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와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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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설교 2019년  06월호 마지막이 아름다운 요셉 창세기 46-50장 채경락 교수의 설교적 주석(13, 마지막 회)

창세기 46장 – 애굽에서도 임마누엘

야곱이 애굽으로 내려가는 장면이다. 브엘세바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데, 이상 중에 나타나신 하나님은 야곱에게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고 약속하신다. 애굽에서도 임마누엘이 되어 주시겠다는 약속이다. 애굽으로 이주한 야곱 가족의 이름들이 하나하나 열거되는데 총 칠십 명이다. 야곱을 맞이한 요셉은 바로 앞에서 어떻게 말해야 할지를 아버지에게 일러 준다.

 설교 구상1
하나님을 찾으라는 권면의 메시지가 가능하다. 애굽으로 내려가는 길에 야곱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다. 삶의 터전을 옮기는 중요한 순간인데, 자기 삶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다. 이에 하나님은 이상 중에 나타나셔서 애굽에서도 야곱과 함께하며 아브라함에게 주신 거대한 민족의 약속을 이루실 것을 확인해 주신다.

주제 선언 하나님을 찾으라. 애굽으로 가는 길에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야곱의 모습이 귀하다.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다. 평소 예배의 삶이 반영된 것일 터, 야곱은 언제나 하나님을 찾는 인생이었다. 우리도 그러하기를 바란다.
중간 질문 하나님을 찾는 자에게 임하는 복은 무엇인가?
대지  1       만남의 복이다
 주를 찾는 자가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이다. 이상 중에 하나님이 야곱에게 나타나셨다. 하나님을 만나고자 하는가? 하나님을 찾으라. 정성으로 예배하라.
대지  2       동행의 복이다
  주를 찾는 야곱에게 하나님은 임마누엘을 약속하신다. 하나님은 특정한 땅에 제한된 분이 아니시다. 주를 찾는 백성이 있는 곳이면, 어디서나 임마누엘이시다.
대지  3       성취의 복이다
  주를 찾는 자가 언약의 성취를 보게 될 것이다. 애굽으로 향하는 야곱에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주신 거대한 민족의 약속 성취를 선언하신다.

설교 구상2
언약의 성취에 관한 설교가 가능하다. 주의 언약은 반드시 이루어지되, 단계를 거쳐서 이루어진다는 메시지다. 애굽으로 내려가는 야곱의 가족은 겨우 칠십 명이다. 아직은 싹이 튼 수준이지만, 이 칠십 명이 장차 거대한 민족을 이루게 될 것이다. 약속을 품고 인내하며 사는 자에게 주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흐름은 ‘원리2+실천2’형이 좋겠다.

우산질문   하나님의 언약에 관해 본문이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대지  1       주의 언약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거대한 민족의 약속이 서서히 모습을 갖추어 간다. 사람의 말은 땅에 떨어져도, 하나님의 언약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대지  2       주의 언약은 단계적으로 이루어진다
  오늘 야곱의 가족 칠십 명이 애굽에 당도한다. 완전한 성취는 아니지만, 거대한 민족으로 가는 의미 있는 진일보가 이루어졌다. 이들을 통해 장차 거대한 민족이 될 것이다.
중간 질문    약속의 단계적 성취를 믿는 자는 어떻게 살아갈까?
대지  1       비전의 삶을 산다
  약속의 성취를 믿는 믿음으로 산다. 지치지 않고 낙심하지 않는다. 사람 말은 땅에 떨어져도 주께서 주신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짐을 믿기 때문이다.
대지  2       중간 역할을 기뻐한다
 하나님의 역사가 계주라면 우리 대부분은 중간 주자다. 약속을 믿는 자는 중간 역할에 충실할 줄 안다. 약속의 완전한 성취를 내 눈으로 보지 못하더라도, 나에게 맡겨진 사명에 만족할 줄 안다.

설교 구상3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가르치는 설교가 가능하다. 야곱의 가족은 약속의 땅을 떠나 세속의 중심인 애굽으로 이주한다. 이방 문화가 판치는 세속 세계 한가운데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요셉은 목축업을 핑계로 가족을 고센 땅에 정착시킨다. 비옥한 땅이지만, 애굽 사회와 다소 이격 되어 그들의 문화에 동화되지 않는 장점이 있었다. 세상 안에 살지만 주의 백성의 정체성을 견지하라는 메시지다.

우산질문  세상에 있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은 사람으로서 성도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대지  1       무례하지 말라
  세상 앞에 무례해서는 안 된다. 복음에 위배되는 일에 동조할 수는 없지만, 기본 예법을 어길 필요는 없다. 야곱도 바로 앞에 예를 갖춘다. 신앙을 이유로 무례를 범하는 것은 지혜롭지도 신앙적이지도 않다.
대지  2      지혜롭게 구별되라
  지혜로운 거리감이 필요하다. 예를 갖추지만 동화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요셉은 목축업을 핑계로 가족을 고센 땅에 정착시킨다. 비옥한 땅이기도 하지만, 애굽 문화에 휩쓸리지 않도록 일정한 거리를 두려는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대지  3     정체성을 기억하라
 무엇보다 내가 주의 백성임을 기억해야 한다. 타협 없이 예배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야곱은 가나안에서도, 애굽에서도, 내려오는 길에도 예배자였다.

창세기 47장 – 총리 요셉의 공직 수행

총리로서 요셉이 공직을 수행하는 모습이 소개되는 본문이다. 풍년 동안 곡식을 창고에 모아 둔 요셉은 칠 년 흉년 동안 축적된 곡식을 가지고 백성을 먹임과 동시에 애굽의 국가 시스템을 개조한다. 곡식을 얻기 위해 백성이 돈과 가축을 내놓고, 나중에는 땅마저 내놓는다. 사실상 전 국토가 바로의 소유가 되는데, 이를 기초로 요셉은 오분의 일 세금 제도를 세운다. 그 와중에 야곱의 가족은 애굽에 정착하여 번성하기 시작한다.

설교 구상1
요셉의 모습을 거울삼아 성도의 공직 생활 혹은 직장 생활에 관한 자세를 묵상할 수 있다. 직장은 생계를 위한 수단이기도 하지만,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요 주의 뜻을 실현할 수 있는 통로이기도 하다. 요셉은 ‘직장’인 애굽을 위해 충성스럽게 직무를 감당하면서 동시에 백성을 향한 배려를 놓치지 않았다.

우산질문   성도로서 사회 안에서 일정한 역할을 맡고 있는데, 어떤 자세로 임해야 할까?
대지  1      맡은 바 직무에 충실하라
        주의 백성은 이 땅에서도 충성스러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 불의에 참여해서는 안 되지만, 맡은 직무에 충실해야 한다. 요셉은 어딜 가나 주어진 역할에 충실했다. 보디발의 집에서도, 감옥에서도, 총리가 되어서도 변함이 없다.
대지  2     사람을 향한 자비를 실천하라
        성도에게 공직은 ‘갑질’의 수단이 아니라 섬김의 도구다. 애굽의 전 국토를 바로의 소유로 삼은 요셉은 오분의 일 세법을 세운다. 오분의 일이 무거워 보이지만, 무자비한 권력은 팔 할, 구 할의 살인적인 세율을 매기기도 한다. 바로의 통치를 공고히 하면서도 백성을 배려하는 적정선으로 판단했던 듯하다.
대지  3   주의 백성임을 당당하게 드러내라
       요셉은 자신이 야곱의 가족임을 숨기지 않았다. 애굽 사회에서 약점이 될 수 있었지만 감추지 않고 정직하게 드러낸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임을 감추는 것은 주님을 부끄러워하는 처사가 될 수 있다. 성도의 정체성을 당당히 드러내고, 그렇기에 더욱 겸손하고 지혜롭게 처신하라.

설교 구상2
폭을 넓혀 선교적 삶이라는 이름으로 설교할 수도 있다. 선교는 복음 전도와 더불어 성도의 삶을 통해 이루어진다. 우리의 삶이 복음의 정신을 구현하지 못한다면, 선교의 문도 막힐 것이다. 야곱 가족이 애굽에 잘 정착하고 번성할 수 있었던 것은 총리라는 요셉의 권력이 한몫을 했다.

주제 선언 선교적 삶을 살라. 선교적 삶이라는 개념은 우리 삶의 모든 현장을 선교지로 이해하도록 돕는다. 통계적으로는 다음 세대는 미전도 종족으로 분류된다는 말도 들린다. 복음에 대한 다음 세대의 거부감은 성도답지 못한 기성 세대의 삶에서 기인한 바가 크다. 복음 전도와 더불어 성도다운 삶을 회복하는 것이 절실하다.
중간 질문 성도로서 어떻게 선교적 삶을 살 수 있나?
대지  1      성실하라
  사회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역할을 성실하게 감당해야 한다. 요셉이 자신의 직무에 성실하게 임했듯이, 우리도 직장에서, 가정에서, 마을 공동체에서 우리가 감당해야 할 사회적인 역할을 성실하게 감당해야 한다.
대지  2      따뜻하라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선교적인 삶이 무엇인지를 강렬하게 소개한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향한 따뜻한 배려가 성도의 마땅한 삶이고, 그것이 선교의 문을 연다. 요셉의 오분의 일 세법에서 사람을 향한 배려를 읽을 수 있다.

설교 구상3
삶을 회고하는 야곱의 언어를 통해 삶을 돌아보는 설교가 가능하다. 삶을 돌아보는 야곱의 언어가 아프도록 거칠다.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9절). 야곱의 고백만은 아닐 터, 인생이란 참 덧없고 이런저런 아픔이 있다. 주의 백성으로서 영원한 본향을 사모하며 주와 동행하는 삶을 다짐하는 설교가 좋겠다.

우산질문   야곱의 고백에서 엿보는 삶의 진실은 무엇인가?
대지  1      지나고 보면 덧없고 허망하다
  백삼십 년을 살았지만 야곱에게는 덧없이 느껴졌나 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되니.” 솔직한 고백일 것이다. 인생이 긴 것 같아도 끝이 있고, 그래서 허망하고 덧없다.
대지  2      우리 삶에는 아픔이 있다
 “험악한 세월”이라는 표현이 아프게 다가온다. 그의 삶을 돌아보면 그리 과장이 아니다. 자신이 초래한 일이지만 도망자의 삶을 살았고, 자식을 잃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이 또한 야곱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인생은 때로 아픔이다.
중간 질문 어떻게 살아야 할까?
대지  1      영원한 본향을 사모하라
 “나그네”라는 말은 역설적으로 돌아갈 본향이 있음을 의미한다. 이 땅에서 우리의 삶이 덧없어도 괜찮은 것은 돌아갈 본향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늘 시민권(빌 3:20)을 가진 사람이다.
대지  2      하나님과 동행하라
  어디를 가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아름답고 존귀하다. 야곱의 삶이 비록 험악했지만 영광스러운 인생인 것은 그가 하나님과 동행했기 때문이다. 영원한 본향을 사모할 수 있는 것도 주의 백성이기 때문이다.

창세기 48장 – 야곱이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축복하다

야곱이 요셉의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축복하는 장면이다. 야곱이 병들었다는 소식에 요셉이 두 아들을 대동하고 아버지를 찾아가는데, 야곱은 그 둘을 자기 아들로 선언한다. 장차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에 이름을 올린다. 묘한 장면이 연출되는데, 야곱은 손을 엇바꾸어 차자 에브라임의 머리에 오른손을 얹고, 장자 므낫세는 왼손으로 안수한다. 요셉이 장자의 머리에 아버지의 손을 얹으려 하지만, 야곱은 알고 있다며 에브라임을 더 크게 축복한다.

설교 구상1
자녀를 축복하라는 설교가 가능하다. 야곱이 두 손자, 혹은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에게 축복한다. 생각만 해도 뭉클한 장면이다. 주께서 부모에게 주신 사명이 단지 양육만은 아니다. 주의 이름으로 자녀를 축복하는 것도 부모의 영광스러운 사명이자 권리가 아니겠는가. 진정한 축복을 위해 축복의 언어와 함께, 부모가 먼저 하나님과 신실한 관계를 유지하라는 권면의 메시지다.

주제 선언 자녀는 주님의 선물이다. 부모로서 자녀를 정성으로 양육함과 더불어 주의 이름으로 축복하는 것도 부모의 귀한 사명이자 영광스러운 권리다.
우산질문   진정한 축복을 위해서 우리가 점검할 사항은 무엇인가?
대지  1      축복의 언어가 있는가?
        하나님을 향한 찬양과 고백이 언어로 이루어지듯이, 자녀를 향한 축복도 언어를 동원한다. 사랑하는 자녀를 위한 아름다운 축복의 언어를 확보하라. 성경 읽기와 묵상을 통해 가장 아름다운 언어를 준비하라.
대지  2      축복의 하나님이 있는가?
        축복의 주인은 부모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자녀를 향한 축복이 의미가 있으려면, 부모로서 먼저 하나님과 신실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먼저 진실한 성도가 되어야 한다. 야곱은 출생부터 지금까지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고백한다.
대지  3    축복의 벽돌이 있는가?
       자녀를 위해 지속적으로 기도하라는 의미로 벽돌이라는 이미지를 떠올렸다. 자녀를 위한 진정한 축복은 순간의 소망이 아니라, 지속적인 기도다.

설교 구상2
하나님의 주권을 설교할 수 있다. 요셉은 장자 므낫세가 더 큰 축복을 받기 원했지만, 야곱의 오른손은 차자 에브라임을 향한다. 마음이 불편했을 수도 있고, 혹 무언가 잘못되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주님의 뜻이었고, 요셉은 거기에 순종해야 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주권자이시기 때문이다. 기억할 것은, 하나님의 주권은 우리를 향한 따뜻한 은혜의 도구다.

우산질문   야곱의 축복 장면에서 우리 마음에 새길 교훈은 무엇인가?
대지  1      내 뜻과 하나님의 뜻은 때로 다르다
  요셉은 장자에게 큰 복을 빌기를 바랐지만, 야곱은 차자에게 오른손을 얹는다. 내 뜻과 하나님의 뜻이 다를 수 있다.
대지  2      불편해도 순종하라
  진정한 순종은 불편한 것에 순종하는 것이다. 불편한 마음을 누르고 요셉이 순종했듯이, 주의 뜻이면 우리도 순종함이 마땅하다.
중간 질문 우리가 그렇게 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대지  1       하나님이 주권자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삶의 주인이다. 하나님이 우리 뜻에 순종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그분의 뜻에 순종함이 마땅하다.
대지  2      불편한 은혜의 수혜자가 우리이다
  장자가 아닌 차자에게 큰 복이 임하는 것이 의아했다면, 더욱 의아스러운 것은 비천한 우리가 하나님 자녀의 복을 받은 것이다. 열한 번째 아들인 요셉이 두 지파를 이루어 장자의 명분을 취한 것도 의아스럽다. 자격 없는 우리 모두에게 과분한 은혜가 임하였다. 하나님의 주권은 누르는 완력이 아니라 우리를 향한 따뜻한 은혜의 도구다. 감사로 받으라.

설교 구상3
야곱이 경험한 하나님을 우리의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설교가 가능하다. 야곱은 축복의 기도를 시작하면서 “나의 출생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여호와”로 칭한다(15-16절). 야곱의 고백을 우리의 고백으로 받을 수 있고, 여기에 우리에게 복 주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을 고백할 수 있다. 야곱이 자녀들을 축복하는 것은 야곱의 뜻 이전에 하나님의 뜻이었다.

우산질문   야곱의 하나님, 그래서 우리의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
대지  1       출생부터 지금까지 우리를 기르시는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먹이시고 기르시는 분이다. 시편 23편이 고백하듯 그분은 우리의 목자가 되신다. 생명의 신비를 통해 우리를 출생하게 하시고 자연의 신비를 통해 우리를 지금도 먹이신다.
대지  2      모든 환난에서 건지시는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자요 보호자가 되신다. 우리 삶에는 이런 저런 환난이 있다. 우리가 아는 환난도 있고 모르는 환난도 있는데, 주께서 우리를 지키신다. 무엇보다 죄로 인한 거대한 환난에서 우리를 구원하신다.
대지  3       우리에게 복 주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다
  야곱이 자녀들을 축복하는 것은 야곱의 뜻 이전에 하나님의 마음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 주기를 원하신다.

창세기 49장 –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

야곱이 아들들에게 “후일에 당할 일”을 유언 형식으로 일러 주는 본문이다. 불행한 일이 선언되기도 하고, 영광스러운 복이 선포되기도 한다. 르우벤과 시므온, 그리고 레위에게는 그들이 범한 잘못이 후손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하고, 유다의 후손에서 통치자가 나올 것이라고 예언한다. 요셉의 자손에게는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깊은 샘의 복”이 임할 것이라고 예언한다. 성경은 야곱이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다고 요약한다.

설교 구상1
담백하게 유언을 풀어가는 설교가 가능하다. 아름다운 축복의 언어가 나오면 나와 후손들에게도 임하기를 기원하고, 반대로 어둔 경고가 나오면 우리와 후손들에게는 임하지 않기를 바랄 수 있다. 취사 선택의 욕심으로 비칠 수도 있지만,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일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유다의 영광과 요셉의 풍요가 우리와 후손들에게 임하기를 기원하고, 르우벤과 시므온에게 임한 어둔 불행이 임하지 않기를 기원하면 된다.

주제 선언 야곱이 선포한 복은 우리와 후손에게 임하기를 바라고, 야곱이 경고한 재앙은 피해가길 바란다.
대지  1       유다의 영광이 임하기를 바라다
  유다에게서 통치자가 나온다고 했다. 우리 후손 중에도 주의 백성을 지혜롭게 인도하는 귀한 지도자가 나오기를 소망한다. 좋은 지도자를 만나는 것은 백성이 누리는 최고의 복 가운데 하나다. 우리와 후손이 복의 통로가 되기를 바란다. 이를 위해 우리가 먼저 주의 통치에 순종해야 할 것이다.
대지  2       요셉의 풍성이 임하기를 바라다
 요셉에게 선포된 하늘의 복과 깊은 샘의 복이 우리 후손에게도 임하기를 소망한다. 요셉은 총리직을 도구 삼아 백성을 먹이는 복의 통로가 되었다. 우리와 후손을 통해서도 많은 영혼들이 영육의 양식을 공급받게 되기를 바란다.
대지  3       르우벤, 시므온, 레위에게 임한 불행이 임하지 않기를 바라다
  나의 허물이 자손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정욕을 이기지 못한 르우벤의 허물이 후손에게 영향을 미치고, 시므온과 레위의 폭력성이 후손에게 상처를 남겼다. 우리의 이야기가 아니기를 바란다.

설교 구상2
내 삶이 씨앗이 된다는 메시지가 가능하다. 르우벤과 시므온, 그리고 레위의 누추한 삶이 후손에게 불행의 씨앗이 되었다. 유다와 요셉의 헌신적인 삶은 후손에게 영광스러운 씨앗이 되었다. 지금 나의 삶이 훗날 사랑하는 후손에게 영향을 미침을 기억하고 정결한 삶, 평화의 삶, 헌신의 삶을 살자고 권면하는 설교다.

주제 선언 내 삶이 씨앗이 되리라. 내 삶은 단지 나의 삶이 아니다. 나의 후손에게로 이어지는 씨앗이 된다. 결정론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후손들은 조상을 핑계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앞선 세대로서 후세대를 향한 책임을 가질 필요가 있다.
우산질문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대지  1       정결한 삶을 살자
  갈수록 음란한 시대다. 르우벤을 향해 야곱은 “네가 아버지의 침상에 올라가 더럽혔”다고 지적한다. 그 음행이 자녀 세대에게 어둔 그림자를 드리울 것이라고 경고한다. 우리는 거룩한 주의 자녀다. 더러움을 버리고 정결의 옷을 입자.
대지  2       평화의 삶을 살자
  우리 사회에 폭력을 용인하고, 심지어 예찬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성경은 폭력을 일컬어 힘이 아니라 오히려 연약함의 결과라고 말한다. 레위와 시므온은 분노를 다스리지 못해 잔인한 폭력을 휘둘렀다. 상처 입은 자매를 위하는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폭력은 나에게는 물론 후대에까지 상처를 남긴다.
대지  3       헌신의 삶을 살자
  야곱의 축복 속에 단연 돋보이는 사람은 유다와 요셉이다. 두 사람의 공통점이 있다면 희생과 헌신이었다. 베냐민을 위해 유다가 자기 몸을 담보했고, 요셉은 비록 형들에게 팔렸지만 그들을 용서하고 성심을 다해 돌보았다. 그들의 헌신이 후손의 삶에도 아름다운 열매를 드리운다.

설교 구상3
유언을 준비하라는 메시지도 가능하다. 유언은 슬픈 듯 삶의 가장 중요한 언어 가운데 하나다. 젊은 시절 내뱉는 호기 어린 믿음도 소중하지만, 인생을 마무리하면서 후손에게 잔잔히 들려주는 유언은 묵직한 울림이 된다. 내 삶을 마무리하면서, 사랑하는 후손에게 두고두고 삶의 길잡이가 될 유언을 준비하라고 권면하는 설교다.

주제 선언 유언을 준비하라. 취임 연설도 중요하지만 떠나는 말도 못지않게 소중하다. 삶의 비전도 소중하지만, 삶을 마무리하는 유언의 무게도 묵직하다. 사랑하는 자녀를 위해 아름다운 유언을 준비하는 것도 부모 노릇에서 빠질 수 없는 항목이다.
우산질문   어떤 유언을 준비해야 할까?
대지  1       축복의 유언이다
 자녀들을 위해 전심으로 빌어 줄 복을 준비하라. 성경의 언어에 기초하여 자녀들을 향한 사랑과 비전을 담아 가장 아름다운 유언을 준비하라. 유다와 요셉을 향한 축복의 언어가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대지  2       경고의 유언이다
  자녀에게 따끔하게 경고할 언어도 필요하다. 야곱은 르우벤과 시므온, 레위가 범한 잘못을 분명하게 지적했는데, 이것이 후손에게 선명한 경고가 되었을 것이다. 주의 백성이기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다.
대지  3       삶의 유언이다
  유언은 입으로만 하는 게 아니다. 나의 삶이 사랑하는 자녀에게 유언이 된다. 두려운 것은, 자녀는 나의 말보다 나의 삶을 더 가까이 지켜보고, 나의 말보다 나의 삶이 그의 가슴에 더 깊이 새겨진다.

창세기 50장 – 마지막이 아름다운 사람들

창세기가 마무리되는 본문이다. 야곱이 죽고 유언대로 요셉과 형제들은 그를 가나안 땅에 장사한다. 바로의 명으로 애굽의 모든 신하와 원로들이 야곱의 장례에 함께 하는데, 행렬이 어찌나 큰지 지켜본 가나안 거민들이 “애굽 사람의 큰 애통”이라고 불렀다. 돌아오는 길에 요셉의 형들은 이제 아버지가 죽었으니 혹시 요셉이 그들을 해하지 않을까 두려워하지만, 요셉은 섭리 신앙을 고백하며 형들을 품는다. 세월이 흘러 요셉도 생을 마감하는데, 마지막 유언으로 그는 자기 시신을 부탁한다. 장차 후손들이 애굽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게 될 것인데, 그때 반드시 자기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고 맹세하게 한다.

설교 구상1
마지막이 아름다운 사람을 설교할 수 있다. 야곱의 삶은 스스로 고백했듯이 매우 험난했지만, 그의 마지막 모습은 너무나 아름답다. 화려한 장례는 뜨겁고도 아름다운 삶을 마감하는 그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로 보인다. 우리의 마지막도 이렇게 아름답기를 바라면서, 야곱처럼 뜨겁게 살자고 다짐하는 설교가 가능하다. 설교자의 묵상에 따라 야곱의 아름다운 삶을 다양한 언어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주제 선언 야곱의 마지막이 참 아름답다. 화려한 장례는 수고한 그를 위해 준비한 하나님의 선물처럼 보인다. 우리의 마지막도 그와 같기를 바란다.
우산질문   이 아름다운 영광을 위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대지  1       뜨겁게 살자
  야곱은 뜨거운 사람이었다. 그의 열정을 보시고 하나님이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주셨다. 모나고 부족한 면도 있었지만, 하나님을 향해 한평생 뜨겁게 살아간 사람이다. 눈치 보며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해 뜨거운 인생이 되기를 바란다.
대지  2       인내하며 살자
 인내하는 자에게 영광이 임할 것이다. 야곱의 세월이 참 아프고 힘겨웠지만, 그는 잘 인내하였다. 최후의 영광은 인내하는 자에게 주어진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고전 15:58).

설교 구상2
요셉이 보여 준 진정한 용서를 묵상하는 설교가 가능하다. 야곱이 죽은 후 형들은 요셉이 혹 자기들을 해하지 않을까 염려했다. 아버지라는 방패막이 사라진 상황에서, 인간적인 마음에 과거의 앙갚음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기엔 요셉은 너무나 성숙한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형들의 허물에 집착하기보다 하나님의 섭리를 찬양하며 형들을 진심으로 용서하고 그들의 가족을 부양한다. 이것이 진정한 용서가 아니겠는가.

우산질문   요셉이 보여 준 진정한 용서는 무엇인가?
대지  1       상황에 휘둘리지 않는 용서이다
  야곱이 죽은 후 형들은, 아버지가 없는 상황에서 요셉의 마음이 변하지 않을까 염려했다. 만일 그러했다면 과거 요셉의 용서는 진정한 용서가 아니라, 아버지 때문에 억누른 일종의 쇼였던 셈이다. 요셉은 형들의 허물보다 하나님의 섭리에 집중하였다. 섭리 신앙이 그를 진정한 용서로 이끌었다.
대지  2       사랑으로 열매 맺는 용서이다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21절). 용서는 단지 벌하지 않음이 아니다. 사랑으로 형들의 필요를 보살피는 요셉에게서 용서의 진면모를 본다.
대지  3       우리를 향한 주님의 용서이다
  요셉을 통해 우리를 향한 주님의 용서를 발견한다. 형들이 요셉의 용서를 의심하는 대목에서는, 때로 우리 마음에 일어나는 불안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염려하지 말라. 주님은 요셉보다 더 큰 아량으로 우리를 용서하신다.

설교 구상3
죽어 가면서 요셉이 자기 시신을 부탁한 이유를 묵상할 수 있다. 자기 시신이 염려되어서가 아니라, 후손에게 견고한 신앙을 물려주기 위한 부탁이었다. 비록 지금은 애굽 땅에 살지만, 장차 하나님이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리라는 믿음을 후손의 마음에 새기려는 의도였다. 후손의 믿음을 위해 요셉이 자기 시신을 기증한 것이다. 47장에서 야곱이 자신을 가나안 땅에 장사하라고 당부하는 모습에서도 유사한 메시지를 선포할 수 있다.

우산질문   요셉이 후손에게 자기 시신을 부탁한 이유는?
대지  1       후손이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언젠가 애굽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돌아간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향한 믿음을 주기 위한 부탁이었다. 요셉의 무덤 앞을 지날 때마다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을 향한 믿음과 희망을 품을 수 있었다.
대지  2      후손의 가슴에 정체성을 심기 위해서다
 비록 애굽에 살지만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후손의 가슴에 새기기 위한 부탁이었다. 애굽에 산다고 애굽 백성이 아니다. 이 땅에 산다고 우리가 이 땅에 속한 사람이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다.
대지  3       요셉이 진정 하나님의 백성이었기 때문이다
 요셉 자신이 먼저 그 믿음을 품었다. 비록 애굽의 총리로 살고 있지만, 그는 하나님의 백성이었다. 삶의 결정적인 순간에 믿음이 드러나는 법이다. 죽음은 가장 정직한 순간이다. 나는 지금 누구로 살고 있는가?

설교는 영광스럽지만 때로 너무나 고통스러운 작업이다. 이번 연재가 정직한 자세로 성도에게 생명의 말씀을 공급하기 위해 분투하는 설교자에게 작은 도움이 되었기를 바란다.   


 

채경락 고신대학교 설교학 교수. 미국 남침례신학교(Ph.D.). 저서로 《쉬운 설교》, 《설교자들이 알아야 할 절기와 상황 설교》 등이 있다. 필자의 다른기사 keyboard_arrow_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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