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와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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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화보 2019년  06월호 외로운 길 가는 목회자, 기댈 어깨가 필요합니다 스페셜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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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P. 그레고 박사
 
1996년부터 24년째 미국 트리니티복음주의신학교에서 상담을 가르치는 스티븐 P. 그레고(Stephen P. Greggo) 박사는 ‘그리스도인의 영혼을 보살피는 다음 세대 준비’를 소명으로 사역하는 기독교심리학자다. 뉴욕주와 일리노이주의 공인 심리학자로서 기독교 심리학 협회(CAPS), 복음주의 신학 협회(ETS) 및 미국 기독교 상담 협회 (AACC)의 정회원으로서 미국 기독교 상담 협회가 주최하는 세계 대회의 코디네이터로 활동하는 등 캠퍼스를 넘어 목회자 재교육 분야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특히 그레고 박사는 미국뿐 아니라 우크라이나의 키예프, 마닐라, 상파울루, 체코 등지에서도 상담 및 교육 사역을 진행했다. 미국 트리니티신학대학원 목회학 박사 과정 학생들을 위한 강의 차 한국을 방문한 스티븐 P. 그레고 박사를 지난 2월 스티브 차 편집장이 인터뷰했다. 


그레고 박사님, 한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먼저 간단한 자기 소개와 영적 여정을 말씀해 주십시오.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며 영적 여정에 대하여 말하는 것은 무척 흥미로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알 방법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믿음을 중시 여기는 집안에서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온전히 만난 때는  대학에 진학하기 직전이었습니다. 제게 매우 유익한 제자 훈련 기간이었고, 사역에 대한 열정을 키울 수 있는 시기였습니다. 대학에서 사회학과 심리학을 공부한 후 제가 살던 곳에서 완전히 반대 방향에 있는 덴버신학교(Denver Seminary)에 입학했습니다. 

신학을 공부하는 동안 주님께서는 여러 가지 방면에서 저를 축복해 주셨습니다. 도전적인 여정이긴 했지만 감사가 넘치게 하셨습니다. 신학교 재학 중에는 몇몇 작은 교회를 섬겼고, 졸업 후에는 뉴욕에 있는 작은 교회에서 청소년 사역을 몇 년간 했습니다. 청소년 사역이 너무 재미있어서 청소년 사역자가 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성도들과 상담하는 일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상담을 위한 전문적인 자격을 갖춘 후에는 뉴욕에서 상담소를 운영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큰 축복을 부어 주심을 깊이 느꼈습니다. 당시에는 신학 교육과 상담 교육을 모두 받은 사람이 드물었습니다. 제가 목사이면서 동시에 자격을 갖춘 전문 상담가이다보니 트리니티신학대학원의 초빙을 받아 학교에서 신학생들을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목회자는 성도의 영적 성장을 돕는 자입니다. 이 과정에서 성도를 상담하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상담은 매우 전문적인 분야이기 때문에 어려움이 따릅니다. 전문적인 자격증을 갖추지 않은 목회자가 상담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입니까? 

기술과 문명의 발전으로 인해 개인은 시대로부터 많은 요구를 받으며, 이로 인한 압박감이 무척 큽니다. 이러한 요구와 압박은 결국 진실되고 진심 어린 관계로부터 멀어지게 합니다. 기독교적 믿음이 이끌어 가길 원하는 방향과 정반대로 흘러가는 것입니다. 목회자가 멋진 설교를 하고, 교회가 훌륭한 프로그램을 도입해도 성도 간에 진실되고 진심 어린 관계가 형성되지 않으면 고립된 상태로 살아가게 됩니다. 목회자는 교회를 생명력 있는 공동체로 만들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공동체를 갈망합니다. 현대인들은 영화 관람이나 비디오 게임, 페이스북 등으로 스트레스와 압박에서 벗어나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만 얻는 특별함이 있습니다.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라는 창세기 말씀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현대의 기술과 문화의 흐름은 점점 더 인간을 고립시킵니다. 자신만 바라봐서는 하나님의 형상을 담은 자기의 진짜 모습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목회자는 공동체를 가꾸어 가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목회자는 연기자가 아닙니다. 목회자는 사람들이 서로 진실하고 투명한 관계를 맺어 갈 수 있는 공동체 내의 분위기와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런 공동체에서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경험하고,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사역은 돌봄의 연속입니다. 이는 위탁이 아닌, 합력입니다. 어떤 목회자들은 어려움을 겪는 성도를 상담 전문가에게 보낸 것으로 자신의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가지고 있는 내면의 문제는 대부분 긴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따라서 돌봄도 장기간 지속되어야 합니다. 성도에 대한 모든 정보를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활용하며 항상 함께해 주어야 합니다. 이러한 네트워크를 인정하고, 교류하고, 좋아하고, 협력하는 일이 무척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에는 정말 많은 상담소가 존재하지만 동일하지 않으며, 무엇보다 기독교적 믿음에 민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상담소를 통해 방향을 잡는 데 도움을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들 곁에서 끝까지 지지해 주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돌봄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목회자들은 성도를 훈련하는 일에 더 관심을 갖는 것 같습니다. 

교회는 ‘목회적 돌봄’을 ‘영혼 구원’이라는 매우 보수적인 의미로 사용합니다. 그러나 제가 말하는 돌봄은 성장을 향한 양육입니다. 우리는 상담을 치료에만 치중해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영혼 구원’을 상처받고 방황하는 영혼을 회복시키는 개념으로 생각해 봅시다. ‘돌봄’은 곧 곁길로 치우치지 않고, 올바른 방향을 향해 하나님께서 부르신 모양에 더욱 가까워질 수 있도록 돕는 일일 것입니다. 이 여정을 어떻게 지속해 나가야 할까요? 자신들이 스스로를 강건케 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게 할 수 있을까요? 저는 이것이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돌봄’이고, 이를 위해서는 ‘일관성’과 ‘신뢰’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목회자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목회적 돌봄은 무엇입니까? 

모든 사람이 위기에 처하는 상황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위기에 처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사역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설교는 1차적 예방책 중 하나입니다. 설교를 통해 문제가 시작되기 전에 예방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위기 여부를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은 인생에서 여러 전환점을 만납니다. 자녀가 대학을 가기 위해 집을 떠나거나, 결혼을 하거나, 이직을 하는 등 여러 가지 상황이 있을 것입니다. 목회자는 이런 고위험 시기에 있는 성도에게 집중해야 합니다. 사역의 시점을 이혼을 결심한 이후에 둘 필요가 없는 것이지요. 위기에 대한 반응으로 돌봄 사역에 접근하지 말고, 미리 생각하고, 전략적으로 예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상담에서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해서 목회자가 주의할 점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상담에는 여러 접근법이 있고, 모두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습니다. 한 가지만 골라서 가장 좋은 접근법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에는 장단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각 방법은 최고의 효율을 발휘하는 특정한 상황이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물리학 연구소에서 상담 전문가로 일하는 상황이라면, 과학 연구와 증거에 기초한 접근법을 사용할 것입니다. 물론 당연히 기독교 믿음과의 관계 속에서 진행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경을 감안해야 합니다. 

사역을 할 때는 확신을 갖고, 상황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상황화를 통해 다양한 수준과 상황들을 인지하고, 모든 요구와 사회적 기대를 충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을 하라고 말합니다. 제 역할은 그들이 처한 상황에서 최고의 결과를 낼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인데, 이를 위해서는 먼저 올바른 관계가 형성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올바른 관계 형성이 최고의 결과를 낳습니다. 물론 여기에도 논란의 여지는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말하는 내용뿐 아니라 분위기를 조성하고, 목회자의 설교가 성도의 마음에 받아들여져 삶에 적용되고, 삶의 한 부분으로 자리하는 것입니다. 전통적인 상담 모델들은 상하 구조 또는 계층 구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러한 구조는 호소력을 띨 수는 있지만 현대 문화에서는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이제 사람들은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많은 정보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목회자는 이런 것들에 지혜롭게 접근하여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교회 공동체에서는 자신의 문제를 드러내어 기도하며 조언을 구하는 일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공동체적 돌봄의 효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공동체를 통해 다른 이를 돌보는 것은 무척 독특한 기독교적 접근법입니다. 저는 2008년에 소그룹을 위해 Trekking Toward Wholeness(전체를 향한 트레킹)를 출간했습니다. 이 책에서 저는 다양한 형태의 돌봄을 연구했습니다. 의학적 돌봄부터 개인 상담까지 살펴보았습니다. 그중 공동체를 기초로 한 그룹 돌봄은 교회의 전통과 잘 어울립니다. 이는 다른 것들과는 다르게 심리학으로부터 온 개념이 아니라 독특한 기독교만의 특색이 있는 접근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는 변화와 성화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때때로 사람들은 문제가 분명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마치 문제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합니다. 그러나 이런 상태로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으려고 하면 연약함, 상처, 아픔, 아직 다듬어지지 못한 부분 등이 관계를 맺는 과정 전체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다른 사람의 반응을 듣기 전까지는 내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제대로 발견할 수 없습니다. 물론 자기 반성도 의미는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반성은 다른 사람의 반응보다 동기 부여가 되지 못하고, 명확하지도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 자신이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가장 좋은 거울은 한 공동체 안에서 나에게 정직한 심령으로 대할 수 있는 사람들의 도움을 얻는 것입니다. 이는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쌍방향으로 영향을 미치며, 함께 그리스도를 점점 더 닮아가고, 그분의 마음을 갖는 여정을 함께 걸어가는 과정입니다. 

목회자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목회라는 일은 고립될 수 있는 성향이 매우 강합니다. 목회자가 성도들 사이에서 자신이 속할 공동체를 찾는 일이 무척 어려울 수 있습니다만, 이런 관계 가운데 스스로를 두지 않으면 위험에 처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변해야 할 부분이 있는데도 전혀 알아채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목사 안수를 받음과 동시에 완벽하게 그리스도와 같은 모습이 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교회 공동체는 특정한 업무를 위해 성도와 목사를 구분합니다. 이것에는 분명 기름 부으심과 축복과 은혜가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자신의 영적 여정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다른 이들과 함께 할 때 가장 좋습니다. 


많은 목회자가 사역 중에 다양한 일들로 어려움에 처하기도 하고 스트레스를 받기도 합니다. 심지어 어떤 목회자는 우울증에 걸리기도 합니다. 목회자가 건강하게 자신을 돌보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동정 피로’(Compassion Fatigue)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는 상담 전문가가 만성적인 정신 문제를 가지고 있는 내담자를 만날 때 겪기 쉬운 일종의 부작용을 일컫는 말입니다. 목회자는 동정 피로를 겪을 수 있는 직업군 중에 하나입니다. 여기서 벗어나는 길은 스스로를 강건케 세워 복음 사역자로서 민감하게 깨어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를 위해 휴식을 취하거나, 특별히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균형을 잡는 게 필요합니다. 균형은 건강에 대한 것만이 아니라 자신의 개인적 그리고 공적 사역을 가장 효과적으로 행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저와 함께 일하는 목회자나 사역자 중에도 도덕성이나 진실성에 대해 어려움을 경험하는 이가 있습니다. 이런 일이 벌어지기 전에는 대개 전조가 보입니다. 대부분이 극도의 피로, 동정 피로, 버거움을 느낍니다. 그 다음에는 생각이 꼬이기 시작합니다. 생각이 덜 명확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구를 날카롭게 유지하고, 자신을 민감하게 유지해야 합니다. 다른 분야와 비교해 상담은 자신의 정체성,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을 자세 등이 내담자 치료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것이 곧 상담의 도구입니다. 왜냐하면 진짜 변화를 만드는 것은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많은 목회자에게 자신을 영적으로 새롭게 하기 위해 시간을 투자하라고 끊임없이 말합니다. 목회자는 깨어 있어야 하고, 다른 이들과 나눌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을 섬기는 것이고, 크리스천의 섬김입니다. 이는 이기적으로 자신만을 위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기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목회자에게 교회와 가정은 긴밀한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가정은 누구에게나 소중하지만 특히 목회자에게 가정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목회자의 역할은 말씀 선포, 목회적 돌봄, 행정적 의무입니다. 신학교에서는 이 세 가지를 잘 하라고 가르칩니다. 마치 세 개의 다리가 있는 의자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사실 다리가 네 개인 의자가 되어야 합니다. 네 번째 다리는 목회자의 가정입니다. 이는 무척 기본적인 원칙입니다. 기본적으로 목회자는 가정 또한 주님께서 허락하신 사역지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을 인지해야 합니다. 목회자로의 부르심을 받아들인 것은 목회자로서 책임을 지기로 한 것을 의미하며, 이러한 결정은 교회뿐 아니라 가정 안에서의 사역 또한 감당하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목회자는 성도에게 선포하는 모든 말씀에 대한 살아 있는 모범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모범은 말이 아니라 실천으로 보이는 것이기 때문에 목회자의 가정은 중요합니다. 어떤 목회자는 가정으로부터 한 발짝 멀어지는 것을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의 표현으로 생각합니다. 성경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그리스도를 따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다시 한번 잘 생각해 봐야 합니다. 이 말씀은 자신의 가정 상황이 교회로 옮겨 올 수 있음을 경고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가정 내의 불화와 연약함이 교회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입니다. 가정은 자신의 언행이 가장 생동감 있게 드러나는 현장입니다. 목회자가 주일 아침에 사람들에게 무엇을 하라고 말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목회자가 그 말을 가정에서 실천하며 살아가는 것은 더 중요합니다. 


마지막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교회와 가정을 이끌어 가는 사람으로서 목회자가 스스로 성장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너무 많은 생각이 떠오르지만, 우선 친구를 사귀십시오. 목회자는 외로운 길을 가는 사람입니다. 성도를 친구로 사귀거나 그들을 완전히 신뢰하기는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회자는 서로의 생각을 나누며 동행할 사람이 필요합니다. 이 말은 반대로 목회자도 다른 이에게 친구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기댈 어깨가 없다면 혼자서 한 주 동안 말씀을 선포하고, 기도하고, 사람들의 고민을 들어주는 일들이 버거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너무 원칙적인 말 같지만, 묵상과 기도와 휴식의 균형을 유지하십시오. 저라면 이런 기본적인 부분들에 충실하겠습니다.

스티븐 P. 그레고, 스티브 차 스티븐 P. 그레고 미국 트리니티신학교 상담학 교수, 스티브 차 <목회와신학> 편집장 필자의 다른기사 keyboard_arrow_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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