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와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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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 2019년  06월호 성찬 후 남은 빵과 포도주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목회자 고민 상담소(65)

Q 저희 교회는 1년에 두 차례, 고난주일과 송구영신예배 때 성찬식을 하고 있습니다. 시중에서 판매하는 카스텔라와 포도즙을 구입해서 사용하며, 남은 빵과 포도즙은 한데 모아 두었다가 일정 시간이 지나면 버리고 있습니다. 성찬의 준비와 남은 빵과 포도주는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A성찬식 준비와 이후의 처리 과정을 소홀히 여기는 교회와 사역자는 아마 없을 것입니다. 나름대로 진지하고 경건하게 준비하고 처리하려고 노력하지만 여전히 많은 이가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 궁금해 합니다. 성찬식에서 사용하는 빵과 포도주(혹은 포도즙)의 종류가 워낙 다양하고 교단들의 예배예식서에는 자세한 내용이 없거나, 짧고 모호한 안내에 그치기도 하여 어떤 것이 사용하기에 적합한지 명확한 기준을 찾기 어렵습니다. 성찬식 이후 빵과 포도주의 처리 문제에 대한 의견도 분분합니다. 이 글의 목적은 이러한 다양한 견해들을 전제로 두고 교단을 불문하고 빵과 포도주의 준비와 처리를 위한 현대적이며 일반적인 기준을 찾아보는데 있습니다. 이 글에서 제시하는 의견들은 절대적인 규범이 아니고 필자의 경험을 토대로 하여 교회 연합의 차원에서 적용한 느슨한 원칙입니다.

지금까지의 논의

빵과 포도주의 처리와 관련하여 가장 많이 인용되는 초대 교회의 사례는 주후 215년 로마 감독 히폴리투스의 사도전승에 등장하는 빵과 포도주에 대한 언급입니다. “교회는 불신자나 쥐나 다른 짐승이 감사의 예물(eucharist, 기존의 번역: 성체)을 먹는 일이 없도록 유의할 것이며 어떤 것도 떨어뜨리거나 잃어버리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왜냐하면 (빵과 포도주는) 모든 신자가 받아야 할 그리스도의 몸이므로 천시해서는 안된다.”1  포도주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감사 기도를 드릴 때(give thanks, 기존의 번역: 축성할 때) 너는 그 잔으로부터 그리스도의 보혈을 받게 된다. 잔을 쏟아 이질적인 영이 그것을 핥게 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이를 경멸한 너를 거슬러 분노할 것이다. 또 너는 속량된 그 값을 업신여겼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보혈에 대한 죄인이 될 것이다.”2

사도전승 외에도 많은 자료에서 빵과 포도주를 소중하게 다루었으며, 성찬 후 처리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보였습니다. 따라서 개신 교회에서 초대 교회의 자료를 인용하여 보편적인 원칙으로 삼는다 해도 크게 무리는 없을 것입니다. 참고로 가톨릭 교회에서는 트렌트공의회에서 결정한 대로 성당에 감실을 설치하여 성찬식 후 남은 빵을 보관했습니다. 포도주는 사제들이 모두 처리했습니다. 가톨릭의 처리 방식은 우리가 그들의 성찬 신학인 화체설에 근거합니다.

개신 교회의 경우 다양한 성찬 신학을 가지고 있기에 초대 교회의 자료들을 사용하되 혹여 오해가 생길 수 있는 용어들은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예를 들어 사도전승의 한글 번역에는 많은 개신 교회에서 낯설어 하는 ‘성체’나 ‘축성’과 같은 단어들이 사용되었습니다. 즉 축성의 기도를 드렸기에 빵과 포도주가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었을 것이라는 오해를 낳을 수 있기에 보다 보편적인 용어를 사용하거나 부연 설명이 필요합니다.3 빵과 포도주를 단순한 상징으로 여기는 개신 교회들이 상당수 있음을 감안해야 합니다. 

아울러 시대적 상황이 현격하게 달라졌음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옛날에는 빵과 포도주의 보관 및 처리시설이 미비했고, 당시에는 남은 것을 땅에 묻는 것이 좋은 방법이었겠지만 현대에 와서는 재활용이나 음식물의 적절한 처리와 상충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렇듯 문화적, 생태적 이해의 변화도 감안하여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초대 교회에서 그렇게 했으니 오늘 우리도 그대로 해야 한다는 부담을 갖기보다는 오늘의 시선으로 빵과 포도주의 준비와 처리 문제를 바라보는 게 좋습니다. 과거의 전통은 우리를 비추는 도구로서 훌륭하게 기능하지만 시대와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경우 불필요한 오해를 야기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빵과 포도주의 준비

그렇다면 21세기 개신 교회는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빵과 포도주를 준비해야 하고 성찬식 후 남은 빵과 포도주는 어떻게 처리하는 게 좋을까요? 먼저 성찬을 위한 빵의 준비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지금까지는 빵이 소량이어야 하고 절대 맛이 없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4 이 견해는 나름 일리가 있지만 개신 교회 내의 신학적, 예전적 이해가 매우 다양함을 감안하면 보편성에서 아쉬움이 없지 않습니다.

성찬에 사용하는 빵에 대해 미국 장로 교회는 알기 쉬우면서도 제법 구체적인 안내를 제공합니다. 우선 성찬 참여자들의 일치를 효과적으로 드러낼 수 있도록 나누어지지 않은 상태의 온전한 빵을 준비하는 것이 좋습니다. 물론 대형 교회의 경우에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많아 이미 작게 썰어 놓은 빵을 사용하는데 상징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성찬대 위의 빵만이라도 나누어지지 않은 것을 놓으면 좋겠습니다. 다음은 미국 장로 교회의 조언입니다.   

“빵의 맛과 좋은 상태는 중요합니다! 시편 기자는 우리를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시 34:8)라고 표현하며 초대합니다. 전통적으로 서방 교회에서는 밀로 빵을 만들었는데 옥수수, 쌀, 보리로 만든 단순한 빵이 다른 문화 전통에서는 매우 적절할 것입니다. 어떤 경우든, 성찬식에서 사용하는 빵은 맛이 좋아야 하고, 구미를 동하게 하며, 심지어 약간 단맛이 나면 좋겠습니다. 성찬식의 빵이 기독교인들의 삶에 기본적인 영양을 공급하는,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가장 중요한 상징성을 왜곡하거나 혼란을 주지 않도록 소박(simple, 단순)해야 합니다. 설탕이나 견과류, 건포도나 허브를 지나치게 많이 첨가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5

위에 인용한 대로 필자도 지나치게 당도가 높거나 다양한 재료가 들어간 빵의 사용은 권하지 않습니다. 내 돈을 내서는 절대 구입하지 않을 낮은 품질의 빵도 추천하고 싶지 않습니다. 필자는 “보기에도 좋고 건강에도 좋으며 기왕이면 맛도 훌륭한 정성스럽게 만든 빵”을 권합니다. 과거 목회할 때 필자는 성도들의 가정에서 만들거나 여의치 않을 경우 편의상 피타 브레드(pitta bread, 고대 시리아에서 유래되었고 중동지역에서 널리 알려진 납작한 모양으로 만든 빵-필자 주)를 가끔 사용했습니다. 이왕이면 양질의 빵을 구입하기 위한 사려 깊은 선별 과정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교회에서 직접 빵을 만들면 좋겠지만 그럴 형편이 되지 않으면 근처의 신뢰할 만한 곳을 정하여 주문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최근 성찬식에서 사용하는 빵을 준비할 때 새롭게 고려해야 할 기준이 있다면 그것은 교우들의 특별한 상황을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특정 음식이나 재료에 과민 반응(Allergy)을 보입니다. 글루텐에 과민 반응을 보이는 성도들을 위해 미연합 감리 교회의 경우에는 글루텐(gluten, 곡물에 있는 불용성 단백질-필자 주)이 포함되지 않은 빵의 사용을 권유합니다.6 참고로 요즘에는 글루텐이 포함되지 않은 빵을 주문하는 것이 예전보다 어렵지 않습니다. 우유와 땅콩에 과민 반응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꽤 많습니다. 성찬을 집례하거나 성찬용 빵을 준비하는 이들은 이렇듯 성도들이 불편할 수 있는 상황을 미리 살펴서 빵에 어떤 재료가 들어가지 않아야 하는지 세심하게 점검하고 사랑의 마음으로 준비해야 합니다.   

포도주의 경우 형편이 허락한다면 교회에서 직접 담그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되도록 알코올 도수가 낮은 것으로 선택하기 바랍니다. 간혹 당도가 지나치게 높은 포도주를 사용하는 교회들이 있는데 이 또한 추천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드신 것을 그대로 사용한다는 취지로 포도주를 사용하는 교회도 각별한 주의가 요구됩니다. 알코올이 포함된 음료를 사용할 경우 고려할 사항이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7

흔한 경우는 아니지만 성도 중에 알코올 중독의 문제를 가지고 있는 이가 없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성찬에 참석하는 이들 중 의외로 알코올에 대하여 과민 반응을 보이는 이들이 많을 수 있음을 참고하기 바랍니다. 교단과 교회에 따라 청소년의 성찬 참여를 허락하는 공동체들이 늘어나고 있음을 감안하면 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미량이더라도 미성년자에게 알코올이 들어간 음료를 제공하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해야 합니다. 만약 포도주를 반드시 사용해야 한다면 알코올이 없는 포도즙도 따로 마련하여 성도들이 기꺼이 참여하고 마실 수 있도록 배려하면 좋을 것입니다. 그렇게 할 경우 많은 교회가 리본을 매달아 포도주와 포도즙을 구분하는 방법을 사용해 왔습니다. 혼란을 미연에 예방하기 위해 포도주와 포도즙을 글씨로 표시하여 따로 줄을 서도록 하는 교회들도 있습니다. 언뜻 사소해 보이지만 이미 언급한 대로 이는 성찬 참여자들의 형편에 대한 고려와 존중의 표현이기에 교회에서 진지하게 적용하기를 권합니다.

예전에는 음식과 관련된 과민 반응의 경우 개인이 어쩔 수 없이 감내해야 했지만 지금은 공동체가 진지하게 살펴야 할 중요한 사안입니다. 요즘은 ‘환대’와 ‘배려’가 그 어느 때보다 강조됩니다. 교회에 속한 성도 개개인의 형편과 입장을 고려해 차별을 야기하거나 성도들에게 상처를 주는 일들을 삼가야 합니다. 이는 성찬에 참여하는 이들의 인권을 존중하는 윤리적인 문제인 동시에 불가피한 처지의 성도들을 보살피는 목양적인 과제입니다. 

덧붙여 빵과 포도주 혹은 포도즙을 준비할 수 없는 특수한 상황의 경우 교회의 입장에 따라 다른 재료를 사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경우 빵과 포도주의 사용을 권고하면서 동시에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지체들로서 너그러운 자세로 유연성을 갖고 바라보기를 소망합니다. 
 

성찬식 후 어떻게 처리할까?

서론의 이야기로 돌아갑시다. 일단 성찬에서 사용한 빵과 포도주를 소중하게 다루어야 한다는 데 이견은 없을 것입니다. 사람이 먹는 음식을 아무렇게나 버리는 것은 일단 상식에도 어긋나고 예의도 아닙니다. 하물며 거룩한 성례전을 위해 사용된 음식을 경건하고 청결하게 처리하는 것은 강조할 필요도 없는 당연한 일입니다. 필자는 다음과같이 처리할 것을 제안하는데 교회에서 유연성을 가지고 적용하기를 바랍니다.

첫째, 성찬에 참여한 이들이 먹기에 알맞게 적당한 양을 준비하십시오. 과하거나 모자라지 않도록 미리 신중하게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성찬식에서 집례자가 빵을 직접 떼어 주면 양을 조절하기 용이할 것입니다.

둘째, 예배에 참석하지 못한 환우나 특별한 사정이 있는 이들이 나중에 개별적으로 받을 수 있도록 남은 빵과 포도주를 사용하면 됩니다. 냉장 시설의 발전에 따라 음식의 저장이 용이하지만 가급적 빨리 처리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셋째, 불가피하게 남은 것은 되도록 목회자들이 처리하도록 합시다. 일전에 한 모임에서 어떤 목사님이 성찬식 후 예상치 않게 빵이 많이 남았고 교회에서 처리하기에는 마땅한 장소도 없는 등 곤란한 부분이 있어서 자신의 가정에 가지고 가서 조용히 마무리했는데 문제가 없느냐고 질문했습니다. 필자는 사견임을 전제로 남은 음식을 무분별하게 버리거나 음식물 쓰레기로 처리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아름다운 세계의 보존에 위배되니 그 상황에서는 최선이라고 대답했고 죄책감을 갖지 말라고 덧붙였습니다. 

한편 당회원들이 처리한 사례가 있는데 이는 권징대상이 아니라는 장로교회의 판결이 있습니다.9 흥미로운 결과인데 성찬 후 빵과 포도주의 처리 방식에 대해 논란이 실재했다는 사실과 판결에 유연성이 있음을 보여 주는 단적인 사례입니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 해도 개인적으로 당회원들이나 교우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처리하는 것은 권유하고 싶지 않습니다. 불가피하게 그렇게 해야 한다면 덕을 세우기 위해 좋은 방법을 강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공개적인 장소에서 다른 음식물을 처리하듯 하지 말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조용한 장소에서 신중하고 경건하게 하기를 바랍니다.

넷째, 남은 것을 무리해서 먹거나 마시지 말고 정해진 장소에 묻으십시오. 만약 법에 저촉되는 등 땅에 묻는 것이 여의치 않다면 환경을 더럽히지 않도록 격리된 장소에서 깔끔하게 처리하도록 하십시오. 음식물의 처리에 있어서 재활용에 관련된 정해진 법을 따라야 함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다섯째, 성찬 후 남은 빵과 포도주를 교회 마당의 나무에 거름으로 사용하는 등 창조적인 처리 방법들이 제기되고 있는데 이 또한 긍정적으로 고려해 볼 만합니다. 상식적인 이야기지만 노파심에서 첨언하면 빵과 포도주가 자동적으로 퇴비가 될 수는 없기에 적합한 처리 시설이 선결 조건임을 명심하십시오.

나가는 말

개혁 교회는 성찬에서 사용하는 빵과 포도주(혹은 포도즙)의 속성과 역할에 대하여 다양한 의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교단과 교회의 신학적, 예전적 입장을 고려해 빵과 포도주를 준비하고 처리하기 바랍니다. 빵과 포도주를 단순한 상징으로 본다 해도 기본적인 상식과 예의를 벗어나지 말고, 소중히 여긴다 하여 지나치게 신성시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이 정도의 포용이라면 아마도 개신 교회의 다양한 입장을 담기에 크게 부족하지 않을 듯 합니다. 

프랑스 신학자 자크 엘륄은 로마 가톨릭이 일치된 규범적 체계를 찾는 반면에 개신 교회들은 다양한 의견들이 불일치하는 모순을 그대로 받아들였다고 말했습니다.10 언뜻 개신교회의 사상가들과 교회들이 왜 일치를 추구하지 않았을까 의문이 들겠지만 종교 개혁가들의 성찬 신학에 다양성이 있었음을 떠올리면 어렵지 않게 이해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주님의 자녀에게 허락하신 고유한 개성에 따라 주관적 판단이 가능하다는 사실은 다른 입장에 대한 포용과 환대에 더욱 전향적 자세를 취할 수 있는 근거가 됩니다. 빵과 포도주에 대한 생각이 다르고, 처리 방식에 차이가 있다하여 크게 문제 삼을 것이 없습니다. 다만 그것이 일반적인 빵과 포도주와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인지하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직접 선물로 주신 성례전의 은혜를 빵과 포도주라는 매개 혹은 상징을 통해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과 공유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주님의 식탁에 모여 서로를 환대하고 위로하며, 그분의 희생을 기념하고, 기쁨으로 먹고 마시며 천국의 잔치를 미리 경험하는 복된 성찬의 과정 속에, 준비부터 처리까지 모든 순간순간마다 주님의 은혜에 대한 신실한 고백과 감사가 가득하기를 소망합니다.   



1) The Apostolic Tradition of Hippolytus, translated into English with Introduction and Notes by Burton Scott Easton,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34), p.60.
2) 앞의 책, p.60. 영어 번역은 being blessed 혹은 having blessed(Gregory Dx)등으로 다양한데 의미는 같다.
3) 필자가 《사도전승》을 인용하면서 이전의 번역을 괄호로 처리했다. 성체는 이미 영어로 번역한 이들이 제시한 대로 eucharist, 즉 “감사의 예물”로, 축성은 감사 기도(give thanks)로 하는 것이 보다 보편적이며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4) 정장복, 《예배의 신학》, (서울: 장로회신학대학교 출판부, 1999), p.414; 정장복,《그것은 이것입니다》(서울: 예배와설교 아카데미, 1999), p.106.
5) https://www.presbyterianmission.org/ministries/worship/
faq/faq-lordssupper/ 2019년 4월 25일 접속. 번역은 필자의 사역임.
6) http://s3.amazonaws.com/Website_Properties/what-we-believe/documents/this-holy-mystery-communion.PDF  2019년 4월 25일 접속.
7) 과거에는 포도즙이 자연발효 문제로 성찬식에서 사용이 불가했으나 미국의 뉴저지주 바인랜드 감리교회의 성도였던 토마스 웰치 박사가 발효되지 않은, 즉 알코올이 함유되지 않은 포도주스를 만든 것(1869)이 성찬식에서 포도즙이 사용되기 시작한 시초다.
     http://www.umc.org/who-we-are/methodist-history-controversy-communion-and-welchs-grape-juice. 2019년 4월 20일 접속. 
8)  성찬식에서 감사의 기도와 성령 임재의 기도를 드린 빵과 포도주의 효력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 필자는 이러한 다양성과 더불어 한국 교회의 경우 성령 임재의 기도가 널리 사용되고 있지 않기에 이 부분에 대한 논의는 생략한다. 
9)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3213001&code=61221111&cp=nv 2019년 4월 25일 접속. 〈한국기독공보〉 2014년 3월 25일의 기사를 참조하라. 
10)  박건택, 《자크 엘륄 사상 입문》, (서울: 다산글방, 2003).

안덕원 안덕원 횃불트리니티 신학대학원대학교 실천신학교수, 역서로 《교회건축과 예배공간》, 저서로 《우리의 예배를 찾아서》가 있다. 필자의 다른기사 keyboard_arrow_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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