시한다(《팀 켈러의 센터처치》, 4장). 또한 설교학적 관점에서 다양한 시대 정신에 어떻게 대응하고 신학적 비전으로 무장할 수 있을 것인지를 상세하게 설명하면서 설교의 상황화가 이루어지면 청중이 변한다고 주장한다(《팀 켈러의 설교》, 4, 5장 참고). 이는 마치 존 스토트가 ‘성경의 세계와 오늘의 세계를 연결하는 다리 놓기’로 설명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설교자는 오늘을 사는 사람들에게 마음에 닿게 그리스도를 설교할 것을 요청하면서 “보다 인격적이고 목회적인 측면을 포괄”하는 차원으로 이해한다. 즉 “정감 있게 설교하기, 상상이 되게 설교하기, 놀라게 설교하기, 기억하기 쉽게 설교하기, 그리스도 중심으로 설교하기, 적용 가능하게 설교하기” 등을 실천 방안으로 제시한다(《팀 켈러의 설교》, p.224). 그런 점에서 보면 켈러의 설교는 다분히 복음적이면서 성경적이고, 또한 당 시대와 지역의 문화와 상관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셋째, 켈러의 설교는 성령의 역사와 함께 설교자로서의 삶을 강조하는 특징이 있다. 그에게 있어 “설교를 들리게 하시는 분”은 성령이시며, 설교자에게 필요한 것은 그분이 들어 사용하실 만한 “설교자로서의 삶”이다. 그는 기독교 초기 설교의 힘을 이야기할 때 설교자 안에 역사하셔서 강력한 내면의 울림을 만들어 내면서 힘차게 휘몰아치는 영적인 능력을 부여하시는 분이 성령이었음을 강조한다.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시기 위해 필요한 것은 재능과 능력보다 설교자 됨의 중요성을 강조한다(《팀 켈러의 설교》, pp.258-59). 성령께서 그를 사용하실 건실한 영적 성품이 필요한데, “겸손하지만 권능의 사람, 의롭지만 은혜의 사람, 권위 있으면서 동시에 긍휼이 넘치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수행하고 있는 설교를 깊이 들여다보기 위해 설교자가 확인해야 할 내용으로 세 가지 텍스트를 언급하는데, 성경 본문인 ‘텍스트’(text), 청중이 처한 정황과 환경인 ‘콘텍스트’(context), 설교자의 숨은 마음인 ‘서브텍스트’(subtext)가 그것이다(pp.267-273). 특히 서브텍스트는 “메시지 저변에 흐르는 메시지,” 즉 설교에 담기는 의도를 의미하는 개념으로 성령께 온전히 사로잡히기 위해 설교자 자신이 설교학적으로 바른 의도를 지향해야 함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몇 가지 실례를 제시하는데, 공동체의 울타리를 강화하고 안전감과 소속감을 증진시키려는 의도를 가진 ‘내부 강화 서브텍스트’, 설교자가 자신의 기술을 과신하고 교회의 생산성을 촉진하는 데 주안점을 두는 ‘과시 서브텍스트’, 교인들의 지식을 키워서 바람직한 방식으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데 주안점을 두는 ‘훈련과 가르침 서브텍스트’를 들고 있다. 마지막 ‘예배 서브텍스트’는 설교자들이 진심으로 헌신해야 할 진정한 설교의 심장이라고 이해하면서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모든 서브텍스트 가운데 가장 복잡하고 완전하며, 가장 많은 기술을 요한다. 정보 전달, 상상력 사로잡기, 심지어 행동의 변화까지 뛰어넘어, 우리 마음이 가장 깊은 애착을 보이는 대상을 변화시킨다는 원대한 목표를 겨냥한다. 메시지는 이러하다. ‘그리스도가 얼마나 위대한 분인지, 당신이 생각한 것보다 얼마나 더 경이로운 분인지를 보세요! 당신의 모든 문제가 결국 이 진실을 직시하지 못한 데서 온 것임을 깨닫지 못하겠나요?’ 나는 모든 교회가 이 예배의 서브텍스트에 헌신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것이 진정한 ‘설교’의 심장이다. 초점은 내부인과 외부인 모두에게 모아지고 … 근본 동기는 모든 사람을 굳게 세우는 데 있다 … 기술만 가지고는 이 바르고 진실한 서브텍스트를 전달할 길이 없다. 그것은 오직 설교자의 영적인 삶으로부터 나온다(pp.272-273).” 켈러의 주장은 선명하다. 청중을 어떤 경험으로 초대하고 싶으면 설교자가 먼저 경험해야 하며, 단지 설교를 준비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설교자의 삶을 더욱 힘써 준비하며(pp.273-274), 복음에 대한 확신과 세상과 소통하려는 뜨거운 열정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삶의 모든 현장에 복음이 깊이 뿌리 박히도록 도우라

북미 주요 교단들 대부분이 침체의 늪에서 허덕이고 있을 때 세속 문화의 중심지인 도시를 향한 팀 켈러와 리디머장로교회의 복음 변증 사역은 세속화와 기독교 후기 시대에 새로운 목회신학적 틀을 제시해 주었다. 특별히 그의 설교는 현대 도시와 문화를 향해 복음 변증 설교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무신론자들을 위한 사도”로 평가 받고 있는 C. S. 루이스와 계보를 같이 한 설교자였다고 평가받는다.8 루이스가 뛰어난 이야기를 통해 상상력를 자극하는 방식으로 기독교의 복음과 가치관을 변증하고 있다면 켈러는 유한적인 세상의 가치관과 철학에 대해 영원한 진리의 말씀인 복음의 탄탄한 논리와 핵심을 통해 변증한다. 가장 세속적인 도시에 세워져 가장 활력이 넘치는 교회(회중)가 된 원동력을 켈러의 설교에서 찾는데, 특히 현대 문화와의 연결성과 소통 능력의 탁월성에서 그 답을 찾게 된다. 이러한 복음 변증 설교와 사역의 근본적 틀은 20세기에 등장했던 신학적 경향을 통합하는 특징을 보인다. 오늘의 시대 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는 긴박성에서 시작한 열정을 통해 꽃을 피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말씀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를 설명하는데 집중하였던 칼 바르트의 계시적 경향, 성경 가운데서 인간을 향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인지를 성경 속에서 찾으면서 나는 누구이며, 어떤 존재여야 하는지를 찾아내려고 했던 루돌프 불트만의 성경적 접근, 기독교의 진리인 케리그마를 오늘의 시대와 상황에 적응시키려고 노력했던 폴 틸리히의 상관적 접근 방법(the method of correlation)이 그것이다. 틸리히는 다분히 변증적 관점에서 문화와의 지속적인 대화를 통한 신학적 체계와 방법론을 제시했다. 틸리히는 기독교 진리(메시지)를 진술하는 것과 새로운 세대를 위해 그 메시지에 대한 해석을 신학의 사명으로 이해하면서 바르트의 케리그마 신학과 상황에 대한 실존적 해석을 연결시키는 변증적 신학을 제시한다. 그에게 있어서 신학은 메시지(복음)와 상황이라는 날개의 균형을 유지할 때 그 시대에서 적절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경향들이 가지는 한계, 혹은 약점도 있다. 먼저 계시적 접근 방법에는 오늘의 상황과의 상관성의 결여(irrelevance)라는 한계와 두 번째 경향에서는 왜곡과 희석화의 위험을 불러오는 과도한 적응(adaption)이라는 한계, 세 번째 경향에서는 신학의 출발점을 하나님의 대답이 아니라 인간의 물음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상황 신학으로 전락할 수 있는 한계를 보게 된다.9

복음 변증 사역이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팀 켈러의 목회 신학과 설교 신학을 검토해 보면 20세기에 대표적인 신학적 흐름의 강점과 약점을 잘 이해하면서 현대 사회에 복음에 대한 황홀함으로 펼쳐간 사역임을 알 수 있다. 그는 설교자들에게 복음과 상황, 즉 현대 도시와 문화에 깊은 관심을 가질 것을 권고하면서 복음에 대한 확신과 열정을 가질 것을 강조한다. “기독교 신앙을 의심하는 근거를 확실하게 파악하라. 그리고 크리스천들이 믿는 바를 증명하기 위해 애쓰는 것처럼, 그 확신을 뒷받침하는 증거를 온 힘을 다해 찾아보라. 스스로 품은 회의가 겉보기만큼 견고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10 



1) 나태주의 시, “황홀 극치”.
2) Downtown 교회는 14번가에서, East Side 교회는 75번가에서, West Side 교회는 83번가에서, Lincoln Squire 교회는 64번가에서 모인다.
3) RCTC사역은 교회 개척을 통해 전 세계 도시에서 주로 복음 운동을 수행하기 원하는 지도자들을 선발하여 훈련과 코칭을 제공하고, 그것을 수행할 자료들을 제시하기 위해 세워진 비영리 단체다. 뉴욕에 본부를 두고 아프리카, 아시아, 호주, 북미주, 라틴 아메리카, 중동, 유럽 등의 140여 개 도시에서 사역을 수행하고 있다. 도시 교회 개척, 리더십 개발, 콘텐츠 개발 등 핵심 사역을 통해 도시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전파를 돕는 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2018년 1월까지 70개 도시에 495개의 새롭게 설립된 교회의 시작을 돕고 있으며, 도시 목회와 복음화를 위해 1만 6000 명 이상의 지도자들을 훈련하였고, 25개국 언어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4) 이러한 특성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그의 사역의 핵심 사상과 가치를 정리한 팀 켈러, 《팀 켈러의 센터처치》, 오종향 옮김 (서울: 두란노, 2018)를 참고. 이후로는 문장 안에 《센터처치》라는 약호와 쪽수만을 표기할 것임.
5) 팀 켈러,《팀 켈러의 설교》, 채경락 옮김 (서울: 두란노, 2016), pp.27-28. 이하에서는 약식으로 《설교》로 표기할 것이며, 내용과 괄호 안에 인용 쪽 수를 표기할 것임.
6) 팀 켈러,《팀 켈러의 답이 되는 기독교: 현대 세속주의를 의심하다》, 윤종석 옮김 (서울: 두란노, 2018), p.216.
7) 켈러의 기독교에 대한 변증서로는 다음의 책을 참고. 팀 켈러, 《팀 켈러, 하나님을 말하다: 하나님에 대한 오해와 진실》, 최종훈 옮김 (서울: 두란노 2017); 《팀 켈러의 답이 되는 기독교: 현대 세속주의를 의심하다》, 윤종석 옮김 (서울: 두란노, 2018). 
8) 실제로 켈러는 자신의 변증학에서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인물로 루이스를 꼽고 있고, 자주 루이스의 주장들을 인용한다. 팀 켈러, 《팀 켈러의 답이 되는 기독교》를 참고하라. 그 외에도 존 스토트, 마틴 로이드-존스, 찰스 테일러, 조나단 에드워즈 등에 깊은 영향을 받았으며, 그의 스승인 에드먼드 클라우니에게서 복음의 이해를, 하비 콘(한국명 간하배)에게서 도시 사역과 상황화에 대한 열정 형성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9) 이러한 경향들에 대한 종합적 이해를 위해서는 Hans Kung and David Tracy, eds., Paradigm Change in Theology: A Symposium for the Future (New York: Crossroad, 1989)를 참고하라.
10) 팀 켈러, 《팀 켈러, 하나님을 말하다》, p.25.

김운용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장. 유니온 장로교 신학교(Ph.D.). 저서로 《현대설교코칭》, 《한국교회 설교 역사》 등이 있다. 필자의 다른기사 keyboard_arrow_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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